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65화.갓 핸드는 무료로 해드립니다 (268/371)

< 갓 핸드는 무료로 해드립니다 >

야생 떼껄룩 마냥 쓰레기봉투를 뒤져 빵순이들의 나머지 스타킹을 모두 습득했다는 기분 좋고도 너저분한 소식에 앞서. 

 나는 로그인레코드 방윤수 대표와의 미팅이 끝난 뒤 ‘체인지’ 프라미슈 편의 마지막 스케줄인 팬 사인회에 참석했었다. 

 새 앨범 발매 전 마지막 팬싸였다. 

 빵순이들이 200여석 규모의 콘서트홀 대기실에서 최종 외모 점검을 하는 동안, 나는 녀석들에게 필요한 건 없는지 뒤에서 안전요원처럼 지켜봤다. 

 멤버가 12명이면 스타일리스트들이 일일이 챙기기 힘들기 때문에 매니저인 나도 신경을 써줘야 한다. 

 그때 내 귓가에 유독 크게 들리는 누군가의 혼잣말. 

 “아우, 발 아프다. 까진 거 같은데···.” 

 왁 자지 껄한 분위기 속에서 작게 중얼거리는 목소리의 근원지를 쳐다보니 ‘웃는 개의 성좌’ 9호 정누리였다. 

 나는 녀석에게 다가가 어디가 불편하지 물었다. 

 “9호, 어디 아파?” 

 “아··· 여기요···.”하며 발을 살짝 들어 보인다. 

 슬링백 힐을 신었는데, 뒤꿈치를 고정하는 가죽 끈의 길이 안 들여져서 아킬레스건 부위가 빨갛게 쓸려 있었다. 

 협찬이라든지 의상 컨셉 때문에 새 신발을 신을 일이 많은 걸그룹 아이들은 길들여지지 않은 신발 때문에 이래저래 발이 고생을 한다. 

 내가 또 업키걸 매니저 할 때 애들 발 관리 담당이었지. 

 이런 건 스타일리스트한테 말하면 최대한 아프지 않게 조치를 취해주지만, 카메라도 돌고 있겠다, 나는 쇼맨십 좀 발휘하기로 했다. 

 옆에서 소원이의 머리를 만지고 있는 스타일리스트에게 다가가 물었다. 

 “저기 혹시 힐밤이나 풋크림 있나요?” 

 “예, 있어요. 누구 발 아프대요?” 

 “누리요.” 

 “아, 그럼 제가 이거 끝나고 해드릴게요.” 

 “아니에요, 제가 할 게요. 업키걸 매니저 할 때 많이 해봤어요. 잘할 수 있어요. 꼭 해보고 싶습니다. 제발 제가 하게 해주세요.” 

 “예, 예예···.” 

 스타일리스트가 미안해하지 않도록 익살을 떤 나는 그녀에게 립스틱처럼 생긴 힐밤과 발 보호용 실리콘 패드, 가위를 받아서 직접 작업에 들어갔다. 

 “9호, 구두 벗어서 줘봐.” 

 “아, 예··· 여기요.” 

 “쓸린데 이것 좀 바르고 있어.” 

 “감사합니다.” 

 누리가 뒤꿈치 쪽에 힐밤을 바르는 동안, 나는 실리콘 패드를 알맞게 자른 뒤 아킬레스건을 자극하는 끈 안쪽에 양면테이프로 쭈욱 이어 붙였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누리는 동갑라인인 2호 영아에게 자랑조로 말했다. 

 “와 쏭냥, 이거 봐. 뮤노 대표님 완전 프로 같으셔.” 

 “왜? 왜? 뭐 하는 건데?” 

 “나 뒤꿈치 쓸린다고 하니까 직접 실리콘 패드 붙여주신대.” 

 “우와, 손재주 되게 좋으시다.” 

 “뭐야, 뭐야.” 

 “뮤노 대표님이 뭐 했어?” 

 누리와 영아의 대화를 들은 다른 아이들도 내 곁으로 삼삼오오 모여들었다. 

 스타일리스트도 솜씨가 좋다며 칭찬을 해줬다. 

 “한두 번 해본 솜씨가 아니신데요?” 

 “업키걸 매니저 할 때 하도 많이 해서요.” 

 “대표님 꼭 저희 엄마 같아요.” 

 “보통 남자 매니저님들은 이런 거 잘 못하시는데, 섬세하시네요.” 

 “섬세한 게 아니라 제가 워낙 노예처럼 살아서 그래요. 여름에는 겨땀 관리도 해주고··· 그거 뭐지? 아, 드리클로. 한 밤 중에 드리클로 사오라고 해서 약국 문 연데 찾아다니고···. 그때 생각하니까 또 열 받네.” 

 “큭큭큭큭.” 

 드리클로는 땀 억제제의 끝판왕이라 불리는 데오드란트인데, 효과가 워낙 좋아서 땀에 민감한 걸그룹의 필수품 중 하나로 손꼽힌다. 

 언젠가 은빛이가 손톱만한 크기의 겨땀 자국이 찍힌 것 때문에 커뮤니티에서 수치를 당한 적이 있었는데 ―물론 밥 가져오라는 반응이 많았지만― 그때 스타일리스트를 통해서 드리클로라는 걸 알고 거의 울면서 내게 사오라고 했었다. 밤 11시에 말이다. 나는 논현역 

근처 24시간 약국에서 사왔고. 

 은빛이 뿐만이 아니었다. 

 담당 스타일리스트한테 말하면 땀 관리 같은 건 알아서 관리해주건만, 나 부려먹던 낙으로 살던 리야 놈 역시 땀 관리를 굳이 나한테만 부탁을 했다. 

 내가 한 여름 밴 안에서 물티슈로 알가놈 발하고 겨드랑이 닦아준 거 생각하면 진짜···. 

 여름철의 땀 처리는 대부분의 걸그룹이 겪는 고충이다. 한 여름에는 야외무대 한 타임이 끝나면 땀 때문에 속옷까지 젖는다. 그래서 다른 공연 장소로 이동을 할 때 차 안에서 물티슈로 땀을 닦아내는데, 속옷까지 젖을 정도이니 거의 물티슈로 샤워를 하는 수준이 되는 

것이다. 

 업키걸도 마찬가지였는데, 다른 아이들은 부끄러워서 스스로 조용히 처리하던 그 작업을 리야 놈만 굳이 내게 부탁을 했었다.  진짜 딱 가슴하고 가랑이 사이만 빼고, 목부터 발가락 사이사이까지 닦아줬다. 

 지금도 그때만 떠올리면 리야의 기세등등한 목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랑깡깡! 알리야의 몸을 혀로 핥을 수 있을 정도로 뽀득뽀득 닦아야 할 것이야! 엘레강스한 프린세스의 몸에서 땀이 난다는 게 말이나 되는 소리냐고.’ 

 ‘근데 났잖아···.’ 

 ‘셧업!’ 

 이런 적도 있었다. 

 ‘뮨뮨! 알리야의 섬섬딤섬 같은 고운 발에 상처 났자너! 신발 가죽이 너무 허접한 것이야!’ 

 ‘어쩌라고. 왜 나한테 그래. 연고 바르고 밴드 붙여.’ 

 ‘연고고 밴드고 다 필요 없고. 상처 난 부분을 뮨뮨이 당장 핥아야 할 것이야.’ 

 ‘내가 왜 핥아 그걸.’ 

 ‘개들은 원래 상처 난데 있으면 핥아주는 거자너.’ 

 ‘내가 개야?’ 

 ‘그럼, 알리야의 충성스런 개지. 안 핥으면 다음 앨범 투자금 빼버린다?’ 

 ‘이런 개···.’ 

 ‘대표님, 지금 건 그냥 욕 하셔도 돼요. 리야 너 혼나기 전에 그만해.’ 

 ‘넵···.’ 

 요나가 중간에 제지하지 않았다면 진짜 발을 핥을 때까지 괴롭혔을 것이다. 

 그렇게 나를 공장 지키는 누렁이 취급 했던 녀석이 지금은 오히려 내 충복스런 댕댕이가 되었다니···. 

 지금이야 업계 포상이자 피식 추억거리지만 당시에는 진짜 울화가 치밀었다. 

 그때의 독한 경험들이 이렇게 도움이 될 줄이야. 

 “진짜 업키걸에 비하면 우리 빵순이들은 천사예요, 천사.” 

 스타일리스트들의 이어지는 칭찬을 멋쩍게 받아넘긴 나는 실리콘을 부착한 구두를 메이크업 의자에 앉아 있는 누리의 발 앞에 놓아주었다. 

 “일단 신어봐. 힐밤 발랐지?” 

 “예 바르긴 발랐는데요, 더 따가워진 거 같은데요.” 

 “어디 봐봐.” 

 가까이서 확인을 해보니 살갗이 까져서 진물까지 묻어있었다. 

 “아이고··· 여기 살짝 까졌네. 쓰라리겠다.” 

 “밴드 붙일까요?” 

 “아니야. 밴드 붙이면 안 이뻐 보이잖아.” 

 “근데 밴드 안 붙이고 신발 신으면 더 까지거나 물집 잡힐 거 같은데요.” 

 이 정도 생채기쯤이야 뭐. 

 갓 핸드는 무료로 해드립니다. 

 <‘에스테틱 갓 핸드’가 발동됐습니다.> 

 나는 누리의 생채기 난 아킬레스건 위를 맥을 짚듯이 손가락 두 개로 지그시 누르고 사알사알 문질렀다. 속으로 10까지 숫자를 센 뒤 손가락을 떼어냈다. 

 누가 봐도 살짝 까져있던 부위에는 새살이 올라와 있었고 빨갛던 피부색도 가라앉았다. 

 “짜잔. 괜찮아졌지?” 

 “우와!” 

 9호의 힘찬 탄성을 시작으로 지켜보던 몇몇 아이들도 깜짝 놀라 소리쳤다. 

 “뭐야! 진짜 나았어!” 

 “언니 저도 볼래요. 와 대박. 진짜 없어졌네?” 

 “뭐야, 왜 그래?” 

 “대표님이 누리 언니 뒤꿈치 까진 거 손으로 문질렀는데 상처 없어졌어요.” 

 “설마.” 

 “진짜예요. 저희가 다 봤어요.” 

 “진짜?” 

 못 봤던 아이들까지 우르르 몰려와서 누리의 발목을 잡아들어 올려 관찰을 하고 아주 난리가 났다. 

 기적을 체험한 누리가 묻는다. 

 “어떻게 하신 거예요?” 

 “근성과 믿음만 있다면 안 되는 게 없지. 너를 안 아프게 하고자 하는 나의 근성과 그것을 믿어준 너의 믿음이 초자연적인 시너지 효과를 일으켜서 상처를 낫게 한 거 아닐까.” 

 “피히히히히!”  하늘이가 소리 높여 실소를 터뜨렸다. 

 하지만 까졌던 피부가 실제 눈앞에서 회복된 것을 목격한 녀석들이 한둘이 아니었기 때문에 나의 근성론에 반박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나는 신발 가게 직원처럼 누리 앞에 무릎을 꿇고 구두를 직접 신겨주었다. 

 갓 핸드가 켜진 손으로 발바닥을 야무지게 잡자, ‘웃는 개의 성좌’는 간질간질했는지 한 쪽 어깨와 눈을 귀엽게 찡그리며 애교 섞인 콧소리를 흘렸다. 

 “흐흥!” 

 하지만 프라미슈 멤버와 스탭들 중에서, 내가 누리의 맨 발을 태연하게 잡고 구두를 신겨 주는 모습을 변태스럽거나 선을 넘었다는 시선으로 보는 사람은 없었다. 

 이미 내게 음모 인근 아랫배까지 허락하며 갓 핸드 치료를 받은 녀석들이 수두룩 빽빽인데 이깟 발 한 번 잡은 게 뭐 대수겠는가. 

 오히려 먼저 기적을 경험하며 내게 호감까지 품게 된 서나(미스 생리통)와 나경(미스 몸살)이는 마치 비밀연애를 하는 남자 친구의 자상한 매력을 보기라도 한 것처럼 뿌듯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귀여운 것들. 

 나는 반대쪽 구두도 손수 신겨준 뒤 누리에게 말했다. 

 “일어나서 걸어봐.” 

 “예.” 

 몇 걸음 걸어보고 팔짝팔짝 뛰어보기도 한 녀석은 특유의 눈웃음을 지으며 좋아했다. 

 “이제 안 쓸려요. 감사합니다!” 

 그러자 승채가 옆에 있는 하늘이의 어깨를 상남자처럼 와락 감싸며 내 성대모사를 했다. 

 “와. 방금 대표님 뭔가 멋있지 않았냐. ‘일어나서 걸어봐.’ 뭔가 드라마에서 나오는 츤데레 남주 느낌 났어.” 

 “프히히히히.” 

 나는 코웃음을 치며 핀잔을 줬다. 

 “남주 같은 소리 하네. 야, 그냥 대놓고 놀려라.” 

 “에이, 진짜 칭찬이었는데 민망하니까 괜히 그러신다. 근데 대표님은 왜 결혼 안 하세요?” 

 “나 결혼했어.” 

 “어? 진짜요?” 

 “응. 일하고 결혼했어.” 

 “아, 뭐야아.” 

 “풋.” 

 노잼에 대한 빈축과 어이가 없다는 식의 실소가 반반씩 섞여서 새어나오던 가운데, 하늘이만이 유일하게 대유잼 폭소를 터뜨려주었다. 

 “피히히히히힠!” 

 “유하늘 너는 이런 것도 웃기냐? 이쯤 되면 너야 말로 대표님 놀리는 거 같은데.” 

 “안 웃겨요? 전 진짜 웃긴데.” 

 하늘이 너만 좋으면 됐지, 뭐. 라고 속으로 생각했다. 

 나는 시간을 체크하며 다소 어수선해진 대기실 상황을 정리했다. 

 “사인회 시작 20분 전이니까 슬슬 마무리들 해주세요. 정각에 바로 나갈 겁니다.” 

 고지를 한 뒤, 나는 현장의 분위기도 살필 겸 콘서트홀 로비로 먼저 나가보았다. 

 팬 사인회 현장은 나도 오랜만이었다. 업키걸 애들은 팬 사인회 콘텐츠 준비를 본인들이 직접 했는데 팬과 함께하는 게임부터 시작해서 여러 가지 즐길 거리로 꽉꽉 채워 넣었었다. 

 프라미슈12도 데뷔 초기부터 팬 사인회를 통해 코어 팬덤을 탄탄하게 다진 팀으로 유명하다. 

 “와, 많이들 오셨네요.” 

 카메라를 의식해서 의례적인 혼잣말을 했다. 

 저마다 크고 작은 선물 쇼핑백을 든 팬들이 컴백 전 마지막 팬싸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사인회장 입구가 아닌 다른 곳에 줄을 서 있기에 뭔가 하고 봤더니 굿즈 부스였다. 

 “저쪽으로 한 번 가볼까요.”

< 갓 핸드는 무료로 해드립니다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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