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저랑 찐하게 한번 하죠? >
지유의 틱이 시작된 건 임신을 하고 난 뒤, 부모님 및 소속사와 갈등이 생길 때부터였다. 그러니 지유 부모님도 증상을 어느 정도는 알고 계셨다.
하지만 그때는 욕설 틱이었고 음어를 들은 건 이번이 처음이라서 적잖이 당황하신 표정이었다.
내가 지유를 만난 지는 얼마 안 되지만 어쨌든 지금은 내가 보호자다. 이것 봐라. 은빛주니어도 자연스럽게 내가 안고 있지 않은가.
나는 두 분에게 그간의 증상과 전문의 상담 결과를 말씀드렸고, 안심을 시키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처음에 비하면 진짜 많이 좋아진 거예요. 심할 때는 한마디 할 때마다 증상이 나왔거든요.”
“아···.”
굳이 내가 발병 원인을 말하지 않아도, 지유의 틱이 과도한 스트레스로 인한 정신적인 문제라는 걸 두 분은 알고 계실 것이다.
아버님은 머리를 쓸어 넘기시며 착잡한 심경을 전하셨다.
“대표님한테 큰 신세를 졌습니다. 이거 부모가 돼서 면목이 없네요. 애가 이렇게 될 동안 저희는 뭘 했는지···. 무슨 수를 써서라도 찾았어야 했는데 당시에는 저희도 너무 화가 나고 경황이 없어서 제대로 된 판단을 내릴 수가 없었습니다.”
아버님은 본인의 잘못을 인정하고 또 한 번 통한의 눈물을 훔치셨다.
요나와 요나 아버님 때도 느꼈던 거지만 부모자식은 가장 가까우면서도 먼 사이인 것 같다.
그건 그거고.
은빛이가 지유의 틱을 따라하는 건 단순히 웃고 넘길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다.
지유 어머님은 당장 내일부터 손녀를 맡아 키우겠다고 하셨고, 은빛이가 이 집에 익숙해질 때까지는 지유가 함께 와서 시간을 보내기로 했다.
“할아버지 할머니한테 빠빠이 해드려야지.”
우리 집에 왔던 형네 가족이 돌아갈 때, 형이 조카를 안고 현관에서 항상 하던 말이었다. 목도 제대로 가누지 못하던 갓난아기 때부터 조기교육을 시킨다면서 말이다. 그 결과 또래 아이들에 비해 인사만큼은 빨리 배웠다고 한다.
“할아버지 할머니 안녕히 계세요, 빠빠이.”
내가 왜 지유 대신에 은빛주니어를 안고 이런 말을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은빛이는 내 말에 따라서 할머니 할아버지께 고사리 같은 손을 흔들어주었다.
집에 있는 내내 낯을 가려서 조금 섭섭하셨을 텐데, 느지막이 터진 손녀의 개인기에 두 분의 얼굴에는 뒤늦은 웃음꽃이 피었다.
“어이고, 지금까지 도도하게 계시더니 갈 때가 되니까 친한 척을 하시네. 그래, 은빛이도 잘 가세요.”
“허허허허, 은빛이 내일 또 와서 할머니, 할아버지랑 재밌게 놀자?”
눈치 없는 남편의 말에 어머님이 자신의 기구한 삶을 회한하시듯 씁쓸하게 중얼거리셨다.
“에휴, 누구 때문에 오십도 안 돼서 할머니 소리를 듣네.”
생각해보면 억울할 것 같긴 하다. 어머님은 나와 아홉 살 차이가 나는 마흔 일곱이었다.
반면 지유와 나의 나이 차이는 열여덟 살.
오히려 어머님 쪽이 내 또래인 것이다.
새삼 내 나이가 쑥스럽고 죄스럽게 느껴져서 나 혼자 얼굴이 빨개졌다.
지유 어머님, 아버님 죄송합니다.
제가 따님에게 몹쓸 짓을 해버렸습니다.
하지만 지유의 행복을 위해서는 그 방법 외에는 선택지가 없었으니 부디 용서해주세요.
***
지유와 은빛이를 집에 데려다주고 회사로 돌아왔다.
비상이 걸렸다.
란이의 성희롱 발언이 여전히 검색어 1위에 걸려있었고 그에 대한 어뷰징 기사가 암세포처럼 번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회사 직통 전화는 물론이고 직원들의 개인 전화에도 불이 붙었다.
나는 이미 업무용 폰을 꺼놓은 상태였다.
처음 기사를 확인했을 때만해도 란이보다는 쓰리에스와 에이텐션을 비난하는 댓글이 베플에 올라갔었는데 지금은 역전이 됐다.
―같이 즐길 때는 언제고 이제 와서 뒷통수 치는 거? 진짜 역겹네요^^
―같은 여자로서 쪽팔리니까 좀 닥치고 계셈ㅋㅋㅋ
―쒸,,,,뿔,,,,ㅎㅎ 나 때는 여자 연예인이 이런 말하면 사회에서 매장 당했는데.........!!!! 써글놈의 세상 진짜 많이 좋아졌다~~~~!! ㅎㅎㅎㅎ
―얘는 매력도 없고 내 주위 남자 애들 중에서도 좋아하는 애 못 봤는데 왜 계속 기어 나오지?? 이런 애들도 밀어주는 사람이 있나???
―듣보잡이 계속 기사에 오르내리면 뭐다?
―쓰리에스가 죽긴 많이 죽었나보다. 이런 애들이 깝치게 가만놔두고ㅋㅋ
베플도 베플이지만, 일단 댓글 자체에 란이를 까는 내용이 압도적으로 많아졌다. 현용수의 말이 뇌리를 스친다.
‘그냥 각자 방식대로 해봐요.’
언플 쪽으로는 도가 튼 회사다.
아무리 네티즌들이 영리해졌다고 해도 물량 앞에는 장사가 없다.
“쓰리에스에서 좌표 찍은 거 같은데요.”
염이 혀를 쯥 차며 말했다.
나는 현용수에게 전화가 온 것을 말해주었고, 회사 차원의 사과문을 작성해야 하는지 직원들과 논의를 했다.
“전술적으로 봤을 때, 이번 건 회사가 아니라 란이가 직접 사과하는 게 맞을 거 같아요.”
홍보팀 미정 씨의 의견이었고, 다들 동의하는 듯했다.
하지만 나는 아이들한테 짐을 지어주는 게 싫다.
공은 아이들에게 돌리고 과는 관리자가 짊어지는 게 이상적인 조직의 모습이 아닐까? 그리고 내 생각에는 이미지 마케팅 적인 측면에서도 란이보다는 내가 사과문을 올리는 게 좋을 것 같고.
“그냥 제가 할 게요. 란이보다는 제가 이미지가 좋잖아요.”
그때 내 개인 폰으로 연락이 왔다.
지선경이었다.
회의 중이라서 나중에 받아야 했지만, 왠지 란이 일 때문에 전화를 한 것 같다는 직감이 들었다.
직원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회의실 밖으로 나왔다.
“예, 여보세요.”
―지선경이에요.
“예, 대표님.”
―한창 바쁘실 텐데 통화 괜찮아요?
“예, 괜찮습니다.”
―지금 난리 났죠?
그녀는 역시나 다 알고 있다는 말투로 물었다.
목소리만 들었을 뿐인데, 위아래 고른 치열이 모두 드러난 그녀의 매력적인 미소가 그려졌다.
내가 원래 남들 앞에서 앓는 소리를 하는 스타일이 아닌데, 그녀 앞에서는 이상하게 약한 척이 하고 싶어진다.
“하아, 죽겠네요···.”
―흐흥, 혹시 현용수 대표랑 통화하셨어요?
“예, 어떻게 아셨어요?”
―여자의 느낌?
“하하하···.”
―농담이고요, 전매총 회장이 저희 회사에 공문을 보냈더라고요. 뭐, 일종의 지령이죠.
전매총 회장?
들어본 적 없는 이름이다.
“전매총? 그 분이 누구신데요?”
―크히힉.
내가 무슨 실수라도 했는지, 나이답지 않게 소녀 같은 실소를 터뜨린 지선경이 설명했다.
―사람 이름이 아니고요, 전국 매니지먼트 총 연합회요. 못 들어보셨어요?
“아아, 들어봤어요.”
전국 매니지먼트 총 연합회.
방송연예계 전반에 걸쳐 영향력을 행사하는 사람들로 이뤄진 사단법인인데, 나와 우리 회사에도 가입 권유가 들어왔었다.
그냥 전경련 같은 연예계 기득권층 모임이라고 보면 된다.
아마 대중에게 조금이라도 이름이 알려진 기획사들은 대부분 가입이 되어 있을 것이다.
그런 만큼 방송국에도 영향력을 과시하는데, 그들에게 찍힌 회사나 연예인들은 방송국에 압력을 넣어 출연을 제지하기도 한다.
거기에 불이익을 당한 대표적인 가수가 2인조 R&B 그룹 ‘더블하트’다.
KU엔터테인먼트의 6인조 보이그룹 ‘식스앤더시티’로 데뷔하고 큰 인기를 누리다가 계약조건이 불공정하다며 계약 해지 소송을 내고 탈퇴 했는데, 전매협에서 각 방송국에 공문을 보내 그들의 영구 출연 정지를 강요한 것이 알려져서 큰 파장을 일으켰었다.
KU의 대표가 전매협의 상임고문이라는 것도 그때 알려졌고, 더블하트는 KU에서 나온 이후로 음악방송은 물론이고 드라마나 예능에서도 볼 수 없게 되었다.
법원에서는 더블하트의 편을 들어줬는데도 말이다.
―거기 회장이 현용성 씨라고, 현용수 대표 친형이에요.
“아···.”
―음원 사이트랑 행사 업체 쪽을 중심으로 공문이 전달된 것 같더라고요. 아직 방송국까지는 안 간 것 같고요. 지선경은 음원사이트 매출 순위 3위를 달리고 있는 ‘논스톱 뮤직’의 대표다.
“뭐라던가요.”
―앞으로 YH엔터테인먼트 소속 가수들 노래는 이벤트랑 홍보 자제해 달래요.
추진력 대박이네.
나랑 통화 마친지 2시간도 안 됐는데 벌써 버스터콜이 발동됐다.
어쩌면 미리부터 준비를 해놨을 수도 있고.
이래서 짬밥이 무서운 거다.
“음···.”
―이번에 립밤 신곡 나오죠?
“예.”
―그거부터 시작될 거 같은데요.
“으음···.”
그녀는 현용수와 나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물었고, 나는 있는 그대로 대답해주었다.
―에구, 이렇게 까지 할 줄은 생각 못 하셨구나.
“그렇죠···. 근데 알았더라도 뭐 결과는 똑같았을 거 같아요. 아시잖아요, 제가 란이 포기하면 어떻게 되는지.”
―크으, 저는 대표님 같은 언더독이 좋아요. 그래도 믿는 어느 정도는 구석이 있으니까 지르신 거 아닌가?
“예?”
―브루나이 공주님.
“아···.”
솔직히 반박은 못하겠다.
내가 가진 객기와 용기의 근원은 80% 이상은 리야라는 막강한 후원자에게 나오는 거다. 나머지 20%가 내 성격이고.
든든한 빽이 없고서야 어디 좆소 회사 대표가 방송국 PD나 대형기획사 대표한테 대들겠는가. 이 바닥도 엄연히 학연, 지연, 혈연으로 돌아가는 거 뻔히 아는데 말이다.
리야다. 내 자신감의 원천은 알댕이라고.
지선경은 내 속 정도는 뻔히 다 알고 있다는 듯이, 약간 놀리는 듯한 말투로 빙글거렸다.
―그런데 어쩌나, 공주님도 이번만큼은 힘들겠는데요.
“그래요?”
―똥개도 안방에서는 반은 먹고 들어간다는데, 연예계에서 현용수 대표랑 다이다이 붙어서 이길 만한 사람이 몇 명이나 되겠어요. 연예계 영향력으로 따지나 데뷔 연차로 따지나, KU 이건욱 대표님 다음이 현용수 대푠데요. 단순하게 쓰리에스 하나랑 싸운다고 생각하
시면 안 되죠.
“그럼 제가 실수한 건가요.”
―괜찮아요. 아무리 그래도 업키걸은 못 건드릴 거예요. 립밤이나 후속 그룹이 타격을 받겠죠.
“그렇겠죠.”
―음원 사이트야 뭐 그렇다 쳐도, 문제는 행사 쪽이에요. 행사에서는 업키걸도 자유로울 수는 없을 거예요. 김윤호 대표님이 행사 업체 대표라면 업키걸 한 팀 쓰자고 다른 가수들을 모두 포기할 수 있을까요?
“못 하죠.”
―제가 보기에는 이건 경고예요. 다음은 방송국이랑 외주 제작사 쪽이겠죠.
“그렇겠죠.”
―제가 자리 마련해드릴 테니까 현용수 대표님이랑 다시 얘기해볼래요?
“그래봤자 달라질 건 없는 거 같은데요. 어차피 그쪽에서 원하는 건 란이가 연예계에서 아예 사라져주는 거라서요.”
―그래도 타협점 정도는 찾을 수 있지 않을까요?
“타협은 현용수 대표님이 원하지 않을 것 같은데요. 그 분 자존심 엄청 세 보이던데.”
―사람 잘 봤네요. 파워싸움에서는 쌀 한 톨도 내주지 않는 성격이에요.
“냉정하네요. 저희 같은 중소회사한테까지는 그럴 거 없는데.”
―그쪽도 그만큼 절박한 상황이에요. 이번에 에이텐션 복귀 삐끗하면 주주들이랑 투자자들이 가만있지 않을 거거든요. 몸집이 큰 만큼 벌려놓은 게 워낙 많아서요.
그럼 나는 뭘 어떻게 해야 되나.
일단 리야한테 말을 하긴 해야 되는데, 이러다가 큰 싸움이 되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그리고 싸움이라는 것도 싸울만한 가치가 있는 판에 뛰어들어야하는 법인데, 더블하트와 KU의 전례로 봤을 때는 우리가 이겨도 후폭풍이 만만치 않을 것 같다.
그럼 나는 뭐 어쩌라는 거야. 그렇다고 란이를 포기할 순 없잖아.
―미오는 잘 지내죠?
“적어도 지선경 대표님 전화 받기 전까지는 잘 지내고 있었어요. 근데 이제 힘들어질 것 같은데요. 란이가 잘못되면 미오도 잘못되는 거니까요.
―흐흐흐흥.
나는 소녀처럼 웃는 지선경에게 막막한 심정을 솔직히 털어놓았다.
“그럼 저는 이제 어떻게 해야 할까요.”
―저한테 도움을 요청하셔야죠.
와, 이 누나 매력 봐라.
이게 여자다.
나는 바로 대답했다. “도와주세요.”
―푸후후후, 김윤호 대표님 원래 이렇게 쉬운 분이셨어요?
“지선경 대표님한테는 센 척해도 안 통하잖아요. 그럴 이유도 없고요. 그리고 대표님도 미오가 행복해지길 바라시잖아요.”
―그래요. 흑기사 해드릴게요.
“감사합니다.”
―그 대신 소원이 있어요.
“예, 말씀하세요.”
―저랑 찐하게 한번 하죠?
“예···?”
―섹스요. 섹스하자고요.
빌어먹을 퍽커 놈들, 내 이럴 줄 알았지.
그래도······ 나 역시 궁금하긴 하다.
우리나라 정재계에서 손꼽히는 로비스트라 불리는 지선경이 침대 위에서는 어떤 모습일지.
< 저랑 찐하게 한번 하죠?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