굉장하네.
어차피 ‘죽어, 미안해요, 죽어, 미안해요’의 반복일 게 뻔하다. 그래서 처음 몇 개만 읽고 쭈욱 내려버렸다.
업키걸 데뷔 이후 이런 식의 폭탄 투여는 거의 사라졌었는데, 해외에서 지내는 시간이 많아지면서부터 다시 시작됐다.
마지막으로 메시지가 온 시간은 대략 1시간 전이다.
티나가 씻으러 간 사이 답장을 했다.
나 [이야, 오랜만에 옛날 생각나고 좋다]
5초도 지나지 않아 칼 같이 답장이 온다.
집착여우 [죽인다 김윤호. 찾아서 죽일 거다]
나 [왜 죽여]
집착여우 [뭐하는데 1시간이 넘도록 확인을 안 해요]
나 [뭐하긴 일하지]
집착여우 [무슨 일]
나 [립밤 계약 건 때문에 티나랑 미팅 중이야]
집착여우 [내가 좋아요 티나가 좋아요]
나 [당연히 니가 좋지]
집착여우 [그럼 티나 욕해 봐요]
나 [가만히 있는 사람 욕을 왜 해ㅋㅋㅋㅋㅋㅋ]
집착여우 [그 언니 때문에 나한테 집중 안 했으니까]
나 [우리 서원이가 왜 또 저기압일까]
집착여우 [나 해외 활동하기 시러. 우울증 도질 것 같아]
나 [일본은 괜찮잖아. 맘만 먹으면 지금이라도 올 수 있는 거리인데 뭐]
집착여우 [응. 그래서 지금 김포공항 왔어요]
나 [어? 한국이라고?]
집착여우 [응. 열 받아서 왔어]
짜릿해, 늘 새로워, 항상 상상 초월이야.
깜짝 놀라 전화를 걸었다.
“진짜 김포공항이라고?”
―응. 대표님은 어디에요?
“나? 나 여기··· 강남 쪽인데.”
―강남 어디.
“역삼동 쪽.”
―내가 글로 갈게요. 기사님, 성내동 말고 역삼동 쪽으로 가 주세요. (예~ 역삼동이요.)
“뭐야, 벌써 택시 탔어?”
―응. 회사로 가던 중이었지.
“야, 나 아직 미팅 안 끝났어.”
―근처에서 기다리면 되죠. 우리가 일하는 거 방해할 정도로 막 나가는 애들은 아니잖아요.
카톡 확인 안 한다고 일본에서 한국 오는 건 막 나가는 게 아니고 뭔데.
아니, 잠깐. ‘우리’라고?
“너 누구랑 같이 왔어?”
―뮨댕댕, 왜 서원 언니 카톡을 씹어서 일을 어렵게 만든 것이야.
앗, 아앗.
리야다.
업키걸 공식지정 폭탄 두 개가 한 번에 넘어왔다.
“씹은 게 아니라 일하고 있었다고.”
―노노. 알리야의 촉은 그렇게 말하고 있지 않자너. 비즈니스 미팅이 아니라 분명 뻘짓을 하고 있는 중이야.
뜨끔!
“아, 뭔 소리 하는 거야.”
―좆크지, 좆크. 뭘 그렇게 정색을 하고 그래. 우리 뮨댕댕 안 본 사이에 많이 진지해졌자너.
조크가 아니라 사실이니까···.
큰일이다.
은근히 빙구 스타일인 서원이는 내 선에서 커버가 가능한데 리야는 좀 벅차다.
예전에 나를 감시한다고 스마트폰 해킹까지 의뢰했던 놈이다.
나는 얼른 노선을 틀었다.
“그럼 내가 미팅 끝나면 회사로 갈 테니까 사무실에 가 있어.”
―와이? 사무실이 강남이라면 모를까, 왜 굳이 강남에서 강동으로 넘어오는 수고를?
“아니, 나도 어차피 회사 들어가야돼.”
―그럼 회사에서 기다릴게.
전화를 끊고 나서 알리야에게 따로 메시지가 왔다.
프린세스 알 [뭔가 뒤가 구린 거 같은데 알면서 넘어가주는 것이니까 빨리 와야 할 것이야. 서원 언니는 내가 잘 달래고 있을게]
뮨댕댕은 나가있어.
고맙다······.
그래도 이 정도면 많이 나아진 거다.
보라색 아우라 시절 같았으면 섹스 일보직전에 귀신 같이 훼방을 받았을 것이다.
내가 그것 때문에 잘 만나던 플랜엘 제희와도 헤어졌지.
밤 9시가 조금 넘은 시각.
샤워를 마치고 나온 티나에게 일 때문에 가봐야 한다고 하자 함께 나간다고 한다.
나도 샤워를 한 뒤 아직 취기가 남아 있어서 대리기사를 불렀다.
티나가 먼저 퇴실하고 나는 5분 뒤에 체크아웃을 했다.
차를 타고 강동구 회사로 향하던 중 망란이한테 전화가 왔다.
“어, 란아.”
―대표님 큰일 났어요.
“그러지 마라. 니가 큰일 났다고 하면 나 진짜 심장 떨려.”
―라희 지금 다리 마비 왔는데요, 아파서 울고불고 난리 났어요. 어떡해요?
며칠 밖에 안 지났는데 또?
보통 한 달에 한두 번 꼴로 발병하는데 주기가 짧다.
“뭐? 지금 어딘데.”
―숙소요. 119 부를까요?
“아냐, 아냐. 나 지금 회사로 가는 중이니까 바로 갈게. 라희 바꿔줘.”
―잠깐만요. 라희야, 대표님 전화 받아.
―예, 대표님. 저 라희요오···.
“어. 나 지금 갈 건데, 많이 안 좋아?”
―예. 마비가 아니라 경련부터 일어났는데요, 지금 너무 아파요오오···.
“어, 알았어. 빨리 갈게. 쫌만 기다려.”
아파도 안 아프다고 하는 애가 이 정도면 많이 심각한 거다.
다행히 한참 차가 막히다가 이제 막 속도를 내던 중이었다.
“기사님, 죄송한데 쫌만 밟아주세요. 제가 급한 일이 생겨서요.”
“예, 알겠습니다.”
10분 정도 달려서 회사 앞 빌라에 도착했다.
“어이구야···.”
공포영화에서나 나올 법한 형상이다.
라희의 양쪽 다리는 역방향으로 뒤틀려 있었다.
나도 이렇게 심각한 상황은 처음이라서 차라리 병원에 갔어야 하나 걱정이 들었다.
침대에 누워있었고 란이가 옆에서 지켜보고 있었다.
얼마나 아프면 내가 온 것도 모른 채 베개로 얼굴을 꽉 감싸 안고 신음하고 있다.
씻다가 뛰어나온 건지, 추리닝 차림에 머리에는 수건을 두르고 있는 란이가 상황보고를 한다.
“연습 끝나고 오자마자 바로 이렇게 됐어요. 찜질이라도 해주려고 했는데 건들면 아프대요.”
“내가 해볼 테니까 잠깐 방에 가 있어. 필요한 거 있으면 부를게.”
“예···.”
나와 라희의 초현실적인 관계는 동거인인 란이조차 모른다.
녀석이 문을 닫고 나간 것을 확인하고 바로 작업을 시작했다.
라희는 내 목소리를 듣고 나서야 얼굴에서 베개를 뗐다. 눈물콧물 범벅된 얼굴로 나를 쳐다보며 호소한다.
“대표님 너무 아파요오, 빨리 해주세요.”
“어, 쫌만 참아.”
레깅스를 입고 있어서 어쩔 수 없이 또 하의를 벗겨야 했다.
상황이 상황인지라 양해도 구하지 않고 바로 벗겼··· 에라이 씨발, 이번에도 손이 삑사리가 나서 레깅스와 팬티를 동시에 내려버렸다. 고운 털.
하지만 너무 놀라서 사과조차 할 수 없었다.
보라색 반점이 다리 전체에 퍼져 있었기 때문이다. 고운 털.
그냥 하반신이 전부 보라색이다.
나는 후우, 숨을 몰아쉰 뒤 레깅스를 뒤틀린 다리에서 완전히 벗겨냈다. 양말을 벗겨보니 발끝까지 보라색으로 물들어 있었다.
이걸 어디서부터 주물러야 할지 감도 안 잡힌다.
일단 털끝부터, 아니, 발끝부터 차근차근 풀어나가야겠지.
“움직일 수는 있어?”
“못 움직이겠어요. 근데 단순 마비면 아프지는 않을 텐데 살짝 건들기만 해도 너무 아파요···.”
“그래, 쫌만 참아. 빨리 풀어줄게.”
라희를 안심시키면서 양쪽 엄지발가락을 꾹 눌렀는데···.
“아앜!”
비명을 토해냈다.
내가 만지면 괜찮을 줄 알았는데 내 손길도 통하지 않는 것 같다.
어쩔 수 없이 병원에 가야하나 싶던 그때, 아까 들었던 목소리가 머릿속을 스쳐지나갔다.
<······추천 상대는 ‘예라희’입니다. 사용을 원하시면 인벤토리를 열고 해당 스킬을 터치해주세요.>
에스테틱 갓 핸드···?
밑져야 본전이다.
정보창을 열어 허공에 뜬 스킬명을 터치했다.
그러자 양손에 반투명 분홍빛 아우라가 발현되더니 고무장갑을 낀 것처럼 팔뚝까지 번진다.
욘나 신기하네.
둥지에서 떨어진 새끼 새를 만지듯 조심스럽게 라희의 발을 감싸 쥐어보았다.
그러자······.
“아흐으 대표님···.”
아까와는 다른 애매한 신음이 나왔다.
“아파?”
“아뇨, 너무 좋아요.”
“아, 다행이다.”
더욱 중요한 건 만진 부위의 반점이 바로 사라졌다는 것이다.
다행이다.
고운 털이 있는 하복부를 이불로 가린 뒤 본격적으로 라희의 발을 주물렀다.
재미있다.
누를 때마다 바로 바로 반점이 사라지니까 꼭 터치 게임을 하는 것 같다. 뒤틀렸던 발목도 금세 원상태로 돌아왔다.
하지만 하나 걸리는 것이 있었으니···.
―꾹꾹꾹
“아, 아아···.”
―꾹꾹꾹꾹
“아흐응··· 으응······.”
―꾹꾹꾹꾹꾹
“아. 아. 앟···.”
신음소리가 애매한데···.
뭐 마사지를 받을 때 시원하면 신음을 흘릴 수도 있지만 이게 살짝 애매한 느낌이다.
애매한 건 그뿐만이 아니었다.
표정도 평소 녀석에게서는 볼 수 없었던 애매한 표정이고, 침대보를 붙들고 있는 손모양도 애매하다.
이래저래 애매해서 물어보았다.
“라희야, 시원해?”
“예, 아직 아프긴 한데요, 대표님이 만져주고 계신 데는 기분이 너무 좋아요오···.”
기분이 좋다, 라.
대답도 애매한데.
나는 고운 털을 가리기 위해 덮어두었던 이불을 살짝 들춰보았다.
보라색 반점이 하반신 전체에 빠짐없이 퍼져 있다.
그 말은, 어쩔 수 없이 은밀한 부위도 만져야 한다는 뜻이다.
이것도 애매하다.
여러모로 애매해.
애를 상대로 애매한 생각을 하면 안 되는 거지만 반응이 애매해도 너무 애매하니 나까지 애매해지는 것이다.
―꾹꾹꾹꾹
“아흐, 아흐응···.”
정강이와 종아리 라인의 반점을 모두 없앤 뒤 무릎 위쪽을 주무르려 할 때 문득 지선경의 말이 떠올랐다.
내게 나타난 씹창 능력과 관련된 이야기였는데, 씹창 능력자들은 섹스와 관련된 미션을 성공할 때마다 스킬이나 아이템이 주어진다고 했다.
당연히 최대다수의 최대성교를 원활하게 도와주는 보상이다.
생각해보면 지금 내가 쓰고 있는 이 ‘에스테틱 갓 핸드’도 그거잖아···.
추천 상대도 ‘예라희’라고 콕 집어서 말했고.
“아, 대표님, 아, 아···.”
라희야 이러지 말자.
발그레해진 뺨을 하고 허리를 들썩들썩 거리거나 복부를 툭툭 떨어대면 애매했던 내 생각이 확신으로 바뀌잖니.
나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갓 핸드 스킬을 제거하고 보라색 부위를 눌러보았다.
“아읔!”
아파한다.
마치 치과에서 신경치료를 받듯 얼굴을 팍 찡그리며 비명을 질렀다.
얼른 고무장갑을 두르고 방금 눌렀던 부위를 어루만져 주었다.
“아아, 좋아요오···.”
편―안해졌다.
그래도 한 가지 다행인 점은, 나는 성적으로 전혀 자극받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고추 역시 미동도 없었다.
친구들끼리 어깨를 주물러줄 때와 똑같은 느낌이다.
보라색 아우라를 가진 아이들에게는 성적인 감정이 최소한으로 차단되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대놓고 달려드는 업키걸 애들과도 별 탈 없이 숙소생활을 할 수 있었겠지.
비록 꿈에서는 관계를 맺고 몽정은 할지언정, 현실에서는 그냥 가족처럼 느껴질 뿐이다.
하지만 사무적이고 기계적인 동작의 내 마사지와는 달리, 라희의 상태는 점점 심각한 수준으로 변질되어 갔다.
허벅지를 가린 이불 속으로 손이 들어가자마자 마치 오르가즘을 느낀 것처럼 양쪽 무릎을 팍 세우면서 손목을 꽉 붙잡는 것이 아닌가.
“아흨!”
설마 아픈 건가?
깜짝 놀라서 손을 빼려고 하자 내 손목을 쥔 팔에 힘이 더 들어간다.
“계속··· 계속 해주세요오···.”
그렇단다.
꾹 감긴 눈과 반쯤 벌어진 입술을 보니 이미 어떤 선을 넘어선 것 같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라희가 말이다.
난감하네.
전체적인 통증은 사라진 것 같은데 보라색 반점을 다 없애지 않으면 그 부위의 마비가 풀리지 않는데···.
무릎을 세우는 바람에 이불이 배 위로 벗겨졌다.
보라색 반점이 대퇴부 위쪽과 배꼽 밑까지 퍼져있다. 고운 털, 그리고 새초롬한 아이엠 그루트···.
아마 란이의 방까지 신음이 들렸을 것이다.
이상하게 생각할 수도 있으니 빨리 끝내자.
오금을 잡고 한쪽 다리를 치켜세운 뒤 허벅지 아래쪽을 손바닥으로 사악사악 문질렀다.
“아흐으으···.”
내가 아무리 감정이 없다고는 해도 라희의 음부를 똑바로 쳐다볼 수는 없었기에 시선은 왼편에 있는 방문 쪽으로 돌렸다.
―철컥
곧바로 문이 열린다.
아, 내가 문을 안 잠갔구나.
그 너머로 물 컵을 들고 있는 란이가 서 있었다.
녀석의 시선이 발가벗겨진 라희의 하체로 향했다.
“아··· 물 좀 드시면서 하시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