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3화.흔한 암캐일 뿐입니다 (105/371)

< 흔한 암캐일 뿐입니다 >

“어, 지유야. 도착 했어?” 

―예, 회사 질주름 앞이에요. 

“어? 어디 앞이라고? 무슨 룸?” 

―회사 앞이요. 지금 건물에 들어왔어요. 

“그럼 엘베타고 바로 6층으로 올라오면 돼.” 

―예, 알겠습니다. 귀두 맛 캔디, 꿀처럼 달콤해 니! 

후우, 험난하다, 험난해. 

전화를 끊은 뒤 내가 직접 엘리베이터 앞까지 가서 지유를 마중했다. 한창 꾸미는 거 좋아할 나이인데 저번 만남 때 입었던 옷을 그대로 입고 온 것이 안쓰럽다. 

“오는데 얼마나 걸렸어? 지하철로 왔지?” 

“예. 비아그라 먹고도 세우는데 40분 정도 걸렸어요.” 

“어? 아, 아···.” 

이건 무슨 언어영역 시험 보는 것도 아니고, 한마디 할 때마다 독해를 해야 하는 수준이다. 정작 출제자는 자기가 무슨 문제를 냈는지도 모르는데 말이다. 

“40분이면 꽤 오래 걸리는구나. 차로는 20분인데.” 

“두 번 갈아타야 되더라고요. 머더퍽! 퍽!” 

“아, 너랑 은빛이 살 방 어제 계약했거든? 가구나 짐 같은 건 이번 주까지 들어올 거고. 애들이랑 인사 끝나면 보러 가자.” 

지유는 입구에 붙은 업키걸과 립밤의 프로필 사진을 보며 미안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예···. 감사합니다.” 

“6층이 사무실이고 연습실은 9층에 있어.” 

“연습생이 몇 명이에요?” 

“너까지 포함해서 14명. 다음 주부터 오디션 시작해서 계속 뽑을 거야.” 

“예.” 

“직원들도 너에 대해서 알고 있으니까 그냥 편하게 인사해도 되는데··· 너는 좀 불편하지?” 

“예··· 아무래도 초면인 분들 앞에서는 더 긴장이 되니까 니플 빔! 증상이 좀 심해지는 것 같더라고요. 수위도 세지는 것 같고···.” 

“그래, 그럼 직원들하고는 어느 정도 얼굴이 익은 다음에 인사하는 게 낫겠다.” 

지유가 변명을 하듯 말을 잇는다. 

“근데 원래는 이 정도까지는 아니었거든요. 대표님 귀두 찌꺼기 냄새를 맡은 이후로 조금 심해진 것 같아요.” 

“야, 나 그런 거 없고 냄새도 안 나거든.” 

“예? 아, 죄송해요··· 말 헛 나온 건데···.” 

긴장을 풀어주려고 했던 섹드립인데 녀석의 얼굴이 엄청 빨개졌다. 

“미안하다. 내가 너무 진지하게 말했나보다. 농담이야.” 

“아, 예··· 이런 씹샊··· 흠! 흠!” 

“근데 진짜 냄새 안 나. 오히려 향기 나.” 

“예···.” 

나를 만나고 나서 틱 증상이 심해졌다는 건가. 

라희의 경우와 비슷한 것 같다. 라희도 재활치료를 통해서 기적처럼 하반신 마비 증세가 호전됐지만 나를 만난 이후로 다시 나빠지지 않았던가. 

이쯤 되면 내가 원흉이 아닌지 괜히 죄책감이 든다. 

“여기, 이쪽으로.” 

대표실로 가는 길에 직원들과 목례를 하는 정도의 가벼운 인사를 거친 뒤 보라색 2기가 기다리고 있는 대표실로 들어갔다. 

지유에게는 아이들 앞에서만큼은 진짜 편하게 해도 된다고 말을 해놨는데 말처럼 쉬울 지는 잘 모르겠다. 

소파에 앉아 있던 라희, 란, 미오가 일어서서 동시에 인사를 건넨다. 

“안녕하세요!” 

지유도 “처음 뵙겠습니다.”하며 깍듯하게 허리를 숙였다. 제 딴에는 활기차게 한다고 목소리 톤도 높이고 표정도 밝게 지은 것 같은데, 근본적으로 위축된 모습은 지울 수가 없었다. 

인사가 끝나자 곧바로 어색한 정적이 흐른다. 

지유의 시선은 란이에게 조금 오래 머물렀다. 걸그룹 멤버로서 치명적인 사건에 연루돼 저녁 뉴스까지 오르내린 몸인데다가 고작 며칠 전에도 검색어에 오르며 이슈가 됐던 녀석이니 모를 리가 없겠지. 

우리 회사 연습생이라는 건 당연히 알고 있었겠지만 이 자리에 나와 있는 건 조금 의외라는 눈치였다. 

“앉자.” 

“예.” 

나는 혼자 앉아 있던 미오 옆에 지유를 착석시킨 뒤 차와 음료가 구비된 테이블 쪽으로 이동했다. 

“지유 뭐 마실래? 따뜻한 드립 커피도 있고 시원한 것도 있는데. 시원하거 먹고 싶으면 냉장고에서 알아서 꺼내가.” 

“아, 그럼 저는 핸드잡으로 내린 따뜻한 커피로 주세요.”  움찔. 

드, 드디어 시작인가···. 

마치 스타트 총성이라도 울린 것처럼 핸드잡이라는 단어가 나오는 순간부터 실내의 공기가 확 달라졌다. 

왠지 모를 긴장감. 

마주 앉아 란이와 미오는 눈빛을 교환하며 애써 침착한 척 했다. 하지만 란이 쪽은 첫 판부터 신호가 왔는지 입술을 매만지는 척하면서 올라가려는 입 꼬리를 가리고 있었다. 

미오는 그런 란이의 얼굴을 보다가 웃음이 터질 것 같은지 미리 자리를 피한다. 

“대표님 커피 제가 내릴게요. 말씀 나누세요.” 

“어, 그럴래?” 

녀석은 나와 스쳐지나가면서 간신히 참았다는 듯 눈을 꾹 감았다. 

나도 경험해봐서 안다. 당연히 장애를 비하하거나 우습게 생각하는 건 아니다. 하지만 웃음은 그와는 다른 문제였다. 

자신의 코드에 뭔가가 꽂히면 장례식 장에서도 참을 수 없는 것이 웃음 아닌가. 

녀석들에게는 미리 언질을 주긴 했지만 이 정도로 자연스럽게 구사할 줄은 몰랐을 것이다. 

그나마 핸드잡이라는 용어를 모르는 라희만이 순수한 표정으로 앉아 있었다. 

“라떼로 드려요, 아메리카노로 드려요? 종류별로 있어요.” 

미오가 커피 캡슐을 확인하며 묻자 지유의 2차 공격이 시작된다. 

“아, 저는 정액라떼요.” 

“아, 정··· 음, 라떼요··· 예. 시럽 넣어 드릴까요?” 

“아뇨, 안 넣어 주셔도 돼요. 정액 좋아! 푹찍푹찍!” 

“흡···! 흠, 흠···.” 

앗. 란이가 위험하다. 터지려는 웃음을 간신히 헛기침으로 승화시켰지만 아무래도 음어를 많이 아는 만큼 취약할 수밖에 없었다. 

물론 언어 쪽이라면 미오도 만만치 않다. 짧은 머리카락을 요크셔테리어 꽁지처럼 귀엽게 묶은 미오는 아랫입술을 연신 깨물며 캡슐을 커피머신에 삽입했다. 

두 녀석은 이미 그른 것 같다. 내가 중심을 잡아야 한다. 

테이블 상석 소파에 앉은 나는 대화 사이에 어색한 간격을 두지 않으려고 최대한 덤덤하고 빠르게 말을 이어 붙였다. 우선 아이들의 이름과 나이부터 정리하며 상호간 소개의 시간을 가졌다. 

올해 22세가 된 미오가 가장 언니였다. 

미오, 1999년생 22세. 씨바와 동갑. 허, 씨바가 벌써 22살이라니···. 

망란, 2000년생 21세. 

지유, 2001년생 20세. 리야와 동갑. 

라희, 2003년생 18세. 

그래도 한창 때의 여자 아이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으니 얼추 느낌은 나왔다. 

애들이 아직 제대로 꾸미지 않아서 그렇지 기본 바탕은 다들 평균 이상이다. 

물론 다섯 명 모두가 비주얼 라인이라고 평가 받는 업키걸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업나니들과는 또 다른 종류의 개성과 매력이 풍겼다. 

하아, 겉으로 보면 이렇게나 예쁘고 귀여운 아이들인데···. 

그 면면을 살펴보면 진짜 한숨이 절로 나온다. 

나는 새로 온 지유에게 이렇게 네 명의 연습생만 따로 부른 이유에 대해서 설명을 해주었다. 

“지유야.” 

“함몰유두. 예?” 

“다른 연습생들하고 여기 모인 네 명은 성격이 조금 달라. 너희는 무조건 데뷔조야.” 

“아아, 예.” 

“구성은 5인조고, 나머지 한 명도 조만간 구해질 거야. 여기까지 온 이상 중간에 그만 두거나 빠그러질 일은 없어. 앞으로는 일반 연습생들하고 스케줄도 달라질 거고, 프리패스이니만큼 더 빡세고 타이트해질 거야.” 

자, 여기까지가 일반적인 얘기였고 이제는 서로의 민낯을 알아볼 시간이다. 

그동안 곰곰이 생각을 해봤는데, 아이들 각자가 가지고 있는 특수성을 서로서로 알아야 할 필요성이 있을 것 같다. 그래서 오늘 자리를 마련한 것이기도 하다. 

이제 막 합류한 지유야 그렇다 쳐도, 몇 개월 째 같이 살고 있는 라희와 란이조차도 서로에 대해서 모르는 것이 많다고 한다. 그런데 그 둘과 미오 사이에는 그보다 더 큰 벽이 있다. 

서로 존중을 하거나 조심스럽기보다는 아직까지는 원팀이라는 개념이 없어서일지도 모른다. 

처음부터 모든 것을 공유하고 함께했던 업키걸 멤버들과는 반대의 상황인데, 앞으로 정신과 상담도 함께 받아야 하고 숙소생활도 해야 하는 만큼 이 자리에서 어느 정도는 서로에 대해서 얘기를 나눠야 할 것 같다. 

문제는 미성년자인 라희였다. 얘한테는 어디까지 오픈을 해야 할지 아직도 고민이다. 

섹스중독, 자신을 남자라고 착각하는 정신병에 페티시 클럽 종사, 미혼모에 음란 틱까지, 진짜 거를 타선이 없다. 

간략한 소개가 오간 이후 아이들은 그 누구도 먼저 입을 열지 않고 내가 주도해서 대화를 이끌어가기를 바라는 눈치였다. 

이게 내가 걱정하는 부분이다. 

눈만 마주치면 아무말 대잔치가 벌어지던 업나니들을 생각하면 숫기가 없어도 너무 없는 것이다. 

숫기가 없을 수밖에 없다. 

각자가 가지고 있는 비밀 또는 신체적 약점이 있으니 섣불리 나서서 친화력을 발휘할 수가 없는 것이다. 

가장 실력이 있고 연습시간이 긴 멤버는 혼자 미성년자인 막내이다. 

맏언니인 미오는 실력과 경력이 가장 부족하고 스스로를 남자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항상 한걸음 뒤에 물러서 있을 수밖에 없다. 

란이는 본인의 과거가 팀과 회사에 피해를 준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위축이 돼 있는 상태다. 

역설적으로 말하면, 그들을 한데로 묶을 수 있는 것은 서로의 그런 특이한 치부와 과거, 약점이라고 생각한다. 

왜 심리 치료 중에서도 비슷한 상처를 가진 사람들이 한 자리에 모여서 대화를 나누고 이해해주는 모임이 있지 않은가. 

나는 오늘 그것을 할 생각이다.  “자, 내가 오늘 이 자리를 만든 진짜 이유가 있어.” 

내가 운을 떼자 어색한 분위기 속에서 서로의 눈치만 보던 녀석들이 기다렸다는 듯이 내게 집중했다. 

나는 우선 드러나 있는 란이의 과거부터 짚고 넘어갔다. 

“너희도 알다시피 란이는 걸그룹으로 복귀하기에 조금 어려운 상황이야.” 

“죄송합니다···.”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란이가 머리를 조아렸고, 나는 바로 고개를 저었다. 

“아니, 탓하는 거 아니니까 죄송할 필요 없어. 다들 너 못지않게 한 가지 이상씩 하자가 있으니까. 하자라는 말이 거슬리겠지만 냉정하게 말하면 하자 맞아. 란이는 마약하고 남자 아이돌이랑 뒹굴다가 현행범으로 잡혔어. 그리고 그것 말고도 또 문제가 있어.” 

란이가 나를 쳐다본다. 설마 섹스중독까지 말할 것이냐는 눈빛이었다. 

나는 애써 그 시선을 무시하며 말을 이었다. 

“솔직히 라희 때문에 이걸 다 오픈해야 되나 말아야 고민을 했었는데 지금 결정했어. 라희가 또래들보다 조금 순진하기는 해도 열여덟 살이면 알건 다 아는 나이야. 그리고 앞으로 한 팀이 되면 최소한 계약기간 동안은 가족보다 더 가깝게 지내는 사이가 되는데, 라희

도 언니들에 대해서 알 건 알아야 된다고 생각해. 그래서 여과 없이 다 말할게.” 

라희가 언니들의 눈치를 살피는 가운데 나는 바로 말을 이었다. 

“란이는 하루라도 섹스를 안 하면 못 견디는 섹스중독자야. 그리고 그 욕구를 내가 풀어주고 있어.” 

폭탄발언과 반비례되는 끔찍한 적막이 흐른다. 

란이와 나의 관계에 대해서 처음부터 다 알고 있던 미오만이 침착함을 유지했고 라희와 지유는 주먹만 해진 눈으로 란이와 나를 번갈아 쳐다봤다. 

섹스중독이야 그렇다 쳐도 내가 섹스파트너라는 사실에서 큰 충격을 받았을 것이다. 

나는 다음 폭탄을 투척했다. 

이게 또 핵폭탄 급이지. 

“그리고 미오는 사실 남자야.” 

정확히는 남자인 척 하는 여자지만, 미오 스스로가 아직 정체성을 찾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에 일단은 그렇게 말을 했다. 

“예? 히익!” 

나를 대신해서 미오에게 마사지를 받은 적이 있던 라희는 양쪽 뺨에 손을 올리며 입을 쩍 벌렸다. 

지유는 자기가 잘못 들었나 하는 표정으로 미간을 찌푸리며 음란한 말을 쉴 새 없이 내뱉었다. 

“자지스 크라이스트. 풕, 머더풕커! 120일간의 근친상간 프로젝트 제1탄, 외할아버지 불알 쪽쪽쪽! 하악하악!” 

란이는 벌떡 일어서서 설마하는 표정으로 미오의 가슴을 더듬는다. 

“뭐야, 가슴 있구만.” 

얼굴이 벌게진 미오는 내게 했던 개도 안 물어갈 변명을 되풀이했다. 

“여유증이야.” 

“그럼 자지가 달렸다고요? 진짜 언니가 아니라 오빠라고요?” 

“어.” 

미오는 뒤트임이 있는 H라인 롱 치마를 입고 있었다. 

란이 놈은 고추의 유무를 확인해보려는 생각인지 억지로 미오의 가랑이를 벌려서 치마 속으로 손을 집어넣었다. 그러고는 화들짝 놀라며 뒷걸음질 쳤다. 

“아, 뭐야! 진짜 자지 있잖아! 심지어 커요!” 

“읍, 읍··· 자지 좋아! 읍, 질내사정이 제 행복의 원천 입니다! 아, 죄송해요. 대표님 발가락 빨면서 책상 모서리에 클리 자위하고 싶어요! 좆! 빨통!” 

“뭐야, 언니도 섹스중독이에요?” 

“아, 아니요, 그게 아니라 저는 전국 2천만 남성의 정액 받이가 되고 싶은 흔한 암캐일 뿐이에요. 아, 나 어떡해. 죄송합니다. 읍! 읍!” 

지유는 결국 스스로 입을 틀어막아서 틱 발언을 봉인했다. 

그 와중에 소리 없이 놀라고 있던 라희가 다리를 불규칙적으로 떨어대며 소파 밑으로 주저앉았다. 

“아아아, 어떡해. 대표니임 저 다리 경련 오는 것 같아요오···.”

< 흔한 암캐일 뿐입니다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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