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절미절 집착여우(2)-소독하게 바지 벗어봐요 >
업키걸 아이들이 다니는 청담동의 미용실.
오늘 연습생 간담회가 있는 서원이를 픽업하기 위해 왔다.
일이 조금 커졌다.
서원이는 원래 란이에게 원 포인트 레슨을 하려고 한 건데, 어차피 하루 시간을 빼서 회사로 올 거면 차라리 연습생 전원을 대상으로 강의를 해달라고 내가 부탁한 것이다.
제발 단둘이 있게 하지 말아달라는 란이의 부탁도 있었고···.
미용실에 도착한 나는 1층에서 직원들과 인사를 하고 서원이가 메이크업을 받고 있는 2층으로 올라갔다.
“어, 뮤노 대표님 오셨네. 대표님, 안녕하세요!”
미용실 원장보다는 서글서글한 요리연구가 느낌이 나는 원장이 서원이의 메이크업을 직접 해주고 있었다.
나는 서원이와 거울을 통해 눈인사를 나눈 뒤 오랜만에 만난 그녀와 얘기를 나눴다.
“잘 지내셨어요? 외국 갔다 오셨다면서요.”
“예, 케이팝이 대단하긴 한가 봐요. 유럽에서 우리나라 걸그룹 메이크업이 인기가 너무 많아서 팔자에도 없는 해외 세미나를 다 했네요.”
“해외에 분점 내시는 거 아니에요?”
“어휴, 이번에 나갔다 와서 느낀 건데 저는 하라고 해도 못하겠어요.”
“근데 원장님이 직접 하시는 거 처음 보는 거 같은데.”
“업키걸급이면 이제 제가 해드려야죠. 그쵸 서원 씨?”
“아아아, 왜 자꾸 놀려요.”
“놀리긴. 꼬맹이들이 이렇게 잘 커져줘서 대견해서 그러지. 다른 아이돌 뒷담화 하다가 싸움 났던 게 엊그제 같은데, 홓호호호홓.”
아, 생각난다 그거···.
당시 움직이는 시한폭탄이었던 서원이랑 리야가 여기에 같이 다니던 보이그룹의 욕을 하다가 그쪽 매니저한테 걸려서 내가 대신 무릎 꿇고 사과했던 적이 있었지.
그 팀이 바로 란이한테 마약 먹이고 놀던 에이텐션이다.
“눈 살짝 위로 떠보세요, 서원 씨.”
서원이의 아이라인을 그리면서 사람 좋게 너스레를 떤 원장이 내게 되묻는다.
“근데 대표님 이제 연기도 해요?”
“연기요?”
“얘기 들어보니까 어디서 연기 하셨다고 하던데. 드라마예요? 영화?”
“아······.”
수치스럽다.
예능시상식에서 이벤트 삼아 했던 발연기가 여전히 화제에 오르고 있었다.
내 음낭 친구들 사이에서는 박제가 되어 단톡방 능욕짤로 돌고 있기도 하다.
있는 그대로 얘기해주자 원장은 특유의 웃음을 터뜨리며 좋아했다.
“홓홓호호홓, 한 번 봐야겠다.”
“그냥 예능으로 한 거니까 재미로 보세요.”
“아아, 그래서 혜민이가 직접 보라고 한 거구나. 나 놀리려고.”
혜민이?
설마 시상식에서 인사했던 배우 강혜민을 말하는 건가?
“강혜민 씨요?”
“예, 얼마 전에 우리 샵으로 옮겼거든요. 혜민이 신인 때 내가 영화 분장 팀에 있어서 친해요.”
“아, 저는 이번에 시상식 때 이유미 선배님 소개로 인사 했거든요.”
“으응, 그래서 대표님 얘기를 꺼낸 거구나.”
뭐야뭐야, 이 분위기 뭐야?
강혜민이 사석에서 제3자한테 내 얘기를 했다고?
이거 진짜 뭔가가 이뤄지는 거 아니냐! 라고 생각하던 찰나에 뭔가 오싹한 기운이 느껴져서 뭔가 했더니, 서원이가 거울로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하지만 평소의 독기 서린 눈빛은 아니었다.
일도 안 하고 집에서 게임이나 하면서 용돈을 받아먹는 백수 오빠를 한심하게 쳐다보는 여동생의 눈빛 같았다.
왜, 뭐, 왜.
“제가 자리 좀 만들어볼까요?”
서원이와 나의 관계를 알 리가 없는 원장이 거울로 내 표정을 살피면서 중매쟁이처럼 말을 이었다. 이유미 선배와 마찬가지로 원장도 나와 강혜민을 이어주려는 기색이 역력해보였다.
솔직히 심쿵하고 설렜지만, 나는 속마음을 숨긴 채 황급하게 손을 저었다. “예? 아뇨아뇨, 아니에요.”
“왜요? 혜민이 별로야?”
“아니요, 제가 감히 어떻게···.”
“으응? 왜에? 대표님이 어디가 어때서.”
나는 이렇다 설명도 없이 그저 아니라는 말만 되풀이하며 말끝을 흐렸다.
“어휴, 아니에요···.”
“대표님 올해 나이가 어떻게 되죠?”
“서른여덟이요.”
“보자, 혜민이가 올해 몇 살이었더라···.”
“저보다 한 살 어리던데요. 서른일곱.”
“어머나 세상에에에, 혜민이가 벌써 그렇게 됐구나. 어휴, 예쁜 것들은 나이 먹은 티도 안 나. 그런데 대표님이 서른여덟이라는 것도 너무 의외다. 삼십대 초반으로 밖에 안 보이는데··· 제대로 꾸미면 이십대로도 보인다는 소리잖아?”
원장은 서원이에게도 동의를 구하며 물었다.
“그치 서원아? 너네 대표님 엄청 동안 아니시니?”
“아니에요. 가까이에서 보면 완전 쭈글쭈글 아저씬데. 그때 시상식에서 강혜민 선배님이랑 같이 있는 거 봤는데 나이 차이 완전 나 보이던데요.”
“그랬니?”
“예. 강혜민 선배님이 오억만 배 아깝죠.”
저, 저, 한가놈 눈빛 봐라.
처음에는 한심하게 쳐다보더니 슬슬 눈에 힘이 들어가고 있다.
아니나 다를까, 원장이 강혜민과 내 얘기를 계속 이어나갈 기미가 보이자 잽싸게 화제를 잘라 먹는다.
“원장님, 오늘 샵에 계속 계실 거예요?”
“응. 왜?”
“아, 제가 시간이 없어서 빈손으로 왔는데 이따가 뭐 좀 보내드리려고요.”
“응, 계속 있을 거야. 뭐 줄 건데? 먹을 거야?”
“일본에서 가방 하나 선물 받았는데 제가 쓰기에는 조금 나이 들어 보여서요.”
“가방? 어디 꺼?”
“샤넬이요.”
“어머어어어! 내가 또 샤빠인 건 어떻게 알고!”
“제가 가방에 관심이 없어서 모델은 잘 모르겠고, 한 요만한 토트백이에요. 검정색.”
“너네한테 선물로 준 거면 신상이겠지 뭐. 근데 그걸 내가 받아도 되려나?”
“저희 팬들한테 받은 선물 나눔 많이 하는 거 팬들도 알아요.”
“그럼 고맙게 받을 게에엥!”
외모만 여우 같을 뿐, 성격은 미련한 곰 같던 놈이었는데 그래도 요나랑 리야랑 지내면서 잔기술은 좀 배웠구나.
덕분에 강혜민과 내 얘기는 저 멀리 미지의 안개 속으로 사라졌다.
잠시 뒤 메이크업을 마친 서원이가 메이크업실 옆에 있는 탈의실로 나를 불렀다.
연예인 메이크업과 결혼식 메이크업을 전문으로 하는 샵이라서 대기실 겸 탈의실로 쓰는 작은 방이 몇 개 있었는데 그 중 하나였다.
강혜민 문제로 또 잔소리 하겠구나 싶었는데 행거에 걸린 몇 벌의 의상 중에서 하나를 골라달라고 한다.
“뭐야, 의상도 가져왔어? 혼자 들고 온 거야?”
“이걸 내가 어떻게 들고 와요. 의상 팀 언니가 주고 갔지.”
“정식 스케줄도 아닌데 뭐 이렇게 신경을 썼어?”
스케줄이 없을 때는 그 누구보다 편한 의상과 노메이크업을 선호하는 녀석이 웬일인가 싶어서 물었다. 그러자 낮은 목소리로 예민하게 대꾸한다.
“왜요? 내가 일부러 란년이 기죽이려고 신경 쓰는 거 같아서?”
그게 목적이었구나···.
그냥 궁금해서 물어본 건데 제 발이 저려서 실토해버렸다. 그러고는 스스로 화를 북돋으며 시동을 건다.
“아, 생각하니까 또 열 받네.”
“생각을 하지 말라니까.”
도끼눈을 뜨고 째려본다.
그래도 많이 유해졌다.
예전 같았으면 밖에서 누가 듣든 말든 큰 소리로 소리를 쳤을 텐데, 그래도 방음에 최대한 신경을 쓰면서 낮은 목소리로 쏘아붙인다.
“그래. 강혜민 급이랑 그런 거면 화는 나겠지만 이해는 되지. 근데 급 떨어지게 란이가 뭐냐고요 란이가. 차라리 길 가는 여자 연락처를 따서 만나든가.”
“야, 차라리 때려라. 내가 그냥 크게 몇 대 맞을게.”
“이봐, 이봐. 또 란년이 편들잖아.”
“엉? 이게 편드는 거라고? 이게? 우와···.” 억울했던 나는 목소리는 낮게, 하지만 입모양과 몸동작은 크게 하며 반박했다.
그러자 이 한가놈, 속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고 덤덤하게 자기 할 말을 한다.
“됐고. 옷이나 골라요. 나만 보고 나한테만 집중해.”
“하아··· 넌 진짜 사람들 들었다 놨다···.”
“매력 있지.”
“그래, 그것도 매력은 매력이다···.”
“얼굴 펴요.”
억지로 미소를 지어준 나는 코디 북과 행거에 걸린 옷을 번갈아보면서 의상을 골랐다.
그 중에서 눈에 익은 스타일이 있었다. 베이지색 샤넬 트위드 자켓에 허리띠를 차서 원피스처럼 활용한 룩이었는데 예전에 어느 행사에 초대 받았을 때 입었던 옷이었다.
나는 기사 사진을 통해 봤었는데 녀석의 이미지랑 잘 어울려서 기억에 남아있다.
“이거 언제 입었던 거지?”
“샤넬 주얼리 행사.”
“이거로 하자. 다리가 좀 추울 것 같긴 한데··· 어차피 밖에는 안 나갈 거니까 뭐. 그때 입은 거 보니까 이쁘더라.”
“뭐라고요?”
“이쁘다고.”
“다시요.”
“이뻐.”
“한 번 더.”
어휴, 이 애정결핍 귀신···.
“우리 서원이 이거 입었을 때 엄청 이쁘더라.”
“얼만큼 이뻤어요?”
“세젤예.”
“요나가 이뻐요 내가 이뻐요.”
“당연히 너지.”
“강혜민이 좋아 한서원이 좋아.”
“닥치고 한서원.”
“강혜민 만나기만 해봐요.”
“장담 못해. 일적으로는 만날 수 있지.”
“만날 거면 정조대 차고 가. 다나카 아저씨한테 알아봐달라고 말해놨으니까”
“다나카 씨는 대체 직업이 뭐냐. 매니저야 성인용품 업자야.”
“옷이나 줘요.”
“어, 여기. 나 커피 사올 테니까 갈아입고 나와.”
“어디가요. 그냥 여기 있어요. 커피 안 마셔.”
“내가 마시려고. 목말라.”
“다 끝나고 나가서 마셔요. 혼자 있으면 무섭단 말이야.”
“대낮의 미용실인데 무섭긴 뭐가 무서워.”
“아 쫌 있으라면 있어요. 옷 입는 것도 좀 도와주고.”
“거참, 손 많이 가는 스타일이야.”
“이제 알았어요? 나한테만 집중해줘요.”
진짜 커피가 땡겼을 뿐, 안에 같이 있어도 상관은 없었다.
어차피 이 방은 서원이에게만 배정된 방이기 때문에 사람이 들어 올 리도 없고 밖에서 재촉하는 사람도 없으니까.
“이거 벗겨줘요.”
“애도 아니고 옷도 내가 벗겨줘야 되냐.”
“응.”
서원이는 혼자 해도 될 일을 굳이 내게 시키면서 옷을 갈아입기 시작했다.
이제 내 앞에서 알몸을 보이는 것에는 부끄러움이 없나보다.
녀석은 입고 왔던 옷을 다 벗고 속옷 차림이 되었다. 검정색 양말만 신고 있었는데, 어, 그게 묘하게 섹시하다. 그래서 흠, 하고 콧소리를 내자 정색하며 묻는다.
“왜요. 또 뭐가 맘에 안 들어.”
“아니, 섹시해서.”
“아 뭐야 느끼해. 변태 같아.”
“양말만 신고 있는 게 의외로 섹시하구나. 남자가 하면 변태 같은데.”
녀석은 경멸 섞인 눈빛을 하며 상체를 흠칫 뒤로 피했다.
“그때도 말했지만 당분간 내 몸에 손 댈 생각하지 말아요. 불결하니까.”
“누가 손댄데? 그냥 섹시하다고.”
“그 말이 그 말이잖아요. 섹시하다는 게 하고 싶다는 거지.”
“아 뭔 소리하는 거야. 당분간이 아니라 영원히 털 끝 하나 안 건드릴 테니까 옷이나 입어.” “불결해, 아주 불결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 녀석은 선 채로 양말을 훌렁훌렁 벗으면서 시크하게 말을 이었다.
“가방에 스타킹 꺼내줘요.”
“어.”
커피색 팬티스타킹이었다. 포장지를 뜯어서 건네주자 리야가 하는 것처럼 한쪽 다리를 들어서 까딱 거리며 말한다.
“신겨줘요.”
“니가 신어. 몸에 손대지 말라며.”
“아니, 그건 야한 의도로 손대지 말라는 소리였지.”
“스타킹 신겨주다 보면 나도 모르게 야한 의도가 생길 수도 있으니까 그냥 니가 신어.”
“아 치사해.”
“니가 편의주의적인 거지. 빨리 입어, 차 밀린다.”
“알았으니까 신겨줘요. 빨리. 차 밀리기 전에.”
“큭큭큭큭, 뭘 알았는데.”
“야한 의도로 만져도 되니까 신겨줘요. 대접받고 싶단 말이야.”
“어휴···.”
나는 서원이 앞에 무릎 꿇었고 녀석은 내 어깨에 손을 짚고 중심을 잡았다.
한 쪽 발에 스타킹을 씌워서 종아리까지 쭉 올리자 “아 간지러.”하면서 키르륵 웃는다.
나는 아무 반응도 해주지 않고 허벅지까지 스타킹을 올렸다.
“다른 쪽.”
“응.”
녀석은 반대쪽을 올릴 때도 간지럽다며 흥흥흥 거렸고 역시나 나는 아무런 반응도 하지 않고 묵묵히 착용을 끝마쳤다. 그러자 실망했다는 투로 중얼거린다.
“뭐야. 하나도 안 야해졌네.”
“야해진다고 해도 여기서 티를 내겠냐?”
“참나. 란년이랑은 주차장에서 잘도 티냈으면서.”
“말을 말자. 옷 입고 나와. 나가 있을 게.”
“알았어요, 알았어요. 란년이 얘기 안 할게요. 근데 지금 커졌어요?”
“안 커졌는데.”
“왜 안 커져. 내가 이렇게 벗고 있는데. 스타킹도 신었고. 아, 검스가 아니라서 그런가.”
“참나, 크흐흐흫···.”
중심도 없이 오락가락하는 녀석의 언행이 어이가 없어서 실소가 터졌다.
“야, 니가 원하는 게 뭐야.”
“아니, 난 그냥··· 바지 벗어 봐요.”
“갑자기 바지는 왜···.”
“소독하게.”
“무슨 소독······.”
대꾸를 하는 동시에 머릿속에서 지난번 했던 소독 펠라가 떠올랐다.
란이에게 더러워진 고추를 자기 입으로 소독해준다고 했었지···.
설마 여기서 그걸 하겠다는 뜻인가?
“여기서 고추를 빨겠다고?”
혹시나 미끼일까 싶어서 대놓고 물어보자 고개를 짧게 끄덕이며 속삭인다.
“응.”
“갑자기?”
“응.”
“왜?”
“야해지라고.”
“야해지면 뭐하게.”
“그냥··· 막상 안 야해진 거 같으니까 자존심 상하네.”
“너 뭐하는 놈이야.”
“그래서 뭐. 소독하기 싫다고요?”
꿀꺽···.
“아니, 좋아···.”
“어차피 이렇게 될 걸 왜 시간을 끌어요. 벗으라고 할 때 순순히 벗을 것이지.” “어, 미안해···.”
내가 미친 건지, 아니면 서원이의 요물력이 올라간 건지.
예민하게 반응하는 녀석의 눈빛이 묘하게 매력적이었다.
< 미절미절 집착여우(2)-소독하게 바지 벗어봐요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