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넣을 때는 잘 넣었는데 >
“죄송합니다 대표님. 술을 오랜만에 마셨더니 순간적으로 감정이 폭발해버린 거 같아요···.”
“아니야. 하고 싶었던 말 있으면 다 해.”
지유의 눈물을 보니 마음이 무거워진다.
생각해보면 얼마나 힘들었겠는가. 평범한 사람들이 생각할 수 있는 그 이상의 막막함이었을 것이다. 오죽하면 자살 충동까지 들었을까.
가뜩이나 대인관계의 폭이 좁고 폐쇄적일 수밖에 없는 미혼부모 센터인데, 그 안에서조차 일상적인 대화가 불가능했으니 담당 복지사 외의 사람들과는 제대로 된 교류도 못 했다고 한다. 하지만 나는 틱을 고칠 수 있는 해결책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녀석이 처한 상황
을 진심으로 헤아리지 못했다. 어떻게 하면 빨리 섹스를 해서 틱 장애를 고칠 수 있는지에 대해서만 고민했지.
소속사 대표로서 옳은 처사였을지는 몰라도 보라색 운명으로 이어진 보호자로서는 조금 쪽팔리다. 진심어린 위로와 공감이 우선됐어야 했는데···.
나는 식탁 위의 티슈를 두 장 뽑아서 건넸다.
지유는 한 차례 감정이 지나가고 나니 내심 민망하다는 눈치였다. 눈물을 닦고 코를 훌쩍이며 말문을 연다.
“···대표님이 제 성병 고쳐줄 수 있다고 하셨잖아요.”
“그랬지.”
“오래 걸릴 까요···? 혹시 지루세요?”
“솔직히 말하면··· 음······ 하기 나름이야.”
“제가 어떻게 하면 돼요? 노포 자지 마시쩡. 저 진짜 하루라도 빨리 고치고 싶거든요. 완치까지는 바라지도 않아요. 그냥 야한 말이랑 욕만 안 나오면 돼요.”
마침내 말을 해야 할 때가 왔구나.
돌려서 말할 것도 없이 이건 무조건 직구를 던져야 한다.
나와 섹스를 하면 된다, 라고.
하지만 그 전에 꼭 알아야 할 게 있다.
바로 은빛이 아빠 되는 놈의 정체와 현재의 관계다.
지유는 부모님들이 아이를 지우기로 합의한 뒤 도망쳤고, 그 이후로는 부모님과 연락을 끊었다고 했지만 그놈과의 관계에 대해서는 말을 하지 않았다. 그저 부모님들에 의해 강제로 떨어졌다고만 했다. 하지만 지금이 무슨 집 전화기로만 통화를 하는 90년대도 아니고,
마음만 먹는다면 연락 정도는 얼마든지 할 수가 있는 시대 아닌가.
내 생각은 이렇다.
남자 애 역시 아기를 낳자고 했으니 둘 사이에는 비밀리에 연락이 오가고 있을 수도 있다. 다만 현재 활발하게 활동 중인 보이그룹 멤버라서 지유가 최대한 비밀을 유지하고 있는 거지. 물론 녀석도 조심해야 할 때이다. HAK정도면 2티어 중에서도 상위권쯤 된다.
만약 이런 내 가설이 맞다면, 지유는 미혼모가 아니라 유부녀로 봐야 한다. 혼인신고도 하지 않았고 왕래도 거의 없지만, 그래도 녀석이 아이의 아빠이고 지유와 좋은 감정을 유지하고 있으니 말이다. 그래서 지유에게 탁 까놓고 말했다.
“지유야, 하나만 물어볼게. 이건 우리가 치료를 시작하느냐 마냐 할 정도로 중요한 문제니까 솔직하게 대답해줬으면 좋겠어.”
“예···.”
“혹시 애기 아빠랑 지금도 연락해? 내 생각에는 할 것 같은데.”
잠시 머뭇거리던 지유는 솔직하게 대답해주었다.
“가끔 톡은 와요···.”
“가끔? 얼마나?”
“한 달에 한두 번 정도 꼴릴 때요.”
“가장 최근에 연락한 건 언제야?”
“아··· 잠시만요. 젖치기, 젖치기, 젖젖젖!”
지유는 핸드폰을 확인했다. 채팅창의 날짜를 확인해봐야 알 정도라면 최근에 연락이 온 것은 아니라는 뜻이다.
“마지막으로 연락 온 건 작년 10월 25일이요···.”
“두 달 넘었네.”
“예···. 해외 일정까지 시작돼서 바빠진다고 했어요.”
과연 그럴까?
현재 우리나라 아이돌 중에서 세 손가락 안에 들 정도로 빡빡한 스케줄을 소화하고 있는 업키걸도 채팅창에서 떠들 시간 정도는 있다.
“이름이 뭐야?”
“지혁이요···.”
“아.”
HAK 7명 중 가수와 연기를 병행하고 있는 메인급 멤버였다. 근데 걔 이미 스캔들 터진 애 아닌가?
내 기억으로는 데뷔하고 나서 한창 인기가 올라올 때 유명 쇼핑몰의 피팅모델이랑 열애설이 터졌었다.
물론 소속사에서는 지인 모임에서 몇 번 본 사이라고 빠르게 해명했다. 하지만 얼마 뒤 여자 애가 SNS를 통해 연인 사이라는 증거 사진을 공개해서 역풍을 맞았다.
이때다 싶어서 올라오던 근거 없는 루머들은 차지하고라도, 지혁은 소속사에서도 데뷔 이전부터 관심병사 급으로 관리를 하는 멤버라고 알고 있다.
왜 그랬는지 이제야 제대로 이해가 된다.
소속사에서는 녀석이 연습생 시절부터 지유와 연애를 했고, 그것도 모자라 애까지 낳은 미혼부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으니 그럴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사실 지유가 애 아빠에 대해서 끝까지 비밀을 고수했더라도 내가 알아내고자 한다면 얼마든지 알아낼 수 있었다. 지유가 먼저 마음을 터놓는 게 좋을 것 같아서 기다려준 거다.
“솔직하게 얘기해줘서 고마워.”
“다른 사람은 몰라도 대표님한테는 처녀가 아닌 걸 미리 말씀을 드렸어야 되는데 죄송해요···. 저 섹스 진짜 잘해요. 아임 굿···.”
“나는 충분히 이해하지. 그럼 애기 낳은 이후에 지혁이 얼굴 본 적은 있어?” “아뇨···.”
“그럼 애기도 실제로는 한 번도 못 봤겠네?”
“예. 제가 사진이랑 동영상은 매일 보내주긴 하는데 실제로 노포자지를 본 적은 없어요.”
지유는 내 얼굴을 똑바로 쳐다보지 못했다. 자기도 지혁의 마음이 떠났음을 어느 정도 예상하고 있는 것 같았다.
아이돌이 데뷔 전 사귀었던 연인과 계속 사귈 확률은 그들이 공중파에서 1위를 할 확률보다 더 희박하다.
그나마 두 달 전까지 연락이 왔던 것도 아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인정하고 싶지 않은 건지, 아니면 마지막까지 실드를 쳐주려는 건지 지혁이 했던 말을 변명처럼 말했다.
“자기가 빨리 성공할 테니까 그때 같이 살자고 했어요. 그리고 정산 받으면 생활비랑 화대도 보내준다고 했어요.”
“그 말 한 지도 꽤 된 거 같은데.”
“예··· 쫌 되긴 했죠···.”
“음···.”
사람이 화장실 들어갈 때랑 나올 때가 다르다는 말은 연예인의 데뷔 후를 정확히 표현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물론 다른 직종에서 성공을 거둬도 마음이 변하기 마련이지만, 연예인이라는 직업적 특수성과 성공 이후 주변에서 받는 유혹의 스케일은 일반적인 성공의 기준을 초월하기 때문이다. 나이가 어리면 어릴수록 초심을 잃기는 더 쉽고.
나도 ‘그림자의 빛’을 통해 샐럽이라는 수식어를 들었던 사람으로서 어느 정도 경험할 수 있었는데, 마치 어릴 때 처음 가본 놀이동산의 자유이용권을 얻은 기분이었다.
내 생각에 지혁이는 지유와 은빛이라는 존재를 이미 잊었을 것이다. 단순하게 잊으면 다행이지, 자신의 앞길을 막는 짐짝처럼 생각할 수도 있다.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을 안고 사는 기분일 것이다.
냉정하게 생각하면 나와 지유 입장에서는 차라리 그놈이 나쁜 놈이 돼주는 게 낫다. 그래야 죄책감 없이 섹스하고 지유의 틱을 빨리 고칠 수 있으니까.
물론 이건 나의 가설일 뿐 팩트는 아니다.
녀석의 말대로 진짜 톡 하나 보낼 시간도 없이 바쁘고 피곤할 수도 있다. 가능성은 아주 희박하지만···.
“지유야 만약에···.”
“귀두 끝 사마귀!”
“아··· 말만 들어도 끔찍하다.”
“죄송합니다. 불알까시 해드릴까요?”
“아니, 그건 나중에 하고. 너 만약에 지혁이가 너랑 은빛이를 잊었으면 어떻게 할 거야?”
“어쩔 수 없죠. 저는 충분히 이해해요. 해바라기 정도야 뭐···.”
미리 생각하고 있기라도 한 듯 단호하고 빠른 답변이었다.
“너는 걔 아직 좋아해?”
“그냥 음··· 그냥··· 아무래도 은빛이한테는 떡 잘 치는 아빠가 있어야 되니까요···.”
“그건 맞는 말이긴 한데, 나는 지유 니 마음을 물어본 거야.”
“솔직히 저는 세 명이랑 떡 쳐도 상관없어요.”
“영영 안 봐도 상관없어?”
“저 혼자서 은빛이를 키울 여건만 된다면요.”
“내가 왜 이런 걸 물어봤냐면, 내가 니 틱을 고쳐줄 수 있는 해결책이라는 게 도덕적으로 약간 문제가 있거든. 아니 약간이 아니지. 아주 많이.”
“아··· 불법이에요···?”
“불법은 아니야.”
지유는 이제 그 내용을 공개해달라는 듯 질문을 멈추고 내 입술이 열리기만을 기다렸다.
나는 지혁이가 모녀에게 마음이 없다는 전제하에 폭탄을 투하했다.
“너랑 나랑 섹스를 해야 돼.”
BoooooooM!
“예? 제 팔뚝만한 크기의 흑인이랑요?”
“아니, 평범한 크기의 나랑.”
“대표님이랑 제가 씹질을··· 아, 죄송합니다. 섹스를···.”
“내가 당연히 미친놈처럼 보일 거야. 그래도 속는 셈치고 딱 일주일만 믿고 따라 와줘. 만약에 일주일 후에 나아진 기미가 안보이면 그때는 경찰에 신고해도 돼.”
“아··· 보지 꼴려, 씹물 좔좔.”
염병. 평상시에 대화를 할 때는 틱과 일반어의 괴리감이 워낙에 커서 명확하게 구분할 수 있었는데 주제가 섹스 쪽으로 흘러가다보니 나도 헷갈리기 시작한다.
“나 지금 되게 사이비 교주 같지?”
“아, 아뇨···.”
말은 아니라고 했지만 얼굴은 엄청 혼란에 빠져있었다. 뭐라고 말을 이어야 할지 몰라서 당황스러운 표정으로 입술만 달싹거린다.
이게 정상적인 반응이다.
다른 아이들처럼 유대감이나 신뢰감을 형성한 상태가 아니었기 때문에 당연히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다.
하지만 지유는 이내 마음을 먹었는지 흔들리던 눈빛에 힘이 생겼다.
몇 가지 질문을 시작한다.
아마 불치병 환자가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검증 안 된 민간요법에 매달리는 심정일 것이다.
“···지금 해요?”
“어? 아니야. 니가 편할 때 말해줘.” “죄송한데 혹시 정식 치료법··· 은 아니죠?”
“당연히 아니지. 그렇다고 해서 민간요법도 아니고 무슨 무속신앙이나 종교 의식 같은 것도 아니야. 그냥 너랑 나 사이에만 통용되는··· 하아, 솔직히 이걸 뭐라고 말해야 되는지 나도 잘 모르겠다. 그냥 우리가 이해하지 못할 초자연적 현상이라고 해둘까?”
내가 말하고도 어처구니가 없어서 헛웃음이 나왔다. 중요한 건 그나마도 이게 가장 현실적으로 풀어서 한 답변이라는 것이다. 적어도 아우라니 상태창이니 하는 말은 안 했으니까.
지유가 내 얼굴을 흘긋흘긋 쳐다본다. 녀석은 맥주 한 캔에도 눈빛이 살짝 풀려 있었다. 얼굴도 꽤나 빨갛다.
“죄 지은 사람처럼 사람을 왜 그렇게 훔쳐봐? 당당하게 봐, 당당하게.”
“아뇨···.”
“궁금한 거 있으면 물어봐.”
“······죄송한데 저랑 대표님이랑 몇 살 차이 나요···?”
“내가 올해 서른여덟 됐거든?”
“그럼 열여덟 살 차이네요···.”
“그렇지. 궁합도 안 보는 열여덟 살 차이네.”
“안 보는 게 아니라 못 보는 거··· 흠.”
“뭐, 왜, 뭐. 말을 왜 하다 말아.”
“아닙니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죠.”
제법이네. 너스레도 떨 줄 알고. 그리고 또 한 가지.
방금 막 깨달은 건데 최근 대화에서는 틱 증상이 안 나타났다. 가끔씩 한 두 마디 정도는 건너뛸 때가 있긴 했지만 지금은 한 두 마디 정도가 아니라 꽤 길게 안 했다.
원래 불편하거나 긴장을 하면 증상이 더 심해진다고 했으니 그 반대로 보면 되는 건가? 내가 그 정도로 편해진 거?
지유가 캔 맥주를 쳐다보며 묻는다.
“저 하나만 더 마셔도 돼요?”
“괜찮겠어? 너 눈 약간 풀렸는데.”
“안 그래도 한 캔 다 마시는 힘들 것 같고요, 반 정도면 딱 좋을 거 같아요.”
“그래, 알아서 해. 대신 내일 골골 대면 안 된다.”
“예, 알겠습니다.”
이것 봐라.
지금도 정상적이고 자연스럽게 대화를 나눴다. 처음 있는 일이었다.
나는 녀석이 의식을 하면 또 나빠질까봐 일부러 언급은 하지 않았다.
컵에 따라서 마시려는지 싱크대 위 찬장으로 손을 뻗는다. 하지만 키가 닿지 않아서 까치발을 들어야 했다.
“꺼내줘?”
“아니에요, 할 수 있을 거 같아요.”
“그래, 그럼. 자주적이라서 좋네.”
“큭큭.”
근데 정말 무심결에 내려다 본 건데.
꿀꺽···.
지유 얘 발이 너무 예쁘다.
발뒤꿈치가 아기 피부처럼 너무 깨끗하고 뽀송뽀송해 보였다. 발바닥은 연분홍색을 띠고 있어서 과즙미까지 터진다. 발톱도 투명하고 모양도 예뻤다.
아오, 내가 진짜, 미오 그 인간 때문에 병신 같은 발 페티쉬까지 생겨서 애들 발이나 훔쳐보고 있고···.
옷은 조금 타이트한 쭉티와 자주색 바탕에 노란색별이 200개 정도 그려진 요란한 수면바지를 입고 있었는데 손을 위로 뻗으면서 티셔츠가 조금 올라갔다.
그 바람에 바지춤 위로 허리 라인이 살짝 드러났다. 출산을 하고도 몸매가 크게 무너지지 않았다는 안무 트레이너의 말대로 군살이 없이 매끈하게 빠져 있었다.
뭐 연습생 애들이 안무 연습할 때 흔히 드러나는 부위였기 때문에 딱히 야한 느낌은 없었고.
그런데 방금, 바지 고무줄이 헐렁한지 바지가 조금 내려갔다는 게 문제였다.
하얀색.
나는 애써 시선을 피했다.
“아, 안 닿네···.”
“야, 내가 내려줄게 나와. 그러다 떨어뜨릴라.”
“이상하다, 분명 넣을 때는 잘 넣었는데···.”
“그새 키가 줄었나 보지.”
“크히히히, 설마요.”
신기하네.
틱 증상이 아예 없어졌다. 그리고 장난스럽게 웃는 모습이나 웃음소리 또한 영락없는 갓 스무 살 소녀였으니, 순간적으로 얘가 틱 장애가 있다는 걸 잊어버릴 정도였다.
생각해보니까 이렇게 순수하게 웃는 얼굴도 처음 보는 것 같다.
그 얼굴을 보고서야 애가 애를 낳았다는 말이 확 와 닿는다.
“어떤 거 꺼내? 플라스틱 컵이랑 머그컵 있네.”
“그거, 머그컵이요.”
“어, 여기.”
“감사합니다.” 드라마에서처럼 짧은 공간에서 서로 동선이 엇갈리면서 같이 넘어진다거나 몸이 부딪치면서 얼굴이 붉어지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확실하게 느꼈다.
내가 높은 찬장의 컵을 대신 꺼내주는 그 사소한 모습에서 나에 대한 지유의 호감도가 확 올라갔다는 것을.
< 넣을 때는 잘 넣었는데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