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40화.검스 여신 정아윤(1)-성욕은 어떻게 해결해요? (143/371)

< 검스 여신 정아윤(1)-성욕은 어떻게 해결해요? >

―여보세요. 

 목소리 살살 녹는다. 

 남심을 홀리는 정아윤의 간질간질하고 사근사근한 목소리 톤은 여전했다. 

 “예, 아윤 씨. 저 도착했어요.” 

 ―아이고, 빨리 오셨네요. 어디쯤이에요? 

 “홍대역 3번 출구 앞에 있는 건물이요.” 

 ―차는 어떻게 했어요? 

 “여기 건물에 유료주차 된다고 해서 여기에 댔어요.” 

 ―아, 그럼 제가 그 앞으로 갈게요. 1층에 피자집 있는 데죠? 

 “예, 맞아요. 피자 업.” 

 “한 5분 정도 걸릴 것 같은데···.” 

 “천천히 오세요. 3번 출구 앞에서 기다릴게요.” 

 정아윤의 퇴근 시간에 맞춰 그녀의 회사가 있는 연남동에 도착했다. 

 정아윤이 내게 먼저 연락을 하고 만나고 싶어 하는 이유는 대충 짐작이 간다. 

 그녀가 맥심 편집팀을 그만 두고 옮긴 회사는 맥심과 비슷한 컨셉의 남성향 잡지인 ‘맨스로망’. 

 창간한 지는 1년 정도 됐고 그녀도 창간 멤버로 들어간 것 같은데, 아직까지는 맥심의 아성이 너무 강해서 힘을 못 쓰고 있는 것 같다. 

 자리를 잡기에는 아직 시기상조이기는 하나, 무엇보다 잡지 판매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인터뷰 인물들의 네임밸류나 퀄리티가 맥심에 비해서 떨어진다. 

 당장 맥심만 해도 표지 모델에 따라서 판매부수가 천차만별인데 아류로 시작한 잡지사는 오죽할까. 

 그래서 업키걸 아이들의 인터뷰를 부탁하려는 것 같다. 

 예전에 서원이와 홍이가 맥심 표지 모델을 했을 때, 네 가지 버전 모두 최단 기간 품절 및 최다 판매량을 기록하면서 일본 그라비아 배우 아이자키 시노의 기록을 깨버렸지. 

 물론, 그때와는 업키걸의 위상이 완전히 달라졌기 때문에 B급 잡지 인터뷰에 응해줄리 없다는 걸 그녀도 알고 있다. 

 그래서 정식으로 섭외 요청을 하기보다는, 회사 대표인 나와 개인적으로 친분을 쌓아나가면서 실낱같은 희망이라도 이어가는 것이다. 

 비단 인터뷰뿐만이 아니라 대부분의 방송 프로그램도 마찬가지다. 

 섭외가 어렵거나 방송에서 보기 힘든 연예인들을 섭외하려면 그들의 개인 경조사는 물론이고 심지어 가족들의 기념일까지 챙기면서 몇 년간 공을 들이는 것이 다반사다. 

 내가 업키걸 활동에 손을 뗀 것을 알면서도, 아직까지 내게 안부 문자를 하거나 선물을 보내는 작가, PD들도 많다. 

 “저 사람 업키걸 실장님 아닌가?” 

 “어, 맞네. 이제는 대표잖아.” 

 지하철역 출구 앞에서 정아윤을 기다리는데 길을 지나는 젊은 친구들이 나를 알아보는 게 느껴졌다. 업키걸, 츤장님, 뮤노 실장 등등, 나와 연관된 단어들이 귓가에 들린다. 

 방송이 나갈 때는 직접 와서 사진을 요청하는 사람이 많았는데 지금은 먼발치에서 지켜보는 정도였다. 

 인기에는 나름 초연하다고 생각했었는데 그 뜨거웠던 관심도가 점점 줄어드는 걸 체감해보니 내심 서운한 마음이 든다. 

 인기라는 게 이래서 무서운 거고, 많은 연예인들이 우울증에 시달리는 건가보다.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다가 무심코 앞을 봤는데 정아윤의 모습이 보였다. 

 나는 손을 들어서 내 위치를 확인시켜주며 그녀에게 다가갔다. 

 얼굴을 보는 건 거의 2년 만인 것 같다. 처음 봤을 때가 26살이었으니 지금은 28살이겠구나. 

 내가 나이가 먹긴 먹었다는 게 상대적으로 실감이 났다. 

 그때는 일적으로 만나서 몰랐는데 이렇게 보니까 아직도 애기다, 애기. 

 생각해보니 제희보다도 어리네. 

 한때나마 호감을 가졌던 사람이라서 그런가. 만나기 전까지는 별 생각이 없었는데 막상 얼굴을 보니 심장이 기분 좋게 뛰었다. 

 가슴께까지 자연스럽게 웨이브 진 갈색 머리칼. 

 단추를 채우지 않은 검정색 체크무늬 롱코트, 턱을 살짝 가리는 목이 긴 회색 터틀넥 니트. 

 무릎 위 한 뼘 정도 길이의 하이웨스트 체크 치마. 

 그녀는 업키걸 아이들과 내가 붙인 자신의 비공식 별명이 ‘검스 여신’이라는 것을 알기라도 하는 것처럼 살이 비치는 연한 검정색 스타킹을 신고 왔다. 

 그리고 분홍색 아우라···. 

 정아윤과도 섹스를 할 수 있다는 뜻이다. 

 나는 음흉한 마음을 떨쳐내고 가볍게 너스레를 떨며 인사를 건넸다. 

 “아이고, 오랜만입니다.” 

 그녀는 자신이 가장 예뻐 보이는 웃음을 지으며 달달한 목소리로 내 안부를 물었다. 

 “잘 지내셨어요? 아, 늦었지만 베스트 커플상 수상 축하드려요.” 

 “아··· 그거 되게 창피해요.” 

 내가 부끄럽게 얼굴을 붉히자 정아윤의 장난기가 발동했다. 

 “메소드 연기도 잘 봤어요.” 

 “으으음··· 오랜만에 봤는데 놀리지 마요···.” 

 “큭큭큭큭. 뭐 드실래요? 오빠가 오셨으니까 제가 쏠게요.”  어차피 계산은 내가 할 테지만 말이라도 고마웠다. 

 우리는 목적지도 정하지 않은 채 일단 연트럴파크 안쪽으로 걸음을 옮기면서 대화를 나눴다. 

 “저는 아무거나 괜찮으니까 아윤 씨가 정하세요.” 

 “음··· 뭐가 좋을까.” 

 “회사가 이 근처면 평소에 가는데 있지 않아요? 저는 오랜만에 와서 잘 모르겠네요.” 

 “오빠 여기 와보셨어요?” 

 “예전에 회사 동기들이랑 와인 마시러 가끔 왔었어요. 이 근처에서 소개팅도 몇 번 했었고···.” “아, 맞다. 오빠 소개팅 전문가라고 했었구나. 요즘도 해요?” 

 “마지막 소개팅이 아윤 씨였어요.” 

 “푸흐하하핳! 앗···.” 

 정아윤은 본인이 너무 크게 웃은 걸 깨닫고는 내 쪽으로 붙으며 주위 눈치를 살폈다. 주변을 지나던 여자 두 명이 우리를 쳐다보자 그제야 한걸음 떨어지며 목소리를 낮춘다. 

 “생각해보니까 제가 오빠 생각을 못하고 너무 트인 데서 만났네요.” 

 “응?” 

 “뮨 샐럽이시잖아요. 지금도 사람들이 오빠 쳐다보는데요.” 

 “아···. 뮨 샐럽 이제 끝난 거 같아요.” 

 “왜요?” 

 “아윤 씨 기다리는 동안 개미 새끼 한 마리도 다가오지 않았어요.” 

 “쑥스러워서 그렇겠죠. 저랑 이렇게 다니다가 열애설 터지면 어떡해요, 막 이래, 큿큿큿.” 

 “사람 만나는 걸로 열애설 터졌으면 백 번도 넘게 터졌을 걸요. 근데 예전에 비해서 연남동에 사람이 별로 없네요. 평일 낮 시간대라서 그런가?” 

 “많이 죽었죠. 다른 날에 비하면 이것도 많은 편이에요.” 

 “아, 그래요? 저 한창 왔을 때는 사람이 너무 많아서 대기 걸고 막 그랬는데.” 

 “저기 골목 안쪽은 빈 가게도 많아요. 요즘은 연희동이랑 망원동 쪽이 더 활성화 된 것 같더라고요. 아, 오빠 혹시 연어 좋아하세요?” 

 “연어 좋죠.” 

 “그럼 우리 연어 먹으러 갈래요? 괜찮은 데가 한 곳 있긴 있는데.” 

 “가요.” 

 반 지하에 위치한 아담한 가게였다. 

 바 안에 있던 남자 직원이 정아윤을 알아보고 인사를 건넨다. 

 내 얼굴도 알아보고 송구스럽다는 듯 꾸벅 인사를 하기에 나도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Bar 자리를 제외하면 테이블은 5개 밖에 없었다. 독특하게도 그 중 한 곳은 허리를 굽혀야 하는 반 복층 형식의 좌식 테이블이었는데, 테이블 자리는 거기밖에 없었다. 

 신발도 벗어야 했기 때문에 정아윤이 난감해하며 묻는다. 

 “자리가 좀 그렇네···. 그냥 다른 데로 갈까요?” 

 “저는 원래 감성충이라서 이런 분위기 좋아해요. 근데 아윤 씨 불편하면 옮기시고요.” 

 “저도 괜찮긴 한데··· 오빠가 불편하실까봐···.” 

 “그럼 그냥 앉아요.” 

 나는 진짜 분위기가 좋았는데 정아윤은 내가 예의상 하는 말인 줄 알았나보다. 

 계속 고민을 하기에 내가 먼저 신발을 벗고 자리에 앉았다. 

 그녀도 그제야 평상에 걸터앉아서 구두를 벗었다. 

 으음···. 

 지난 5일간 업키걸 아이들의 스타킹 플레이에 뇌가 절여진 건가. 

 반투명 검스에 감싸인 정아윤의 발을 보니 고추에 찌릿 반응이 온다. 그것도 모자라서 순간적으로 노팬티에 스타킹만 입고 있는 그녀의 모습을 상상해 버렸다. 

 스타킹도 하필이면 내가 가장 약한 타입이다. 

 살이 비치는 얇은 검정에 발가락 앞에 마감이 안 돼 있는 누드토. 

 여기에 팬티 라인까지 없으면 완벽하지. 

 팬티스타킹이 아니라 반 스타킹이면 인싸 댄스까지 출 수 있고···. 

 업키걸 다섯 명 중에는 서원이가 딱 그런 스타일의 검정색 반 스타킹을 준비해 왔었다. 

 아··· 발바닥에 코 박고 냄새 맡으면서 다른 쪽 발끝으로 젖꼭지 문질러 달라고 하고 싶···. 

 움찔! 

 내, 내가 지금 무슨 생각을···!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그쪽으로 생각이 흘러가는 내 스스로에게 소름이 끼쳤다. 

 혹시나 해서 정보창을 확인해봤는데 디오니소스의 물약도 꺼져 있었다. 

 아침에 일어나서 5번이나 사정을 해놓고서 벌써 현타가 끝난 거야? 

 예전에는 자위를 한 번 하면, 그것도 몽정을 피하기 위해서 의무적으로 하고 나면 일주일 넘게 현자가 되었는데? 

 “오빠, 메뉴판 한 번 보세요.” 

 “어, 아윤 씨가 알아서 시키세요.” 

 “그럼 일단 기본으로 시키고 모자라면 더 시킬까요?” 

 “그래요.” 

 “술은 뭘로··· 아, 오빠 미팅 있으시다고 했지, 참.” 

 “아윤 씨 술 드시게요?” 

 “저는 맥주 한 잔 하게요. 내일부터 마감 들어가면 스트레스 이빠인데 미리 대비해야죠. 여기 호가든 생이 너무 맛있어요.” 

 “그럼 같이 해요.”  “에이, 음주 미팅은 안 되죠. 그냥 저만 간단하게 한 잔 할게요. 그리고 오빠 차 가지고 왔잖아요.” 

 내 걱정을 해주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녀는 내심 함께 마시면 좋겠다는 뉘앙스를 풍기고 있었다. 

 물론 나도 간단하게 맥주 한 잔 정도는 마시면서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다. 

 술을 마신 상태로 규율이 이모를 만나는 게 예의는 아니지만 거기에 대한 대비책은 있다. 

 업키걸 섹캉스 때 받은 아이템 중에 ‘RU-69’라는 게 있는데, 소주 10병까지는 안 취하게 해주는 작업용 아이템이란다. 아직 사용은 안 해봤지만 술이 취한 상태에서 사용을 해도 괜찮다고 하니 규율이를 만나러 가기 전에 쓰면 될 것 같다. 

 나는 정아윤을 안심시켰다. 

 “대리 부르면 돼요. 어차피 미팅도 술 마시는 자리라서 몇 잔 정도는 하고 가도 상관없어요.” 

 “히히, 그럼 같이 마셔주실래요?” 

 “콜.” 

 엄청 좋아한다. 

 정아윤은 아래쪽 바를 향해 주문을 했다. 

 “사장님, 저희 기본으로 두 개 주시고요, 맥주도 주세요. 호가든 생 두 잔요.” 

 “예, 알겠습니다.” 

 “술 먼저 주세용!” 

 “옙.” 

 우리는 먼저 나온 맥주로 입가심을 하며 대화를 이어나갔다. 

 “그래도 남성향 잡지 쪽이 적성에 맞으신가 봐요.” 

 “적성에 맞다기 보다는 하던 일이니까 하는 거죠. 나름 재미도 있고요.” 

 “스카웃 돼서 가신 거예요?” 

 “뭐, 그런 셈이죠. 연봉에 눈이 멀어서 흑흑···.” 

 “남자 친구는요?” 

 “남자 친구? 아아, 그 드래곤이나 유니콘 같은 거요?” 

 “···죄송합니다.” 

 “오빠는 여자 친구 있어요?” 

 여자 친구는 없는데 여자 친구 이상의 존재들은 득실거립니다. 

 하지만 그렇게 말을 할 수 없었던 나는 그녀가 했던 말을 그대로 하며 능청을 떨었다. 

 “여자 친구? 아아, 그 스핑크스나 불사조 같은 거요?” 

 “큭큭큭큭, 저도 죄송합니다. 이제는 형수님이 뭐라고 안 하세요? 저희 소개팅 주선해주셨던 분이 형수님 맞죠?” 

 “예, 지금도 집안 행사 있을 때마다 죄인 취급 받아요.” 

 “오빠 혹시 비혼 주의 같은 건 아니죠?” 

 “아니죠.” 

 “근데 왜 여자를 안 만나요?” 

 인간 딜도로 사는 것도 빠듯한데 여자 친구라뇨. 

 내 인생은 이미 망했어요. 

 “오빠 여자 보는 눈 엄청 까다롭죠?” 

 “제 생각에 까다로운 건 아니에요. 저 외모는 진짜 안 보거든요. 당연히 이쁘면 좋지만 저는 만났을 때 느낌을 많이 보는 거 같아요. 성격이나 코드 같은 거.” 

 “음, 코드는 진짜 중요한 거 같아요. 저도 나이가 들고 보니까 외모보다는 성향이나 코드 맞는 사람한테 끌리더라고요.” 

 “스물여덟이면 한창 땐데.” 

 “저도 그렇게 생각했었거든요? 근데 제 남사친들 얘기 들어보니까 여자 나이 스물여덟이면 상폐 각이래요. 저 그 말 듣고 엄청 충격 받았잖아요.” 

 “에이, 그건 아니다. 그리고 아무리 친구 사이라고 해도, 요즘에 그런 말 하면 진짜 실례 아닌가?” 

 “사회에서 들었으면 저도 한마디 했을 텐데, 워낙 어렸을 때부터 친한 애들이라서 저를 거의 남자로 봐요.” 

 “아아, 그럼 뭐···.” 

 “그럼 오빠는 결혼 생각은 있긴 있는 거네요?” 

 “그쵸. 근데 지금 하는 일도 있고··· 이제는 거의 될 대로 되라예요.” 

 “제가 이번에 쓰는 기사 주제가 비혼 선언한 남자들 얘기거든요.” 

 “아···.” 

 “혹시 오빠 주변에는 없어요?” 

 “제 친구들은 거의 다 결혼했죠. 그리고 안 한 애들도 못 해서 안 하는 거지 일부러 안 하는 사람은 없어요.” 

 “그렇구나.” 

 “왜요? 인터뷰 할 사람이 없어요?” 

 “아뇨, 다 따긴 했는데, 데이터는 많으면 많을수록 좋은 거니까요.” 

 그녀는 맥주 한 모금을 마신 뒤 물었다. 

 “오빠가 비혼주의자라고 생각하고 인터뷰 한 번 해주실래요?” 

 “저요?” 

 “예, 익명으로요. 엔터테인먼트 관계자 K씨로 해드릴게요.” 

 “재밌겠네요.” 

 정아윤은 장난삼아 물어봤는데 이게 웬 횡재냐 싶은 표정으로 얼굴을 밝혔다.  “어? 진짜 해주시는 거예요?” 

 “그래요.” 

 “진짜죠? 저 진짜 녹음해요?” 

 “예.” 

 승낙이 떨어지기 무섭게 핸드폰 녹음기능을 켠다. 그러고는 손바닥으로 입 가림막을 하며 목소리를 한 톤 낮춰 물었다. 

 “비혼주의자 K님은 평상시에 성욕을 어떻게 해결해요? 자위 말고요.” 

 아, 이런 거였어···?

< 검스 여신 정아윤(1)-성욕은 어떻게 해결해요?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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