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검스 여신 정아윤(2)-남자라면 검스 >
정아윤은 손바닥으로 입 가림막을 만들며 소곤거렸다.
“주제가 비혼주의자들의 성생활이거든요.”
“성생활이라··· 중요하죠···.”
내가 공감을 해주자 정아윤은 더욱 적나라하게 질문을 던졌다.
“오빠는 딱 봐도 업소에서 해소할 스타일은 아닌 것 같아요. 맞죠?”
어차피 성인 대 성인의 대화다. 그리고 남성 잡지 에디터인 정아윤은 이론이나 업계 동향만큼은 나보다 더 빠삭할 것이다.
나는 목소리를 낮추고 스스럼없이 대답해주었다.
“예, 회사 생활 하면서 업소를 안 다녀본 건 아니지만 성매매는 안 했어요. 안마방도 간 적 있었는데 그냥 대화만 하다가 나왔어요.”
“그럴 거 같아요. 그렇다고 보수적인 성격은 아니잖아요. 성매매를 더럽다고 생각한다든지···.”
“그런 건 절대 아니죠. 근데 개인적인 섹스 성향은 약간 보수적인 쪽이 맞는 거 같아요.”
“아, 그래요?”
“사귀거나 사랑하는 사람하고만 하고 싶어요.”
나는 마음속으로 대답을 이어나갔다.
제가 지금까지는 쭈욱 그렇게 살았거든요.
근데 어느 순간부터는 그냥 공공 딜도가 됐네요.
이제는 목욕탕에 있는 헤어드라이기처럼 누구나 버튼만 누르면 솨아, 솨아 싸대고 있습니다.
지금의 저라면 아마 아윤 씨도 가능할 거예요.
그녀의 질문이 계속된다.
“그럼 여자 친구 없이 지낸 지도 오래된 걸로 아는데 성욕은 어떻게 해결하셨어요? 그냥 자위로만 풀어요?”
나는 곁눈질로 주변 테이블의 눈치를 살피며 소곤거렸다.
“근데 이거 연어집에서 할 인터뷰는 아닌 거 같은데···.”
“아··· 장소가 조금 그렇죠?”
“많이 그런데요.”
“흐흐흫킄, 죄송해요. 제가 마감이 코앞이라서 제정신이 아니에요.”
나는 정아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고 싶었다.
일적으로는 서원이와 홍이를 맥심 표지 모델로 발탁해서 화제성에 오르게 해준 일등공신이었고, 개인적으로는 소개팅 자리를 개판 쳤던 마음의 빚이 있기 때문이다.
나 역시 엔터테인먼트 사업을 계속 이어가는 한 언젠가는 그녀의 인맥이 필요할 때가 있을 것이다. 단순히 그녀와의 인맥뿐만이 아니다. 그녀를 통해서 연결되는 인맥 고리가 중요하다.
이 바닥에서 잡지사 에디터가 무시할 만한 직군도 아니고, 당장 코앞으로 다가온 후속그룹 제작부터 도움이 될지도 모른다.
나는 머쓱해진 그녀에게 먼저 제안했다.
“아니면 이거만 마시고 조용한 데로 자리를 옮길까요? 오랜만에 만났는데 일 얘기 하는 게 조금 그렇지만, 저도 아윤 씨한테 부탁드리고 싶은 게 있거든요.”
“어떤 거요?”
“여기서 얘기하기는 좀 그렇고··· 자리 옮겨서 얘기하죠.”
우리는 주문한 음식과 생맥주 한 잔을 마신 뒤 빠르게 2차 장소로 이동했다.
혹시나 해서 검색을 해봤는데 내가 예전에 회사 친구들과 다니던 와인바가 아직 영업 중이었다.
완전한 프라이빗 룸은 없지만, 방이 여러 개인 유럽 저택 식 인테리어라서 그나마 테이블 간의 간격이 구분되어 있는 곳이다.
다행히 이제 막 오픈을 해서 좋은 자리를 배정받을 수 있었다. 2인용 테이블과 4인용 테이블이 있는 룸이었는데 우리는 2인 테이블에 앉았고 4인 테이블은 비어있었다.
정아윤은 자리에 앉기 전 잠시 화장실에 다녀왔다.
얼굴이 화사해졌다. 살짝 지워졌었던 립스틱도 다시 짙어진 걸 보니 화장을 고치고 온 것 같다.
“분위기 괜찮죠?”
“예, 너무 예쁜데요? 근데 여자가 아니라 남자들끼리 이런 데를 오셨다고요?”
“제가 말했잖아요. 저 감성충이라고.”
“아아, 이제야 어떤 스타일인지 감이 잡히네요. 오빠 남자들끼리 파스타도 먹을 수 있죠?”
“많이 먹었죠. 디저트 카페도 가고요. 서른 중반 아재들끼리···.”
“하아···.”
나는 탄식하는 정아윤의 반응이 재미있어서 한마디 더 덧붙였다.
“근데 소개팅 할 때는 무조건 가성비 좋은 곳으로 가요. 둘이 합쳐서 3만원 안 넘는 곳으로.”
그녀는 푸후훅하며 실소를 터뜨렸다.
“근데 저랑 할 때는 비싼 데로 갔었잖아요? 한식당.”
“그때는 리야가 예약한 거였죠.”
“아, 맞다. 그랬었구나. 기억난다.”
“리야 아니었으면 아윤 씨랑도 12,500원짜리 파스타 먹었을 걸요.”
“흨큭큭큭, 뭐 가격이 중요한가요.”
“중요하게 생각하는 분들이 계시더라고요. 한 번은 김밥천국 갔었는데 여자 분이 엄청 기분 나빠 하더라고요. 아무거나 괜찮다고 해서 간 건데···.”
“푸핫, 아무리 그래도 김밥천국은 아니죠!” “저도 열 받아서 더치페이 했어요.”
“푸흨!”
정아윤은 테이블에 고개를 숙이고 한참을 큭큭 거렸다.
이제 보니 웃음이 참 많다.
다른 남자들도 마찬가지겠지만, 나는 이렇게 리액션이 좋은 여자가 좋더라.
잠시 뒤 주문한 와인이 나왔다.
우리는 통통한 와인 잔을 기울이며 아까 하지 못한 인터뷰를 재개했다.
나의 제 살 깎아먹기 소개팅 일화 덕분에 서먹함은 완전히 사라졌다.
로맨틱한 조명, 생맥주의 은은한 취기, 다른 손님들과 단절된 장소도 한 몫 작용하며 아까보다 더 직설적이고 홀가분한 분위기가 연출됐다.
“오빠는 정식으로 사귀는 사이가 아니면 섹스를 할 마음이 안 든다고 하셨잖아요.”
“예.”
“그럼 지금까지 섹파도 없으셨겠네요?”
나는 분홍색 아우라가 보이기 전, 그러니까 업키걸 아이들과 성기를 교환하기 전의 시점을 기준으로 대답을 했다.
아, 그전에 제희와 섹스를 했었으니 제희를 만나기 전이라고 해야겠구나.
“없죠.”
“원나잇도 안 해보셨고요?”
“예.”
“썸은?”
“썸···? 그런 것도 딱히 없었던 거 같은데요.”
“그럼 온리 자위행위로만 성욕을 해결하신 거네요?”
“그렇죠.”
“···죄송한데 혹시 경험이 없으신 건 아니죠···?”
“큭큭큯, 설마요. 여자 친구랑은 했었죠.”
“그럼 여자 몸이 그리울 때는 없어요? 아예 안 해봤다면 모를까, 경험이 있으셨으면 가끔은 실제로 하고 싶을 때가 있잖아요.”
“으음··· 가끔 있기야 있죠. 제가 아무리 성욕이 없는 편이라고는 해도, 원초적인 본능까지 제어할 수는 없는 거니까요.”
“그럴 때는 어떻게 해요?”
“그냥 뭐··· 참는 거죠. 정 안 되면 자위를 하고요. 대부분 남자들이 똑같을 걸요?”
“그 중에는 업소에서 해결하는 사람도 있잖아요. 아니면 굳이 원나잇이 아니더라도 클럽이나 술집 같은데서 만나서 연락하다가 할 수도 있는 거고, 동호회나 채팅 어플도 있고.”
“에이, 그것도 어느 정도 외모나 능력이 되는 사람들이나 하는 거죠. 일반적인 남자들은 그냥 딸딸이에요.”
정아윤은 “크흐흑!”하며 웃음을 터뜨렸다.
“오빠가 그런 말 쓰니까 안 어울려요!”
“뭐요? 딸딸이요?”
“푸흐흐흫흫!”
딸딸이라는 단어가 이렇게 웃을 일이야?
아무래도 정아윤은 나를 엄청 순박하거나 아니면 되게 지적이고 교양 있게 본 모양이다.
나는 엇나가려는 주제를 바로 잡으며 그녀에게 역질문을 했다.
“그런 부분에서는 여자들이 조금 편하지 않아요?”
“어떤 거요?”
“여자들은 자기가 원하면 아무 때나··· 아, 아무 때라는 표현은 좀 그렇고. 음, 맘만 먹으면 남자들에 비해서는 어렵지 않게 할 수 있잖아요.”
“섹스요?”
“예.”
그녀는 굳이 부정하지 않았다.
“뭐······ 그렇긴 하죠. 아무래도 남자들이 대시를 하는 쪽이고, 여자들이 받는 쪽이니까.”
“그럼 아윤 씨는 현실 삽입이 하고 싶을 때 어떻게 해요?”
“크흐흐흨, 현실 삽입이래, 진짜 생각지도 못한 단어다, 히히힣힠. 오빠 원래 이렇게 웃긴 사람이었어요?”
“제가 웃긴 게 아니라 아윤 씨가 웃음이 좀 많은 편인 거 같은데요. 초등학생들도 쓰는 딸딸이라는 표현에서 웃지를 않나···.”
“파하하핰, 아니 그건, 오빠 입에서 나올 만한 말이 아니라서 웃겼던 거구욬!”
“아무래도 저에 대해서 뭔가 단단히 오해하고 계신 거 같은데···. 저 올해 서른여덟이거든요. 딸딸이라는 말은 중학생 때부터 썼구요.”
“푸핰!”
딸딸이라는 단어가 아주 웃음 벨이네.
테이블에 또 얼굴을 파묻은 검스 여신은 ‘크르흫크크킇흐크흨’ 변깃물 내려가는 소리를 내며 크게 웃었다.
이렇게 계속 웃어주니까 내가 엄청나게 재미있는 사람이 된 것 같다.
하지만 그건 그거고, 질문에 대한 답은 들어야지.
“아, 진짜 웃겨. 근래 들어서 제일 많이 웃은 거 같아요···.”
“웃음으로 어물쩍 넘어가려고 하지 말고요. 아윤 씨는 섹스하고 싶을 땐 어떻게 해요?”
“저요···?”
“여기 우리 둘 말고 또 있어요?” “저야 뭐···. 어······.”
“아, 맞다. 아윤 씨 클럽 좋아하지.”
“제가 클럽을요? 아닌데···.”
“그때 애들 표지 촬영할 때도 아침까지 클럽에 있다가 바로 출근한 거였잖아요.”
“···가끔 가는 거죠··· 취재 차원에서··· 트렌드 같은 것도 알아야 하고···.”
“아, 진짜 우리 이러지 마요. 저는 (3년 전 기준으로) 솔직하게 대답했는데.”
“그, 근데 갑자기 왜 내 인터뷰가 됐을까······.”
“에이, 알만한 분이 왜 이러실까. 인터뷰 하다보면 서로 질문도 주고받으면서 공감하고 그러는 거지. 혹시 경험이 없는 건 아니죠?”
나는 그녀가 내게 했던 말을 그대로 되돌려주며 캐물었다.
그러자 눈빛을 순진하게 깜빡거리면서 뻔뻔하게 대꾸한다.
“앗, 어떻게 아셨지. 저 한 번도 안 해봤는데.”
“허허, 그렇게 나오신다?”
“아 오빠 저한테 왜 그래요 진짜아아아아.”
진짜 부끄러워하네.
이런 쪽으로는 쿨할 것 같아서 마음 놓고 물어봤던 건데, 예상 외로 수줍어하니까 당황스럽다.
그래, 아무리 편하다고 해도 적당한 선은 지켜줘야지.
“뭐, 한 번도 안 해보셨다고 치고. 다음 질문 주세요.”
내 나름대로는 한 수 접어준 건데, 그녀는 내가 언짢아진 걸로 생각한 모양이다.
그제야 숙였던 고개를 들면서 내 질문에 대한 답을 하는 것이 아닌가.
“···최근에는 알고 지내던 오빠랑 했어요···.”
“예?”
“아니, 그렇게 최근도 아니구나. 작년 봄이었으니까··· 거의 1년 됐네요. 그게 마지막이었어요. 됐죠?”
“아··· 현실 삽입이 하고 싶었는데··· 아는 오빠랑 하셨다고요···?”
“그냥 술 한 잔 하다보니까 분위기에 취해서 그렇게 됐어요.”
“그럴 수 있죠. 근데 딱히 솔직한 답변을 듣고 싶었던 건 아닌··· 암튼 잘 들었습니다.”
“아, 뭐예요오오!”
발끈하는 모습이 귀엽네.
편집자가 아니라 딱 그 나이대의 여자로 보인다.
술 한 잔 하다보니까 분위기에 취한다는 말의 뜻이 이런 거겠지.
비혼주의자고 나발이고, 이미 인터뷰의 본질은 흐려졌다. 어차피 녹음도 안 하고 있다.
지금에 와서 드는 생각인데. 처음부터 내 인터뷰 따위는 정해져 있지 않았고, 그저 그녀가 대화를 수월하게 하기 위해서 즉석으로 설계한 장치였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아윤은 내게 보복하려는 것이 분명해 보이는 듯한 말투로 질문을 던졌다.
“비혼주의자 K님은 어떤 성적 취향이 있으신가요? 페티시 같은 거라든지 선호하는 체위 같은 거요. 아니면 성적으로 끌리는 여성상도 좋고요.”
“페티시··· 있죠.”
“어떤 거요?”
“다 말해요?”
“한 두 개가 아니신가보네요?”
“예, 조금 많은 편이에요.”
“아하, 성욕은 없으신 편인데 성적 취향은 많으시군요?”
“식탐이 없다고 해서 좋아하는 음식이 없는 건 아니니까요.”
“와우, 한 번에 이해되는 비유네요. 실례가 안 된다면 말씀해주시겠어요?”
정식 인터뷰가 아니라면 뭐, 나도 좀 더 편하게 해도 되겠지.
정아윤도 은근히 즐기고 있는 것 같고···.
“저 겨드랑이 좋아해요.”
“으흐음, 겨드랑이. 은근 매니아가 있는 부위죠. 그리고요?”
“음모 페티시도 있어요.”
“음모오··· 그건 저도 처음 들어보는 페티시네요.”
“그리고 골반 넓은 것도 좋아하고, 엉덩이도 좋고, 허벅지, 가슴이랑 유두, 허벅지에서 음부로 이어지는 근육, 포니테일, 양 갈래 포니테일, 손하고 발도 좋아해요.”
“···그, 그냥 여자 몸이라면 다 좋아하시는 거 같은데···.”
“아, 그리고 스타킹도 좋아요. 원래는 별 관심 없었는데 요즘에 관심이 생기더라고요.”
정아윤은 이제야 남성 잡지 에디터의 모습으로 돌아와서 핵심적인 화두를 던졌다.
탕수육 부먹, 찍먹에 버금가는 질문이었다.
“오빠는 살스파예요, 검스파예요?”
“음, 그 날 그 날 분위기나 기분에 따라서 달라지긴 하는데··· 남자라면 역시 검스죠.”
“검스죠.” 정아윤과 나의 입이 맞아 떨어졌다.
뭐 여기까지는 그럴 수 있다고 해도 그 다음 말까지 똑같은 건 조금 놀라웠다.
그것도 토씨 하나 안 틀리고 정확하게 말이다.
“살 살짝 비치는 반투명 검스.”
“살 살짝 비치는 반투명 검스?”
내가 “푸흨!”하고 헛웃음을 터뜨리자 ‘그럼 그렇지’라는 능숙한 눈빛으로 되묻는다.
“근데 그게 왜 좋아요? 살이 비치는 게 좋은 거면 그냥 살스가 낫지 않아요?”
“흠, 글쎄요··· 그냥 뭐··· 음··· 딱히 뭐라고 설명을 못 하겠네. 그냥 섹시해요.”
“흐음··· 대부분 그렇게 말하더라고요. 왜 좋은지는 모르겠는데 그냥 좋대요.”
정아윤 본인도 알고 있다는 뜻이다.
자신이 오늘 신고 나온 스타킹이 내게 섹스어필 되고 있다는 것을···.
정아윤이 몸을 옆으로 살짝 비튼다. 그러고는 한 쪽 다리를 테이블 옆으로 뻗으면서 자기는 영 모르겠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린다.
“이게 그렇게 섹시한가?”
내 시선도 자연스럽게 그쪽으로 향했다.
큽.
구두까지 벗은 맨발이었다.
아까도 느꼈지만 손도 예쁘고 발도 예쁘다.
정아윤은 쭉 뻗은 발끝을 살짝 살짝 돌려가면서 계속 백치 연기를 했다.
“이게 대체 왜 섹시하지?”
그러더니 나를 쳐다보며 능청스럽게 묻는다.
“오빠, 제 발은 예쁜 발이에요?”
“예. 예쁘네요.”
“그렇구나. 그럼 오빠 혹시 그거도 해보셨어요?”
“뭐요.”
“풋잡이요.”
“아뇨···.”
“왜요? 예쁜 발 좋아하신다면서. 여자 친구한테 해달라고 안 하셨어요?”
“그때는 그런 쪽에 관심이 없어서.”
“그렇구나. 그럼 다음에 여자 친구 생기면 해달라고 하실 거예요?”
“뭐··· 봐서요.”
“킥킥, 페티시가 그렇게나 많으신데, 속궁합 맞는 여자분 만나셔야겠어요.”
“그럼 좋죠.”
“오빠, 저 화장실 좀 다녀올게요.”
“예.”
이런 여우같은···.
사람 마음을 싱숭생숭하게 헤집어 놓고서는, 한창 재미있어질 아찔한 타이밍에 자리를 비워?
화장실로 향하는 뒷모습을 쳐다보는데 심장이 불알불알하게 뛴다.
나는 반쯤 채워진 그녀의 와인 잔을 보며 생각했다.
불타는 태양의 미약···.
효과가 어떤지 한 번 써볼까···?
< 검스 여신 정아윤(2)-남자라면 검스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