<월드스타 강혜민(3)-존잘 남배우의 질투>
"이유미 선배님은 아시겠지만 제가 원래 엔터 쪽 사람은 아니었거든요. 친구들이 하던 회사에 잠깐 놀러갔다가 은빛이랑 업키걸 애들을 만나게 되면서 거의 강제적으로 하게 된 거예요."
나보다 사회적 경험도 많고 나이도 많은 선배들 앞이라서 마음이 편해졌던 탓일까.
나는 가장 가까운 지인들 앞에서나 말할 법한 속내를 조심스럽게 털어놓았다.
강혜민이 나에 대해서 조금 더 알고 싶다는 진중한 투로 되묻는다.
"책임감 때문에요?"
"책임감··· 뭐 크게 보면 그런 거죠. 연예계 대선배님들 앞에서 이런 말씀드리기가 좀 그렇지만, 제가 연예인을 보는 감은 좀 있거든요. 업키걸 애들은 분명 연예인으로서 대중들한테 긍정적인 에너지를 줄 애들인데, 현실적인 문제에 막혀서 나아가지 못 할 거라는 게 보였어요."
내가 자신감을 드러내자 양경진은 "오올."하며 감탄했다.
이유미도 동조한다.
"내가 봐도 대표님이 촉 하나는 참 좋아. 작가들 사이에서도 유명하더라고. 김윤호 대표가 컨택한 프로그램은 시청률은 어떨지 몰라도 분명 화제가 된다는 겨. 업키걸 애들이 신인 때 뜬 이유도 김 대표님이 넣어준 프로그램 때문이었잖아."
"그럼 저는 어때요?"
마주 앉은 대스타 강혜민이 나를 빤히 쳐다보며 물었다.
눈빛이 와인에 취해 조금 흐려졌고 볼도 발그레해졌다.
어느 영화, 드라마에서도 볼 수 없었던 지극히 날 것 그대로의 표정이 나를 압도한다.
"대표님의 감으로 보시기에 저는 배우로 오래 갈 것 같아요?"
그녀의 아우라는 오로지 배우로만 성공할 수 있는 선명한 빨간색이었다.
대스타의 아우라는 색깔 외에 빛의 파장과 굴절에 따라 구분된다. 화려하고 특이한 파장을 띨수록 스타의 기운이 강한데, 강혜민은 자신이 앃은 커리어와 꾸준한 인지도를 통해서도 알 수 있듯이 멋지고 특별한 아우라를 뿜고 있었다.
"이미 정상에 오른 분한테 이런 말을 해봤자 결과론적인 얘기겠지만 혜민 씨는 스타의 재능을 타고 나셨어요. 혜민 씨도 그렇고 이유미 선배님도 그렇고 두 분은 지금까지 해오신대로만 하신다면 오랫동안 사랑 받으실 거예요. 국민 정서에 어긋나는 중범죄만 저지르지 않는다면요."
내 마지막 말의 뉘앙스가 웃겼는지 세 사람은 동시에 웃음을 터뜨렸다.
코스 요리처럼 이어지던 저녁 식사의 끝은 내가 사온 양지로 만든 육개장이었다.
1시간 정도를 팔팔 끓인 진하고 얼큰한 국물은 3시간 정도 이어진 만찬의 유종의 미로 손색이 없었다.
"대표님이 국물 요리를 좋아하시는구나?"
"아우, 너무 맛있는데요?"
배가 거의 다 찼다고 말하던 내가 밥 한 공기를 뚝딱 비워내자 이유미 선배는 물론이고 강혜민도 뿌듯하게 쳐다보며 내일을 기약했다.
"바쁘시면 어쩔 수 없지만 내일 저녁도 같이 했으면 좋겠아요."
"아··· 예."
"이 양반 이래놓고 안 올 수 있으니까 혜민이 니가 직접 연락해서 데리고 와."
내가 여기 아니면 밥도 못 얻어먹고 다니는 사람처럼 외로워 보였던 걸까.
양경진의 당부에 강혜민은 막중한 임무라도 부여 받은 것처럼 씩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응. 그래야겠어."
사람 대 사람이든 남자 대 여자든. 강혜민이 내게 호감이 있다는 건 분명했다.
S창을 켜보면 나에 대한 그녀의 호감도를 알 수 있지만, 나는 언젠가부터 여자를 성적인 대상으로만 판단하는 S창을 끈 채로 생활하고 있었다.
중대한 미션이 있지 않는 한 다시 켤 생각도 없다.
그저 내가 그녀에게 느끼는 이 서렘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싶을 뿐이다.
나는 그렇게 강혜민과 손주까지 보는 상상을 하며 식사 자리를 마무리 지었다.
***
이유미의 집에서 양경진, 강혜민과 함꼐하는 디너파티는 무려 3일 연속으로 이어졌다.
똑같은 사람들을 3일 연속으로 만나면 지겨울 법도 한데 지루하기는 커녕 오히려 그 시간이 기다려졌다.
강혜민과 나 사이의 호칭은 대표님-혜민씨 그대로였지만, 이유미, 양경진과는 누나-동생 사이로 부르기로 정했다.
우리 네 사람 외에도 연예인 또는 관련 업게 사람이 동석하기도 했다.
보이그룹 출신 예능인 창의와 예전에 강혜민과 드라마 주연으로 호흡을 맞췄던 배우 조강천도 다녀갔다.
좋은 사람들이 초대한 손님들이라서 그런지 그들 역시 나이스한 사람들이었다. 긍정적이면서 서로에게 도움이 되는 건강한 에너지로 유익한 시간을 이어갔다.
그래도 내가 3일 연속으로 참석하게 된 결정적인 이유는 전적으로 강혜민 덕분이었다.
그녀는 마치 불량학생을 선도하는 열혈 선생님처럼 매일 같이 내게 연락을 했다.
강혜민 [좋은 아침이에요!]
나 [저보다 더 일찍 일어나셨네요ㅋㅋㅋ]
아침에 일어나면 일어났다고, 점심을 먹으면 먹는다고, 누구와 어디에서 커피를 마시고 있고 어느 지역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으며 영화 '메이크업' 500만 돌파 기념 무대 인사를 다녀왔다는 시시콜콜한 일상까지 전했다.
마치 연인에게 하는 것처럼 말이다.
나 역시 짬이 날 때마다 내 일상이나 상태를 전하며 대화를 주고받았다.
나 [식사 하셨나요. 저는 이제 막 작업 끝나서 점심 먹으러 왔습니다]
강혜민 [저는 아까 감자탕 먹었어요!]
강혜민 [(감자탕 사진)]
나 [와우 빛깔 죽이네요]
강혜민 [완죤 맛있었어요ㅋㅋㅋㅋ]
뭐랄까, 제희를 처음 만났을 때 느꼈던 비현실적이면서도 잔잔한 설렘이 있었다.
하지만 제희 때와는 달리 나는 그녀에게 향하는 호감이나 속내를 결코 겉으로 드러내지 않았다.
좋은 친구나 동료 사이라면 모를까, 이성으로서 잘해보려는 마음 자체를 억눌렀다.
더 이상의 여자관계는 늘리고 싶지 않다는 회의적인 생각 때문이었다.
4일째가 되는 날에도 어김없이 그녀에게 먼저 연락이 왔다.
강혜민 [대표님 오늘은 몇 시에 끝나세요?]
나 [8시 좀 안되서 끝날 듯 합니다]
강혜민 [저희도 그때쯤 시작할 것 같으니까 퇴근하시면 바로 오시면 되겠네요!]
나 [예 필요한 거 있으면 연락하세요]
강혜민과 톡을 나누던 장소는 회사 연습실이었다.
옆집작곡가가 보내준 타이틀곡 후보를 A&R팀, 어덕 아이들과 함께 모니터링 하고 있던 자리였다.
아직 타히티에 있는 옆집이는 역시나 모두의 기대를 충족시키는 높은 퀄리티의 곡을 완성해서 보내좠다.
모두가 옆집이의 센스에 감탄하며 여러 번 돌려 들으면서 보컬 파트를 나눴고, 안무와 의상 등의 컨셉 회의까지 쭉 진행하던 중이었다.
소파에 앉아 있던 나는 강혜민과 톡을 주고받다보니 집중력이 다소 흐트러졌다.
그때 란이가 내 옆으로 슬쩍 앉으면서 핸드폰을 훔쳐보려고 했다.
내가 반사적으로 화면을 옆으로 피하자 다 꿰뚫고 있다는 투로 빙글거린다.
"왜 피해요? 아, 새로 연락하는 여자 생겼구나?"
"조용히 해."
"연예인?"
"이유미 선배님이야, 요즘 선배님 집에서 저녁 계속 같이 먹고 있거든."
"풉. 이유미 선배님하고 연락을 하는 거면 핸드폰을 피할 이유가 없지. 이유미 선배님이랑 같이 밥 먹는 무리 중에 누군가겠죠. 그럼 연예인 맞는 거고."
귀신인가.
나는 더 이상 반박을 하지 않았따.
우리는 얼굴을 가까이 하고 마치 일 얘기를 하는 것처럼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소곤소곤 대화를 이어갔다.
"다른 멤버들한테는 말하지 마라."
"그래도 나경이한테 벗어난 것처럼 보여서 다행이네요."
"벗어나긴 뭘 벗어나. 내가 걔한테 언제 빠졌다고."
"에이, 솔직히 대표님도 걔 쫌 좋아했잖아요. 어리고 예쁘고 귀엽고 순수하고 인기 많은 걸그룹 멤버를 안 좋아한다는 게 이상한 거지. 다 아는 사이끼리 이러지 맙시다."
여자들의 촉이란···.
"······티 났냐?"
"티는 많이 안 났으니까 걱정 마요. 내가 눈치가 빠른 거지."
"다행이네."
녀석이 턱으로 내 핸드폰을 가리키며 묻는다.
"지금 연락하는 사람하고는 김윤호 했어요?"
"안 했어. 그런 사이 아니야."
"할 마음은 있고?"
"아, 없어."
"김윤호가 김윤호를 생각 안하면 김윤호가 아닌데···. 근데 누구예요? 내한테만 살짝 말해줘요."
나는 서둘러 화제를 돌렸다.
"너는 참을 만 해?"
"아직까진 괜찮아요. 그리고 못 참을 거 같다고 해도 어떻게든 참아볼 테니까 걱정하지 마요. 저 한다면 하는 여자잖아요."
"니가 언제부터···가 아니구나. 그래, 요즘은 꽤 믿을만해졌다. 아주 잘하고 있어."
"근데 옆집작곡가님 노래 진짜 좋아요. 처음에 드자마자 꽂히는 그런 스타일은 아닌데 그냥 좋아요. 역시 믿고 듣는 옆집님이구나."
"옆집이가 각 잡고 쓴 거면 안 들어보고도 앨범에 실을 수 있지."
스피커에서 반복되어 흘러나오고 있던 노래에 집중하느라 잠시 대화가 끊겼다.
제목은 어글리 더클링을 역설적으로 풀어낸 '예쁜 오리 새끼'.
장르는 레트로 감성의 시티팝이었고, 노랫말은 사랑이 주제가 아닌 어덕만의 아이덴티티를 드러내는 가사였다.
'굳이 백조를 따라 하려고 하지 말고오리로 태어났으면 오리만의 멋진 삶을 살자.'
노래는 주제를 관통하는 후렴구로 넘어간다.
미우면 미운대로 사는 것도 나쁘지 않아요 (신경 쓰지 마요)
모두가 다 백조라면 그거야말로 재미없잖아요 (난 나니까)
사랑해줘요 날······
후렴의 마지막 부분은 한 템포 쉬었다가 간드러지는 목소리로 '오리라도요'라고 말한다.
그새 노래를 다 외운 어덕 아이들은 각자의 목소리와 창법으로 마지막 부분을 따라했다.
"오리라도요호."
"오리라도욪~"
"오리라도욪."
"오리라도욯."
"오리라도요."
한 번에 꽂히는 노래는 아니라는 평이지만, 어는 순간부터 직원들도 나지막이 따라 읊조린 걸 보면 어느 정도 대중성과 중독성은 있는 것 같다.
노래를 흥얼거리는 란이는 감회에 젖은 표정이 되었다.
"결국 앨범이 나오긴나오는구나. 기분 이상하다···."
니가 잘 버티고 노력한 결과물이지. 고생 많았다.
나는 녀석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는 것으로 속마음을 대신했다.
'예쁜 오리 새끼'는 이견 없이 타이틀곡으로 정해졌고, 연습이 끝나는 대로 바로 녹음에 들어가기로 했다.
***
4일 연속 이유미의 집으로 퇴근을 했다.
이것도 오늘이 마지막이다.
다음 주부터는 다들 바빠져서 시간을 정해놓고 만나지는 못한다.
하지만 내 의사와 상관없이, 나느 이미 '이유미 식당' 모임의 일원으로 인정받아 주기적인 만남을 갖기로 결정이 나 버렸다.
그들 눈에는 내가 굉장히 짠해 보인 모양인데, 내가 모성애를 일으키는 캐릭터라는 걸 그들을 통해 처음 알았다. 아마도 이유미와 양경진이 큰누나뻘 연상이라서 그런 것 같다.
"윤호야, 이거 간 좀 한 번 볼래?"
"예···. 음, 괜찮은데요?"
"안 짜니?"
"제 입맛에는 맞는데요."
"그럼 됐지 뭐."
오늘은 양경진이 일 때문에 늦는다고 하여 이유미, 강혜민, 나 세 사람이 먼저 모였다.
이유미가 음식을 준비하는 동안 강혜만과 나는 식탁에 앉아서 잡일을 도와주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러던 중 강혜민의 전화가 울렸다.
발신자를 확인한 그녀가 이유미에게 언짢은 투로 묻는다.
"언니, 경준이 전화 왔는데?"
"받으면 되지"
"온다고 하면 어떡해. 언니네서 밥 먹는다고 하니까 촬영 일찍 끝나면 온다고 그랬거든."
경준?
신경준?
내가 요즘 강혜민의 옛날 기사까지 검색해보고 있는 터라 바로 연관이 지어졌다.
강혜민과 멜로 영화에서 호흡을맞췄던 남자 배우인데, A급의 인지도도 인지도지만 30대 남배우 중에서는 얼굴로 탑3안에 거론되는 존잘러다.
조각형 미남이라기보다는 트랜디한 미남형에 키도 184cm이라서 여자들이 이상형 연예인으로 많이 꼽는다.
그런데 강혜민은 왠지 그와의 만남을 꺼려하는 눈치였다.
둘 사이에 뭔가가 있다는 것은 이유미의 말에서도 느낄 수 있었다.
"니가 뭐 걔한테 죄졌니? 일단 전화부터 받아."
이유미가 계속 울리는 벨소리를 타박한 뒤 내게 묻는다.
"윤호야, 경준이 본 적 있니? 배우 신경준."
"아니요, 한 번도 뵌 적 없어요."
"걔가 우리 밑에 집에 살 거든. 오늘 밥 먹으면서 인사 나누면 되겠네."
"예, 저는 좋죠."
강혜민은 어쩔 수 없다는 한숨을 내쉬며 전화를 받았다.
"어, 경준아. 촬영 끝났어? 어, 빨리 끝났네. 응, 유미 언니네 집. 어 지금 유미 언니랑 나랑 김윤호 대표님이랑 있어. 업키걸 회사 대표님으로 있으시잖아. 어, 맞아, 언니랑 '그림자의 빛' 나오셨던 분. 경진 언니는 아직 안 왔고."
내가 이유미와 강혜민을 4일 동안 만나면서 그들의 성향이나 처세술에 대해 어느 정도 파악이 됏는데, 그들이 신경준을 두고 하는 대화로 미뤄 그는 이 모임의 정식 멤버라기보다는 아래층에 사는 것 때문에 자주 만나는 사이 같았다.
검색해보니 나이는 강혜민과 나보다 세 살 어린 서른다섯 살.
그는 1시간 뒤에 집에 도착했다.
모자에 마스크, 편한 트레이닝복 차림인데도 피지컬이 좋고 얼굴이 작아서인지 연예인 포스가 확실히 묻어나왔다.
하지만 지금 명성에 비해 아우라의 질은 그저 그랬다. 그리고 이상하게 내가 느낀 첫 인상 또한 썩 좋지 않았다.
뭔가 나를 경계한다는 눈빛이었고, 내 인사를 대충 흘려 넘기는 듯한 인상이었기 때문이다.
"처음 뵙겠습니다. 김윤호입니다."
"아, 예. 안녕하세요. 어우, 배고파. 밥 바로 먹을 수 있지?"
숫기가 없는 사람 중에 종종 이런 뉘앙스를 풍기는 이들이 있는데 내가 보기에 그쪽은 아니었다.
틱틱 내뱉는 듯한 말투도 그렇고 사람을 내리 깔아보는 눈빛도 그렇고, 얘는 그냥 버릇이 없다.
내가 4일 동안 이 집에오면서 만났던 5명의 초대 손님 중에 처음으로 거부감이 드는 인간이 나타난 것이다.
강혜민이 왜 신경준의 전화를 받을 때부터 표정이 안 좋았으며 신경준이 왜 나를 못마땅한 눈빛으로 봤는지는 시간이 지나면서 확실하게 나타났다.
어떻게 하다 보니 나와 강혜민이 옆자리에 앉고 신경준이 맞은편에 앉게 됐는데, 우리 둘 사이를 바라보는 그의 시산이 상당히 아니꼬웠던 것이다.
아, 이 인간 강혜민 좋아하는구나.
강혜민 역시 그걸 알고 있다. 그리고 그가 이 자리에 왔을 때 분위기가 좋지 않은 쪽으로 흘러갈 수 있다는 걸 미리 예상한 것 같다.
그 말은 즉, 신경준이란 사람의 평소 인성이 상당히 까칠하거나 버릇이 없다는 거겠지.
왜 언론이나 예능, 인터뷰에서 자주 노출이 안 되는 배우인지 이제야 알겠다.
성격이 이 모양이니 소속사에서 최대한 감추려는 것이다.
"원래 자주 만나던 사이였어?"
내가 이 집에 나흘 연속으로 왔다는 것을 들은 그가 강혜민에게 추궁하듯 물었다.
강혜민은 단호하게 대답했다.
"내가 김윤호 대표님이랑 업키걸 팬이라서 언니한테 한 번 만나보고 싶다고 했어."
"흐흥. 언제 처음 만났는데?"
"언니 연말에 대상 받았을 때 내가 시상자로 갔었거든. 그때 처음 인사했지."
눈썹과 고개를 끄덕이는 신경준의 시선이 나를 향한다. 그러고는 대면 후 처음으로 내게 말을 걸었는데, 대화법이 내가 상당히 싫어하는 스타일이었다.
자기가 원하는 대답을 끌어내기 위해 사람을 떠보듯이 몰아가는 그런 것 말이다.
"아, 그럼 처음에는 업키걸 하고 같이 만났던 거겠네요?"
"아니요. 처음부터 저 혼자 만났어요."
"누나는 업키걸하고 같이 식사하자고 한 건데 왜 같이 안 오시고."
"애들 지금 남미 투어 중이거든요."
"원래 매니저 하지 않았어요? 제가 방송 봤을 땐 그랬던거 같은데. 아닌가?"
"예, 매니저였죠."
"업키걸 빵 뜨고 돈 많이 버셨나보다. 출세하셨네요."
하아, 이 새끼 이거 상당히 띠겁네.
근데 나도 표정 관리를 못하는 사람이데 어쩌지?
유미 누나랑 혜민 씨가 있다고 해서 예의를 차리기에는 신경준의 적대심이 너무 강했다.
"경준 씨는 원래 말투가 그러신 거예요?"
"제 말투가 왜요?"
"초면인데 상당히 공격적이시네요. 제가 뭐 잘못한 거 있어요?"
"아, 신경 쓰지 마세요. 제 말투가 원래 이래요."
"저한테 계속 신경 쓰라고 일부러 그러시는 거 같은데 어떻게 신경이 안 쓰여요."
"아아, 그렇게 느끼셨구나. 진짜 죄송해요."
"경준아, 누나가 봐도 니가 이상했어 인마. 김 대표한테 왜 그래?"
"아, 나는 그런 뜻이 아니었는데···."
보다 못한 이유미가 나섰지만, 그녀가 중재를 해서 내가 이 자리에 더 있는다고 해도 분위기가 바뀔 것 같지는 않았다.
강혜민은 이미 이렇게 될 거라는 걸 예감했는지 싸늘한 표정으로 신경준을 쳐다보고 있다.
마음을 굳힌 나는 자리에서 일어서며 단호하게 말했다.
"누나 진짜 죄송해요. 저 먼저 일어나야 할 거 같아요. 연락드릴게요."
이유미도 나와 똑같은 생각이었는지 붙잡지는 않았다.
"혜민아, 니가 김 대표 바래다주고 와. 경준이 너는 누나랑 잠깐 얘기 좀 하고."
신경준은 내가 이곳에서 사라지는 것을 자신의 승리라고 생각하고 있는 게 분명했다. 아니면 자기가 피해자라고 생각하거나.
내가 강혜민과 집을 나설 때까지 의자에서 일어나지도 않았다.
1층으로 내려오는 엘리베이터에서 강혜민이 내게 먼저 사과를 했다.
"하아, 죄송해요···."
"혜민 씨가 왜 죄송해요."
"이래서 안 부르려고 했거든요. 원래는 착한 친구인데···."
"처음 봤을 때부터 눈빛에 경계심이 보이더라고요."
혜민 씨를 좋아하나 봐요, 라는 말은 굳이 덧붙이지 않았다.
-띵동, 지하 2층입니다.
"혜민 씨 들어가세요. 제가 연락드릴게요."
"아···."
나는 그녀보다 한 발 앞서 주차장으로 나가는 자동문을 향해 걸어갔다.
그 순간.
"대표님, 혹시 내일 시간 되세요?"
강혜민의 애절한 목소리와 그녀의 몸으로부터 은은하게 피어올라 내 등을 포근하게 어우르는 분홍색 아우라가 발걸음을 멈춰 세웠다.
"내일··· 왜요?"
"경준이 때문에 죄송한 것도 있고··· 시간 괜찮으시면 내일은 제가 밖에서 밥 살게요."
그놈의 밥은 진짜.
나는 끝까지 내 밥을 챙겨주려는 그녀의 모습이 귀여워서 헛웃음이 터졌다.
하지만 내일은 나도 어덕 아이들의 인터넷 방송 촬영 때문에 늦게까지 작업을 해야 했다.
"제가 내일은 시간이 안 될 것 같아요."
"아, 그러시구나···."
"지금은 시간 괜찮아요."
"예?"
"밥은 먹었으니까, 지금 술 한잔 사주실래요?"
"···지금요?"
나도 참 유치하지.
이건 내 개인적인 욕망이라기보다는 신경준에 대한 복수심 같은 거였다.
만약에 강혜민이 이 제안을 거절하면 우린 인연이 아닌 거라고 생각하면 되는 거고.
"아··· 저 그럼 핸드폰만 가지고 내려올게요."
<월드스타 강혜민(3)-존잘 남배우의 질투>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