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59화.내가 싸게 해줘? (262/371)

< 내가 싸게 해줘? >

김병용이의 난데없는 등장을 나는 이렇게 해석했다. 내가 스타킹을 줍줍하는 장면을 병용이가 목격했다. 그러다가 그게 들통 날 위기에 처하자 자신이 희생했다. 어제 내가 그의 범행 현장을 눈 감아 준 것에 대한 보답으로 말이다. 

 하지만 그러기에는 그가 얻는 리스크가 너무 크다. 

 체인지 제작진뿐만이 아니라 로그인레코드 및 자켓 촬영에 참여했던 외부 스탭까지, 대략 마흔 명 이상의 인원이 이 상황에 집중하고 있는 마당에, 여기서 스타킹을 훔쳤다는 사실이 공개되면 해고는 당연한 거고 PD가 되겠다는 장기적인 꿈도 포기해야 될지 모른다. 

 포기가 아니라 매장되는 거지. 규칙이나 타인의 시선 위에 군림하는 금수저가 아닌 이상, 얼굴에 철판을 깔고 계속 이쪽 바닥에서 일을 한다고 해도 걸그룹 스타킹 도둑이라는 변태적인 소문은 계속 따라다닐 테니까. 하지만 병용이는 금수저와는 거리가 멀어보였다. 

 아무리 착하다고 해도 세상에 자신의 삶을 포기하면서까지 남을 도와줄 사람은 그리 많지 않고 병용이 또한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렇다면 이거다. 

 나와 마찬가지로 병용이 역시 세트장 어딘가에 있던 빵순이들의 스타킹을 훔쳤고, 포위망이 점점 좁혀오자 도둑이 제발 저려서 실토를 해버린 것이다. 

 이성적이고 일반적으로 생각하면 이쪽이 설득력이 높다. 

 병용이 너 이놈. 결국 성욕에 잡아먹혀 버린 거냐. 

 사람 고쳐 쓰는 거 아니라더니, 한 번 변태는 영원한 변태인 것인가···. 

 나야 뭐 가까스로 위기에서 벗어나서 고맙긴 하다만, 인간에 대한 회의감이 드는 건 어쩔 수가 없었다. 

 그렇게 생각하던 내 눈앞에 상태창이 떴다. 

――――――― 

 ★YH엔터테인먼트 매니저 구인 

 1. 회사소개 : 업키걸, 립밤이 소속된 엔터테인먼트입니다. 

 2. 모집부문 : 현재 런칭 준비 중인 신인 걸그룹 로드매니저 

 3. 급여조건 : 월 [email protected] (휴대폰 요금 및 교통비 지원) 

 4. 모집인원 : 1명 

 5. 최종학력 : 고졸 이상 

 6. 자격요건 : 운전면허증 소지자/정의롭진 않더라도 최소한의 양심, 상식, 책임감을 갖춘 분 

――――――― 

 이거 오랜만이네. 

 업키걸 로드매니저로 시작해서 지금은 업키걸 담당 1팀장이 된 장우를 처음 봤을 때 떴던 그 상태창이었다. 

 병용이를 우리 직원으로 채용하라는 말이었고, 그것은 곧 그가 나를 위해서 희생한 게 맞다는 뜻이기도 했다. 

 병용이 인생 나 때문에 음경 됐으니까 이제 나보고 벽에 똥칠 할 때까지 책임지라는 거지. 

 김병용이, 너 그 정도로 의리 있는 놈이었니···? 

 “돈이 필요해서 팔려고 했습니다. 죄송합니다.” 

 병용이의 폭탄 고백에 좌중은 서로의 눈치만 살피고 있었다. 

 그의 인사 담당자라고 볼 수 있는 담당 PD의 표정이 가장 복잡해졌다. 아마 머릿속에서 여러 가지 생각이 오가고 있을 것이다. 보통 FD는 PD의 라인일 확률이 높은데, 그렇게 된다면 그에게도 직원 관리 미흡에 대한 책임이 돌아가기 때문이다. 

 내가 어제 걱정했던 것처럼 사건이 외부로 알려지게 될 경우에는 프로그램에도 피해가 갈 수도 있고···. 

 하지만 경찰에 신고를 하자는 식으로 언성을 높이는 사람은 없었다. 다들 이런 일은 처음이라 경황이 없는 것 같았다. 

 그 누구도 먼저 나서는 이가 없자 병용이는 다시 한 번 고개를 힘없이 떨구며 사과를 한다. 

 “죄송합니다···.” 

 이제야 수군수군 들리기 시작하는 목소리들. 

 나는 가만히 보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이미 물은 엎질러졌고, 나로서는 이 상황에서 가장 현명한 판단을 할 수밖에 없었다. 

 일단은 인민재판으로 이어질 것 같은 작금의 분위기부터 해체시켜야 한다. 

 자켓 촬영 스케줄은 모두 끝났고, 스탭들은 대부분 지친 몸을 이끌고 현장 마감 준비를 하던 중이었기 때문에 그 점을 이용했다. 

 “스탭분들은 일단 마무리부터 하시죠. 프라미들도 퇴근 준비하자.” 

 로드매니저에게 프라미슈 퇴근 준비를 일임한 나는 ‘체인지’의 PD와 메인작가, 그리고 병용이만 따로 모아서 짤막하게 긴급회의를 진행했다. 

 나는 그 전에 마이크를 끄고, 병용이에게는 내가 알아서 책임질 테니 걱정하지 말라고 미리 언질을 주었다. 

 외부 사람들이 사라지자 PD와 메인작가가 병용이를 추궁한다. 

 “너 뭐야 이 새끼야. 미쳤어? 변태 새끼도 아니고 스타킹을 왜 훔쳐?” 

 “왜 그랬어요?” 

 열중쉬어 자세를 취한 병용이는 그저 “죄송합니다.”라고 말할 뿐이었다. 

 나는 이성적이고 현실적으로 대처하자는 식으로 그들을 말렸다. 

 “PD님, 지금 이게 공론화되면 프로그램에 좋을 게 있나요? 노이즈 마케팅 같은 걸로요.” 

 “아뇨, 마케팅은커녕 피해만 보죠. 까딱 잘못하면 제 모가지도 날아갈 판인데요. 아오, 진짜.” 

 “경찰에는 안 알리는 게 좋죠?”  “그렇죠.” 

 “그럼 프라미슈 멤버들이랑 로그인 측에는 제가 말해볼 테니까, 최대한 저희 안에서 해결을 보는 게 어떨까요. 물론 병용 씨는 본인 잘못에 대해 책임을 져야겠지만요.” 

 “뭐··· 지금으로서는 그게 최선이긴 한데···.” 

 연대책임으로 이어지는 사회조직의 특성상, 자기 자신의 안위를 지키기 위해서라도 제 식구 감싸기를 할 수밖에 없는데, 다행히 PD와 작가도 나와 같은 마음인 것 같았다. 

 한편으로는, 자기가 하고 싶었던 말을 내가 먼저 해서 다행이긴 하지만, 혹시라도 나중에 문제가 되면 어쩌나 조금은 머뭇거리는 기색도 있었다. 

 그래도 내가 주도하는 분위기로 이끌면 따를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럼 지금부터 ‘스타킹’이라는 단어보다는 ‘물건’이라는 말로 대체해요. 아무래도 성적인 요소가 들어가면 이미지가 더 나빠질 수밖에 없잖아요. 만에 하나 언론에 알려지더라도, ‘걸그룹 물건’이라는 표현을 쓰는 게 좋지 않을까요?” 

 “그렇죠, 요즘 분위기가 성적인 거에 특히 민감하니까···.” 

 “외부 스탭들한테는 회사 내부적으로 처리했다고 하면 되고요.” 

 듣고 있던 심 작가가 처음으로 입을 연다. 

 “지금 상태에서는 아예 언급 자체를 안 하는 게 좋을 거 같아요. 다들 알아서 처리했겠거니 생각하지 않을까요?” 

 “그래요.” 

 씁쓸하긴 하지만 역시 나쁜 일에는 단합이 잘 되는구나···. 

 하지만 그건 그거고, 결국은 병용이가 책임을 지고 그만둘 수밖에 없다는 의견이었다. 

 작가나 FD라는 업무 자체가 비정규직 프리랜서로 취급되기 때문에, 내부적으로 최대한 사건을 축소시킬 수 있다는 게 그나마 다행이었다. 

 쉽게 말하면 꼬리 자르기 또는 조직과는 상관없는 개인의 일탈. 

 얘기를 마무리 지은 뒤, 나와 병용이는 단 둘이 얘기하는 시간을 가졌다. 

 지금까지 뭐라도 된 척 연기를 한 게 쪽팔리긴 하지만, 개인적인 성욕 때문에 스타킹을 줍줍한 게 아니라 프라미들의 보다 나은 미래를 위한 불가피한 행동이었다고 나 자신을 설득해야만 했다. 

 물론 병용이는 그렇게 생각 안 하겠지만. 

 “병용 씨가 한 거 아니잖아요.” 

 단도직입적인 나의 말에 그는 머쓱하게 웃었다. 

 나도 참 비겁한 게, 차마 내가 가져갔다는 말이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하지만 굳이 말을 하지 않아도, 우리 두 사람은 이미 서로가 모든 것을 알고 있다는 전제하에 대화를 이어나갔다. 

 “왜 본인이 뒤집어썼어요?” 

 “저도 잘 모르겠어요. 생각할 틈도 없이 행동이 먼저 나갔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그냥 대표님이 곤경에 빠지는 상황을 보는 게 힘들었던 거 같아요. 어제 김윤호 대표님이 먼저 저를 봐주시기도 했고요.” 

 “그래도 병용 씨가 얻는 피해가 더 크잖아요. 만약에 제가 진짜 모른 척 했으면 어쩌려고 그랬어요.” 

 “뭐··· 어쩔 수 없죠. 근데 솔직히 그런 생각까지는 못 했습니다.” 

 나는 이제야 솔직하게 물었다. 

 “근데 내가 가져간 건 어떻게 알았어요?” 

 “2층에서 카메라 배터리 교체하고 내려오다가 창문으로 봤습니다.” 

 아··· 대기실 창문이 계단 옆에 있었지. 

 “내가 자세하게 설명은 못하겠는데··· 그냥 의식 같은 거예요···.” 

 “설명 안 해주셔도 됩니다.” 

 병용이는 고맙게도 이유를 묻지 않았다. 그저 청춘만화에서 사랑으로 불량학생을 갱생시키는 열혈 교사 같은 말투로 내가 했던 말을 돌려주었다. 

 “스타킹 좋아하는 사람치고 나쁜 사람 없다고 하셨잖아요.” 

 나는 100% 장난으로 했던 말인데 이렇게 진지하게 말하다니. 제대로 병맛이다. 

 “일 그만 두게 되면 우리 회사에서 매니저 일 한 번 배워 볼래요?” 

 “예? 아니요, 안 그러셔도 됩니다.” 

 “미안해서 그런 게 아니라, 소질이 있어보여서 스카웃하려는 거예요. 이번에 ‘소녀날다’ 통해서 데뷔하는 애들 로드부터 시작해서 한 번 해봐요. 어차피 방송이나 영화 쪽 일 계속 할 거면 도움 많이 될 거예요. 나중에 독립해서 회사 차려도 되고.” 

 “아···.” 

 “기본 월급은 이백인데 성과급이 더 많을 거예요. 당연히 4대 보험 되는 정직원이고요.” 

 일반적인 회사에서 신입(수습) 로드매니저의 월급이나 대우가 어떤지는 그 역시 익히 알고 있을 것이다. 이름 좀 있는 엔터가 아니면 아직까지도 열정 페이나 다름없다. 

 우리 회사의 직원 대우 정도면 대형 기획사를 포함해 단연코 업계 최고라고 자부할 수 있다. 

 내가 지켜본 바, 밤낮 없이 일해야 하는 업무 조건과 강도에 비하면 200만원도 적다고 생각하지만, 그만큼 연봉을 상회하는 성과급이 지급된다. 외쳐 갓리야. 

 “면허 1종이에요?” 

 “예.”  

 “됐네 그럼. 자기 손으로 아이돌 만드는 것도 영화나 방송 만드는 것처럼 재미있을 거예요. 뭐, 이렇게까지 말했는데 본인이 싫다고 하면 어쩔 수 없는 거지만, 나는 병용 씨랑 같이 한 번 해보고 싶어요. 지금 당장 결정 안 해도 되니까 생각해보고 연락해요.” 

 할 말을 모두 전한 나는 장난조로 마무리했다. 

 “우리 회사 들어오면 내가 입사 선물로 머리 심어 줄게요. 아, 그리고 스타킹도 원 없이 가져갈 수 있을 거예요. 그것도 신던 걸로. 우리 애들이 그런 쪽으로는 워낙에 오픈 마인드라서.”  “할게요.” 

 탈모태 솔로 김병용. 

 YH엔터테인먼트의 식구가 되다. 

 스타킹 페티서와 어글리 더클링이라···. 

 상태창이 정해준 인연이니, 업키걸과 장우처럼 좋은 동업 관계로 성장할 수 있을 것이다. 

*** 

 프라미슈12와 로그인레코드 측과는 다행히 얘기가 잘 끝났다. 

 마치 내가 병용이의 변호사라도 된 것처럼 모든 대화를 진행했는데, 소지품을 훔칠 의도는 아니었고, 버릴 것 같은 스타킹을 가져간 거라고 최대한 포장을 해서 변명을 했다. 급하게 돈이 필요하던 찰나에 걸그룹 스타킹을 팔면 돈이 된다는 말을 들어서 충동적으로 저

질렀다고 전했다. 

 병용이는 그들 앞에서 머리 숙여 사과를 함으로써 나를 대신해서 마지막까지 희생을 해주었고, 아이들은 불쾌하고 무섭긴 하지만 경찰 고발을 하고 싶지는 않다고 했다. 

 회사를 그만두고 촬영에서 당장 빠진다는 말에 로그인에서도 추가로 처벌을 원하지는 않았다. 

 물론 다른 스탭들 사이에서 퍼져나가는 소문까지는 막을 수 없을 테고, 나중에 병용이가 어덕 매니저가 됐을 때 후폭풍이 따를지 모르지만, 지금으로서는 이보다 좋은 마무리는 없었다. 

 내가 걸리지 않았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병용이에게 연금을 줘도 모자랄 판이다. 

 “빵순이들 오늘 고생 많았다.” 

 “대표님도 고생하셨습니다!” 

 “고생하셨습니다!” 

 퇴근 후 복귀한 프라미슈 숙소. 

 어제의 짧았던 만남에 이어 오늘 하루 종일 함께 한 덕분에 아이들과 나의 사이는 더 돈독해졌다. 

 그 중에서도 나를 바라보는 서나와 나경이의 눈빛이 특별했다. 

 서나는 사춘기 소녀가 짝사랑하는 선생님을 대하는 것처럼 나와 눈이 마주칠 때마다 수줍수줍했고, 나경이는 어릴 때부터 친하게 지내면서도 굳이 호감을 숨기지 않는 친구 여동생처럼 나를 대했다. 

 그 와중에 4호 음란승채는 나를 거의 불알친구처럼 대하며 짓궂은 농담도 서슴지 않았고, 하늘이는 뭐가 그렇게 즐거운지 언니들에게 찰싹 달라붙어서 내가 하는 말에 피히히히 웃기만 했다. 그럴 때마다 피톤치트가 뿜뿜! 뿜! 하압! 

 이게 걸그룹이다. 

 이게 나라다. 

 대한독립 만세. 

 나는 일직사관처럼 아이들의 컨디션을 체크했다. 

 “아픈 사람 없어? 1호, 괜찮아? 배 안 아파?” 

 “예, 괜찮아요.” 

 “5호는?” 

 “저도 괜찮아요. 대표님이 주신 약 먹고 완전 쌩쌩해졌어요.” 

 “회복력이 울버린 급인데? 역시 젊음이 좋아.” 

 “울버린, 피히히히히.” 

 “8호는 왜 내가 말할 때마다 웃어? 대표가 만만해?” 

 “아니요, 대표님 너무 재미있어요.” 

 “다른 멤버들은 아픈 데 없지?” 

 그때 3호 루미가 동갑 라인인 9호 정누리에게 귓속말로 뭔가를 속삭였고, 누리는 옆으로 발라당 넘어지며 웃었다. 그러고는 나를 향해 “대표님, 루미가요.”하며 운을 떼자 루미가 “안 됔!”하고 소리를 지르며 누리의 입을 틀어막았다. 

 “3호, 뭔데. 어디 안 좋아?” 

 “아니에요!” 

 “푸풉, 변비···!” 

 “야아, 미쳤나봐!” 

 “아, 루미 변비야?” 

 “아아앙!” 

 수치스러워하는 루미를 대신해서 맏언니인 12호 다빈이가 덤덤하게 전달해주었다. 

 “루미 일주일 째 못 싸고 있대요.” 

 “그게 뭐 부끄러운 일이라고. 원래 걸그룹 멤버들 변비 많잖아. 3호, 내가 싸게 해줘?” 

 “어, 진짜요···?” 

 “누워봐.” 

 <‘에스테틱 갓 핸드’가 발동됩니다.>

< 내가 싸게 해줘?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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