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화.연습생 예라희(2) (3/371)

연습생 예라희(2)

팬티를 벗긴다······?

라희는 내가 안마사처럼 손의 감각을 이용해서 마비의 원인이 되는 근육을 찾아내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렇다면 라희 입장에서는 굳이 팬티까지 벗길 필요는 없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냥 손만 넣어서 만져보면 되니까.

나에 대한 믿음이 아무리 절대적이라고 해도 최후의 보루인 팬티를 건드리면 불쾌하게 생각할 가능성이 크다. 굳이 여자라서가 아니라 같은 남자끼리도 민감한 문제 아닌가.

나는 절대 그런 마음이 없지만, 만약 라희가 나를 불편하게 생각하면 그 순간부터는 나도 성적인 부분을 의식할 수밖에 없을 텐데······.

그래도 어쩌랴.

마비를 풀기 위해서는 그 방법 밖에 없는 것을.

“라희야, 혹시 속바지 입었어?”

“아뇨. 긴 바지 입을 땐 속바지 안 입는데··· 왜요? 아, 바지 벗어야 돼요?”

“어. 허벅지 위쪽에 복부나 엉덩이를 풀어줘야 할 것 같아. 그리고 만약 거기에서도 못 찾으면, 어······.”

“···패, 팬티도 벗어야 돼요?”

“아마도 그··· 럴 수도 있을 것 같은데···?”

라희의 얼굴이 1초 만에 화끈하게 달아올랐다.

당연하다.

내가 지금 당장 사고가 나 의사 앞에서 바지를 깐다고 해도 속옷 상태라든지 위생 문제로 신경이 쓰일 텐데 라희는 오죽하랴.

하지만 녀석도 이것 밖에 방법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 잠시 고민하다가 결국 수긍하며 고개를 작게 끄덕인다.

“어쩔 수 없죠···.”

“미안해. 일단은 바지만 벗자.”

“예. 제, 제가 벗을게요. 잠깐만 딴 데 봐주세요오···.”

“어, 어, 그래.”

시선을 돌렸는데도 라희의 행동이 훤히 그려진다.

하반신 마비가 시작되면 바지 하나 벗는 것도 버겁다. 바지춤에 손을 넣고 낑낑거려보지만 하체에 힘이 들어가지 않아서 자의로 엉덩이를 들 수가 없을 것이다.

“아이코오···.”

결국 라희는 답답하고 자조 섞인 한숨을 토해내며 내게 도움을 요청했다. 녀석은 수줍거나 부끄러울 때면 늘 말꼬리가 길게 늘어지는 버릇이 있다.

“아, 힘들다. 죄송한데 대표님이 벗겨주셔야 될 것 같아요. 제가 팔걸이 잡고 일어설 테니까 벗겨주세요오···.”

“오케이.”

“하나, 두울, 세엣···.”

“읏차.”

라희가 의자 팔걸이에 지탱해서 엉덩이를 떼는 순간, 나는 라희의 바지춤을 잡고 잽싸게 무릎까지 내렸······ 아뿔싸, 옘병!

이거 사뭇 큰일인걸.

나는 정확하게 바지만 잡고 기술적으로 벗기려고 했는데 팬티까지 딸려 나와서 허벅지에 보란 듯이 걸쳐진 것이다.

고기도 먹어본 놈이 먹는다고, 평소 여자 바지를 벗겨봤어야 알지.

밴드에 푸마 로고가 박힌 에어리즘 재질의 베이지 컬러였다.

라희도 팬티가 딸려 내려온 것을 한 발 늦게 확인하고는 당황해서 ‘흐잌’하며 짧은 숨을 집어삼켰다.

“엄마야···.”

“어이고, 미안하다 야. 바지만 벗기려고 했는데.”

하지만 결과적으로 봤을 땐 결국 팬티도 벗었어야 될 운명이었다.

스치듯이 확인한 결과, 보라색 반점이 허벅지 안쪽 깊숙이, 정확하게는 음부와 허벅지가 구분되는 사타구니 국경지대에 넓게 분포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내 시야에서는 오른쪽이었고 크기는 종이컵 밑동 둘레만 했다.

그것이 음부와 허벅지를 가르는 라인에 정확하게 반씩 나눠서 걸쳐져 있는 것이다.

“근데 어차피 팬티는 벗어야 됐겠네.”

“아, 그래요···?”

“어. 왼쪽 허벅지 안쪽 부분을 마사지해야 될 것 같은데··· 어쩌냐.”

“아······ 어쩔 수 없죠 뭐··· 그럼 저는 그냥 눈 감고 있을 게요. 어차피 감각 없으니까 편하게 해주세요.”

불쾌해하거나 내 저의를 의심하기는커녕 오히려 내가 민망해 할까봐 배려해주고 있다. 이러니 내가 라희를 안 예뻐할 수 있겠냐고.

“미안해. 근데 어딘지는 확인했으니까 바지랑 팬티는 입어도 될 것 같아. 내가 입힐 테니까 아까처럼 잠깐만 일어서줄래?”

“예.”

“하나, 두울, 셋.”

“으힣.”

“오케이, 됐다.”

라희나 나나 애써 시선을 피했지만 각도 상 서로의 상체가 어스름하게 맞닿을 수밖에 없었다.

나는 당연히 아무 느낌이 없는데 ―보라색 아우라를 가진 녀석들에게는 웬만해서 이성으로서의 감정이 들지 않는다― 라희 녀석이 많이 부끄러워하고 있다는 게 고스란히 전해졌다.

그나저나 어휴, 힘들다.

좁은 공간에서 낑낑거렸더니 한 겨울인데도 땀이 나네.

나는 잠시 일어서서 허리를 폈다.

라희도 더웠는지 반질반질해진 이마를 손으로 훔치며 얕은 한숨을 흘렸다.

“아휴우······.”

“힘들지?”

“아니에요. 저보다는 대표님이 더 힘드시죠.”

나는 라희가 불편해하지 않도록 슬쩍 농담을 흘리며 분위기를 밝게 이끌었다.

“그래. 이런 거 잊으면 안 된다. 나중에 음방 1위하면 꼭 내 이름부터 말해줘야 돼.”

“예, 예. 무조건 1번으로 말할 게요.”

흐뭇한 마음에 무심코 고개를 돌렸는데 출입문에 나 있는 작은 창문이 눈에 거슬린다.

그러고 보니 이곳은 복도 한복판.

A연습실에 있는 연습생들이 외출을 하거나 화장실에 가려면 무조건 이곳을 지나쳐야 하는데, 라희와 내가 여기서 이러고 있는 걸 보면 의심을 안 할래야 안 할 수가 없겠지.

그동안은 마비 전조 증상이 보이면 회사와 1분 거리에 있는 숙소로 옮겨서 조치를 취했기 때문에 누구의 눈에도 띄지 않을 수가 있었는데 말이다.

“애들 연습 중에 혹시 이쪽으로 나와?”

“어··· 예. 화장실 가는 사람 있죠. 전화 오면 보컬 연습실 안에서 받기도 하고요.”

“그럼 여기 있으면 안 되겠구나···.”

나는 짧은 고민 끝에 평소처럼 숙소로 이동하는 쪽을 택했다.

“라희야, 그냥 업혀. 조금 늦어지더라도 숙소로 가서 편하게 푸는 게 낫겠다.”

그러자 녀석은 묘수가 있다는 듯 양손을 휘휘 내저었다.

“아니에요. 그냥 제가 바닥으로 내려가면 돼요. 앉아서 불 끄면 밖에서는 안 보여요.”

“그래?”

“예.”

라희는 직접 시범을 보이려는 듯 의자에서 그대로 미끄러지며 바닥에 내려앉았다.

어잇.

당연히 그럴 의도는 없었겠지만 공간이 너무 좁은 탓에 라희의 얼굴이 내 하복부 바로 정면에 위치하며 애매한 각도가 나와 버렸다.

로블로를 당하기라도 한 것처럼 나도 모르게 움찔 엉덩이를 뒤로 뺐다.

“아, 죄송해요. 제가 너무 확 내려와서···.”

“아니야, 아니야. 불 끄면 되지?”

“예.”

민망한 마음에 얼른 전등을 끄고 라희 옆에 쪼그려 앉았다.

“음, 밖에서 안 보일 것 같긴 하다.”

“절대 안 보여요.”

“많이 해봤구나?”

“예··· 이렇게 숨어서 실장님들 몰래 과자 같은 거 먹거든요.”

“아무리 단속을 한다고 해도 꼼수는 어디든 존재하는구나.”

“아. 제가 말했다고 하면 안 돼요. 모른 척 해주세요오···.”

“알았어. 모른 척 할게.”

실외로 나 있는 창문이 없어서 대낮인데도 컴컴하다.

출입문의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희미한 자연광으로 서로의 실루엣을 간신히 확인할 수가 있었다.

그래봤자 거의 붙어 있기 때문에 확인할 것도 없었지만.

“내가 편한 쪽으로 자세 잡는다?”

“예.”

라희가 하체를 못 쓰기 때문에 내가 인형을 만지듯이 하나하나 자세를 잡아줘야 했다.

일단 벽에 등을 기대게 하는 좋을 것 같아서 라희의 겨드랑이 사이에 양팔을 끼웠는데···.

“아끄아잌!”

라희는 내가 어떻게 잡아줄 틈도 없이 갸르륵 갸르륵 몸을 뒤틀며 옆으로 쓰러졌다.

바닥에 머리를 콩 부딪쳤는데도 웃음이 터져서 아픈 줄도 모르는 것 같다.

“우리 라희 간지럼 많이 타는 구나.”

“예헤헤에, 저 겨드랑이 간지럼 엄청 타요오. 하체에서 느껴져야 될 게 다 위로 올라왔나 봐요.”

“그럴 리가 있나.”

“진짜예요호옼. 저 발바닥은 간지럼 안 타잖아요.”

“하긴. 그럼 니가 손으로 바닥 짚어서 움직일 수 있어? 벽에 등을 기대는 게 편할 것 같은데.”

“예, 제가 할게요. 응차···.”

라희는 팔 힘만으로 일어서고 몸을 뒤틀어서 벽에 등을 기댔다.

“자리가 너무 좁다, 그치?”

“예, 하이고. 됐어요.”

“보자··· 왼쪽 허벅지였으니까 다리를 어깨 너비로 펴서 조금 벌리고··· 이렇게. 아, 근데 내가 자세가 안 나오는구나. 니가 차라리 나한테 기대볼래? 팔베개 하는 것처럼 이쪽으로, 이렇게···.”

“예, 예. 이렇게요.”

“옳지, 자세 나왔다. 이제 바지에 손 넣을게. 미안.”

“예. 대표님 편한 대로 하세요오···.”

“미안한데 다리 쫌 만 더 벌려볼래?”

말을 해놓고는 아차, 라희는 스스로 못 움직이지. 바로 말을 정정했다.

“내가 할게.”

“예에···.”

공원 벤치에서 데이트를 즐기는 연인들처럼, 왼쪽 품으로 라희의 어깨를 감싸 안은 뒤 바지 속으로 손을 넣었다.

추리닝 허리 고무줄과 팬티의 탄력 에너지를 극복하고 최소한의 거리와 면적으로 목표지점까지 한 번에 쭈욱··· 아, 털.

손날 부근에 털로 의심되는 보드라운 보푸라기 더미가 닿았다.

그래, 아마도 털일 것이다.

암, 그렇고 말고.

이 자리에 털이 아닌 다른 무언가가 자리 잡고 있다면 더 이상한 거지.

라희도 털이 있구나.

나이가 몇인데 당연히 있겠지.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보드랍고 폭신한 털이었다.

아니, 아니.

잡생각 그만하고 집중! 집중!

털에 빼앗겼던 신경을 다시 손끝에 집중해본다.

보자, 아마 이 부근이었지······.

서늘하게 땀이 배어나와 있는 사타구니 사이를 중지와 약지로 누르고 포지션을 잡았다.

그런데 최대한 안 닿으려고 노력 해봐도, 바깥쪽 손바닥의 반 정도가 털에 닿을 수밖에 없었다.

새끼손가락 인근으로는 도톰한 음부의 굴곡마저 느껴진다.

어쩔 수 없다.

불가항력이고 현상일 뿐이다.

중요한 건 내 의도겠지.

내가 라희에게 불순한 마음을 전혀 갖지 않고 있으니 죄책감 느낄 필요 없다.

그 흔한 발기조차 되지 않고 있으니 심신 모두 하늘을 우러러 한 점의 부끄럼도 없는 것이다.

라희는 골반 밑으로 감각이 없어서 내 손길을 전혀 느끼지 못한다.

하지만 서로의 호흡까지 들릴 정도로 밀착돼 있기 때문에 라희 입장에서는 자세만으로도 많이 부담스러울 것이다.

어찌나 긴장을 했는지 상체는 거북목 자세로 딱딱하게 굳었고 두 손은 어디다 둬야 할지 몰라 가슴 앞에서 주먹을 말아 쥔 채 달달달 떨고 있다.

감싼 어깨와 등으로부터 전해지는 심장박동도 꽤나 요란스럽다.

아마 내 심장박동도 라희에게 고스란히 전해지겠지.

나는 아까 발등을 지압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사타구니 사이를 시계방향으로 꾹꾹 누르며 마사지를 시작했다.

“라희야.”

“예에···?”

“숨은 쉬어도 돼. 너 지금 숨 너무 오래 참고 있는 거 같은데.”

“아··· 예. 후우우웋···.”

라희의 한숨 속에 달달한 복숭아 향이 훅 섞여 나온다.

“껌 먹었어?”

“아뇨, 껌은 아니고 아까 마이쭈···.”

“입에서 복숭아 향 나길래.”

“아···.”

“힘들지? 1분 정도만 참아.”

“예에···.”

그리고 잠시 대화가 끊겼다.

안무실에서 틀어놓은 음악의 베이스가 쿵쿵 울린다. 덕분에 서로의 심장 소리가 묻혔다.

아무 말도 없으니 나도 좀 민망하네.

라희가 내게 먼저 말을 거는 경우는 거의 없기 때문에 내 쪽에서 끊임없이 대화거리를 만들어야 했다.

“아, 맞다. 란이 어디 갔어?”

“라, 란이 언니요?”

“오늘 연습실 안 나왔대?”

“아··· 저도 학교 끝나고 바로 회사로 온 거라서 잘···.”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