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모랑 잔 것 때문에 그래? >
나는 지선경에게 바로 전화를 걸어 어덕에게 작업을 치는 ―것으로 생각되는― 자들의 정체를 물었다.
“누구예요?”
―자기가 캡처해서 나한테 보내줬던 인터넷 글은 바이럴 마케팅 업체에서 올린 거야.
“아···.”
예상대로 조직적인 설계가 들어온 것이 맞았다.
누군가에게 사주를 받은 한 업체에서 인터넷 커뮤니티 순위가 낮은 곳을 시작으로 조금씩 글을 뿌리고 있었다고 한다.
저격 대상은 어글리 더클링과 우리 회사였다.
―지들 말로는 마케팅 업체라고는 하는데 사업자등록도 안 했고 그냥 개인이 오피스텔 하나 빌려서 자택 알바 써서 하는 것 같아. 글 하나 올리는데 몇 백 원씩, 이런 식으로. 알바 사이트에는 자택 알바로 구인 글이 올라와 있어.
“의뢰는 누가 한 거래요?”
―그건 시간이 좀 걸릴 것 같아. 아마 내일 안으로 알아낼 것 같긴 한데··· 늦어지면 존슨 보내야지.
움찔.
존슨이라는 이름에 반사적으로 괄약근이 조여졌다.
“신경써주셔서 고마워요 누나.”
―사업하다 보면 적은 없을 수가 없는 거니까 너무 신경 쓰지 마.
그녀는 내 인사말 속에 내제된 불안감을 느꼈는지 위로의 말을 건넸다.
나도 허심탄회하게 속마음을 드러냈다.
“누가 작업을 한 것 같은 느낌이 들긴 했었는데, 바이럴 업체까지 썼다고 하니까 솔직히 조금 무섭네요. 누군가가 저랑 애들을 그 정도까지 미워한다는 뜻이잖아요. 내가 누군가한테 그 정도로 미움을 받고 있었구나··· 자괴감도 들고···.
―자기가 지금까지 너무 꽃길만 걸은 거 아닐까? 처음 키운 걸그룹이 업키걸이면 엄청난 꽃길이지.
나는 순순히 인정했다.
“상태창이 다 해결해줬으니까 꽃길은 꽃길이죠. 그런데 어덕 애들한테는 상태창 개입이 조금 적어진 걸 보면 이번에는 확실히 난이도가 올라간 것 같아요.”
―상태창 대신에 나를 만났잖아.
그것도 인정할 수밖에 없는 말이라서 나는 흐흐, 하고 헛웃음을 흘렸다.
―내가 보기에는 아마 다른 회사나 엔터 관련 업체에서 견제가 들어간 것 같아. 자기네 회사가 그 정도까지 컸다는 거지. 사업하면서 지금까지 적 하나 없었다는 게 오히려 이상한 거야.
“염대표도 그 말 하더라고요. 제가 평범한 월급쟁이였던 시절에는 남한테 딱히 피해는 입히고 살지 않고 회사에서도 항상 나이스하게 생활해서 저를 싫어하는 사람은 없었거든요. 오히려 제가 사람에 대한 호불호가 강한 편이라서 제가 싫어하는 사람이 많았죠. 근데 이렇게 누군가한테 미움을 받는다고 생각하니까 자존심도 좀 상하고 적응이 안 되네요.
―뭐야, 갑자기 웬 잘난 척?
장난스럽게 대꾸한 그녀는 요사스런 코웃음을 흘리며 말을 이었다.
―적은 지금까지 쭉 있었는데 누군가 자기 대신 처리해줘서 자기만 모르고 있었던 건 아니고?
“글쎄요···.”
―암튼, 이번에도 잘 해결될 거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 자기는 그냥 지금 해오던 것처럼만 하면 돼.
“지금까지 해왔던 것처럼 섹스하고, 섹스하고, 섹스하면서요?”
―뭔가 좀 염증이 느껴지는 말투네.
“가끔은 좀 그럴 때가 있어요. 감정 없는 생체딜도가 된 느낌···?”
―아아, 그런 사람이 어제 새벽에 그렇게 불태우셨구나? 새벽에 자기가 주는 버프 받아서 때려잡은 반인족이 몇이나 되는 줄 알아? 적어도 열 번은 사정한 것 같던데. 업키걸 멤버 중에 한 명이랑 했나봐? 요나?
귀신이다, 귀신이야.
지선경과 대화를 하다 보니 내가 가진 현실적인 고민과 걱정들이 하찮게 느껴져서 내심 다행이었다.
“어제는 제가 원해서 한 거 인정인데요, 그런데 진짜 원하지 않아도 해야 할 때가 있어요. 물론 할 때는 저도 좋긴 하지만 진짜 어이없는 미션 같은 게 뜨면 자괴감이 장난이 아니에요.”
―가령 나랑 했을 때처럼?
“솔직히 누나랑 했을 때도 처음에는 그런 마음이었어요. 물론 하고 나서는 내가 이 세상에 태어났음에 감사했지만요.”
―흐흐흐흥, 나는 자기가 솔직한 게 너무 마음에 들어. 어떻게, 누나가 삶에 대한 감사를 한 번 더 느끼게 해줘? 나 오늘 시간 괜찮은데.
“아··· 제가 좀 바빠요.”
―세상에··· 나 남자한테 거절당한 거 처음이야.
“아, 아뇨. 그런 뜻이 아닌데···. 오늘 소녀날다 첫 방송이라서 모니터링도 해야 하고···.”
―으응··· 까인다는 게 이런 느낌이구나··· 나 진심 상처 받았어.
“누나도 지금까지 꽃길만 걸으셨네요. 이 정도로 상처 받으시고···.”
그녀는 ‘날 이렇게 대한 남자는 니가 처음이야. 널 꼭 내 거로 만들겠어’라는 클리셰 대사로 받아친 뒤, 자신의 개그감에 자아도취 된 것 반, 어느 정도의 민망함을 무마시키려는 의도가 반씩 섞인 인위적인 웃음을 한바탕 터뜨렸다.
나는 ‘누군가에게 미움 받고 있다’라는 내 나름의 진중한 고민으로 돌아와 그녀에게 상담을 요하듯이 말을 꺼냈다.
“어덕 멤버 중에 규율이라고 있잖아요.”
―서울대?
“예. 제가 요즘 걔한테도 미움을 좀 받고 있는 것 같아요.”
―왜?
“저도 대화를 해본 건 아니라서 자세한 건 몰라요.”
―근데 그쪽 멤버들이 자기를 미워할 수가 있을까? 자기 얘기 들어보면 다들 은인처럼 생각하고 있을 것 같은데? 자기가 그 아이 가족 중 누군가랑 잤으면 모를까.
뜨끔!
“누나 혹시 상대방 생각 읽는 스킬 쓰고 있어요?”
―응? 설마 정답이야?
“예···. 걔네 이모랑 잤는데··· 그게 걸린 것 같아요. 그거 말고는 걔가 저를 미워할 이유가 없거든요.”
―꺄하하캏카하카핰핰핰핰! 어머 웬일이니, 진짜? 진짜 섹스를 했다고?
“아뇨, 그것도 제가 원해서 한 게 아니라요, 아니, 원해서 한 건 맞는데, 그게 상황이 좀···.”
그녀는 웃음이 크게 터져서 통화를 이어나가지 못할 정도였다.
웃음소리가 안 나올 정도로 한동안 끅끅거리다가 간신히 입을 열었다.
―아, 너무 웃어서 자궁 아파. 나 요즘 들어서 제일 크게 웃었어. 자괴감이 뭐가 어쩌고 어째?
“뭐··· 그렇게 됐어요. 근데 그날 이모가 정신적으로 너무 몰려있던 때였거든요. 규율이랑 싸운 이후에 자기 인생에 대한 회의감이랑 우울증까지 겹쳐서 제가 섹스를 안 했으면 진짜 뭔 일이 터졌을 거예요.”
―규율이한테 이모는 엄마 같은 존재라고 하지 않았나?
“예···.”
―어머, 그럼 모녀덮밥이라고 봐도 되는 거야?
“아뇨아뇨, 그런 불순한 용어로 제 박애주의를 더럽히지 말아주세요.”
―박아주의 아니고? 깔깔깔깔깔깔깔깔!
“누나 저 진짜 심각해요. 규율이가 다른 애들한테 뭐라고 했는줄 알아요? 이제 저한테 의지하지 말고 거리를 좀 두자고 했대요.”
―아이고··· 그럼 자기가 생각하는 이유가 맞는 것 같다.
“제가 생각해도 그런 것 같아요. 그렇다고 제 능력을 밝힐 수도 없고··· 아무 말도 안하고 가만히 있자니 섹스에 미친 개새끼로 생각할 거 같고···.”
―어쩔 수 없지. 그게 히어로의 숙명인데 어쩌겠어.
해답까지는 아니더라도 그녀에게 뭔가 위로를 받고자 말을 꺼냈던 나로서는 조금 실망스러운 대답이었다.
―자기가 가진 특수한 능력으로 어마어마한 혜택을 봤으니 그에 따르는 불편도 당연히 감수해야 되는 거 아닐까?
“뭐··· 그렇죠···.”
―아, 자기 스킬 중에 그거 없어? 자기랑 섹스한 파트너한테는 거짓말을 해도 진실처럼 받아들이게 해주는 아이템이 있는데.
“저는 없어요···. 그리고 그런 게 나온다고 해도 쓰고 싶진 않네요. 그냥 미움 받고 말지, 저 편해지자고 사람 마음을 조종하는 건 좀 그런 거 같아요.”
―역시, 역시. 나랑 똑같은 생각이네. 나도 지금까지 사적인 용도로는 한 번도 안 썼어.
“공적인 용도로는요?
―수도 없이 썼지. 우리나라의 진정한 민주주의를 정착을 위해서?
“안 들을래요. 제가 감당할 수 없는 얘기 같네요···.”
―흐흐흐흥, 근데 다 어렸을 때 일이야. 거짓말 스킬 끊은 지 20년도 넘었어. 암튼, 잡설로 시간 너무 많이 뺐었다. 정보 더 나오면 연락할게.
“아, 예.”
―그리고 규율이 문제는 직접 만나서 얘기해보는 게 좋지 않을까?
“하아, 그래야 되긴 되는데··· 진짜 그것 때문에 저한테 화난 거라면 뭐라고 말을 해야 될지 모르겠어요. 안 그래도 오늘 방송 모니터링 같이 해야 돼서 만나야 되거든요.
―아우, 재밌겠다. 만나고 나서 어떻게 됐는지 얘기해줘.
나는 진짜 똥줄 타서 죽겠는데, 그녀는 친구 연애 얘기에 신이 난 소녀처럼 즐거워했다.
나도 실없이 웃으면서 후기를 알려주겠다고 대답한 뒤 통화를 마쳤다.
오늘 저녁, ‘소녀날다’ 팀 숙소로 가서 어덕을 포함한 연습생들과 첫 방송을 함께 봐야한다.
당연히 규율이와도 마주치게 될 테고, 나는 녀석과 대화를 할 생각이었다.
이정아와 내가 교미를 한 것 때문에 화가 난 게 아니라면 다행이지만, 만약 그게 사실일 경우를 대비해서 시나리오를 짜놔야 할 것이다.
근데 그걸 대체 뭐라고 변명을 하냐고···.
다른 사람이라면 여차젖차해서 어물젖 넘어갈 수도 있겠지만 상대는 정규율 아닌가.
당장 어젯밤에 나경이 문제로 요나한테 털린 것을 떠올려보자.
규율이는 요나보다 더 깐깐하고 외곬수인데다가, 문제를 야기한 사건의 경중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크다.
“후우···.”
아무리 생각해봐도 사실대로 말하는 것 외에는 해답이 없는데···.
내 이능력에 대해서 모두 발설할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규율이는 내 섹스력을 통해 직접적인 치유를 받은 녀석이다.
그날 내가 같이 있어주지 않았다면 이모가 많이 위태로웠을 것이라고 말을 하는 수밖에 없다. 그게 사실인데 어쩌겠는가.
***
‘Proudly24: 소녀 날다’ 1회 시청률 0.5%
제작진에서 예상한 시청률이 최저 0.2%~0.5%였던 걸 생각하면 중박 이상은 터진 것이다.
시청률 못지않게 중요한 화제성은 대성공이었다.
방송이 끝난 직후, 검색어 상위 20위 중 소녀날다에 관한 키워드가 4개가 올랐고, 그 중에서 1위도 나왔다.
<1. 이지유>
드라마든 예능이든, 첫 회에서 시청자의 관심을 집중시키는 것이 중요했기 때문에 제작진에서는 필살기 카드 중 하나였던 지유 캐릭터를 1회에 포진했다.
‘미혼모 연습생’이 어느 정도 이슈가 됐다고는 하지만 아직까지 아는 사람보다는 모르는 사람이 더 많았기 때문에 파급력은 꽤 컸다.
방송이 진행되면서 제작진이 바로바로 공개한 클립 영상 외에도
시청자들 사이에서는 당연히 미혼모 연습생에 대한 찬반 여론이 부딪쳤지만, 방송이 끝난 지 1시간까지는 다행히 찬성 의견이 많았다.
어차피 방송은 연출 싸움. 감성을 자극하는 편집의 완성도가 높았던 덕이었다.
또 다른 필살기 카드이자 ‘소녀날다’의 가장 큰 이슈메이커인 란이는 다음주 2화에 등장이 예고돼 있었다.
예고편에서는 란이가 심사위원들에게 자기 소개하는 모습이 모자이크 처리가 돼서 나왔는데, 굳이 모자이크를 안 해도 됐을 만큼 시청자들은 이미 녀석의 정체를 알고 있었다.
나를 포함해서 연출부와 심사위원이 모여 있는 단톡방은 자축의 분위기로 달아올랐다.
이미 6회 방송분까지 촬영을 끝낸 현시점에서 뒤로 가면 갈수록 흥미진진해진 다는 것을 모두가 확신했기 때문이다. 그 믿음의 원천은 경연이 진행되면서 무르익어가는 어덕 아이들의 수준 높은 퍼포먼스였다.
그리고 ‘리플레이걸’에서 업키걸로 인해 참가자들의 전체적인 수준이 올라간 ‘메기 효과’처럼, ‘소녀날다’에서는 어덕 아이들이 그 메기 역할을 톡톡히 해주고 있었다.
그와는 반대로, 보라색 아우라가 아님에도 출중한 아우라를 뽐내며 존재감을 발휘하는 일반 연습생 서아, 성경, 은희가 어덕 아이들의 경쟁의식을 채찍질 해주는 것도 좋은 시너지를 일으키고 있었다.
이대로만 가면 기대 이상의 돌풍을 일으킬 수도 있을 것 같다.
중간에 ‘하차’, ‘해명’, ‘사과’같은 단어를 사용해야 할 불미스러운 돌발 상황이 터지지 않는다면 말이다.
“규율아, 나랑 잠깐 얘기 좀 할까?”
방송이 끝난 이후, 규율이와의 담판을 위해 녀석이 숙소 2층에 홀로 떨어진 틈을 타서 슬쩍 전했다.
나는 이미 숙소에 들어온 이후부터 계속 무언의 시그널을 보냈는데, 녀석 역시 그걸 눈치 채고 나와의 대화를 만들기 위해 혼자 떨어진 것 같은 느낌이었다.
하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회사 대표라는 내 위치를 망각하게 할 정도로 냉담했다.
“아··· 저 미션 준비해야 되는데···.”
“응?”
“하실 말씀 있으면 조유리 실장님 통해서 해주시면 안 될까요?”
나를 대놓고 무시하는 녀석의 태도에 순간적으로 욱해서 ‘너 미쳤냐?’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왔지만, 역설적으로는 그래서 더욱 쪼그라들 수밖에 없었다.
녀석이 이렇게까지 선을 그어 행동하는 걸 보면 내가 생각하는 그 이유―이정아 교미―에 조금 더 가까워지기 때문이다.
“너 그럼 평생 나랑 이렇게 지낼 거야?”
“···저희 팀을 위해서 필요하다면요.”
“너 지금 팀 때문에 이러는 거 아니잖아. 개인적으로 나한테 화나서 그거 티내고 있는 거잖아.”
녀석은 차분한 눈빛으로 나를 응시하며 되물었다.
“제가 대표님한테 개인적으로 화날 게 뭐가 있다고요.”
“그러니까 잠깐 밖에 나가서 그거에 대해서 얘기를 해보자고.”
“아뇨, 화가 난 게 없는데 무슨 얘기를 해요.”
“야···.”
“아니면 대표님 저한테 뭐 잘못하신 거 있으세요?”
“일단 나가자. 여기서 할 얘기는 아닌 것 같다.”
내가 1층 계단 쪽을 경계하면서 얘기를 하던 그 순간, 계단 난간에서 쿵덕쿵덕 발자국소리와 소곤소곤 말소리가 들렸다.
미오와 란이었다.
“우리 라니 어디 가니. 와, 라임 제대로다.”
“2층이요.”
“왜, 자기 전에 자기 위안 한 번 하게?”
“아뇨, 대표님이랑 귤 언니 위에 올라가는 것 같아서요.”
“앗, 설마 김윤호 타임···?”
“에이, 설마 여기서 김윤호를 하겠어요. 심각해보이던데요.”
물에 빠져도 음부만 둥둥 뜰 놈들···.
나는 아직 계단을 다 올라오지 않은 녀석들을 향해 경고하듯 말했다.
“미오, 란이 데리고 다시 내려가.”
“옙. 내려가자.”
“이 야심한 시간에 귤리다랑 둘이 뭐해요? 김윤호 해요?”
“미오야, 란이 입 틀어막은 다음에 끌고 내려가도 될 것 같아. 정 안 되면 기절이라도 시키든가.”
“예, 죄송합니다.”
“웁, 웁!”
나는 계단 발자국 소리와 인기척이 끊길 때까지 기다렸다가 조용해진 뒤에 규율이에게 좀 더 강한 어조로 말했다.
“아무래도 내가 생각하는 그 이유 때문에 니가 화난 게 맞는 것 같다.”
“그게 뭔데요.”
“내가 다 말할 테니까 자리부터 옮기자. 그리고 그거 말고도 너한테 할 얘기 있어. 팀에 관한 거야.”
녀석은 그제야 고개를 잔잔하게 끄덕였다.
우리는 내 차로 자리를 옮겼고, 나는 조수석에 앉은 녀석에게 단도삽입적으로 물었다.
“내가 이모랑 잔 것 때문에 그래?”
< 이모랑 잔 것 때문에 그래?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