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66화. 나만 쓰레기야? (269/371)

< 나만 쓰레기야? >

나는 굿즈 부스로 가서 열 두 빵순이들의 사인회 굿즈를 종류별로 하나씩 구매했다. 

 이 나이에 걸그룹 굿즈를 가져서 뭐하겠냐마는, 그래도 2박3일간 함께한 의리를 생각해서 기념품이라고 생각하고 샀다. 

 원래 이 정도 시간쯤 되면 품절된 상품이 꽤 많을 텐데, 컴백 직전 마지막 팬싸라서 그런지 솔드아웃 팻말이 붙은 코너는 몇 개 없었다. 살 사람은 이전 팬싸까지 이미 다 샀고, 새 앨범이 나오면 신상 굿즈가 나오기 때문에 그때 지르기 위해서 한 타임을 쉬고 있는 것이

다. 

 개인 굿즈 판매량은 멤버별 인기를 가늠하는 척도 중 하나이다. 

 빵순이들의 현재까지 판매량으로 유추해본 결과, 서바이벌 오디션에서 스타성을 검증받은 탑12 멤버들로 구성돼서 그런지 개인 팬덤의 규모가 크게 차이 나지는 않아 보였다. 

 좋은 현상이다. 

 누구 하나 치고 나가는 것 없이 멤버들의 인기가 균등하면 팀의 지속력과 팀워크에 큰 도움이 된다. 

 이런 게 바로 오디션 팬 투표로 결성된 팀의 장점이라고 볼 수 있는데, 한 두 명만 인기가 좋으면 회사에서는 어쩔 수 없이 그 멤버에게 집중을 할 수밖에 없고, 그것은 곧 다른 멤버들의 질투, 시기, 분열로 이어지기 쉽다. 

 연습생 때부터 서로에 대한 견제가 시작되고 왕따가 존재하는 마당에 그보다 더 혹독한 데뷔 이후는 어떻겠는가. 

 연예인이라는 직업은 말 그대로 인기가 전부다. 특히 아이돌 그룹 같은 경우에는 조공이나 굿즈 판매 등에 따라 팬들의 인기를 바로바로 체감하고 비교당할 수밖에 없는 구조이기 때문에, 비인기 멤버들이 받는 스트레스와 열등감은 상상 이상이다. 

 적게는 10대 중반, 많아봤자 고작 20대 초중반인 아이들이 얼마나 초연해질 수 있겠는가. 

 팬덤도 마찬가지다. 한 그룹의 모든 멤버를 좋아하는 ‘올팬’보다는 특정 멤버를 좋아하는 팬이 더 많은데, 같은 그룹 멤버라고 해서 무조건 좋아해주는 게 아니고 시기, 질투, 열등감은 그들에게도 적용된다. 

 자기가 좋아하는 멤버에게 다른 멤버가 장난을 쳤다는 이유로 팬 사인회에서 대놓고 적의를 드러내거나, 외모나 실력이 떨어지는 멤버에게 너 때문에 팀의 평균이 깎인다고 악담을 하기도 한다. 

 팬과 팬이 싸우는 건 비일비재하다. 

 한 명만 인기가 많은 원맨팀의 경우에는 인기 많은 멤버가 타 멤버 팬들에게 공격을 당하는 일도 많다. 

 그렇게 팬들의 시선과 인기, 악플 등에 민감해지다보면, 연습생 때부터 치열한 경쟁이 일상이 된 아이들은 기저에 깔린 경쟁 마인드와 승부욕이 발동해버린다. 

 노력으로도 극복하지 못하는 열등감을 채우기 위해 다른 멤버를 깎아내리거나 파벌을 만들고 이간질을 해서 팀의 분열이 생기는 건 다반사다. 

 다수가 모인 그룹에서 행해지는 몇몇 개인의 시기와 질투는, 도태되지 않기 위한 그들만의 생존본능에 가까운 천성이기 때문에 회사에서 통제하고 관여하는 것도 한계가 있다. 

 내가 지금까지 여러 회사의 매니저들을 만나본 결과, 보이그룹보다는 걸그룹 쪽이 멤버 간 견제와 따돌림이 좀 더 심했다. 내가 보이그룹은 담당해보지 않아서 잘 모르겠지만 우리 업키걸만 봐도 각이 나온다. 서원이랑 홍이가 참 살벌하게 싸웠지. 

 그나마 두 사람은 뒤에서 뭐라고 하지 않고 모두가 보는 앞에서 치고 박고 싸우고 화해를 했으니 쿨한 편에 속했다. 

 다른 걸그룹은 모략과 정치질이 거의 재벌가의 경영권 상속 과정 뺨친다고 한다. 

 그런 걸 생각하면 현재 프라미슈12의 고른 인기 분포 및 멤버별 밸런스는 그들의 반등 이후 롱런을 기대하게 만드는 중요 요소로 적용될 것이다. 

 오디션 순위에 의해 결성이 됐다고는 해도, ‘걸그룹 베이커리’ 자체가 B뮤직의 타 오디션처럼 큰 이슈를 끌었던 것도 아니고, 센터(우승) 멤버가 대대적으로 신드롬을 일으키거나 1위부터 12위까지의 표차가 압도적인 것도 아니라서 가능한 일이다. 

 고만고만한 멤버들이 각자 나름의 재능과 매력, 팬덤에 의해 뽑혔으니 거기에 대한 서로의 공감과 존중이 있는 것이다. 

 내가 3일 동안 지켜본 바로도 멤버들 사이의 관계는 꽤나 돈독했다. 기특하게도 데뷔 4년차가 된 지금도 서로 선을 넘지 않는 상호 존중의 모습이 기본적으로 깔려 있었다. 

 이런 사이를 유지하는 게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멤버라는 존재는 가장 가깝고 의지가 되면서도, 한편으로는 가장 불편하고 보기 싫은 사이가 될 수도 있다. 

 12명이 모이면 그 중에서 괜히 호감이 가는 사람이 있는 반면 이유 없이 싫은 사람이 있을 법도 한데, 프라미슈12에게는 누가 누구를 싫어한다는 느낌은 없었다. 

 인성은 습관이기 때문에 카메라 앞에서 아무리 가식으로 꾸미고 포장을 한다고 결국은 본성이 드러나기 마련이다. 하지만 빵순이들은 다행히 내 레이더망에 포착된 위선 행동이나 내부 분열 징후는 보이지 않았다. 

 물론 12명이나 되는 혈기왕성한 애들이 4년 이상을 한집에서 살면서 어떻게 싸움 한 번, 갈등 한 번 없을 수 있겠냐마는, 그 갈등의 씨앗이 곪고 곪다가 악성으로 터지는 게 아니라 건강한 방식으로 해소돼 왔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나는 아이들의 가장 예쁜 모습이 찍힌 굿즈를 하나하나 살펴보면서 흡족하게 중얼거렸다. 

 “이쁘긴 진짜 이쁘다. 우리 빵순이들은 진짜 잘돼야 돼.” 

 내가 굿즈를 사는 모습은 담당 VJ와 문다정 작가가 따라다니면서 계속 카메라에 담고 있었다. 팬들 틈에 섞여서 그들과 똑같은 얼굴로 중얼거리던 내 모습이 퍽 재미있었는지, 문 작가가 내게 다가와서 귓속말로 소곤거렸다. 

 “대표님, 하늘이 거 하나 더 사세요.” 

 이 방송국 놈들. 

 내가 하늘이 편애하는 걸로 프레임을 잡아서 방송 분량을 뽑을 생각인 것 같다. 

 아무리 예능이라고 해도, 나는 인위적으로 사건을 연출하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리얼리티 또는 관찰 프로그램을 표방한다면 최대한 날 것 그대로의 모습을 보여주는 게 좋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초창기 은빛이한테도 누누이 주의를 줬었다. 너는 그냥 있는 그대로의 성격을 보여주는 것만으로도 천부적인 예능꾼이니까 굳이 꾸미거나 과장을 하지 말라고. 

 “저··· 하늘이 등신대랑 스티커 하나씩 더 주세요.” 

 “아, 추가로 구입하시는 거예요?” 

 “예.” 

 그랬던 내가 이러고 있다. 프라미들이 주인공인 이번 방송의 시청률을 생각하면 어쩔 수 없었다. 자본주의 만세다. 

 나는 문 작가의 의도적인 연출을 따르는 것도 모자라서 한 술 더 떴다. 

 그동안의 경험상 예능에서의 편집과 분량 분배가 어떤 포인트로 굴러가는지 알고 있기 때문에, 이제는 작가가 요구한 것 이상의 에피소드도 창출할 수 있는 것이다. 

 가령 이런 거 말이다. 

 나는 하늘이 미니등신대와 스티커에 덧붙여서 멤버들의 포토카드가 랜덤으로 들어있는 포카 세트도 추가로 구입했다. 그러고는 계산한 신용카드를 카메라 앞에 내밀며 혼잣말 멘트를 쳤다. 

 “흔히 시작은 있지만 끝은 없다는 게 아이돌 굿즈의 세계죠. 저도 결국 또 질러버렸네요. 이건 당연히 법카가 아니라 제 개인 카드입니다.” 

 나는 포토카드를 개봉하면서, 나를 지켜보고 있던 프라미슈 팬들 중 한 남자에게 말을 걸었다.  “누구 팬이에요?” 

 오늘 여기 모인 빵덕이들은 말 그대로 열성팬이다. 프라미슈 W앱을 통해서 내가 체인지 촬영차 임시 매니저를 하고 있다는 것도 알고 있을 것이고, 그래서 내게 호의적이었다. 

 “미나요.” 

 내가 말을 건 20대 중반 남자 팬의 1픽은 10호 한미나였다. 

 다행히 하늘이가 1픽인 나와는 겹치지 않았기에, 내 포토카드 중에서 미나의 것을 골라 그에게 내밀었다. 

 “저랑 포카 교환하실래요?” 

 그는 내가 보여준 미나 카드가 자신에게는 없던 것이었는지 구미가 당긴다는 표정으로 되물었다. 

 “하늘이 거랑요?” 

 “예.” 

 내가 하늘덕후라는 건 빵덕들 사이에서는 공공연한 사실. 

 굿즈 부스 근처에서 자신이 좋아하는 멤버의 포토카드를 교환하는 팬들의 모습은 흔히 볼 수 있는 광경이지만, 일반 시청자들은 이런 아이돌 덕후들의 세계를 잘 모르기 때문에 이런 장면은 절대 편집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미나덕후는 곤란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아··· 제 친구가 하늘이 팬이라서 걔한테 팔기로 했는데···.” 

 좋다. 이런 위기감은 오히려 도움이 된다. 바로 옆에서 지켜보던 문 작가도 웃음이 터졌다. 

 나는 아아, 탄식하면서 어린애처럼 떼를 썼다. 

 “그러지 말고 그냥 저랑 교환해요. 미나 드릴 테니까 하늘이 주세요.” 

 “하늘이 말고 다른 멤버는 안 필요하세요?” 

 “노노, 하늘이, 하늘이.” 

 “아······ 그럼 잠시만요. 제가 친구한테 전화 한번 해볼게요.” 

 “오케이, 저 바꿔주세요.” 

 “근데 걔 본진이 원래 업키걸인데···.” 

 “어? 친구가 어부바예요?” 

 “공식 어부바는 아니고 팬 카페 활동만 해요.” 

 “잘 됐네. 전화해서 저 바꿔주세요.” 

 내가 대화 상대를 잘 골랐다. 이게 다 방송 분량이다. 

 나는 그의 친구와 영상통화를 했고, 업키걸 새 앨범이 나오면 CD를 보내주기로 약속을 한 뒤 하늘이 포카를 받기로 합의를 봤다. 

 물론 이렇게까지 열심히 할 필요는 없었지만 모든 게 방송을 위해서였다. 

 그런데 막상 교환한 하늘이의 포토카드를 보니 글쎄 내게도 이미 있던 종류가 아니던가. 

 예능의 신이 나를 돕는다. 

 “아, 뭐야 겹치잖아.” 

 일반적인 거래였다면 다시 그를 데려와서 없던 일로 돌렸겠지만, 나는 일부러 억울한 표정을 지으며 피해자 코스프레를 했다. 

 “아, 당했네.” 

 이 모든 과정을 지켜보던 다른 팬들 사이에서 푸식푸식 웃음이 새어나왔다. 

 내게 직접 말을 걸지는 못하고 주변에서 눈치만 살피고 있었다. 

 내가 먼저 편하게 말을 걸었다. 

 “아, 방금 포카 교환했는데 겹치잖아요. 누구 저랑 바꾸실 분?” 

 VJ의 카메라가 내가 말을 건 무리 쪽을 비췄다. 여자 팬들은 얼굴을 가리며 뿔뿔이 흩어졌고, 몇몇 남성 팬들은 슬금슬금 내 쪽으로 오며 아는 척을 했다. 

 “혹시 지금 체인지 촬영하시는 거예요?” 

 “예.” 

 “하늘보리 W앱에서 같이 촬영하고 계신다는 얘기는 들었어요.” 

 내가 “하늘보리가 뭐예요?”라고 묻자 야유가 쏟아졌다. 

 명색이 하늘이 덕후라면서 그것도 모르냐는 식으로 설명을 해준다. 

 하늘+늘보+보리차의 합성어인데, 하늘이가 평소 느릿느릿하고 보리차를 좋아해서 생긴 별명이란다. 

 “아, 그건 몰랐네. 하늘보리···.” 

 “보늘이라고도 불러요.” 

 이 인간들아 어감 뭔데 어감! 

 하늘보리도 그렇고 보늘이도 그렇고, 뭔가 여자의 생식기가 연상되는 것이 하늘이의 카와이하고 순수한 이미지랑 전혀 매치가 안 되잖아. 

 나만 쓰레기야?  “하여튼 별명들 참···.” 

 “뮤노 대표님은 오늘까지 촬영하시는 거예요?” 

 “예.” 

 “어, 그럼 이번에 나오는 새 앨범도 들어보셨겠네요?” 

 “들어봤죠. 안무도 봤고.” 

 와아, 하고 부러운 탄성이 터졌다. 

 이때다 싶었던 나는 팬들을 향해 과감하게 공략을 날렸다. 

 “빵순이들 지금까지 M사 음원 최고 순위가 구십 몇 위였죠?” 

 “예. 살랑살랑으로 94위까지 갔어요.” 

 “제가 장담하는데, 이번에는 최소 50위권으로는 차트 진입할 거예요.” 

 오오오, 터져 나오는 기대의 환호성. 

 나는 좀 더 자신감을 내비쳤다. 

 “잘하면 1위까지도 찍을 수 있을 거 같은데요. 음원 차트 1위, 공중파 음방 1위.” 

 “우와, 노래 진짜 좋은가보다.” 

 “제발 그렇게 됐으면 좋겠어요!” 

 나는 진짜 로그인레코드의 대표라도 된 것처럼 팬들과 심도 깊은 대화를 나눴다. 

 프라미슈12는 불특정 대중을 겨냥한 마케팅보다는 자신들의 팬덤을 위한 팬 마케팅 쪽으로 활성화 된 팀이다. 그래서 팬덤과의 소통이 무엇보다 중요한데, 대화를 나눠보니 팬들도 많이 지쳐있다는 것이 느껴졌다. 

 빵덕이들 역시 이번 앨범의 목표는 케이블 음방 1위였다. 하지만 만약 이번 앨범으로도 소기의 목표를 달성하지 못하면 프라미들이 많이 실망할 거라면서, 부담감은 주기 싫다고 했다. 

 “저희는 그저 앨범 예약하고 숨밍하고 공방 뛰면서 묵묵히 응원해줄 뿐이죠.” 

 ‘숨밍’은 숨 쉬듯이 음원 스트리밍 하기, ‘공방’은 공개방송의 줄임말이다. 

 팬들과는 반대로, 프라미들은 이번에 1위를 못하게 되면 팬들이 많이 속상할 거라며 더 열심히 할 거라고 말했었다. 

 팬클럽도 가수 성격 따라 간다고, 프라미슈 팬클럽인 빵덕은 확실히 업키걸 팬클럽 어부바보다는 순하고 유한 맛이었다. 

 업키걸이 두 번째 앨범에서 1위를 했기에 망정이지, 만약 프라미들과 비슷한 상황까지 왔었다 어부바들은 ‘YH직원들을 더욱 갈아 넣어 1위를 만들자!’ 라거나 ‘뮤노 대표를 산 제물로 바치자!’ 또는 ‘이 모든 게 대표탓대표탓대표탓대표탓대표탓!’하면서 나를 닦달했을 

것이다. 

 어부바는 타 팬덤 사이에서도 도른년놈들이라고 소문이 자자하다. 

 뭐 나쁘진 않다. 이래야 우리 가수 팬덤답지. 코쓱. 

 프라미슈를 향한 빵덕이들의 팬심에 마음이 찡해진 나는 스타킹 미션을 통해 받은 꿀팁 하나를 슬쩍 흘려주었다. 

 “빵순이들 이번에 앨범 나오면 저희 회사랑 업키걸도 화력지원 하기로 했어요.” 

 “와! 진짜요?” 

 “예. 슬로건은 ‘들어서 혼내주자’입니다. 앨범 뜨자마자 저희 멤버들이 틴스타로 홍보해줄 거예요.” 

 SNS 중독자이자 대표 관종인 씹대장의 틴스타 팔로워 수는 3백20만 명. 

 하지만 팀 내 1위는 따로 있다. 

 은빛이를 제치고 업키걸 팔로워 수 1위에 오른 리야의 팔로워 수는 은빛이의 네 배 이상인 무려 1천 3백만 명 이상이다. 업키걸 네 명을 합쳐도 리야한테 안 되는 어마어마한 수치인데, 은빛이는 한국과 일본에서만 유명한 반면 리야는 동남아, 중화권, 유럽에서까지 핫

피플로 유명해서 그렇다. 

 립밤 컴백 때는 왜 업키걸 아이들의 SNS를 통해서 홍보를 할 생각을 못 했는지 아쉬울 따름이다. 

 이래서 상태창, 상태창 하는 거지. 

 ―프라미슈 트웰브 시즌 마지막 팬 사인회에 참석해주신 팬 여러분께 인사드리겠습니다. 안녕하십니까, 저는 오늘 사회를 맡은 MC 링딩동입니다. 반갑습니다! 

 MC 링딩동의 오프닝을 시작으로 빵순이들의 팬 사인회가 시작되었다. 

 그가 간단한 게임 등을 통해서 분위기를 잡는 동안 아이들은 무대 뒤 대기실에서 스탠바이를 하고 있었다. 

 잠시 뒤 무대에 올라가라는 사인이 떨어졌고, 나는 아이들에게 명령을 내리듯 말했다. 

 “제군들. 출동이다.” 

 나는 문 앞에 서 있었는데, 가장 먼저 나갈 채비를 마친 5호 레모나경이가 싱긋 웃으며 내게 다가와 말했다. 

 “아, 맞다. 대표님 저 그거 한 번만 해주시면 안 돼요? 포옹식? 허그식?” 

 출정식을 말하는 거다. 

 업키걸 아이들이 무대에 오르기 전, 한 명 한 명 포옹을 해주면서 격려를 해주는 우리만의 의식 같은 거였는데, 이게 ‘리플레이 걸’때 뜬금없이 유명해져서 급기야 다른 걸그룹도 내게 부탁하는 상황까지 벌어졌었지. 

 나를 바라보는 나경이는 가지런한 윗니를 드러내며 특유의 피로회복 미소를 지었고, 나는 뭐 어려울 것 없다는 듯 가볍게 녀석을 안아주며 격려의 말을 해주었다. 

 “그래 우리 비타민 5호 오늘 유난히 더 예쁘다. 언제나처럼 깨끗하게 맑게 자신 있게 하고 와.” 

 “히히, 잘하고 오겠습니다.” 

 내 허리를 가볍게 끌어안는 팔의 압력에서 애틋함이 느껴졌다. 

 시들시들해져가는 내 안의 소년성을 깨워주는 이런 풋풋함은 언제나 환영이다.  “저기요 두 분, 여기서 이러시면 안 되거든요.” 

 승채가 나경이의 엉덩이를 가볍게 두드리며 먼저 나갔고, 1호 서나가 보일 듯 말 듯 미소 띤 얼굴로 나를 향해 목례를 하며 승채의 뒤를 따라 나갔다. 

 12명의 아이들이 모두 나간 뒤, 나도 현장 진행을 돕기 위해 아이들의 꽁무니를 따라 무대 위로 올라갔다. 그러자 객석 어딘 가에서 누군가 홀로 “김윤호! 김윤호!”하며 구호 선동을 시작했고, 그를 시작으로 내 이름은 파도타기 응원처럼 퍼져나갔다. 

 “김윤호! 김윤호! 김윤호!” 

 진지하게 내게 열광한다기보다는, 어엿한 회사 대표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프라미들의 도우미 역할을 자처한 내게 보내는 장난 섞인 친근함의 표시였다. 

 프라미들 역시 킥킥 웃거나 당황한 표정을 지으며 마이크에 한마디씩 했다. 

 “뭐야, 대박.” 

 “갑자기 분위기 김윤호.” 

 “여기 혹시 뮤노 대표님 팬 사인회였나요?” 

 “우리가 초대가수로 온 분위기.” 

 이놈의 인기란···. 

 하지만 스포트라이트는 프라미들에게 쏟아져야 하는 법. 

 나는 장난을 치지 않고, 200여명의 팬들 앞에 공손하게 허리 숙여 인사하면서 감사의 뜻을 전한 뒤 멤버들의 뒤로 물러섰다. 

 욘나 멋있어.

< 나만 쓰레기야?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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