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81화.보라색 아우라가 이 정도는 돼야지 (83/371)

< 보라색 아우라가 이 정도는 돼야지 >

“195만원.” 

“200만원.” 

“와아아!” 

미친 여자들아 돈 지랄 좀 적당히 해라. 

5만원으로 시작한 경매가는 20번의 경합 끝에 제희가 마지막에 부른 200만원까지 치솟았다. 

오늘 애장품 경매에서 가장 비싼 가격에 낙찰된 물건은 업키걸 일본 진출의 발판이 되어준 슈퍼스타 태진의 자켓이었다. 그가 월드 투어 때 입었던 자체제작 의상의 낙찰가가 195만원이었는데 단가가 고작 몇 백 원도 안 되는 비매품 CD가 그것을 넘어버린 것이다. 

제희와 요나뿐만이 아니라 일반 팬들도 응찰을 했었는데 100만원이 넘어가자 다들 떨어져 나갔고 결국 그 둘만 남게 되었다. 

“잠깐만요, 잠깐만요. 지금 월드스타 태진 씨가 의문의 1패를 당하셨거든요?” 

최고가가 경신되자 MC가 잠시 상황을 정리하며 내게 곤란한 질문을 한다. 

“뮨 샐럽님 지금 이 상황에 대해서 한 말씀 해주시죠. 지금 굉장히 만족스러워하고 계신 거 같은데요.” 

“아뇨, 만족스럽기는커녕 당황스럽네요.” 

“지금 이 상황으로만 보면 뮨 샐럽님이랑 태진 씨가 같은 급에 올랐다고 봐도 되는 건가요?” 

“아뇨, 대체 무슨 말씀 하시는···.” 

“예에, 김윤호 대표님의 자신감 넘치는 소감 잘 들었고요!” 

“아뇨, 아뇨···.” 

“자! 그럼 입찰을 다시 시작하겠습니다.” 

빌어먹을 MC놈들···. 

“낙찰가는 전액 미혼부모와 한부모 가정에 기부되기 때문에 불판을 좀 더 달궈보도록 하겠습니다. 자유시장경제 원리에 맞게 상한가는 따로 정하지 않고요, 응찰 액수도 자유입니다. 200만 원 이상 없으십니까?”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제일 뒤쪽 줄에 있던 선그라스 낀 여자가 우아하게 손을 든다. 

“3천만 원.” 

“우와아아아아!” 

장내는 보이그룹의 콘서트장 같은 탄성으로 들끓었고 제희도, 요나도 더 이상 입을 열지 못했다. 

“이렇게 해서 업키걸의 데뷔 싱글 앨범이 3천만 원에 낙찰되었습니다!” 

최고 낙찰가를 부른 여자는 다름 아닌 지선경 대표였다. 

당신은 여기서 또 왜 나오냐고···. 

알고 보니 지선경은 낙찰가 외에도 7천만 원을 추가로 기부해서 1억 원을 채웠다고 한다. 

그녀가 쓴 기부자의 이름은 지선경이 아니라 김윤호였다. 

*** 

“작은 성의예요.” 

“작은 성의라고 하기에는 좀 부담스러운데요···.” 

“부담은요. 김윤호 대표님이 저희에게 해주시는 거에 비하면 오히려 소소하죠.” 

지선경 대표는 하얗고 고른 치아를 드러내며 매력적인 미소를 지었다. 

그녀의 뒤에는 언제나처럼 ‘The 블랙 아나콘다’ 존슨 씨가 듬직하게 서 있다. 

반면 내 뒤는 이보다 더 불안할 수가 없었다. 보나마나 서원이가 지선경 대표를 향해 레이저를 발사하고 있겠지. 

아니나 다를까···. 

“누구예요?” 

녀석의 질문에 나는 그제야 지선경 대표를 소개했다. 

“어, 얘들아 인사해. 논스톱 뮤직 대표님이셔.” 

“안녕하세요!” 

“예, 반가워요. 지선경이에요.” 

다행히 한가놈 외에는 행사에 큰 도움을 준 그녀에게 반감을 드러내는 아이들은 없었다. 

리야는 그녀에 대해 이미 알고 있었는지 한번쯤은 꼭 만나보고 싶었다면서 호감을 드러내기도 했다. 

아이들은 지선경과 잠시 대화를 나눈 뒤 차로 들어갔고 행사장 대기 천막에는 나와 지선경 둘 만의 시간이 마련됐다. 

“많이 힘드시죠?”  블랙 아나콘다마저 내보낸 그녀가 나를 위로하듯 운을 뗐다. 

“힘드실 거예요. 섹스가 아무리 백익무해한 행위라고 해도 좋아서 하는 것과 의무적으로 하는 것 사이에는 갭이 있으니까요.” 

“···그렇긴 하더라고요. 가끔은 자괴감이 들 때도 있고, 저도 모르던 제 모습을 발견할 때도 있어요.” 

“후훗, 다 그런 과정을 거치지요. 저도 엄마한테 처음 FS능력을 받았던 때가 생각나네요···.” 

―이하 생략― 

잠시 자신의 과거를 얘기한 지선경은 의미심장한 말로 끝을 맺었다. 

“결국은 균형이 가장 중요하죠. 성욕에 잡아먹히지 않게 조심하셔야 해요.” 

그럴 거면 처음부터 나타나지를 말든가, 지금 와서 그딴 얘기를 하면 어쩌라는 거야. 

그나마 현실적이던 내 일상이 이 사람들만 나타나면 완전히 저 세상으로 가버린다. 

그래서였을까. 

나는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했던 속마음을 말할 수 있었다. 

“전 이미 늦은 거 같아요. 일상생활이 점점 힘들어 지고 있어요. 여자를 보면 계속 그런 쪽으로만 생각하게 되고, 심지어는 연습생 애랑 회사 계단에서 그러기도 했어요. 다른 곳도 아니고 회사 계단에서요···.” 

“강간이었나요?” 

“예에? 아니요.” 

“상대방도 좋아서 한 거죠?” 

“정확히 말하면 저보다는 걔가 원해서 한 거죠.” 

“그럼 문제될 게 뭐가 있나요. 그 행위로 인해서 아무도 피해를 보지 않았는데요. 대표님도 좋으셨잖아요. 안 좋으셨어요?” 

“좋았죠··· 그런데 한편으로는 제가 너무 쓰레기 같아서요···.” 

“어떤 마음인지 이해해요. 하지만 큰일을 하는 사람에게는 어쩔 수 없이 따르는 성장통 같은 거랍니다. 혹시 저를 보고도 야한 생각을 하셨나요?” 

“예? 아뇨. 그냥 사람 대 사람으로 멋있다는 생각만 했습니다.” 

“그럼 대표님은 아직 정상이에요. 성욕에 잡아먹힌 사람은 제가 풍기는 페로몬을 감당할 수가 없거든요. 만약 대표님이 성욕에 굴복했다면 저는 지금쯤 강간당하고 있었겠죠.” 

“그 정도로 심각한 수준이었다면 이미 제 발로 경찰서를 갔겠죠···.” 

“후훗, 그러실 것 없어요. 강간은 저도 원하는 바거든요. 실례지만 저 좀 엉망진창으로 강간해주실래요?” 

“하아···.” 

이 여자는 진짜다. 

고이다 못해 썩다 못해 아예 말라 비틀어졌다. 

섹스중독자 망란이가 한 30년은 고여야 이 정도 경지에 오를 수 있으려나? 

그녀는 후훗, 웃으며 일순간 얼어붙어 버린 나를 안심시켰다. 

“농담입니다. 제가 강간을 하면 했지 당하는 성격은 아니에요.” 

“예···.” 

“아, 저는 남자보다 여자를 강간하는 걸 좋아해요.” 

“예······.” 

“업키걸 멤버 중에서는 요나를 한번 강간해 보고 싶어요.” 

내 평생 누군가와 대화를 하면서 이처럼 많은 ‘강간’ 소리를 들었던 적이 있었던가. 나는 이세계 사람에게 되물었다. 

“그럼 지선경 대표님은 성욕에 잡아먹히신 적이 있나요?” 

“음···.” 

나름 예리한 질문이었는지 잠시 뜸을 들이던 그녀가 입을 열었다. 

“제가 대표님이랑 대화를 시작한지 10분 정도 됐죠?” 

“예, 그 정도 됐을 걸요.” 

“대표님은 제 머릿속에서 정확히 5번 강간당하셨어요.” 

“그, 그렇군요···.” 

“그리고 저는 김윤호 대표님께 12번 강간당했고요.” 

그래서 성욕에 먹혔다는 거야 먹히지 않았다는 거야···. 

내 질문에 대한 결론은 나지 않았고, 나는 그녀와 대화를 하고 나서야 내가 지극히 정상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란이도 아직은 정상 수준이겠지. 

지선경은 내게 불편한 점이 없는지 물었고, 나는 그동안 거슬렸던 점 하나는 얘기했다. 

“제가 섹스할 때마다 퍽커분들한테 고맙다고 톡이 오거든요. 그것 좀 안 해주셨으면 좋겠어요.” 

“예, 알겠습니다. 제가 바로 조치할게요.” 

대화가 마무리 될 무렵 행사 무대에서는 2부 순서의 시작을 알리는 MC의 멘트가 시작됐다. 

―노랑나비 재단과 스타들이 함께하는 사랑의 자선 파티! 이번 순서는 미혼부모 센터 입주자 분들이 준비한 뜻 깊은 무대인데요···.  그동안 우리 회사와 업키걸 아이들이 후원해준 미혼모, 미혼부들이 감사의 의미로 뭔가를 준비했다고 한다. 

지선경과 작별 인사를 나눈 나는 업키걸 아이들과 함께 가장 앞줄에 앉아서 행사를 관람했다. 

딱 봐도 앳돼 보이는 학생들이 나와서 미혼부모로 살면서 느낀 점들을 편지로 낭독했고, 마지막에는 희망을 놓지 않게 도와준 여러 사람들과 자신들의 아기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하며 눈물을 지었다. 

무대 뒤 화면에서는 그들과 행복하게 웃고 있는 아기들의 사진이 나오고 있었다. 

많은 이들이 함께 울었고 업키걸 아이들은 대성통곡을 했으며 나 역시도 좀 뭉클했다. 

센터에는 미혼모만 있는 줄 알았는데 어린 아빠가 아이를 맡고 있는 미혼부도 생각보다 많았다. 

MC가 다음 참가자를 소개한다. 

―다음은 19개월 된 공주 은빛이 엄마 이지유 님인데요. 

“빛빛 언니랑 이름 똑같은 거예요.” 

“와, 나랑 똑같은 이름 첨 봤어.” 

아기 이름이 우리 은빛이와 똑같아서인지 객석의 집중도가 확 올라갔다. 

―지유 씨는 특별히 편지가 아닌 노래로 마음을 전하신다고 합니다. 그럼 함께 들어볼까요? 

MC의 소개와 함께 무대 옆에서 고등학생쯤으로 보이는 앳된 여자가 걸어 나왔다. 

그 아이의 등장과 함께 잠시 잊고 있던 초감각이 확 되살아났다. 몸에 전율이 인다. 

라희, 란, 미오에 이은 4번째 보라색 아우라였다. 

미혼모냐···. 

진짜 미혼모냐고. 

내가 장난삼아 상상하던 부류 중 하나였는데 그것이 현실이 돼 버린 것이다. 

“하하, 참나···.” 

헛웃음이 절로 나온다. 

그 와중에도 그녀의 얼굴과 비율, 몸매를 분석하며 걸그룹 멤버로서 어울리는지, 다른 아이들과 함께 섰을 때의 그림은 어떨지를 상상하고 있는 내가 밉다. 

외모로는 합격이다. 

요즘 아이들처럼 화장을 하거나 꾸미지를 않아서 눈에 띄지 않는다 뿐이지 충분히 매력 있는 얼굴이었다. 

근데 눈매는 살짝 교정 좀 해야겠다. 

코에 필러도···. 

지유는 어떤 말도 없이 바로 노래를 시작했다. 

요즘 노래깨나 한다는 여자들이 좋아하는 가수인 하트래빗의 ‘뽀뽀’라는 곡이었다. 

이제 막 연애를 시작한 연인간의 애틋한 뽀뽀를 그린 가사인데, 이지유는 그 뽀뽀를 자신의 아기에게 해주는 듯한 느낌으로 노래를 불렀다. 

―네 이마에 처음 입 맞추던 그 겨울을 난 기억해···. 

목소리도 예쁘고 가창력도 합격점이었다. 

나도 이제는 듣는 귀가 어느 정도 틔었는데 지유는 딱 들어도 전문적으로 배운 노래였다. 

“쟤는 어디서 노래 좀 배운 것 같지?” 

혹시나 해서 옆에 앉아 있는 요나에게 묻자 요나도 고개를 끄덕였고 나는 다시 물었다. 

“니가 보기에는 어때?” 

“음··· 괜찮으시겠어요···?” 

요나는 내 질문의 요점을 바로 파악하고 다소 걱정스러운 투로 되물었다. 당연히 미혼모라는 점이 걸리는 것이다. 

요나는 현실적인 문제를 짚으며 말을 이었다. 

“미혼모가 죄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해서 걸그룹 멤버로 떳떳하게 나올 수 있는 것도 아니잖아요. 아기가 있다는 걸 어떻게 속인다고 해도 그건 또 그것 나름대로, 엄마로서 많이 힘들 거예요.” 

백 번 천 번 맞는 말이지. 

근데 요나야. 너와 함께 팀을 했었던 란이가 금단증상을 동반한 중증 섹스중독이라는 건 알고 있니? 

미오라는 애는 딜도를 차고 다니는데 자기가 남자인 줄 알아. 

너의 오래된 팬이자 차기 소민정이라면서 회사의 기대를 한 몸에 받고 있는 라희는 어떤 줄 아니? 오르가즘을 느끼기 위해서 거짓 마비를 일으키기도 한단다. 이 맹랑한 게 오늘은 글쎄, 음란한 가사를 중의적인 표현으로 예쁘게 포장을 해서 불렀지 뭐니, 하하하. 

나는 말이야, 그런 아이들 사이에 미혼모 한 명쯤은 있어줘야 간지가 난다고 생각해. 

그 녀석들이 함께 서 있는 모습을 상상만 해도 고환의 주름 사이사이까지 짜릿짜릿하단다. 

이제는 거의 포기상태에 이른 나는 요나를 향해 씁쓸하게 미소를 지은 뒤 지유의 무대에 집중했다. 

―처음 만난 그날처럼 끝까지 널 사랑할게······. 

노래는 잔잔한 여운을 주며 끝이 났다. 

누가 들어도 무대에 오를 만한 자격이 있는 실력이었다. 

―짝짝짝짝짝! 

지유는 한 템포 늦은 박수가 흘러나오는 객석을 향해 고개 숙여 감사의 인사를 전한 뒤 잰걸음으로 퇴장하려 했다. 하지만 MC인 김신화가 조용히 보내줄 리가 없었다.  “지유 씨, 잠깐만요.” 

수줍음을 많이 타는 성격인지, 이지유는 곤란한 표정을 지으며 팔로 엑스자를 그렸지만 결국 무대 중앙에 다시 서게 됐다. 

“제가 담당 복지사님께 듣기로는 원래 유명한 걸그룹 연습생 출신이라고 하던데요. 맞으세요?” 

지유는 대답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크으 어쩐지. 노래 실력이랑 무대매너가 남다르더라고요. 근데 아기 이름이 업키걸 은빛 양이랑 똑같던데 의도를 하고 그렇게 지으신 건가요?” 

그녀는 또 다시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걸그룹 연습생 출신이라고 하기에는 숫기가 너무 없는데···. 

무대 공포증은 아니다. 노래를 부를 때도 차분하긴 했지만 제스처나 표정은 확실히 무대경험이 있는 사람의 태도였기 때문이다. 

MC 김신화도 그제야 뭔가를 감지하고 상황을 정리했다. 

“아이고, 부끄러움이 되게 많으시구나. 그럼 마지막으로 우리 소중한 아기 은빛이한테 한 말씀 해주세요.” 

그건 꼭 하고 싶었던 모양이다. 

이지유는 거사를 앞에 둔 사람처럼 심호흡을 크게 한 뒤 마이크를 들었다. 손이 달달달달 떨리는 게 무대 밑에서도 뚜렷하게 보였다. 

“음··· 엄마가 세상에서 제일 사랑하는 우리 은빛이···.” 

어렵게 입을 연 이지유. 

안색이 안 좋아진다 싶더니···. 

“좆이나 빨아! 섹스! 자지! 아, 죄송합니다!” 

결국 사고를 쳐버렸다.

< 보라색 아우라가 이 정도는 돼야지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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