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프라미슈12 떡상 찬스 >
나는 프라미들을 만나기에 앞서, 녀석들의 탄생 설화인 ‘걸그룹 베이커리(이하 걸베)’를 정주행했다.
지금에 비하면 얼굴은 촌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엇, 얘는 원래 얼굴이 이랬나?’하며 고개를 갸웃 거리게 만드는 녀석들도 있었지만 그거야 뭐 어쩔 수 없는 거고···.
그래도 딱 연습생 시절에만 느낄 수 있는 열정과 풋풋함이 느껴져서 보는 내내 삼촌 미소가 번졌다.
1회 본방 때부터 하늘이한테 덕통사고를 당해버려서 12회 내내 투표를 했었지.
정주행을 하다 보니, 예전 영화를 다시 보다보면 지금은 유명해진 배우들의 엑스트라 시절을 볼 수 있는 것처럼 지금은 다른 그룹으로 데뷔를 한 친구들도 몇 몇 보였다. 프라미슈보다 잘 되서 승승장구하고 있는 그룹에 속한 멤버도 있었는데, 이래서 인생을 단거리 경주가 아닌 길고 긴 마라톤과 비교하는 거 아닐까.
―자 이제 걸그룹 베이커리 최종 데뷔 순위 12위에 오른 참가자들을 발표할 시간이 왔습니다. 먼저 10위부터 4위까지 공개를 할 텐데요.
그래도 단거리든 장거리든, 최종 순위 발표 장면은 언제나 짜릿하고 감동이 있다.
최종 투표를 거쳐 프라미슈로 모아진 열두 아이들의 장점 및 특징을 순위별로 정리해보자면.
1위 노서나(23) : #섹시, #청순, #큐트, #시크, #미드
첫 단독 샷과 개인 멘트가 4회에 나올 정도로, 걸베 초반에는 비중 있는 참가자가 아니었다. 제작진이 비밀병기로서 아껴놨다기보다는 처음부터 깔고 가는 참가자였던 것 같다. 하지만 무대 평가와 팀 미션이 시작되고부터 진가가 발휘됐다. 졸린 듯 무덤덤한 눈으로 팀원들에게 초 긍정 에너지를 불어넣었고, 그 모습을 본 시청자들로부터 ‘다크 청순’이라는 새로운 캐릭터성을 받게 된다.
그 외에도 섹시면 섹시, 청순이면 청순, 큐트면 큐트 등, 무대에서 걸그룹이 보여줄 수 있는 모든 컨셉을 찰떡 같이 소화하며 결국 최종 순위 1위에 올랐다. 슴위도 1위.
2위 송영아(24) : #큐트, #백치, #상큼, #애교
걸베 1회 때부터 투표 상위권을 기록하고 보컬과 댄스에서도 안정적인 밸런스를 보여주며 큰 위기 없이 데뷔 조에 오른 십덕캐.
3위 이루미(24) : #눈빛, #섹시, #강새롬 닮은 꼴
바비 인형이라는 별명으로 유명한 배우 강새롬 닮은꼴로 이슈. 역시 초반부터 상위권 순위를 기록하며 무난하게 데뷔조 안착.
4위 이승채(21) : #비주얼, #예능, #장신, #성숙미
중반까지 쭉 인기투표 1~3위를 기록하면서 프로그램 내내 주목을 받았다. 56명 참가자 중 가장 처음으로 소개가 되기도 했고, 1회 때부터 단독 샷과 멘트가 많았던 걸로 미뤄 제작진이 처음부터 데뷔조로 푸시했던 멤버로 예상된다.
5위 유나경(21) : #비주얼, #비율갑, #청순, #상큼
초등학생 때 아역 배우로 어린이 드라마에 출연해 나름 인지도가 있었다. 프라미슈12로 데뷔 이후부터 외모에 물이 올랐다. 미모로만 보면 내 기준 1위.
6위 원지연(23) : #얼굴 되는 메인보컬
보통 메인보컬은 외모가 달린다는 선입견이 있지만 ―어느 정도 사실이기도 하고― 얘는 얼굴도 되고 노래도 된다.
7위 이서현(21) : #청순, #걸크러쉬, #만능캐
얼굴은 순둥순둥 청순가련형인데 박력 있는 춤과 랩을 선보이며 무대 평가에서 주목을 받았다. 실시간 투표는 늘 중하위권이었지만 이상하게 데뷔조에는 들어갈 것으로 예상됐던 아이다.
8위 유하늘(18) : #눈웃음, #양 갈래 머리, #뮨뮨 1픽
팀의 막내이자 이제는 유일한 10대. 퍼포먼스, 보컬 실력은 떨어지지만 비글비글한 끼와 무공해 살균 미소로 이미 프로그램 초반부터 팬덤을 형성했다. 걸그룹 역사상 최고의 트윈 테일 캐릭터로서, 프라미슈12를 모르는 사람들도 ‘양 갈래 머리 한 애 누구야?’라고 묻는다는 말이 나왔다. 그래서 데뷔 초기 커뮤니티에서 불리던 별명은 ‘양머한누’.
9위 정누리(24) : #눈웃음, #웃는 개상, #젖살 여신, #장신
방송 당시에는 하늘이보다 눈웃음으로 더 이슈가 됐었다. 원래는 귀여운 개상이었는데 얼굴 젖살이 빠지고 난 뒤 미모가 살아나면서 리즈 시대를 맞고 있다.
10위 한미나(22) : #뿌까, #과즙상, #무쌍
뿌까 머리(춘리 만두머리)로 등장을 해서 1회 때부터 ‘뿌까미나’라는 캐릭터가 자리 잡혔다. 걸베 때는 통통한 모습이었는데 정식 데뷔 때 다이어트에 성공하며 요즘은 연기도 겸하고 있다. 은빛이와 똑같은 제주도 출신인데다가 나이도 동갑이라서 리플레이걸 때 서로 꽤 친하게 지냈었다.
11위 김소원(20) : #비주얼, #청순, #백치
노래도 안 되고 춤도 안 되고 무대 위에서위 끼도 없지만 오로지 비주얼과 방송에서 비친 착하고 순한 성격 때문에 뽑혔다는 평이다. 그 때문에 방송 당시 가장 많은 악플에 시달리기도 했는데, 본인 스스로도 그것을 알고 있어서 노력하는 모습이 많이 비춰졌다. 지금은 팀 활동과 함께 라디오에서 고정을 맡고 있다.
12위 이다빈(25) : #비주얼 탑, #몸매 탑, #무관의 여왕
최종 순위 13위로 아쉽게 탈락한 참가자였지만, 프로그램이 끝난 후 원래 12위였던 참가자가 일진 논란으로 순위가 박탈되면서 앨범 발매 직전 극적으로 합류한 멤버다. 걸베 이전에 다른 걸그룹 오디션에 출연해서도 아쉽게 탈락을 한 경험이 있었는데 그래서 ‘무관의 여왕’이라는 별명이 붙었다. 유나경과는 비주얼 원투펀치, 이승채와는 피지컬 원투펀치, 노서나와는 미드 원투펀치로 팀의 섹시미를 올려주고 있다.
그렇다는 얘기다.
프라미슈12는 오로지 팬들의 인기투표에 의해 팀이 결성된 것이기 때문에, 실력이나 팀 조합 면에 있어서는 부족할 수밖에 없다.
보통 회사에서 아이돌 팀을 제작할 때 보컬, 댄스, 비주얼 밸런스는 물론이고 멤버별 성향이나 성격까지 맞추기도 하는데, 프라미슈12는 개개인의 외모와 캐릭터성에 몰빵이 된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극강의 장점이 되어, 멤버 전원이 입덕 멤버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비주얼과 십덕력만큼은 탑클래스로 인정받는다.
인터뷰에서는 VNF가 롤 모델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프라미슈12는 오늘 신곡 뮤비 촬영을 마치고 우리 연습실로 퇴근했다. 방송이 나가는 시점이면 발매가 됐을 새 싱글 앨범이다.
내가 녀석들의 일일 매니저로 보내는 시간은 밤 10시부터 내일 밤 10시까지로 정해졌다. 연습실 곳곳에 카메라가 설치돼 있고 제작진들은 6층 회의실에서 모니터링 하고 있다.
나는 연습실에서 신곡 안무 연습 중이던 녀석들과 인사를 마쳤다.
“다들 예뻐졌네. 원래도 예뻤는데 더 예뻐졌다.”
나의 가벼운 인사말에 예능기가 발동한 4호기 이승채가 되묻는다.
“누가 제일 예뻐졌어요?”
키득키득 새어나오는 소녀들의 웃음소리.
녀석들이 원하는 대답은 당연히 나의 1픽인 하늘이일 것이다.
하지만 오늘의 나는 녀석들의 회사 대표이자 매니저다. 특정 멤버 편애는 금지.
“다 예뻐졌어.”
“그래도 딱 한 명만 꼽으면요?”
“우리 승채가 하이에나처럼 집요한 구석이 있구나.”
내가 되려 반격을 하자 한바탕 웃음이 터졌다.
나는 작가가 미리 일러준 가이드라인에 따라 상황을 이끌어나갔다. 단순한 방향성 제시 정도이지 대사나 디테일한 상황 설정은 나와 아이들이 알아서 쳐야 한다.
“너희들도 알다시피, 내가 내일 밤 10시까지 매니저를 맡기로 했어. 현장 일 안 한지가 꽤 돼서 실수할 수도 있으니까 이해 좀 해줘”
“예!”
“자, 그럼 남자 친구 있는 사람 손 한 번 들어볼까?”
나의 기습 애드립에 2호기 송영아가 걸려들었다.
당연히 아무도 안 걸릴 줄 알았는데, 손을 가슴까지 올리려다가 뒤늦게 함정임을 깨닫고는 흠칫 굳은 것이다. 표정도 어색해졌고, 그 모습을 본 몇 몇 멤버들이 실소가 터진 걸 보니 진짜 남친이 있나보다.
아오 이 빡머가리 놈, 방송 짬밥이 몇 년인데 이런 간단한 트릭에 빠지냐고.
매니저를 바꾸는 방송 포맷은 리얼이기 때문에 다행히 이곳에 프라미슈 회사 직원들은 없었다. 있었다면 대판 혼났겠지. 하지만 카메라는 돌아가고 있었고, 이 장면을 제작진들이 실시간으로 지켜보고 있다는 게 문제였다.
내가 다 당황스럽네.
하얗디하얀 얼굴이 금세 시뻘게진 송영아는 멜빵바지 끈을 꼼지락거리며 내 눈치를 살핀다.
침착해 나중에 편집하면 돼···.
나는 얼른 말을 돌렸다.
“너네 오늘 신곡 뮤비 찍고 왔다며?”
“예.”
“노래랑 안무 한번 볼 수 있을까?”
나는 12호기 다빈이가 건네는 USB음원을 받아서 컴퓨터와 연결했다.
12명의 대인원이 우르르 움직이며 스타팅 포지션을 잡는다.
열두 명 중 머리 위에 유니콘이 앉아 있는 사람은 고작 두 명.
5호기 나경과 8호기 하늘이었다.
하늘아 삼촌 팬의 순수한 환상을 지켜줘서 고맙다···.
한편으로는, 회사의 엄중한 관리와 바쁜 스케줄 속에서도 다들 교배는 하고 살던데 도리어 딱할 지경이다.
뭐, 그래도 하늘이가 유니콘의 선택을 받았다는 것이 내심 흡족했던 나는 새어나가려는 실소를 참으며 폴더를 클릭했다.
폴더 안에는 세 곡이 들어있었다.
1. Beauty sunshine(T)
2. Loving
3. 보고 싶은 너에게
“타이틀이 뷰티 선샤인이야?”
“예!”
“튼다.”
스피커에서 음악이 사정됐고, 아이들은 금세 표정을 바꾸며 몰입했다.
―뚠뚠뚠뚠
그렇군.
뭐 지금까지의 프라미슈 스타일에서 벗어나지 않는, 상큼하고 귀엽고 통통 튀는 댄스곡이었다.
처음 들었을 때 확 귀에 감기지는 않지만 듣다보면 뭐 좋아질 수도 있을 것 같다.
케이블 음방 1위는 노려볼 수 있을지 몰라도 음원 및 공중파 음방 1위는 물 건너갔다는 뜻이지.
내가 음악 쪽으로는 전문가가 아니기 때문에 오히려 더 대중적으로 평가를 할 수 있는데, 팬이 아닌 일반 리스너들한테 꽂힐 만한 킬링 파트가 없었다.
뭐 어느 가수야 안 그러겠냐마는, 얘네는 특히 비주얼이 너무 좋아서 곡만 제대로 만나면 되는데 아쉽다 아쉬워.
걸그룹은 결국 이미지 싸움이다. 대중은 늘 새롭고 신선한 얼굴을 원한다.
그래서 3년차 내에 히트 곡을 내지 못하면 그 이후부터는 아무리 노래가 좋아도 그룹의 신선도에서 밀리기 때문에 반등이 점점 더 어려워지는 것이다.
회사 입장에서도 유통기한이 점점 줄어드는 그룹에 투자를 할 바에는 그 돈으로 신인을 키우는 게 낫기 때문에 투자도 점점 줄어들 수밖에 없다.
예전에는 멤버 중 한 명이 예능이나 연기 등을 통해서 인지도를 높이면 팀도 같이 살아나는 경우도 종종 있었지만, 요즘에는 워낙에 즐길만한 콘텐츠가 많아서 그런지 그쪽으로 풀리는 케이스도 적어졌다. 물론 그런 운빨조차도 후속으로 나오는 노래가 좋아야 가능한 거고.
안무를 마친 아이들이 다시 일렬로 서서 내 평가를 기다린다.
내가 해줄 수 있는 칭찬은 이것뿐이었다.
“노래 좋다. 되게 상큼한데?”
“감사합니다!”
입에 발린 칭찬을 하면서도, 나는 마음속으로 계속 아쉽다는 생각만 하고 있었다.
내가 처음으로 입덕다운 입덕을 한 걸그룹이 하늘이고, 녀석의 아우라가 그리 나쁘지는 않아서 안타까운 마음이 더 큰 것 같다.
그런 내 마음을 하늘이 알아준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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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미슈12’와 관련된 미션지가 도착했습니다. 확인 유무는 자유이고, 실패에 대한 패널티도 없습니다. 5초 안에 선택을 하지 않으면 자동으로 NO로 간주되어 미션 창이 닫힙니다. 확인하시겠습니까?
[YES] or [N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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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야.
보라색 아우라가 아닌 일반 걸그룹을 대상으로는 처음 받아보는 미션이었다.
뭐, 실패에 대한 패널티가 없다고 하면 당연히 질러야지.
“못 먹어도 고.”
무의식중에 혼잣말을 흘린 나는 1호기 노서나의 가슴과 일직선상에 떠 있는 YES 아이콘을 터치했다.
아이들은 내가 자신들 중 누군가를 지목한 건 줄 알았는지 긴장된 표정으로 그 인근에 있는 멤버를 쳐다봤고, 내 앞에는 미션창과 그에 대한 보상 목록이 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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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그룹 제작자이자 스타킹 매니아인 당신. YH엔터테인먼트 소속 가수 외의 그룹을 히트시켜 명성을 높일 기회가 왔습니다.
★프라미슈12 멤버가 신었던 스타킹으로 음경을 감싸고 자위를 하여 스타킹 위에 사정을 하게 되면, 성공한 멤버 수(스타킹 수)에 따라 팀의 인기 상승을 도와주는 꿀팁을 알려드립니다.
★일주일 내에 12명 스타킹에 모두 사정을 성공할 시에는 음원 및 공중파 음악방송 1위를 도와주는 다이아 꿀팁을 알려드립니다.
★물론 프라미슈12가 잘 됐을 경우, 그 공은 모두 김윤호 프로듀서에게 돌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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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흐흐흐흫흐흐흨킄끅끅끅! 아, 대박이다 진짜.”
음원, 음방 1위가 뉘집 개 이름도 아니고, 아이들의 인생이 바뀌는 건데 그냥 미친 척 한 번 하고 애들한테 스타킹 좀 달라고 부탁하면 되는 거 아닌가?
얘네가 잘된다고 해서 내가 피해를 보는 것도 아니고, 내 커리어에도 도움이 된다는데 미친놈 한 번 되는 거지 뭐.
스타킹 자위가 아니라 애들 똥도 먹을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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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 스타킹을 직접적으로 요구하면 무효 처리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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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태창 너어는 진짜 존나 나빴다.
< 프라미슈12 떡상 찬스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