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규율 없이는 못 사는 몸이 되어버렷 >
규율이와 나는 쫄딱 젖은 몸으로 숙소에 복귀했다.
미오는 이정아 앞에 무릎 꿇은 채 손을 들고 있었다.
선생님의 치마 속을 훔쳐보다가 걸려서 훈계 받고 있는 학생의 모습이었고, 나는 교무실로 불려온 학부모가 된 기분이었다.
야심차게 준비한 뉴 타입 플랜B가 단단히 실패했음을 알 수 있었다.
단단히 망했구나.
한편으로는 존경스럽기까지 하다.
이정아의 도덕성과 절개라는 것은 퍽커조차 뚫지 못하는 철옹성이었던 것이다.
게임으로 치면 5성급 방어캐.
완성형 탱커.
금강불괴.
이 상황이 누구보다 당황스러운 사람은 규율이었다.
“왜 그래?”
놀란 눈으로 이모에게 묻자 이정아는 대답하기도 민망하다는 듯 혀를 차며 헛웃음을 흘렸다.
“나 참 어이가 없어서···.”
미오와 나는 혹시라도 실패를 했을 시에 어떻게 대처하자는 의견을 주고받지 않았었다. S창 능력자 두 명이 세운 계획이 잘못되리라는 생각을 전혀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제부터는 즉흥 연기를 할 수밖에 없다.
미오가 내 연기를 잘 받아주기를 바랄 뿐이다.
눈치가 빠른 녀석이니 알아서 잘 하겠지···.
나는 마음의 준비를 하고 이정아에게 물었다.
“무슨 일이에요?”
“당사자한테 직접 물어보세요.”
미오가 나를 쳐다본다.
녀석의 축 처진 어깨와 그렁그렁한 눈망울이 마음 아팠지만, 나는 후폭풍을 최소화하기 위해서 화난 연기를 할 수밖에 없었다.
지금 상황에서는 내가 이정아의 생각보다 더 크게 미오를 혼내는 것이 그나마 그녀의 화를 누그러뜨릴 수 있는 방법이다.
나는 정색하며 미오에게 물었다.
“어떻게 된 거야?”
“정아 쌤한테 키스하려다가 혼났습니다.”
“하아···.”
나는 ‘당신의 전 재산을 이슬람 테러 단체에 기부했습니다’라는 말을 들은 것처럼 인상을 잔뜩 찌푸렸다.
“너 미쳤냐?”
“죄송합니다···.”
여기서 뺨이라도 한 대 후려갈기면 효과가 크겠지만 차마 미오를 때릴 수는 없었다. 하지만 때리려다가 참는 액션 정도는 취해줘야 할 것 같다.
나는 미오 앞으로 성큼성큼 걸어갔다.
그런데 가까이서 보니 이미 녀석의 왼쪽 뺨이 발갛게 부어있는 것이 아닌가.
“어? 너 얼굴 왜 그래.”
그러자 이정아가 대답한다.
“제가 뺨 한 대 때렸어요.”
“예?”
“제가 분명 하지 말라고 했는데도 멈출 기미가 안 보이길래 정신 차리라는 뜻으로 한 대 쳤어요.”
그녀는 미오를 다그치기 시작했다.
“야, 너 내가 그렇게 만만하게 보였니? 너 정도 생긴 어린 남자애가 고백하면 아이고 감사합니다, 하고 받아줄지 알았어?”
미오가 맞았다고 하니 속이 부글부글 끓어오른다.
하지만 까놓고 말하면 미오가 성추행을 하려고 했던 것이니 할 말이 없다.
“죄송합니다, 이모님. 다 제 불찰입니다. 애가 아직 어려서 그런 거니까···.”
“아니요, 절대 어리지 않습니다. 열아홉 살이면 성인이나 마찬가지예요. 그냥 저를 무시하고 만만하게 생각한 거예요.”
그녀의 말에 미오가 변명을 하듯 꿍얼거린다.
“절대 무시한 거 아니에요. 진짜 첫 눈에 반했다고요. 거짓이 아니라고요.” “이게 아직도 정신을 못 차렸네. 한 대 더 맞을래?”
“쌤도 저 좋아하는 거 다 알아요.”
“너 진짜 미친 거지? 미친 거 맞지? 미치지 않고서는 그런 말을 할 수가 없어.”
예, 제가 봐도 미친 거 같습니다.
연기자들 중에 작품이 끝났는데도 자기가 맡은 배역에서 좀처럼 헤어 나오지 못하는 배우들이 있는데 지금의 미오가 딱 그런 느낌이었다.
녀석은 굽히지 않고 이정아를 몰아붙였다.
“제가 쌤 허락 없이 스킨십 하려고 했던 건 진짜 죄송한데요, 남자가 여자 좋아하는 게 잘못된 건 아니잖아요. 쌤이 유부녀도 아니고 남자 친구가 있는 것도 아닌데 제가 좀 좋아하면 안 돼요?”
“대표님, 얘 정신과 상담 좀 받아봐야 될 것 같은데요.”
내게 그렇게 말한 이정아는 규율이를 쳐다보며 물었다.
“귤, 니가 보기에 이 상황이 정상처럼 보여?”
규율이는 대꾸 없이 미묘한 헛웃음을 지었다.
나는 그 애매한 반응의 의미를 알 것 같았다.
방금 전 본인도 내게 고백을 해버렸으니 딱히 할 말이 없는 것이다.
나이 차이로 따져도 미오와 이정아보다 나와 규율이가 더 많이 난다.
그래도 미오가 최선의 방향성을 잡은 것 같기는 하다.
까딱 잘못하면 더러운 성추행으로 몰릴 법한 사건이 나이차 많이 나는 연상연하의 로맨스 분위기로 흘러가고 있지 않은가.
내가 들어올 때까지만 해도 당장 고소할 것처럼 희번뜩 거리고 있던 이정아의 눈매가 살짝 누그러진 것만 봐도 미오의 대처가 나이스 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하지만 나까지 이 분위기에 동조하면 안 된다. 그건 2류다.
오히려 더 강하게 나가서 이정아로 하여금 되려 미안한 마음이 들게 만들어야 1류다.
나는 미오를 향해 뻥카를 날렸다.
“백지민 니가 아직 상황 파악이 안 되는구나. 넌 오늘부로 연습생 제명이야. 귀국하면 회사에서 짐 바로 빼고 어머님 모시고 와. 그리고 회사 이미지 훼손한 부분에 대해서는 법적으로 책임 물을 수도 있으니까 그렇게 알고 있고.”
분위기가 착 가라앉았다.
이정아는 애써 침착함을 유지하며 오히려 나를 달랬다.
“대표님, 그렇게까지 하실 필요는 없는 거 같아요.”
“저도 웬만하면 넘어가주려고 했는데 반성의 기미가 안 보이네요. 어제 식당에서 분명 경고를 했는데도 이런 거 보면 얘는 안 고쳐질 애예요. 지금도 이런데 데뷔하면 분명 더 큰 사고 칠거예요.”
이정아가 여전히 손을 들고 있는 미오에게 말한다.
“너 반성하고 있지? 내가 보기에 너 아까 넘어진 것 때문에 정신이 없어서 그런 거 같다. 대표님한테 빨리 죄송하다고 말씀드려.”
“아, 맞다. 너 기절했었다며. 괜찮아?”
“예··· 조금 누워 있으니까 괜찮아졌습니다.”
“병원 안 가 봐도 돼?”
“예, 괜찮습니다.”
“그럼 다행이고.”
쌀쌀맞게 대꾸한 나는 욕실 세면대 밑 수납장에서 바디타월 두 장을 꺼내 규율이에게 건네며 화제를 전환했다.
“하나는 물기 닦고, 하나는 몸에 두르고 있어. 이러다가 진짜 감기 걸리겠다.”
“감사합니다···.”
“귤, 우산 안 쓰고 왔어?”
“아니, 쓰긴 썼는데 너무 많이 와서 다 젖었어.”
“몸이 많이 떨리고 안색도 안 좋더라고요.”
규율이의 컨디션이 안 좋다는 말에 이모의 걱정 센서가 발동한다.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규율이의 이마를 짚으며 열을 체크했다.
“어디 봐, 열은 없어?”
“응, 열은 안 나는 거 같아. 아까 좀 떨었는데 안에 들어오니까 괜찮아졌어.”
“괜찮긴 뭐가 괜찮아 얼굴이 창백해졌는데. 욕조에 뜨거운 물 받아서 들어가 있어.”
“응, 그래야 될 것 같아.”
“가자.”
미오는 안에 있고 내가 입구까지 배웅을 나왔다.
이정아는 미오가 계속 눈에 밟히는 모양이다. 헤어지기 직전에 내게 조심스럽게 말했다.
“대표님, 제가 회사 방침에 대해서는 뭐라고 할 자격이 없지만요, 사건 당사자 입장에서 감히 말씀을 드리자면 제명보다는 다른 방법으로 벌을 주시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일단 회사에 들어가서 회의를 좀 해봐야 될 것 같아요. 이모님께는 다시 한 번 사과드립니다. 1차적으로는 제가 관리를 못해서 벌어진 일이에요. 죄송합니다.”
그녀는 미오가 뇌진탕 증세가 있는 것 같으니 잘 지켜보라는 말로 대신하며 내 사과를 받아들였다.
“저희 가볼게요. 들어가세요.”
“예, 조심히 들어가세요. 규율이도 몸 관리 잘하고.”
“예···.” “너 혹시라도 감기 걸리면 우산 하나 밖에 안 산 내 책임인 거야. 그러니까 절대 아프지 마.”
내 농담에 규율이는 큽, 하고 실소를 터뜨렸다.
눈 밑의 애굣살이 살짝 도드라지며 매력적인 반달 눈매가 됐다.
그 얼굴을 보고나서야 내가 녀석의 웃는 모습을 처음 봤다는 걸 깨달았다.
웃는 얼굴이 예쁘다는 말을 해주고 싶었지만 하지 않았다.
“한국에서 보자.”
규율이는 멋쩍게 웃음을 감추며 고개를 끄덕였다.
***
“어떻게 된 거야?”
방으로 돌아온 나는 이제야 미오와 이정아 사이에 있었던 일을 들을 수가 있었다.
모성애를 자극하는 공략법은 성공적이었다. 그리고 키스까지 했다고 한다.
“아, 진짜?”
“꼭지도 만졌어요.”
“뭐야, 가슴까지 만졌으면 다 넘어온 거 아닌가?”
“근데 거기서 제가 조금 성급하게 들어간 거 같아요. 꼭지를 살살 돌리다가 핀 포인트를 공략했어야 되는데 바로 팬티 속에 손을 넣으려고 했거든요. 그랬더니 거긴 안 된다고 하면서 거부하시더라고요.”
“그걸 참네.”
“그러니까요.”
“그래서.”
“거기서 멈추고 다시 공략을 했어야 됐는데 하도 오랜만에 여자 살을 만지는 거라서 저도 컨트롤이 안 됐어요. 억지로 팬티에 손 넣고 소음순 만졌더니 바로 따귀가 날아오더라고요.”
“정아 씨 정신력 하나는 진짜 인정이다.”
“근데 저한테 관심이 있는 건 확실해요. 씹창 호감도는 안 떨어졌더라고요.”
“그럼 뭐하니. 버스는 이미 떠난 것 같은데···.”
“이따가 다시 한 번 시도해볼까요?”
“지금 상황에서 다시 한다고 되겠냐···.”
“안 되겠죠··· 죄송합니다.”
“아냐, 그래도 이 정도로 넘어간 게 어디야. 그나마 니가 키스를 하고 가슴이라도 만졌으니 망정이지, 그거 아니었으면 고소했을 걸?”
“하아, 조금만 침착했으면 됐을 걸 그 몇 분을 못 견디고···. 이 놈이 문제예요, 이 놈이.”
미오는 불룩 튀어나온 고간을 때리며 자책했다.
해소되지 못한 저 딜도의 끝이 내 애널로 향하는 건 아닌지 등줄기가 서늘해졌다.
나는 황급히 말을 돌렸다.
“비가 많이 오네. 내일도 이 날씨면 비행기 못 뜨는 거 아니야?”
“근데 대표님은 규율이 누나랑 뭐 없으셨어요?”
“아, 맞다. 걔 나한테 고백했어.”
“어쩐지. 대표님 보는 눈빛이 달라졌더라고요.”
“그래?”
“예, 아까 대표님이 수건 주실 때 눈에서 꿀이 떨어지더라고요. 그래서 두 분 사이에 뭔가 있었구나 예감했죠. 그럼 이제 된 거 아니에요?”
“근데 아직 모르겠어. 나를 좋아한다고 해서 우리 회사에 들어올까?”
“들어오겠죠. 당장 안 들어온다고 해도 가능성은 확 높아진 거잖아요.”
“그렇긴 한데···. 모르겠다. 우리가 실패할 거라는 생각을 전혀 안 해서 그런지 머릿속이 하얘졌어.”
“저도 그래요.”
“아무리 생각해도 정아 씨는 진짜 대박이다 그치?”
“저 서울 가면 정아 쌤 다시 도전해도 돼요?”
“어, 어?”
“보지 만졌을 때 분명 젖어있었거든요···.”
이, 이거, 또 눈빛이 맛탱이가 갔다.
미오친놈은 이정아의 음부를 더듬은 것으로 예상되는 오른손의 냄새를 킁킁 맡으면서 상상의 나래를 펼쳤다.
“그 촉~ 촉한 점막 속 깊이 삽입을 해서 자궁경부까지 밀어 넣을 거예요. 그리고 목을 조르면서 질식 오르가즘을 느끼게···.”
“야 이 미친놈아.”
“하앍, 하앍···.”
안 되겠다.
이 금수를 그냥 나뒀다가는 오늘 밤 안에 내 애널이 따일 것 같다.
어차피 작전도 실패한 마당에 이 인간부터 확실하게 해결을 하자.
<‘강한 남자 패키지’를 사용하셨습니다.>
<‘에스테틱 갓 핸드’가 발동됩니다.> <‘봉숭아 연젖’이 발동됩니다.>
<‘불타는 태양의 미약’이 발동됩니다.>
“미오, 옷 벗고 엎드려.”
“예?”
“지금부터 내일 아침까지, 쉬지 않고 질내사정 50회에 도전한다.”
“저는 질내사정을 할 보지가 없는···.”
“있어! 여기! 여기! 여기! 여기가 보지라고, 보지!”
“흐그윽!”
***
나 [규율아, 몸은 좀 괜찮아?]
정선비 [예. 자고 일어났더니 아무렇지도 않습니다.]
나 [난 이제 공항인데 한국 가기 싫다ㅋㅋ]
정선비 [조심히 들어가세요..]
나 [내가 조심할 게 뭐 있나. 비행기 운전하는 기장님이 조심하셔야지]
정선비 [그래도 날씨가 좋아져서 다행이에요]
나 [그러니까. 날씨도 좋은데 우리 회사 안 들어올래?]
정선비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나 [나는 니가 이렇게 웃음이 많은 애인 줄 몰랐어]
정선비 [저 원래 웃음 많은데···.]
나 [근데 장난으로 하는 말이 아니라 나만큼, 우리 회사만큼 너 케어해줄 수 있는데 없다? 내가 지금까지는 이간질 하는 것 같아서 확언은 안했는데, 너 지금 있는 회사 조만간 아이돌 파트 확실하게 철수할 거야]
정선비 [그럼 그때 가서 생각해보겠습니다.]
나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한 달만 우리 회사에서 연습해보자. 그런데도 마음에 안 들면 그때는 진짜 포기할게. 내 성의를 봐서 이 정도는 해줄 수 있지 않을까?]
정선비 [이모랑 한 번 상의해볼게요]
나 [그래, 될 수 있으면 오늘 밤까지 대답 해주라]
구질구질하리만치 간곡한 애원해도 불구하고, 규율이는 이후 연락이 없었다.
전화를 해도 받지 않았다.
그렇게 녀석의 영입 마감 시간이 끝이 났다.
당장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
다음날.
유난히 피곤한 눈을 억지로 비비며 핸드폰의 시간을 확인했다.
뭐야, 이거.
알람을 오전 7시에 맞춰놨었는데 오후 2시가 훌쩍 넘은 시간이었다.
알람을 듣지도 못할 만큼 잠에 취해있었던 것이다.
깜짝 놀라 일어나려는데··· 어? 몸에 힘이 들어가지 않는다. 몸이 문제가 아니라 핸드폰을 쥐고 있는 것조차 힘이 들 정도로 몸이 무거웠다.
마치 유격훈련을 마치고 행군으로 복귀를 한 다음날 눈을 뜬 것 같은 피로감이었다.
“아, 죽겠네···.”
라고 중얼거리는데 목소리도 이상하다.
그제야 느낌이 왔다.
“아, 패널티······.”
힘이 들어가지 않는 손을 억지로 움직여 가슴에 올렸다.
젖됐다.
꾸준한 운동으로 근력을 유지하고 있던 갑빠가 말랑말랑해졌다.
그리고 은빛이의 빈유 정도로 부풀어 있었다.
A컵 후타가 된 것이다.
내일쯤이면 C컵 후타가 되어 있겠지.
인생 참 쓰다.
나 [규율아, 나 너 없이는 못 사는 몸이 되어 버렸다]
나 [나 좀 살려줘라]
< 정규율 없이는 못 사는 몸이 되어버렷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