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3화.연습생 이소란(3)-넣어서 키우라니···. (24/371)

연습생 이소란(3)-넣어서 키우라니···.

죽인다.

정보창이 사람이었으면 강하게 목 졸라서 죽였을 것이다.

비겁한 새끼.

아무리 그래도 머리카락은 건드리면 안 되는 거 아니냐고.

내가 평소에 탈모에 얼마나 민감하냐면, 친구들이나 내 나이 또래 남자들의 휑해지는 머리를 보면서, 나는 탈모가 아니더라도 마흔이 되면 프로페시아를 영양제처럼 먹겠다고 다짐했던 사람이다.

정보창 이 개씹새끼는 그런 내 약점을 간파해서 탈모 작전을 쓴 게 분명했다.

업키걸 때는 은빛이의 죽음으로 충격요법을 주더니 이제는 하다하다 탈모 빔이라니···.

―똑똑

“예.”

“대표님, 저 란이요···.”

“어, 들어와.”

―철컥

“안녕하세요···.”

란이는 죄 많은 표정으로 인사하며 사무실로 들어왔다.

녀석을 기다리는 동안 할 말을 미리 정리해 놓은 나는 가타부타 하지 않고 본론부터 얘기했다.

“너 김석원 만났다면서. 진짜야?”

“예?”하고 당황하던 녀석은 이내 “예···.”하고 순순히 실토했다.

“일단 앉아.”

“예···.”

진짜 면목이 없는 건지 아니면 찔리는 게 있는 건지. 기도 한풀 꺾였고 옷도 얌전하게 입고 왔다.

겨울에도 곧 죽어도 짧은 치마와 숏팬츠만 입고 연습 때 역시 짧은 트레이닝팬츠나 몸매가 드러나는 레깅스를 입는 녀석인데 웬일로 일자 핏 진에 단정한 코트 차림이다.

그 모습을 보니 헛웃음이 픽 새어나갔다.

자기는 섹스 매니아라면서, 내가 자기를 따 먹지 않은 걸 후회할 거라고 당당하게 어필하던 녀석이.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짬지보지해피섹스 거릴 정도로 거침없던 녀석이.

이렇게나 기가 죽은 모습이 어이도 없고 불쌍하기도 해서 오히려 화가 조금 가라앉는 기분이다.

“너 무슨 기자회견 하러 왔냐? 옷은 왜 그렇게 얌전하게 입고 왔어. 법원 출두할 때도 망사 스타킹 신고 나갔다가 댓글로 융단폭격 당한 애가.”

“대표님한테 마지막 인사드리는 자리니까요. 그동안 저 실드 쳐주시느라 고생 많으셨어요. 감사합니다.”

“그래. 나도 이게 마지막이었으면 얼마나 좋았겠냐···. 하고 싶다는 말이 그거야? 고맙다고?”

“뭐··· 얼굴 보고 인사드리는 게 맞는 거 같아서요.”

“갑자기 왜 이래. 너 무슨 회귀 같은 거 한 거 아니지?”

“예? 회귀요?”

“농담이고. 그래서 김석원이 뭐래? 아이컨택 다시 하재?”

“예··· 어떻게 아셨어요.”

“얼마나 대놓고 만났으면 강남구청 화로구이집 사장님이 니 소식을 전해주더라.”

“거기 안 갔는데요.”

“그러니까 이 바닥 소문이 얼마나 무서운 거냐고. 방송국에 벌써 소문 쫙 퍼진 것 같던데?”

뭐 김석원이 미리 소문을 퍼뜨렸을 수도 있지.

란이는 한 템포 호흡을 고른 뒤 김석원을 만났던 얘기를 시작했다.

SNS 쪽지를 통해서 연락이 왔고 1대1로 한 번, 아이컨택 멤버들과 한 번 만났다고 한다.

내용은 염에게 들었던 대로였다.

마약 사건으로 팀 이미지를 손상 시킨 건 없던 일로 해줄 테니 남은 계약 기간 2년은 마저 활동하고 깔끔하게 끝내자고 했단다.

란이의 표정은 나쁘지 않았다. 하지만 연기를 하듯이 어딘지 어색했다.

“일단 앨범부터 내고 활동은 해외 위주로 할 거래요.”

“그게 무슨 말인지는 너도 알고 있지?”

“네?”

“디지털 싱글 하나 대충 내 놓고 중국이나 일본 가서 뺑뺑이 돌리겠다는 말이잖아.”

“예···.”

“좋네. 공연 끝나면 룸이나 호텔 방 따라가서 술 따르고 용돈도 받고.”

“네······.”

자기도 예상은 하고 있었는지 딱히 부정은 하지 않는다.

하지만 나는 그게 진심이 아님을 느낄 수 있었다.

그 정확한 속내가 뭔지는 모르겠지만, 방금 녀석이 내게 호소하는 마음의 소리가 들렸기 때문이다.

보라색 교감이 발동한 것이다.

‘그런 거 다시 하기 싫어요. 뮤노 대표님이랑 같이 계속 하고 싶어요. 제발 저 좀 잡아 주세요······.’

“그래도 김석원이랑 하고 싶어?”

“뭐··· 다른 선택이 없잖아요.”

“다른 선택이 왜 없어. 여기서 연습하다가 연예계 다시 복귀 하는 게 니 꿈 아니었어? 죽으라면 죽는 시늉도 할 테니까 받아달라며. 노래로 보답한다며.”

“그랬죠···.”

“아이컨택 계약은 해지할 수 있다고 했잖아. 우 변호사님이 도와주신다고도 했고.”

나는 란이가 내게 자신의 입으로 직접 도움을 청하고 속마음을 털어놓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일부러 자극했다.

“내가 보기엔 너 그냥 편하게 살려고 하는 거 같은데? 그래도 꼴에 데뷔했던 몸이라고 연습생 애들이랑 똑같은 취급 받으면서 연습하기에는 자존심 상하고. 그런데 김석원 따라서 해외 나가면 바로 공연도 할 수 있고, 한국 걸그룹이라고 대접도 받고. 그치? 운 좋으면 맘씨 좋고 돈 많은 스폰 하나 물어서 평생 돈 걱정 안 하면서 살 수도 있고.”

어라. 말하고 보니까 나쁘지 않은데?

실제로도 그런 케이스가 있다. 한국에서는 그저 그런 인기를 누리다가 중국으로 진출한 뒤 스폰 하나 잘 물어서 인생 역전한 사람들.

중국 부호 중에 한국 여자 매니아들이 많아서 첩으로만 들어가도 집과 차는 기본이고 헤어질 경우엔 위자료도 두둑이 받을 수 있다고 한다.

뱃살 축축 늘어진 늙은이뿐만 아니라 젊고 매너 좋은 스폰서도 많고.

란이도 그런 사람들을 만나지 않으리라는 법이 없지 않은가.

똑같은 크기의 고통과 고민이라고 해도, 차디찬 길바닥에서 깡 소주 마시며 한탄하는 것과 호텔에서 와인 마시고 마사지 받으면서 하는 넋두리가 다른 것은 말할 것도 없다.

처음에는 억지로 한다고 해도 결국 손에 쥐어지는 돈을 보면 생각이 바뀔 것이다.

탈모 빔만 아니면 서로 웃으면서 작별할 수 있었을 텐데 진짜 머더퍽커다, 머더퍽커.

생각해보니 결국 아쉬운 사람은 나잖아······.

“저 어차피 여기서 2년 안에 복귀 못 하잖아요. 기약도 없이 기다리는 것보다는 그냥 아이컨택 2년 끝내는 게 저한테도 좋은 것 같아요. 계약 파기 하려면 법적으로 다시 싸워야 되는데 저 이제 그건 너무 힘들어요···.”

“후회 안 할 자신 있어?”

“후회··· 할 수도 있겠죠. 그런데 뭐 어쩌겠어요. 세상에 후회하면서 사는 사람이 저밖에 없는 것도 아닌데요 뭐. 그래도 아직까지 저를 필요로 하는 사람이 있다는 게 중요한 거죠.”

란이의 마지막 말에 가슴이 찡― 하고 울렸다.

그동안 드문드문 전해지던 녀석의 진심이 바로 이거였다.

관심과 사랑, 그리고 누군가는 여전히 이소란이라는 인간을 필요로 한다는 가치 증명.

란이가 밤마다 클럽과 술집을 떠도는 이유이기도 했다.

넷 상에서는 세상 둘도 없는 썅년으로 찍혀서 욕을 먹지만, 정작 오프라인에서는 란이를 차지하고 싶어 안달 난 남자들이 줄을 선다.

물론 그들이 원하는 건 란이의 젊은 몸과 유명세지만 그것도 관심이라면 관심이고 사랑이라면 사랑이니까···.

아오!

아오오!

내가 천하의 업나니 놈들한테도 매달린 적은 없었던 것 같은데 망란이 따위한테 굽실거려야 하다니.

“인생 뭐 있어요. 그냥 저 좋다는 사람들, 필요로 하는 사람들하고 어울리면서 맘 편히 사는 거죠.”

“아주 해탈했네, 해탈했어. 쫌 있으면 아주 공중 부양도 하겠어.”

“큽···.”

“됐고. 잔말 말고 내일부터 다시 연습실 나와. 나도 니가 필요해. 김석원 보다 내가 더.”

나는 윗머리를 이용해 꾸역꾸역 가리고 있던 옆통수의 원형 탈모 자국을 보여주며 진심을 호소했다.

“이거 보이냐? 내가 너 때문에 맘고생 해서 원형 탈모 왔다.”

“거짓말 하지 마세요. 대표님 저 싫어하는 거 다 아는데요.”

“하아··· 내가 너를 싫어하면 지금까지 왜 데리고 있었겠냐고.”

“대표님이 좋아하는 요나 언니가 부탁했으니까요.”

“그래, 요나가 부탁한 것도 있지. 근데 내가 진짜 싫었으면 받아줬겠냐고. 실력도 없어, 근성도 없어, 얼굴이 특출나게 예쁜 것도 아니야, 이미지는 개똥에다가 툭하면 클럽 가서 남자랑 뒹구는 애가 뭐가 예쁘다고.”

“거봐요. 싫어하시잖아요···.”

그러게.

말하고 보니까 디스다.

압도적인 디스.

나는 칭찬으로 어물쩍 물타기 했다.

“국어 안 배웠어? 대화의 문맥을 파악하란 말이야. 그런 치명적인 리스크를 감수하면서까지 너를 데리고 있다는 건, 너한테 뭔가 가능성이 있다는 뜻이잖아.”

“저 그런 거 없어요. 대표님 말대로 ‘내가 오늘도 연습실에 나와서 뭔가를 했구나’ 하면서 위안 받았던 거예요. 그러다가 이제야 정신 차린 거죠.”

“···지금 상황에서 그게 중요해? 암튼 나는 니가 필요하고, 꼭 걸그룹으로 복귀를 시킬 거야. 그러니까 잔말 말고 붙어 있어. 염 대표 말 들어보니까 잠수타기 전까지 현동이한테 발성도 물어보고 연습도 열심히 했다면서 갑자기 왜 또 지랄병이야, 지랄병이.”

“크흡.”

“이게 계속 웃어?”

“죄송해요. 지랄병이란 말이 웃겨서요.”

“암튼 난 니가 필요하다고 분명히 말했다.”

망란이 놈은 감동 받았다.

지금 분명 감동 받아서 눈빛이 크게 울렁거렸고 표정도 센치해졌다.

하지만 이내 울렁거리던 눈망울의 초점이 또렷하게 돌아온다.

“근데 죄송해요. 저 안 될 것 같아요. 이미 결정 내렸으니까 대표님도 그냥 저 버리세요.”

“하아···.”

“저 국민 비호감이잖아요. 어차피 팀에 민폐만 끼칠 거고 저 하나 때문에 다른 멤버들이랑 회사도 같이 욕 먹을 거예요. 저도 처음부터 안 될 거 알고 있었는데 자존심 상해서 아무렇지 않은 척 연기 했던 거예요.”

“야, 연기는 지금 하고 있는 게 연기지. 너 어차피 김석원이랑 하기 싫은 거 다 알아. 센 척 하지 말고 들어오라고 할 때 들어와.”

란이의 눈망울이 다시 한 번 크게 흔들린다.

나는 계속 쏘아붙였다.

“김석원이 이건 말 안 했을 거야. 마지막으로 아이컨택 개처럼 굴려서 돈 땡기고, 그걸로 자본금 삼아서 신인 걸그룹 제작한다고 그러더라. 안 그래도 악독했던 인간이 그렇게 맘을 먹었으면 어떤 식으로 굴릴지 뻔한 거 아니냐? 그래도 갈 거야?”

“어떡해요. 벌써 한다고 했는데···.”

“내가 김석원 만나서 얘기할 테니까 차단해. 요나 때 한 번 했는데 두 번이라고 못 하겠냐? 정 안 되면 전능하신 갓리야 님한테 처리해달라고 부탁하면 되니까 너는 연습이나 열심히 하라고.”

“···죄송해요. 그냥 그쪽으로 갈래요.”

“오케이. 밀당은 여기까지. 우리 망란이 자존심 센 거 충분히 알았으니까 그만 하자?”

“자존심 세우는 거 아니에요. 현실을 본 거예요.”

아 씨 진짜···.

누군 좋아서 잡는 줄 아나.

여기서 너 설득 못하면 나 대머리 된다고, 대머리!

그러니까 나 좀 도와줘라, 아니 도와주세요!

저 좀 살려주세요, 이소란 님!

“후우··· 란아. 이소란아. 내가 어떻게 해줄까. 무릎이라도 꿇을까? 아니면 눈물로 호소할까?”

“대표님이야 말로 이상해요. 저도 제 주제가 어떤지 잘 알아요. 아무리 생각해도 이렇게까지 하면서 저를 잡으실 이유가 없는데···.”

너무 답답해서 으아악, 소리치고 싶었다.

아니, 소리라도 질러서 답답함을 털어내야겠다. 라고 생각하던 그때 란이의 정보창이 떴다.

씹창 말고 연예인으로서의 능력치와 앞으로의 트레이닝 방법이 담긴 정보창.

보라색 아우라가 생긴지 2년 만에 처음으로 보는 녀석의 능력치였다.

그런데 뭔가 이상하다.

얼핏 봤을 땐 흔한 엔터테인먼트 정보창인 줄 알았는데 여러 부분에서 특이점이 발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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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칭호/이름 : 마약난교돌 이소란

―생년월일 : 2000년 3월29일

―신장/몸무게 : 157cm/47kg

―혈액형 : O

―소속그룹 : 아이컨택

―추천 분야 : 걸그룹, 연기

―가창력 : 28/30

―안무 : 38/50

―연기력 : 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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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레이닝 포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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