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91화.이모녀덮(1)-음경 됐다 (294/371)

< 이모녀덮(1)-음경 됐다 >

이정아는 술김에 실언을 했다는 듯, 자조적인 혼잣말로 토를 달았다.

“아··· 너무 친한 척하는 건가···.”

그러고는 민망함을 감추기 위한 애교스런 표정을 살짝 지으며 내게 말했다.

“죄송해요. 제가 대표님을 너무 편하게 생각하나 봐요. 못 들은 걸로 해주세요.”

우리가 처음 술을 마셨던 그날에도 그녀가 먼저 제안을 했었지만, 지금은 그때와 분위기가 달랐다.

그때는 연습생 보호자로서 소속사 대표인 내게 술자리를 권했던 거라면, 지금은 규율이가 배제된 사적인 관계의 연장선에서 제안하는 2차였던 것이다.

남자가 여자에게 술을 한 잔 더 마시자고 말하는 것에도 큰 용기가 필요한데 하물며 여자가, 그것도 평소 고지식하고 보수적인 성격의 이정아의 입에서 먼저 2차 얘기가 나왔다는 것은, 겉으로는 충동적으로 내뱉은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꽤 오랫동안 고민을 한 끝에 내놓은 담력 있는 고백이었을 것이다.

못 들은 걸로 해달라며 뒤늦게 말을 주워 담은 것은 민망함을 감추기 위한 여자로서의 마지막 자존심일 뿐이고.

이걸 어쩐다.

내가 먼저 깔끔하게 자리를 끝내서 어떤 오해의 상황도 만들고 싶지 않았던 나로서는 그녀의 선제공격이 조금은 당황스러웠다.

하지만 그녀와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소속사 대표로서, 남자로서, 그리고 인간 대 인간으로서, 그녀의 용기 있는 제안을 차마 모른 척 할 수가 없었다.

교미라는 선입견에 빠져서 평범한 인간관계조차 섹안경을 끼고 보는 우를 범하고 싶지도 않았다.

“그래요 뭐, 한잔 더 해요.”

나는 내 절제력과 이성을 믿고 그녀가 거둬갔던 말을 받아주었다.

한편으로는 알레르기 때문에 술을 못 마시던 사람이 나로 인해 체질이 바뀌어 소소한 삶의 유희를 알아가는 것이 신기해서 좀 더 관찰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이것도 질내사정의 이로운 효능 중 하나인지도 모르겠다.

“아니에요, 저 때문에 괜히 안 그러셔도 돼요. 제가 술이 좀 올라서 오버한 거예요. 저 그냥 여기서 택시 타고 갈게요.”

“여기 근처에 마실 만한 데가··· 아, 거기로 가면 되겠다. 이쪽으로 가요.”

나는 도리어 미안해하는 그녀의 말을 자른 뒤, 아기자기한 술집들이 모여 있는 골목 쪽으로 먼저 발길을 옮겼다.

이정아는 나 들으라는 듯이 “아, 나 진짜 취했나봐···.”라고 자책하면서 내 뒤를 따랐다.

우리는 주택가 1층에 위치한 테라스가 예쁜 술집에서 2차를 시작했다.

그녀가 며칠 전 방송됐던 ‘체인지’를 재미있게 봤다고 하여, 나는 촬영 뒷얘기를 비롯해서 이번 프라미슈12 새 앨범에 참여하게 된 이야기를 해주었다.

규율이 뒷바라지를 하면서 자연스럽게 아이돌에 관심을 갖게 된 이정아는 웬만한 그룹의 멤버 수와 이름 정도는 모두 꿰차고 있었다.

“이번에 나경이 머리 너무 예쁘던데요?”

“아, 그것도 제가 바꾸라고 한 거예요.”

“어머, 진짜요? 제가 어제 뷰티 유튜브를 봤는데 거기서는 아예 ‘나경컷’이라고 이름을 붙였더라고요. 그거 보다 보니까 어찌나 단발로 자르고 싶던지···.”

“어? 잘 어울릴 것 같은데 한번 해보세요.”

“어휴, 그것도 걸그룹이 하니까 이쁜거죠. 제가 그 머리하고 나타나면 저희 반 애들이 엄청 놀릴 걸요. 요즘도 나이 많다고 놀림 당해요.”

“에이, 저번에는 남자애들한테 인기 많으시다면서요.”

그녀는 겸손이 불러온 자가당착을 부끄러워하면서, 긴 생머리를 손으로 빗질하듯이 쓸어내리며 웅얼거렸다.

“아··· 제가 그런 말도 했었어요?”

“많이 취하셨었구나.”

“아··· 저 그때 진짜··· 아··· 창피해···.”

“뭐가 창피해요. 술 마시면 원래 다 그런 거지.”

“아니에요. 저 다음날 일어나서 완전 이불킥 했어요···.”

우리가 나눴던 농밀한 교미를 떠올리면 그럴 만도 하지.

나는 멋쩍어하는 그녀의 기분을 살려주고자 가볍게 칭찬을 해주었다.

“정아 씨 절대 나이처럼은 안 보여요. 오늘은 캐주얼하게 입고 와서 그런지 더 어려 보이는데요?”

그녀는 어딘가로 기어들어가는 시늉을 하며 대답했다.

“아, 이거 규율이 옷이라서···.”

“저는 정아 씨 처음에 봤을 때 규율이 언니가 얕잡아 보이기 싫어서 이모라고 거짓말 하는 줄 알았어요.”

“음··· 자꾸 띄워주시니까 뭔가 놀림당하는 기분인데요···.”

“에이, 설마.”

나는 장난기 섞인 말투로 대꾸하고는 술을 한 잔 마셨다.

그녀도 쭈뼛쭈뼛 건배를 하는 시늉을 한 뒤 쫓아서 마신다.

“저랑 같이 마시지 말고 정아 씨 편하게 마셔요. 제 페이스에 맞추면 힘들 거예요.”

“오늘 이상하게 잘 들어가는데요.”

“어 그거, 취하는 사람들 단골 멘튼데.”

“아, 그래요?”하면서 오호호호 웃는 모습에서 개굴미 넘치는 규율이의 얼굴이 살짝 보인다.

“팬들이 규율이보고 슬픈 개구리상이라고 하는 거 알아요?”

“예, 알아요. 그거 개구리 만화 짤이랑 비교해서 올라오는 거 너무 웃기더라고요.”

“웃을 일이 아니라··· 정아 씨도 그거 닮았는데···.”

“아 뭐예요! 제가요?”

“예, 규율이랑 정아 씨랑 닮았으니까 당연히 그거 랑도 닮았죠.”

내가 슬픈 개구리 짤을 찾아서 보여주자 그녀는 손과 고개를 동시에 저으며 강하게 반발했다.

“노노, 저는 인정 못 해요.”

“정아 씨네 학생들한테 물어봐요.”

“안 물어봐도 돼요. 이미 닮았다는 얘기 들어봤으니까······.”

“푸흐흐흐흑, 지금 딱 그 표정 나왔네.”

치, 하면서 입술을 뾰로통하게 내미는 모습이 나이답지 않게 퍽이나 귀엽다.

그녀는 어깨를 살짝 들었다가 내린 뒤 고민상담을 원하는 표정으로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근데요, 제가 이걸 누구한테 말해야할지 모르겠는데···.”

“뭔데요?”

“아··· 다른 게 아니라요···. 저희 반 애는 아니고 다른 반 학생이··· 아, 말하려니까 갑자기 민망하다.”

“지금 저 궁금하게 만들어서 죽는 꼴 보고 싶어서 그러는 거예요?”

“큭큭, 그런 거 아니에요.”

“그럼 빨리 말해요.”

“아··· 제 수업 중에 남자애 하나가 자꾸 내 눈치를 살살 살피면서 뭔가 딴 짓을 하고 있는 거 같은 거예요.”

“예.”

“제가 또 제 수업 중에 딴 짓 하는 거 못 보는 성격이거든요.”

“어련하시겠어요.”

“자꾸 책상 밑을 쳐다보길래 저는 만화책이나 핸드폰 같은 거 보는 줄 알고 가지고 나오라고 했죠.”

“음.”

“그랬더니 얘가 얼굴이 새빨개지면서 엄청 당황하는 거예요. 주변에 있는 다른 애들은 막 킥킥거리면서 웃고요.”

“흥미진진해지는데···.” “그때부터 뭔가 기분이 쌔~ 해지더라고요.”

“혹시 야동보다 걸린 건가?”

“차라리 야동이면 낫죠. 어후···.”

“와, 이 여자 완전 이야기꾼이네. 뜸 들이지 말고 빨리 말해줘요.”

“내 입으로 말하기도 민망하네. 아니 글쎄 이것들이 제 얼굴에다가 야한 사진 합성해서 핸드폰 공기계로 돌려보고 있더라고요.”

“허어···.”

“음부까지 적나라하게 나온 그걸 제 눈으로 직접 확인하는데, 너무 수치스럽고 당황스러워서 몸이 막 덜덜 떨리는 거예요. 그 와중에 다른 애들은 웃고 있고···.”

“그래서 어떻게 했어요?”

“일단 핸드폰은 압수하고 최대한 아무렇지 않은 척했죠. 그런데 그 애한테 교무실로 오라는 말을 못하겠는 거예요. 수업도 어떻게 끝냈는지 기억도 안 나요.”

“당황스러웠겠네.”

“다른 쌤들한테 그런 게 있다는 얘기는 들었었거든요. 선생님들을 주인공으로 해서 야한 그림이나 소설 같은 거 쓴다고요. 근데 합성까지 할 줄은 몰랐어요.”

“저 학교 다닐 때도 선생님들 대상으로 하는 그림이나 야설은 있었거든요.”

“대표님도 봤어요?”

“기억은 안 나는데 아마 봤겠죠? 웬만하면 다 돌려봤으니까···. 그러다 걸리면 본 사람들 다 나오라고 해서 처 맞고.”

“어휴, 남자애들은 어쩔 수 없나 봐요.”

“연습생 애들한테 들어보니까 이게 남자애들만 그런 게 아니래요. 여자애들은 남자 쌤들 가지고 BL 쓰고 그런대요.”

“세상에나.”

“그 나이 때 성적 호기심은 다 똑같겠죠 뭐.”

“저 학교 다닐 때는 그런 거 없었던 거 같은데.”

“제 생각에는 정아 씨만 모르고 있었던 건 아닐지··· 정아 씨한테 보여주면 싫어할 거 같아서 안 보여준 거 아닐까요?”

“그런가···.”

“그럼 핸드폰 뺏은 건 아직 안 돌려줬어요?”

“예, 그게 금요일 날 그런 건데, 오늘까지 생각해보고 어떻게 할지 결정하려고요. 창피해서 다른 쌤들한테는 말도 못 꺼냈어요.”

그녀는 내게 어떻게 처리하면 좋을지 의견을 물었다.

“부모님한테 얘기를 해야 할까요?”

“어··· 글쎄요. 제 입장에서 말씀드리기는 좀 민감한 문제인 거 같은데···.”

“대표님 때는 어떻게 처벌했었어요?”

“잘 기억은 안 나는데, 부모님까지 모시고 오지는 않았던 거 같아요. 그냥 그 자리에서 싸대기 맞고 수업 끝날 때까지 엎드려뻗쳐 하고 있었으려나.”

“음···.”

“정아씨가 크게 수치를 느끼고 충격을 받았다면 뭐··· 부모님 소환해서 얘기를 하는 게 좋겠죠?”

“그렇게 되면 문제가 너무 커질 거 같아서요.”

“걸린 애가 평소에 문제가 많은 애였어요?”

“합성한 애는 따로 있고 걸린 애는 그냥 돌려보다가 걸린 거예요. 그냥 평범한 애예요.”

“저는 학생 처벌보다 정아 씨 멘탈이 걱정되는데요. 앞으로 그 반 들어갈 때마다 생각날 거 아니에요.”

“어쩔 수 없죠. 어떤 쌤은 자기 반 학생들이 단톡방에서 자기 뒷담화하는 거 보신 분도 계시는데 그냥 그러려니 하고 넘어가시더라고요.”

“선생님들도 멘탈이 강해야 될 것 같아요.”

“어휴, 그럼요. 요즘 애들 상대하려면 웬만한 정신력으로는 안 돼요. 만만한 선생님들한테 더 기어오르거든요.”

“그건 우리 때도 그랬으니 뭐···.”

이정아는 학교 생각을 하면 진절머리가 난다는 듯 미간을 찌푸리며 고개를 저었다. 그러다가 테이블 위에 놓인 자신의 핸드폰을 쳐다보며 말했다.

“저를 어떻게 만들어놨는지 보실래요?”

“합성 사진이요?”

“예.”

“아, 있어요?”

“혹시 몰라서 제 핸드폰에도 저장해놨죠.”

“봐봐요.”

나는 순수한 호기심에 고개를 끄덕였을 뿐이지만, 수치스러워 죽을 것 같았다는 그 사진을 내게 보여주려는 이정아의 본심은 아무래도 의심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그녀는 내 성욕이 강하다는 것을 경험을 통해 이미 알고 있다.

술도 어느 정도 마셨겠다, 분위기를 슬슬 야시시한 쪽으로 몰고 가서 나의 성욕을 자극하겠다는 의도가 엿보이는 것이다.

이정아는 사진첩의 비밀번호를 풀어서 합성사진을 내게 보여줬다.

일본 성인잡지의 한 컷으로 보인다. 침대에 누워서 손가락으로 음부를 펼치고 있는 모델에 이정아의 얼굴을 합성한, 누가 봐도 허접한 실력의 결과물이었다.

“포토샵 실력은 조잡하네요.”

“그러니까요. 근데 자연스러웠으면 저는 더 수치스러웠겠죠.”

“근데 몸매는 모델보다 정아 씨가 더 좋네요. 가슴도 정아 씨가 더 예쁘고.”

“예···?”

“응?”

“예?”

“···방금 그건 제가 한 말 아니에요.”

“그럼요···?”

“고양이가 한 말이에요.”

“뭐예요 그게···.”

“그러니까요. 암튼 실패한 합성이라는 뜻이죠. 실물이 더 섹시하니까.”

음부도 정아 씨가 더 예쁘고 깔끔하다는 말까지는 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정아 입장에서는 방금 내가 한 말만으로도 충분히 이상하게 생각할 만 했다.

“대표님 취했어요···?”

“정아 씨는 멀쩡해요?”

“전 취했죠.”

“저도 알딸딸해요.”

“아···.”

이거 ‘RU-69’를 먹어야 하나.

술 앞에 장사 없다고, 철벽을 치자는 초심과는 달리, 나도 모르게 분위기에 취해서 그녀에게 섹드립을 날리고 자빠져 있는 것이다.

골 냄새를 맡은 A급 공격수가 기가 막히게 위치를 선정하듯이, 교미의 분위기를 포착한 내 성적 본능이 제멋대로 발동해버린 일종의 좆건반사였다.

하지만 아예 처음부터 정신이 멀쩡했다면 모를까, 이미 이정아의 몸에서 풍기는 암내와 알콜에 취해버린 나는 명품 창남다운 면모를 보이며 그녀를 유혹해버렸다.

“아, 나도 취했네. 슬슬 일어나죠.”

“예···.”

“근데 이대로 가기 아쉽지 않아요?”

“예?”

“저희 집 가서 라면 먹을래요?”

“큽.”

“콜?”

되묻는 내 말에 또 한 번 코웃음을 터뜨린 이정아는 시선을 떨구고 입술을 귀엽게 다물며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는 술자리를 정리하고 집으로 자리를 옮겼다.

하지만 내 창남력이 내가 생각했던 것만큼 지독하지는 않았던 모양이다.

걸어서 집까지 이동하는 몇 분 사이에, 마음속에 곰팡이처럼 달라붙어 있던 마구니가 조금씩 떨어져나간 것이다.

아니면 아무런 거부감 없이 순순히 따라오는 이정아에게 흥미가 떨어져 버린 것일까?

엘리베이터에서 내릴 때쯤에는 현타가 온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마음이 평온해졌다.

물론 음경의 순간적인 변덕일 수도 있다. 집에 들어가면 다시 대창남의 의욕이 활활 타오를지 모르는 일이다. 하지만 지금 마음만 놓고 본다면 진짜 라면만 먹이고 보낼 수 있을 것 같았다.

―찌찌찌찌찌찌, 유두륵

교미냄새를 맡은 도어락이 유독 음란한 소리를 내며 빗장을 풀었다.

하지만 이미 마음속 연꽃 위에 미륵을 모신 나는 마구니에 혹하지 않았다.

집에 들어온 뒤 침착하게 라면부터 끓이고 컵에 따른 시원한 맥주 두 잔과 함께 상을 차렸다.

대화의 활기는 술집에서보다 떨어졌지만, 그래도 우리는 이런저런 이야기꽃을 피우며 건전한 분위기를 이어갔다.

얼마쯤 지났을까.

“저 잠깐 화장실 좀···.”

“아, 저기 안방 화장실 쓰시면 돼요.”

“예.”

이정아가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나는 혼자 식탁에 앉아서 카톡 메시지를 확인하던 중이었다.

갑자기 예고에 없던 초인종이 울렸고, 나는 그 실제적인 소리와 함께 밀려오는 불길한 예감에 깜짝 놀라서 인기척을 죽인 채 인터폰 모니터부터 확인했다.

아··· 음경 됐다······.

화면에 잡힌 얼굴이 서원이였다면 차라리 안심이 됐을 텐데. 

인터폰 화면은 이 타이밍에 가장 나타나면 안 될 사람의 얼굴을 비추고 있었다.

바로 규율이였다.

< 이모녀덮(1)-음경 됐다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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