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8화.음낭으로 생각하는 삶 (40/371)

음낭으로 생각하는 삶

“자, 늦은 시간까지 모두 수고 많으셨습니다! 마지막까지 고생할 소품 팀한테 감사의 박수 한번 쳐주고 마무리 합시다. 박수!”

“다들 고생하셨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업키걸과 스탭들의 단체 기념촬영이 끝난 뒤, PD의 클로징 멘트를 마지막으로 공식적인 촬영 스케줄이 모두 끝이 났다.

스튜디오를 벗어나 복도로 나오는데 뒤에서 남자 스탭 한 명이 홍이를 부른다.

“저··· 홍이 님. 죄송한데 사진 한 장만 같이 찍을 수 있을까요?”

“아, 예. 그럼요.”

“피곤하실 텐데 죄송합니다.”

“아니에요, 괜찮아요. 오늘 촬영하시느라 고생 많으셨습니다.”

그것을 시작으로 주위에서 눈치를 보고 있던 다른 스탭들도 각자 최애에게 슬금슬금 몰리기 시작했다. 촬영 중간에는 아이들 컨디션에 방해될까봐 참고 있다가 이제야 삼촌 팬으로서 용기를 내는 것이다.

흐―뭇.

삼십 줄이 넘은 시커먼 남자들이 걸그룹 앞에서 소년처럼 수줍게 구는 모습은 언제 봐도 귀엽다.

산적처럼 턱수염을 기른 덩치 좋은 조명 팀장이 요나 앞에서 얼굴을 붉히며 웅얼거린다.

“진짜 실물 여신이십니다. 더, 더 예뻐지셨어요. 아, 그렇다고 화면이 안 예쁘다는 건 아니고요, 화면도 예쁘신데 실물이 더 예쁘다는 말입니다. 예.”

“에고, 감사합니당.”

“저 예전에 아이컨택 데뷔 쇼케이스 때 스탭으로 참여했었어요.”

“아, 정말요?”

“그때부터 지금까지 쭉 요나 님 팬입니다. 요나 욘나 예뻐.”

요즘은 잘 쓰지 않는 ‘요나 욘나 예뻐’ 응원문구를 아는 걸 보니 진성 요빠구나.

다른 네 명의 아이들도 누구 하나 홀로 남겨진 사람 없이 각자의 팬들과 사진을 찍고 있었다.

팬덤이 한 멤버에게 집중되지 않고 전 멤버가 고루 인기가 있다는 것이 업키걸의 가장 큰 장점이 아닐까 싶다.

처음 홍보를 할 때는 요나를 센터포지션으로 잡았고 공식 입덕 멤버는 은빛이었지만, 1집 미니앨범 활동 이후로는 그런 구분이 거의 무의미해졌다.

멤버 전원이 센터이자 입덕 요정이다.

물론 멤버들의 각기 다른 개성만큼이나 팬들의 성향도 갈리기는 한다.

그 중에서도 걸그룹을 통틀어 가장 하드하고 매니악한 개인팬덤을 가진 멤버가 우리 팀에 있었으니, 바로 집착 천재, 미절 요정, 사생 가수 한서원 되시겠다.

그들은 스스로 노예 되기를 자처하며 퀸서원 앞에서 한없이 낮아지고 학대받기를 갈구한다.

“누나, 저 뺨 한 대만 때려주시면 안돼요?”

“응. 안돼요.”

“아, 왜요.”

“저 이제 때리는 건 안 하기로 했어요. 이거 때문에 타 팬한테 욕 엄청 먹었잖아요. 나한테 당해보지도 않았으면서.”

“살짝만 때려주세요. 제발···. 저 원래 첫 번째 세트 준비만 하고 퇴근하는 거였는데, 퀸서원님한테 뺨 맞으려고 지금까지 기다린 거란 말이에요.”

서원이에게 때려달라며 뺨을 내민 사람은 오늘 스탭들 중 가장 나이가 어려 보이던 진행보조 알바였다.

그래도 이 정도는 양반 축에 속한다.

골수 서빠들의 진면목은 팬 사인회 때 발휘가 되는데, 발을 빨게 해 달라, 하이힐을 신고 자기 명치를 밟고 지나가 달라, 서원이가 묶고 있는 머리 리본으로 목을 졸라 달라, 등등 별의별 미친 취향을 가진 군상들이 다 몰려든다.

군 입대를 앞둔 청년이 바리깡을 들고 와 서원이에게 삭발식을 요청하는 것은 귀여운 수준이고, 서원이의 생리혈이 묻은 생리대를 개당 1억에 산다며 난동을 부리다가 쫓겨난 아재 팬도 있었다.

나는 그들을 보면서 우리나라에 변태가 많다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

생리혈 같은 극단적인 경우를 제외하면 서원이는 팬들의 요구를 대부분 들어줬다.

팬 사인회라는 게 오직 업키걸 팬들만을 위한 자리이기도 했고, 서원이 역시 그런 요구를 통해 팬들의 사랑을 확인하는 참된 변태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몇 달 전, 타 아이돌 팬덤이 서원이의 팬 서비스가 너무 폭력적이라고 문제를 제기하면서부터 신체를 타격하거나 서브미션을 거는 등의 가학 서비스는 중단된 상태다.

서빠들은 자기들이 좋다는데 웬 오지랖이냐며 반발했지만 그 중에는 미성년 팬들도 많았기 때문에 회사 차원에서도 금지령을 내려야만 했다.

하지만 팬덤 사이에서만 이벤트 식으로 진행되던 서원이의 가학 서비스가 기사화되는 바람에 대중적 이슈를 불러일으켰고, 이제는 일반 팬들도 서원이를 만나면 장난 삼아 체벌을 요구하는 경우가 빈번해졌다.

지금도 정식 팬클럽이 아니라 일반 팬일 경우가 높았다. 일반 팬 중에서 조금 강경한 쪽이다.

“아무한테도 말 안 할게요, 예?”

서원이의 정중한 거절에도 뺨을 때려달라는 스탭 팬은 물러서지 않았다.

아이들이 팬과 얘기를 할 때는 웬만하면 끼어들지 말라고 했는데 이 정도면 커버를 쳐줘야 한다.

장우도 도를 넘었다고 생각했는지 나와 서원이가 있는 쪽으로 걸어왔다.

하지만 서원이가 먼저 결단을 내려버렸다.

“진짜 딴 데 가서 말하면 안 돼요. 커뮤니티에 후기 같은 것도 쓰지 말고요.”

“예! 예! 당연하죠.”

“강도는 어느 정도?”

“세게 해도 돼요!”

“대.”

“하앍!”

―짝!

찰지구나!

“감사합니다! 이왕 하신 거 왼쪽 뺨도···.”

“오케이.”

―짝!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몇 살이에요?”

“스물한 살이요.”

“내가 누나네. 말 놔도 되지?”

“예, 놓으세요, 누나.”

“너 어부바야?”

“아뇨, 팬클럽은 가입 못 했고 인터넷 카페만 가입했어요.”

“그럼 어부바 가입해.”

“예, 꼭 할 게요.”

서원이는 해맑게 협박했다.

“앞으로도 나만 좋아해야 돼. 하지 말라는 뺨까지 때려줬는데 탈덕하거나 최애 갈아타면 나 살고 너 죽는 거야. 내 성격 알지?”

알지, 알다마다.

팀 내 서열은 최하위지만 팬 앞에서는 누구보다 강한 업키걸 여포잖아.

“예, 예! 누나는 저의 처음이자 마지막 아이돌이에요!”

“사진 찍어줄까?”

“아뇨, 뺨에 남은 손자국이면 됐어요. 저 한 달 동안 세수 안 할 거예요.”

“더러워. 일주일로 끊어.”

“예, 그럼 일주일만 안 씻을게요. 아아, 너무 좋다.”

“그래, 굳이 말로 안 해도 얼굴만 봐도 좋아 보인다.”

남들이 뻔히 보고 있는 걸 알면서도 자기들만의 변태력을 발휘하는 두 미친놈을 보고 있자니 새삼 두려워진다.

표면으로 드러난 변태가 이 정도인데, 전국 방방곡곡에 숨어있는 은둔 변태들의 변태력은 얼마나 된다는 건지···.

“나 먼저 가요.”

가장 먼저 팬서비스를 끝낸 서원이는 오랜만에 본 손맛이 흡족한지 오른손을 경쾌하게 털며 대기실로 향했다.

뺨 맞은 젊은 스탭은 다른 사람들이 비웃든 말든 서원이의 등에 대고 연신 허리를 굽혔다.

“누나, 조심히 들어가세요!”

“누나가 아니라 여왕님.”

“예, 여왕님! 팬클럽 꼭 가입할게요!”

자발적 노예 한 명 추가요.

이러다가 나중에 왕국 세우는 거 아닌가 모르겠다.

***

“대표님, 죄송한데 저 목걸이 좀 채워주실래요?”

퇴근을 위해 대기실을 정리하던 중 요나가 내게 등을 보이며 부탁했다.

머리카락을 쓸어 올리자 하얀 뒷덜미가 드러난다.

요염하다, 요염해.

―불끈불끈

나도 모르게 욕정이 들끓어서 목 뒤에 짧게 입을 맞췄다.

요나는 깜짝 놀란 거북이처럼 움츠러들었다.

“아잌힝! 간지러워요!”

“미안··· 목선이 너무 요염해서 참을 수가 없었어.”

뒤에서 끌어안고 말캉말캉한 가슴을 양손으로 어야둥둥 어루만지며 목에 입술을 묻었다.

요나도 내 손을 잡고 손등을 부드럽게 어루만진다.

“으음, 따뜻하고 기분 좋다···.”

“나도.”

“근데 우리 문 안 잠갔어요.”

“아···.”

인내심을 발휘해서 멈춘 게 다행이었다.

몇 초 지나지 않아 서원이가 문을 벌컥 열고 들어왔다.

“아, 깜짝이야.”

“신발 끈 묶어줘요.”

욕하는 줄···.

신고 있는 컨버스 스니커즈의 끈이 양쪽 모두 풀려있었다.

서원이는 평소에도 신발 끈을 잘 못 묶어서 멤버들에게 부탁을 하고는 한다.

“넌 나이가 몇인데 아직도 신발 끈을 못 묶냐. 은빛이한테 해달라고 하지.”

“화장실 갔어요.”

“일루와.”

녀석은 침대에 걸터앉았고 나는 그 앞에 무릎 꿇고 끈을 묶어줬다.

블랙 스키니진과 신발 사이로 가느다란 발목이 살짝 드러났다.

섹시하네···.

―불끈불끈

요나가 없었으면 서원이의 발목에도 입을 맞췄을 것이다.

스튜디오에서도 그렇고, 방금 전 요나한테도 그렇고. 왜 계속 고환 벅찬 생각만 나는 걸까.

그 정도가 좀 심한 것 같아서 생각해봤더니, 아차, 아까 요나와 대기실 스섹을 할 때 사용했던 강한 남자 패키지 중, 성욕을 최상으로 유지시켜주는 ‘디오니소스의 축복’ 아이템이 여전히 작동 중이었다.

그리고 잠을 자지 않은지 24시간이 다 돼 가지만 체력을 올려주는 ‘헤라클래스S’ 덕에 피곤하지도 않았다.

어쩐지 몸에 힘이 너무 넘치는 게 이상하다 했다.

지금 컨디션이라면 전 세계 여자들을 모두 만족시켜줄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이거··· 좋은데?

뇌가 아닌 음낭으로 생각하며 사는 삶도 나쁘지만은 않구나.

마치 자위라는 신세계를 통해 사정 쾌락에 눈을 뜨던 10대 소년으로 돌아간 것처럼 활력이 넘치고 삶의 목적이 뚜렷해졌다.

성인이 된 이후로 17년 넘게 금욕하며 살았으니 이 정도는 즐겨도 되잖아, 라며 합리화를 해본다.

“다 묶었쓰.”

“은빛이랑 나는 정리 다 끝났어요.”

“어, 우리도 끝났으니까 짐 가지고 나와 있어. 장우가 로비 앞으로 차 빼서 기다리고 있을 거야.”

“그럼 복도에 있을 게요.”

“그래.”

서원이가 나간 뒤 요나와 나도 대기실 정리를 마치고 복도로 나갔다.

먼저 나와서 기다리고 있던 은빛이가 나를 보자마자 어리광을 부린다.

“어우, 오빠. 나 피곤해서 발 엄청 부었엉. 거기 쇼핑백에서 쓰레빠 좀 꺼내주세요.”

“어, 잠깐만···.”

“은빛, 쓰레빠가 아니라 슬리퍼.”

“예이예이. 슬리퍼.”

“유은빛 너도 참 너다. 요나가 쓰레빠라고 하지 말라고 한 거 나도 10번은 넘게 들었겠다.”

“끼에엑? 서원 언니도 욘리다 없을 땐 쓰레빠라고 하잖아요!”

“없을 때라도 속 시원히 해야지. 안 걸리면 장땡이야. 근데 뚱땡이랑 리야는 왜 이렇게 안 나와. 대기실에 살림이라도 차린 거야? 연홍! 알리야! 안 나오고 뭐해!”

“어, 어, 미안, 다 됐어!”

“지금 나갈 거예요.”

홍이와 리야를 끝으로, 사복으로 갈아입은 아이들이 대기실 앞 복도에 집결했다.

나는 은빛이의 쇼핑백에서 구찌 블로퍼를 꺼내 녀석 앞에 내려놓았다.

“괜찮겠어? 발 시려울 거 같은데···.”

“털 달려 있어서 괜찮아.”

털 좋지.

암, 좋고말고.

―불끈불끈!

운동화 한 짝을 벗은 씨바가 나를 향해 발가락을 꼼지락거리며 애교를 부린다.

“이잉, 신겨주세요.”

“뭐야, 양말도 안 신었어? 감기 걸려.”

“페디큐어 이쁘지? 홍홍 언니가 칠해줬다.”

씨바의 발가락을 보는데 머릿속에서 미오의 목소리가 재생된다.

‘엄지발가락 사이에 대표님 귀두를 끼우고 꼼지락거리고 싶기는 해요···.’

―불끈불끈!

고추가 풀 파워로 단단해졌다.

빨리 사정하고 싶다.

“안 예뻐?”

“어, 어, 예쁘네. 샵에서 한 줄 알았어. 홍이가 확실히 미적 감각이 있다.”

“대표님도 칠해드릴까요?”

“거절.”

“예.”

나는 업나니들에게 마지막으로 전달했다.

“빠진 물건 없나 다시 한 번 확인해봐.”

“빠진 물건 없나 확인해보시래요.”

“씨바 너한테 한 말이야, 너. 중간에 뭐 두고 왔다고 차 돌리게 하지 말고.”

“없다니까 그러네. 예전에 오빠가 알던 내가 아니라고.”

없기는 개뿔.

혹시 몰라 은빛&서원이의 대기실을 점검해본 결과, 침대 한복판에서 은빛이의 핸드폰을 발견했다.

“너 이 씨바색기, 내 이럴 줄 알았지.”

“아흥? 핸드폰에 발이 달렸나. 분명 챙겼는데···.”

“다들 수고했다. 이제 숙소 가서 맥주 한 캔씩 때리고 푹 자즈아!”

기력이 넘치다 못해 줄줄 새던 나는 운전대를 잡고 있는 장우를 끌어내리고 일산에서 강동구까지 쉬지 않고 밟은 뒤 장우부터 드랍했다. 그리고 업키걸 숙소 아파트에 도착해서 아이들을 내려준 뒤 각본대로 움직였다.

“나 잠깐 회사 들렀다 올 테니까 너네끼리 먼저 마시고 있어.”

“이 시간에 회사는 왜요?”

예상대로 서원이가 되물었고, 업키걸 남미 투어와 관련해 브라질 에이전시에서 급하게 자료를 요청했다고 대답했다. 물론 란이네 숙소로 가기 위한 거짓말이었다.

“얼마 정도 걸려요?”

“한··· 30분?”

“빨리 와요.”

“어, 들어가 있어.”

업키걸 숙소와 연습생 숙소는 차로 2분 거리.

한산한 새벽 거리를 냅다 달린 뒤 빌라 1층에 도착해서 란이에게 전화를 걸었다.

―왔어요?

“어, 1층.”

―문 열려 있으니까 그냥 들어와요.

두 계단씩 뛰어올라가 문을 열었다.

정면으로 보이는 라희 방은 닫혀 있었고 란이는 버선발로 거실에 나와 있었다.

허벅지까지 오는 루즈한 티셔츠 하나만 입고 있었고, 넥 라인이 흘러내려 한쪽 어깨가 드러나 있었다. 브래지어 끈이 보이지 않고 볼록하게 꼭지가 솟아있는걸 보니 노브라인 모양이다.

“기다리다 죽는 줄.”

“어, 근데 나 다시 업키걸 숙소로 가봐야 돼.”

“알았으니까 빨리 박아줘.”

“동작 그만. 초장부터 반말질이냐?”

“아씨, 말할 시간에 그냥 박아달라고요.”

녀석의 음어 한마디에 고추는 뿌득뿌득 소리가 날 정도로 발기가 되었다.

점프해서 내게 안긴 녀석이 키스를 퍼붓는다.

키스라기보다는 그냥 내 입술을 일방적으로 먹는다. 아주 맛있는 소리를 내며.

“으음, 으음···.”

“읍, 읍!”

“으응으응, 뭐해요. 내가 알아서 매달려 있을 테니까 빨리 자지 벗고 바지 꺼내요.”

“큽, 뭘 벗고 뭘 꺼내···?”

“아 쫌 닥치고, 빨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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