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서원VS이소란-언니 거에는 금테라도 둘렀어요? >
서원이는 연습생들에게 업키걸을 준비하면서 겪었던 고충과 노하우 등을 30분 정도 얘기해주었다.
“지나고 보면 추억인데 그때는 진짜 힘들었어요.”
놀고 있네.
마치 금수저로 태어난 배경을 기반으로 탄탄대로를 걸으면서 성공한 사람의 강연과도 같았다. 사실 서원이는 가정환경이 어려웠다 뿐이지 아이돌로서의 데뷔 과정은 재벌3세급 로열로더나 마찬가지였기 때문이다.
녀석은 일단 가창력을 타고난 재능러다. 예체능계에서의 재능이라는 건 치트키나 다름없다.
그 실력을 바탕으로 아마추어 듀엣 무대에서 가요계의 전설 설대진과 파트너가 되어 역대급 무대를 펼친 끝에 최고기록을 찍으며 대중에게 얼굴을 알렸고, 그 이후로는 알리야라는 걸출한 후원자 덕분에 궁궐과도 같은 저택에서 초호화 레슨을 받으며 연습생 생활을
했다.
그 연습생 생활조차 고작 몇 개월뿐이었지. 성격도 자기중심적이고 히스테릭해서 오히려 주변 사람들이 힘들었다. 가령 김윤호라든지 뮤노 실장이라든지 랑깡깡 같은 사람들···.
추억팔이를 끝낸 서원이는 질의 응답 시간으로 넘어갔다.
“혹시 저한테 궁금한 거 있어요? 활동에 대해서도 좋고 아니면 개인적인 거라도.”
소정이라는 깨방정 연습생이 손을 번쩍 들고 묻는다.
“데뷔하시기 전까지는 모태솔로라고 하신 인터뷰를 봤는데요, 혹시 데뷔하신 뒤에는 사귀셨어요?”
다른 연습생들은 회사 대표인 내 눈치를 살피면서 꺄르르륵 소리치며 좋아했다.
하지만 그들이 원하는 대답은 나오지 않았다.
“당분간은 남자 만날 생각 없어요. 남자 만날 시간에 연습을 더 하는 게 생산적이니까.”
기만자여, 방금 전까지 나랑 쾌락을 위한 생식행위를 하지 않았느냐.
그럼 나는 남자가 아닌 제3의 성이란 말인가.
하지만 연습생들은 현자의 설파에서 깊은 깨달음이라도 얻은 것처럼 진중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메모를 하는 아이도 있었고. 이래서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라는 건가보다.
나일롱 현자는 란이가 있는 쪽을 쳐다보며 냉소적으로 대답을 이었다.
“이 바닥 생각보다 더 냉정해요. 운이 좋거나 마케팅 빨로 반짝 인기 정도는 얻을 수 있겠지만 거기서 죽기 살기로 매달리지 않으면 떨어지는 건 진짜 순식간이더라고요. 아이돌 중에서도 그런 그룹 많이 있잖아요.”
그것은 분명 아이컨택 시절 란이를 저격하는 발언이었다.
다른 연습생들은 저격이라고까지는 생각 못하더라도, 서원이가 말한 그룹 중에서 아이컨택과 란이가 포함됐다는 것 정도는 쉽게 알 수 있었다.
잠시 어색한 기류가 감돌려던 찰나에 연습생 하나가 손을 든다.
란이었다.
아이들의 시선이 집중된 가운데 녀석이 서원이에게 질문을 던졌다.
“제가 고음이 많이 약하거든요. 그런데 선배님이 고음 내실 때보면 너무 편안해 보이는데 비법이나 어떤 요령이 있는지 알고 싶습니다.”
내 입장에서는 의외의 행동이었다.
무섭다고 징징 거릴 때는 언제고, 란이 쪽에서 먼저 손을 내밀어서 교점을 만들려는 행위였기 때문이다. 가요계 데뷔로 따지면 서원이보다는 자신이 선배인데도 깍듯하게 선배 대접을 해주면서 말이다.
허를 찔린 건 서원이였다.
자기는 저격을 했는데 오히려 존경을 담아 정상적으로 받아쳐버리니 자괴감도 들고 자존심도 상하겠지.
예전 같았으면 표정부터 확 틀어졌을 텐데 그래도 사회 물 좀 먹었다고 표정관리는 된다.
“고음은 진짜 타고 나야 되는 거예요. 고음에 집착하지 말고 그냥 자기 음역대에서 편하게 부르는 게 중요한 거 같아요.”
거기까지 했으면 훈훈하게 마무리 되었을 것을, 자존심이 상한 서원이는 굳이 하지 않아도 될 말을 덧붙여서 인성을 드러냈다.
“어차피 그쪽은 보컬 파트도 아니잖아요? 그렇다고 댄스 파트도 아니고. 고음 연습할 시간에 차라리 개인기 연습을 하는 게 좋을 거 같은데. 개인기는 예능에서 써먹을 수라도 있으니까.”
“예, 감사합니다!”
망란이조차 어른스러워 보이게 만드는 한서원 효과였다.
질의 응답과 사진촬영을 끝으로 서원이와 연습생들의 공식 일정은 끝이 났다.
서원이는 음식이 담긴 쇼핑백을 아이들에게 건네며 자신의 파워를 과시했다.
“눈치 보지 말고 먹고 싶은 대로 다 먹어요. 대표님 내가 이기니까.”
연습실에는 “갓서원! 갓서원!”이 크게 울려 퍼졌고 아이들은 개미처럼 간식 꾸러미 쪽으로 몰려들었다. 단 한사람만 빼고.
“대표님, 란이는 제가 데려가서 따로 잡아줄게요.”
“어디에서.”
“애들 숙소에서요.”
“응? 옆에 남는 연습실도 많은데 굳이?”
“걱정하지 마요. 해코지 안할 거니까. 오늘 보니까 노래에 진지하게 관심 있는 거 같아 보여서 나도 진지하게 말해주려고 그래요.”
원래는 진지하게 안하려고 했다는 소리네···.
나는 서원이의 요구대로 둘만의 시간을 만들어주었고 두 사람은 숙소로 이동했다. 망란이 [저 맞으면 어떡해요?ㅎㄷㄷ]
나 [ㅋㅋㅋㅋ 자기가 맞으면 맞았지 누구 때릴 정도로 막 나가진 않아]
망란이 [혹시 무슨 일 생기면 전화할 테니까 빨리 와줘요ㅠㅠ]
나 [알았어]
***
“누구랑 톡해? 대표님?”
서원은 자신의 몇 발자국 뒤에서 걸어오며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는 란에게 물었다. 하얗게 서려서 나오는 입김이 그녀의 냉랭한 심정을 대변해주는 듯하다.
란은 솔직히 시인했다.
“예···.”
“뭐라고.”
“저 언니한테 맞는 거 아니냐고요···.”
“풉, 내가 널 왜 때리냐. 혹시 나한테 맞을 짓 한 거 있어?”
란은 자신과 김윤호의 관계를 서원이 알고 있음을 인지하고 있었다. 그러니 차마 거짓말은 못하고 침묵으로 임했다.
서원은 대답을 들을 것도 없다는 듯 바로 빈정거렸다.
“아, 맞을 짓은 안 했구나. 죽을 짓을 했지.”
“···죄송합니다.”
“아냐, 이젠 됐어. 너한테 오염된 거 내가 다 소독했으니까.”
그것이 밖에서 들을 수 있는 두 사람의 마지막 목소리였다.
이후의 대화는 숙소에 도착하고 나서야 이어졌다.
마치 자기가 윤호의 안방마님이라는 것을 각인시키려는 듯, 먼저 숙소로 들어간 서원은 란의 방을 턱짓으로 가리키며 물었다.
“니 방이 여기였지?”
“예.”
“어우, 안에 들어와도 춥네. 보일러 안 틀어놨니?”
“예, 나갈 때는 꺼놔요. 바로 틀게요.”
마치 결혼한 아들 집에 방문한 어머니와 며느리 같은 태도였다.
란의 방에 들어간 서원은 냉랭한 눈빛으로 침대를 노려본다.
“여기서도 했어?”
“예?”
“대표님이랑 여기서도 했었냐고.”
했었다.
시트가 정액과 질액으로 흠뻑 젖을 만큼 했었다.
하지만 란은 이번만큼은 거짓말을 하며 고개를 저었다.
“아뇨!”
“그럼 앉아도 되겠다.”
침대에 다리를 꼬고 걸터앉은 서원은 발목 부위의 스타킹이 주름진 것을 확인하고는 주욱 잡아당겨서 정리했다. 윤호가 편의점에서 새로 사다준 스타킹이었다.
발바닥에 묻은 먼지까지 탁탁 털어낸 서원은 컴퓨터를 시선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내가 노래 잡아줄 테니까 제일 자신 있는 걸로 불러봐.”
“예.”
란은 반주를 틀기 위해 PC를 켰다. 그녀가 택한 노래는 당돌하게도 서원이 솔로로 불러서 차트 1위까지 찍었었던 드라마 OST였다.
반주의 첫 소절을 듣자마자 서원은 떫은 감이라도 먹은 듯 고개를 저었다.
“이거 나도 부르기 어려운건데. 뭐 일단 해봐.”
흠, 흠, 목을 가다듬은 란은 책상 위에 있던 드라이 빗을 마이크처럼 잡고 노래를 시작했다.
하지만 마이크의 음향 효과를 전혀 받지 않은 생목소리는 마치 한겨울에 바깥으로 내몰린 알몸과도 같았다. 성대가 느끼고 있는 긴장과 떨림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평소 실력보다 훨씬 못 미친다는 것을 란이 스스로도 느꼈지만 그것을 의식하면 의식할수록 더 긴장만 될 뿐이었다. 그래서 결국 가사까지 틀려버렸다.
서원은 입모양으로 가사를 따라 부르고 손가락으로 무릎을 두드리며 경청했다. 그러다가 1절이 끝나자마자 직접 스페이스 바를 눌러서 MR을 멈췄다. 한탄 섞인 어조로 묻는다.
“너 이거 레슨 받은 곡 아니지?”
“예.” “그런 것 같더라. 현동쌤이 이렇게 가르쳐주실 분이 아니거든. 현동쌤이나 염 대표님 앞에서 이렇게 불렀으면 진작에 짤렸지.”
“그냥 제가 제일 좋아하는 노래라서요···.”
“일단 선곡부터 미스. 선곡도 실력인 거 알지?”
“예.”
“그리고 나를 따라할 거면 아예 모창을 해버리든가, 니 목소리로 부를 거면 확실하게 부르든가 해야지.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니잖아.”
“죄송합니다. 긴장을 너무 많이 해서···.”
“내가 긴장한 것도 감안 안 했을까봐? 긴장한 걸 떠나서 그냥 못 불렀어. 노래가 아니라 음정 박자만 간신히 맞춰서 주절거린 거잖아.”
“예···.”
“끝음마다 콧소리를 왜 그렇게 넣어? 너는 그게 섹시하다고 생각하는 거 같은데, 뭐든지 적당히 해야지 듣는 사람은 계속 거슬려서 노래에 집중이 안 되잖아.”
“예···.”
“1절 사비 부분 한번 틀어봐.”
서원은 목도 풀지 않은 상태로 후렴 부분의 가성 파트를 편안하게 불렀다.
란은 온몸에서 소름이 돋았다. 무대에서 마이크를 통해서 들을 때보다 생목소리가 더 좋았기 때문이다. 두 손바닥이 자기의 의지와 관계없이 마주치며 소리를 낸다.
“대박···.”
서원은 기를 꺾으려고 시범을 보여준 건데 기가 꺾이기는커녕 감탄하는 란이가 못마땅하다. 그래서 헛웃음을 흘리며 비아냥거렸다.
“좋아?”
“예, 진짜 좋아요···.”
“하···. 야, 너는 그래도 앨범도 냈었고 경력도 어느 정도 있잖아.”
“예.”
“그런데 우리 막내보다 노래를 못 부르면 어떡하냐. 이건 재능의 문제가 아니라 노력의 문제야.”
“예, 저도 알아요.”
“알아?”
“그래서 요즘에 마음 다잡고 진짜 열심히 노력하고 있어요.”
“노력이 중요한 게 아니라 잘하는 게 중요한 거지. 너는 그냥 재능이 없어.”
어쩌라고.
방금 전까지는 노력의 문제라고 하더니, 말이 또 바뀌었다.
란도 이제야 비난을 위한 비난이라는 것을 알아차리고는 더 이상 대꾸를 하지 않았다. 그러자 그걸 또 트집 잡는다.
“기분 나빠?”
“아니요. 안 나빠요.”
“안 나빠? 기분 좀 나빠서 자극받으라고 한 건데 기분이 안 나쁘면 어떡해. 그건 최소한의 자존심도 없다는 거잖아.”
말하는 족족 함정이 도사리고 있었다.
아예 작정을 하고 왔구나.
란은 생각했다.
김윤호 대표는 분명 업키걸 서열 최하위이니 적당히 구워삶을 수 있다고 했는데, 이 정도가 업키걸 서열 최하위면 다른 인간들은 어떻다는 건지···.
요나 언니는 자기보다 나이도 많은 이런 인간을 대체 어떻게 컨트롤 하는 거냐고.
막상 마주한 서원이 예상보다 더 빡빡하자 란은 슬슬 진땀이 나기 시작한다.
“죄송합니다···.”
“됐다. 물이나 갖다 줘. 생수 있니?”
“예.”
“새 거로 갖다 줘. 니가 마시던 거는 불결하니까.”
“예···.”
란이가 주방으로 나간 사이, 서원은 란이의 책상서랍을 뒤지며 검열까지 시도했다.
업키걸 멤버 중 누구보다 프라이버시를 중요시 생각해서 독립까지 한 주제에, 질투와 분노에 눈이 멀어 판단력을 상실한 것이다.
란이 500ml 생수병과 컵을 들고 왔을 때 서원의 손에도 무엇인가가 들려있었다.
서원이 경멸에 찬 표정으로 묻는다.
“이게 뭐야?”
“아···.”
엄지와 검지의 최소면적만을 사용해서 간신히 들고 있는 그것은 리얼한 음경모양 실리콘 딜도였다.
란이 김윤호 대체제로 사용하던 것이다.
아무리 그래도 이쯤되면 왜 남의 물건을 뒤지냐며 화를 냈어야 마땅하지만 이미 주도권을 빼앗긴 란은 뭐라고 대답도 못한 채 우물쭈물 거리고 서 있을 뿐이다.
물론 속에서는 천불이 나고 있었지만 꾹 참고 있었다.
하지만 그 억누르고 있던 마그마가 서원의 한마디에 뻥 터져버렸다.
“어우, 더러워. 천박하고 불결해. 이런 걸 어떻게 안에다 넣어? 안 찝찝해?”
노래 실력을 욕하는 건 상관없다. 외모를 비하해도 참을 수 있다.
하지만 개인의 성적 취향과 성벽을 모욕하는 건 란이의 상식으로는 용납할 수 없는 일이었다. 누구나 자신만의 판타지와 성벽이 있기 나름이고 서원 역시 윤호와 그렇고 그런 사이라는 걸 알고 있는데, 자기만 고고하고 순결하다는 척 가식 떠는 그 모습만큼은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처음으로 까칠하게 대응했다.
“언니는 섹스 안 해요?”
“뭐?”
“언니 보지는 뭐 금테라도 둘렀냐고요. 클리가 다이아몬드라도 돼요?”
“마, 말하는 거 봐···.”
“언니도 대표님이랑 존나 떡 쳤잖아요. 오늘도 하고 왔고요. 아까 회사에서 얘기할 때 씹에서 질싸한 좆물 흘러나온 거 누가 모를 줄 알아요?”
떡, 씹, 질싸, 좆물···.
서원으로서는 입에 담지도 못할 메차쿠차한 단어의 나열이었다.
가슴등등하던 여우는 고추 먹은 벙어리가 되어버렸고 어찌나 놀랐는지 딸꾹질까지 튀어나왔다.
< 한서원VS이소란-언니 거에는 금테라도 둘렀어요?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