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80화.이거 란이 아닌데······? (183/371)

< 이거 란이 아닌데······? >

지선경과는 정말 밤새도록 했다.

8시간이라는 러닝타임에 비해 사정횟수는 많지 않았지만, 한 타임 한 타임을 보약 달이듯이 정성들여서 오래 했다.

모든 것이 끝나고 나서야 안 사실인데, 알고 보니 나는 처음부터 끝까지 그녀에게 조교를 당한 것이었다. 아프다고 그만하라고 한 것부터, 그녀의 고상한 평상시 모습과 달리 욕을 했던 것까지, 모든 것이 내 교미력을 끌어내기 위한 봊선이었다.

또 한 가지 놀라운 사실은 나는 스킬 풀로 빨아가면서 총력전을 기울인 반면, 그녀는 끝까지 스킬 하나 안 쓴 맨 몸으로 내 공격을 받아냈다는 것이다.

그 흔한 체력 스킬 하나 안 쓰고 말이다.

그러면서도 자기는 하는 내내 스킬을 썼다면서 애교스럽게 덧붙였다.

“여자가 남자한테 쓸 수 있는 최고의 스킬을 썼는데?”

“뭔데요?”

“칭찬.”

“아···.”

지당하신 말씀.

그녀는 다리를 양 옆으로 찢어 스트레칭하면서 실수를 다독여주는 다정한 직장 상사처럼 말을 이었다.

“오늘 고생 많았어요. 그 아이 문제는 걱정하지 말고 계속 진행해요.”

란이 얘기였다.

“쓰리에스는 조만간 자기들 발등에 불똥 떨어진 거 치우느라 정신없을 거야. 어쩌면 우리나라 엔터 역사에 한 획을 그은 회사가 무너져 내리는 모습까지 볼 수 있을 거고.”

“아··· 그렇게까지는 안 해주셔도 되는데···. 그냥 저희한테 태클만 안 걸면 돼요.”

“으응, 그동안 그 회사가 불안정한 뼈대 위에 쌓은 업보가 무너지는 것뿐이에요. 나라를 쥐고 뒤흔들던 대통령도 쇠고랑 차는 판국인데, 고작 엔터테인먼트 대표가 권력이 천년만년 갈 거라고 생각하고 너무 날뛰었지.”

대체 이 여자는 어느 선까지 연결이 돼있는 건지 문득 궁금해졌다.

지금까지 했던 말들을 토대로 추측해보면 특정 정당이나 이념, 계파와는 무관하게 중립국인 스위스 같다는 느낌이었다.

아니면 피아 상관없이 모두의 역린을 알고 있어서 아무도 함부로 대하지 못하는 이면세계의 실세라든지.

“그래도 란이는 입단속은 좀 해야겠더라. 너무 기죽을 것까지는 없는데 그렇다고 굳이 긁어 부스럼을 만들 필요도 없잖아.”

“이번에는 자기도 많이 반성하고 있더라고요.”

“몇 살이지?”

“스물한 살이요.”

“한창 혈기왕성할 나이네. 개인적으로는 그런 스타일 마음에 들어요. 남 눈치 안 보고 자기 삶을 살잖아.”

“너무 마이웨이라서···.”

“그래서 자기를 만난 거 아닐까? 옆에서 잘 컨트롤하고 눌러주라고.”

“그런 애들이 한두 명이 아니라서···.”

“흐흐흐흥, 꼭 보모 같네. 나도 나름 대중음악계에 몸담고 있는 음원사이트 대표로서, 김윤호 대표님이 이번에는 어떤 그룹을 만들지 기대돼요.”

“저도요.”

그 놈들이 어떤 모습으로 완성되어 대중 앞에 나설지 누구보다 궁금한 게 나다.

스트레칭을 마친 지선경은 호텔 가운으로 근사한 몸을 가리며 란이 문제는 걱정하지 말라고 한 번 더 강조했다.

조만간 쓰리에스와 관련된 대형 스캔들이 터질 텐데, 그걸로 란이가 상대적 수혜를 입을 것이라고 했다. 그 정확한 내용까지는 얘기해주지 않았다. 그때 가서 직접 확인해 보라는 뜻 같았다.

모르긴 몰라도 현용수의 세컨이라는 여자가 쥐고 있는 정보 중에 직격탄이 될 만한 뭔가가 있는 것 같다. 단순히 인터넷에서 떠도는 쓰리에스와 이전 정부의 유착설 그 이상의 무엇이.

“준비하라고 했던 옷 있죠? 예, 지금 올려 보내 주시면 돼요.”

지선경이 프론트에 전화를 걸었고 잠시 뒤 호텔 직원이 수트케이스를 들고 왔다.

내 옷이라고 한다.

셔츠 단추가 뜯어져서 코트를 잠그고 가야겠다고 생각했었는데, 지선경은 셔츠는 물론이고 콤비 수트와 양말, 구두까지 새 걸로 준비를 해뒀다.

“아, 그냥 셔츠만 입을 게요.”

“내 징크스 같은 거니까 부탁 하나 들어주는 셈 치고 그냥 입어줘. 나랑 외박한 남자가 똑같은 옷 입고 나가면 하루 일진이 사납더라고. 입고 온 옷은 그냥 놔둬. 세탁해서 회사로 보내줄게.”

그렇다고 한다.

이렇게까지 말했는데 거절하는 것도 예의가 아닐 것 같아서 그냥 입기로 했다.

기본 블랙 수트였고, 체크무늬 와이셔츠 손목에는 내 영문 이름이 자수돼 있었다.

옷을 입으면서 자연스럽게 브랜드 텍을 보게 됐는데 셔츠와 수트 모두 세계 3대 수트 브랜드 중 하나인 ‘키톤(Kiton)’이었다.

워···.

눈썰미가 좋은 건지 아니면 옷 자체의 재질과 핏감이 좋아서 그런 건지, 내가 직접 맞춰서 주문이라도 한 것처럼 몸에 짝 달라붙었다.

자세와 마음가짐도 괜히 긴장되고 올곧아진다.

“역시 잘 어울리네. 사이즈는 딱 맞지?”

“예. 제가 가서 맞춰도 이거보다 딱 맞지는 않을 거 같은데요.”

“흐흐흥, 스킬로 자기 신체 치수를 스캔했거든.”

“아··· 그런 것도 있구나···.”

“미리 허락 안 맡아서 미안.”

“괜찮아요.”

“단추 하나는 풀어도 되겠다.”

그녀는 제일 위에 채워진 셔츠 단추를 직접 풀어주면서 특유의 매력적인 미소를 지었다.

“오늘 너무 좋았어. 그리고 자기 진짜 멋있어. 책임감도 좋고, 섹스도 잘하고.”

“감사합니다. 대표님도 매력 있어요. 섹스도 잘하시고.”

“방송 보니까 나이에 비해서 연애 경험이 그리 많지 않다고 하더니, 말하는 거 보면 아주 선수야.”

“그럴 리가요···.”

“어려운 일 있으면 또 부탁해. 언제라도 환영이야.”

“그 조건이 또 섹스라면 어려운 일을 만들어야겠는데요.”

“이봐, 이봐. 이거 완전 선수라니까. 누나를 아주 들었다 놨다 하네.”

헤어지는 순간까지도 남자의 기를 팍팍 살려주는 그녀였다.

그냥 알고 지내던 지선경 대표와 지금의 그녀는 완전 다른 사람이었다.

띠 동갑을 훌쩍 넘는 나이 차이가 전혀 느껴지지 않는 여성미와 매력.

섹보창 스킬과 아이템으로 유지 중일 거라 예상되는 30대 수준의 미모는 성형이나 시술로는 절대 범접할 수 없는 자연미가 있었고, 남자가 생각하는 연상의 최대 장점인 특유의 포용력과 농익은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시니컬함까지 갖췄다.

사람 자체가 워낙 매력적이다 보니 재력은 눈에 들어오지도 않는다.

괜히 우리나라 최고의 로비스트 출신이라 불리는 게 아니다.

그냥 사람 자체가 크고 넓고 깊다.

“빨리 가봐. 나 또 하고 싶어질 거 같으니까.”

그녀는 내 어깨에 묻어 있던 작은 실밥을 손으로 톡톡 날린 뒤 쿨하게 돌아섰다.

“다음에 뵙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응, 다음에 만날 때는 누나라고 불러주면 좋겠다.”

“예, 누나.”

“착하네.”

신발을 신고 문을 나서려는데 그녀가 마지막으로 묻는다.

“자기는 인생의 최종 꿈이 뭐야?”

“예쁘고 매력 있고 코드 잘 맞는 여자랑 결혼해서 자식 낳고 잘 사는 거요.”

“제일 어려운 거네.”

“그러니까요. 이미 망한 거 같아요. 그래서 바꾸려고요.”

“뭘로?”

“생각해봐야죠.”

“정해지면 말해줘. 궁금하다.”

“예.”

이번에는 내가 물었다.

“누나 꿈은 뭐예요?”

“잘 생기고 매력 있고 코드 잘 맞는 남자들이랑 평생 동안 섹스하는 거. 이왕이면 절정에 올랐을 때 너무 좋아서 심장마비로 죽었으면 좋겠어.”

굉장하네···.

호텔에서 나온 나는 로비 앞에 대기 중이던 내 차를 타고 애들 숙소로 향했다.

강남 패키지의 효력이 아직 활활 타오르고 있으니, 이 기세를 몰아 의무사정까지 마치고 바로 출근을 할 생각이다.

***

―찌걱

조심스럽게 문을 열고 란이의 방으로 들어왔다.

커튼 틈으로 푸른빛 여명이 살짝 비치는 창밖은 아직 어두컴컴했다.

이불을 목까지 덮은 란이는 벽을 향한 채 옆으로 누워서 자고 있었다.

나는 선물 받은 새 옷이 구겨질까, 옷을 홀딱 벗고 녀석의 등 뒤로 파고들었다.

샤워를 하고 잤는지 이불 속에서 향긋한 바디 용품 냄새가 올라왔다.

몸을 밀착시키고 티셔츠 안에 손을 넣었다.

응?

란이는 가슴이 처질까봐 웬만하면 숙소에서도 브래지어를 하고 있는 편이다. 하지만 잘 때만큼은 풀고 자는데 웬일로 하고 있었다.

바지까지 입고 있는 걸 보니 침대 위에서 뒹굴거리다가 그냥 잠이 들어버린 것 같다.

―톡

후크를 풀고 가슴을 부드럽게 주물렀다.

손이 차가운 편이라서 한기에 반응한 유두가 바로 빨딱 섰다. 그 귀여운 알맹이를 살짝 쥐고 조곤조곤 압력을 주면서 돌리자, 아랫배가 잔잔하게 경련을 일으키면서 귀여운 콧신음이 흘러나온다.

“흐으응···.”

생리를 할 때가 됐나.

가슴이 상당히 부풀어 있다.

반면 유방의 전체적인 촉감은 더 말랑말랑해졌고, 유두는 평소보다 매끄럽고 작아져 있었다. 살결도 많이 부드러워졌······ 잠깐.

이거 란이 아닌데······?

야야야, 이거 일 났다!

라희가 이 방에서 자고 있었나보다.

다른 애들이 숙소에 합류하는 것 때문에 요즘 한창 방 구조를 바꾸고 있다더니 둘이서 방을 바꾼 모양이다.

리야의 앙칼진 목소리가 환청으로 들렸다.

‘케이, 와이, 에이치, 공 팔 삼 공! 견찰서 가고 시퍼! 한두 번이 아니야!’

뭐임?

이게 대체 뭐임!

어쩐지 브래지어와 바지를 입고 있을 때부터 이상하다 싶더라니.

그제야 눈에 들어온 티셔츠는 라희의 것이 맞았다.

나는 우리 어린양이 제발 잠에서 깨지 않았기를 바라며, 엉덩이를 의도적으로 찌르고 있던 흉물을 뒤로 물렀다.

그나마 다행이었다.

다짜고짜 삽입부터 했으면 진짜 큰일 날 뻔했다.

침대 밑으로 액체처럼 흘러내린 나는 옷도 챙기지 않고 바로 방을 벗어났다.

“후우···.” 

몸이 그새 식은땀으로 축축하게 젖었다.

망란이 이 놈은 방을 바꿨으면 바꿨다고 톡을 해야지.

―찌걱

나는 놀란 마음을 진정시키며 라희의 방문을 열었다.

그리고 더 놀랐다.

글쎄 란이와 라희가 한 침대에서 누워 있는 것이 아닌가아!

가까이 가서 확인을 해봤는데 틀림없는 란이와 라희였다.

그럼 저 방에 있는 건 누구냐아아앗!

아··· 그럼 미오지 뭐.

깜짝 놀랐네.

아니, 잠깐!

미오도 오늘 이삿짐 정리한다고 집에 간다고 했는데에에!

지유는 당연히 은빛주니어 때문에 올 리가 없고··· 그럼 누구야아아앗!

식겁한 나는 바로 란이의 방으로 들어가서 신원미상인의 얼굴을 확인했다.

키, 키이이이잌!

규율이였다.

***

“그렇게 좋냐?”

“뭐가?”

“나랑 떨어져서 살게 되니까 좋냐고.”

며칠 좀 잠잠하나 싶더니, 짐 정리를 하는 규율에게 이모가 또 틱틱거리며 말을 건다.

숙소 얘기가 나올 때부터 이정아는 반대를 했었다.

규율은 이모의 마음을 십분 이해했다. 살면서 처음으로 떨어지게 되어 섭섭한 것이다.

그것은 규율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이모의 어른스럽지 못한 태도가 새삼 짜증이 났던 규율은 그만 마음에도 없는 말을 해버렸다.

“어, 좋아.”

“그렇게 좋으면 진작에 나가 살지 그랬어.”

“아, 왜 또 그래. 이왕 가기로 한 거 그냥 좋게 보내주면 안 돼?”

엄마와 딸은 다툼과 화해가 일상적이라고 한다.

모녀 지간이나 다름없는 두 사람도 마찬가지였다.

이러다가도 내일이 되면 또 언제 그랬냐는 듯 하하호호 거리겠지만, 갈등이 시작되는 이 순간만큼은 평생 안 볼 사람처럼 싸우게 된다.

몇 차례 격하게 주고받던 감정싸움은 결국 규율이가 집을 나와 버리는 것으로 일단락이 됐다.

집을 나온 규율이가 갈 곳은 네 군데였다.

란&라희 숙소, 미오네 집, 지유네 집, 회사 연습실.

일단 아기가 있는 지유네 집은 빼고, 성정체성에 혼란을 겪고 있는 미오네 집도 빼고, 회사는 너무 청승맞아 보이고.

결국 규율의 선택은 숙수였다. 어차피 며칠 뒤면 들어갈 곳이니 명분도 있다.

규율은 라희에게 전화를 걸어 구경도 할 겸 하룻밤 잔다고 연락을 했다.

그래도 리더라고 방을 하나 내어주었다.

버스킹 막말 사건 때문에 풀이 완전히 죽은 란이는 먼저 라희 방으로 들어갔고, 라희와 규율은 음악을 주제로 이야기꽃을 피우다가 2시가 넘어서야 마무리를 지었다.

얼마쯤 지났을까.

대뜸 브래지어 훅을 푸는 차가운 감촉에 규율은 눈을 떴다. 그 손은 이윽고 앞으로 넘어와서 가슴과 꼭지를 애무했다.

생전 처음 느껴보는 사내의 손길.

본인의 손으로 자극하던 자위와는 결 자체가 달랐다.

아무런 단서도 없었지만, 규율은 그것이 김윤호의 손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어찌나 감미롭고 짜릿하던지 몸이 저절로 떨리면서 신음이 새어나갔다.

“흐으응···.”

딱딱하면서도 보드라운 무언가가 엉덩이 사이를 쿡쿡 찌른다.

고, 고추다······.

처음에는 꿈인 줄 알았다.

요즘 이틀 꼴로 한 번씩 김윤호 대표가 꿈에 나오기 때문에 이번 역시 그럴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했다.

규율은 까치발을 든 알몸의 김윤호가 방문을 닫고 밖으로 나가고 나서야 비로소 현실을 자각했다.

뭥미?

이게 대체 뭥미!

가슴과 엉덩이에 남아있는 그의 느낌이 몸을 짜릿짜릿하게 만든다.

규율은 거의 버릇처럼 팬티 속에 손을 넣었다.

뭐가 어떻게 된 건지는 모르겠다만, 일단 한번 하고 보자는 마인드였다.

< 이거 란이 아닌데······?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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