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2화.업키걸 이요나(2)-대기실 판타지 (34/371)

업키걸 이요나(2)-대기실 판타지

“우와, 진짜 침대 있어요.”

먼저 대기실 문을 열고 들어간 요나가 해맑게 말했다.

들었던 대로 연기자 대기실이 다르긴 달랐다.

넓지만 어딘지 차가운 느낌의 음악방송 대기실과는 달리, 연기자 대기실은 좁기는 해도 사람 사는 냄새가 나는 깔끔한 고시원을 연상시켰다.

3평 남짓한 실내에는 다인용 소파와 테이블 대신 대기시간 동안 눈을 붙일 수 있는 1인용 침대와 책상 겸 화장대, 장농이 있었다.

생수병에 꽂아 쓰는 귀여운 가습기와 다양한 간식거리&음료는 제작진이 업키걸을 위해 특별히 준비해둔 아부성 소품으로 보인다.

무엇보다 신기했던 건···.

“샤워실 대박.”

간단하게 씻을 수 있는 샤워부스가 있다는 것이었다.

다른 방에서도 이제 막 샤워실을 확인했는지 “키에엑, 키엑!”하며 호들갑 떠는 소리가 들렸다.

“방금 은빛이지?”

“큭큭, 예.”

“씨바, 신났네.”

난방이 잘 돼 있어서 실내가 좀 덥다.

코트를 벗어서 의자에 걸치는데 샤워실을 둘러보고 온 요나가 아무렇지 않게 내게 말한다.

“대표님 먼저 하세요.”

“어? 뭘?”

대사 연습을 하자는 건 줄 알았다.

“샤워요.”

“응···? 샤워?”

“예, 먼저 씻으세요.”

왜 씻으라는··· 앗, 아앗!

그러고 보니 요나의 성판타지가 그거였구나!

――――――――

―성판타지 : 방송국 또는 공연장 대기실에서 은밀하게 즐기는 스킨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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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이런 요오오오망한 것!

하지만 당연히 장난이겠지?

녀석은 분명 나를 놀리려는 생각으로 야시시한 의미의 이중적인 표현으로 말했을 것이다. 내가 그것을 섹드립으로 받아들이길 바라면서 말이다.

그렇다면 나는 여기서 어떤 리액션을 해줘야 할까.

모르는 척 할까, 아니면 녀석이 원하는 대로 미끼를 물어줄까.

머뭇거리는 사이, 요나가 상의 밑자락을 잡고 허리까지 들어 올리며 진지하게 말을 잇는다.

“그냥 저 먼저 씻을게요.”

뭐야, 장난이 아니라 진짜 씻을 생각인가?

설마 판타지를 실현시키려는 생각이야?

여기서 섹스하자고? 라고 생각한 것도 잠시···.

“프흐흐흐.”

역시나 훼이크였다.

니트를 거의 브래지어 밑 라인까지 올렸던 녀석은 결국 표정 관리에 실패하며 자기가 먼저 실소를 터뜨렸다.

“아, 웃겨서 못하겠다.”

“에이, 놀랐잖아···.”

내가 당한 척을 해주자 내심 뿌듯한 모양이다.

가늘게 뜬 눈으로 내게 손가락질하며 묻는다.

“대표님 솔직히 쫌 설렜죠?”

“얘가 갑자기 왜 이러나 생각했지.”

“킥킥킥.”

요나는 장난스럽게 웃었다. 그러고는 내 허리를 끌어안으며 폭― 쓰러지듯이 안겼다.

“보고 싶었어요.”

“야, 야, 스탭들 들어오면 어쩌려고···.”

“안 들어와요. 리허설 세트 준비하는데 30분 정도 걸린 댔잖아요. 스튜디오에 장우 오빠 계시니까 준비되면 전화로 알려줄 거예요.”

“우리 애들···.”

“다들 배우놀이 하느라 정신없을 거예요. 그리고 어차피 문 잠갔잖아요.”

요망하고 대범하기가 하늘을 찌르는구나.

느낌상 오늘이 ‘그날’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일명 ‘요나의 그날’

업키걸 다섯 멤버 중에서 가장 이성적이고 기복 없는 성격의 요나지만, 가끔씩 그들을 압살하는 똘끼와 충동성을 보여주는 날을 일컬어 그렇게 부른다.

그나저나 이거 큰일이네.

녀석과 맞닿은 하복부에서 곧장 이상신호가 감지됐다.

이건 무슨 사춘기 소년도 아니고, 겨우 포옹만 했는데도 자연스럽게 발기가 되다니···.

은빛이의 보드라운 겨드랑이에 사정한 그날을 시작으로, 지선경 대표를 만나고 티나를 거쳐서 서원, 음란이 순으로 섹스를 했던 작금의 기간동안 뇌가 성욕에 절여지다 못해 짱아찌가 된 것인가!

그것도 모자라서 라희, 미오와의 교감 매체 또한 성욕이라는 것을 알게 됐으니, 현재 내 삶의 중심이 고작 성욕, 성충동, 섹스, 질내사정, 이따위 것뿐이라는 걸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생각이 바뀌면 인생이 달라진다고 했던가.

요즘 내가 맞닥뜨리는 상황 또한 교묘하게 그런 쪽으로 유도되고 있다.

지금 상황만 봐도 그렇다.

어떻게 대기실 판타지를 갖고 있는 요나랑 둘이 방을 배정 받고, 분위기는 왜 이런 식으로 진행이 되냔 말이다.

‘오늘은 왠지 요나 양과 하실 것 같은 느낌적인 느낌이 드네요.’

지선경 대표님, 당신은 예언자입니까?

그러나 꿀 떨어지는 분위기도 잠시.

요나가 끌어안은 내 몸을 좌우로 흔들면서 의미심장하게 묻는다.

“며칠 전에 서원 언니 서울 왔었다면서요? 리야랑 둘이.”

움찔.

“어···?”

“언니가 대표님 만나고 온 다음 날부터 계속 티를 내더라고요.”

“무슨 티?”

“글쎄 허벅지 안쪽이 그렇게 아프대요.”

움찔!

내가 진짜 한가놈 때문에 미치겠다.

그 놈을 믿은 내가 잘못이지.

“못 걸을 정도라고 하면서 보여주는데, 진짜 빨갛게 멍이 들었더라고요. 서원 언니 다리가 왜 그 지경이 됐을까요···?”

“그러게··· 왜 그렇게 됐지?”

“저는 그 다음 날에도 되게 멀쩡했었는데···.”

내 가슴에서 얼굴을 뗀 요나가 얼굴을 빤히 쳐다보며 묻는다. 눈동자는 고요한 호수처럼 차분하게 가라앉아 있었다.

“저랑 할 때는 열심히 안 하셨나 봐요?”

“크흡···.”

“대표님이 생각해도 웃기죠?”

“요나야, 너 왜 이러니.”

“그 사이에 엄청난 발전이 있으셨나부다. 대단해요. 엄지척.”

“그런 거 아니야···.”

“기분이 좀 그렇더라고요.”

“야아, 왜 그러냐.”

“대표님 취향이 서원 언니였을 줄은 몰랐는데··· 히잉···.”

윽.

결국 요나가 울음을 터뜨리며 내 품에 안겼다.

염병, 내가 언젠가는 이런 상황이 벌어질 줄 알았지.

하지만 알면서도 막지 못하고, 왜 이런 일이 벌어졌는지 설명할 수 없음이 원통스러울 따름이다.

“요나야, 이게 울 일은 아니지 않니···?”

“왜 치사하게 사람을 차별하냐고요. 저도 허벅지 아프고 싶단 말이에요.”

“아니, 그런 게 아니라··· 그, 그래. 너도 똑같이 해줄게. 아니, 더 잘할 자신 있어. 믿어봐.”

“···아니요. 저 이런 기분으로는 대표님 얼굴 볼 자신이 없어요. 오늘 촬영 못 하겠어요. 엄마 작가님한테는 제가 말씀드릴 테니까 촬영 잘하고 오세요.”

요나는 내 품에서 떨어져서 가방을 챙겼다.

평소의 프로페셔널한 요나였다면 절대 이런 식으로 욱하지 않는다.

이거 ‘요나의 그날’이 고약한 쪽으로 꽂힌 것이다.

당황스럽기도 하고, 녀석의 행동과 표정이 너무 단호하기도 해서 차마 붙잡을 수가 없었다. 이걸 어떻게 수습해야 할지 감조차 잡히지 않았다.

―철컥

결국 요나는 대기실 문을 열었고.

“또 속냐, 뮤노야.”

열린 문 뒤에 합장 자세로 서 있는 건 다름 아닌 리야였다.

후우··· 몰카였구나···.

분노와 안심이 딱 50대50으로 공존하는 이 거지 같은 기분, 참 오랜만이다.

“아··· 너네 진짜···.”

“아, 어떡해. 죄송해요 대표님. 저도 어쩔 수 없었어요.”

즙까지 짜내며 열연을 펼쳤던 요나가 금세 송구스러운 표정이 되어 전후사정을 설명했다. 리야랑 소원 들어주기 내기를 해서 졌는데 리야의 소원이 내 몰카였다고 한다.

“하아···. 얘들아··· 이 업친놈들아. 내가 예전부터 누누이 말했지만, 너네끼리 하는 게임의 최대 피해자가 왜 항상 내가 돼야 하냐고. 내가 내기에 진 것도 아닌데.”

“어어? 뮨댕쓰, 설마 좆쌀영감처럼 쫌스럽게 화난 건 아니지? 설마 그런 것이야?”

“아니, 화는 안 났는데 니 애매한 발음을 들으니까 화가 나려고 하네.”

“쏘리. 내기도 내기였지만, 솔직히 뮨댕쓰 연기하는데 감정 잡으라고 일부러 그런 것이야. 알리야랑 욘리다가 신경 써서 잡아준 지금의 이 감정 잊지 말고 잘해봐. 그럼 알리야는 이만 가볼게. 내 씬 찍기 전까지 좀 자둬야겠어.”

리야는 말도 안 되는 변명을 끝으로 자기 대기실로 호다닥 들어갔다.

다행히 12시가 넘은 대기실 복도에는 우리 외에 아무도 없었다.

나는 우리 대기실의 문을 닫은 뒤 요나를 쳐다봤다.

“대체 나한테 왜 그러는 건데.”

원망스럽게 묻자, 엄지와 검지로 하트를 만들며 뻔뻔하게 대꾸한다.

“사랑해요.”

참나.

따지고 보면 나도 화를 낼 입장은 아니지.

요나와 나는 똑같은 피해자일 뿐이고 악의 근원은 알가놈과 한가놈이다.

그래서 나도 손가락 하트를 그리며 덤덤하게 말해주었다. 오다 주웠다, 라는 느낌으로.

“응. 나도 사랑해.”

“어···? 뜻밖의 심쿵···.”

“우리 요나 설렜어?”

“네. 완전요. 그때 브루나이 때 생각났어요···.”

“그럼 먼저 씻고 와.”

“예?”

“아님 내가 먼저 씻을까?”

“왜, 왜 씻어요···?”

“왜긴. 서원이랑 똑같이 다리 아프게 해달라며.”

“예? 지금요? 여기서요? 갑자기요?”

“나는 준비됐는데 왜, 싫어?”

“싫은 게 아니라··· 여기서 어떻게 해요···.”

“왜 못해. 하면 하는 거지. 리허설 준비하려면 30분 정도 걸리고, 끝나면 장우가 알려줄 거고, 멤버들은 배우놀이 하느라 바쁘고, 리야 몰카도 끝났고, 문은 잠갔고, 뭐가 문젠데?”

“아니, 그래도··· 리허설 연습하셔야죠. 저랑 한번 맞춰봐요.”

요나의 얼굴이 달아올랐다.

나를 똑바로 쳐다보지도 못하고 동공 지진이 일어난 걸 보니 진심으로 당황한 것 같다.

“대사는 어차피 프롬프터 돌아가고, 엄승미 작가가 나는 어차피 발 연기 컨셉이니까 연습할 필요도 없이 최대한 날 것 그대로 해달라고 말했었고. 됐지?”

나는 그렇게 말하며 한손으로 요나의 허리를 감싸 안았다.

물론 진짜 할 마음은 없다.

뇌가 아무리 정액 짱아찌가 됐다고 해도, 미쳤다고 대기실에서 할까.

그저 방금 전 몰카에 대한 리벤지 몰카일 뿐이다.

내가 키스를 하려고 하면 요나는 당연히 눈을 감을 테고, 그럼 조용히 뒤로 물러서서 녀석이 눈을 뜰 때까지 기다렸다가 놀리면 되는 것이다.

분명 그럴 생각이었는데······.

내가 얼굴을 옆으로 돌리며 천천히 들이밀자 요나는 예상대로 눈을 지그시 감았다. 그런데 초 근접 상태로 보는 그 얼굴과 표정이 어찌나 예쁘던지, 도저히 멈출 수가 없는 것이다.

나는 그제야 깨달았다.

내 인내심을 너무 과대평가한 반면, 업키걸 센터의 미모를 과소평가했음을···.

그래, 문도 잠겨있겠다, 키스와 가벼운 터치 정도는 괜찮겠지.

츄―

우리는 선 채로 서로의 상체를 더듬으며 키스를 시작했다.

요나의 판타지가 굳이 섹스를 가리키는 건 아니었나보다.

단지 키스만으로도 요나의 판타지가 충족됐다는 알림이 울렸다.

<‘이요나’님의 성판타지를 충족시켜주었습니다. 맞춤 보상으로 ‘강한 남자 패키지’ 3세트가 지급됐습니다.>

그래, 생체 딜도에게 필요한 건 역시 강한 남자 패키지 아니겠는가.

란이랑 미오를 참된 아이돌로 키우기 위해 꼭 필요한 아이템이다.

이건 무슨 업키걸 애들한테 파밍해서 2기 놈들 쩔 해주는 느낌이네.

머릿속을 맴도는 잡념과는 달리 내 손은 본인의 의지를 가지고 착실하게 테크트리를 쌓아가는 중이었다.

등을 쓰다듬던 오른손으로 브래지어 훅을 풀고, 왼손은 밑단 아래로 집어넣어 느슨해진 브래지어 밑으로 밀어 넣었다.

―뭉클

아아! 그래, 이런 게 진짜 가슴 아니겠는가.

은빛, 서원, 란이로 연명하듯 이어지던 빈유층에서 벗어나, 한층 업그레이드 된 중슴층의 풍족함을 느끼고 나서야 그동안 내가 선택권 없는 행복에 억지로 만족하며 살았음을 느낄 수 있었다.

2012~2014시즌 내리 꼴찌를 하다가 2015시즌에 중위권으로 올라선 한화이글스의 팬이 이런 기분이었을까.

이글스 팬이라는 것 자체만으로도 행복하지만 경기에서 이기면 훨씬 더 행복하듯이 가슴 사이즈라는 것도 마찬가지였다.

빈유보다는 역시 적당히 풍만한 가슴이 백 번 천 번 옳았다. 그리고 이왕이면 포스트 시즌을 넘어 한국시리즈까지 진출하는 게 더 좋겠지.

나는 브래지어 훅을 풀었던 오른손을 밑으로 내려 요나의 청바지 단추를 풀었다.

―툭

후우, 그 어느 때보다 짜릿한 손맛이다.

나는 벌어진 바지와 팬티 틈 사이로 손을 집어넣었다.

나를 음모 페티쉬에 빠지게 만든 보드라운 털이 곧장 손가락에 닿았다.

그 순간 요나의 따뜻한 손도 내 중심부를 향해 밀고 내려오며 단단해진 기둥을 부드럽게 감싸 쥐었다.

온몸이 녹아내리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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