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창남이 되어 버린 나
젠장, 들었구나.
나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생각해두었던 변명거리를 태연하게 읊었다.
“아아, 그거요? 친구들 단톡방에 올라온 건데 뭔가 하고 눌러봤다가 야한 거라서 바로 껐어요. 소리가 거기까지 들렸나 봐요.”
“어? 진짜 야한 거였어요?”
엄 작가는 도리어 당황한 기색으로 되물었다.
“저는 그냥 신음소리 비슷하길래 장난으로 넘겨짚은 말인데···.”
“아, 그러셨구나. 야동 맞아요, 하하하하.”
“저도 가끔 친구들 단톡방에 올라오는 야짤 때문에 식겁할 때 많아요. 저한테 연예인 유출된 거 없냐고 막 물어보고, 어후.”
“으응, 여자들도 그러는구나.”
“있는 것들이 더 한다고 시집간 애들이 더 밝히더라고요.”
“그렇군요.”
내가 왜 촬영 도중에 엄 작가랑 야짤 얘기를 하고 있는 걸까.
생각해보면 뭔가 쌩뚱 맞은 광경이었다. 그리고 이상했다.
마치 직장 동료와 담배를 피우면서 급속도로 친해지는 것처럼, 지난 2년 간 쌓은 관계보다 지금 몇 초간의 대화가 그녀와 나의 사이를 더 돈독하게 만들어 준 것 같은 느낌이다.
음담패설의 힘인가.
나는 능청스럽게 물었다.
“혹시 술 한잔 하자고 했던 것도 장난이에요?”
“아뇨, 그건 진심이죠.”
“왜죠?”
“푸흡, 왜긴 왜예요. 대표님이랑 저랑 그 정도 사이는 되지 않아요? 그래도 알고 지낸 게 몇 년인데.”
섹스.
섹스인가.
그녀도 생체 딜도를 원하는 건가.
내가 이성에게 인기가 없는 편은 아니었다.
서른 이후로는 결혼을 전제로 연애를 해야 할 나이라서 신중하게 접근을 할 뿐이었지, 내게 관심을 보이는 여자들은 늘 존재했고 내가 마음만 먹으면 이성을 만나는 것 자체는 어렵지 않았다. 카페나 술집에서 여자에게 먼저 헌팅을 당한 적도 있고 어딜 가든 잘 생겼다는 칭찬을 듣곤 했다.
하지만 요즘에 받는 관심은 그것과는 뭔가 다른 느낌이다.
티나 때도 느꼈던 거지만, 여자들이 김윤호라는 존재 그 자체보다는 나의 성적인 면에 이끌려서 대시를 하는 기분이다.
마치 동물 세계에서 발정기에 접어든 암컷이 암내를 풍기며 수컷을 유혹하는 것처럼 말이다.
“이거 내가 너무 들이댔나. 갑자기 술 마시자는 건 좀 그렇죠···?”
내가 곧바로 대화를 이어가지 않자 엄승미는 조금 소심해진 모양이다.
팔을 귀엽게 휘저으며 코를 찡그린다.
“에이, 술 말고 밥으로 할 걸 그랬다.”
나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에요. 술 좋아요.”
“저는 그냥 좀 더 친해지고 싶어서 편하게 말씀드린 건데 대표님 입장에서는 부담스럽게 느껴졌을 수도 있겠네요. 나이 많은 여자가 왜 이래? 이러면서, 큭큭.”
아무래도 내가 걸그룹 회사의 대표이다 보니 조금 움츠러든 것 같다.
하지만 엄승미가 사회적 스펙으로 보나 외모로 보나 내 앞에서 자조할 정도는 아니었다.
연예인을 상대하고 트랜드에 민감한 방송 작가답게 옷은 센스 있게 잘 입고 자기관리도 잘돼 있다.
무엇보다 서른 중반을 넘어가는 직장여성에게서 풍기는 예민함이나 사회에 찌든 모습이 없다는 게 좋았다.
나는 진지하게 미간을 찌푸리며 그녀를 달랬다.
“에이, 왜 그러세요. 술 언제 마실래요? 저 다음 주 주말에 시간 비는데.”
그때였다.
손에 쥔 핸드폰 진동이 울리면서 동시에 스튜디오의 두꺼운 문이 열렸다. 그 뒤에서 모습을 드러낸 건 업키걸 아이들이었다.
가장 앞에 서 있던 홍이가 나와 엄 작가를 확인하고 뒷사람에게 전달한다.
“어? 대표님 여기 계시는데? 작가님이랑 같이 계셔.”
내게 전화를 건 사람은 서원이었다.
뾰로통한 표정으로 통화종료 패드를 터치하며 묻는다.
“여기서 뭐해요?”
“전화 받으러 나왔다가 화장실 갔다 왔어. 왜?”
“아니. 회사에 무슨 일 터졌나 했죠. 밥 먹다가 갑자기 사라졌길래.”
“어, 아냐. 들어가.”
“잠깐.”
나와 엄 작가를 번갈아 쳐다보던 리야가 스튜디오로 들어가려던 나를 막아 세웠다. 가늘게 뜬 눈으로 내게 묻는다.
“뮨댕쓰 엄마 작가님한테 혼났구나?”
“풉, 내가 작가님한테 왜 혼나?”
“연기 못 했다고. 쪼인트 까였을 거 같은 킹리적 갓심이 드는 것이야.”
엄 작가도 까르르 웃음을 터뜨리며 반박했다.
“야, 내가 대표님 쪼인트 깔 위치냐?”
“그럼 뭐지? 알리야의 느낌상 둘 사이에 뭔가가 있긴 있는 거예요. 썸인가?”
알가놈의 쓸데없는 한마디에 업키걸 아이들의 표정이 싹 가라앉는다.
님이 남이 되고 남이 년이 되는 건 한순간이다.
차가워진 시선이 일제히 엄 작가에게 쏠렸고 엄승미도 짐짓 놀라서 표정이 어색해졌다. 아무리 그녀라고 해도 내게 추파를 던졌다는 사실이 밝혀지면 저주를 면치 못할 터.
나는 대를 위해 소를 희생하기로 했다.
화장실에서 무심결에 야짤을 클릭한 것이 엄 작가가 있던 여자화장실까지 들렸고, 그것 때문에 소소하게 오해가 생겼다는 말을 털어놓았다.
물론 아이들 입장에서는 그것도 그것 나름대로 큰일이었다. 각자 다른 확대해석을 내놓으며 호들갑을 떤다.
“아니, 다 큰 남자가 화장실에서 포르노 좀 볼 수도 있지, 왜 우리 뮨댕쓰 기를 죽이고 그래욧!”
리야가 가장 먼저 발끈하며 엄 작가에게 소리쳤고.
“오빠, 요즘 욕구불만이야···?”
씨바색기는 나를 불쌍하게 쳐다봤으며.
“며칠을 못 가는 구나. 에휴···.”
서원이는 자신이 나서야겠다는 투로 중얼거렸고.
“대, 대표님 도시락 식겠다. 랍스터는 굳으면 맛없는데···.”
아직 마구니가 묻지 않은 청정홍이는 얼굴을 붉히며 딴청을 피웠고.
“흐음···.”
요나는 한숨을 삼키며 입술을 삐죽거렸다. 마치 자기가 대기실에서 욕구를 미처 풀어주지 못한 탓에 이 사단이 난 것처럼 말이다.
“뭐야, 왜 그래.”
“왜 그래요?”
망할. 리야가 꽥 소리치는 바람에 스탭들이 두런두런 거리며 입구로 모여들기 시작했다.
나는 리야에게 복화술로 주의를 줬다.
“야, 아예 기사를 내지? 김윤호 대표가 방송국 화장실에서 야동 봤다고, 어?”
“뮨댕쓰, 알리야가 실드 쳐줄 테니까 걱정 마. 포르노가 무슨 범죄도 아니고 말이야.”
“닥쳐 쫌. 너만 조용하면 된다고, 너만.”
피아식별이 불가능한 업친놈들 때문에 부풀려질 뻔한 사건은 다행히 엄승미 작가의 조리 있는 해명 덕에 웃지 못 할 해프닝 정도로 일단락됐다.
“소품 팀! 도배풀 어디 있어요?”
“예, 지금 갑니다!”
야식 타임으로 한차례 가라앉았던 스튜디오는 마지막 촬영을 앞두고 다시 분주해졌다.
이번 씬의 주인공인 나와 서원이는 방송국 분장 팀이 준비해준 의상으로 갈아입고 헤어와 메이크업을 리터치 받았다.
대기시간이 가장 길었던 서원이는 메이크업을 받는 몇 분동안 꾸벅꾸벅 졸았다.
좀 더 자게 하면 좋으련만, 나는 메이크업을 끝낸 분장 팀이 물러간 뒤 곧장 서원이를 깨웠다. 잠도 못 잔데다가 야식을 먹은 지 얼마 되지 않아서 오래 자면 얼굴이 붓고 화장이 떠서 화면에 안 예쁘게 잡히기 때문이다.
“서원아, 일어나.”
“응···.”
“에그, 피곤하지?”
“그래도 내일은 저녁 스케줄 밖에 없어서 다행이에요. 빨리 끝내고 숙소 들어가서 맥주 마시고 싶다.”
“너네 요즘에 자기 전에 계속 술 마신다며?”
“응.”
“안 돼. 그거 버릇되면 나중에 술 없으면 잠 안 온다?”
“뮤노 대표님, 서원 씨, 셋업 끝났습니다! 나오시면 돼요!”
“예, 갑니다!”
서원이와 나는 조연출의 알림을 듣고 의자에서 일어났다.
다른 업키걸 멤버들과 주변 스탭들은 다 촬영 세트와 카메라 앞에 모여 있었고 나와 서원이만 조금 떨어진 세트장 구석에서 대기 중이었다.
그곳으로 함께 걸어가는데 서원이가 나른하게 중얼거린다.
“맥주 한 캔 원샷한 다음에 대표님 꼬추 물고 자고 싶다···.”
“야···.”
“진짜 욕구불만이에요? 왜 화장실에서 야동을 봐.”
“아니, 잘못 누른 거라고···.”
“이따가 애들 잠들면 내가 입으로 빼줄게요. 그러니까 애들 술 많이 먹여야 돼요. 알았지?”
움찔.
나는 곁눈질로 주위를 살피며 속삭였다.
“야··· 사람들 듣는다. 촬영장에서는 쫌, 쫌···.”
“히히, 상상만 해도 좋지? 귀여운 윤호 꼬추를 쫍쫍, 쫍쫍.”
발기.
압도적 발기.
한가놈의 고작 그 몇 마디에 고추가 뎃차아! 소리를 내지르며 서 버렸다.
내 고추를 내내 입에 담던 녀석의 음담패설은 세트장 앞에 이르러서야 멈췄다.
스타일리스트가 서원이의 메이크업을 마지막으로 점검해주는 사이, 어느새 내 옆으로 온 은빛이가 도배풀이 담긴 세숫대야 소품을 가리켰다.
“오빠, 저거 감자 전분으로 만들었대.”
“다행이네. 하긴, 얼굴에 닿을 건데 진짜 도배풀은 아니겠지.”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은빛이가 귓가에 대고 속삭인다.
과하게 입김을 섞어서···.
“꼬혹 오빠 정액 같다하, 그치히?”
으잇, 소름!
“야이씨, 간지러···.”
“왜해? 흥분돼해? 내가 이따가 손으로 해줄까하? 저번처럼 겨드랑이에 하는 거야하. 어때해? 좋지히?”
이젠 씨바색기한테까지 능멸 당하다니.
매너남, 초식남의 상징이라 불리던 김윤호 처지가 왜 이렇게 됐냐고.
서원이로 인해 발기된 고추가 조금 가라앉나 싶던 찰나에 이번에는 씹덕대장 씹대장의 공격이었다.
녀석은 가슴으로 팔뚝을 꾸욱 누르면서 쩝쩝 소리를 이어나갔다.
“근데 오빠 있지···. 나 오늘은 그냥 해도 되는 날이다하···. 윤호 하고 싶은 거 해에···.”
“에잇, 저리 꺼져.”
“흐키키킷. 커여워.”
미치겠네.
씨바를 밀쳐내긴 했지만 내 기둥은 이미 주책 맞게 달아올라 버렸다.
공공재에서 공창남으로 진화한 나.
인간 딜도가 되어 버린 나.
여성전용 리얼돌이 되어 버린 나.
존재 자체만으로 여자들의 성욕을 자극하는 페로몬 인간이 되어 버린 나.
그들의 요구를 모두 들어주려면 몸이 10개라도 모자랄 지경이다.
촬영이 끝나면 일단 연습생 숙소로 가서 란이를 잠재워야 한다. 그리고 업키걸 숙소로 넘어가서 요나와의 2차전을 준비해야 하고 서원이의 입에 고추를 물려줘야 하며 은빛이한테 하고 싶은 걸 다 해야 한다.
미쳤냐고···.
프로 남창도 이 정도 스케줄은 아닐 것이다.
“레디~ 액션!”
PD의 사인이 떨어지자 여주인공 역할을 맡은 서원이가 감정을 잡고 눈빛 연기를 시작했다.
다른 여자 집에서 도배를 해주고 있는 남편을 덮치는 장면이다. 호구처럼 살던 여주인공이 각성을 하는 중요한 장면이자 ‘내귀두남’의 순간 시청률 1위를 찍은 레전드 씬이기도 하다.
이미 싸대기 한 대 맞고 널브러진 바람녀 역할은 요나가 맡았다. 그냥 바닥에 누워있기만 하면 된다.
요나를 한심스럽게 쳐다보던 서원이가 내게 눈을 흘기며 대사를 친다.
롱테이크라서 중간에 끊지 않고 한 번에 쭉 간다.
“내가 어디까지 이해해 줘야 돼요? 당신 입으로 말해 봐요.”
“그래, 이왕 이렇게 된 거 솔직하게 말하지. 나는 이제 한 여자로 만족할 수 없는 몸이 되어버렸어. 그러니까 당신이 인정해줘.”
“···두 집 살림하는 걸 인정하란 말이에요?”
“어. 두 집이든 세 집이든, 당신은 그냥 나한테 맞추라고!”
“지금까지 당신한테 맞추면서 살았는데 여기서 더 맞추라고요?”
“맞추라면 맞추지 뭔 말이 그렇게 많아! 아니면 이혼을 하든가!”
“당신 정말 나쁜 사람이군요···.”
“저 여자 앞에서 더 이상 창피 줬다가는 알아서 해. 이제 그만 꺼져!”
나는 서원이를 밀치고 쓰러져 있던 요나를 일으켜 세운다.
그리고 그 순간, 풀이 잔뜩 묻은 도배솔이 내 뺨을 후려친다.
―쩍!
뺨을 맞고 고개를 돌리는 순간 구경하고 있는 은빛이의 얼굴이 보였다. 녀석이 귓바람을 불며 했던 말도 떠올랐다.
‘꼬혹 오빠 정액 같다하, 그치히?’
아, 진짜 씨바색기, 기분 더럽게···.
그 말을 듣고 나서 그런지 냄새도 진짜 뭣 같다.
그 상태로 두 번째 싸대기가 날아왔다.
―쩍!
아, 거지같다, 너무 거지같아···.
“오케이, 컷!”
“오케이입니다! 수고하셨습니다!”
촬영은 환호 속에 끝이 났다.
새벽 5시······.
나의 스케줄은 이제부터 시작이었다.
망란이 [대표님 꼬추보면서 딸딸이 쳤더니 더 달아올랐어요ㅠ 이태원이든 강남이든 뛰쳐나가고 싶으니까 빨리 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