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72화.아빠 꼴려! (175/371)

< 아빠 꼴려! >

현용수. 

 80~90년대 댄서들의 성지라 불리는 이태원 ‘굿나이트’의 유명 춤꾼 출신. 

 우리나라에 흑인 음악을 본격적으로 유행시키고, 가요계의 전반적인 제작 시스템을 바꾼 전설의 그룹 ‘소울 사운드’로 데뷔. 

 해체 이후에도 꾸준히 뮤지션으로 활동을 했던 다른 멤버들과는 달리 그는 일찍부터 제작자로 전향해서 쓰리에스 엔터테인먼트를 운영해왔다. 

 쓰리에스는 현재 엔터테인먼트 시가 총액 4위, 현용수는 연예계 주식 부호 3위에 랭크돼 있다. 

 원래는 상장을 한 이듬해부터 회사와 개인 모두 줄곧 1위를 지켜왔지만, 회사의 주력이었던 ‘붐스타’ 멤버들의 잇단 사건사고와 군입대, 에이텐션 마약 사건, 레드쉐도우 멤버들의 열애설 등의 악재가 이어지면서 2년째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 

 현용수가 어떤 인물인가. 

 데뷔 전부터 지금까지 줄곧 정상의 자리에만 올라있어서 그런지 1위가 아니면 만족을 못하고, 승부욕은 거의 병적인 수준이라고 정평이 나 있다. 

 자신이 얻고 싶은 건 사람이든 물건이든 무조건 쟁취해야 하며 ‘1위’, ‘최초’, ‘최다’ 같은 기록에 집착이 심하다고 한다. 

 요즘 쓰리에스는 현용수의 긴급 지시에 따라 시가 총액 정상 탈환을 위해 직원들과 소속 아티스트, 연습생들이 갈려나가고 있다고 한다. 

 그런 현용수가 붐스타 이후로 야심차게 준비했던 보이그룹이 바로 에이텐션이었다. 

 천하의 붐스타도 밟지 못했던 빌보드 메인차트를 목표로 한다면서, 데뷔 전부터 ‘빌보드돌’이라는 타이틀로 줄기차게 언플을 했었다. 

 하지만 그런 기대감이 오히려 독으로 작용했다. 

 멤버들의 퍼포먼스도 좋았고 발표곡마다 1위를 찍기는 했지만, 쓰리에스 출신 뮤지션 특유의 압도적인 느낌은 없었다. 그렇다고 일반적인 보이그룹과 견주기에는 비주얼이 떨어졌다. 

 그래도 회사의 파워와 팬덤이 워낙 탄탄했고, 붐스타 역시 처음부터 대박에 터진 게 아니었기 때문에 언제든지 치고 올라갈 가능성은 있었다. 해외에서의 인지도도 차근차근 쌓아가고 있었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시기에 의외의 복병이 등장해서 에이텐션과 현용수를 초라하게 만들어버렸다. 

 아니, 쓰리에스 뿐만이 아니라 우리나라 엔터계 전체가 멘붕에 빠졌었지. 

 바로 중소기획사 출신의 육탄방어전이 그 주인공이었다. 

 국내에서는 그저 그런 보이그룹으로 평가받던 UTB가 빌보드를 접수하고 세계적인 신드롬을 일으키던 그 때, 현용수의 비밀병기였던 빌보드돌 에이텐션은 뭘 하고 있었을까. 

 뭐하고 있긴. 란이하고 마약 빨고 메차쿠차 뒹굴고 있었지. 

 당시 검찰에 송치되던 매드맥스의 눈두덩이 퍼렇게 멍이 들어서 화제가 됐었는데, 현용수한테 처 맞았다는 것이 학계의 정설이었다. 

 그래도 쓰리에스는 에이텐션을 포기할 수 없었다. 에이텐션으로 벌려놓은 일이 너무 많았기 때문이다. 

 엄승미 작가에게 듣기로는, 이번에 스리슬쩍 컴백해서 국내 팬들의 간을 보고, 이후 대대적인 월드 프로모션을 통해 육탄방어전의 뒤를 쫓으려는 계획을 세웠다고 한다. 

 그러던 찰나에 컴백을 며칠 앞두고 란이가 애액을 끼얹어 버렸으니 현용수 성격에 가만히 있을 리가 없었겠지. 

 아, 엄승미피셜 중에 이런 것도 있었다. 

 현용수가 타도하는 그룹이 두 팀이 있는데 남돌은 육탄방어전이고 여돌은 우리 업키걸이라고 한다. 

 ‘엥? 우리 애들은 왜요?’ 

 ‘레드쉐도우가 업둥이들 때문에 상대적으로 포스가 꺾여버렸잖아요.’ 

 쓰리에스의 주력 여돌이자 독보적인 스타일로 걸그룹 3대장에 이름을 올렸던 레드쉐도우. 해외에서는 여전히 건재하지만 국내에서는 힘을 조금 잃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한국에서의 전성기는 끝났다는 뜻이었다. 

 당연히 복합적인 이유가 있겠지만, 현용수는 그 원인 중 하나를 바로 우리 업키걸의 등장으로 보고 있었다. 

 그것이 단순한 궁예질이 아니라는 것을 나는 알고 있다. 

 업키걸의 데뷔곡인 ‘안아줘’는 원래 레드쉐도우에게 가야할 노래였기 때문이다. 

 내 1회 차 삶에서의 레드쉐도우는 ‘안아줘’로 정점을 찍으며 승승장구 했었는데, 내가 회귀를 해버리는 바람에 운명이 꼬여버린 것이다. 

 물론 현용수가 그것까지 알 리는 없었다. 

 실질적인 이유는, 레드쉐도우 멤버 두 명이 연달아 열애설이 터졌는데 그때 이탈된 팬덤 중 상당수가 업키걸로 흘러들어왔다고 한다. 

 참고로 육탄방어전이 세계를 오가며 한창 무쌍을 찍고 있을 때, 국내 음악방송에서 유일하게 그들의 1위를 저지했던 팀이 있었다. 

 그게 바로 우리 업나니들이고, 그 기록은 아직까지 깨지지 않고 있다. 

 그것은 기록을 좋아하는 현용수가 빡칠 만한 또 하나의 사건이었다. 

 레드쉐도우는 업키걸한테 발리고 에이텐션은 란이한테 발목이 잡혀버리니, 쓰리에스가 우리 회사에 감정이 좋을 리가 없다. 

 그 자존심 강하다고 소문난 현용수가 내게 다이렉트로 전화를 했다는 것만 봐도 현재 그쪽의 상황이 어떤지를 짐작할 수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내가 자신을 못 알아보고 ‘형수요?’라는 개드립을 해버렸으니 얼마나 열불이 터지겠는가. 

 그래도 형수 드립의 효과는 탁월했다. 

 ―직접 만나 뵙고 얘기해야 하는데 전화로 해서 미안해요. 

 현용수의 거만했던 말투가 조금은 누그러졌다. 

 방송에서 접하던 특유의 목소리 톤과 너무 똑같아서 살짝 실소가 나왔다. 

 나는 웃음을 거두고 예의를 차려서 대답했다. 어쨌든 이번에는 우리가 잘못한 거니까. 

 “아닙니다. 안 그래도 제가 먼저 연락을 드리려고 했습니다. 윤성일 실장님한테 전화를 했었는데 그만두셨다고 하더라고요.” 

 ―아아, 성일이···. 윤성일 실장하고는 원래 연락하고 지내던 사이였나요? 

 “아뇨, 예전에 샵에서 뵙고 연락처 교환했었는데 직접 연락을 드린 건 이번이 처음이었어요.” 

 지유 부모님 앞에서 통화를 하기에는 다소 민감한 얘기가 나올 수도 있다. 

 나는 최대한 주방과 떨어진 거실 구석 쪽으로 이동하며 통화를 이어나갔다. 집이 넓어서 좋다. 

 현수용은 떨떠름하게 말을 이었다.  ―그래요 뭐··· 윤호 씨도 바쁠 테니까 요점만 간단히 말할게요. 제가 뭐 때문에 전화한 건지는 아시죠? 

 “예. 저희 연습생이 큰 실수를 했습니다. 죄송합니다.” 

 ―그때 사건이 계속 언급돼서 피차 좋을 건 없잖아요. 

 “그렇죠.” 

 ―근데 그 여자애는 지금 복귀 준비하고 있는 거예요? 

 “란이요? 예, 지금 그룹으로 준비 중입니다.” 

 ―으응, 그룹으로···. 

 목소리만 들어도 그의 표정이 연상된다. 오디션 프로 심사위원 석에 앉아서 고개를 갸웃거리며 미간을 찌푸리던 그 표정일 것이다. 

 그는 앞으로 에이텐션이 활동을 하는데 있어서 란이가 큰 걸림돌이 될 거라는 기색을 결코 숨기지 않았다. 불편함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며 비꼬듯이 묻는다. 

 ―활동이 가능하겠어요? 

 “뭐 가능은 하겠지만 과정이 많이 힘들 것 같습니다.” 

 이해가 안 간다는 듯 쓰으읍, 하며 혓소리를 낸 그가 되물었다. 

 ―이건 개인적으로 궁금한 건데, 윤호 씨 성격이 원래 무모한 편이에요? 

 “아니요. 오히려 안전주의 쪽입니다.” 

 ―근데 왜 그래요? 얘기 들어보니까 단순한 연습생이 아니라 구체적인 데뷔 플랜까지 세우고 있다던데. 지상파 쪽으로 단독 오디션 프로 들어간다면서요. 

 “예, 그런데 PP채널이에요.” 

 ―근데 거기에 걔는 못 나가잖아요. 

 “예, 란이는 빼고 갑니다.” 

 ―걔랑 같은 팀 멤버들은 그대로 나가고? 

 요점만 간단히 말한다더니 요오오오오점이었나보다. 

 내가 란이 일 때문에 미안해서 어느 정도는 숙이고 들어가려고 했는데 슬슬 선을 넘고 있네. 

 “죄송한데 대외비라서 방송 관련으로는 더 이상 말씀 못 드릴 것 같습니다.” 

 ―하하하하하. 

 자기가 그런 것도 모르고 질문한 줄 아냐는 뉘앙스의 비웃음이었다. 

 이렇게 나오면 나도 슬슬 약이 오른단 말이지. 

 “죄송한데 제가 지금 미팅 중이라서 길게는 통화 못할 것 같습니다. 란이 일은 진심으로 사과드립니다. 앞으로 주의하겠습니다.” 

 ―사과 정도로 끝나면 다행인데···. 

 “예?” 

 ―그냥 걔 좀 안 나오게 할 수는 없나? 

 “저도 그러고 싶네요.” 

 당연히 진심이었다. 

 보라색만 아니면 진작 때려치웠지. 

 “누구보다 그만두고 싶은 사람이 저일 걸요.” 

 ―근데 왜요? 투자 걸렸어요? 아닌데, 그럴 리는 없고···. 

 “운명입니다. 저는 란이 꼭 복귀 시켜야 돼요.” 

 그는 짜증 섞인 목소리로 대꾸했다. 

 ―아이, 그게 무슨 뚱딴지 같은 말이야아. 

 “현용수 대표님.” 

 ―예, 말씀하세요. 

 “엄연하게 따지면 저희 란이가 피해자 아닌가요?” 

 ―예? 

 “매맥이랑 우현이가 란이 술에 몰래 약 탄 거잖아요.” 

 ―그걸 왜 저한테 따집니까. 법원에서 판결난 걸. 

 “판결문에서도 강제로 먹였다는 건 인정됐고요, 다만 란이도 어느 정도 인지할 수 있는 상황에서 부주의했다는 이유로 그런 결과가 나온 거고요.” 

 ―그래서요? 

 “오늘 말실수한 것만 놓고 보면 저희가 잘못한 게 맞습니다. 그건 분명히 사과드렸고요. 근데 그 외적으로 보면 대표님도 당당한 입장이 아니시잖아요.” 

 ―이봐요, 김윤호 씨···. 

 나는 그의 말을 자르며 날카롭게 갈아둔 팩트를 푸욱 찔러 넣었다. 

 “에이텐션도 철판 깔고 컴백하는 마당에 란이는 나오면 안 됩니까? 죄질로 따지면 매맥이랑 우현이가 더 나빠요. 판결을 떠나서 팬들도 이미 다 알고 있는 사실이고요.” 

 ―하하하···. 

 역시나 가소롭다는 뜻의 비웃음을 흘린 그는 자책하듯 중얼거렸다.  ―아이 참, 내가 이 바닥에 오래 있긴 있었나보다. 별 꼴을 다 당하네···. 

 “앞으로 저희 애들 입에서 에이텐션 언급되는 일 없도록 확실하게 주의 주겠습니다. 그 부분은 걱정하지 않으셔도 돼요.” 

 ―내가 지금 무슨 말 하는지 몰라요? 

 “그럼 진심으로 란이를 빼라는 말씀이세요?” 

 단도삽입적인 질문에 그는 대답을 회피했다. 

 그가 머뭇거리는 낌새를 눈치 챈 나는 뒤늦게 통화녹음 버튼을 누르고 되물었다. 

 “란이가 에이텐션 앞길에 방해되니까 빼라는 말씀이세요?” 

 ―흥분하지 말고요. 

 “죄송한데 제가 지금 자리를 오래 못 비우는 상황입니다. 더 하실 말씀 있으시면 제가 1시간 후에 전화 드리겠습니다.” 

 ―아니, 그럴 것까지는 없고. 각자 입장은 다 전달된 거 같으니까 이만 합시다. 그냥 각자 방식대로 해봐요. 

 뭔가 협박처럼 들리네. 

 그는 끊는다 어쩐다 말도 없이 일방적으로 전화를 끊었다. 

 소문으로 얼핏 듣기는 했지만, 그가 세운 업적에 걸맞지 않게 쩨쩨하고 속이 좁다는 느낌이 팍팍 들었다. 뒤끝도 장난 아닐 것이다. 

 이러니 연예인들 방송 이미지 믿지 말라는 말이 나오는 거지. 

 아, 섹스 땡겨···. 

 5분 정도 통화를 했는데 스트레스 지수가 확 높아졌다. 

 “죄송합니다, 급한 전화라서요.” 

 지유 부모님께 다시 한 번 양해를 구하고 식사를 마쳤다. 

 처음에는 영 어색하기만 하더니 내가 통화하고 온 사이에 분위기가 제법 좋아져 있었다. 은빛이 때문이었다. 처음에는 낯을 좀 가리던 녀석은 요즘 한창 물이 오르기 시작한 애교를 보여주며 할아버지 할머니의 죄스러웠던 표정을 말끔히 풀어버렸다. 

 지유가 포크로 딸기를 찍어서 주자, 은빛주니어는 그걸 또 내 쪽으로 내민다. 

 “아빠!” 

 “응? 나 먹으라고?” 

 “아빠!” 

 “어, 알았어, 고마워.” 

 입으로 받아먹는데 마음에 또 몽글몽글해진다. 

 나도 조카가 있지만 같은 애교라도 확실히 남자애랑은 달랐다. 

 남의 자식이 애교를 부려도 이런데 내 자식은 어떨까···. 

 손녀를 바라보는 지유 부모님의 눈에서는 아주 꿀이 덜덜하게 떨어지고 있다. 

 그때 은빛주니어가 박수를 치며 소리쳤다. 

 “꼬려!” 

 움찔. 

 “아빠 꼴려!” 

 이야아앗, 우리 은빛이! 

 몇 시간 사이에 발음이 확 좋아졌구나아! 

 발음이 어찌나 정확하던지, 지유 부모님의 표정이 순간적으로 어색해졌다가 풀리셨다. 

 “으응~ 아빠 꼬리?” 

 지유가 은빛이를 향해 미소지으며 말을 돌렸다. 아빠 꼬리도 뭔가 이상하긴 하지만 꼴려보단 낫다. 

 그러나 은빛이는 보다 정확한 발음으로 외쳤다. 

 “꼴려! 아빠 꼴려!” 

 그리고 당황한 지유의 틱도 터졌다. 

 “엄마도 꼴려! 대표님 불알 냠냠쫍쫍!”

< 아빠 꼴려!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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