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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화.연습생 이소란(1) (22/371)

연습생 이소란(1)-이상한 소문

23. 연습생 이소란(1)-이상한 소문

란이의 제명은 다른 연습생들에게 보여주기식도 있었지만 내 진심 어린 바람이기도 했다.

진짜 손절하고 싶다.

그동안은 우쭈쭈 달래면서 끌고 왔는데 이번만큼은 내가 매달리거나 설득을 하지 않으려고 한다.

망란이 새끼가 제 발로 먼저 찾아와 열심히 한다고 싹싹 빌 때까지 존버 탈 생각이다.

물론 이게 잘못된 선택이거나 란이에게 문제가 생긴다면 상태창의 경고 메시지가 뜨겠지. 그 전까지는 내가 생각한 대로 밀어붙여도 될 것 같다.

“12월 월말 평가는 공연장 빌려서 한다는 얘기 들었지?”

란이의 결석으로 흥분된 감정을 차분하게 식힌 뒤 연습생들에게 공지했다.

아이들은 기대감 넘치는 표정으로 소리 높여 대답했다.

“예!”

“평가를 떠나서 너희들이 그동안 얼마나 노력했는지 가족이랑 친구들한테 보여주는 자리니까 준비 열심히 해. 그리고 조만간 좋은 소식 있을 거니까 지치지 말고. 알았지?”

“혹시 데뷔조 만들어요?”

연습생 중에서 가장 눈에 띄는 아우라를 가진 서아가 눈빛을 반짝이며 되물었다.

데뷔조라는 말이 나오자 다른 아이들의 표정도 설렘과 긴장감으로 물들었다.

나는 어깨를 으쓱이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암튼 열심히들 해.”

“데뷔조 맞죠?”

“몰라.”

“앜, 대표님 표정 보니까 맞는 거 같다!”

“꺄아악! 데뷔조 뽑는다!”

귀여운 놈들.

이제부터 진짜 전쟁이 시작되는 줄도 모르고 소리를 지르며 방방 뛴다.

훈련소 퇴소하면 군 생활 끝인 줄 아는 훈련병들 같다.

“그럼 데뷔조는 내년에 데뷔하는 거예요?”

“팀 이름은 뭐예요?”

“몇 인조예요?”

“미오, 넌 잠깐 나랑 내려가자.”

“예.”

나는 질문을 퍼붓는 연습생들을 뒤로 하고 미오와 함께 사무실로 내려왔다.

미오와는 미리 만나서 얘기를 했었어야 했는데 녀석이 며칠 동안 어머니 병간호를 해야 한다고 해서 오늘에서야 만난 것이다.

“뭐 마실 거 줄까?”

“예, 아이스 아메리카노···.”

“응, 얼음 없어. 얘기 끝나고 밑에 커피숍 가서 먹어.”

“크힛, 예.”

참나.

말아 쥔 주먹으로 입을 가리면서 코웃음 치는 모습이 천상 여자다.

“너 너무 메소드 연기 아니냐? 웃는 것도 완전 여자처럼 웃는데?”

“아, 제가 그랬어요? 버릇돼서 그런가 봐요.”

“앉자.”

“예.”

소파에 마주보고 앉아서 대화를 시작했다.

나는 어머니 안부부터 물었다.

“어머니는 어디가 편찮으셔서 입원하신 거야?”

“유방암이에요.”

“어이고··· 많이 안 좋으신 거야?”

“아뇨. 초기에 발견해서 수술 잘 끝났고요, 이번에 방사선 치료 받으셨어요.”

“잘 된 거지?”

“예.”

“다행이다. 많이 놀랐겠다.”

“초기라서 별로 걱정은 안 했어요. 엄마도 아무렇지 않던데요.”

“내색을 안 하셔서 그렇지 속으로는 많이 놀라셨을 거야.”

“아빠 돌아가시고 나서 가슴 만져줄 사람이 없어서 걸린 거라면서 남자 친구 만들 거래요.”

“아아···.”

“그래서 제가 등산 동호회 같은데 알아보라고 했어요. 산에서 좋은 공기 마시면서 운동도 하고 데이트도 하고 좋잖아요.”

이거 뭔가 혼란한데. 나까지 헷갈리기 시작한다.

미오는 분명 남자이고 아들인데, 얘기를 듣다보니 이상하게 쿨한 모녀 사이가 상상되는 것이다. 전혀 위화감이 없다.

나는 녀석의 반짝이는 빨간 입술을 보며 물었다.

“너 가족들 만날 때도 화장하고 가는 건 아니지?”

옷은 성별에 구애받지 않는 오버사이즈 스트릿 패션으로 유니섹스하게 입었지만 반 묶음 꽁지머리와 연분홍 톤의 색조 화장 때문에 영락없는 여자로 보였다.

아니, 솔직히 화장을 안 해도 이목구비와 얼굴의 전체적인 선 자체가 여자 같긴 하지만.

미오는 고개를 저었다.

“원래 출근할 때 아니면 화장은 안 해요. 오늘은 여기 오느라 한 거고요.”

“머리는 진짜 니 머리야?”

“예.”

“일은 완전 그만 둔 거지?”

“대표님 만난 날 사장님이 알아서 나오지 말라고 하시던데요.”

“성귀남 사장님?”

“예.”

“그럼 너 생계는 어떡하냐. 돈 벌려고 그 일 했던 거라면서.”

“그건 지선경 사장님이 월급으로 대체해 주신다고 했어요.”

“무슨 월급?”

“대표님 경호원 겸 비서요.”

“경호는 무슨···. 내가 널 경호해야 할 판인데.”

미오의 체격은 키 167cm에 몸무게는 고작 50kg이다.

여자라고 생각해도 키만 클 뿐이지 여리여리한 몸매인데, 남자가 이 피지컬이면 그냥 키 작은 멸치에 불과했다.

아무리 격투기를 배웠고 아마추어 대회에서 입상도 했다고 하지만 겉으로 보이는 체격조건만으로는 내가 싸워도 이길 수 있을 것 같았다.

내가 못미덥게 쳐다보자 포인트가 전혀 다른 대답을 내놓는다.

“제가 오늘은 너무 편하게 입고 왔는데요, 내일부터는 진짜 비서처럼 오피스룩으로 제대로 입고 올 게요.”

“아니, 사양할게.”

“스타킹은 무슨 색깔 좋아하세요? 저희 클럽에 오시는 회원님들은 보통 검스 좋아하시던데. 혹시 풋잡 받아보셨어요?”

“주먹으로 쳐버리는 수가 있다. 경호나 비서 같은 얘기 신경 쓰지 말고 넌 이제부터 연습만 하면 되는 거야.”

“근데 저 진짜 이쪽으로는 아무 것도 몰라요.”

“기초부터 배워야지 뭐. 그때도 말했지만 나도 조금 당황스러워. 업키걸 애들은 그래도 재능이 있고 기본적으로 연예계에 관심이 있던 애들이었거든.”

“언제까지 데뷔해야 돼요?”

“그건 아직 몰라. 이번에도 5인조를 만들라고 하는데 지금 너를 포함해서 총 세 명만 나왔어. 방금 위에서 인사했던 라희랑 다른 한 명은 아이컨택 란이. 란이 누군지 알지?”

“마약했던 아이돌 아니에요?”

“어, 맞아.”

“근데 그거 결과는 어떻게 됐어요?”

“집행유예 2년 2개월.”

“집행유예가 뭐예요?”

집행유예의 뜻을 설명해주자 고개를 끄덕이며 조심스럽게 말을 잇는다.

“근데 아무리 모르고 했다고 해도 이미지가 벌써 나빠졌잖아요. 사람들은 그 분 생각하면 마약부터 떠올릴 걸요. 저도 그랬고요.”

“그렇지.”

“그런데도 다시 아이돌로 복귀가 돼요?”

“뭐 복귀야 되겠지. 욕을 엄청 먹어서 문제지만. 청소년한테 악영향 끼친다고 반대 서명운동 같은 것도 벌어질지도 모르고···.”

“그럼 어떡해요?”

“나도 걱정이다. 차라리 걔 혼자 솔로로 하라면 모를까, 팀으로 데뷔하면 다른 멤버들한테도 피해가 가는 건데···.”

“그러니까요. 대표님이 고민 많으시겠네요.”

“그래도 정보창이 불가능한 미션을 주지는 않았겠지.”

“저는 그 정보창 능력자가 아니라서 잘 모르지만 보통 그렇다고 하더라고요. 힘내세요. 제가 옆에서 항상 응원해드릴게요.”

가만 듣고 있자니 이 새끼가 유체이탈 화법을 쓰고 있네?

란이도 란이지만 니 새끼도 만만치 않잖아.

“야, 뭘 응원을 해, 걔보다 니가 더 큰일인데.”

“저요?”

“그래도 마약한 아이돌은 전에도 있었지만 여장 남자 걸그룹은 니가 처음이잖아. 만약 니가 어찌저찌 걸그룹으로 데뷔를 했는데 남자라는 게 터지면 어떻게 될 거 같냐?”

“CD 좋아하는 사람들 의외로 많은데···.”

“CD가 뭔데?”

“크로스 드레서요. 여장이나 남장을 즐기는 사람들을 그렇게 불러요.”

“트렌스젠더?”

“아뇨, 그 중에 트젠도 있기는 한데 그냥 이성의 옷을 입는 걸 즐기는 사람들을 통틀어서 CD라고 해요. 저도 뭐 즐기는 건 아니지만 엄밀히 따지면 CD라고 볼 수 있고요.”

또 주제에서 벗어났다.

“···아니, 성취향의 문제가 아니라···. 니 팬들은 당연히 니가 여자라는 전제하에 좋아하는 건데 갑자기 남자라고 하면 뭔 생각이 들겠냐고.”

“타고난 성별보다는 겉으로 보이는 외모가 중요한 거 아닐까요? 위에 있는 연습생들 중에서도 저보다 예쁜 분들은 별로 없는 거 같던데요.”

그건 인정.

아직 업키걸 외에는 증명된 게 없는 중소회사이고, 차기 그룹에 대한 플랜도 이제 겨우 잡힌 상태이기 때문에 비주얼이 좋은 연습생은 두 명 정도밖에 없다.

누가 봐도 예쁜 애들은 애초에 대형기획사 오디션부터 시작하지.

여자보다 예쁜 고추가 자랑스럽게 말을 잇는다.

“그리고 저 핸드잡이랑 풋잡 같은 유사성행위도 여자들보다 더 잘할 자신 있어요. 남자 몸은 남자가 잘 아는 거니까요.”

역시는 역시구나.

그래. 이 정도는 돼야 보라색이라고 할 수 있지.

단순히 여장만이 문제가 아니라 근본적으로 또라이였던 것이다.

녀석은 대표실 내부를 슥 둘러보면서 덧붙였다.

“비서 컨셉으로 한 번 빼드릴까요? 대표님이 원하시면 펠라까지는 해드릴 수 있어요.”

씨발.

이 개새끼의 어느 부분을 발로 차야 잘 찼다고 소문이 날까, 라는 생각이 드는 한편, ‘펠라’라는 단어에 본능적으로 반응하며 녀석의 반짝이는 입술을 주시한 나를 증오한다.

순간적으로 설렜음을 회개하는 바이다.

하여튼 개새끼가 쓸데없이 고퀄이고 지랄이야.

“너 나한테 한 번만 더 그런 말 했다가는 진짜 때린다. 진심이야.”

“죄송합니다. 근데 지선경 사장님이 그런 것도 제 업무에 포함된다고 했거든요. 대표님이 너무 바쁘셔서 여자 만날 시간이 없을 때는 저보고 풀어달라고···.”

지선경 그 여자야 원래 미쳤고.

“아니야. 안 해도 돼. 너 이제 그냥 연습생이라고.”

“예.”

“근데 너 군대는 어떻게 됐냐.”

“학교 때문에 자동으로 연기 됐어요.”

알고 보니 인서울의 나름 이름 있는 대학에 재학 중이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로 어머님께서 종합격투기 도장을 대신 운영하셨는데 잘 될 리가 없었다. 1년 정도 하시다가 결국 부관장에게 권리금을 받고 넘기셨고, 그 돈으로 치킨집을 차렸다가 그것도 얼마 안 가 건강악화와 적자만 떠안고 그만 두셨다고 한다.

“집에서 돈을 벌 사람이 저밖에 없어요. 원래는 베트남 음식점에서 알바를 했었는데 그것만으로는 제 생활비 밖에 안 되더라고요.”

함께 알바를 하던 여자애들이 녀석의 여성스러운 외모를 보고 화장을 해준 것이 화근이었다.

하고보니 너무 예뻐서 여자 옷까지 입혀주었고, 그걸 사진으로 찍어 한 아이의 SNS에 올렸는데 그 애의 남사친들이 소개를 시켜달라며 난리가 난 것이다.

실물로 봐도 여자 같은데 사진으로는 말할 것도 없었겠지.

“알바 사이트 같은데 찾아보니까 여자들은 예쁘기만 하면 돈이 되더라고요.”

처음에는 터치가 전혀 없는 토킹 바 같은 곳을 알아보려고 했었는데 결국 ‘월 천만 원 이상’이라는 문구에 끌려 면접을 본 곳이 성귀남이 운영하는 페티쉬 클럽이었다.

“너 진짜 성 정체성에 문제 있는 거 아니지? 만약 거짓말 한 거면 지금이라도 솔직하게 말해. 진짜 게이나 트렌스젠더 아니야?”

“남자로 태어나서 남자의 정체성을 가지고 있어요. 여장하면서 성적인 쾌감을 느끼지도 않아요. 그냥 인형탈 알바나 연극 분장 같은 걸로 생각하고 하는 거예요.”

“머리 아프다, 머리 아파···.”

“어깨 주물러 드릴까요? 어깨 뭉쳐서 그럴 수도 있어요. 저 안마 잘해요.”

“응. 내 몸에 손대면 너 죽고 나 죽는 거야.”

아무리 외모가 여자라고 해도, 내 몸에 녀석의 손이 닿는다고 생각하니 닭살이 확 돋았다.

그런 거부 반응이 몹시도 반갑게 느껴진다.

다행히 나락까지 떨어지지는 않았다는 증거 아닌가.

방금 전 녀석의 입술을 보며 펠라치오를 떠올릴 때만 해도 내가 썩을 대로 썩은 건가 싶었는데 다행이다.

미오와는 10분 정도 대화를 나눴다.

다른 퍽커들과 마찬가지로 성적으로 완전히 개방됐다는 것 외에는 그냥 주변에서 볼 수 있는 평범한 또라이였다.

경호원이나 비서로 활용할 생각은 전혀 없지만, 그래도 녀석에게만큼은 내 능력이나 거기에 따르는 고충 따위를 편히 말할 수가 있어서 조금은 위안이 되기도 했다.

“연습은 내일부터 하자. 오늘은 올라가서 애들 연습하는 거 보고 어떤 분위기인지 한번 느껴봐. 그리고 이번 주까지 가요 발라드 한 곡 외우고. 노래는 못 해도 상관없는데 가사는 외워야 돼.”

“예.”

얘기를 마치고 올려보내려는데 누군가 대표실 문을 두드렸다.

“누구세요.”

“접니다.”

염 대표였다.

연습생 관리와 신인개발 파트는 전적으로 내가 맡고 있어서 일개 연습생 소개는 굳이 안 해도 되지만, 미오는 라희와 함께 데뷔조에 들어갈 아이이기 때문에 인사를 시켰다.

미오가 인사를 마치고 나가자 염이 흡족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음, 괜찮은데요? 어디서 데려오셨어요?”

“지선경 대표가 소개해줬어. 느낌 있지?”

“예. 노래랑 춤이야 가르치면 되는 거고 일단 얼굴이 예쁘니까 된 거죠 뭐. 키도 크고 괜찮네요.”

“이뻐?”

“예. 남자들이 좋아할 얼굴인데요?”

“쟤가 사귀자고하면 사귈 거야?”

“흐흐흐, 제가 언제 학생들 건드리는 거 보셨습니까.”

“만약 연습생이 아니라 그냥 밖에서 만난 애면? 클럽에서 만났는데 오늘부터 1일 하자면서 모텔 가쟤.”

“저야 땡큐죠. 형은 안 하실 거예요?”

“응. 안 해.”

“쯧쯧. 내일모레면 한 살 더 드시는데 아직도 정신 못 차리셨네요. 그럼 뭐 고독사 하셔야죠.”

보추미오와는 별개로, 내가 평소에 여자를 워낙 안 만나는데다가 여자를 고르는 기준까지 까다롭다 보니 회사 내에서의 이미지가 거의 고자에 가깝다.

그런 내가 육욕에 눈이 멀어 딸처럼 업어 키운 업키걸 아이들과 물고 빨았다고 하면 어떤 반응들을 보일까.

그런 걸 생각하면 금욕주의로 사는 게 편한데, 대체 어쩌다가 이렇게 돼버린 건지 모르겠다.

“근데 우리 염, 무슨 일로 왔음?”

“아, 업키걸 애들 연말시상식 스케줄 때문에요. 케이온 차트에서 대상 하나 줄 것 같은데 홍백가합전이랑 날짜가 겹쳐요.”

“31일이야?”

“예. 시간도 거의 겹치고요.”

“출연 안 하면 대상 안 주겠지?”

“그럴 확률이 높죠. 본상이나 하나 주겠죠.”

“그럼 받지 말자. 홍백가합전을 버릴 순 없잖아.”

“그렇죠.”

“뭐야, 답정너네?”

염은 인정한다는 듯 큰 눈을 부라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몇 초 정도 뜸을 들이다가 조심스럽게 운을 뗐다.

느낌상 이번 얘기가 내 사무실을 찾아온 진짜 이유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형, 란이 말인데요··· 걔 요즘 이상한 소문 돌던데 혹시 들으셨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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