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업키걸 연홍(2) - 피지컬이 깡패다 >
회식 도중 잠깐 화장실에 들른 사이 란이에게 톡이 왔다.
망란이 [섹스]
나 [섹스 뭐]
망란이 [하고 싶다!!!!]
나 [ㅋㅋㅋㅋㅋ 안 자냐?]
망란이 [이제 자려고 누웠는데 시상식에 정장 집고 나온 대표님 보니까 확 꼴려서 미치겠어요. 퇴근할 때 잠깐 들러서 보지 좀 달래주고 가요♡]
뭘 달래달라고···?
하여튼 이런 쪽 어휘력은 끝판왕이라니까.
그동안 란이랑 나눈 카톡 대화만 캡쳐해도 웬만한 야설 못지않을 것이다.
똑같은 하트 이모티콘도 이놈이 보내면 뭔가 야릇하고 녀석의 신음소리 같은 환청이 들릴 때도 있다.
내가 미친 건지 란이가 미친 건지···.
나 [오늘은 안 되겠는데. 지금 시상식 끝나고 회식 자린데 이거 끝나면 홍이 연습하는 거 봐줘야 되거든]
망란이 [그럼 홍이 언니랑 섹스하겠네요? 좋겠다···]
나 [넌 날 대체 뭘로 보는 거냐]
망란이 [ㅋㅋㅋ 그럼 오늘은 진짜 안 되는 거예요?ㅠ]
나 [내일 하자. 업키걸 애들이랑 있을 땐 나도 몸 사려야 돼. 여기에 눈치 빠른 애가 한 둘이냐. 혹시라도 너랑 나랑 이런 사이인 거 걸리는 날에는 우리 둘 다 죽는 거야]
망란이 [대표님은 5명 중에 누가 제일 무서워요?]
나 [리야랑 서원이 아닐까]
망란이 [요나 언니는 끼지도 못하네]
나 [두 사람에 비하면 요나는 요조숙녀지. 암 그렇고말고]
망란이 [ㅋㅋ요나 언니가 그 정도는 아닐 텐데]
망란이 [요나 언니 진심으로 화내는 거 한 번도 못 본 거 아니에요?]
요나가 진심으로 화내는 모습?
화내는 모습은커녕 깊은 감정 선을 드러낸 것도 처음 만났을 때 이후로 못 본 것 같은데···.
워낙에 감정기복이 없어서 돌부처 요승환이라고 불리는 아이다.
화가 나는 부분이 있더라도 항상 이성적이고 냉정하게 정리를 해서 대화로 풀려고 노력한다.
나 [너는 요나 화내는 거 본 적 있어?]
망란이 [ㅇㅇ 아이컨택 데뷔하고 나서 김석원이랑 대판 싸운 적 있었음. 요나 언니 완전 꼭지 돌아서 팬들 앞에 있는데도 미친년처럼 소리 지르고 난리도 아니었어요. 그때는 뭐 때문에 싸웠는지 말 안하고 넘어갔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아마 스폰 때문에 그랬던 거 같아요]
나 [그랬구나..]
망란이 [그럼 오늘은 우리 섹스 못하는 거죠?]
나 [그럴듯]
망란이 [ㅇㅋ 일단 접수. 딸딸이나 쳐야겠네ㅠ]
나 [미안해. 내일은 최대한 시간 내볼게]
망란이 [미안하면 늦게라도 와서 질싸튀 하고 가요ㅋㅋ 저 자고 있을 때 박히는 거 좋아해요]
나 [너 is 뭔들···]
망란이 [ㅋㅋㅋㅋㅋ]
화장실은 건물 공동 화장실이었다.
란이와의 채팅을 마무리 짓고 변기 칸 밖으로 나오던 찰나에 '그림자의 빛' 메인작가로 회식에 참여한 엄승미에게 전화가 왔다.
밖에서 뭐 사올 게 있나 싶어서 받았더니 주위가 시끌벅적하다.
"예, 작가님."
─대표님 어디세요?
"화장실이요."
─여기 빨리 와보셔야 겠는데요.
그녀의 목소리는 격양돼 있었고 수화기 너머에서는 요나로 추정되는 여자 목소리가 "사과하시라고요!" 라고 외치고 있었다. 주변은 말리는 사람들의 목소리로 시끌벅적했고, 그 중간중간 우리 아이들의 목소리도 들렸다.
무슨 일이냐고 묻는 것보다 식당으로 직접 가는 게 더 빨랐다.
전화를 끊은 나는 손을 씻을 틈도 없이 달리듯 발걸음을 옮겼다.
아무래도 우리 아이들을 주축으로 뭔가 싸움이 벌어진 것 같은데···.
서원이나 리야가 무슨 실수라도 한 건가.
오늘 회식 자리에는 '그림자의 빛' 출연자 및 제작팀을 포함해서 이유미의 대상을 축하하기 위한 연예인들이 대략 50~60여명 정도 모여 있었다.
분위기는 당연히 좋을 수밖에 없었다.
이유미를 중심으로 하는 연예게 고인물들도 많아서 싸움이 날리는 없는데 대체 무슨 일일까.
─끼익
복도 쪽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내 예상이 맞았다.
뭔가 싸움이 일어났고, 두 진영으로 갈라진 무리가 우리 업키걸과 남자 하나를 멀찌감치 떼어놓고 있었다.
남자는 케이블 개그 프로그램에 출연 중인 개그맨인데 메인 급은 아니지만 얼굴은 제법 알려진 사람이다. 이름은 나도 잘 모르겠다.
분위기는 이미 한 번 불타올랐다가 말리는 사람들에 의해서 소강상태로 접어든 것 같았다.
남자 쪽에는 우리 매니저인 장우가 붙어서 어떻게 된 일인지 묻고 있었다.
하지만 요나는 아직도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그에게 삿대질을 하면서 고래고래 소리를 친다. 선배들 앞에서 절대 이렇게 목소리를 높일 아이가 아닌데 말이다.
"제가 분명히 치근덕거리지 말라고 경고했잖아요!"
"치근덕대긴 누가 치근덕대요! 아, 아퍼 씨···."
남자가 뒤통수를 매만지며 얼굴을 찡그린다.
설마 요나가 때린 건가?
"그냥 좀 친해져보려고 살갑게 접근한 거라고요."
그가 주위 사람들의 따가운 눈치를 느끼고 해명하듯 웅얼거리자 요나가 버러럭 소리쳤다.
"제가 치근덕거리는 거랑 살가운 것도 구분 못할 것 같아요? 홍이 언니 순진한 거 알고 수작 부린 거잖아요!"
요나가 아니라 홍이가 무슨 짓을 당한 거구나.
하긴, 만약 요나 본인이 당한 일이라면 1대1로 조용히 해결하고나서 나에게 보고했겠지.
요나는 단순히 목소리만 높아진 것이 아니라 표정에도 독기가 잔뜩 서려있었다.
이런 일이 벌어졌을 때 앞장서서 싸우는 리야와 서원이가 오히려 요나를 붙들고 말려야 할 정도였는데, 가만 놔두면 육탄전도 불사할 기세였다.
"뭐야, 왜 그래?"
내가 등장하자 업키걸을 둥글게 감싸고 있던 인파가 좌우로 갈라진다.
"대표님!"
"어, 요나야. 무슨 일인데?"
눈에 쌍심지를 켠 요나가 개그맨을 가르키며 내게 상황을 전달했다.
남자의 이름은 주찬진이었다.
"저 사람이 아까부터 홍이 언니한테 성희롱하면서 계속 찝쩍거렸어요. 제가 하지 말라고 말했는데도 사람들 안 볼 때마다 계속 작업 걸고 그러잖아요. 몸도 슬쩍슬쩍 만지면서요."
주찬진은 성희롱이라는 발언에 발끈하며 되려 소리쳤다.
"성희롱이라니, 말조심해요! 아 다르고 어 다른 거예요!
결정타는 홍이와 그가 사진을 찍을 때 벌어졌다.
주찬진이 홍이에게 사진을 찍자고 하면서 허리를 과하게 끌어안았다는 것이다. 하지만 순해 빠진 홍이는 그 터치를 그대로 받아주었고, 결국 두 사람을 주시하던 요나가 주찬진의 옷을 잡아끌었는데 의지가 뒤로 넘어지면서 머리를 찧은 것이다.
"그런데 자기가 넘어진 것만 문제 삼으면서 넘어가려고 하잖아요."
내게 설명을 마친 요나는 다시 주찬진을 향해 앙칼지게 소리쳤다.
"빨리 먼저 사과하세요! 그럼 저도 사과할 테니까요!"
"성희롱 아니라고!"
요나가 없는 말을 지어내지는 않았을 테지만 이럴 땐 남자 쪽 말도 들어봐야 했다. 그는 자신도 억울하다는 듯 주변 동료들에게 계속 정황 설명을 하고 있었다.
얼굴만 벌겋게 달아올랐을 뿐, 발음이나 표정으로 미뤄 술은 그렇게 취해보이지 않았다.
결국 오늘의 주인공인 이유미 선배가 나서서 주찬진에게 정식으로 해명을 요구했다.
그 결과, 그는 홍이에게 농담을 하고 사진을 찍으면서 과하게 터치한 부분은 인정했다. 하지만 평소에 홍이의 팬이었고 단순히 친해지고 싶어서 그런 거라면서, 받아들이는 정도의 차이일 뿐이라며 억울해했다.
성적인 농담은 본인이 수위 조절을 잘못한 것이고, 허리를 감싼 부분은 평소 스킨십을 좋아해서 남녀를 가리지 않고 그렇게 한다면서 말이다.
그럼 이제 홍이의 생각을 들어볼 차례다.
당사자인 홍이가 살갑게 받아들였다면 요나가 약간 과민반응 한게 맞고, 홍이가 기분이 나빴다면 사과를 받아야 할 것이다.
나는 당사자인 홍이를 따로 불러서 물었다.
"요나나 다른 사람 신경 쓰지 말고, 그냥 니가 느낀 감정은 어땠어? 기분 나빴어, 아니면 아무렇지 않았어?"
"···솔직히 기분 나빴는데요, 괘, 괜히 분위기 망칠 것 같아서 가만히 있었어요."
홍이의 성격상 그랬을 것이다.
주찬진은 초면인 홍이에게 가슴이 커서 어깨가 결리지 않냐는 둥, 달리기를 할 때 남자들이 쳐다봐서 불편하지 않았냐는 둥, 걱장하는 척 물어봤다고 한다. 그리고 홍이가 어느 정도 대답을 하고 웃으면서 받아주자 수위를 점점 높여간 것이다.
어떤 부류의 인간인지 대충 감이 온다.
내 경험상, 대화로 슬슬 간을 보면서 사람의 성격을 파악하는 사람들은 기회주의자 또는 강약약강 타입이 많았다.
만약 홍이가 처음부터 정색을 하거나 받아주지 않았다면 아무렇지 않은 척 웃으면서 사과를 했겠지.
"자기가 예전에 가슴 큰 여자 친구 만나봐서 아는데 어깨 많이 아플 거라면서, 나중에 스포츠 마사지 해줄 테니까 회사에는 말하지 말고 연락처 달라고 그러고···."
"미친놈, 연락처 안 줬지?"
"안 줬어요."
홍이는 한 톤 낮아진 목소리로 덧붙였다.
"저 오빠는 살가운 게 아니라 되게······ 으음······."
"오케이, 무슨 말 하려는지 알겠어. 그럼 가서 사과 받자?"
나는 고개를 끄덕이는 홍이의 손을 잡고 여전히 억울하다는 듯 주절주절 거리고 있는 주찬진 앞으로 갔다. 그리고 물었다.
"나이가 어떻게 되세요?"
"스물여덟입니다."
"음··· 스물여덟이면 살가운 거랑 성희롱의 차이를 모를 만한 나이는 아닐 텐데, 평소에 다른 사람들한테도 그런 식으로 말하세요? 초면인 여자 애한테 가슴이 어쩌고저쩌고? 미친 거 아닙니까?"
"아니, 그게 아니라요, 대표님···."
"됐고요, 홍이한테 정식으로 사과하세요. 얘기 들어보니까 요나가 충분히 화낼 만 했네. 안 맞은 걸 다행으로 생각해요. 저도 지금 한 대 치고 싶은 거 참고 있는 거니까. 아니면 저한테 한 대 맞고 같이 경찰서 갈래요?"
주찬진의 얼굴에서 이제야 억울한 기색이 사라졌다.
물론 경찰서 얘기는 그에게 경각심을 주기 위해 내 쪽에서 배짱을 부린 거다.
아무리 홍이가 피해자라고 해도 경찰이 오가는 건 우리 쪽에도 반가운 일은 아니니까.
선배들이 보는 앞에서 잘못을 까발리고 사과를 받는 것 정도면 된다.
어차피 이쪽 일 하다보면 나중에라도 이래저래 마주칠 수 있는데, 진심으로 사과를 한다면 한 번쯤은 넘어가주는 게 회사와 업키걸 이미지에도 좋다.
뭐, 그렇다고 해서 사람의 성격이라는 게 한 번에 바뀌지는 않겠지만 오늘 이후로 우리에게만 거슬리지 않으면 되지 않겠는가.
그리고 주찬진이 진짜 악질이라면 언젠가는 다른 곳에서 문제가 터지기 때문에 굳이 우리 손을 더럽히지 않아도 된다.
"죄송합니다···."
그게 진짜 진심이든 아니든, 그는 홍이 앞에서 허리를 숙이며 최대한 진중하게 사과를 했다.
하지만 그건 그거고, 그는 결국 회식자리에서 쫓겨나듯 퇴장해야했다.
이유미 선배가 대놓고 가라고 했기 때문이다.
이미 이곳에 있는 사람들에게 찍힌 것만으로도 그에게는 큰 처벌이었다.
업키걸 멤버 중에서 홍이를 유독 예뻐하던 이유미는 예쩐에 방송에서 했던 말로 홍이를 위로해주었다.
"홍아, 언니가 방송국에서 누구를 띄워주지는 못해도 보낼 수는 있으니까 말만 해."
***
"매력적인 꽃에는 항상 나비가 꼬이기 마련이자너. 내가 남자라고 해도 홍홍 언니를 그냥 놔두지 않았을 것이야."
예정대로 홍이와 나, 리야가 회식자리에서 먼저 빠져나왔다.
분위기상 나도 어쩔 수 없이 술을 한 잔 마셔야 했기에, 리야의 개인 기사인 홍 기사 아저씨─롤스로이스─를 호출해서 역삼동에 있는 홍이의 폴 댄스 연습실로 향했다.
내가 조수석에, 홍이와 리야는 뒷자석에 탔다.
"기사 아조씨."
"예, 공주님."
"아조씨도 업키걸 멤버 중에 홍홍 언니가 원픽이라고 했자너. 맞지?"
"하하하, 제 원픽은 알리야 공주님이시죠."
"으응으응, 알리야는 빼고."
"그럼 홍이 아가씨죠."
"아조씨도 홍홍 언니가 글래머라서 좋은 것이야?"
딱 짚어서 대답을 하지는 않았지만 아저씨의 표정을 통해 그런 부분이 어느 정도 있음을 알 수 있었다.
홍 기사님은 백미러를 통해 홍이의 얼굴을 살피며 인자하게 미소지었다.
"얼굴도 예쁘시잖아요. 거기에 성격도 착하시고, 무대 위에서는 프로페셔널 하시고··· 그런 게 다 합쳐져서 좋은 거지요."
"어휴, 올드보이도 남자는 남자구나. 주책맞자너."
"하하하, 나이가 든다고 해서 예쁜 걸 안 예쁘다고 할 수는 없는 것 아닙니까."
"가, 감사합니다···."
홍이는 어색하게 미소 지으며 대답했다.
업키걸 다섯 명의 인기는 대체적으로 평준화 되었지만 30대 이상 남성층에서만큼은 홍이의 인기가 압도적이다.
하지만 데뷔 3년차임에도 불구하고 홍이는 자신을 향한 그런 호감과 인기가 아직도 얼떨떨하기만 하다.
물론 처음에 비하면 지금은 많이 의연해진 편이다.
다이어트 전의 홍이의 자존감이라는 건 거의 플라나리아 수준이었고, 데뷔를 한 이후에도 한동안은 팬들에게 굽실거리며 을도 아닌 정의 마음으로 그들을 대했다.
한 때는 서원이와 리야의 당당함을 따라 하고자 팬들을 상대로 여왕 놀이도 해보고 애써 알파걸 흉내도 내봤지만 20년 넘게 구축된 인성을 바꿀 수는 없었다.
홍이는 지금도 사람들 앞에서 필요이상으로 굽실거리고 그들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 애를 쓴다.
물론 팬들에게는 그런 면이 반전 매력으로 다가가서 홍이의 인기는 계속 상승 중이다.
피지컬은 괴물인데 성격은 순둥순둥하다고 하여 홍트리버(홍+리트리버)라고도 불린다.
순진하고 순수한 면에 있어서는 은빛이보다 홍이가 한 수 위이고, 모쏠 3인방 ─은빛, 서원, 홍─ 중에서도 엘리트 코스만 밟은 파이브스타 원수 급이다.
은빛이는 (똘)끼라도 부릴 줄 알고 서원이는 자기가 예쁜 걸 누리기라도 하지, 홍이는 그냥 순둥이 그 자체다.
그런 홍이가 자기도 모르는 끼를 발산하는 순간이 있는데 바로 무대 위에서였다.
그리고 그 중에서도 요즘 배우고 있는 폴 댄스를 출 때는 인격 자체가 바뀌어버리는 것 같다.
바로 지금처럼···.
"풉···!"
나는 홍이가 갈아입고 나온 연습복을 보자마자 진심으로 커피를 뿜었다.
"홍아, 옷 그거 밖에 없어?"
"왜요?"
"아··· 너무 추워보여서···"
"봉 조금만 타면 금방 열 올라서 괜찮아요."
원래 폴 댄스 의상이 한팬츠 수준이긴 하지만 홍이가 지금 입고 나온 건 노출이 너무 심하다.
비키니에 가까운 삼각 투피스였는데, 디자인도 무슨 가터벨트를 찬 것처럼 엄청 야했다.
홍이가 입어서 더 야하게 느껴지는 걸 수도 있다.
역시 피지컬이 깡패구나.
"대표님, 죄송한데 저 스트레칭 좀 도와주세요."
어, 이거 위험한데···.
< 업키걸 연홍(2) - 피지컬이 깡패다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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