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75화.나경이는 순수하다 (278/371)

< 나경이는 순수하다 >

나굥 [대표님 저희 출발해요!]

 나 [회사에는 뭐라고 하고 오는 거야?]

 나굥 [떡볶이 먹으러 간다고요ㅋ]

 나 [나 만난다는 얘기는 했어?]

 나굥 [대표님 만난다는 얘기는 안 했는데요, YH앞에 있는 분식점이라는 말은 했어요]

 나 [그럼 지금이라도 나 만날 거라고 말씀드려. 나중에라도 나 만난 거 회사에서 알게 되면 오해하실 수도 있으니까]

 나 [말 못하겠으면 그냥 너희끼리 먹고 가고]

 이런 건 확실하게 해두어야 한다.

 안 그래도 남의 컴백 앨범에 감 놔라 배 놔라 훈수 두고 있는데, 그쪽 회사에 알리지 않고 만난 것이 알려지기라도 하면 내가 프라미들을 우리 회사로 빼가기 위해 작업을 친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바로바로 오던 나경이의 답장이 이번에는 조금 늦었다. 회사에 알리라고 강경하게 말한 것에 조금 당황한 모양이다.

 나굥 [아··· 그럼 저희 실장님한테 말씀드릴게요]

 나 [그래. 괜히 거짓말하지 말고 그냥 솔직하게 말씀드려. 우리 회사 앞에 떡볶이 먹고 싶다고 나한테 연락했었는데 내가 얼굴도 볼 겸 사준다고 했다고]

 나굥 [넹ㅜ 그렇게 말씀 드릴게요ㅜㅜ]

 나 [울지 말고 웃어]

 나굥 [네ㅋㅋㅋㅋㅋㅋㅋ]

 나굥 [(어깨춤 추는 캐릭터 이모티콘)]

 나 [그리고 나 저녁에 너희 대표님 만나기로 했는데 방 대표님한테도 너네 만난다고 말씀 드릴 거야]

 나굥 [대표님 혹시 저희 만나는 거 불편하시면 안 나오셔도 돼요ㅜㅜ 그냥 저랑 승채랑 먹고 갈게요]

 나 [나는 안 불편해. 너네 얼굴 보고 싶어. 그런데 너희 회사 분들은 오해하실 수도 있으니까 그러는 거야. 안 그래도 내가 요즘 너네 새 앨범에 이것저것 참견하고 있는데, 이 와중에 말 안 하고 몰래 만났다고 하면 내가 너희 빼가려고 작업 치는 걸로 생각하실 거 아니야]

 나굥 [아··· 그런 생각까지는 못 했어요···]

 나 [대표님한테는 내가 잘 말씀 드릴게. 뭐 타고 올 거야?]

 나굥 [저희 지하철이요ㅋㅋ]

 나 [지하철 탈 줄은 알고?]

 나굥 [당연하죠ㅋㅋㅋㅋㅋㅋ]

 나 [그래. 조심히 와. 문다정 실장님한테 말씀 꼭 드리고. 내가 실장님한테 확인 전화 해볼 거야]

 나굥 [네, 걱정 마세요ㅜㅜ]

 나 [울지 말고 웃으라고]

 나굥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나굥 [(어깨춤 추는 캐릭터 이모티콘)]

 귀여워. 라고 속으로 답장을 했다.

 나는 그렇게 나경이와의 채팅을 마무리 짓고 바로 방윤수 대표에게 전화를 걸어서 있는 그대로 얘기했다.

 ―아아, 그래요?

 “예, 저희 회사 앞에 분식집 떡볶이가 좀 유명하긴 해요. 얘네가 체인지 첫 촬영할 때 먹어봤나 봐요. 스케줄 끝나면 먹으러 온다고 연락 왔길래 제가 사준다고 했는데, 생각해보니까 혹시 오해가 생길 수 있을 것 같아서 대표님한테 먼저 전화 드렸습니다.”

 ―하하하, 오해는요 무슨. 회사 몰래 회 먹으러 다니는 게 문제지 떡볶이 먹으러 다니는 게 뭐가 문제겠습니까.

 며칠 전 차밍카펫의 효주와 스피릿의 멤버 건혁의 열애설을 빗대어 하는 말이었다. 같은 소속사 동료인 두 사람이 부산의 한 횟집에서 데이트하는 모습이 파파라치 언론사에 빼도 박도 못하게 찍혔는데 결국 사귄다고 인정을 해버렸다.

 방 대표가 버릇과도 같은 너털웃음을 연신 흘리며 말을 잇는다.

 ―하하하, 나경이는 괜찮은데 승채는 컴백 앞두고 체중조절 하는 중이니까 식욕 자제 좀 시켜주세요. 대표님이 그쪽으로 전문가시잖아요.

 “예, 제가 또 다이어트 쪼는 거 전문가죠. 맡겨주세요.

 ―그럼 잘 부탁드릴게요.

 “예, 이따가 뵙겠습니다.”

 ―예, 들어가세요.

 방윤수 대표가 세상 돌아가는 것 관심 없는 한량처럼 너불너불하게 말을 하고 있지만 싱어송 라이터로 시작해서 기획사 대표까지, 이 바닥에서 무려 20년 넘게 버티고 있는 사람이다.

 대기업인 JS E&M에서 괜히 레이블 대표로 내세운 게 아니지. 그것도 ‘브이라벨’이라는 2019~2020 걸그룹 최대어까지 밀어주면서 말이다.

 다른 대형기획사의 대표나 프로듀서들과 마찬가지로 방윤수 대표 역시 사람을 볼 줄 아는 날이 선 감각과 촉이 있을 것이다.

 그는 나처럼 이능력에 기대는 사짜가 아니라 수많은 경험과 실패, 성공을 바탕으로 체득한 진짜 촉을 가진 전문가다.

 그가 생각했을 때 나라는 인물이 프라미슈의 컴백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무장해제하고 있을 뿐이지, 내가 뭔가를 속이거나 감추는 기색이 있었다면 절대 내 앞에서 사람 좋은 너털웃음을 흘리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나 역시 괜한 꼬투리나 오해의 소지를 남기지 않기 위해서 최선을 다해서 솔직하게 진검 대화를 하고 있는 것이다.

 사실 내 입장에서는 켕기고 자시고 할 것도 없다. 나는 프라미슈가 진심으로 잘 되길 바라는 마음에 조건 없이 천기누설을 해주고 있을 뿐이다.

 켕기는 사람은 내가 아니라 사랑이라는 호르몬 늪에 빠져버린 나경이지.

 그래, 그럴 수 있다. 내 몸뚱이 자체가 걸어 다니는 페로몬 폭탄인데 오히려 감응을 하지 않는 애들이 이상한 거다.

 나경이는 그저 다른 아이들에 비해서 솔직하고 순진해서 자신의 마음을 숨기지 못하고 드러내고 있을 뿐.

 귀여워···.

 약 30분 뒤, 나경이와 승채가 우리 회사로 직접 찾아왔다.

 체인지 촬영하면서 얼굴을 익혔던 직원들에게 인사를 하고 싶다고 하기에 올라오라고 했다.

 나는 6층 엘리베이터 앞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녀석들을 맞아주었다.

 “안녕하세여, 대표님.”

 “어, 어서와.”

 나경이는 특유의 비타민 미소로 내 눈을 빤히 바라보며 귀여운 말투로 인사를 했고, 승채는 인사를 생략한 채 편한 선배를 대하듯 능청스럽게 너스레부터 떨었다.

 “오올, 앞에서 대기하고 있었던 거예요? 역시 매너남.”

 “정작 그러는 너는 매너가 없네? 인사 안 해?”

 “안녕하세여, 대표니임~”

 승채는 나경이의 말투를 따라하며 뺀질거렸다. 여자애가 이렇게 넉살 좋은 것도 쉽지 않은데 난 놈은 난 놈이다.

 ‘걸그룹 베이커리’ 초반에는 이런 성격이 드러나지 않아서 얼굴만 보고 채나리자, 챌리자베스 같은 우아한 별명이 붙었었는데···.

 신문사 인터뷰 복장 그대로 왔는지 둘 다 세팅된 헤어스타일에 풀메이크업, 스타일리스트가 코디해준 티가 팍팍 나는 사복 차림으로 왔다.

 프라미슈를 모르는 사람이 봐도 ‘아, 얘네는 최소 걸그룹이다’라고 느낄 것이다.

 “지하철 타는데 마스크도 안 쓰고 온 거야?”

 “어차피 알아보지도 못하는데요 뭐.”

 “아예 저희한테 관심 자체가 없어요. 쳐다보지도 않아요.”

 “너네가 관심이 안 갈 얼굴은 아닌데···. 머리카락 색깔부터가 한 명은 노란색, 한 명은 주황색···.”

 나는 녀석들이 엘리베이터에서 내릴 때부터 나경이의 바뀐 헤어스타일이 제일 먼저 눈에 들어왔다.

 아까 낮에 신문사에서 내게 보내줬던 셀카 속 머리와 달랐다. 내가(상태창이) 방윤수 대표에게 제안했던 바로 그 스타일이었다.

 “나경이는 샵 갔다 왔어? 헤어스타일이 바뀌었네?”

 “예! 방금 하고 온 따끈따끈한 머리예요.”

 색깔은 금발 그대로지만, 앞머리와 옆머리 기장이 똑같았던 똑 단발에서 앞머리를 눈 라인까지 샤기하게 층을 낸 레이어드 단발이다. ‘허쉬컷’이라고 한다.

 사진으로 접했던 것보다 실물이 너무 잘 어울리고 세련된 나머지 녀석의 연예인 아우라가 좀 더 선명해진 것 같은 착각까지 들었다.

 “어, 들어가자.”

 나는 사무실 안으로 앞장서며 덤덤하게 말을 이었다.

 “머리 잘 바꿨네. 예전 머리도 괜찮았는데, 나는 개인적으로 이쪽이 더 좋다.”

 “대표님이 이 스타일로 바꾸라고 하셨다면서요.”

 “아··· 얘기 들었어?”

 “예, 다정 실장님이 말해줬어요. 대표님이 사진까지 직접 가져오셔서 저희 대표님 설득하셨다고 그러던 데요?”

 “어. 내가 그런 사람이야.”

 “히히, 진짜 너무 마음에 들어요. 대표님이 바꾸라고 했던 다른 멤버들도 다 같이 바꿨는데 샵에서도 바꾼 게 더 예쁘다고 난리예요.”

 “아, 그랬어?”

 얘네 컴백 앨범 컨셉을 맡은 비주얼 디렉 팀한테 조금 미안하지만 어쩔 수 없지.

 승채가 삐죽거리며 반문한다.

 “저는 왜 안 바꿔줬어요?”

 “넌 지금 머리가 예쁘니까.”

 “아하. 그렇다면 예쁜 제가 넘어가도록 하죠 뭐.”

 “승채야.”

 “예?”

 “너는 예능캐보다는 도도한 비주얼캐로 조금 더 밀고 나갔어야 됐어. 걸베 초반에는 나름 내숭도 떨고 예쁜 척도 하고 그러더니···.”

 “에이, 사람은 생긴 대로 살아야죠. 걸베 때도 그거 작가님들이 캐릭터 잡아주신 건데, 화면 보고 오글거려 죽는 줄 알았잖아요. 저희 오빠가 그거 보고 자기 친구들한테 뭐라 그랬는줄 아세요?”

 “뭐라고 했는데.”

 “미친년이 걸그룹 한번 하겠다고 영혼을 팔았다, 이랬대요. 프하하하하핰!”

 “너뿐만이 아니라 대부분 팔고 살아. 털털한 것도 보기 좋긴 한데, 가끔은 얼굴값도 좀 하고 그래라. 너는 예쁜 얼굴 너무 막 써서 문제야.”

 이건 상태창 팁 같은 것이 아니라 승채를 보면서 느낀 내 개인적인 의견이었다.

 녀석이 무표정으로 있을 때의 도도하고 차가운 모습에 꽂혀서 입덕한 팬들도 많을 텐데, 녀석이 리얼리티 프로그램을 통해 너무 일찍 본모습을 오픈했다는 느낌이다. 가끔은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보여준다는 것에 너무 얽매인 나머지 오히려 오버스러워 보일 때도 있다.

 내 솔직한 조언에 나경이도 ‘그쵸 요정’이라는 별명에 맞게 특유의 말투로 동조했다.

 “그쵸그쵸?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승채는 자기도 한번 진지하게 생각해본다는 표정으로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녀석들을 사무실로 안내한 나는 직원들과 인사를 시켜준 뒤 분식집으로 이동했다.

 눈치를 보니 승채는 이미 나경이가 나를 좋아한다는 걸 알고 있는 것 같았다.

 친구가 짝사랑하는 남자가 어떤 사람인지 보기 위해 따라 나온 친구 같은 느낌이었다.

 아마 나경이가 직접 말했을 것이다.

 프라미슈 팬들 사이에서는 2000년생 동갑인 나경, 승채, 서현이를 보고 ‘땡땡라인’이라고 하는데, 아무래도 속마음을 털어놓기에는 시크한 성격인 서현이보다는 털털한 승채 쪽이 편했겠지.

 “안녕하세요.”

 “예, 대표님 어서오세요!”

 분식집 여사장님이 나를 반갑게 맞이해주셨다.

 승채와 나경이도 한 눈에 알아보셨다.

 “어머, 프라미슈 멤버들도 같이 오셨네. 그때 한 번 오셨다면서요?”

 아이들은 오십이 가까운 나이의 사장님이 자기들을 알고 있다는 사실이 놀랍다는 눈치다.

 지금 우리가 쓰고 있는 회사 사무실이 원래는 큐빅 엔터테인먼트 사무실이었다. 신사옥으로 이전하기 전까지 10년 정도 있었다고 하는데, 그때부터 팬들이 이곳을 자주 찾은 덕에 사장님도 자연스럽게 아이돌에 관심이 생기셨다고 한다.

 벽에는 당시 큐빅 엔터 소속 가수들을 비롯한 전현직 아이돌들의 사진과 사인이 많이 붙어 있었다. 우리 업키걸과 립밤도 있다.

 하지만 우리 애들이 실제로 이곳에 방문한 것은 한 두 번 밖에 되지 않고 대부분은 매니저나 내가 사다준다.

 다수의 아이돌 그룹이 소속돼 있던 큐빅이 있던 몇 년 전에는 아이돌 멤버들을 보기 위해 이곳까지 덕후 투어를 도는 팬들이 많았다지만 지금은 그냥 동네 맛집이 되어 버린 것이다.

 지금도 주변 중고교생들이 거의 만석을 이루고 있었다.

 예전처럼 연예인 보기가 쉽지 않은 그들이 승채와 나경이를 알아보고 인사를 하거나 사진을 찍으며 잠시 소란이 일었다.

 물론 나도 아직까지는 꽤 인기인이다.

 아이돌 그룹에 관심이 있는 몇몇 학생들은 아는 척을 하며 내게 질문을 하기도 했다.

 “어? 프라미슈도 YH로 옮겨요?”

 나는 친근하게 대답해주었다.

 “그건 아니고, 이번에 우리 ‘체인지’ 촬영했잖아.”

 “어, 저 체인지 지금까지 다 봤는데! 그럼 업키걸이랑 바꾼거예요?”

 “아니, 립밤이랑 바꿨어.”

 “에이···.”

 한 여중생의 김샜다는 한숨에 나는 발끈하는 척하며 장난스런 공격에 들어갔다.

 “뭐야, 너네 립밤 무시하냐?”

 “무시하는 건 아닌데요, 솔직히 업키걸에 비비기에는 네임밸류가 좀 떨어지는 게 사실이죠.”

 하여튼 요즘 애들 말 하나는 진짜 잘한다니까.

 꿀밤 때리고 싶게 따박따박 말대꾸하는 솜씨가 아주 일품이야.

 “왜 굳이 비교를 해야 되는데. 립밤은 립밤이고 업키걸은 업키걸이잖아.”

 내가 역시 정색하는 척하며 반박하자, 녀석은 주눅 든 흉내를 내면서 고개를 조아리며 비아냥거렸다.

 “예, 예, 죄송합니다. 제가 아주 큰 실수를 했습니다.”

 “와, 비꼬는 솜씨 봐라. 표정 연기, 말투, 타이밍까지 아주 기가 막히네.”

 “에이, 뮤노 츤장님만 하려고요. 업키걸 언니들한테 비꼬는 거 보니까 완전 타고 나셨던데요 뭘.”

 그 말에 식당 안에 있던 다른 손님들까지 웃음이 터졌다.

 처음에는 장난으로 대하던 나도 조금은 자존심이 상했다.

 이걸 어떻게 받아쳐야 잘 받아쳤다고 소문이 날까, 잠시 고민을 하던 사이에 승채가 창피하다는 듯 내 팔을 잡고 의자에 앉힌다.

 “아 왜 팬하고 싸우고 그래요. 제가 대신 사과할게요.”

 그러고는 나와 입 배틀을 펼친 학생과 대화를 시도했다.

< 나경이는 순수하다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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