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음란마귀 보존의 법칙 >
있다. 있어···!
변기 칸 중 한 곳의 휴지통의 뚜껑을 열어보니 살구색 팬티스타킹이 뱀 허물처럼 바닥에 깔려 있었다.
9층 화장실의 주 사용자였던 연습생들이 전부 ‘소녀날다’ 숙소로 들어가는 바람에 다행히 휴지통도 텅텅 비어있었다.
길에 떨어져 있는 5만 원짜리 지폐를 보기라도 한 것처럼 심장이 두근거린다.
손가락 끝으로 조심스럽게 스타킹을 들어 올리자 귓가에서 안내음이 들렸다.
<축하드립니다. 원지연의 스타킹을 습득하셨습니다. 즐거운 자위 하십시오.>
이거 뭔가 환호성이라도 질러야 되는 분위기인 걸···.
나는 한 뼘 정도 올이 나간 스타킹을 주섬주섬 점퍼 안주머니에 넣은 뒤 화장실 밖으로 조심스럽게 빠져나왔다.
아이들의 신곡을 차트 100위권에 올려줄 꿀팁이 뭔지 궁금해서 견딜 수가 없지만, 자위를 할 땐 하더라도 일단 집에 가서 세탁부터 하고 쳐야겠다는 생각이다.
인간으로서 최소한의 존엄성은 지켜야지.
하지만 음경에 은은하게 피가 쏠리는 이유는 뭘까.
뭐기는.
배덕감에 길들여진 나의 쓰레기 같은 몸이, 버려진 스타킹을 습득하는 변태 행위에서 성충동을 느껴버린 거겠지.
6층으로 다시 내려왔을 때 스탭들은 철수 준비를 하고 있었다.
“수고하셨습니다!”
“병용아, 이동차량에 1번 카메라 떨어졌던 거 붙였니?”
“예, 제가 붙이고 왔습니다.”
“숙소 팀에 연락해서 5분 뒤에 출발한다고 해. 카메라 배터리 좀 제발 체크하라고 하고.”
“예, 배터리 체크하라고 전달하겠습니다.”
잠시 뒤 프라미들의 인서트 컷용 개인 인터뷰를 따는 것을 끝으로 회사에서의 촬영은 마무리가 됐다.
하지만 아직 전체 촬영이 끝난 건 아니었다.
내가 아이들을 숙소에 직접 데려다준 뒤 내일 스케줄 고지와 굿나잇 인사를 하는 장면이 오늘의 마지막 씬이다.
“FD님, 저 내려가도 되나요?”
“예, 대표님. 카메라 세팅 끝났으니까 숙소로 출발하시면 돼요. 저희 제작진 차가 앞에서 리드해드릴 거니까 고대로 따라가시면 됩니다.”
나는 주차장으로 내려갔다.
프라미들의 차도 벤츠 스프린터.
―철컥
아이들이 먼저 타고 있던 차 운전석에 올랐는데 보조석에는 포니테일 하늘이가 앉아 있었다.
나와 눈이 마주치자 피톤치드 미소를 짓는다.
나도 최대한 사람 좋아 보이는 미소를 지으··· 아뿔싸, 하늘이 머리 위 코너에 달린 고정 카메라와 눈이 딱 마주쳤다.
빌어먹을 방송국 놈들이 뻔히 보이는 수를 썼구만.
하늘빠인 나의 반응을 보기 위해서 일부러 하늘이를 조수석에 앉힌 게 뻔했다.
“벨트 매야지.”
“아, 네.”
―보르릉!
시동을 건 나는 출발하기 전 군대 점호를 하듯이 아이들에게 말했다.
“인원 체크할게. 1호부터 12호까지 순서대로 자기 번호 불러봐.”
“1호!”
“2호!”
“3호!”
.
.
“12호 번호 끝!”
“오, 다빈이. 번호 끝 구호는 어디서 배웠어?”
“진짜사나이에서 봤어요.”
“좋네. 상점 1점.”
“상점이 뭐예요?”
“어, 상점 10점 모으면 내가 선물 줄 거야.”
장난으로 한 말인데 아이들은 부와와왘 하며 좋아했다.
까짓 거 선물, 주지 뭐.
하늘이가 물개 박수를 치며 묻는다.
“선물 뭐예요?”
“너희들이 원하는 거. 숙소 도착하기 전까지 자기가 갖고 싶은 물건 정해서 단톡방에 올려. 한도는 50만원.”
“꺅!”
“50만원이요? 대박!”
“와, 나 뭐하지? 뭐하지?”
그래, 자고로 걸그룹은 이런 분위기여야지.
나까지 덩달아 텐션이 오른다.
흡족하게 입 꼬리를 올린 나는 프라미들의 팔딱팔딱 살아 숨 쉬는 생명력을 연료 삼아 차를 출발시켰다.
아이들은 이동하는 동안 라이브 방송을 하며 팬들과 소통을 했다.
제작진은 라방에서 ‘체인지’ 촬영 중이라는 것을 알려도 된다고 했고, 팬들 역시 기사와 스케줄 표를 통해 오늘이 나와의 촬영임을 알고 있었다.
“우리 프라미들의 1일 매니저를 맡아주시고 계신 김윤호 대표님입니다! 박수!”
내 뒤에 앉아 있는 4호 승채가 셀카봉을 하늘이와 내 중간으로 내밀어서 내 얼굴을 찍으며 팬들에게 소개했다.
나는 운전에 방해되지 않을 정도로 슬쩍 쳐다보며 팬들에게 인사를 건넸다.
“안녕하세요, 명예 빵덕아범 김윤호 입니다. YH엔터 소속 프라미슈 트웰브 많이 사랑해주세요.”
아이들은 자신들의 핸드폰으로 실시간 댓글을 모니터링하고 있었는데 나와 관련된 댓글을 하나씩 읽어줬다.
바로 옆에 있는 하늘이는 웃음보가 터졌다.
“푸핫, 가요계에는 뮨 대표님 코를 만지면 잘 된다는 전설이 있으니까 꼭 만지래요!”
예전에 은빛이가 한 예능에서 제주도 하르방에 대해서 얘기하다가 썼던 아무말 개드립이다.
“아, 정말?”
하늘이 뒤에 앉아 있는 원지연이 불쑥 손을 내밀어 내 코를 잽싸게 만졌다.
지연아, 내가 지금 너의 스타킹을 인질로 잡고 있단다. 아마 그걸로 음경을 감싸서 자위를 하게 될 텐데 나를 도발하면 상상 속에서 너를 범할지 몰라.
지연이가 내 코를 만지는 모습을 옆에서 지켜봤던 하늘이도 검지 끝을 뻗어 내 콧방울을 꼬잉, 하고 눌렀다. 자극적이지 않은 마일드한 화장품 냄새가 스치고 지나갔다.
하늘이한테는 머릿속으로도 색드립을 못 치겠다.
그래, 이런 게 진짜 팬의 마음이지. 성욕조차 침범하지 못하는 신성한 덕후의 세계.
“뮨 대표님, 이번에도 흑역사 짤 부탁드린대요. 근데 흑역사 짤이 뭐지?”
2호 영아의 혼잣말에 11호 소원이가 대답한다.
“저희 리플걸에서 탈락했을 때 아쉬워하셨던 표정 있잖아요.”
“아아, 기억난다.”
“와 그게 벌써 3년 전이네.”
“오랜만에 검색해봐야겠다.”
프라미들은 ‘리플레이걸’ 촬영 때를 회상하고 추억하며 숙소에 도착하기 전까지 한 시도 쉬지 않고 갸르륵 거리며 떠들었다.
나는 제작진의 차를 따라서 프라미들의 숙소인 청담동 아파트 주차장에 주차를 마쳤다.
아이돌 숙소를 비롯해서 연예인들이 많이 살기로 유명한 아파트였다.
대기업 계열사의 회사답게 숙소 등의 부대시설 지원은 확실히 빵빵했다.
방 4개, 화장실 2개. 인원이 워낙 많다보니 화장실 사용이 조금 빡빡하긴 하겠지만, 3인 1실이면 꽤 여유 있게 생활하는 거다.
현관에 들어선 아이들은 거실 카페트와 소파에 드러누우면서 뮤비 촬영으로 고단했던 오늘 하루의 피로를 씻어냈다.
“역시 우리 집이 최고야앙!”
“누가 메이크업 지워주는 기계 좀 안 만드나···.”
“와, 생각만 해도 너무 좋아요.”
“아, 나 차에 가방 놔두고 왔다. 히잉···.”
“바보.”
“아, 몰라몰라. 내일 일어나서 가져올래. 핸폰만 있으면 됐지 머.”
“대표님 저희 이제 뭐해요?”
“어, 내일 스케줄 간단하게 말하고 끝낼 거야. 그 전에 5분만 쉬어.”
“와, 감사합니다.”
그런 그렇고.
숙소에 들어오자마자 스타킹 습득 공략창과 맵이 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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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경 30m내 습득 가능 스타킹 수/주인 : 25개/12명 전원(난이도★★★~★★★★★)
★12개 모두 자위 성공 시 음원 차트TOP1 및 음악방송 1위 팁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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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스타킹 천국이다, 천국.
4개의 방은 물론 욕실, 세탁실, 다용도 실 등 아파트 평면도 구석구석에 빨간 점이 밝혀져 있었다.
하지만 20여개의 카메라가 욕실을 제외한 숙소 곳곳에 설치돼 있다. 고정형 캠으로만 촬영을 했던 연습실과는 달리 숙소에서는 두 명의 카메라맨도 붙어 다닌다.
그래서 그런지 난이도가 최소 별3개부터였다. 화장실 두 곳 중 한 곳에 7호 이서현의 스타킹이 있었는데 거기가 그나마 쉬운 별3개였다.
숙소에서는 그냥 시도할 마음 자체를 먹으면 안 될 것 같다.
나는 마음속의 불경한 잡념을 지우면서 지금이 촬영 중이라는 사실을 다시금 되새겼다.
“내가 다른 회사 걸그룹 숙소에 오게 될 줄은 몰랐네.”
혼잣말로 운을 뗀 나는 가까이에 있던 5호 나경이에게 물었다.
“여기 너네 리얼리티 프로 할 때 나왔던 숙소 맞지? 숙소 한 번도 안 바뀌었네?”
“예, 4년째 쓰고 있어요.”
나경이는 말을 할 때면 입 꼬리가 자연스럽게 올라가고 눈매가 가늘어지면서 자동으로 웃는 상이 된다.
그래서 대화를 나누거나 녀석의 인터뷰 짤을 보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진다.
말을 할 때 머리카락을 매만지는 버릇도 그대로였다.
얼굴에 드러난 관상처럼, 성격도 너무 착하고 말투와 행동에는 기본적으로 애교와 상냥함이 배어있다. 애교 섞인 투정을 부릴 때는 하늘이보다 더 막내 같다고 하여 ‘페이크 막내―페막’이라고도 불린다.
팬들 중에서는 다른 멤버에게 입덕했다가 나중에 나경이로 환덕하는 경우도 많다.
나 역시 하늘이에게 덕통사고를 당해서 명예 빵덕이가 됐지만 나도 모르게 자꾸 눈과 마음이 끌리는 아이였다.
매번 앨범이 나올 때마다 비주얼 리즈가 갱신되는데 이번에도 안 본 사이에 더 예뻐졌다.
상큼하다고 하여 레모나경이라 불리는 별명처럼 새 앨범 헤어 컨셉은 레몬 빛깔 똑 단발. 밝은 머리색인데도 참해보이는 건 전적으로 녀석의 인상 때문이겠지.
참으로 존예롭다 존예로워.
라방이나 리얼리티 프로에서 보면 가끔 본인 스스로 섹시함을 어필하기도 하는데, 이목구비 자체가 짙어서 굳이 강조를 안 해도 알아서 섹시해지는 타입이기 때문에 개인적으로는 그냥 순둥순둥하고 애교스러운 매력으로 밀고 나갔으면 좋겠다.
나는 5호의 머리를 쓰다듬어주고 싶은 마음을 참아내며, 녹화 가이드라인에 따라 3인1실로 쓰고 있는 아이들의 방을 구경하기로 했다.
“누구 방인지 알아맞혀 보세요.”
첫 번째 방에 들어가기 전에 승채가 말했고, 나도 재미있을 거 같다며 동의했다. 그리고 옵션을 걸었다.
“만약에 내가 룸메이트 3명 전부 맞히면 그 방 주인들은 내 소원 한 가지씩 들어줘. 한 명이라도 틀리면 그 방 주인들한테 상점 2점씩 줄게.”
“대표님은 소원인데 상점 2점은 너무 짜요! 적어도 3점은 주셔야죠!”
“알았어. 대신 방에 있는 물건들은 손대지 않기. 사진이나 이름표 같은 게 있더라도 치우면 안 돼. 그 대신 나는 옷장이나 서랍 같은 건 안 열어볼 거야. 그냥 들어가서 보이는 그 상태 그대로 추리할 거야.”
그러기로 합의를 본 뒤 첫 번째 방으로 들어갔다.
2층 침대 하나와 싱글 침대 하나. 그리고 옷장 손잡이에 걸려 있는 교복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다.
빵순이들 중에서 교복 입는 애는 한 명뿐이지 뭐.
“일단 하늘이.”
“아, 교복 안 치웠구나!”
“어디 학교야?”
“청남 고등학교요.”
당연히 예술 고등학교인 줄 알고 물어본 건데 예상외로 일반 인문계 고등학교에 재학 중이었다.
“왜 예고 안 가고?”
“공부도 더 하고 싶었고요, 수능 봐서 점수대로 대학도 가고 싶기도 하고··· 그냥 학교생활은 좀 평범하게 하고 싶었어요.”
“아, 맞다. 하늘이 중학교 때 공부 잘했다고 했었지? 지금도 잘해?”
“아뇨···.”
자신감이 급격히 떨어진 표정의 하늘이.
녀석을 대신해서 1호 노서나가 말을 이었다.
“하늘이가 요즘 고민이 많나 봐요.”
“무슨 고민?”
하늘이가 직접 대답했다.
연예인과 학생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다 잡고 싶어서 일반 고등학교로 진학을 했던 건데, 학업과 병행을 해보니 그게 결코 쉽지 않다는 걸 깨닫고 마음이 바뀌었다는 것이다.
녀석은 의젓한 톤으로 고민을 털어놓았다.
“지금은 이도저도 아닌 상태 같아요. 마음 같아서는 아예 자퇴를 하고 팀 활동에 전념하고 싶은데요, 근데 또 그렇게 하신 선배님들 말씀 들어보니까 갈등이 돼요.”
예전에도 그렇고 요즘도 종종 연예 활동에 전념하기 위해 중고등학교나 대학 진학을 포기하는 연예인들이 있다. 연예인으로서 성공을 한 그들이 TV나와서 대부분 하는 말이 바로 ‘일반적인 학교생활을 못 해본 것이 후회스럽다’인데, 하늘이가 걱정하는 부분이 바로 그거였다.
나중에 추억할 만한 학창시절이 없을까봐.
우리 연습생 중에서도 똑같은 문제로 내게 고민상담을 요청하는 아이들이 있다.
학벌에 연연하지 않고 성공한 스타들처럼 연예 생활에 올인을 하고 싶다는 것인데, 그때마다 나는 데뷔하기 전까지는 무조건 붙어 있으라고 말을 해주었다. 아직 미래가 불투명한 연습생이기 때문이고, 그들이 스타가 될 팔자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하늘이의 경우는 다르다. 프라미슈 12명 중에서 가장 뚜렷한 아우라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연예인에 올인을 해도 되는 아이였다.
하지만 나는 단언하지 않고 조언 정도로만 말을 해주었다.
“내 말이 정답은 아니니까 그냥 참고 정도만 해. 다른 멤버들한테도 해당되는 얘기야.”
“예.”
“보통 그런 얘기들 많이 하지? 일생에 한 번 뿐인 학창 시절, 1년에 한 번 뿐인 생일, 크리스마스, 기념일···. 그런데 생각해봐. 우리가 살아온 모든 날이 1년에 한 번 뿐이고 일생에 한 번 뿐인 날이잖아. 2014년 1월1일이 다시 돌아올까? 2017년 5월 19일이 또 와?”
아이들은 ‘어? 이 대표님 봐라, 그럴싸한데?’ 라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며 고개를 주억였다.
나는 하늘이를 향해 말을 이었다.
“학창시절이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 것처럼, 하늘이 니가 지금 프라미슈 트웰브로 활동을 하는 이 순간도 다시는 돌아오지 않아. 오히려 학교생활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경험하지만, 아이돌은 누구나 할 수 있는 게 아니지. 물론 가장 좋은 방법은 두 가지 모두를 성실하게 소화하는 거지만, 하늘이 너는 지금 그게 너무 힘들어서 고민을 하고 있는 거잖아? 이대로 가다가는 둘 다 망칠 것 같아서.”
“예···.”
“그래, 사람이 살다보면 자기가 가지 못한 길에 대한 후회는 있을 수밖에 없어. 짜장면을 먹으면 짬뽕이 먹고 싶고, 짬뽕을 먹는 사람들은 짜장면의 맛이 궁금한 거고.”
나는 프라미슈 공식 먹캐인 소원이가 뭐라고 말을 하기 위해 입을 떼는 것과 동시에 재빨리 말을 끊었다.
“짬···.”
“11호, 짬짜면 금지. 논지에서 벗어나는 선택지야.”
“아. 네···.”
“하늘아, 부모님도 니가 이런 일 때문에 고민하는 거 아셔?”
“아뇨, 부모님한테는 아직 말씀 안 드렸어요.”
“그래. 그럼 가족들한테도 여쭤보고, 회사 스탭분들이랑 멤버들하고도 좀 더 고민하고 얘기 나눠봐. 어차피 선택은 니가 하는 거지만 너를 가장 생각하고 사랑하는 사람들한테서 답이 나올 수도 있는 거니까. 너무 조급하게 생각하지는 말고.”
“네.”
하늘이는 그나마 마음이 편해졌다는 표정으로 배시시 눈웃음을 지었다.
“솔직하게 고민을 털어놓은 하늘이, 상점 1점.”
내가 상점을 부여하자 몇 몇 깨방정 멤버들이 난리가 났다.
“와, 고민 상담한 것만으로 상점을 줘요?”
“저도 고민 있어요!”
“저도 있어요!”
“그래, 승채는 고민이 뭐니.”
“저는···.”
4호가 대답하려 하자 동갑 라인인 7호 서현이가 말을 가로챈다.
“특정 분야에 호기심이 너무 많아요.”
“어떤 특정 분야?”
내가 묻자 아이들은 각자 다른 의미의 웃음을 터뜨리면서도 입을 모아 대답했다.
“19금이요!”
“씅채 요즘 완전 음란마귀예요.”
“욕구불만, 욕구불만.”
언니들은 마치 총각 선생님 앞에서 승채를 놀리는 여학생들처럼 즐거워했다.
승채 역시 부정하지는 않는지 민망하다는 듯 고개를 숙여 푸르륵 부르륵 하며 웃었다.
뭐 젊은 애들이 성에 관심을 갖는 건 당연한 거지.
나는 속담을 인용해서 승채를 커버해줬다.
“음란마귀 보존의 법칙. 원래 사람이 세 명 이상 모이면 그 중에서 누구 하나는 분명히 음란마귀일 수밖에 없어.”
“그럼 업키걸에서는 누가 음란마귀예요?”
3호 루미의 질문에 나는 당당하게 대답해주었다.
“다섯 명 다. 걔네는 그냥 업어 키운 음란마귀야.”
***
숙소 촬영까지 마치고 나오니 12시였다.
내일 아침에는 자켓 촬영이 있다.
나는 제작진들과 인사를 나누고 주차장으로 내려왔다.
문이 모두 열린 차 안에서는 FD가 고정용 카메라를 떼어내는 작업을 마무리 짓고 있었다.
이름이 김병용 씨였던가, 그는 내가 온 줄도 모르고 뒷좌석에서 열일 중이었다.
나는 열린 옆문으로 고개를 슬쩍 들이밀면서 인기척을 냈다.
“고생 많으십니다.”
내가 말을 걸던 그 찰나에, 그는 손에 쥐고 있던 뭔가를 후드 집업 주머니에 막 넣고 있던 중이었다.
내 시선도 무심코 그쪽을 향했는데, 주먹 사이로 살짝 삐져나온 그것은 99%의 확률로 살구색 스타킹이었다. 그리고 그의 앞 시트에는 누군가의 크로스백이 놓여있었다.
이 인간은 또 뭐야···.
< 음란마귀 보존의 법칙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