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늘이는 아이돌이고 나경이는 여자다 >
★앨범 수록곡 중 2번 트랙이자 후속곡으로 내정된 ‘Loving’을 타이틀곡으로 하세요. 프라미슈12에게는 ‘Beauty sunshine’보다 ‘Loving’이 더 맞습니다.
★앨범 발매와 쇼케이스는 예정대로 진행하되, 음악방송 컴백 무대는 1주일 연기하세요.
이미 뮤비까지 다 찍고 세부적인 컴백 스케줄까지 잡혔는데 컴백 무대를 미루라니.
만약 우리 아이들이 이 상황에 처했다면 1주일이 아니라 1년을 연기하고서라도 진행을 하겠지만, 그걸 모르고 있는 로그인레코드를 설득하는 게 문제 아니겠는가.
타이틀곡 변경은 또 웬말이냐고.
프라미슈 아이들에게 들은 바로는 ‘러빙’도 타이틀 후보였다고 한다. 마지막까지 ‘뷰티풀 선샤인’과 경합을 벌였지만, 결국 대중성을 생각해서 뷰선을 타이틀로, 러빙은 후속곡으로 결정했다.
뷰선이 어느 걸그룹이나 부를 수 있는 상큼한 분위기의 업템포 댄스곡이라면 러빙은 디스코 리듬이 기반이 된 레트로 사운드의 댄스곡이었다.
내가 들어본 결과, 뭐가 더 좋고 나쁘다기보다는 취향과 장르의 차이로 후속곡으로 밀린 것 같았다.
현재 프로미들의 상황 상,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기보다는 조금이라도 안정적으로 가기 위해 대중성이 조금 더 높은 뷰선을 타이틀로 한 것이다.
그 외에도 컴백 3일차에 유명 유튜버 인터넷 방송 출연하기, 새로운 타이틀곡 러빙의 파트를 바꾼 버전으로 영상 찍어서 올리기 등, 마음만 먹으면 쉽게 수행할 수 있는 팁이 있었다.
하지만 내 입장에서만 쉽다는 거지 방윤수 대표와 로그인레코드 측에서는 나를 미친놈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입장을 바꿔 생각해보자.
어느 날 갑자기 일면식도 없던 방윤수 대표가 나를 찾아와서 자기가 어글리 더클링의 팬인데, 자기가 시키는 대로만 하면 어글리 더클링이 1위를 할 수 있으니 타이틀곡과 컴백 날짜부터 싹 다 바꾸라고 했다면 나와 우리 회사는 그것을 받아들일 수 있었을까?
이미 앞선 1차 요구를 들어준 것만으로도 방윤수 대표는 나에게 최대의 예우를 해준 것이다.
물론 자기가 생각했을 때도 그럴싸해보였으니 수락했겠지만.
하지만 이번에 제안할 요구사항은 1차 꿀팁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월권행위이기 때문에 내 쪽에서도 방윤수 대표를 설득시킬 만반의 준비를 갖춰야했다.
먼저 내 제안에 전문성과 공신력을 보강해줄 조력자를 초대했다.
공격적인 마케팅으로 2019년 음원사이트 순위 2위에 랭크된 ‘논스톱 뮤직’의 대표 지선경이었다. 그렇다. 선경 누나다.
방윤수 대표와의 만남 장소를 그녀가 운영하는 프라이빗 바 아마조네스로 정한 뒤 예약 문의도 하고 안부 인사도 전할 겸 톡을 보냈는데, 대화를 하다 보니 방윤수 대표와 안면이 있다는 것이 아닌가.
안면이 있는 정도가 아니라 사업적으로 연관이 돼 있었다. 로그인레코드에 논스톱 뮤직의 자본이 들어갔다고 한다. 로그인 레코드는 자회사인 JS E&M과 논스톱 뮤직의 공동출자로 설립된 회사였던 것이다.
끝판왕 [오케이, 콜]
끝판왕 [상태창이 예지해준 거라면 두 팔 벌려 환영이지ㅎㅎ]
지선경에게는 못할 말이 없었던 나는 프라미슈 스타킹 미션에 관련된 이야기를 모두 얘기해 주었고, 그녀는 기꺼이 도움을 주겠다면서 방윤수 대표와의 삼자대면을 응해주었다.
나 [감사합니다]
끝판왕 [감사는 로그인이 자기한테 해야지. 안 그래도 프라미슈12 이번에도 안 되면 다음 앨범이 마지막일 거라는 말까지 나왔거든]
나 [그랬구나. 그 얘기까지는 못 들었어요]
끝판왕 [자기가 프라미슈를 좋아하긴 진짜 좋아하나보다. 자기 새끼도 아닌데 상태창까지 나선 거면ㅋㅋㅋㅋ]
나 [그러니까요. 저도 뜬금 없었어요ㅋㅋㅋㅋ]
끝판왕 [자기가 좋아하는 아이가 하늘이지?]
나 [원래는 그랬는데 이번에 방송 같이 하면서 다 좋아졌어요. 애들 진짜 괜찮던데요]
끝판왕 [나는 나경이가 그렇게 예쁘더라]
나경이라는 이름을 보는데 괜스레 가슴이 설렌다.
서, 설마 첫사랑인가.
나도 모르는 사이 내 마음 속에 나경이가 들어앉은 건가.
업키걸과 제희를 제치고 씽씽걸배 며느리 후보 1위에 오를 자격을 갖췄느냔 말이다!
나 [나경이 예쁘죠. 성격도 너무 좋던데요]
끝판왕 [응. 그 아이는 보지에서도 왠지 레몬사탕맛 날 것 같아]
어···?
갑자기 분위기 음부?
나 [갑자기요···?]
끝판왕 [좀 뜬금없었나?]
나 [네. 완전요.]
끝판왕 [ㅎㅎㅎㅎㅎㅎㅎ]
끝판왕 [내가 요즘 예쁜 여자애들한테 꽂혀서 그런가봐]
나 [누나 혹시 여자도 좋아해요?]
끝판왕 [에이 우리한테 성별이 뭐가 중요해. 맛있으면 되는 거지. 안 그래?]
‘우리’라는 카테고리 안에 자연스럽게 나도 포함돼 있는 것처럼 말하고 있다···.
끝판왕 [나는 기회 되면 자기네 연홍이랑 보지 한번 맞춰보고 싶어]
나 [홍이 만만치 않아요]
끝판왕 [어머, 나는 만만하고?]
나 [피지컬 차이가···]
끝판왕 [귀남이가 그러더라. 섹스는 피지컬로 하는 게 아니라 보지컬로 하는 거라고]
굉장하네.
내가 진짜 지유의 저 세상 틱도 받아주는 사람인데 이 사람들 대화는 아직까지 적응이 안 된다.
그래도, 지선경의 말을 듣고 보니 우리 최종병기랑 끝판왕의 메차쿠차 보빔대결이 궁금하긴 하다. 이종떡투기로 가는 거지. 과연 누가 먼저 나가떨어질까.
끝판왕 [그럼 저녁에 봐. 나 가게에 있을 거야]
나 [예, 누나. 출발하기 전에 연락드릴게요]
끝판왕 [내가 도와줘서 얘기 잘 끝나면 나는 뭐 없나?]
나 [로그인에 논스톱뮤직 자금 들어갔다면서요. 프라미들 잘되면 누나도 좋은 거죠ㅋㅋ]
끝판왕 [회사가 좋은 거지 내가 좋은 건가]
나 [원하시는 거 있어요?]
뭐, 보나마나 섹스겠지.
끝판왕 [자기 우리 집 지하실에 한 달 동안 감금해두고 정조역전 강간 플레이 하고 싶어^^ 하루에 12번 강간]
······언제나 상상 이상이다.
나 [굉장한데요······]
끝판왕 [ㅎㅎㅎㅎㅎㅎㅎ 농담인 거 알지? 앞으로도 어려운 일 있으면 이렇게 편하게 말해줘. 나는 자기가 나한테 뭔가 부탁하는 것만으로도 가 버리는 여자니까]
크다.
사람 자체가 크다.
이 누나는 나 같은 좆무래기가 비빌 상대가 아니야.
대체 그녀가 몸담고 있는 세계는 얼마나 광활할지 상상도 안 된다.
나 [그럼 없는 부탁 만들어서라도 종종 연락드릴게요]
끝판왕 [그래, 한창 바쁠 텐데 몸 관리 잘하고 이따 봐]
지선경과 대화를 마무리 짓고 나니, 그녀의 말이 복선이라도 됐던 것처럼 음부에서 왠지 레몬사탕 맛이 날 것 같은 아이에게 개인 톡이 와 있었다.
나굥 [대표님 잘 지내고 계신가요!]
나굥 [(손 흔들고 있는 캐릭터 이모티콘)]
나는 [아니 잘 못 지내고 있어······]라고 장난조로 작성했다가 지워버렸다. 그리고 최대한 형식적이고 무미건조한 문장으로 고쳐 썼다.
나 [그럼 잘 지내지]
곧바로 1이 바로 사라지고 답장이 온다.
나굥 [차타고 가다가 밖에 약국이 보였는데 문득 대표님 생각이 나서 연락드렸어요ㅋ]
나굥 [조금 늦은 감이 있지만 그때 저 몸살 났을 때 약 사다주신 거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나 [그래. 제발 부탁인데 아프지 좀 마라]
내 딴에는 최대한 감정을 배제하고, 녀석에게 하는 말이라기보다는 프라미슈 아이들 전체에게 말하듯이 궁서체로 보낸 건데 이놈, 그 별거 아닌 말에 왠지 감동을 받은 눈치다.
나굥 [ㅜㅜ]
나굥 [대표님 걱정 안 시켜드리기 위해서라도 앞으로 진짜 안 아플 게요]
나굥 [환절기라서 감기 걸리기 쉽다는데 대표님도 아프지 마세욤!]
나굥 [혹시라도 감기 걸리시면 저한테 말씀해주세요. 이번에는 제가 약 챙겨드릴게요ㅋ]
내가 대꾸를 하든 말든 장문 메시지를 연속으로 보낸다.
나와 꾸준히 대화를 이어나가고 싶어 하는 마음이 절실하게 느껴졌다. 녀석은 단순한 연락뿐만이 아니라 둘 만의 만남까지 기대하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여지를 주고 싶지 않았다.
나경이도 그렇고 서나도 마찬가지다. 녀석들이 내게 이성으로서 호감을 어필하는 것은 당연히 감사한 일이다. 나 역시 싫지는 않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무서운 것도 사실이다.
꼬리가 길면 밟힌다고, 이미 업키걸과 어덕 아이들과의 관계만으로도 아슬아슬한 판국인데 그 외에 제희, 티나, 유진이, 혜진이까지 너무 많은 연예인들과 관계를 맺었다.
어디 그뿐인가.
눈알성감대 엄승미 작가와 검스 여신 정아윤까지 연예계 관계자들과도 생식기 교감을 나눴다.
물론 대부분 서로 윈윈을 하는 명분 있는 섹스였고 상태창의 가호를 받고 있다고는 하지만 내 개인적으로는 항상 불안감을 떠안고 살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적어도 내가 섹스를 해주지 않으면 큰 위기에 빠진다는 식의 명분이 없이, 개인적으로 다가오는 관계는 되도록 피하고 싶다.
지금의 나경이처럼 말이다.
그래서 나는 쿠퍼액을 머금고, 안타깝지만 카톡 창을 단숨에 얼어붙게 만드는 마법의 답장을 보냈다.
나 [ㅇㅇ]
나경이도 이제야 내 마음을 알아차렸는지 확인을 하고도 한참동안 답장을 보내지 않았다.
그래, 이거면 된 거야.
나는 그냥 너희들의 뒤에서 숨은 조력자로서 묵묵히 도와주고 사라질게.
그러니 더 이상 나한테 다가오지 마.
너희들의 마음만 다칠 뿐이야.
“······욘나 멋있어. 이러니 여자들이 뻑 가지.”
자아도취에 취해 드라마 속 인물들처럼 혼잣말을 한 나는 잠시 프라미슈12에게 관심을 끄고 당장 내일로 다가온 ‘소녀날다’의 첫 방송과 관련한 업무를 봤다.
나경이에게 다시 메시지가 온 것은 그로부터 1시간쯤 지난 후였다.
나굥 [대표님 답장 늦어서 죄송해요ㅜㅜ 신문사 인터뷰하러 나오느라 답장을 못 드렸어요]
나굥 [지금 도착해서 기자님 기다리고 있는 중이에요ㅋ]
미치겠네.
이거 혹시 이정아에게 주려던 미약을 잘못 먹고 성욕을 사랑으로 착각하게 된 규율이처럼, 나경이도 몸살 약에 섞였던 미약의 효과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 건가?
내가 차갑게 구는 걸 알면서도 자존심 버린 채 밀어붙이는 건지, 아니면 내 의중 따윈 관계없이 개썅 마이웨이로 자기 하고 싶은 대로 하는 건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나경이는 오늘을 계기로 나와 꾸준히 연락을 주고받으려는 각오를 한 것 같았다.
어쩌면 1호 서나가 내게 호감을 느낀 것을 눈치 채고 경쟁이 붙어서 과감하게 대시하는 걸 수도 있다.
뭐가 됐든, 나는 받아줄 수가 없다.
받아줘서도 안 된다.
[너 지금 나 무시하는 거지? 이렇게 말했으면 알아들을 법도 한데, 나한테 대놓고 끼 부리는 거야?]
라고 꾸짖기에는 얼굴도 마음도 너무나도 예쁜 아이였다.
신문사 대기실에서 방금 찍은 셀카와 함께 도착한 녀석의 메시지는, 노총각의 다부지지 못한 마음 속 틈새에 시나브로 스며들며 균열을 일으킨다.
나굥 [저 오늘 예쁘죠?]
나굥 [(몸을 배배꼬며 부끄러워하는 캐릭터 이모티콘)]
나 [이쁘네]
나경이 입장에서는 아까와 똑같은 단답형의 형식적인 답장으로 생각할지 모른다.
하지만 이번 건, 냉정하지 못한 내 손가락이 그만 마음을 담아 보낸 답장이었다.
나굥 [대표님 혹시 대표님네 회사 앞에 있는 떡볶이집 가보셨어요?]
나 [153분식?]
나굥 [이름은 모르겠는데 아마 맞을 거예요ㅋㅋㅋㅋㅋ]
나굥 [저희 체인지 첫 촬영할 때 거기서 떡볶이랑 순대 먹었었는데 계속 생각나요ㅋㅋㅋㅋ]
나굥 [오늘 스케줄 끝나면 승채랑 저랑 둘이서 가기로 했어요]
이토록 순수한 유혹이라니.
내가 물어주기를 바라며 던진 눈에 훤히 보이는 떡밥이었다.
‘물지 말자, 물면 안 된다’라고 다짐 하면서도, ‘승채랑 둘이 오는 거면 뭐 상관없지 않을까’라는 안일한 합리화에 마음이 빠져들고 있다.
나 [나 8시까지 회사에 있으니까 그 전에 올 거면 연락해. 내가 사줄게]
8시 이후에 끝나라, 8시 이후에 끝나라···.
오지 마라, 오지 마라······.
나굥 [아 진짜요? 저희 6시쯤에 끝날 거 같아요ㅋㅋㅋㅋ]
응기잇!
나굥 [승채한테 말했더니 승채도 대표님 보고 싶대요ㅋ]
나굥 [저희 이제 인터뷰 시작할 거 같아요. 끝나면 톡 드릴게욤!]
“하아···.”
방윤수 대표님, 대체 애들 관리를 어떻게 하셨기에······.
나굥 [(승채와 둘이 찍은 셀카)]
나굥 [ㅋㅋㅋㅋㅋㅋ]
이렇게 예쁜 겁니까···.
아무래도 38년 만에 첫사랑을 찾은 것 같다.
하늘이는 아이돌이고, 나경이는 여자다.
< 하늘이는 아이돌이고 나경이는 여자다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