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66화.저 지금 엄청 땡겨요 (169/371)

< 저 지금 엄청 땡겨요 >

조루가 이런 느낌이구나. 

 오뚜기 3분 카레 드립이 틱이라는 걸 알고 있으면서도 남자로서의 자존감이 확 무너져 내린다. 

 앞으로 탈모와 조루는 농담으로라도 놀리지 말 것. 

 지유가 가쁜 숨을 하으, 하으으 고르며 내 등을 끌어안는다. 

 정자세 삽입을 해제하지 않고 바로 메차쿠차 두 번째 턴을 돌려는데···. 

 ―드르르륵, 팍! 

 내 왼편에 위치한 미닫이문이 박력 있게 열렸다. 

 은빛이가 깬 것이다. 거실 불빛에 찌푸린 눈살로 합체 중인 우리를 쳐다본다. 

 “이야, 우리 은빛이 문도 열 줄 아네? 멋있다.” 

 “아빠?” 

 지유와 나는 포개진 채로 굳어버렸다. 그런데 지유 놈이 그대로 눈을 감고 자는 척을 한다. 그리고 은빛주니어는 다양한 높낮이의 ‘아빠’를 연발하기 시작했다. 

 “아빠? 아빠아? 아빠!” 

 “아빠가 아니고 대표님이라고 불러야지. 대표님 해봐, 대, 표, 님.” 

 “대뽀! 대뽀오!” 

 “오, 대박. 말도 따라하네?” 

 “와, 대박··· 저도 처음 들었어요···.” 

 “대뽀! 대뽀뽀뽀뽀뽀!” 

 “야, 어떻게 해야 돼. 자는 척 그만 하고.” 

 지가 일어나면 될 것을, 지유 놈은 계속 자는 척을 하면서 소곤소곤 지시했다. 

 “안아 주면 바로 자요.” 

 “아빠빠빠빠빠빠!” 

 “다시 아빠로 돌아왔네. 목소리는 왜 이렇게 커.” 

 “안아주기 전까지 그래요···.” 

 “아빠? 아빠! 아쁘아아아!” 

 아기의 순수하고 직선적인 발성에 고막이 아플 지경이다. 

 몇 걸음 터벅터벅 다가온 은빛주니어는 자는 척하는 엄마의 젖꼭지가 신기하다는 듯 꾹꾹 눌렀다. 눈빛을 보니 잠은 완전히 깬 것 같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엄마라는 인간은 끝까지 자는 척을 고수했고, 결국 내가 나체로 은빛이를 안아줘야 했다. 

 겨드랑이를 들어 올리자마자 알아서 내 어깨에 뺨을 기대며 안정감 있게 폭 안긴다. 그러더니 지가 내 등을 토닥토닥 거려준다. 

 “오오···.” 

 뭐지. 살면서 한 번도 느껴본 적 없던 묘한 기분이었다. 

 묵은 피로가 싹 사라지는 포근함? 

 이래서 아빠들이 딸, 딸 하는 건가 보다. 

 순수해진다. 

 추하기 그지없던 발기 역시 눈 녹듯이 금세 가라앉았다. 

 하지만 이 사랑스러운 감정이 어색하기만 했던 나는 괜히 마음에도 없는 말로 방어기제를 펼쳤다. 

 “하아··· 이젠 하다하다 별 짓을 다 한다···.” 

 “아빠!” 

 “작은 은빛, 아직 아침 아니니까 코 자자.” 

 “아빠?” 

 “자장자장 우리 은빛, 잘도 잔다 우리 은빛.” 

 내가 가사도 잘 모르는 자장가를 흥얼거리자 지유의 인중이 씰룩씰룩 들썩인다. 

 “웃기냐···?” 

 “아빠?” 

 “어어, 너한테 한 말 아니야. 자, 자.” 

 “아빠아···.” 

 한 20초 정도 어야둥둥 해줬나? 

 내 등을 토닥이던 짧은 손이 스르르 내려가더니 몸이 축 처졌다. 

 얼굴을 슬쩍 확인해보니, 오오, 인형 같은 속눈썹이 예쁘게 내려앉아있다. 

 나는 지유를 향해 속삭였다.  “지유야, 애기 잠든 거 같은데···.” 

 “······.” 

 “애기 잔다고.” 

 “······.” 

 응. 지유도 잠들었어. 

 자는 척을 하다가 진짜 잠이 들어버린 것이다. 

 나는 울타리처럼 가드가 세워진 아기 매트 안에 은빛이를 눕혀놓은 뒤, 지유도 영차 들쳐 안아서 침대 위에 눕혀주었다. 

 이불을 덮어주고 나가려는데 잠에 취해 나른해진 지유의 목소리가 들린다. 

 “감사합니다···.” 

 “어, 자라. 팬티랑 옷 베개 옆에 나뒀어.” 

 “예··· 대표님 오늘도 진짜 맛있었어요···.” 

 “고마워. 너도 맛있었어.” 

 “틱 아니에요···.” 

 “내일 보자.” 

 “대뽀···?” 

 “그래, 은빛이도 잘 자.” 

*** 

 봄이 오려나. 

 밖에 나왔는데 촉촉하게 비가 내리고 있었다. 

 차는 회사에 있는데···. 

 나는 1층 주차장에 잠시 멈춰 서서 하늘을 쳐다봤다. 

 주황빛 가로등을 뿌옇게 스치는 보슬비를 보니 새벽 감성이 아련하게 차오른다. 

 오랜만에 찾아온 이런 소중한 감정을 란이의 의무사정으로 해치고 싶지 않았다. 

 소주나 한 잔 하면서 추억팔이나 하고 싶다. 

 하지만 3시가 가까워지는 시간에 마음 편히 부를 만한 사람이 없었다. 친한 친구들은 거의 다 유부남이고, 현동이랑 염은 립밤 컴백 준비 때문에 요즘 거의 산송장 모드라서 부르기 미안하다. 

 업나니들은 자나? 

 서원이는 뻗었고, 숙소에 있는 나머지 네 명은 뭐하고 있으려나. 

 일본에 있을 때는 자면 잔다, 숙소에 들어가면 들어간다, 꼬박꼬박 연락을 하더니 귀국하고 나서는 회사에서 쉽게 볼 수 있으니까 굿밤 메시지가 뜸해졌다. 

 ―보슬보슬보슬보슬 

 새벽에 내리는 비 냄새를 맡으니까 예전에 업키걸 애들이랑 숙소생활 할 때가 생각난다. 새벽에 맥주 한 캔 들고 테라스로 나가면 어김없이 요나가 먼저 나와 있었지. 

 시크하게 한 모금을 들이킨 뒤 어깨를 살짝 움츠리는 요나의 얼굴이 그려졌다. 

 녀석에게 톡을 보내보고 싶은데 혹시 자고 있어서 답장을 못 받을까봐 망설여진다. 1이 지워지기 전까지 몇 번씩 확인을 하고 마음 졸이며 기다리는 그 느낌이 너무 싫다. 

 카톡 채팅 목록을 의미 없이 뒤적거리다가 에이, 오늘은 그냥 집에 가서 혼술이나 해야겠다, 마음을 먹고 핸드폰 화면을 끄려던 그때, 카톡 아이콘 위로 알림이 뜬다. 

 요망할 요 [저 이제 연습 끝나고 들어가용] 

 오이잇? 

 구세주를 만난다는 게 이런 느낌이구나! 

 지금까지 혼자 남아서 연습을 한 것이다. 

 나는 톡을 할 것도 없이 바로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지금까지 연습했어?” 

 ―예. 

 “어디야? 숙소 들어갔어?” 

 ―아뇨, 이제 회사에서 나왔어요. 어, 비 온다. 

 “응, 비 오더라.” 

 ―대표님은 어디신데요? 

 “나도 회사 근처야. 오랜만에 맥주 한 잔 할까?” 

 ―으음···. 

 “아, 피곤하지?” 

 ―아뇨, 맥주 말고 소주 땡겨요. 

 “우리 요나 다 컸네, 소주도 땡기고. 내가 회사 앞으로 갈 테니까 기다려.” 

 ―우산 있어요? 

 “이 정도는 비는 맞아주는 게 예의지.” 

 ―미세먼지 비라서 안 돼요. 탈모 생기면 어떡해요. 

 “큭큭, 나 탈모 걸리면 싫어할 거야?” 

 ―예. 

 “어, 그래···. 솔직해서 좋다.”  ―그러니까 거기서 기다리세요. 제가 요기 편의점에서 우산 사가지고 갈게요. 

 너어는 진짜 요물이다. 

 아주 예의 바른 요물이야. 

*** 

 내가 요나를 데리고 간 곳은 누룽지탕과 닭도리탕으로 유명한 40년 전통의 한식 전문 식당이었다. 

 립밤 멤버들한테 추천을 받고 염대표, 현동이랑 한 번 와봤던 곳인데 느낌이 괜찮았었다. 

 차 한 대가 간신히 들어갈 법한 좁은 골목길 사이에 위치한 단층짜리 옛날식 건물이었다. 간판을 보자마자 요나가 빵 터진다. 

 “푸흐흐흨, 40년 전통의 식당인데 이름이 뉴욕 한식이네요?” 

 “사장님이 미국 분이신데 매일 아침마다 뉴욕에서 누룽지를 직접 떼어온다고 하더라고. 거기가 세계에서 제일 큰 누룽지 경매장이래.” 

 “푸큭크긐그킄!” 

 실없는 농담에도 맛깔나게 웃어주는 요나가 참 좋다. 

 아침 7시까지 하는 맛집이라서 새벽인데도 손님이 많았다. 

 테이블 간격은 좁지만 모두 파티션으로 구분이 돼 있고 옆 테이블과도 얼기설기 교차돼있어서 시선을 크게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 그리고 새벽 시간대에는 손님들의 연령대가 어느 정도 있는 편이기 때문에 연예인이 온다고 해도 딱히 신경을 안 쓰고 프라이버시를 존

중해준다고 들었다. 

 물론 어느 정도의 곁눈질과 속닥거림은 감내해야겠지만, 직접 와서 말을 걸지는 않을 것이다. 물론 아는 척을 한다고 해도 요나는 친절하게 받아주겠지만. 

 미리 얘기를 들었던 대로, 자기들 얘기하기 바빠서 우리의 입장에 신경을 쓰는 손님은 없었다. 

 자리에 앉은 요나는 패딩과 마스크를 벗었다. 낮에 한 화보촬영용 메이크업이 유지된 상태였다. 

 볼캡을 썼고 후드 티에 청바지를 입었다. 그렇게만 입어도 빛이 났고, 애들 나이 대에서는 가장 잘 어울리는 패션이기도 했다. 

 메인 음식이 나오기 전에 밑반찬과 소주가 먼저 나왔다. 

 “와아, 갓김치 비주얼 대박.” 

 아재 입맛으로 유명한 요나다. 곧바로 젓가락을 들어서 갓김치 한 점을 집는다. 그 상태로 인증 샷을 한 장 찍는다. 그러고는 입에 넣고 몇 차례 아작아작거리더니 엄지를 치켜세운다. 

 입술을 오물오물 거리면서 먹는 저 표정이 나는 참 좋다. 

 “으음!” 

 “맛있어?” 

 “응! 응! 제가 먹어본 갓김치 중에 1등이에요. 완전 소주 땡기는 맛.” 

 나는 까드득, 소주를 따서 요나의 잔을 채워주고 내 잔도 채웠다. 

 건배를 한 요나는 와인을 음미하는 것처럼 소주잔을 천천히 넘겼다. 

 바닥을 남기지 않고 깔끔하게 비운 뒤, 입안에 잠시 머금고 있다가 꼴딱 삼킨다. 

 한쪽 눈을 살짝 찡그리며 크으으, 낮게 하울링하는 모습이 꼭 CF를 보는 것 같았다. 

 솔직히 소주 모델로는 벽에 포스터가 붙어 있는 소민정보다 요나가 더 잘 어울린다. 경쟁 업체 쪽에서 모델 제의도 들어왔었다. 하지만 업키걸 애들은 주류 CF는 하지 않기로 해서 거절했다. 

 “분위기 나쁘지 않지?” 

 “예, 저는 이런 데가 더 좋은데요? 사람 사는 냄새도 나고.” 

 “넌 나이가 몇 갠데 벌써부터 사람 사는 냄새 타령이야.” 

 “흐히히.” 

 방금 전에 비웠으면서, 요나는 두 개의 술잔을 채운 뒤 바로 내게 내밀었다. 

 “또 마셔?” 

 “빨리 마시고 빨리 취하고 빨리 가야죠.” 

 “이거 진짜 완전 아재네.” 

 “짠, 짠!” 

 ―찌걱 

 1분도 안 돼서 각자 두 잔씩을 비웠다. 

 요나는 또 한 쪽 눈을 찡그리며 어깨를 부르르 떨었다. 안주도 안 먹는다. 

 “크으으···.” 

 “맛있어?” 

 “아뇨, 아무 맛도 안 나는데요?” 

 “그게 더 위험한데···.” 

 표정을 보니 분위기에 취해서 완전 흥이 올랐다. 

 잠시 뒤 주문한 닭도리탕과 누룽지가 나왔고 요나는 자기가 생각했던 것 이상이었는지 완전히 정신줄을 놓고 흡입을 했다. 

 소주는 총 두 병을 시켰고 내가 좀 더 많이 마셨지만, 급하게 마신 탓인지 요나는 자신의 바람대로 빨리 취했다. 

 별 말도 안했는데 혼자서 괜히 배시시 웃는 빈도가 늘어났다. 

 그 모습이 재밌어서 빤히 쳐다보자 정색하며 눈을 부릅뜬다.  “저 안 취했어요.” 

 “아무 말도 안 했어.” 

 “에이, 취한 사람 보듯이 쳐다보셨거등요?” 

 “귀여워서.” 

 피식 웃으며 그렇게 말해주자 양 볼에 손을 얹으며 예쁜 척을 한다. 

 “대표님은 제가 귀여워요?” 

 “귀엽지.” 

 “아닌데, 나 섹시한데.” 

 “은빛이 병 걸렸어?” 

 “으응으응, 은빛이는 섹시오패스고요, 저는 진짜 섹시한 거고요.” 

 음, 느낌이 왔다. 

 오늘은 ‘요나의 그날’이다. 

 혼자서 또 한 잔을 쏠랑 마시더니 특유의 한 쪽 눈 찡그리기를 한다. 그러고는 갑자기 의미심장하고 낮은 말투로 나를 불렀다. 

 “대표님···.” 

 “어.” 

 “제가 지금 톡으로 보낼 테니까 바로 확인하셔야 돼요.” 

 “뭘?” 

 곧바로 핸드폰을 들어서 타이핑을 하는 요나. 

 다 적었는지 내게 눈빛을 보냈고, 나는 확인을 했다. 

 요망할 요 [저 지금 엄청 땡겨요ㅋ] 

 “큽, 뭐가 또 땡겨···.”  

 실소를 머금으며 나지막이 되묻자 내 쪽으로 상체를 내밀더니 귀를 대보라며 손짓한다. 그리고 양손으로 나팔 모양을 만들어서 입을 가린 뒤 내 귓가에 속삭였다. 

 공기가 가득 들어간 요망한 목소리로···. 

 “쎄엑스으요오···.” 

 너어는 진짜···.

< 저 지금 엄청 땡겨요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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