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업키걸 알리야(1)-개가 되어줘 >
쓰리에쓰 엔터테인먼트는 자신들의 연습생과 시스템을 빗대 ‘보물섬’이라 부른다. 그만큼 재능 충만한 연습생들을 많이 보유했다는 자신감의 표출이었다.
좋겠다.
그렇다면 나는 우리 YH엔터테인먼트 소속 연습생―보라색 2기들을 사상 최악의 교도소라 불리던 알카트라즈섬으로 부르겠다.
1호 예라희.
요나를 롤 모델로 삼아 하반신 마비를 이겨낸 감성 소녀.
하지만 나를 만나기 얼마 전부터 마치 저주라도 걸린 듯 마비가 다시 시작됐고, 그렇게 나타나는 마비와 경련은 나의 마사지에 의해서만 치료가 가능하다.
그러나 이 깜찍한 도라희가 언젠가부터 그것을 꼼수로 사용해서 자신의 육욕을 채우고 있다.
본인의 성적인 욕망을 중의적인 표현으로 포장해서 가사 쓰는 것에 맛 들렸음.
2호 이소란.
미친놈. 그냥 미친놈.
요나와 함께 아이컨택이라는 걸그룹으로 데뷔했지만 스폰, 마약, 난교라는 트리플 크라운을 달성하고 사실상 연예계 퇴출.
그나마 마약은 모르고 먹었다는 것이 인정됐지만 섹스중독이라는 또 다른 문제점이 드러났고, 이태원과 강남 등지의 클럽가에서 제 입맛대로 남자를 따먹고 다녔음.
원래는 연예인으로서의 재능이 없던 노멀피플인데 내가 질내사정을 하면 가수로서의 잠재력이 올라가는 희한한 몸을 가지고 있다.
내게 완전히 길들여져서 나를 통해서만 성욕을 해소할 수 있고 그 덕분에 연습에 매진할 수가 있게 되었다.
3호 미오.
타고난 성별이 여자이고 외모도 천상 여자지만 자신이 남자라는 망상에 빠져 살고 있다. 자세한 건 상담을 받아봐야 알겠지만 성정체성의 문제가 아니라 정신적인 문제인 것 같다.
멤버십 페티시 클럽에서 일한 경력이 있는 만큼 각종 유사성행위 및 상황극의 스페셜리스트.
남자 망상은 현재진행형이지만 나와의 섹스를 통해서 여성으로서의 본질을 찾을 수 있음.
4호 이지유.
미혼모. 자기 의지와 관계없이 음어와 욕설을 내뱉는 틱 장애.
다행히 아이돌로서의 재능은 있지만 19개월짜리 딸 때문에 꿈을 포기했다.
하지만 그 딸아이가 나를 아빠라고 부르며 좋아해서 나에 대한 호감이 높아졌고, 아이돌에 대한 꿈을 한 번 더 생각해본 뒤 추후 연락을 하기로 했다.
어차피 오게 돼 있지 뭐.
5호 나타나지 마.
씨발, 그냥 나타나지 마···.
***
<육탄방어전, 업키걸 등 2019 연말 가요제 역대급 라인업 총출동!>
<업키걸, 3사 연말가요제 모두 참석하며 대세 of 대세 인증>
<업키걸, 日 우익단체의 출연반대 시위에도 불구하고 홍백가합전 출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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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31일이다.
SF만화에서나 보던 2020년이 마침내 3시간 뒤로 다가왔다.
나는 오스칼 호텔 최상층 리야의 개인 룸에 셀프 감금돼 있다.
1월1일로 넘어가는 새벽 시간을 비워두라는 공주님의 명령이 있었기 때문이다.
TV에서는 일본에서 가장 권위 있는 가요제인 홍백가합전이 방송중이다.
홍 팀에 소속된 업키걸은 방금 전 1부 17번째 순서로 무대를 마쳤다.
출연은 11월 초에 확정을 지었지만 일본 내에서 불거진 혐한 시위 때문에 자칫 잘못하면 출연이 취소가 될 수도 있었다.
일부 정신 나간 우익들의 목소리가 아니었다. 국내외적으로 힘을 잃어가는 아베 정권에서는 혐한 정서를 이용해 국민들의 결속을 다지려고 했기 때문에 방송 전날에 출연이 취소된다고 해도 이상할 것이 없었다.
하지만 그 입김이 일본 내에서 신드롬에 가까운 인기를 누리고 있는 업키걸에게까지 미치지는 못했다.
―스고이이이잇!
―카와이이잇!
업키걸의 무대가 끝나자 MC와 출연자들은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일본어를 못하는 사람들에게도 익숙한 감탄사를 터뜨리며 업키걸을 칭송했고, 함께 출연한 한 남자가수는 2000년대 초 일본을 들썩이게 만들었던 아시아의 별 ‘라이미(LIMY)’가 5명이 되어 돌아왔
다는 극찬을 하기도 했다.
홍백가합전 1부 방송이 끝나고 뉴스가 나가는 사이 아이들에게 동시에 톡이 왔다. 개인톡이었는데 이것들이 단체로 섹시오패스 증상을 보이며 비슷한 문구를 보냈다.
씨바색기 [무대 봤어?]
나 [지금 보고 있어]
씨바색기 [나 어땠어? 잘했어? 섹시했어? 엄청 섹시했지?]
나 [우리 씨바는 언제나 섹시하지. 빈유 중에서는 니가 제일 섹시해] 씨바색기 [끼에엑!]
얘야 원래 섹시오패스 지수 10점 만점의 혼모노고.
집착요정 [방송 보고 있어요?]
나 [ㅇㅇ지금 보고 있어]
집착요정 [어땠어요?]
나 [우리 서원이 엄청 예쁘게 나오던데]
집착요정 [그거 말고]
나 [섹시하더라]
집착요정 [하고 싶죠?]
나 [하고 싶지]
집착요정 [얼만큼]
나 [하늘만큼 땅만큼?]
집착요정 [진정성이 안 느껴지네]
나 [진짜 하고 싶어]
집착요정 [ㅋㅋㅋㅋㅋ무릎 꿇고 빌기 전까지는 절대 안 해줄 거예요]
나 [ㅠㅠ]
비위 맞추기 힘들다 힘들어.
여왕 플레이를 하고 싶은 모양인데 과연 무릎 꿇고 비는 쪽은 누가 될까?
욘양이 [대표님 뭐하세요]
나 [알아듣지도 못하는 홍백가합전 보고 있지ㅋㅋ]
욘양이 [아ㅋㅋㅋ 저희 무대 보셨어요?]
나 [우리 욘리다 오늘 미모 리즈 갱신했던데? 엄청 예쁘게 잡혔어]
욘양이 [의상은 어땠어요?]
나 [완전 섹시하더라. 욘리다의 허벅지 밴드는 항상 옳지]
욘양이 [딩동댕~ 정답입니다~]
나 [ㅋㅋㅋㅋ]
욘양이 [아 맞다. 저 대표님이랑 하고 싶은 거 생겼는데 한국 가면 말씀 드릴게요><]
나 [나 기대해야 되는 거야?]
욘양이 [글쎄요?]
욘양이 [♡]
하트 이모티콘이 왜 이리도 설렐까.
우리 욘양이가 뭔가 색다른 플레이를 준비한 모양인데, 그나마 아직까지는 정상 범주의 성 취향을 가진 아이이니 즐거운 마음으로 기다려도 되겠지.
홍덕홍덕해 [저희 홍백가합전 무대 끝나고 쉬는 시간이에요]
나 [ㅇㅇ나도 지금 보고 있어ㅋㅋㅋ]
홍덕홍덕해 [아ㅋㅋ 저 화면에 살 좀 붙게 나오지 않았어요···? 장우 실장님이 찍은 영상으로 보니까 별로 안 ‘섹시’하게 나오던데.. 살을 조금 빼야 되나 봐요]
작은따옴표 강조 무엇···.
나 [아니 나는 딱 좋던데? 완전 육감적이었어]
홍덕홍덕해 [으아앙 감사합니다ㅠㅠㅠㅠ 저 요즘에 육감적이라는 말이 왜 이렇게 좋은지 모르겠어요ㅎㅎ]
나 [육감적육감적육감적육감적육감적육감적육감적]
홍덕홍덕해 [사, 사, 사······ 사과··· 먹고 싶다···]
나 [응. 나도 홍이 사랑해]
홍이는 한동안 답문을 달지 못했다. 안 봐도 훤하다. 아마 혼자 얼굴이 빨개져서 눈썹을 움찔거리고 있겠지.
그래. 이렇게 홍이처럼 부끄럼 타는 구석도 있어야지, 어떻게 된 게 다들 착즙에만 혈안이 돼 있···.
홍덕홍덕해 [대표님이랑 또 하고 싶어요··· 창피하니까 답장 하지 마세요ㅠ]
이야앗, 이야아앗!
홍아 너마저 이래 버리면 어떡하냐!
대미를 장식하는 알가놈의 메시지.
주인님 [뮨뭉쓰 집 잘 지키고 있지?]
나 [그렇다 주인님아]
주인님 [주인님이 일 빨리 끝나고 갈 테니까 맛있는 거 시켜먹으면서 쫌만 기둘기둘하고 있어. 아라찌?]
나 [다른 애들한테는 뭐라고 그럴 건데]
주인님 [그런 것까지는 뮨뭉이가 신경 쓰지 않아도 되는 거예요. 뮨뭉이는 댕댕이답게 주인님이 시키는 것만 하면 돼]
나 [알았다 주인놈아]
주인님 [혼난다. 알리야 수틀리면 지금이라도 욘리다한테 말해버릴 수 있어]
주인님 [랑깡깡 같은 건 뼈도 남지 않을 것이야]
나 [죄송합니다] 주인님 [마지막 경고야. 더 이상 반항하지 말고 절대복종해야 할 것이야]
나 [예, 주인님]
녀석이 그렇게 기대하라고 했던 ‘약속의 2년’은 몇 시간 뒤면 끝이 난다.
과연 공주님이 준비한 이벤트는 무엇일까.
리야와 단둘이 이 밤을 보낼 걸 생각하니 벌써부터 피곤해진다.
―자 그럼 다 같이 외쳐볼까요!
―십! 구! 팔! 칠! 육! 오, 사, 삼, 이, 일!
―시청자 여러분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뉴스 중간에 이어지는 보신각 타종행사를 시작으로 새해가 밝았다.
12시가 지나자마자 핸드폰은 새해인사로 불이 났다.
그 중에는 어느 순간부터 연락이 뜸해진 정아윤의 장문 메시지도 포함돼 있었다.
맥심 정아윤 에디터님 [오빠 저 맥심 에디터(였던) 정아윤이에요! 저는 오빠를 TV에서 종종 보고 있는데 오빠는 제 소식이 궁금할 것 같아서 새해 인사 겸 이렇게 생존신고 드립니다^^ 새해에는 작년보다 더더더 대박 나시고 건강하세요! 업나니들한테도 안부 전해주
세요ㅋㅋㅋ]
나 [아윤씨 오랜만이에요:) 제가 먼저 연락드렸어야 되는데 송구스럽네요]
맥심 정아윤 에디터님 [와 깜짝이야. 답장 바로 올지 몰랐어요ㅋㅋ]
나 [잘 지내시죠? 맥심은 그만 두셨나봐요?]
맥심 정아윤 에디터님 [예, 회사 옮긴지 좀 됐어요]
정아윤.
아직까지 업계 전설로 전해지는 서원이와 홍이의 맥심 표지 촬영을 담당했던 에디터다. 그리고 알고 보니 우리 형수님의 몇 다리 건너 지인이었는데, 그것 때문에 나와 소개팅을 하기도 했었다.
결과는 업키걸 난입으로 인한 나가리. 압도적인 나가리.
그 이후로도 가끔씩 연락을 했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자연스럽게 끊겼다.
몇 달 전 맥심에서 퇴사하고 비슷한 컨셉의 남성향 잡지사로 이직했다고 한다.
나는 그녀가 미처 하지 못한 말을 먼저 꺼내줬다.
나 [조만간 밥 한 번 먹어요]
맥심 정아윤 에디터님 [오오오 진짜요?]
나 [제가 미안한 것도 있고··· 저 그때 아윤씨랑 소개팅하고 흐지부지 된 것 때문에 아직도 형수님한테 잔소리 듣고 있잖아요]
맥심 정아윤 에디터님 [아 맞다 우리 소개팅도 했었구나ㅋㅋㅋㅋㅋ]
나 [시간 언제 괜찮아요?]
맥심 정아윤 에디터님 [저는 월말만 아니면 항상 널널하답니다]
나 [그럼 다음 주 안으로 제가 연락드릴게요]
맥심 정아윤 에디터님 [넹넹!]
수신된 새해인사에 답장을 하고, 나 역시 지인들에게 새해인사를 하는 사이에 2시간이라는 시간이 훌쩍 지나가 버렸다.
어느덧 새벽 3시가 가까워지고 눈꺼풀이 조금씩 무거워지려던 그때···.
―질컥
“뮨뭉아, 주인님 왔어!”
리야가 양손 가득 백화점 쇼핑백을 들고 방안으로 들어왔다.
“어, 수고했어.”
쇼핑백을 내려놓은 녀석이 침대에서 밍기적 거리고 있던 나를 향해 명한다.
“빨리 나와서 슬리퍼 신겨줘야지. 주인님 발 시려우면 감기 걸려요. 회사 간판스타가 감기에 걸리면 누가 손해일까요?”
“예이, 예이.”
오렌지 빛이 감도는 금발 포니테일과 과즙 메이크업은 홍백가합전에서 봤던 그대로였고 옷만 바뀌었다.
연핑크색 롱 무스탕, 검정색 폴라티.
가죽 스커트, 무릎 위까지 올라오는 스웨이드 재질의 싸이하이 부츠.
녀석은 한쪽 다리를 내밀었고, 터벅터벅 걸어간 나는 안쪽에 있는 지퍼를 내려서 부츠부터 벗겨주었다.
젠장··· 살색스타킹을 신은 발을 보니 피곤함 속에 잠재된 뭔가가 꿈틀거린다.
‘성욕에 잡아먹히지 않게 조심하셔야 해요.’
지선경 대표의 말을 떠올린 나는 애써 감정을 숨기며 리야의 발 앞에 슬리퍼를 내려놓았다.
“신으세요, 주인님.”
“신겨줘야지. 뮨뭉이는 항상 마무리가 허술해. 마무리가 허술하면 과정까지 퇴색될 수 있다고 말을 했어 안 했어?”
부들부들···.
발목을 잡고 들어 올려서 슬리퍼를 신겨주고 나서야 리야는 방 안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나는 녀석이 가져온 쇼핑백을 들고 뒤를 따랐다.
“뮨뭉쓰 패밀리 새해선물이니까 집에 갈 때 가져가아.” “뭘 이런 걸··· 고맙다.”
씽씽걸과 올드보이는 물론이고 형네 가족들 선물까지 준비해온 리야였다.
“거기 빨간색 쇼핑백 있지?”
“어.”
명품 로고가 새겨진 쇼핑백 중에서 딱 하나, 잡지만한 크기의 빨간색 쇼핑백이 섞여 있었다.
“그건 뮨뭉이 거니까 꺼내봐.”
“에이, 내거는 이제 안 사도 된다니까. 부담스럽게···.”
“열어봐아.”
입구에 붙은 테이프를 떼어내자 고급스러운 세로로 세워진 벨벳 케이스 두 개가 눈에 들어왔다.
시계 박스라고 하기에는 두께는 얇은 반면 크기는 A4용지 정도로 제법 컸다.
둘 다 스와로브스키 로고가 새겨져 있었다.
목걸이가 들어가면 딱 알맞겠는데 나한테 웬 목걸이? 라고 의아하게 생각하며 두 개 중 하나를 먼저 열어봤다.
스와로브스키의 크리스털이 빙 둘러져 박혀 있는 초록색 가죽 벨트다.
안쪽에는 내 이름이 영문으로 각인돼 있다.
허리 벨트라고 하기엔 좀 작은데··· 서, 설마···.
“뭐야 이게? 내가 생각하는 그거 아니지?”
“맞을 걸. 뮨뭉이 목걸이야.”
“뭐 이 스왈롭 새키야?”
“발음 주의해.”
나머지 박스의 정체는 벨트에 채우는 체인이었다.
누가 봐도 아름다운 한 쌍의 개 목걸이였다.
이것이 어떤 용도로 쓰일 건지 충분히 짐작이 됐지만, 나는 최대한 건조하게 물었다.
“이걸 나한테 채우려고?”
나를 향해 뒤돌아서는 리야의 눈망울은 이미 호기심과 흥분으로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다.
“그때 말 안 했던 내 소원 쿠폰 있지? 그거 지금 말할게. 오늘 하루 알리야의 개가 되어줘.”
“거절한다.”
“그래? 그럼 욘리다한테 전화해야겠다.”
리야는 곧장 전화기를 꺼내들었다.
‘에이 설마. 진짜 하겠어?’라고 생각하고 잠시 지켜보고 있는데 진짜로 요나에게 전화를 걸었다.
―어, 리야야.
“욘리다. 알리야가 지금 하는 얘기 전부 사실이니까 충격 받지 말고 잘 들어요.”
―뭐야. 무섭게 왜 그래. 말투도 이상하고··· 너 리야 맞아?
“알리야 맞아요. 이제 어엿한 레이디가 되었으니까 급식체는 안 쓰려고요.”
―야아, 어색해.
진짜다. 진짜 말할 기세다.
나는 내 손으로 가죽목걸이를 목에 둘렀다.
리야는 그제야 흡족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후우우··· 나 심호흡 했으니까 말해.
“알리야가 욘리다 많이 사랑한다고요. 알러뷰.”
―야, 장난하냐! 무슨 일 생긴 지 알고 놀랐잖아!
응. 요나야.
여기에서는 무슨 일이 생기는 중이야.
< 업키걸 알리야(1)-개가 되어줘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