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누가 신음소리를 내었는가 >
미오가 운전하는 카니발이 란&라희의 숙소 앞에 멈췄다.
미오는 두 사람을 내려주고 강남의 집으로 가야했지만 오늘밤은 왠지 계속 수다를 떨고 싶은 마음이다.
함께 살고 있는 란&라희에 비해 조금 겉도는 느낌이었던 미오가 정규율 영입을 기점으로 이제야 한 팀으로서 돈독해졌다는 뜻이었다.
시동을 끄면서 두 사람에게 묻는다.
“나 너네 집에서 자도 돼?”
“그럼요. 숙손데요.”
“같이 자요, 언니.”
“그럼 란이는 맥주 한 잔 할래? 라희는 주스 마시고.”
“아, 저 술 끊었어요. 데뷔할 때까지 안 마실 거예요.”
“술을 끊었다고?”
“떡을 끊을 순 없잖아요.”
“그건 그렇지. 그럼 그냥 가자.”
“언니 드세요. 저는 냄새만 맡을 게요.”
“아냐, 나도 막 땡기지는 않아.”
“근데 맥주 얘기하니까 햄버거 먹고 싶다.”
란의 말에 라희도 침을 꼴깍 삼키며 말했다.
“저도요. 버거킹 치즈와퍼···.”
“참자. 살쪄···.”
“예···.”
처음 방문하는 숙소는 생각보다 허름했다. 하지만 이렇다 할 친구가 없던 미오는 숙소에서 풍기는 사람 사는 냄새에 감상적인 기분이 되었다.
친한 친구 집에 오는 기분이 이런 거구나.
“왼쪽이 라희 방이고 오른쪽이 제 방이에요.”
집에 들어온 란이는 술 취한 아저씨처럼 선 채로 양말 끝을 쭉쭉 잡아 당겨 벗은 뒤 허물 벗듯 탈의까지 마쳤다. 뽕빨 가득 브래지어 훅을 풀며 세상 홀가분한 표정을 짓는다.
“아, 시원해. 평소에도 노브라로 다니고 싶다.”
“가슴 이쁘다.”
미오가 가슴 모양을 칭찬하자 란은 가슴을 잡고 위로 모으며 투덜거렸다.
“너무 작아요. 나중에 수술할 거예요.”
“에이, 하지 마.”
라희가 바닥에 떨어진 란의 옷가지를 주우며 묻는다.
“언니 이거 빨 거죠?”
“야, 내가 치울게 놔둬.”
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라희는 욕실 앞 빨래 바구니에 넣은 뒤 자기 방으로 들어갔다.
미오도 방을 구경하기 위해 따라 들어갔다. 침대 맡에 거치된 통기타와 아기자기하게 정돈된 방을 보며 흡족하게 미소 짓는다.
“누가 봐도 라희 방이네.”
“히···.”
“언니, 이걸로 갈아입으세요.”
팬티에 박시한 티셔츠 하나만 걸친 란이 미오에게 잠옷을 건넸다. 티셔츠와 돌핀팬츠였다.
“어, 고마워.”
“보일러 빠방하게 틀어서 춥지는 않을 거예요.”
미오는 란이 준 옷을 받아서 바로 갈아입기 시작했다.
란의 눈이 미오의 브래지어로 향한다.
“언니 가슴도 예쁠 거 같아요.”
오는 가슴이 있으면 가는 가슴도 있는 법.
미오도 답답한 브래지어를 풀고 맨가슴을 드러냈다.
탐스럽게 부푼 유방과 핑크빛 유듀.
란이 감탄한다. “역시 핑두.”
라희도 옷을 갈아입으면서 미오의 가슴을 슬젖 쳐다봤다.
‘이 중에서는 내가 제일 크구나···. 현재까지는 지유 언니가 1위, 내가 2위.’
옷을 모두 갈아입은 세 사람은 라희의 방에서 음악을 작게 틀어놓고 수다의 꽃을 피웠다.
얼마쯤 지났을까.
침대에 누워있던 라희가 가장 먼저 잠이 들었고, 나머지 두 사람도 슬슬 잘 준비를 하려던 찰나에 미오의 휴대전화가 울렸다.
“어, 대표님이다.”
“회식 끝났나?”
새벽 3시쯤이었다.
오늘은 회식이 있다고 해서 질내사정을 건너뛸 줄 알았는데.
두 사람은 오늘도 질싸튀를 할 수 있을 거란 기대감에 벌써부터 보근보근 거렸다.
“예, 대표님.”
―어 미오야, 나 여기···.
“예?”
―···미안하다.
김윤호는 술에 완전히 취해서 말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
미오가 몇 번의 질문을 하고서야 전화를 한 이유를 알아낼 수 있었다.
김윤호는 립밤 멤버 4명이 돌아가면서 주는 술을 곧이곧대로 받아 마시다가 너무 취한 나머지 회식자리에서 귀소본능을 발휘한 것이었다.
다행히 자기가 어디에 있는지 정도는 알고 있었다. 회식장소에서 200m 정도 떨어진 24시 패스트푸드점 앞이었다.
―긍데 여기 택시가 너무 안 자핀다···.
“제가 지금 바로 갈게요. 전화 꼭 받으셔야 돼요.”
―으어, 아라쒀··· 여기 꼼짝 말고 기다리고 이쓰께에. 미안하다···.
미오와 란은 바로 출발을 했고 교보타워 사거리에 있는 버거킹에서 햄버거 세트 10개를 포장해놓고 잠들어 있던 그를 찾았다. 둘이서 겨우겨우 부축해서 미리 젖혀놓은 2열 좌석에 눕혔다.
김윤호가 눈을 감은 채 미오를 부른다.
“묘야···.”
“예, 대표님.”
“진짜 미안한데 우리 집 말고 애들 숙소로 가자, 애들 숙소···.”
“강동이요?”
“응··· 애들 머그라고 햄버거 샀어. 라니랑 라희랑 지유 꺼···. 너꺼도 샀스니까 머거···. 다이어트 가튼거 하지 말고 머꼬 시픈거 이쓰면 다 머거 아라찌? 우리 애들 너므 불쌍해···.”
조수석에 앉은 란이가 뒤를 돌아보며 큭큭 거린다.
“아이고, 우리 오빠야 술 마이 뭇네. 오빠야, 여서 자면 입 돌아간다. 집에 가서 자라.”
“으어? 너 라니야?”
“웅. 오빠야가 사랑하는 소란이 맞다.”
김윤호는 미간을 잔뜩 찌푸리며 겨우겨우 눈을 떴다.
란이의 얼굴을 확인하고는 벌떡 일어나며 고래고래 소리친다.
“망란이 너 이놈 새키야! 인마! 너 인마!”
“아, 깜짝이야. 왜요!”
“너 이 새키, 누가 이 시간에 싸돌아다니래! 지금이 대체 며씨야!”
“대표님 데리러 온 거잖아요.”
“내가 묘한테 데리러 오라 그래찌 언제 너한테 데리러 오라 그래써! 이놈 새키야! 너 클럽갔다 와찌? 어? 바른대로 말해!”
“아, 뭐래. 클럽 끊은 지가 언젠데요.”
“뭐어! 모레 클럽 간다고? 혼날래 이 새키야!”
“와, 취하니까 완전 진상이네. 술을 귀로 마셨어요? 갑자기 왜 사오정이 됐어요.”
“아무튼 아주 걸리기만 해··· 어? 걸리기만! 아주 다리몽댕이를 어! 나한테 다 연락 와! 안 걸릴 줄 알지?”
“하아··· 안 간다고요오···.”
“특히 썬루프 가지마!”
“큭큭, 썬루프 오랜만에 듣는다. 지금도 거기 MD들한테 계속 연락 오는데.”
“쌍눔 새키야! 썬루프 가지 말라고! 핸드폰 내나!”
“아재요, 안 갔다고요!”
“누구보고 아재래! 이건 아주 대표에 대한 곤경이 없어, 곤경이···.”
“대표님, 진짜 강동 숙소로 가요?”
듣다 못한 미오가 내비게이션을 터치하며 묻자 김윤호는 다시 시트에 몸을 뉘이며 중얼거렸다.
“응··· 애들 햄버거 줘야 돼···.”
김윤호는 가는 내내 그 말을 중얼거렸고, 란이는 계속 낄낄 거렸다.
“김윤호 씨 취하니까 엄청 귀엽네. 그쵸, 언니?” 미오는 씁쓸하게 미소 지었다.
“나는 좀 짠한데.”
“왜요?”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난 보라돌이들에 의해 등 떠밀리듯 뛰어든 연예계.
마약 먹고 전장에 떠밀린 병사들처럼, 아이템 빨아가면서 하는 반강제적 의무 섹스.
거부하거나 실패할 시 뒤따르는 수치스럽고 가혹한 패널티.
그 진의를 모두 알고 있는 미오는 발리에 함께 갔다 온 이후 그가 짊어진 짐이 얼마나 무겁고 가혹한 것인지를 새삼 깨닫고 있는 중이었다.
아무리 인류 평화와 보라돌이들의 인생을 구한다는 대의가 있지만, 그 대의에 의해 김윤호라는 인간이 꿈꾸던 소박한 삶은 잡아먹히고 있는 것 아닌가.
그 누구보다 평범하고 일상적인 인생을 꿈꾸던 사람인데 말이다.
“대표님 알고 보면 불쌍한 사람이야. 우리 더 열심히 해서 꼭 성공하자.”
***
여성호르몬이 아직 덜 빠진 건가.
내가 불쌍하다는 미오의 말을 듣는 순간 눈물이 울컥 터질 뻔 했다.
오늘은 그냥 취하고 싶었다.
그래서 ‘RU-69’ 아이템도 쓰지 않았다.
물론 이렇게까지 취할 줄은 몰랐지만 그래도 기분은 나쁘지 않았다.
몸은 술에 쩔어서 가누지 못할 지경이고 자고 일어나면 기억이 안 날 수도 있다.
이미 가라오케에서 탈출한 이후부터 필름이 중간 중간 끊겨있었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만큼은 녀석들의 목소리가 또렷하게 들렸다.
내가 녀석들 앞에서 보인 멍청하고 충동적인 행동도 모두 인지하고 있다.
미오의 말에 란이 녀석도 한마디 보탠다.
“저는요, 대표님 아니었으면 지금쯤 어디 술집에나 다니고 있을 거예요.”
“업소?”
“예. 저처럼 데뷔했다가 망한 사람 중에 그런 쪽으로 빠지는 사람 많잖아요. 그나마 잘 풀리면 스폰이고 안 되면 노래방 도우미. 근데 그거나 그거나 똑같죠 뭐. 어차피 돈 받는 대가로 웃음 팔고 몸 파는 건데···.”
“나 일하던 데도 연습생 출신 두 명 있었어.”
“아이컨택 망하고 나서도 계속 스폰 계약하자고 연락 왔거든요. 솔직히 많이 흔들렸던 적도 있고요. 그런데 꼭 그럴 때마다 대표님이 어떤 식으로든 잡아주더라고요. 자극을 주든지, 칭찬을 하든지.”
“대표님이 그런 쪽으로 감이 좋으셔.”
“그러니까요. 아까 라희랑 저랑 햄버거 먹고 싶다고 했는데 사온 거 보고 완전 놀랐잖아요.”
“그것도 딱 버거킹 와퍼로, 그치?
“그러니까요. 대표님 진짜 초능력 같은 거 있나 봐요. 아니면 타락 천사든가···.”
“흐흐···.”
“혹시라도 우리가 잘 안 되더라도 저는 평생 동안 대표님한테 감사하면서 살 거예요. 그리고 그런 쪽으로도 절대 안 빠질 거고요. 대표님이 저 믿어준 거 생각하면 옛날처럼 아무렇게나 못 살아요. 제가 표현을 잘 못해서 그렇지 지금도 대표님 얼굴 보면 너무 고마워서
눈물 날 거 같아요.”
이 새키야, 나도 눈물 날 거 같으니까 그만해.
망란이 놈의 진지한 속마음에 코끝이 찡해···
“씹물은 항상 흐르고요.”
···지려다가 말았다.
망할 놈의 기승섹섹, 페니스시즘.
“언니, 제가 원래 꿈이 복귀해서 탑급이랑 만나는 거였거든요. 근데 대표님이랑 한 이후부터는 다른 남자 몸이 생각이 안 나요. 완전 신기하죠?”
“그럴 수 있어. 근데 나중에 되면 또 달라질 거야.”
“저도 그렇게 생각했었는데요, 대표님 안 보게 되면 더 심해질 거 같아요. 그래서 꿈도 바뀌었잖아요.”
“뭘로.”
“지상파 3사 음방 1위요.”
“업키걸이랑 같이 1위 후보 오르면 되게 웃기겠다.”
“대박. 근데 회사 스케줄 상 활동 시기는 안 겹칠 거예요. OST나 유닛이면 모를까.”
녀석들의 나름 미래지향적인 수다는 계속 되었고, 나는 중간에 잠이 들어버렸다.
규율이 얘기도 했던 것 같은데 기억은 잘 안 난다.
내가 코를 골던 와중에 정신이 든 건 내 코골이보다 거슬리게 반복되는 어떤 소리 때문이었다.
―스걱스걱스걱스걱
음?
―스걱스걱스걱스걱
이불이 마찰되는 소리였다.
이불이 규칙적으로 마찰된다는 건 그 속에서 어떤 행위가 이뤄지고 있다는 건데······ 설마 자위?
생각이 굳어지는 순간, 이불 안에서 소음순이 입맛 다시는 소리도 희미하게 들렸다. ―쩝쩝쩝쩝쩝쩝
그리고 이어지는 웬 여자의 억눌린 콧신음···.
“킇··· 흣···.”
누가 신음 소리를 내었는가.
누가 신음 소리를 내었느냔 말이야.
손모가지 걸고 장담하는데 이건 백퍼 클리토리스 자위다.
자위자는 내가 깊은 잠에 빠진 줄 알고 호기롭게 딸딸이를 치고 있는 것이다.
나는 혹여나 그녀의 자위에 방해될까, 코를 골듯이 숨을 거칠게 쉬며 조심스럽게 눈을 떴다.
방안은 어두웠고 나는 이불 깔린 뜨끈뜨끈한 방바닥에 누워 있었다.
자위자는 침대 위에 있는 것 같고 나는 침대와 등을 지고 있다.
그런데 내가 어디로 왔는지가 전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적어도 우리 집은 아니다.
가라오케에서 나왔던 것까지는 생각이 나는데······.
내가 기억을 애무하는 와중에도 누군가의 소심한 자위는 계속되고 있었다.
―스걱스걱 쯧쯧쯧쯧
“흐응··· 킇흥···.”
아, 이 신음소리 많이 들어봤는데···.
누구지, 누구지?
내가 누구 집에 와 있는 거지?
같은 침대에서 있지 않고 서로 떨어져서 자는 걸 보면 적어도 업키걸 애들은 아니다.
란이나 미오도 아니다.
설마 지유네 집으로 온 건가?
나는 최대한 눈을 크게 뜨고 어둠에 익숙해지길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그때였다.
―끼이익
역시나 낯익은 경첩 소리와 함께 내 앞에 있던 방문이 열렸다.
나는 다시 실눈을 떴고 자위자의 딸딸이도 뚝 멈췄다.
누군가가 조심스럽게 방 안으로 들어오며 소리가 안 나게 고리를 돌려 문을 닫았다. 그러고는 은은한 핸드폰 불빛을 통해 내가 있는 위치를 확인한다.
나는 눈을 감기 전에 침입자의 얼굴을 확인했다.
그를 통해 자연스럽게 내가 있는 곳의 위치와 자위자의 정체도 추리할 수 있었다.
여기는 라희 방이고 침입자는 란이었다.
그제야 끊어졌던 기억이 드문드문 나기 시작했다.
미오가 취한 나를 데리러 왔고, 나는 우리 집이 아닌 애들 숙소로 가자고 했다.
결국 내가 범인이네.
망란이 놈이 내 다리가 있는 아래쪽 이불 사이로 파고든다. 그러고는 내 바지와 팬티를 솜씨 좋게 벗긴 뒤, 노멀 상태로 있던 고추를 입에 물고 조심스럽게 펠라치오를 시작했다.
그 어느 때보다 정성과 존경이 깃든 입놀림이었다.
< 누가 신음소리를 내었는가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