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배 까고 누워봐 >
차 안에서 강하게 풍기는 이상성욕의 냄새.
내가 지금까지 수많은 이상성욕 페로몬을 맡아본 바, 그것은 여자에게서 풍기는 향긋한 페로몬이 아니었다. 홀애비 냄새처럼 안 씻은 남자의 겨드랑이에서 풍기는 퀴퀴하고 시큼한 냄새였다.
물론 김병용의 몸에서 실제로 그런 냄새가 나는 것이 아니라, 페로몬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내 후각에서만 느껴지는 냄새다. 동물에게만 들리는 초음파 같은 건데, 동성의 것이라서 내가 불쾌하게 받아들이는 것 같다.
내가 생각하는 정황은 이렇다.
1. 김병용이가 홀로 카메라 제거 작업을 하다가 프라미들 중 누군가가 놓고 간 가방을 발견했다.
2. 처음에는 순수한 변태적 호기심에서 열어봤는데 안에 스타킹이 있었다.
3. 그는 스타킹 마니아이기 때문에 ‘오이오이, 빵순이들 스타킹 초럭키★’ 하며 그걸 챙겼다(훔쳤다).
냉정해질 필요가 있다.
크로스백의 지퍼가 열려있는 것도 그렇고, 나는 그가 주머니에 넣은 것이 스타킹이라고 확신한다.
스타킹 습득창도 그렇게 말을 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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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습득 가능 스타킹 수/주인 : 1/이서현(난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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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머니에 넣은 게 스타킹이라는 것은 확실한 것 같은데 문제는 그걸 어디에서 습득했는지가 중요하다.
바닥이나 의자 위에 있던 걸 가져간 거면 그나마 내부에서 합의를 보고 사건을 축소시킬 수 있겠지만, 내 의심처럼 가방에서 꺼냈다면 엄연한 절도이기 때문이다.
물론 바닥에서 주웠든 훔쳤든 간에 프라미슈와 로그인레코드 측에는 알려야 한다. 그렇게 되면 제작진과 출연자 사이의 신뢰도가 떨어지고 촬영장 분위기는 흉흉해 질 수밖에 없다.
차라리 금품을 훔쳤다면 모를까, 신고 있던 스타킹이라는 성도착증세가 들어간 거라서 당사자들로서는 더 찝찝할 테니까.
언론에 알려지게 될 경우에는 프로그램 이미지에도 타격이 가겠지. 홍보적인 측면 보다는 변태 스탭이 참여했다는 부정적인 인식이 더 강하기 때문에 프로그램에 마이너스가 될 가능성이 높다.
“멤버 중에 누가 가방을 놔두고 갔나 봐요.”
김병용은 내 인기척을 느끼고도, 내가 눈치를 못 챘다고 생각했는지 아무렇지 않게 내게 말을 건넸다. 하지만 뭔가 구린 사람들에게서 느껴지는 알싸한 초조함과 어색한 말투는 감출 수가 없었다.
그 태도를 통해 가방에서 스타킹을 꺼냈다는 내 의심은 더 확고해졌다.
나는 쓰레기통에 버린 걸 주웠지만 이놈은 훔쳤다!
“예, 놓고 갔다고 하더라고요.”
나는 대답을 하면서 머릿속으로는 계속 생각을 하고 있었다.
내가 여기서 어떤 판단을 내려야 할까.
원칙대로 제작진과 프라미슈 애들한테 알려야 하나?
아니면 같은 스타킹 매니아로서, 내 선에서 경고를 하고 한번 눈 감아줘?
아니, 눈을 감아주기에는 너무 위험하지.
잠깐의 내적갈등이 있었지만, 나는 결국 제작진에게 알려서 처벌을 하는 쪽으로 마음을 굳혔다.
만약 우리 아이들한테 이런 일이 벌어지면 어떻게 해야 하나 생각을 해보니 답이 쉽게 나왔다.
그전에 확실하게 확인부터 해야 한다.
나는 초장부터 강경한 태도로 나갔다.
“근데 방금 주머니에 뭐 넣으셨어요?”
“예? 주머니요?”
“오른쪽 주머니에 뭐 넣으셨잖아요.”
20대 후반쯤으로 보이는 청년은, 처음에는 시치미를 떼나 싶더니 나의 단호한 말투에 겁을 먹었는지 두 번째 말에는 대답을 잇지 못하고 겁에 질린 표정이 되었다. 말 그대로 빼도 박도 못하게 현행범으로 잡힌 사람처럼 전의를 상실하고 모든 것을 체념한 기색이 역력했다.
최악의 경우 몸싸움으로까지 번지면 어쩌나 대비를 하고 있던 나로서는 다행이었다.
“얼핏 보니까 스타킹 같던데··· 맞아요?”
“죄송합니다···.”
답이 없다고 생각했는지 김병용이는 주머니에서 문제의 나일론을 꺼내며 순순히 가방 위에 올려놓았다.
내가 쓰레기통에서 주웠던 것과 똑같은 살구색의 얇은 팬티스타킹이었다.
나는 변명을 하지 않고 인정하는 그의 모습에서 점수를 조금 줬다.
마이너스 100점이었다면 인정 점수 10점이 더해져서 마이너스 90점.
나는 중요한 질문을 던졌다.
“가방에서 꺼낸 거예요, 아니면 어디 떨어져 있던 거 주운 거예요?”
“······가방에서요···.”
“가방은 왜 열어봤어요?”
여기서 또 한 번 대답을 멈춘 그는 잠시 입술을 잘근거리더니 이내 입을 열었다.
“처음에는 그냥 걸그룹 가방에는 뭐가 들어있을까 궁금해서, 진짜 구경만 하려고 열어봤는데요··· 안에 스타킹이 있길래··· 하아, 제가 잠깐 미쳤던 것 같습니다···.”
“혹시 스타킹 페티시 있어요?”
“예···.”
솔직 점수 10점 추가.
내가 그의 얼굴을 본 건 오늘이 처음이다. 아까 회사에서 처음 봤으니 채 4시간이 되지 않았는데, 그 몇 시간동안 지켜본 바로는 꽤 성실한 친구였다.
원래대로라면 내가 왈가왈부하지 않고 제작진 윗선에 바로 알린 뒤 그쪽에서 알아서 처리하도록 맡기려고 했지만, 인상이나 느낌이 썩 나쁘지 않은 것 같아서 조금 더 얘기를 해보기로 했다.
만약 대화를 해봤는데 반성이나 개선의 여지가 보인다면 한번쯤은 기회를 주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이런 문제로 경찰서 가거나 문제 일으킨 적 있어요?”
“없습니다. 진짜 이번이 처음이에요.”
“방송일 얼마나 했어요?”
“2년 됐습니다.”
“나이는.”
“스물여덟입니다.”
“원래 꿈이 방송 쪽이었어요?”
대학 때 방송영상미디어를 전공했다, 원래는 영화 쪽에 관심이 있었다가 방송시스템도 배워두면 좋을 것 같아서 B뮤직에 입사를 했는데, 하다 보니 예능 프로그램에도 매력을 느껴서 이쪽으로 진로를 결정했다, 뭐 그렇다고 한다.
나는 7호의 스타킹을 가방에 넣고 지퍼를 닫으며 그를 시험했다.
“그런데 어쩌나··· 이제 그만둬야 할 것 같은데요. 단순한 문제가 아니라 이거 지금 절도인 거 알죠?”
“예···.”
“이제 어쩔 거예요? 앞으로 방송 쪽 일은 못할 거 같은데.”
“뭐··· 제가 잘못한 거니까··· 어쩔 수 없죠···.”
“솔직해서 마음에 들기는 한데··· 절박함이 안 느껴지는 게 조금 아쉽네. 사람 마음이라는 게, 아무리 독하게 마음을 먹어도 상대가 한 번만 봐달라고 울면서 바짓가랑이 잡고 늘어지고 그러면 또 약해지거든요. 부양할 가족이 있다는 얘기도 좀 섞어주고.”
“아···.”
“보니까 그럴만한 넉살도 없는 것 같네요. 원래 좀 소극적인 편이에요?”
“그건 아닌데··· 그냥 제가 잘못을 했으니까 책임을 져야 한다고 생각해서요···.”
“아, 오히려 사나이 스타일이구나. 프라미슈 팬이에요?”
“아니요. 원래 아이돌 쪽에 관심이 없었는데 이 일 하면서 조금씩 알아가는 중입니다.”
“쯥, 프라미들이 이번에는 1위를 한 번 해야 되는데···. 애들 예쁘죠?”
“예? 아··· 예. 비주얼은 제가 일하면서 본 걸그룹 중에서 제일 예쁜 거 같습니다.”
“보통 한두 명만 예쁜데 이 팀은 빠지는 멤버가 없죠.”
내가 심각했던 이야기의 흐름을 바꿔버리자, 병용이는 잠시 내 표정과 기분을 살피면서 눈치를 봤다. 내심 용서를 기대하고 있겠지.
그래, 봐줬다.
“내가 이번 한 번만 눈감아 줄게요.”
“아, 아닙니다.”
“원래 스타킹 좋아하는 사람치고 나쁜 사람 없어요.”
“예···?”
“농담이고. 원래 이런 짓을 할 사람 같아 보이지는 않아서 그래요. 이번이 진짜 처음인 것 같고, 다시는 이런 짓 안할 거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기회 한 번 줘보려고.”
“아······ 감사합니다.”
“원래 감정기복이 잘 없는 편이구나. 안 좋아요?”
“아뇨, 좋습니다. 그런데 제 스스로가 너무 민망하고 창피해서요.”
“그런데 스타킹을 훔칠 생각까지 하면 좀 위험한 거 아닌가? 버린 걸 주운 것도 아니고···.”
“하아··· 저도 제가 왜 그랬는지 모르겠는데요··· 실물을 처음 봐서 그런 거 같아요.”
“응? 스타킹을 처음 봤다고?”
“아, 입었다가 벗은 거요.”
“엥, 스물여덟인데 지금까지 벗은 스타킹을 한 번도 본 적이 없어요?”
“예···.”
“여자 친구 있었을 거 아니에요.”
“아··· 제가 모솔이라서요···.”
“아, 그래요···?”
잘생긴 건 아니지만 딱히 모난 외모가 아니고 키도 작은 편이 아닌데 왜? 라는 표정으로 쳐다보자 비니를 벗었는데, 아······ M자 탈모가 엄청 심하다.
인상이 확 달라져서 10년은 늙어 보였다.
“으음, 으으음···.”
병용이는 내 침음의 의미를 이해한다는 듯, 씁쓸하게 미소를 지으며 비니를 덮었다.
나는 7호의 가방을 들어서 스타킹을 안에 넣고 지퍼를 닫았다. 그리고 화제를 돌려 말했다.
“작업 할 거 아직 많이 남았어요?”
“아니요, 카메라는 다 뗐고 이제 밖으로 옮기기만 하면 돼요. 5분 안에 끝납니다.”
“그럼 나 애들한테 가방 좀 갖다 주고 올 테니까 마무리 짓고 계세요.”
“아, 예. 다녀오십시오.”
차에서 내린 나는 다시 지하주차장 현관으로 들어가 엘리베이터를 기다렸다.
도착한 엘리베이터에는 마침 숙소에서 내려온 제작진들이 타고 있었다.
메인 작가가 묻는다.
“어? 대표님 아직 안 가셨어요?”
“서현이가 차에 가방을 놓고 가서요.”
“아아, 안 그래도 계속 가방, 가방 거리던데요.”
그들과 또 한 번의 작별인사를 마친 뒤 엘리베이터에 올랐다.
그러자 변경된 스타킹 정보가 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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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습득 가능 스타킹 수/주인 : 1/이서현(난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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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방 속에 있는 그 아이일 것이다.
병용이 주머니 속에 있을 때는 별3개더니 난이도가 낮아졌다.
하지만 나는 욕심을 내지 않았다.
내가 여기서 스타킹을 꺼내면 병용이랑 다를 게 뭐가 있겠는가.
정정당당하게 버린 것만 주워야지.
―띵털. 9층입니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현관 벨을 눌렀다.
무관의 여왕 다빈이가 숏팬츠 차림으로 문을 열어줬다.
“이거 서현이 가방 맞지?”
“예, 맞아요.”
자신의 가방이라는 말에 서현이가 방에서 뛰어나와 송구스러운 표정으로 가방을 건네받았다.
“아, 감사합니다!”
아이들은 방금 제작진이 퇴근을 한 뒤 편한 옷으로 환복을 마치고 화장을 지우거나 씻는 중인 것 같았다.
나는 안으로 들어가지 않고 문 밖에서 다빈, 서현이와 인사를 나눴다.
“잘 자고 내일 보자.”
“예, 들어가세요.”
“안녕히 가세요.”
그때 내 목소리를 들은 몇 몇 녀석들이 현관 쪽으로 나왔다.
1호 서나와 11호 소원이었다.
녀석들과도 눈을 마주치고 인사를 하려는데 서나의 머리 위에서 아까는 보지 못했던 상태창이 떠올라 있었다.
혜진이와 슬랜더 퍽킹데이를 보내고 받은 패시브 스킬이 하나 있었는데 그게 발동된 것이다.
‘피의 섭리’
생리와 배란주기, 임신 확률 등을 알려주는 스킬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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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리가 시작되어 향후 이틀간 생리통이 극심합니다.
―현재 통증지수 : 6/10
―추천 스킬(효과) : 불타는 태양의 정액 칵테일(100%), 에스테틱 갓 핸드(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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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킬 설명만 들었을 때는 나와 상관없는 건 줄 알았는데, 생리통의 통증지수와 그에 따른 컨디션을 알 수 있으니 의외로 쓸모가 있었다.
예전에 요나도 생리통이 심해서 활동을 할 때 고생깨나 했었다. 본인 말로는 생리통으로 느낄 수 있는 최고의 통증일 것 같다고 했는데, 심한 날에는 기차가 아랫배와 허리로 지나가는 느낌이라고 했다.
정도의 차이만 있다 뿐이지 다른 업나니들 역시 생리가 시작되면 하루 이틀 정도는 생리통에 시달렸었다. 나와 힐링 교배를 한 이후에는 싹 사라졌고.
그래서 걸그룹을 관리하는 담당 매니저들은 생리 주기도 알아두는 것이 좋다. 호르몬 변화로 인해서 피부 상태나 감정 기복이 심해지는 멤버들도 있기 때문에 활동 기간에는 특별히 신경을 써야 하기 때문이다.
상태창을 보니 서나도 요나만큼 심할 것으로 예상이 됐다.
시간별 예상 통증지수도 알 수 있었는데, 새벽 5시부터 서서히 올라가서 내일 낮 2시쯤에는 최고 지수인 10을 찍을 것으로 나와 있었다.
옷을 입고 있어서 지금은 볼 수 없지만, 아마 라희의 다리에 마비가 올 때처럼 생리통이 발생되는 부위가 보라색으로 변했을 것으로 예상된다.
나는 현관 안쪽으로 들어가서 다빈이 뒤에 서 있는 녀석을 불렀다.
“1호.”
“예.”
“아까는 괜찮더니, 몇 분 사이에 컨디션이 안 좋아 보이네. 어디 아파?”
“아··· 허리랑 배가 좀 아파서요.”
“생리통?”
나는 직접적으로 물었고, 녀석은 고개를 끄덕였다.
안 그래도 피곤해 보이는 눈빛이 더 노곤해져 있었다.
“예···.”
“원래 좀 심한 편이야?”
“예, 서나랑 제가 좀 심해요.”
맏언니인 다빈이가 대신 대답했다.
인원이 12명이나 되다보니 서나 외에도 생리가 겹치는 멤버가 있었는데, 3호 루미가 3일차, 미나가 5일차였다. 생리통 통증지수는 각각 1, 2로 낮은 편이었다.
“요나도 생리통이 엄청 심해서 고생을 좀 많이 했었거든. 잘 때 배랑 허리 좀 따뜻하면 조금 괜찮아 진다고 하던데. 찜질팩 있지?”
“예, 있어요.”
“그래, 그거 배에 대고 자. 내일 더 심해지잖아.”
“예, 이제 시작했으니까 내일이랑 모레가 피크예요.”
“심할 때는 약도 잘 안 듣지?”
“예. 어쩔 수 없이 먹긴 먹는데 효과는 거의 없어요.”
“요나랑 똑같네. 자켓 촬영은 할 수 있겠어?”
“해야죠.”
“그래, 정 안 되면 나한테 얘기해. 직빵으로 풀리는 마사지 있으니까.”
“아, 진짜요.”
고저 없는 목소리로 되물었지만, 표정에는 지푸라기라도 잡는 자의 절박함과 기대감이 묻어 있었다.
“그럼 지금 좀 해주시면 안돼요? 그렇게 막 심한 편은 아닌데 잠을 설칠 거 같아서요.”
“잠 설칠 정도면 심한 거지. 최고 아픈 게 10이라고 치면 지금 6정도 돼?”
“예. 딱 그 정도요.”
녀석은 용한 점쟁이를 만난 사람처럼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신발을 벗고 안으로 들어갔다.
“배 까고 누워봐.”
프라미들이 다시 거실로 모였고, 서나는 거실 카페트 위에 얌전히 누워서 티셔츠를 반쯤 들어 올려 배를 드러냈다.
내가 생각했던 보라색 반점까지는 아니었지만, 적외선 카메라로 찍은 것처럼 빨간 불빛으로 표시되어 있었다. 배꼽 라인부터 시작해서 바지로 가려진 복부 아래까지 이어진 것 같다.
<‘에스테틱 갓 핸드’가 발동됩니다.>
나는 서슴없이 배꼽 위에 손바닥을 얹고 시계방향으로 마사지했다.
다섯 바퀴 정도 돌았을 때, 서나가 다른 아이들을 향해 말했다.
“우와, 진짜 효과 있어···.”
< 배 까고 누워봐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