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4화.업키걸 유은빛(1) (5/371)

업키걸 유은빛(1)

업키걸 1호기 유은빛.

리드보컬, 예능 담당.

1999년생, 올해 21살.

나를 만날 당시인 열아홉 시절에는 호적을 1년 늦게 올렸다면서 스무 살이라고 바득바득 우기다가 정작 성인이 되자 그런 적 없다고 모르쇠로 일관하며 정치인 코스프레 작렬.

―신장 : 160cm. 하지만 본인은 161이라고 우김. 그것도 원래는 162라고 속였다가 들통 나서 1cm 줄인 거.

―몸무게 : 46~48kg

―칭호 : 제2차 걸그룹 배틀로얄 시대(이하 2nd GBG)의 씹덕 1대장. 본인은 줄임말로 ‘씹대장’이라 부름. 어감도 이상한 걸 왜 줄이는지 이유는 모르겠지만 자기는 아무튼 씹대장이 좋다며 팬들에게까지 씹대장으로 불러달라고 강요.

―매력 포인트 : 백치미, 찐따미, 씹덕미

―취미 : 유튜브로 격투기 배우기. 택견, 까포에라, 주짓수, 무에타이 등등을 수박 겉핥기 식으로 섭렵. 실제 도장에 나가서 진지하게 배웠으면 살인병기가 됐을 듯.

업키걸의 공식지정 입덕요정, 입덕셔틀, 별명부자.

인터넷 개드립을 실제로 믿을 정도로 모자라서 유모지리.

꼬부기 상이라 하여 은부기, 빛부기.

일본 개 시바견을 닮았다고 하여 씨바.

누가 봐도 귀여운 타입인데 본인은 섹시하다고 발발발발 우기는 것도 모자라 눈에 불을 켜고 강요를 해서 섹시오패스.

그래 인심 썼다. 너 색기 있다고 치자. 그런 의미에서 별명 끝에 색기를 붙여주마.

그래서 씨바색기.

예능계의 차세대 치트키. 떡락 없는 빛트코인.

특이사항.

업키걸배 슴가 대회에서 3회 연속 꼴슴.

하지만 한 달 전에 열린 최근 대회에서는 처음으로 4위에 오름.

졸지에 꼴슴이 된 서원이가 비결을 묻자 자랑스럽게 이렇게 말했다고 함.

“하핰핰핰핰핰! 배란기라서 조금 뻠핑 됐어요, 뻠핑!”

서원이는 주최 측의 농간이라며 부들부들.

하지만 애초에 주최 측 자체가 없었음.

여담으로, 막내 알리야가 철옹슴이라 불리던 홍이를 제치고 첫 우슴을 거머쥐며 세대교체의 서막을 알렸다고 함.

자칭 젖문가 은빛은 내게 보낸 카톡을 통해 이렇게 평가했다.

씨바색기 [슴터레스팅. 리야의 배란기 버프+성장기 버프가 홍홍 언니의 체중감량 후유증과 맞물리면서 벌어진 1회성 우슴 같아. 진짜 세대교체인지 아닌지는 다음 대회 리벤젖 매치를 지켜봐야겠지. 겉으로는 태연한 척 하는데 홍홍 언니도 내심 슴부심에 상처를 입은 것 같아ㅋㅋ]

나 [ㅋㅋㅋㅋㅋ 니가 4위를 했다는게 대박이네. 축하해 씨바]

씨바색기 [내가 이날을 얼마나 기다렸는지 몰라. 오빠가 서원 언니 표정을 봤어야 돼ㅋㅋ]

내가 생각하는 은빛이의 이미지는 동물로 치면 사람을 잘 따르는 개다.

주인에게 상처를 입고 버림받았을지라도 끝까지 꼬리를 흔들며 따라가는 바보 개.

가수가 되겠다는 일념 하에 제주도에서 혈혈단신 상경한 은빛은 내게 보라색 아우라가 있다는 걸 처음으로 알려준 장본인이자 다른 업키걸 멤버들과 만나게 해준 연결고리였다. 그리고 ‘걸그룹을 키우라’는 정보창의 지시를 따르지 않으면 어떻게 되는지 몸소 보여주기도 했지.

나는 은빛이를 한 차례 외면했었고 그때의 은빛이는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하지만 다행히 정보창 시스템의 도움으로 녀석이 죽기 전으로 회귀할 수 있었다.

그 사건 이후 정신을 바짝 차리고 은빛이를 포함한 다섯 명의 보랏빛 소녀들을 모아서 업키걸을 결성한 것이다.

은빛이는 당연히 모르겠지만 나는 그때의 기억과 죄책감을 마음 한 곳에 담아두고 있다.

씻을 수 없는 원죄라고 해야 하나?

그 때문인지 나도 모르게 다른 멤버들보다는 은빛이가 더 각별하게 느껴진다.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여동생이 있다면 딱 이런 느낌일 것이다.

그리고 애가 붙임성이 워낙 좋아서 남자 형제만 둘이던 우리 부모님께도 늦둥이 딸처럼 사랑을 받고 있다. 숙소가 잡히기 전에 우리 집에서 잠깐 살았었는데, 우리 집안 행사에 업키걸 멤버 중 은빛이만 유일하게 참석을 하는 이유다.

근데 오늘 씽씽걸 탄신일은 팬 미팅 스케줄 때문에 못 온다고 했었는데···.

“곤니찌와 뮤노짱!”

“뭐야, 너 어떻게 왔어?”

“어떻게 오긴. 뱅기 타고 왔지.”

“아니, 너네 오늘 저녁에 팬 미팅 있다며. 6시에.”

“뻥이야.”

“뻥이라고?”

“응. 지금 팬 미팅 끝내고 오는 길.”

씨바는 해맑게 웃으며 제 흥에 겨운 구애의 댄스를 췄다.

오랜만이네 저 섬세한 어깨의 퍼덕임.

“원래는 2시에 있던 건데 오빠랑 씽씽걸 써프라이즈 해주려고 저녁이라고 뻥 친 거야.”

“뭘 그런 걸로 뻥을 치냐. 그냥 오면 되는 걸.”

“일상의 소소한 재미지. 그래서 싫어?”

“누가 싫댔어?”

“그럼 어서 좋다고 말해봐.”

“그래. 오랜만에 보니까 좋다.”

“프히히, 나두.”

업키걸은 두 달 전 국내에서 정규 1집 앨범 활동을 마친 뒤 쉴 틈도 없이 곧장 일본으로 건너가 싱글 2집을 내고 활동 중이다.

보름 전쯤 내가 일본으로 넘어가서 멤버들과 함께 저녁을 먹은 게 마지막 만남이었다.

“뭘 그렇게 많이 사 왔어. 다 엄마 선물이야?”

“응. 가족들 것도 있고.”

“내 껀?”

손을 내밀며 말하자 나를 향해 제법 새침한 표정으로 턱을 치켜세운다.

“오빠는 내가 온 것 자체가 선물이지. 오늘 헤어지면 또 언제 볼지 모르니까 볼 수 있을 때 많이 봐둬.”

“필요 없으니까 실용적인 걸로 줘.”

“오빠, 나 뭐 달라진 거 없어?”

“너네는 볼 때마다 달라지잖아.”

“그래도 확 달라진 거.”

차렷 자세로 나를 쳐다보는 녀석에게서는 핑크빛 아우라가 발현되고 있었다.

보라색 아우라는 업키걸이 공중파 방송에서 처음 1위를 했을 때 모두 사라졌고, 그 이후로 나타난 게 바로 저 분홍색 아우라다. 그리고 연예인으로서의 능력을 알려주던 정보창 대신 아주 음란하기 그지없는···.

“오, 사, 삼, 이···.”

“어. 머리 색깔 흑발로 바뀌었네. 예쁘다.”

“전에 봤을 땐 무슨 색이었게?”

“그땐 약간 갈색 빛 아니었나?”

“오올, 딩동댕! 그동안 훈련시킨 보람이 있구만!”

“옷은 일부러 여자여자하게 입고 온 거야?”

은빛이는 보통 사복으로 스트릿패션을 선호하는데 오늘은 웬일인지 머리도 단아하게 뒤로 묶고 시상식에서나 입을 법한 시스루 블라우스와 스커트, 굽이 높은 힐을 신고 왔다.

의상이나 협찬은 아닌 것 같기에 물었더니 꼬부기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응. 오랜만에 가족 모임이라서 예쁨 좀 부렸지. 이뻐?”

“이쁘네. 평소에도 이렇게 입고 다녀.”

“나도 그러고 싶은데 구두 신으면 발이 너무 아파. 지금도 참고 있는 거야.”

“굽 낮은 걸로 신으면 되지.”

“비율이 똥망이라서 안 돼.”

“에이, 너 정도면 한국인 표준 체형에 들어가지 않나? 나머지 애들이 워낙 사기적이라서 그렇지.”

“내 말이 그 말이야. 다른 사람은 그렇다 쳐도 서원 언니랑은 키 차이도 별로 안 나는데 같이 사진 찍으면 맨날 나만 난쟁이 똥자루 대두처럼 나오잖아.”

“그 대신 너는 섹시하잖아.”

기분 좋으라고 뼈다귀 하나를 툭 던져주자 꼬리를 흔들며 잽싸게 받아 문다.

“그렇지, 그렇지. 누구보다빠르게난남들과는다르게 섹시하지. 에이요!”

“나가자.”

“나 같이 가는 거 가족들한테는 아직 말하지 마.”

“알았어. 안 그래도 엄마가 아침에 전화 와서 너는 왜 같이 안 오냐고 물어봤었는데 엄청 좋아하겠네. 너네 오리콘 차트 1위 한 이후로 씽씽걸 어깨가 아주 하늘을 치솟아요.”

“킥킥킥.”

“그럼 밥 먹고 바로 가야겠네? 장우랑 같이 온 거야?”

“에이, 이제 일본 정도는 나 혼자 왔다 갔다 할 수 있지. 뱅기표는 내일 아침 걸로 끊어놨어.”

“응? 자고 가게?”

“그래야지.”

“어디서?”

“어디긴. 집이지.”

“우리 집?”

“우리 집이지 그럼 옆집에서 잘까? 왜, 오빠는 안 자고 올 거야?”

“어. 나는 그냥 밥만 먹고 오려고 했는데?”

“못 됐다, 못 됐어. 추석 때도 바빠서 못 갔다면서 이럴 때 하루 정도는 자고 와야지!”

“자나 안 자나 똑같지 뭐.”

“어휴, 이래서 아들은 안 된다니까. 씽씽걸이랑 김규돈 옹에게는 역시 나 같은 딸이 필요해.”

“저 먼저 들어갑니다. 수고들 하십쇼.”

“예, 들어가세요, 대표님!”

“은빛이는 오자마자 바로 가네.”

“다음에 또 놀러 올 게요.”

“누가 보면 남의 회사인 줄.”

직원들과 인사를 나누고 지하주차장으로 내려왔다.

―삐빅

“으잉? 오빠 차 바꿨어?”

“그때 바꿨다고 말 안 했나?”

“어, 이건 어디 거야?”

“벤츠.”

“이야, 우리 뮤노 실장님 벤쓰도 타고 성공했네.”

“예, 예. 이게 다 우리 유 사장님이랑 업키걸 덕분이죠. 항상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래, 앞으로 더 열심히 해서 람보 끌어야지, 람보. 리야가 이번에 산 게 람보 맞지?”

“응. 람보르기니. 근데 걔는 면허도 아직 안 딴 애가 무슨 차부터 사냐.”

“면허 안 딸 거라는데?”

“그럼 차는 왜 샀대?”

“모르지. 흙수저인 내가 다이아수저 공주님의 마음을 어떻게 알겠어. 국 끓여 먹으려고 샀나보지. 람보 국.”

“하여튼 이상해.”

뒷좌석에 쇼핑백을 싣고 운전석에 올랐다.

조수석에 먼저 타 있던 씨바는 사모님 상황극으로 넘어갔다. 간드러지는 콧소리로 내게 명령한다.

“김 기사, 나 안전벨트부터 매 줘.”

“예, 예.”

“요즘 별 일 없지?”

“예, 없습니다.”

“안 본 사이에 더 멋있어졌네?”

“감사합니···.”

―쪽

“아잇씨!”

“왜. 뭐. 어쩌라고.”

허어, 얘 봐라.

벨트를 내리는 틈을 타서 내 볼에 뽀뽀를 하고는 뻔뻔하게 턱을 치켜세운다.

“우리 김 기사 열심히 하는 게 이뻐서 주는 상이니까 넣어둬.”

“넣어두긴 뭘 넣어둬.”

“나는 말이야, 우리 김 기사가 이렇게 부끄러워하는 얼굴이 너무 귀여운 거 있지? 귀.여.워.”

“에이··· 립스틱 묻었잖아···.”

글로브박스에서 물티슈를 꺼내 볼을 닦은 뒤 차를 출발시켰다.

은빛이는 뭐 대단한 여행이라도 가는 것처럼 흥분했다.

“이렇게 단둘이 드라이브 하는 거 진짜 오랜만이다, 그치?”

“나는 언제가 마지막이었는지 기억도 안 난다.”

“우리 한창 그림자의 빛 촬영할 땐데, 나 라디오 게스트 일주일 동안 했던 거 오빠가 태워줬었어.”

“아아아, 맞다. 그때 로드매니저 하나 들어왔다가 리야한테 쫓겨났었지.”

“응응. 그 오빠는 친해지고 싶어서 어깨 주물러주려고 했던 건데 리야가 왜 함부로 몸에 손대냐면서 뺨때기 때렸어.”

“어후. 그거 고소한다고 했던 거 염이랑 나랑 말리느라 고생했던 거 생각하면···.”

“아, 진짜? 고소한다고 했었어?”

“그래. 100만원인가 주고 합의했어.”

“대박.”

“리야한테는 말하지 마.”

“당연하지. 말했다가는 지금이라도 복수한다고 찾아낼 걸.”

“일본에서는 안 그러지?”

“응. 요즘에 많이 착해졌어.”

“그래, 내일모레면 어른 되는데 이제 그만 해야지.”

“와, 우리 꼬꼬마리야가 어느새 스무 살이 되다니. 시간 진짜 빠르다.”

“나는 니가 스물한 살이라는 게 더 놀랍다.”

“끼에엑! 징그러!”

“아니지, 원래 나이대로 하면 스물 두 살이구나. 맞지? 스물두 살.”

“아뇨. 그런 적 없습니다.”

“큭큭큭.”

“외국에 나가면 애국자 된다는 말이 맞나봐. 이러니저러니 해도 역시 우리나라가 좋구나.”

“그럼, 좋지.”

―지이잉

“안녕하세요! 업키걸에서 넘버원 섹시를 맡고 있는 은빛이에요! 저 한국 왔어요!”

“와, 대박!”

“꺄아악!”

한껏 들떠서 창문을 열고 지나가는 사람들한테 인사도 하고 그러더니.

―푸흐으···.

출발한지 5분 만에 곯아떨어진 씨바였다.

하긴. ‘바이올렛’과 ‘커피 마실래’로 연타석 홈런을 터뜨렸던 미니앨범 1집 활동이 끝난 뒤의 짧은 휴가가 업키걸의 마지막 휴식기였다.

이후 1년 반 동안 한국과 일본을 오가며 팀, 유닛, 솔로 활동으로 쉬지 않고 달려왔으니 머리만 닿으면 잠이 들 만큼 피로가 누적됐을 것이다.

근데 오늘 날씨가 많이 춥네.

은빛이도 손이 시려운지 허벅지 사이에 끼고 자고 있다.

나도 핸들을 잡은 손끝이 차다.

보통 업키걸 아이들이 탑승한 차는 여름에 덥고 겨울에 추운 편이다.

에어컨과 히터가 성대를 건조하게 만들기 때문에 냉난방을 최소로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겨울에는 무릎 담요가 필수고, 내 차에도 항상 구비가 돼 있다.

나는 신호가 걸린 틈을 타서 은빛이의 허벅지를 담요로 덮어 주려고 했는데.

“에헤이.”

이놈이 양쪽 무릎을 세워서 문 쪽으로 기대는 바람에 담요가 조수석 밑으로 흘러내렸다.

교차로라서 신호가 길어서 다행이다.

나는 담요를 줍기 위해 그쪽으로 허리를 숙였다.

담요를 들어 올리면서 무심코 은빛이 쪽으로 고개를 돌렸는데, 어쭈 이 놈 봐라.

어른 됐다고 안 칠하던 페디큐어도 칠했네.

구두는 벗고 있었고 살색 스타킹 신은 발은 시트 위에 반쯤 걸쳐 있었다.

그리고 치마가 흘러내려서 엉덩이 옆면이 훤히 드러났다.

팬티는 검정색.

예전 같았으면 ‘고작 씨바꼬부기 주제에···’라고 생각하면서 거들떠보지도 않았겠지만···.

꿀꺽···.

이상하게 입이 바짝 마르고 시선이 계속 그쪽으로 끌렸다.

망할.

업키걸 아이들의 몸에서 보라색 아우라가 사라진 뒤, 핑크색 아우라와 음란한 상태창이 생긴 이후 나타난 증상이다.

녀석들이 여자로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아무리 그래도 은빛이한테까지 이럴 줄은 몰랐는데.

우리 씨바색기가 이렇게 섹시했었나······?

다른 건 몰라도 피부가 하얗긴 정말 하얗다.

아마 현존하는 걸그룹 중에서는 은빛이의 피부가 가장 하얄 것이다.

웬만큼 뽀얗다는 걸그룹 애들도 우리 씨바 옆에 서면 상대적으로 어두워 보인다.

꿀꺾···.

마른침은 왜 이렇게 자꾸 나오는 건지···.

내가 미쳤나보다.

살스에 감싸인 은빛이의 뽀얀 다리가 너무나도 섹시하게 느껴지는 것이다.

함께 홀딱 벗고 반신욕을 한다 해도!

시각적 자극에 의해 어쩔 수 없이 발기는 될지언정!

털끝 하나 건들지 않을 자신이 있던 씨바색기인데!

꿀꺼어어억······.

결국 집에 도착하는 내내 씨바의 다리와 엉덩이를 흘끔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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