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승전싸 >
─2019 방송연예대상 그 화려한 대축제를 지금 시작합니다!
시상식장은 말 그대로 휘황찬란 아우라의 대향연이었다.
개그맨부터 시작해서 아나운서, 가수, 아이돌, 배우 등의 연예인은 물론이고 격투기 선수와 요리사 ,소설 및 웹툰 작가, 평론가 심지어는 나 같은 노멀피플까지···.
마치 이종격투기를 처음 접했던 때처럼, 각기 다른 분야에서 활동하던 그들이 예능이라는 한 울타리 안에서 이렇게 모여 있는 모습만으로도 구경하는 재미가 있었다.
나와 업키걸을 그들 사이에서 당당하게 아니, 오히려 연예인들의 연예인 대접을 받으며 시상식을 밝혔다.
'그림자의 빛' 에서 하차한지 6개월이 넘었는데도 나와 업키걸의 화제성은 여전했고, 방송 시작 전부터 내노라 하는 스타들이 먼저 우리 테이블로 다가와서 사진을 요청하고 말을 걸어왔다.
프로그램 화제성도 화제성이지만 1년 동안 수직 떡상한 업키걸의 위상 덕이리라.
근 1년 간 아이돌 그룹의 판세를 보면 보이그룹은 육탄방어전의 원탑 굳히기, 다소 경쟁이 치열했던 걸그룹 중에서는 우리 업키걸이 다방면에 걸쳐 가장 눈에 띄는 성과를 냈기 때문이다.
우리를 먼저 찾아온 연예인 중에는 의외의 인물도 포함돼 있었다.
"안녕하세요. 저는 배우 강혜민이라고 합니다. 죄송한데 사진 한 장만 같이 찍어도 될까요?"
우리나라에서 그녀를 모르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하지만 그녀는 공손하게 자기소개를 하며 '그림자의 빛' 팀을 찾았다.
"와, 진짜 신기해요. 뮤노 실장님은 진짜 연예인 보는 느낌이에요."
미쳤다, 강혜민이 내게 먼저 아는 척을 하다니!
단순한 심쿵을 넘어서 심장이 두 조각으로 갈라지는 줄 알았다. 살아오면서 수 십, 수 백 차례 가슴이 설렜었지만 이런 설렘은 또 처음이었다.
여신.
진정한 여신.
아프로디테와 비너스의 한국판 실사.
그녀의 격이 다른 자태는 조금만 예쁘면 무슨무슨 여신 소리를 붙이는 요즘 시대에 경종을 울리는 강력한 한 방이었다.
강혜민 정도는 돼야 여신이라는 수식어를 붙여야 한다.
보통 가수의 얼굴과 배우의 얼굴은 선 자체가 다르다고 하는데, 이렇게 같은 선상에서 비교를 해보니 확 체감이 됐다.
걸그룹 꼬꼬마들과는 품격 자체가 달라쏙, 스튜디오에 모인 수많은 여자 연예인들을 오징어잡이 배에 태워 동해 앞바다로 떠나보내기에 충분했다.
나이는 아마 내 또래일 것이다. 마흔 줄을 바라보고 있다는 건데, 여신 앞에서는 나이가 깡패라는 말은 통하지 않았다. 그녀에게 나이라는 건 그저 게임의 레벨이나 위스키의 숙성년도처럼 느껴질 뿐이었다.
진짜 욘나 분이기 있네.
분명 강아지 상인데 고양이 같은 느낌도 있고, 순둥해 보이는데 섹시하게 느껴진다.
그리고 화면에서는 아담한 느낌이었는데 실제 키는 힐을 제외하고도 160cm 중반은 되는 것 같았다.
강혜민은 뉴밀레니엄을 앞둔 90년대 말, '친구의 동생을 사랑한다' 라는 카피문구를 유행시켰던 ─요즘 시대에 나왔다면 철컹철컹─ 삐삐 CF에서 친구 동생 역할로 데뷔를 했다.
그 이후로 드라마 조연과 주연을 거쳐 영화까지 접수하며 한차례의 위기도 없이 승승장구했다.
스크린 데뷔와 동시에 주연을 맡았던 로맨틱 코디미 '첫사랑을 죽여주세요' 에서 엽기적인 여친 역을 소화하며 국민 첫사랑녀이자 엽기발랄 캐릭터의 아이콘으로 등극을 했는데, 당시 그 캐릭터를 좋아하지 않는 남자들이 없을 정도의 신드롬을 일으켰다. ─나도 이래저래 5번은 넘게 본 거 같다.─
데뷔 초에는 통통 튀고 철없이 해맑은 이미지였던 그녀는 나이가 들어가면서 자연스럽게 성숙미를 갖추게 되었고, 어느 순간부터는 지적이고 교양 있는 모습까지 갖추며 대한민국 대표 여배우 중 한 명으로 자리매김했다.
"랑깡깡, 입에 발가락 넣어도 돼?"
"응. 어디 넣어봐 한번. 앞니로 어금니로 잘근잘근 깨물어서 피 나오게 만들어 버릴 테니까."
"그럼 제발 입 좀 다물어. 혜민 님 앞에 두고 넘모 추해 보이자너."
"어? 아, 어어···."
염병. 나도 모르게 바보 같은 표정을 짓고 있었나보다.
리야한테 한 소리 듣고 나서야 입을 헤벌쭉 벌리고 있다는 걸 깨닫고 얼른 여물었다.
리야와 나의 병맛 만담은 '그림자의 빛' 을 통해 익히 알려져 있다. 그것을 실제로 접한 강혜민은 실소를 터뜨렸다.
"푸흣."
와, 이번에는 심장이 4등분으로 갈라지는 것 같았다.
영화나 드라마 등에서 봐 오던 연기가 아니라, 인간 강혜민의 진솔함이 묻어나온 현실 표정이었던 것이다.
그녀에게 홀린 건 나뿐만이 아니었다.
"우오와아, 언니 진짜 넘모 예쁜 거예요. 아조씨 냄새나는 랑깡깡은 잠깐 버려두고 우리끼리 먼저 찍으면 안돼요?"
예쁜 여자라면 사족을 못 쓰는 리야는 강혜민 앞에서 애교 섞인 눈빛을 발사하며 발을 도로동동 굴렀다.
나머지 아이들도 S급 대선배의 예쌍치 못한 등장을 흥분된 표정으로 맞아주었고, 강혜민 역시 이 상황이 마냥 즐거운지 아이들을 향해 하얀 건치 엄마 미소를 보냈다.
리야가 내게 카메라 기능이 켜진 휴대폰을 건넨다.
"랑깡깡이 찍어줘. 긴장해서 손 떨지 말고 잘 찍어야해. 알았지?"
"알았어."
"수존증은 아직 없지?"
"없어."
"눈은 잘 보여? 그때 눈 영양제 사줬자너. 잘 먹고 있는 것이야?"
"잘 먹고 있··· 아, 쫌···."
리야의 투머치 토크에 강혜민은 또 웃음이 터졌다.
"너무 웃겨요. 진짜 평소에도 이러시는구나."
서원이가 고개를 저으며 대꾸한다.
"안에서 새는 바가지 밖에서도 새는 거죠. 부끄러움은 항상 팀에서 유일한 정상인인 제 몫이에요."
"선배님이 가운데로 와주세용."
요나의 애교 섞인 리드 하에, 강혜민을 중심으로 업키걸 다섯 명이 자리를 잡으며 사진 대열을 만들었다. 그리고 강혜민이 먼저 '파이팅 포즈' 얘기를 꺼냈다.
"파이팅 포즈로 한 컷 찍어도 돼요?"
<업키걸 파이팅 포즈란?>
은빛이가 처음으로 도입한 병신력 돋는 포즈인데, 걸그룹에게 최대한 민망한 자세를 취하면서 표정만큼은 예쁜 척 하는 게 포인트.
사진은 평범하게 한 컷, 파이팅 포즈 한 컷, 그리고 내가 합류해서 총 세 컷을 찍었다.
우리가 출연한 '그림자의 빛' 을 전부 챙겨 봤다는 강혜민이 내 별명을 언급하며 대화를 이어간다.
"저 랑깡깡 뜻 알아요. 평범한데 나름 매력 있는 사람. 맞죠?"
리야가 정색하며 정정해주었다.
"매력까지는 아니고 나름 귀여운 것이에요. 나름."
"너무 재미있어요. 이렇게 항상 같이 다니시면 진짜 재미있을 것 같아요."
"대표된 이후로는 잘 안 놀아줘요. 꽁대 냄새랑 아조씨 냄새도 많이 나고. 아마 속옷도 잘 안 빨아서 입을 걸요? 맞지, 랑깡깡?"
"뭔 소리하는 거야. 맨날 갈아입어. 여름에는 두 세 번씩 갈아입었고."
"그래서 지금 고작 속옷 갈아입는다는 걸 자랑하는 것이야? 자랑할 게 없어서?"
"아니이, 니가 먼저 물어봤잖아···."
강혜민은 리야의 쓸데없는 투머치 토크에 미소 지으면서 은근하게 내 표정을 살폈다.
시상식용 드레스를 갖춰 입은 걸 보면 단순히 놀러온 건 아니었다.
"언니는 오늘 무슨 일로 오신 거예요? 예능 출연하신 거 있으셨어요?"
은빛이가 물었더니 시상자 자격으로 참석을 했단다.
원래는 대기실에 있다가 시상만 하고 가면 되는데 평소 친분이 있던 이유미에게 인사도 할 겸 스튜디오를 찾은 것이다.
이유미는 우리와 함께 '그림자의 빛' 에 출연했던 대한민국 탑급 MC이자 개구우먼이다. 이번 시상식에서는 무려 대상 후보에 올라있다.
강혜민은 그런 이유미를 앞에 두고 농담까지 하며 우리를 치켜세워줬다.
"제가 원래 예능은 잘 안보는데 '그림자의 빛' 은 유미언니가 나온다고 해서 봤거든요. 근데 유미 언니보다 업키걸 님들이랑 뮤노 실장님 파트가 더 재미있는 거예요."
"안 그래도 우리 혜민이가 업둥이들이랑 뮤노 대표님이랑 같이 해서 밥 한 번 먹고 싶다고 했거든."
옆에서 흐뭇하게 지켜보던 이유미가 능숙하게 대화에 참여하며 인맥의 다리를 놓아주었다.
그녀와 우리는 '그림자의 빛' 을 통해 반 년 정도 스튜디오 촬영을 하며 친불을 꽤나 쌓았다. 스튜디오 촬영은 2주에 한 번 있었는데 그때마다 항상 회식을 했었다.
"내가 자리 한번 만들 테니까 모이자. 응?"
"좋죠."
"아, 얘기 나온 김에 오랜만에 회식 한 번 할까? 시상식 끝난고 스케줄 없지?"
"예, 없습니다."
"업둥이들도 괜찮지? 욘리다 콜?"
이미 결정은 났지만, 이유미는 팀의 리더인 요나의 체면을 살려주듯 별명을 부르며 한 번 더 되물었다.
요망한 요나는 양손을 애교 있게 흔들면서 대선배에게 화답해주었다.
"콜콜콜! 선배님이 부르시면 스케줄이 있어도 빼야죠!"
"아유, 우리 요나는 가식도 너무 예쁘게 포장할 줄 알아서 좋아. 가식인데도 전혀 가식 같이 안 느껴지잖아? 사회생활은 이렇게 해야 되는 겨."
"가식 아니에요오."
"서원아, 니가 말해봐. 너네 리더가 평상시에 애교 있는 편이니?"
"전혀요. 완전 돌부처. 저희한테는 완전 무뚝뚝한데 선배님들한테만 저래요. 이중인격."
"거봐, 내가 정확히 봤지. 근데 서원이 너는 아직도 요나한테 쌓인 게 많구나?"
"엄청 많죠. 지금도 계속 쌓이고 있고요."
이유미 선배는 흡족하게 손짓을 하며 특유의 화법으로 분위기를 이끌었다.
"어머, 나는 얘들이 솔직해서 좋다니까. 근데 주먹 놔두고 뭐하니. 여자가 돼서 쪼잔하게 입만 털지 말고 치고 박고 싸워서 자웅을 가려야지. 서원이 너 싸움 좀 하지 않니?"
"저 싸움 못 해요. 싸우면 제가 져요."
"그럼 업키걸 주먹 1위는 누구야? 홍이?"
"예. 저희 4명이 덤벼도 못 이길 걸요."
이유미는 소심한 성격 탓에 이런 분위기에 좀처럼 끼지 못하고 있는 홍이에게 물었다.
"홍아, 오늘도 언니랑 먹부림 한 번 제대로 해야지? 뭐 먹을래? 1차는 홍이 먹고 싶은 걸로 해."
"고기요."
"그래, 역시 1차는 고기지. 홍이 얘가 확실히 먹을 줄 안다니까."
"히히···."
"근데 우리 홍이는 다 좋은데 날씬한 게 마음에 안 들어. 홍이 너 혹시 말만 그렇게 하고 집에 가서는 쫄쫄 굴는 거 아니니? 그거 진짜 배반이야, 배반."
홍이를 대신해서 내가 얘기해주었다.
"선배님, 홍이는 먹으려고 연예인 하는 애예요. 스케줄 많은 날에는 아무리 먹어도 살이 안 찐다면서 얼마나 좋아하는데요."
"크으, 역시 즐기는 자는 아무도 못 이기는 겨. 우리 혜민이도 봐봐. 얘도 먹는 거로는 우리나라 2등인데 맨날 사부작사부작 움직이니까 살이 안 찌잖아. 하여튼 예쁜것들이 더 해요."
톱스타 강혜민과의 뜼 깊었던 대화는 회식자리에서 계속하기로 약속하고 그녀는 대기실로 돌아갔다.
잠시 뒤 생방송으로 진행되는 시상식은 나와 업키걸이 녹화 했던 '내귀두남' 패러디 VCR로 시작이 되었다.
우리와 제작진은 물론 재미있게 촬영을 했지만 다른 사람들 눈에도 그렇게 보일까 내심 걱정이 됬었다. 하지만 현장에 모인 연예인들과 관객들의 반응을 통해 기우였음을 확인했다.
최종 편집본이 더 재미있었고 업키걸 아이들의 연기와 미모는 기대 이상이었으며 내 발 연기는 예상된 타이밍에서 적절하게 웃음을 터트려 주었다.
그 결과, 업키걸과 나는 100% 실시간 투표로 결정이 되는 베스트 커플 상을 수상하게 되었다.
─예, 걸그룹에서 이제는 연기자로, 그리고 제작자로도 활발하게 활동을 하고 계신 제희 씨가 국민 매니저 김 윤호 씨께 트로피를 전달하고 있습니다.
참나. 하필이면 시상자가 제희다.
이런 자리에서 이런 관계로 만나게 될 줄은 몰랐네···.
─제희 씨 오늘 드레스가 너무 예쁜데요?
─예, 고급스러운 보라색이 제희 씨의 이미지랑 너무 잘 맞아떨어집니다.
인어공주의 꼬리 같은 모양의 오픈 숄더 드레스였다.
하트모양으로 파여져 있어서 가슴골이 반쯤 드러나 있었다.
나는 알고 있다.
저 안에 감춰진 예쁜 가슴의 모양, 그리고 유두의 색깔까지···.
지금은 해체한 4인조 걸그룹 플랜엘의 비주얼 멤버 제희.
한 때 죽어가던 나의 연애세포에 호흡기를 달아주고 노총각의 퍼석한 마음에 달달한 습기를 불어넣어주었던 제희.
회사 동료와의 회식 자리에 먼저 와서 분위기를 띄워주고 씽씽걸을 만나보고 싶다면서 미소 짓던 그녀.
정보창 때문에 강제 고자가 됐던 내게 자신을 왜 안 덮치냐면서 끼를 부렸던 그녀.
종로의 허름한 모텔도 마다않고 따라와서 구토를 하던 그녀.
'나 오늘 완전 안전한 날' 이라면서 내 귓가에 섹시하게 속삭이던 그녀.
내가 하는 거라면 다 좋으니 거칠게 해도 괜찮다고 하던 그녀.
맥심 화이트골드 빛깔의 유두를 품고 있던 그녀.
편의점에서 산 스타킹으로 나를 황홀하게 만들어주었던 그녀.
그러나 업키걸의 미래와 매니저로서의 본분에 충실하기 위해 내가 의도적으로 멀리 했던 그녀······.
가끔 업무적인 이유로 연락을 하기는 했지만 실제로 만난 적은 없었다.
1년 넘게 만나지 않으니 한동안 나를 설레게 했던 마음도 멀어지는 것이 당연했다.
하지만 오랜만에 이렇게 얼굴을 보니 자연스럽게 그 때의 떨림이 되살아난다.
"축하해요, 오빠."
"고마워요."
제희는 내게 트로피를 건네며 손끝을 의도적으로 접촉했다.
요나 이상으로 요망한 제희 나른대로의 재회 인사임을 알 수 있었는데, 손이 닿는 순간 짜릿한 느낌이 들면서 그녀의 섹슈얼 정보창이 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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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름 : 한제희
─ 나이 : 29
─ 키 : 167cm
─ 몸무게 : 51kg
─ 나에 대한 호감도 : A
─ 성욕 : B
─ 성 개방지수 : B
─ 성 판타지 : 남자에게 정신없이 리드당하기
─ 핀 포인트 : 귓볼, 등
★ 난소의 배란 장애 및 호르몬 분비 불균형으로 인한 불임률 92%. 질내사정 치료 요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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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아아앗, 이게 뭐냐!
또 기승전싸냐!
< 기승전싸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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