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망란, 계단, 손가락 >
미오가 왜 왔지?
"라희야, 잠깐만···."
라희에게 양해를 구하고 문을 열었다.
숏컷 단발을 양 갈래로 묶은 미오가 눈썹을 긁적이며 서 있다.
"저 드릴 말씀이···."
뭔가를 말하려던 녀석은 소파에서 괴로워하고 있는 라희를 발견하고 눈썹을 치켜세웠다.
"어? 라희 어디 아파요?"
"다리."
"아··· 그럼 저는 이따가 올게요."
잠깐.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미오에게 라희의 마사지를 맡겨야겠다.
쾌락을 위한 뻥카인 걸 알게 된 이상 내 사무실에서까지 장단을 맞춰줄 생각은 없다.
라희 입장에서도 거짓말을 했으니 내가 대타를 기용해도 딱히 할 말이 없을 것이다. 사쿠라는 사쿠라로 막아야지.
나는 되돌아가려는 미오의 어깨를 잡고 가지 말라는 사인을 보낸 뒤 라희에게 안 보이는 각도에서 입모양으로 대화를 나눴다.
'라희 또 거짓말이야. 이번에는 니가 좀 해줘.'
'예? 제가 어떻게요?'
'일단 들어와.'
'예···.'
"라희야, 오늘은 미오가 대신 해줄게. 내가 어제 넘어지면서 오른쪽 손목을 삐끗했거든."
나는 미오에게 어깨동무를 하고 라희 쪽으로 이끌면서 자연스럽게 연기를 했다.
"웬만하면 내가 직접 하려고 했는데 도저히 팔에 힘이 안 들어간다."
라희가 순간적으로 동요하는 것이 느껴졌다. 하지만 나는 녀석이 뭐라고 대꾸할 틈도 주지 않고 바로 미오에게 전했다.
"내가 어디 부위인지 알려줄 테니까 니가 주물러줘."
"아, 예···."
나는 진맥을 잡듯이 진지한 표정으로 라희의 무릎 주위를 만지다가 그 위에 미오의 손을 올려주었다. 그리고 괜히 전문적인 투로 말했다.
"여기를 가만히 만져보면 근육이 올라온 게 느껴질 거야. 빨래판처럼 올록볼록하게···."
미오도 눈치껏 연기를 하며 잘 받아주었다.
"아, 예. 느껴져요. 여기 맞죠?"
"그렇지. 여기를 살살 주무르면서 풀어주면 돼."
"예."
"나 잠깐 위에 갔다 올 테니까 혹시 상태 나빠지면 전화 줘."
"예, 다녀오세요."
"라희야, 미오 언니랑 잠깐만 있어."
"예에···."
어른의 세계를 얕보지 말란 말이야.
나는 다소 실망스러운 기색의 라희를 뒤로 한 채 도망치듯 대표실에서 벗어났다.
직원들이 있는 사무실 쪽을 거쳐서 나가려는데 홍보팀 주임 미정 씨가 나를 부른다.
"대표님, 방금 노랑나비 재단에서 전화 왔는데요."
"예."
"업키걸 정기후원이랑 기부금 관련해서 인터뷰 내보내도 되냐고 물어보는데요?"
"업키걸 이름으로 기부한 거 밝혀도 되냐는 거죠?"
"예."
"신문사 인터뷰?"
"아뇨, 공공기관에 들어가는 복지 홍보 책자래요."
"그러라고 하세요. 좋은 일을 했으면 자랑을 해야지. 이참에 아예 보도 자료를 만들어서 언론사에 뿌릴까요?"
"안 그래도 염 대표님이 말씀하셔서 작업 중이에요."
"굿."
"아, 그리고 기관에서 생활하시는 분들이 고맙다고 동영상이랑 편지 보내주셨어요."
"영상은 애들 보게 회사 톡방에 올려주세요."
"예."
"혹시 노랑나비 재단이 이번에 애들 바자회 공연 하기로 한 데예요?"
"예, 맞아요."
"28일?"
"27일이요."
"음···."
8일 뒤다.
말일에 예정돼 있는 연습생 월말 평가에 앞서, 실전 무대경험을 쌓아주면 좋을 것 같다.
나는 홍보팀 맞은편 파티션에 있는 매니지먼트 팀 직원에게 전했다.
"혜인 씨, 업키걸 공연 중간에 연습생 애들 게스트 무대 하나만 넣어주세요."
"몇 분 정도로요?"
"멘트 포함 20분 정도면 되지 않을까요? 네 곡 정도."
"근데 연습생 무대를 중간에 넣으면 업키걸이랑 실력 차이가 너무 크게 날 것 같은데요."
"아, 그렇겠구나. 그럼 아예 오프닝 공연으로 빼주세요."
"예, 그게 좋을 것 같아요."
전달사항을 마치고 연습생들이 있는 9층 트레이너 센터로 가려는데 엘리베이터가 지하 2층에 있다.
아아, B컵 좋지. 좋고말고.
요나가 70B라고 했······ 아, 젠장.
B2층을 보고 B컵 가슴을 떠올리다니, 이젠 만사가 그쪽으로 연상되는구나.
이쯤 되면 마구니 그 자체가 아니냐고···.
그 사이 엘리베이터는 B컵 3층까지 내려갔다.
"에이···."
그냥 포기하고 계단실로 올라갔는데···.
"어? 너 여기서 뭐하냐."
8층과 9층 사이 중간계단에 망란이가 있는 것이 아닌가.
벽에 등을 기댄 채 심해 불쾌한 표정으로 누군가와 문자질 중이었다.
"표정 왜 그래? 누구랑 싸웠어?"
녀석은 대답 대신 채팅 중인 핸드폰을 내게 통째로 넘겼다.
스윽 훑어보니, 예쩐에 잠깐 만나던 사이로 보이는 남자가 란이에게 병적인 집착을 하고 있다.
프로필 사진은 마세라티 엠블럼.
며칠 전까지는 이해 가능한 범주 내에서 대화가 이어졌지만, 방금 란이와 주고받은 채팅을 보니 아주 질이 나쁜 인간이다. 질은 또 서원이 질이 예쁘···.
란 [저 그쪽한테 관심 없으니까 연락 그만하시라고요]
3DO's [그쪽? ㅅㅂ 장난하냐ㅋㅋㅋㅋ 오빠오빠 거리면서 존나 꼬리칠 땐 언제고··· 씹던 껌처럼 뱉으면 그만이야?]
란 [???? 오빠랑 저랑 무슨 일 있었어요?]
3DO's [내가 씨발 무슨 일이라도 있었으면 이러겠냐? 아무 것도 못 했으니까 이러지ㅋㅋㅋ]
란 [무슨 뜻인지????]
3DO's [내가 먹튀나 당하려고 너한테 퍼줬겠냐고 ㅋㅋㅋ]
란 [ㅋㅋㅋㅋㅋㅋ 아~ 저랑 섹스 못해서 화나셨구나?]
란 [시계는 당연히 돌려드릴 생각이었고요. 저한테 퍼주신 거 내역 보내주세요. 돈 부쳐 드릴게요^^]
란 [아오 찌질해ㅋㅋㅋㅋㅋ]
3DO's [걸레년이 어디서 뒤지려고 센 척이야ㅋㅋㅋㅋㅋ]
3DO's [그래 이 씹창년아 나만 못 먹어서 존나 빡쳤다^^ 시계 안 줘도 되니까 한 번 대줘라]
3DO's [오늘 회사 앞으로 가면 되는 각?ㅋㅋㅋ]
"이 사람 누구야?"
"삼도요."
"삼도? 래퍼 삼도?"
"예. 다이렉트 오빠들이랑 놀다가 알게 돼서 몇 번 만났는데 혼자 상상의 나래를 펼쳤나 본데요."
다이렉트는 난장, 조켠 등이 소속된 유명 힙합 레이블이고, 문제의 삼도는 힙합 오디션에서 탑4에 오르면서 유명세를 탔던 래퍼다.
업키걸 활동 초반 때 행사장에서 한창 마주치다가 어느 순간부터 안 보인다 했더니 이러고 앉아있네.
"얘한테 뭐, 시계 받았어?"
"예, 이거."
란이가 점퍼 소매를 걷어서 보여준 건 여성용 까르띠에 시계였다.
"몇 번 안 만났는데 이런 걸 줬다고?"
"응. 나한테 완전 꽂혔대요. 근데 섹스는 안 했거든요? 했으면 큰일 날 뻔 했네."
"자랑이다···."
"자랑이죠."
지난 대화 내용을 쭉 확인해 봤다.
란이가 끼를 부렸든, 채팅 상으로만 보면 삼도쪾에서 불도저처럼 대시를 했고, 란이는 적당히 받아주면서 어장관리를 했다. 그러다가 란이가 이제 연습에 집중해야 해서 연락을 못할 것 같다고 말을 하자 폭발한 것이다.
그 와중에 기특한 건, 나와 처음 관계를 맺은 그 다음 날 바로 칼 같이 잘랐다는 것이다.
내가 채팅방을 확인하는 와중에도 삼도로부터 과격하고 천박한 메시지가 계속 오고 있었다.
"얘가 너 연습생인 거 알아?"
"예."
"그럼 저녁에 회사 앞으로 오라고 해서 시계 돌려줘. 아니다, 그냥 내가 만나서 얘끼할게."
"가오 떨어지게 대표님이 이딴 인간을 왜 만나요. 제가 알아서 끊을 게요."
"안 돼. 보니까 얘 지금 눈 돈 것 같은데 무슨 짓을 할 줄 알고."
"그냥 허세 부리는 거예요. 지금 앨범 녹음 중이라서 별 짓 못해요."
"그럼 회사로 오라고 그래. 연습시간 외에 외출 금지라고."
"응, 그렇게 할 게요."
덤덤하게 대답하는 녀석에게 되물었다.
"이런 거 또 몇 사람이나 있어?"
"다른 남자들은 다 열심히 하라면서 응원해줬는데 얘만 이래요."
"사귀던 남자는 없었고?"
"전 사귀지는 않아요. 어떻게 한 남자만 사랑을 해요?"
"잘났다."
"잘났죠."
"어휴···."
"아, 왜요. 남자들이 매달리는 걸 어쩌라고. 그래도 대표님이랑 떢친 이후로 진짜 깔끔하게 다 끊었어요."
"그 놈의 떡, 떡. 말 좀 예쁘게 하라고 했다."
"아참, 그랬지. 대표님이랑 씹질한 이후로 다 끊었어요."
"됐다···."
"킥킥킥, 근데 왜 엘베 안 타고 계단으로 올라왔어요?"
"엘리베이터 오래 걸려서."
"에이, 난 또 여기 있는 거 알고 온 줄···. 어? 근데 라희는요?"
"다리 마비 와서 미오가 풀어주고 있어."
"아, 진짜요? 왜 대표님이 안 해주고?"
"회사에서 좀 그렇잖아···."
콧잔등을 찡그리며 수긍한다.
"하긴, 라희 걔 마사지 할 때 섹소리 너무 심하긴 하드라. 그리고 걔 은근 똘끼 있는 거 알아요?"
"너만 할까."
"에이, 저는 똘끼가 아니라 색기죠. 패왕색기, 파워색기."
"그래 이 색기야···."
망란이가 내 얼굴을 빤히 쳐다본다. 그러다가 잊고 있던 뭔가가 생각난 듯, 눈썹을 치켜세우며 "어? 대표님." 하고 톤을 높여 불렀다.
"왜."
"나 꼴렸다. 박아줘요."
"에이, 왜 그래. 연습생들한테 할 얘기 있으니까 올라가."
일부러 바쁜 척을 하며 계단을 올라가려고 했는데···.
─덥썩
내 허리를 부둥켜안으며 낑낑거린다.
"잠깐만요. 장난 아니고 진짜예요."
"아, 갑자기 왜에."
"대표님 콧대보면서 섹시하다고 생각했는데요, 갑자기 물이 확 나왔어."
"놔놔놔, 이따가 점심시간 때 숙소 가서 하자. 여기서 뭘 어떻게 하냐."
"아아아아, 그래봤자 1분, 아니 30초도 안 걸려요. 내가 빨리 쌀 테니까 박아줘요."
"미쳤나봐."
"이럴 시간에 벌써 끝냈겠다! 지퍼 사이로 꺼내기만 하면 되잖아요, 아, 빨리빨리."
내 바지 지퍼를 강제로 열려고 한다.
아니, 그새 이미 열었네?
손 욘나 빨라.
"아 쫌!"
나는 진심으로 정색하며 뿌리쳤다.
그러자 뾰루퉁한 표정으로 웅얼거린다.
"······거짓말쟁이···. 하고 싶을 때 맘껏 해 준다면서요···."
"아니, 그것도 어느 정도 때와 장소를 구분해야지."
"여기 누가 온다고···."
"한 시간만 참으면 되잖아."
"참을 수 있었으면 참았죠. 지금 어떤 상탠지 팬티 보여줄까요? 거짓말 안 하고, 씹물이 오줌 싼 거처럼 나왔다고요."
"아, 진짜 단어 선택 왜 그러냐. 50대 아저씨도 아니고···."
"거짓말쟁이. 구라쟁이. 라이어."
"올라가자."
"알았어요, 그럼 손으로 해줘요."
"와··· 너 진짜 대박이구나···."
"엄살 피우는 게 아니라 저 진짜 이대로 못 간다니까요? 짬지 안에서 막 불길이 치솟는 느낌이라고요."
후우, 그래.
보편적인 사고로 이해하려고 하지 말자.
상대는 섹스중독자다.
"손가락이면 돼?"
"응, 지금은 자지보다 손가락이 더 꼴려요. 30초도 안 걸릴 거예요."
"알았어, 화장실로 가."
"아아아아앙, 여기서! 여기서 해야지 30초라고요."
"야, 나 손도 안 씻었어."
"지금 그게 중요해요? 사람이 죽게 생겼는데?"
"···하아, 알았다. 단추 풀러."
란이는 가죽 스키니 팬츠의 단추를 풀었고, 나는 그 사이로 손을 넣었다.
손이 들어가는 촉감만으로도 몸을 바르르 떤다.
"아우···!"
"야, 소리는 내지 마."
"응···."
녀석의 말대로 팬티가 흠뻑 젖을 정도로 애액이 범람한 상태였다.
손가락이 축축한 질 속으로 그냥 빨려 들어간다.
─질그럭
"아읏, 좋아··· 느낌 대박···."
"아오, 내가 진짜. 회사에서 라희 마사지하는 거 민망해서 도망친 건데, 여기서 이러고 있다···."
"히히히, 사랑해요. 아으··· 좋아아··· 쫌만 빨리 움직여주세요···."
─질척질척질척, 척! 척! 척!
"이잇, 잇, 읍, 읍···."
"느낌 와? 쌀 거 같아?"
"응··· 완전···! 아으응··· 아, 못 참겠어···."
"참지 마 싸, 싸."
란이는 어찌할 바를 모른 채 몸을 베베 꼬면서 다리를 떨어댔고, 나는 그 움직임을 집요하게 쫓으면서 손목이 뻐근할 정도로 빠르고 세게 문질렀다.
"아으으, 자지 땡겨··· 자지로 박히고 싶어요··· 넣어주세요."
"안 돼, 손가락으로 간다며."
"사람이 어떻게, 아킁, 계획대로 으읏, 살아요··· 하읍···."
"한 번만이라도 제발 계획대로 좀 살아봐."
"알았어요, 내일부터 그렇게 살 테니까 오늘 딱 한 번만··· 아니면 그냥 만지게만 해주세요."
란이의 손이 다급하게 내 지퍼를 더듬는다.
물론 나 역시 진작에 발기돼 있었다.
< 망란, 계단, 손가락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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