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습생 예라희(3)
서울에 집이 있는 다른 연습생들과는 달리, 본가가 지방에 있는 라희와 란은 회사 앞 투 룸에서 함께 살고 있다.
하지만 굳이 말을 안 해도 알 수 있듯이 둘의 라이프스타일과 성격은 완전 정 반대이다.
방도 따로 쓰고 서로의 사생활에는 터치를 안 한다고 한다.
그래도 1년 넘게 한 집에서 살았기 때문에 나보다는 라희가 란이에 대해서 더 잘 알 것이다.
나는 기계적인 동작으로 사타구니 지압을 이어나가며 라희에게 물었다.
“란이 걔 어제 연습 끝나고 숙소로 바로 안 갔지?”
“예에···.”
“클럽 갔어?”
“그건 저도 잘 모르겠는데 연습 끝나기 전부터 계속 누구랑 카톡을 하긴 했어요.”
“외박했지?”
“예···.”
“아침에 학교 갈 때까지 안 들어왔고?”
“예······.”
“하아, 진짜 그거 안 되겠네. 니가 볼 때는 란이 걔 어떠냐.”
“예?”
“실력도 없고, 의지도 없고. 과거는 노답이고, 이런 식으로 가면 미래는 더 노답이고. 니가 봐도 걔 가능성 없지?”
“아니에요. 그래도 란이 언니 나름 열심히 해요.”
“나름 열심히는 누구나 해. 근데 데뷔조에 들려면 나름 열심히 해서 안 된다는 거 니가 제일 잘 알잖아.”
라희는 대답하기 곤란한지 침묵으로 넘겼다.
“란이 걔 확 짤라 버릴까?”
물론 마음에도 없는 얘기다.
아니, 자르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지만 실현할 수가 없다.
하지만 우리 착한 라희는 내 말을 진심으로 듣고, 어떻게든 란이의 장점을 찾아내서 실드를 쳐준다.
“란이 언니 그래도 처음보다 되게 많이 좋아졌어요. 이제는 음정이랑 박자는 맞추잖아요. 안무도 기본은 하고···.”
응. 음정박자는 나도 맞춰. 그 기본적인 것도 못 맞추던 애가 데뷔를 했었다는 게 웃긴 거지. 라고 대답하고 싶었지만, 어떻게든 언니를 감싸주려는 그 마음이 예뻐서 그만 두었다.
그래도 마음 깊은 곳으로부터 끓어오르는 진심 어린 개탄만큼은 참을 수가 없었다.
정보창에서는 이제 스탠바이 사인이 떨어졌는데 대체 걔를 데리고 무슨 걸그룹을 만드냐고.
나는 한숨과 함께 터져 나오는 답답한 심정을 라희에게 털어놓았다.
“하아, 라희야. 이제 슬슬 데뷔조 뽑아야 되거든 근데 망란이 걔를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아, 진짜요?”
“이번 월말평가 끝나면 공식적으로 얘기하긴 할 건데, 우선은 너만 알고 있어.”
“예. 아무한테도 말 안 할게요.”
보라색 아우라끼리 5인조 팀을 짜야하는 라희, 란이는 별개로 치고.
현재 우리 회사에 소속된 10여 명의 연습생 중에서도 눈에 띄는 아이들이 몇 명 있다.
나는 그 아이들에게도 방향성을 제시해줘야 한다.
보라색 아우라 한 팀, 일반 걸그룹 한 팀을 따로 제작할 생각이다.
―짤박짤박짤박짤박
“일단 5인조로 한 팀을 구상 중인데 너는 무조건 들어갈 거야.”
“감사합니다아.”
“근데 란이 걔가 문제다. 다른 애들에 비해 실력이 뛰어난 게 아니라서 걔가 데뷔조로 뽑히면 분명 형평성 얘기가 나올 텐데 걱정이다, 걱정.”
―짤박짤박짤박짤박
“으흐잏···.”
“왜?”
뜬금없이 묘한 콧소리를 내길래 묻자, 다리에 느낌이 돌아오는 것 같단다.
대화를 하면서도 묵묵하게 돌아가는 물레방아처럼 꾸준히 마사지를 해준 덕에 반점이 많이 흐려진 모양이다.
육안으로 확인하는 게 가장 확실한 방법이긴 하지만 부위가 부위니만큼 전적으로 라희의 감각에 기댈 수밖에 없다.
“다리 움직여져?”
“예. 쪼금요···.”
라희는 핸드폰 불빛을 무릎 쪽으로 비춰 조금씩 꿈틀거리는 다리의 움직임을 보여줬다.
“응. 슬슬 풀리고 있네. 내가 눈으로 확인을 못 하니까 니가 계속 얘기해줘.”
“예헤에···.”
근데 얘 목소리 왜 이래.
땀도 엄청 많이 흘렸다.
지압 중인 허벅지 사이가 가장 심하다.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습하고 열이 올라 있었고, 뭐가 불편한지 계속 끙끙 거리며 상체를 꿈틀 거리기도 했다.
“으흫···.”
“왜, 자세 불편해서 그래?”
“아뇨, 그게 아니라··· 으으잌··· 자, 잠깐만요, 대표니임!”
라희는 바지 속에 들어가 있던 내 손목을 붙잡고 강제로 뽑아냈다.
나도 놀랐다.
혹시 통증이 왔나 싶어서 불을 켜려는데 아니 글쎄.
“저 화장실이요오···.”
라희가 스스로 일어나서 연습실 밖으로 뛰어나가는 것이 아닌가.
울버린 급 회복력 무엇.
얼마나 급했으면 맨발로 나가 버리냐.
나는 녀석의 양말과 신발을 정리해주던 중에 바닥에 떨어져 있는 웬 물 자국을 발견했다.
라희가 앉아 있던 자리였는데 손바닥 넓이 쯤 되는 투명한 액체였다.
땀을 이렇게 많이 흘렸을 리는 없고···.
뭔가 싶어서 검지 끝으로 슥 만져보니 아직 따뜻하다.
급하게 화장실로 뛰어간 걸로 미뤄 아무래도 소변인 것 같다.
아마 마비가 진행될 때 배뇨기관이 제어되지 않아 조금씩 새어나온 것 같다. 그러다가 마비가 풀리면서 축축한 느낌이 확 들었던 거겠지.
모른 척 해야겠다. 라고 생각했었는데···.
―브으으, 브으으으
“어, 라희야.”
―대표님 저 라흰데요.
“어, 너 라희인 거 알아.”
―죄송한데 저 숙소에서 갈아입을 바지랑 속옷 좀 가져다주시면 안 돼요? 오줌이 샜어요.
“아, 그래···?”
―속옷은 제 방 서랍장 제일 밑에 칸에 있고요, 바지는 그냥 추리닝 중에 아무거나 가져다주시면 될 것 같아요.
“알았어. 내가 숙소 가서 다시 전화할게.”
―예, 죄송합니다. 아, 그리고 가시기 전에 제 신발도 좀···.
“오케이.”
의외네.
평소 부끄럼 많은 성격으로 미뤄 이런 말은 절대 못할 줄 알았는데.
그만큼 나에 대한 신뢰가 커졌다는 뜻이겠지.
같은 보라색 아우라를 가진 누구는 나를 아주 개똥으로 보는데 말이다.
***
나 [전화해라]
어쭈?
카톡을 확인한지 10분이 넘었는데도 전화도 없고 답장도 안 한다.
나 [읽씹을 해? 1분 내로 연락 안 하면 연습생 제명인 줄 알아]
망란이 [왜요]
나 [어디야]
망란이 [ㅁㅌ이요]
ㅁㅌ가 뭐야.
요즘 애들 초성 쓰는 거 진짜···.
나 [초성 쓰지 말고]
망란이 [모텔ㅋ]
“후우······.”
침착하자.
흥분하면 지는 거다.
누구랑 있냐고도 물어보지 말자.
궁금하지도 않다.
나 [너 이번 월말평가에서 등급 떨어지면 답 없는 거 알지? 애들 앞에서 쪽팔리기 싫으면 지금이라도 빡세게 해라. 그래도 한 때 업키걸보다 잘 나가던 애가 이게 뭐냐]
망란이 [대표님 어차피 저 가수 복귀시켜줄 마음 없잖아요]
나 [그럼 니가 보기에 내가 지금 자선 사업하는 걸로 보이냐? 복귀 시켜줄 마음도 없는데 뭐하러 데리고 있겠냐고. 자기 위안 하지 마. 너는 그냥 니가 열심히 안 하는 걸 내 탓으로 미루고 있을 뿐이야]
망란이 [저 자기 위안 같은 거 안 해요. 꼴리면 그냥 섹스를 하면 되지 자위를 왜 함ㅋ]
괜찮아, 괜찮아.
이 정도 저항은 업키걸 때 많이 겪었잖아.
이건 0.7서원력 밖에 안 돼.
나 [장난하지 말고. 너는 요나 생각해서라도 이러면 안 되는 거 아니냐]
망란이 [저도 처음에는 열심히 했잖아요. 대표님도 그건 인정하시죠?]
나 [인정하지. 근데 뭐가 문제였는데]
망란이 [데뷔까지 했던 사람을 일반 연습생들이랑 같이 밀어 넣으니까 저도 자존심이 상하잖아요]
나 [연습생이라도 시켜달라면서 달라붙은 게 누군데. 기초부터 차근차근 배우고 싶다며]
망란이 [연습생도 급이 있는데 저를 너무 막 대하셨어요]
나 [그래서 니가 원하는 게 뭔데. 개인 연습실이라도 차려줄까?]
망란이 [적어도 불금불토는 제 맘대로 놀게 해주세요. 저도 제 재량이라는 게 있는데 너무 연습만 시키면 쌓이고 쌓이다가 폭발해버린단 말이에요. 저 같은 스타일은 정기적으로 분출을 해줘야 더 잘해요]
이 개샊···.
앞선 대화는 다 필요 없는 거고 결국 놀고 싶다는 거잖아······.
이번 건 0.9서원력 정도 됐다.
하지만 리야력으로 환산하면 고작 0.5정도밖에 안 된다.
자존심 상하게 초짜의 두서 없는 도발에 말려들어서는 안 돼.
나 [란아. 우리 망란아. 이번 월말평가 때 뭔가를 못 보여주면 나도 다른 사람들한테 할 말이 없단다. 곧 데뷔조 뽑을 예정이니까 쫌만 참고 열심히 하자. 일단 데뷔조에는 들어야 그 다음에 회사에서 너를 실드를 쳐주든 할 거 아니야]
망란이 [알았어요. 일단 오늘까지만 놀고 내일부터 열심히 할 게요. 약속!]
나 [그래. 술 너무 많이 마시지 말고···]
망란이 [제가 대표님 완전 사랑하는 거 알죠? 저는 진짜 대표님이 벗으라면 벗을 수도 있다니까요]
나 [안 벗어도 되니까 연습 좀 하라고ㅠㅠ]
망란이 [ㅋㅋ]
나 [내일 회사에서는 제발 웃는 얼굴로 보자]
망란이 [네♡]
하아···.
전생의 나란 새끼는 대체 무슨 죄를 지은 걸까.
망란이는 짤로써 대화를 마무리 지었다.
쭉 내민 입술과 모텔 가운 사이로 가슴골이 드러난 자신의 셀카였다.
나 [필요 없어]
망란이 [속으로는 좋으면서]
나 [넌 대체 대표를 뭘로 보는 거냐]
망란이 [나를 다시 가수 시켜줄 사람?]
나 [그래. 서로의 위치에서 열심히 하자]
이번에는 뽀뽀를 하는 입술 사진으로 답장을 대신했다.
만약 가수의 능력치에 색기도 포함이 된다면 란이는 무사통과겠지.
그러나 정작 섹시 컨셉으로 활동했던 아이컨택 당시에는 섹시는커녕 거부감만 들었었다. 막내라는 것을 빼면 대체 이런 애가 어떻게 데뷔했나 싶을 정도로 특색도 없고 존재감도 미미한 멤버였다. 스타로서의 아우라도 없었고.
그래서 란이가 보라색 아우라로 변했을 때 많이 당황스러웠다.
녀석의 매력이 드러난 건 마약 크리를 맞고 아이컨택이 공중분해 된 뒤, 우리 회사에 연습생으로 들어오면서부터다.
정확히는 보라색 아우라로 변한 이후부터였다. 그때부터 고유의 여성미가 묻어나오기 시작하더니 이제는 딱 봐도 온몸에서 색기가 흘러넘치는 요녀가 되어버린 것이다.
본인이 굳이 의식하지 않아도 기본적인 표정과 행동에서 교태가 배어있었다.
노골적인 음담패설도 아마 그때부터 시작됐을 것이다.
그리고 본인 입으로 자랑했던 것처럼 실제로도 침대 위에서의 스킬이 좋은 모양이었다.
어느 모임에서 우연히 들은 건데, 란이의 과거 스폰서들이 지금도 녀석을 잊지 못해서 브로커를 통해 어떻게든 연결을 시켜달라고 부탁을 하고 있다고 한다.
왜 여자들 중에 그런 스타일 있지 않은가.
분명 미인상은 아닌데 묘하게 섹시한 여자들.
그게 바로 란이었다.
그리고 내가 색기와 함께 인정하는 녀석의 강점 중 하나가 바로 멘탈이다.
멘탈만으로 따지면 이세돌 급이 아닐까 싶다.
마약 사건으로 재판을 받는 중에도 법원 앞에서 찍은 셀카라든지 호텔 수영장에서 찍은 비키니 사진 등, SNS 업데이트를 쉬지 않았던 놈이다.
당시 공중파 뉴스에도 보도가 될 만큼 떠들썩한 사건이었으니 얼마나 많은 악플이 쏟아졌겠는가.
그런 악플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셀카를 올리는 모습을 보며 이거 보통 새끼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미성년자 때 이미 스폰을 했던 것을 통해 알 수 있듯이 성공을 위해서라면 무슨 짓이든 할 놈이다.
그 무슨 짓에 노력과 연습이 포함되지 않는다는 게 슬플 뿐이지···.
―똑똑
“예. 들어오세요.”
“퇴근 안 하십니까.”
사무실 문을 빼꼼 열고 들어온 건 염 대표였다.
“어, 이제 해야지. 업키걸 애들 ‘논스톱 뮤직대상’ 어떻게 하기로 했어? 나갈 거야?”
“뭐 대상 후보라는데 참석은 해야죠. 찍혀봤자 저희만 손해잖아요.”
“하아, 근데 논스톱 새끼들 하는 꼬라지가 딱 눈에 보이지 않냐? 대상 후보라고 불러놓고서는 인기상 뭐 그딴 거 하나 주고 퉁 치겠지. 앨범상은 육탄, 음원은 소민정. 그나마 우리가 노려볼만한 게 올해의 히트송인데 그건 당연히 자기네 계열사 소속인 VNF 줄 테고.”
“흐흐흐. 논뮤대 다 봤네요.”
“에휴, 이만큼 올라왔는데도 아직도 을이냐.”
“다 그런 거 아니겠습니까. 근데 그거 때문인지는 모르겠는데, 지선경 대표가 자리 한번 만들 테니까 보자고 하네요.”
“지선경이 우리를 보자고 했다고?”
“예. 저번에 음악인의 밤 행사에서 잠깐 만나서 인사했거든요. 형한테 관심이 많던데요.”
“그래···?”
지선경.
지난해부터 3대 음원 유통사로 급부상한 ‘논스톱 뮤직’의 대표다.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음원 사이트는 그냥 취미로 하는 거고, 정재계 로비스트로 유명하다고 한다.
물론 이 바닥에서 들리는 소문 중 둘 중 하나는 거짓이거나 과장된 면이 커서 어느 정도는 필터링을 거쳐야겠지만 지금 가요계에서 큰 영향력을 자랑한다는 것만큼은 부정할 수가 없다.
“그쪽에서 전화 준다고 했어요.”
“그러거나 말거나. 에휴, 난 들어가 봐야겠다.”
“오늘 씽씽걸 생신이시라면서요.”
“어.”
“이거.”
“아 뭐야 또. 됐어, 됐어.”
“그럼 버리시든가요. 어머님한테 YH엔터 직원 일동이 허리 숙여 축하드린다고 전해주세요.”
“에헤이···.”
염 대표는 내 책상 위에 봉투를 올려놓고 나가버렸다.
우리 어머니―씽씽걸 생일 축하 금일봉이었다.
저녁에 가족 모임이 잡혀 있다.
작년 생신 땐 업키걸 일본 투어와 날짜가 겹쳐서 참석을 못 했었다.
그것 때문에 오늘 아침까지 욕을 먹었지. 오늘도 안 오면 호적에서 파낼 줄 알아라, 하면서 말이다.
은빛이도 같이 가면 좋을 텐데 업키걸은 이번에도 연말 투어가 잡혀서 일본에 가 있다.
―철컥
퇴근 준비를 하고 있는데 누가 노크도 없이 문을 벌컥 열고 들어왔다.
양손 가득 쇼핑백을 든 채 만세를 하고 있는 녀석은 일본에 있어야 할 업키걸 1호기 은빛이었다.
“써프라이즈!”
“깜짝이야. 니가 여기서 왜 나와?”
“씽씽걸 생일 파뤼 가야지! 레고레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