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위는 하지 않았다(유료연재 시작) >
란이의 호언장담대로 라희의 잠귀는 쓰레기였다.
평범한 자세로 자고 있었다면 혹시 자는 척하는 게 아닐까 의심이라도 해봤겠지만 이불을 끌어안은 채 엎드려 자는 포즈는 영락없는 꿀잠 모드다.
얼굴이 문 쪽을 향해 있었는데 눈꺼풀은 완전히 이완돼 있었고 입도 반쯤 벌어졌다.
만약 이게 연기라면 자는 연가만으로도 아카데미 후보에 올라야한다.
욕실로 자리를 옮긴 나는 타액으로 점철된 하반신만 대충 씻고 나왔다.
자켓과 차키를 가지러 란이의 방에 들어갔을 때.
"하, 대단하다···."
란이는 세상 가장 행복한 미소를 머금은 채, 팬티 속에 손을 넣고 꼬물거리며 자고 있었다. 히끅히끅 딸꾹질 같은 신음을 간간이 흘리면서.
"으이그, 자고 일어나도 피곤하겠네. 나 간다."
***
씨바색기 [오쁘아 오래 걸림?]
나 [지금 출발]
씨바색기 [오키도키 오키나와. 올 때 투게더]
나 [편의점에서 사면 비싼데]
씨바색기 [끼에엑! 내가 벌어주는 돈이 얼만데 이 쪼잔 대마왕아! 썩 사와!]
나 [뮨무룩]
씨바색기 [낼모레면 지천명인 사람이 어디서 귀척을···.]
나 [불혹이겠지. 지천명은 50살이다]
씨바색기 [ㅋㅋㅋㅋㅋㅋㅋㅋㅋ사릉해 빨리와]
나 [다른 건 필요한 거 없어?]
씨바색기 [필요한 거 있지]
나 [뭐]
씨바색기 [오빠와 나 둘만의 시간이 필요해. 하앍♡]
나 [ㅇㅋ 씻지 말고 기다려]
씨바색기 [퍄 오빠가 씻겨주게?]
나 [먼지 나게 맞아야 되니까 맞고 씻으라고]
씨바색기 [야잌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씨바색기 [우리 그날 좋았잖아. 현실을 부정하지 마]
피식.
나도 원하지, 둘만의 시간.
기회가 된다면 말이다.
하지만 홍이와 리야를 제외한 세 명의 아이들 사이에서 어떤 신경전이 벌어질지, 그리고 나는 그 사이에서 어떤 포지션을 취해야 하는 건지 벌써부터 손발이 오그라든다.
"수고하세요"
"예, 안녕히 가세요."
상가 편의점에서 아이스크림을 산 뒤 숙소로 올라갔다.
일본 활동 때문에 요즘은 비어있는 날이 더 많은 방 4개짜리 50평대 아파트다.
"오셨어요."
"오예오예, 투게더!"
아이들은 거실에 상을 펴고 음악을 안주삼아 맥주를 마시고 있었다.
"홍이랑 리야는 자?"
두 사람의 모습이 보이지 않아서 묻자 서원이가 시큰둥하게 대답한다.
"몰라요. 요즘에 계속 둘이 붙어 다니면서 속닥속닥 거리더니 여기 와서도 그러네. 무슨 연애하는 것도 아니고."
은빛이가 아이스크림 뚜껑을 따며 덧붙였다.
"슴가왕들끼리 통하는 게 있나보죠."
"그럼 너랑 나랑은 왜 안 통하는데. 그런 논리면 꼴슴끼리 통해야 되잖아."
"흐잉? 저는 언니랑 통한다고 생각하는데요? 으리의 보컬 라인 아입니꺼! 은빛!"
"···뭐 어쩌라고."
"에잇, 제가 은빛! 하면 언니는 서원! 하면서 크로스 해야죠."
"아 유치해. 제발 그런 것 좀 하지 마라."
"어휴, 언니랑 욘리다는 삶에 유모어가 없어요, 유모어가."
두 사람이 티격태격하는 동안에도 요나는 자기만의 배리어 안에서 맥주만 홀짝홀짝 들이켜고 있었다. 그러다가 자기 이름이 거론되자 살짝 토라진 투로 삐죽거린다.
"야아, 가만히 있는 나는 왜. 그래도 서원 언니에 비하면 나는 많이 맞춰주는 편이잖아."
"오키도키 오키나와. 욘리다까지는 인정! 그렇다면 유모어는 서원 언니만 없는 걸로."
"어휴, 바보들. 그래도 팀에 나 같은 정상인이 한 명쯤은 있어야지."
"끼에엑! 누가 봐도 언니가 제일 이상하거든요! 그쵸, 욘리다? 우리 팀에서 서원 언니가 제일 비정상이죠?"
"냉정하게 말하면 우리 중에 정상은 없는 거 같은데. 그나마 꼽으라면 나 아닐까?"
"풉! 야, 내가 보기엔 이요나 니가 제일 또라이거든? 아닌 척 하면서 할 거 다하고. 아주 속이 응큼해."
"맞아, 맞아. 욘리다는 속이 시커매요. 그래도 서원 언니는 겉과 속은 똑같은데."
"유은빛이 사람 볼 줄 아네."
"은빛!"
"서원."
"크로스!"
"크로스."
아군도 적군도 없이 오로지 본인의 명예만을 위한 암투가 이어지던 가운데, 리야와 홍이가 작은 방 한 곳에서 나왔다.
"대표님, 오셨어요."
"뮨댕댕, 생각보다 일찍 왔네?"
태연하게 인사를 건네는 모습이 오히려 어색하다.
둘 사이에 뭔가가 있긴 있는 것 같은데, 시시콜콜하게 물어보고 싶지는 않았다.
하지만 서원이는 이런 걸 못 참는 성격이다.
"너네 연애하냐? 둘이 뭘 그렇게 붙어 다녀. 대기실에서 내내 같이 있었으면서."
"남이사."
서원이의 날선 반응에 홍이도 늘 그렇듯 퉁명스럽게 대꾸한다.
팀에서는 막내지만 마음속에 늙은 너구리 12마리를 품고 있는 리야는 은근슬쩍 내 쪽으로 화제를 돌렸다.
"뮨댕쓰 빨리 옷 갈아입고 와. 보는 사람 답답하자너."
"어, 알았어. 은빛, 내 옷 니 방에 있지?"
"아니. 리야가 세탁실 수납장에 정리해놨어."
"아, 진짜? 고고하신 공주님이 웬일로 누추한 내 옷을 정리해주셨을까. 황송해서 눈물이 나려고 그러네."
내심 감동한 나는 흐뭇한 표정으로 리야를 쳐다봤다.
은빛이가 대신 대답한다.
"응. 사람 쓰는 거랑 댕댕이 쓰는 건 구분해놔야 된대. 버릇 나빠진다고."
"돌려줘, 내 감동."
"뮨댕쓰, 우리 언니쓰들 시간 없는 거 뻔히 알면서 계속 사부작거릴 테야? 빨리 마시고 빨리 취해서 빨리 자야지 내일 스케줄을 할 거 아니야. 그래야지 뮨댕쓰도 가난뱅이 뱅뱅에서 빨리 탈출할 수 있는 것이고."
"나 안 가난하다고. 너네 때문에 돈 많이 벌었다고."
"끼에엑! 언제까지 그런 푼돈에 만족하고 살 것이야! 자식쓰에게까지 가는을 되물려 주고 싶어! 앙?"
"어이씨, 왜 이렇게 정색해. 알았다. 개미처럼 열심히 일할게."
"아니. 개미는 아무리 발버둥을 쳐도 평생 개미인 것이야."
"아, 그럼 뭐 어쩌라고."
"남자답게 혼인을 통해서 신분상승을 해야지. 알리야의 밑으로 들어와서 브루나이의 로얄패밀리가 되는 것이야."
기승전 브루나이.
내가 대꾸 없이 발길을 돌리려고 하자 리야는 맥주 글라스에 소주를 3분의 2쯤 채워서 내게 건냈다.
"패널티로 이거 한 잔 원샷하고 가. 혼자 늦게 왔자너."
"그래, 알았다. 빨리 마시고 빨리 취하자."
내가 잔을 받으려고 하자 요나가 리야에게 주의를 준다.
"안 돼, 너무 많아. 거기서 반 따라내."
"욘리다, 뮨댕쓰는 프롤레타리아 출신이라서 이 정도는 거뜬한 거예요. 소주, 그것은 노동자의 유일한 위안."
"그냥 줘 요나야. 옛날에 회사 신입시절에는 글라스로 서너 잔씩 마시고 시작했어."
"10년 전 얘기 아니에요?"
"그렇지."
"이젠 늙어서 몸이 못 버텨요. 천천히 마시면서 얘기도 하고 그래야지, 한 번에 확 가면 재미없잖아요."
내가 말했으면 씨알도 안 먹혔을 텐데, 요나가 그렇게 말을 하니 리야도 수긍을 했다. 하지만 해결방식에서 뭔가 구린내가 났다.
"그럼 홍쓰 언니가 흑기사로 반 마셔주면 되는 거예요. 홍홍 언니?"
리야가 옆구리를 쿡 찌르자 홍이가 내 앞으로 샤샤샥 뛰어나온다.
"어, 어. 대표님 주세요, 제, 제가 반 마실게요."
"굳이 뭘 그렇게. 그냥 반 따라내고 마시면 되지."
"아, 예··· 그렇죠."
"어어? 랑깡깡 지금 매너 없게 레이디의 손을 부끄럽게 한 것이야? 홍쓰 언니 무시해?"
"아니, 무시 하는 게 아니라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어휴, 랑깡깡 오랜만에 꽁대냄새 나자너. 하여튼 사람이 유두쓰가 없어요, 유두쓰가."
유두리를 말하고 싶은 거다.
내가 "유두리."라고 말을 해주자 요나는 그걸 또 "융통성."이라고 굳이 정정해주었다.
"이리 내놔."
내 앞으로 도도도 다가온 리야가 소주 글라스를 뺏어갔다. 그러고는 홍이에게 건넨다.
"사이좋게 반씩 마시면 되는 거예요."
"어, 어."
리야의 강압에 의해 결국 홍이가 반을 조금 넘게 마시고 내가 나머지를 마셨다.
리야는 홍이 입에 치즈를 물려주고는 매우 흡족한 낯으로 턱을 쓰다듬는다.
내 안주는 은빛이가 방울토마토를 물려줬다.
"어, 고마워."
"뮨댕쓰, 홍홍 언니가 흑기사 해줬으니까 소원 하나 들어줘야 하는 것이야. 알지?"
그러면 그렇지. 소원이 목적이였구나.
홍이는 리야의 홍바타가 되어 명령대로 움직였을 뿐 이다.
홍이가 내게 무슨 부탁을 하려고 이런 판을 짜준 건지는 모르겠지만, 소원의 상대가 홍이라서 귀엽게 넘어가 주기로 했다. 다른 애들은 몰라도 홍이라면 말도 안 되는 소원을 빌지는 않을 것이다.
"너네는 또 무슨 꿍꿍이인데?"
서원이가 못마땅한 투로 홍이를 쏘아봤다.
상성 상 서원이에게 강한 홍이지만, 뭔가 캥기는 것이 있는지 서원이의 시선을 회피하고 있다.
"내가 뭐. 나는 그냥 리야가 시키는 대로 한 거야···."
"리야, 니가 말해. 뚱띵이보고 무슨 소원 빌라고 시켰어?"
"퀸 서원쓰.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에요."
"그럼 뭐가 중요한데."
"오랜만에 이렇게 여섯 명이 모였는데 일단 다 같이 한 잔 하는 게 우선 아닐까요? 뮨댕쓰만 술을 너무 안 마신 거예요. 문댕쓰, 빨리 편한 옷으로 갈아 입고와."
"알리야, 너 아까부터 계속 말 돌린다? 내가 당할 줄 알아?"
요올, 웬일로 서원이가 안 넘어가나 했더니···.
"뮨댕쓰, 퀸서원 님이 사준 트레이닝복 있지? 오프화이트 꺼. 그거 뮨댕쓰한테 잘 어울리더라. 여윾시 뮨댕댕이 옷은 서원 언니가 제일 잘 고르는 거예요. 뮨댕쓰의 진정한 마스터라는 뜻이죠."
"내가 내 옷은 몰라도 대표님 옷은 잘 고르지. 대표님은 어두운 톤이 잘 받아."
뛰는 한서원 위에 인공위선 알리야.
그럼 그렇지, 결국 이 모양이다.
서원이는 자기가 또 넘어간 것도 모른 채 리야의 연이은 칭찬에 어깨를 으쓱거렸다.
"서원퀸쓰, 그런 의미에서 막내리야 알리야가 한 잔 따라드릴게요."
"웬일이냐. 술 권하는 문화 싫다던 애가."
"알리야도 어느새 코리안 패치가 된 거예요."
잘들 논다.
한복을 위해 세탁실 쪽으로 몸을 돌리는 순간, 나는 보았다.
리야와 홍이가 아이컨택을 하며 의미심장하게 고개를 끄덕이는 모습을.
***
"푸하핰 욘리다 걸렸다."
"어? 내 차례라고? 리야 아니라?"
"노노. 욘리다 턴이었던 거예요."
"아, 뭐야. 다들 짰죠?"
"짜긴 뭘 짜. 그냥 니가 게임 고자인 거야. 마셔."
"맛셔라, 맛셔라, 맛셔라, 맛셔라!"
"이런 업키벅적한 분위기 오랜만이네.
짧은 하의 밑으로 드러난 다섯 쌍의 맨 다리가 조심성 없이 바닥을 휘젓는다. 간혹 속옷이 보이는 녀석들도 있었다.
그것을 접하는 내 시선은 확실히 예전과 달랐다.
예전 같았으면 몸가짐을 조심하라며 일갈을 날렸을텐데 이제는 흘끗흘끗거리고 자빠져 있다.
우리는 연말 시상식 스케줄과 관련해서 30분 정도 얘기를 나눈 뒤 은빛이의 주도하에 술자리 게임을 시작했다.
언제나 그렇듯 게임 빌런 요나가 제일 많이 걸렸다.
벌주가 소맥 반 잔이었는데 혼자 여섯 잔 정도 마신 것 같다.
"랜덤게임, 랜덤게임, 욘리다가 좋아하는 랜덤게임."
"음··· 뭐하지? 은빛, 뭐할까?"
"할 거 없을 땐 역시 진실게임이죠."
"그래! 이요나가 저아하는 진시일~ 께임!"
눈도 살짝 풀리고 혀도 꼬이고.
이 상태로 간다면 서바이벌 술자리의 첫 번째 탈락자는 요나가 될 가능성이 높다.
다들 엄지손가락을 들고 요나의 질문을 기다렸다.
비실비실 웃던 요나가 눈빛을 번뜩이며 말했다.
"근데 나만 너무 마신다···. 벌칙 다시 정할게요. 이제부터 걸리면 술이 아니라 옷 벗기!"
"끼요옷! 여윾시 요망한 욘양이!"
"좋다, 좋다. 브루나이의 추억을 되살리는 거예요."
"크히히힛! 잘했지?"
이요나 취했네, 취했어.
다들 동의하는 가운데 서원이만 딴죽을 건다. 녀석의 계획은 다들 취하게 만든 뒤 나와 둘만 살아남는 것이였기 때문이다.
"난 싫어. 그냥 벌주로 해. 소맥 꽉 채워서 한 잔."
하지만 은빛이와 요나가 반대를 했다.
"에이이, 그냥 옷 벗기로 해요옷!"
"그래요 언니 .술은 마시지 말라고 해도 다들 알아서 잘 마시잖아요."
"···그래, 그럼. 그 대신 게임 한 판 할 때마다 다 같이 마시고 시작해."
"콜!"
서원이의 양보로 결국 벌칙은 옷 벗기기로 결정이 났다.
나는 위아래 한 세트인 추리닝, 업키걸 아이들은 편한 티셔츠에 짧은 반바지를 입은 가운데, 홍이 혼자만 팬이 선물해준 원피스를 입고 있었다.
"어? 내, 내가 불리한데··· 나만 원피스잖아."
"응. 너 공격해 달라는 말이지? 이요나, 빨리 시작해."
"옙, 그럼 질문 하겠습니다."
다시 중앙으로 모인 여섯 개의 엄지손가락.
눈빛이 뭔가 요염해진 요나의 질문이 시작됐다.
"나는!"
"나는!"
"숙소에서 멤버들 몰래 자위행위를 해본 적이 있다! 푸히히히!"
"어우, 욘리다 야해, 야해!"
"은빛. 언니가 야해서 싫오?"
"아뇨, 좋아! 섹시해! 늘 새로워! 가즈앜!"
"본인 집이 아니라 업키걸 시작하고 나서부터 지금까지 숙소예요, 숙소. 있으면 올리고 ,없으면 내리는 거예요. 적은 쪽이 벗는 거. 하나, 둘··· 셋!"
─휙!
─휙!
엄지를 밑으로 내리지 않은 사람은 두 사람이었다.
일단 나는 제외.
사나이답게 몽정을 했으면 했지 자위는 하지 않았다.
은빛이가 손가락을 세우고 있는 두 사람을 호명한다.
그 말은 은빛이도 제외라는 뜻.
"리야랑······."
< 자위는 하지 않았다(유료연재 시작)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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