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4화.업키걸 한서원(1) (15/371)

업키걸 한서원(1)

라희&망란쓰 숙소와 회사까지의 거리는 도보로 2분이 채 걸리지 않는다.

나는 서원, 알리야 시한폭탄 듀오를 데리고 숙소 빌라에서 나왔다.

나오자마자 알리야가 내 어깨를 콕콕 찌른다.

“랑깡깡.”

“왜.”

“알리야는 따로 볼 일 있어서 가봐야 하니까 서원 언니 좀 잘 부탁해.”

내 이름인 김윤호를 빠르게 발음하면 기뮤노.

뮤노를 줄여서 뮨.

그 뒤에 멍멍이의 야민정음인 댕댕이를 붙이면 뮨댕댕.

업키걸 5호기 알리야가 나를 부르는 최고 애칭이다. 겉으로 보면 귀여워 보이지만 그 이면에는 개처럼 복종하라는 섬뜩한 표현이 담겨있다.

애칭은 녀석의 기분에 따라서 달라지고 대부분 ‘알리야어’로 이뤄져 있다.

가장 보편적으로 불리는 3단계는 이거다.

뮨댕댕 > 뮨뮨 > 랑깡깡(평범하지만 나름 귀여운 구석이 있는 사람)

아까 택시 안에서 전화를 할 때만 해도 최고 애칭인 뮨댕댕이었는데, 라희의 안마 모습을 본 이후로 자연스럽게 랑깡깡으로 2단계 하락했다.

“볼 일? 무슨 볼 일.”

“레이디의 프라이버시는 존중해줘야지.”

“아직까지 급식체 쓰는 주제에 레이디는 개뿔.”

“이제 한 달도 안 남았어. 2020년 되면 뉴타입 프린세스 알리야를 경험하게 될 것이야. 암튼 난 여기서 빠빠이 할게.”

오른쪽으로 가면 회사, 왼쪽은 큰 도로로 향하는 골목이었는데 알리야는 왼쪽으로 방향을 튼 뒤 뒤도 돌아보지 않고 걸어갔다.

나는 그 뒷모습을 보며 서원이에게 물었다.

“쟤는 한국 왜 왔어?”

“오고 싶으니까 왔겠죠.”

대답이 퉁명스럽다.

퉁명한 이유를 바로 덧붙인다.

“오랜만에 봤는데 이게 뭐야. 솔직히 안마 해준 거라고 해도 기분 더러워. 대표님이 왜 연습생 안마를 해주냐고. 내가 붙여줘요? 개인 안마사?”

“야, 내가 설마 돈이 없어서 직접 해줬겠냐.”

녀석은 눈빛으로 나를 때리면서 바득바득 쏘아붙였다.

“그럼 왜. 왜. 왜. 그것도 바지까지 벗겨서. 어우, 짜증나. 손 씻었어요?”

“아, 맞다. 씻으려다가 너네 들어와서 깜빡했네.”

“후우······ 내 옆에서 떨어져요. 당장.”

“응.”

한걸음 옆으로 비켜서자 그걸 가지고 또 꽥꽥 거린다.

“아씨. 가란다고 바로 가는 게 더 짜증나네. 다시 옆에 붙어요.”

“응.”

“팔짱 껴요.”

“어쭈, 은근슬쩍 너무 나가는데? 나 잘못한 거 없다. 떳떳해.”

“씨이···.”

업키걸 2호기 한서원.

메인보컬, 집착 담당.

1997년생, 올해 23살.

―신장 : 163cm

―몸무게 : 47kg

―업적 : ‘노래해듀오’ 왕중왕전 퀸(With 설대진), 보컬 전문가가 선정한 아이돌 보컬 Top3(걸그룹 중 1위)

―매력 포인트 : 카톡 폭탄, 살해 협박, 동반자살 권유

―취미 : 게임

홍이와 함께 팀 내 맏언니이고 겉으로 보이는 성격도 가장 세지만 현실 서열은 꼴찌. 쭈굴대마왕 은빛이가 이겨먹는 유일한 멤버.

하지만 다른 멤버들은 어려워하는 회사 최고 존엄 염대표에게 유독 강한 면모를 보이는 걸 보면 강한 자에게 강하고 약한 자에게 약한 게 아닌가, 생각이 듦.

학교폭력, 가정폭력 2연타로 인해 2년 동안 집에서 한발자국도 나오지 않고 히키코모리 생활.

내가 회귀 전에 은빛이를 제외하고 실물로 목격했던 유일한 멤버인데, 당시 노래방 도우미로 일하고 있었음. 히키코모리 생활을 깨고 ‘노래해듀오’라는 음악 예능에 참여해서 좋은 반응을 얻었지만, 일진루머에 억울하게 휘말리며 매장 당함.

회귀 후에 노래해듀오 촬영장에서 만나 팀 합류 설득.

가정폭력 주범인 아버지에 대한 증오 때문에 정신적으로 불안정. 그것이 집착과 의심, 질투, 피해망상 등으로 표출.

그 집착질은 팬들 사이에서도 유명해서 사생팬이 아닌 사생가수라는 수식어가 붙을 정도로 팬들에게 집착함.

하지만 연예인이 팬한테 집착하는 게 흔한 상황은 아닌지라, 그런 걸 좋아하는 성향의 팬들은 서원이를 ‘퀸서원’, ‘서원리스 타르가르옌’으로 부르며 노예화를 자처.

보통 팬 사인회에 참가한 팬들은 멤버들과 한 명 한 명 돌아가면서 얘기도 하고 사인도 받는데 서원이 팬들은 그딴 거 없음. 가림막에 의해 앞만 보고 달려가는 경주마처럼 무조건 서원이 앞에 줄 서서 대기.

‘서원이가 신는 삼디다스 쓰레빠로 뺨 맞고 싶은 사람들의 모임’이라는 기괴한 개인 팬클럽까지 생겼다.

홍이와 함께 남성 잡지 맥심의 표지모델을 한 적이 있었는데 특유의 퇴폐미를 선보이며 이미지 스펙트럼을 넓혔다.

야생여우를 닮았다하여 집착여우, 사생여우 등 여우가 들어가는 별명이 많다.

인성질 할 때는 한가놈.

시시각각 예민하고 욱하는 성격 때문에 초반에는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는데, 알고 보면 얘만큼 다루기 쉬운 놈이 없다.

나는 아래턱을 삐죽삐죽거리고 있는 한가놈의 얼굴을 슬쩍 쳐다보며 덤덤하게 한마디 툭 던졌다.

“음. 앞머리 내린 거 잘 어울리네.”

“······.”

“팬들 또 난리 났겠다, 그치?”

“···당연히 난리 났지.”

“예쁘네.”

“얼마나요.”

“많이.”

“은빛이가 이뻐요 내가 이뻐요.”

“니가 이쁘지. 비교할 걸 비교해라.”

“리야가 이뻐요 내가 이뻐요.”

“야야, 어디 감히 꼬꼬마 리야 따위를 너랑 비교 하냐. 내가 다 자존심이 상하네.”

“요나가 이뻐요 내가 이뻐요.”

“요나는 오래보면 질리는 스타일이야.”

“그치그치. 요나가 이쁘긴 한데 쫌 질리는 얼굴이지. 뭐야. 그럼 내가 제일 이쁜거네?”

“홍이는 왜 안 껴줘?”

“돼지는 빠져.”

“그래, 홍이는 빼자.”

“흐히히.”

“좋아?”

“응. 앞으로도 나만 예뻐야 돼요.”

“그럼, 그럼.”

단순하기는.

이렇게 칭찬 몇 마디 해주고 자기 편 들어주면 끝.

내가 원래 이런 걸 잘 못하는 성격이었는데, 업키걸 매니저 하는 동안 성격이 얼마나 많이 바뀌었는지 모른다.

“술 마셨어요? 술 냄새 나.”

“어, 미팅하면서 한 잔 했지.”

“그래서 립밤 언니들이랑 계약 할 거예요?”

“해야지. 회사에서는 절대 손해 보는 장사는 아니니까. 지금 섹시 컨셉이 거의 걔네 하나잖아. 싼티 좀 빼고 엘레강스 섹시로 밀어보게.”

“짜증나.”

“또 왜.”

“우리 말고 다른 연예인 들어오는 거 싫은데. 남자만 받아요.”

“나도 그러고 싶다. 업키걸 하나만 하면 얼마나 편하냐.”

“신인 쪽은 어떻게 돼가요?”

“음··· 일단 라희랑 란이 들어가는 팀으로 5인조 하나 만들고, 다른 한 팀도 생각 중이야. 두 팀을 경쟁구도로 해서 내년 여름쯤에 비뮤직이랑 프로젝트 프로 하나 하려고.”

“데뷔 오디션 같은 거요?”

“그렇지.”

“그럼 나 심사위원 시켜줘요.”

“응. 너네 다 같이 한 번 나와 줘야지.”

회사 건물이 보일 때쯤 발걸음을 멈추고 묻는다.

“근데 우리 회사 가는 거예요?”

“어.”

“가서 뭐해요?”

“응?”

라희 마사지 건에 대해서 해명 하려고 했는데 그새 서원이의 기분이 다 풀렸다.

“온 김에 야근하는 직원들 얼굴 보고 야식이나 사줘.”

“야식이야 배달시키면 되죠. 내 피 같은 시간을 굳이 직원들하고 인사하는데 써야 되나.”

“인성 봐라.”

“나한테는 우리 둘이 있는 시간이 더 중요해요. 나 내일 아침 9시 비행기로 가야 돼. 시간 없어.”

“근데 너 진짜 뭐 하러 온 거냐.”

“열 받아서 왔죠. 대표님이 카톡 씹길래.”

“진짜 그거 때문이라고?”

“응. 갑자기 화악― 욱했어.”

“굉장하네.”

“아 몰라. 그럼 지금 할 거 없는 거죠?”

“어.”

“됐네. 그럼 우리 집 가서 술이나 마셔요. 나 우울증 걸릴 거 같아요. 대표님한테 화풀이 좀 해야겠어.”

“너네집?”

“응.”

업키걸 멤버들 중 개인주의 성향이 짙은 서원이가 숙소에서 제일 먼저 독립했다.

아예 독립은 아니고 팀 활동을 할 때는 숙소생활을 하고 개인 활동을 할 때는 자기 오피스텔을 이용한다.

업키걸 팀 숙소, 서원이 오피스텔 모두 회사 근처 5분 거리에 몰려있다.

“그럼 그냥 숙소로 가. 숙소도 비었잖아.”

“우리 집으로 가요. 나 대표님한테 부탁할 것도 있단 말이에요.”

“걸어가? 나 술 마셔서 운전 못 하는데.”

“걸어요. 택시타기엔 애매하잖아.”

“기사님들은 좋아하시지. 30초 태워주고 기본요금 받는 건데.”

“아냐. 걸어. 걷고 싶어요.”

회사로 가던 발길을 틀어 왕복 2차선 도로의 인도를 따라 서원이의 오피스텔로 향했다.

중간에 버스정류소도 없고, 애초에 이쪽 길 자체가 밤이 되면 사람이 없는 편이다.

서원이는 자연스럽게 내 팔을 끌어안아 팔짱을 꼈다.

나는 패딩 코트를, 녀석은 모직 코트를 입었는데 모직 특유의 냄새가 화장품 향과 어울려 포근한 케미를 이룬다.

겨울 특유의 차가운 냄새, 주황색 가로등 불빛, 아릿한 취기, 그리고 아이돌의 팔짱···.

이상하게 마음이 설렌다.

그러다가 새삼 서원이의 분홍색 아우라를 보니 기분이 쌔해졌다.

단둘이 술을 마셔···?

은빛이 때처럼 그런 불상사가 생기는 거 아닌가 모르겠네.

물론 티나와의 한 차례 관계 후 대현자타임이 온 터라 나는 자신 있지만 상대가 은빛이보다는 레벨이 높은 한서원이라는 게 조금 걸린다.

“무슨 부탁인데.”

“가서 말해줄 게요.”

“그래라. 근데 리야는 오늘 어디서 잔대?”

“알게 뭐예요.”

“막내한테 너무 관심이 없는 거 아니냐. 그래도 아직 미성년인데.”

“친구들 만나러 갔겠죠.”

“걔가 너네 말고 친구가 어디 있어.”

“대표님은 아무 것도 몰라. 걔 다른 걸그룹 애들이랑 두루두루 친하니까 걱정 말아요. 남자한테만 관심 없지. 여자 애들이랑은 단톡방도 만들고 맨날 연락하는 것 같던데.”

“아, 그래?”

“프라미슈 애들이랑도 친해요.”

움찔.

“그래?”

“응. 대표님 최애캐 하늘이.”

“언제적 얘기를 하고 그러냐.”

“뭐야. 최애캐 바뀌었어요?”

“요즘에 걔가 이쁘더라. 올뉴데이즈···.”

“닥쳐요.”

“리ㅂ······ 응. 닥칠게.”

“리브 말하는 거잖아요.”

“어.”

“내가 그럴 줄 알았어. 안 그래도 우리끼리 말했는데 딱 김윤호 스타일인 것 같더라.”

“큭큭큭, 내 스타일이 뭔데.”

“어린 애들.”

“에이, 아니야.”

“어린 애들 중에서 강아지 상으로 생긴 애들.”

“어, 강아지 상은 맞아. 웃는 강아지 상.”

“나는 뭔데요.”

“너는 여우상이지. 까칠한 야생여우.”

“여우도 개과 아니에요?”

“그런가?”

“그럴 걸요. 그럼 나도 강아지 상이다!”

그러면서 나를 향해 억지로 이를 드러내며 눈웃음을 짓는다.

귀엽기는.

냉미녀 타입인 서원이는 무표정으로 있을 땐 약간 퇴폐적이고 차가워 보이는데 웃을 땐 또 해맑은 토끼 같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우리 애들이 어디 가서 얼굴로는 절대 밀리지 않지.

괜히 천외돌이라고 불리는 게 아니다.

하지만 나는 괜히 장난을 걸었다.

“너 얼굴에 살 좀 붙은 거 같다? 뭐 맞았냐?”

“뭔 소리야. 요즘에 자기 전에 계속 술 마셨더니 좀 부어서 그래요.”

“혼술?”

“아뇨, 요나랑. 어제까지 3일 연속으로 마셨어요.”

“뭐 고민 있어?”

“딱히 고민은 없는데··· 해외에만 나가면 마음이 그냥 좀 싱숭생숭해요. 핸드폰으로 우울증 검사해봤는데 초기래요.”

“거봐라. 너네 너무 안 쉬고 달려서 그런다니까. 이번 거 일본 활동 끝나면 좀 쉬자.”

“쉬면 밥이 나오나 쌀이 나오나. 밑에서 리브처럼 파릇파릇한 애들이 치고 올라오는데 쉴 틈이 어디 있어요.”

“악착같다, 악착같아.”

“절대 안 비켜줄 거야. 이게 어떻게 올라온 자리인데.”

“근데 부탁할 건 뭐냐고. 나 마음의 준비 좀 하게 미리 말해줘.”

“아, 가서 말해준다고요.”

“아, 뭔데. 지금 말 안 하면 나 안 해.”

대체 뭔 부탁인지, 녀석은 좌우앞뒤를 살펴본 것도 모자라 내 어깨를 짚고 귀에 조곤조곤 속삭였다.

“나 제모 좀 해줘요···.”

“제모? 무슨 제모?”

에이 설마 그 제모는 아니겠지, 라고 생각했는데.

녀석은 손가락으로 자기 하복부를 가리키며 수줍게 웅얼거렸다.

“여기요···.”

“뭐? 야이씨! 그 귀한 걸 왜 밀어! 아깝게!”

“아, 깜짝이야. 왜 소리를 지르고 그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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