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74화.이 맛에 걸그룹 키우는 거지 (177/371)

< 이 맛에 걸그룹 키우는 거지 >

지선경과 통화를 끝낸 뒤 회의를 마치고 대표실로 돌아왔다.

아이돌 커뮤니티의 반응을 살피고 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립밤의 담당 매니저 김상인 팀장에게 전화가 왔다.

“예, 팀장님.”

―저희 지금 캐주얼스타 녹화 마치고 회사 들어가는 길인데, 혹시 회사에 계세요?

“있긴 있는데 지금 바로 나가봐야 할 거 같아요. 왜요?”

―아, 다른 게 아니라, 립밤 다음 달 청야대 축제 취소됐던데 무슨 일이에요? 행사 담당자한테 그게 뭔 말이냐고 따졌더니 그냥 대표님한테 이유 물어보면 알거라고 하던데.

“지금 립밤 멤버들 같이 있는 거죠?”

―예. 올림픽대로예요.

에헤이, 이 양반은 다 좋은데 너무 비밀이 없단 말이지.

이런 건 좀 애들 없는데서 통화하면 어디가 덧나나.

“멤버들 걱정하니까 팀장님만 알고 계세요.”

―예.

“란이 때문에 쓰리에스에서 작업 들어왔어요.”

―에이 그 양아치 새끼들, 하는 짓거리하고는. 하여튼 있는 것들이 더 하다니까. 어쩔 거예요?

입이 싼 양반이라서 다 얘기해줄 수는 없다.

나는 일단 그렇게 알고 있으라고만 얘기하고 통화를 마쳤다.

그 사이에 리야에게 톡이 와 있었다.

알댕이 [뮤노야, 또 당했느냐]

리야 귀에도 얘기가 들어갔구나.

녀석은 계속 채팅창을 확인하고 있었는지 내가 읽자마자 바로 전화가 왔다.

“어, 리야쓰.”

―으이그, 으이그!

“왜.”

―현용수라는 잔챙쓰한테 털리는 중이라며.

“뭐··· 일단은 그런 상황이야.”

―어서 알리야한테 도와달라고 명령해봐.

“내가 알아서 할 테니까 걱정하지 마.”

―또 또 허세 부린다, 허세!

“허세 아니야. 바쁘니까 끊는···.”

―그럼 알리야가 알아서 처리할까?

“내가 진짜 힘들어지면 도와달라고 명령할 테니까 쫌만 기다리고 있어봐.”

―싫은데.

“알댕이 기다려.”

―멍멍!

“옳지, 잘했어. 다른 애들한테도 걱정하지 말라고 해. 나 지금 바빠서 먼저 끊는다.”

―뮨댕쓰 타임!

“아 왜.”

―페니스 빨아달라고 명령해봐.

“에잇, 끊어 이 똥강아지야.”

―칫···.

전화를 끊고 보니 리야 외에도 여기저기서 안부 톡이 많이 왔다.

이미 방송계 쪽에도 소문이 퍼진 모양이었다.

엄승미 작가님 [쓰리에스에서 음방 담당 작가들한테 오빠네 보이콧 하라는 식으로 연락 왔던데 이게 뭔 일이래요ㅜㅜ 혹시 란이랑 에이텐션 일 때문에 그런 거예요?]

정아윤 에디터님 [오빠 혹시라도 제가 도울 일 있으면 연락주세요]

제희 [오빠 괜찮은 거지?? 걱정되니까 시간 날 때 연락 좀 해주세요]

이야아앗, 나랑 섹스했던 여자들이 가장 먼저 연락이 왔다.

대류, 떡정이 최고다.

그 외에도 알음알음 알고 지내던 관계자들에게도 톡이 왔는데 답장을 할 틈이 없어서 읽지는 않았다.

나는 일단 읽은 톡들에 대해서만 지금 수습 중이니 나중에 연락하겠다고 간단히 답장을 보내주었다. 그리고 지선경을 만나러 가기 위해 대표실을 나섰다.

영락없는 남창이다, 남창···.

질컥, 하고 문을 열었는데.

“으갹!”

문고리에 란이가 딸려 들어왔다.

앞으로 고꾸라지려던 녀석의 팔을 붙잡아 중심을 잡아줬다. 방금 전까지 안무 연습을 하다가 내려온 건지, 팔소매가 뜨끈뜨끈하게 축축했다.

소매뿐만이 아니라, 배꼽이 보이는 헐렁하고 얇은 하얀색 크롭티를 입었는데 가슴께까지 땀으로 젖어서 검정색 브래지어가 고스란히 비치고 있었다.

나는 평소처럼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타박했다.

“제발 노크 좀 해라, 노크.”

“아, 노크하려고 했는데 갑자기 문이 열린 거예요.”

“왜 왔어.”

“아··· 퇴근하세요?”

“어, 해야지. 밖에서 업무 미팅 있어.”

“아···.”

꼴을 보아하니 죄송하다는 말을 하러 온 것 같다. 그런데 애가 어찌나 풀이 죽어 있던지 그 말을 하는 것조차 송구스러워보였다. 차마 입술을 떼지 못하고 쭈뼛거린다.

나는 말하지 않아도 다 안다는 투로 드라마 속 남주처럼 녀석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하지만 머릿속까지 땀으로 흥건해서 나도 모르게 이맛살을 찌푸리며 짜증을 부렸다.

“아, 뭐야. 땀이 왜 이렇게 많이 났어, 찝찝하게!”

“아잇, 연습하다 왔으니까 그러죠···.”

“그래, 잘했네. 너는 그렇게 연습이나 열심히 하고 있으면 되는 거야. 그게 니가 할 일이야. 알았어, 몰랐어.”

녀석은 대답을 못하고 고개를 푹 숙였다.

콧잔등이 씰룩씰룩 거리는 걸 보니 울음이 터지려는 것 같았다.

나는 녀석의 얼굴 밑으로 고개를 삐딱하게 숙여서 킥킥 거리며 놀려댔다.

“우냐? 우냐?”

“히잉···.”

“왜 울어. 연습하기 싫어?”

“흐잉, 앞으로 다시는 안 그럴게요.”

“야, 나 아무 말도 안 했어.”

“그냥 차라리 화를 내요.”

“왜 화를 내. 니가 뭘 잘못했다고··· 아, 잘못하긴 했구나. 근데 괜찮아. 앞으로 안 그러면 되지.”

“흐이이잉.”

녀석은 내게 안기면서 즙을 좔좔 짰다.

“현동 쌤한테 얘기 다 들었어요. 저 때문에 회사 힘들어졌다면서요.”

아 놔, 김현동 그 인간은 왜 또 애한테 쓸데없는 말을 해서···.

나는 땀에 절어 찝찝한 머리카락을 다시 한 번 쓰다듬어주면서 란이를 안심시켰다.

“내가 해결할 수 있으니까 그만 울어.”

“어떻게 해결해요.”

“내가 너한테 업무 보고까지 해야 되냐? 썩 떨어져, 옷에 콧물 묻을라.”

“치이··· 안 묻게 잘 했어요.”

내게서 떨어진 녀석이 입을 삐죽거리며 콧물을 훌쩍인다.

나는 그런 녀석을 안쓰럽게 쳐다보면서 의외로 우는 얼굴이 예쁘다고 생각했다.

“망란이 너 나중에 연기해도 되겠다.”

“왜요.”

“우는 표정이 괜찮아서.”

“뭐야···.”

“이쁘다고.”

“우는 얼굴 이뻐봤자 뭐해요. 마약난교돌 주제에···.”

“댓글 봤냐?”

녀석은 깨작깨작 고개를 끄덕였다.

“에휴, 그걸 왜 봐. 너는 댓글 보지 말라고 했잖아.”

“그래도 궁금하니까···.”

“그리고 연습 중에 누가 핸드폰 하래. 핸드폰 안 냈어?”

“쉬는 시간에 연습실 컴으로 잠깐 본 거예요.”

“쯥··· 회사 직원들이랑 쌤들한테 미안해 안 미안해.”

“미안하죠···.”

“멤버들한테도 미안하고?”

“예···.”

“그럼 가서 연습해. 그게 니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사과야.”

“알았어요.”

“가봐.”

내가 손가락을 휙휙 거리며 말하자 여전히 눈물이 그렁그렁 맺혀있는 눈망울로 나를 올려다본다. 그러고는 눈을 꿈뻑거리며 말했다.

“오늘따라 더 멋있다···.”

“하아··· 그래, 고맙다.”

“······.”

“······.”

이 인간, 뻔히 쳐다보는 것이 대뜸 키스를 할 것 같다.

나는 한 발 뒤로 물러서며 미리 철벽을 쳤다.

“할 말 끝났으면 올라가. 나도 빨리 가봐야 돼.”

그러자 수줍은 듯 시선을 떨구며 웅얼거린다.

“···지금은 안 되겠죠···?”

“뭐가.”

“세, 섹스······?”

“야 이 미친놈아.”

“저 물이 너무 많이 나와서 팬티 다 젖었어요···. 1분 만에 끝낼 수 있을 거 같은데···.”

“너네는 진짜 누구 하나 할 거 없이 한 결 같이 미친 거 같아. 네 명 다 제대로 뭉쳤어. 아주 천생연분이야.”

“왜 네 명이에요, 다섯 명이지.”

“규율이는 빼야지.”

“늬예늬예.”

망란이 이 놈, 자꾸 규율이 얘기만 나오면 삐딱해진다.

마치 규율이한테 은밀한 비밀이 있는데, 그것을 자기 혼자만 알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나는 대놓고 말했다.

“야, 티를 내지 말든가, 아니면 그냥 시원하게 말하든가.”

“제가 말 안 해도 어차피 알게 될 텐데요 뭐.”

“그럼 그때까지는 내 앞에서 티를 내지 마. 되게 치사해 보여.”

“치··· 알았어요.”

“나 이제 진짜 가야 돼.”

“앗, 저 1분이면 된다니까요. 뒤치기로 빨리 끝내면 되는데.”

“웬만하면 회사에서는 좀 참아라.”

녀석이 한 번 발정이 걸리면 못 참는 걸 알면서도 버릇처럼 그렇게 말했다.

나 역시 이렇게 말해 놓고서는 못 이기는 척 바지를 벗을 테고.

하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알았어요. 우선 참아볼 테니까 새벽에라도 와서 해주세요.”

“어, 진짜?”

“네.”

뭐야, 이놈.

발정이 걸린 란이가 섹스를 참는다고?

그건 마치 첫 휴가 나온 군인이 아무도 없는 자기 방에서 야동을 켠 뒤 바지까지 내려놓고서는 딸딸이를 치지 않는 정도의 엄청난 절제력이었다.

“그 대신 대표님 방에서 딸딸이 한 번만 칠 게요.”

“어, 어, 두 번 쳐도 돼.”

“지금 바로 가시는 거예요?”

“응.”

“차 가지고 가세요?”

내가 그렇다고 대답하자 란이가 먼저 복도 쪽으로 나가며 말했다.

“그럼 차에서 잠깐만 기다리세요.”

“얼마나.”

“5분? 아니, 3분?”

“알았어. 회사 차 말고 내 차 타고 갈 거야.”

“옛.”

나한테 뭐 줄 것이 있나 생각했다.

나는 먼저 주차장으로 내려가 기다렸고, 잠시 뒤 란이가 출입구에 모습을 드러냈다. 다른 네 명의 녀석들과 함께 말이다.

“아, 뭐야···.”

창문을 내리고 녀석들이 뭔 짓을 하나 지켜봤다.

다섯 녀석들이 차 앞에 일렬로 쪼르르 선다.

미오, 지유, 란, 라희, 규율 순서였다.

그러고는 귀여운 동작의 군무를 하며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대표님, 힘내세요~ 우리가 있잖아요~”

“차하···.”

얘들이 사람 헛웃음 터지게 하네. 이런 건 또 언제 맞춰가지고···.

맏언니 규율이의 빨개진 볼과 차마 내 얼굴을 쳐다보지 못하고 땅만 쳐다보는 시선이 관전 포인트였다. 여기에 내려오기 전까지 한다, 못 한다, 실랑이를 벌이다가 분위기 상 어쩔 수 없이 한다는 기색이 역력했다. 그래서 더 귀여웠다.

비단 규율이 뿐만이 아니다. 나머지 네 명도 이런 쪽으로는 영 애교가 없다.

그런 녀석들이 연습실 구석에 모여서 이걸 연습했다고 생각하니 피식 웃음이 새어나온다.

“대표님 힘내세요~ 우리가 있어요! 사랑합니다!”

머리 위로 왕 하트를 그리면서 노래가 끝났다.

조금 오글거리기는 해도, 안 그럴 것 같은 애들이 이런 깜찍한 서프라이즈를 해주니 나름의 감동은 있었다.

업키걸 애들이라면 몰라도 얘네들한테 이런 모습이 있을 줄은 몰랐다.

이런 맛에 걸그룹 제작하는 거지.

지들도 하고 나서 쪽팔린 지 쿡쿡쿡쿡 웃는다.

나는 녀석들 옆으로 차를 빼면서 화답해주었다.

“그래, 고맙다. 그냥 하는 말이 아니라 진짜 힘난다.”

“다녀오세요.”

“조심히 다녀오세요.”

창문 밖으로 손을 흔들어준 나는 백미러에서 멀어지는 녀석들을 보며 씁쓸하게 중얼거렸다.

“그래, 힘내서 몸 팔고 올게···.”

***

지선경과의 약속장소는 연희호텔이었다.

그냥 자기가 있는 호텔로 오란다.

사전작업이고 뭐고 그냥 만나자마자 섹스나 하자는 뜻이었다.

이게 여자다.

차가 호텔 초입에 들어설 때쯤 전화를 걸자 로비 앞에 사람이 기다리고 있으니 차 넘버만 알려달라고 한다. 알려줬다.

입구 앞으로 차가 들어서자 치마 정장에 코트를 입은 앳된 여자가 자기 쪽으로 오라며 손을 흔든다.

“대표님, 여기여, 여기!”

얼핏 봐도 호감형의 귀여운 얼굴이었다.

차에서 내리자 남자 직원이 깍듯하게 인사하며 발렛을 맡아주었다.

여자 애는 자기가 좋아하는 아이돌을 본 소녀 팬처럼 상기된 표정으로 내게 인사를 건넸다.

“안녕하세여! 지선경 대표님 비서 나문정이라고 합니다.”

“아아, 예, 안녕하세요.”

“죄송한데 사진 한 장만 찍어도 될까여? 저 진짜 너무 팬이에여!”

“예, 그러세요.”

“하앙!”

카와이하다, 카와이해.

윤기가 흐르는 새까만 단발머리가 너무나도 잘 어울리는 카와이 걸이었다. 키는 조금 작은 편인데 몸매는 은근 육감적인 것이 전형적인 베이글 타입이었다.

나이는 어려 보이는데 지선경 대표의 비서를 할 정도면 능력이 꽤 좋나보다.

“한 장 더여!”

“예.”

“팔짱 껴도 되져?”

“벌써 끼셨는데···.”

“아항! 죄송합니다!”

은빛이 과인가···.

뭐 팬이라고 하니 감사하긴 감사한데, 외국인들도 많은 일류 호텔 로비에서 너무 호들갑을 떨어대는 바람에 부끄러움은 온전히 내 몫이 되었다.

나는 나문정의 안내를 받아 엘리베이터에 올랐다.

“그냥 하는 말이 아니라 저 진짜 팬이에여. 제가 대표님 보고 싶다고 하도 노래를 부르니까 선경 언니가 저보고 대표님 에스코트 하라고 한 거예여. 아이고, 선경 언니가 아니라 지선경 대표님이지, 참.”

말투도 은근히 구수한 것이 진짜 은빛이랑 비슷한 느낌이다.

하지만 가슴은 압도적인 씨바의 패배.

내가 교양 없이 여자 몸이나 흘긋거리는 사람은 아닌데, 뭐에 씌인 듯이, 엘리베이터 문에 비치는 나문정의 가슴을 흘긋 거리고 있었다.

“듣던 대로 진짜 실물이 더 빛이 나여.”

“아이고··· 감사합니다.”

“아니에여, 제가 더 감사해여.”

그녀는 방 앞에 도착할 때까지 계속 대화거리를 던져주면서 한 번도 나를 지루하게 만들지 않았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나에게 사심이 있다는 느낌은 전혀 들지 않았다.

말 그대로 팬이 연예인을 대하는 것처럼 좋아하는 것이다.

나문정은 지선경의 방문에 카드키를 대고 직접 문을 열어줬다.

―질크덕!

“즐거운 시간 보내세여.”

“예, 감사합니다.”

방 안으로 들어서는 순간, 음경이 움찔 거리며 먼저 반응을 보였다.

크읏··· 이게 퍽커의 실질적 리더인 지선경의 실제 섹투력이구나···.

이제껏 느껴본 적 없던 압도적인 위압, 아니 질압감이었다.

“아, 왔어요?”

< 이 맛에 걸그룹 키우는 거지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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