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습생 예라희(1)
“와아, 김윤호 대표님 실물이 더 잘생기셨어요.”
“아이고 민망하네요.”
“아니요, 진짜예요. 깜짝 놀랐어요.”
“하하··· 감사합니다.”
다음 달이면 꽃다운 나이 방년 38세.
한 달 모자란 38년을 살아오는 동안 못 생겼다는 말 보다는 잘 생겼다는 말을 많이 들었지만 외모 칭찬을 받을 때면 여전히 표정이 어색해진다.
“죄송한데 사진 한 장만 부탁드려도 될까요?”
“예, 그럼요.”
하지만 사람들과 사진 찍어 주는 건 많이 익숙해졌다.
예전에는 어색하기만 했던 표정도 어느 정도 각이 나온다.
연예인과 매니저의 케미를 보여주는 예능 프로그램 ‘그림자의 빛’을 촬영하면서 단련된 결과였다.
나와 업키걸은 6개월 전에 하차했고 이제는 업키걸의 ‘뮤노 실장님’보다 YH엔터테인먼트 김윤호 대표라는 직함이 더 익숙하다. 하지만 나를 만나는 사람들은 여전히 그 얘기부터 꺼낸다.
업키걸의 첫 남미 투어를 위해 만난 에이전시 관계자들도 마찬가지였다.
“제 여자 친구가 ‘그림자의 빛’ 광팬인데 제가 오늘 김윤호 대표님 미팅 있다고 하니까 사진 꼭 찍어오라고 하네요. 업키걸보다 대표님을 더 연예인처럼 생각한다니까요.”
인기가 대단하긴 했었지.
예능의 위력이라는 건 일반인도 하루아침에 스타로 만들어줄 정도로 대단했다.
‘자고 일어나니 스타가 되었다’라는 말은 90년대에나 통하는 말인 줄 알았는데 정말 첫 회 방송이 나가자마자 그 다음날부터 세상이 바뀐 것이다.
방송이 나간 날만큼은 실검에 업키걸보다 내 이름이 더 많이 거론 될 정도였고, 거리에 나가면 초등학생부터 어르신들까지 나를 알아보고는 휴대폰 렌즈를 들이밀었다.
뮤노 실장님 외에도 ‘츤장님(츤데레 실장님)’이라는 별명을 얻으며 연예인 못지않은 관심을 받았다.
CF는 줄이고 줄여서 총 6개를 찍었는데 만약 들어오는 대로 다 찍었다면 스무 개 이상은 됐을 것이다.
유명세 때문에 사생활이 많이 침해 받긴 했지만 그래도 잃는 것보다 얻는 것이 많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었다.
당시 업키걸은 미니앨범 1집 ‘바이올렛’과 ‘커피 마실래’의 연타석 히트로 한창 주가를 올리고 있던 중이었다. 거기에 예능 대박까지 겹쳐버리니, 그때의 회사 규모로는 감당할 수 없는 업무량에 매일 행복한 비명을 질러댔었다.
그때 로켓처럼 탄력 받은 인기는 1년 반이 지난 지금까지도 계속 상승세를 유지하고 있으며 이제는 걸그룹 중에서는 라이벌이 없을 정도의 명실상부한 대한민국 탑 걸그룹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그림자의 빛’을 주제로 가볍게 시작된 남미 투어 미팅이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한창 회의가 진행되던 중에 테이블 위에 올려놓은 내 휴대폰 진동이 울린다.
―브으으, 브으으으
업무용과 개인용 중, 개인용 폰이었다.
발신자는 ‘연습생 라희’.
다른 전화였다면 회의 중 메시지를 보내고 미뤘겠지만 라희 전화는 바로 받아야 한다.
“죄송합니다. 급한 전화라서···.”
“예, 예.”
“저 신경 쓰지 마시고 염 대표랑 계속 얘기 나누시면 됩니다. 어차피 저는 바지 사장이고 염 대표님이 실세거든요, 하하하.”
“그럼 잠깐 끊었다 가죠. 혹시 담배 태우시는 분 계십니까.”
나와 함께 공동대표를 맡고 있는 염대수가 흡연 포즈를 취하며 묻자 에이전시 사람 두 명 모두 선뜻 일어섰다.
염이 그들을 흡연지역으로 안내해서 나간 뒤 전화를 받았다.
“어, 라희야.”
―대표님 안녕하세요, 저 라흰데요.
내가 분명 라희야, 라고 먼저 아는 척을 했음에도 항상 자기 이름을 밝힌다.
우리가 알게 된 지 1년 반이 지났지만 아직도 예의가 바른 아이다.
나쁘게 말하면 융통성이 없는 거고.
―혹시 오늘 출근 하셨나요?
“어, 나 지금 6층에서 미팅 중. 왜?”
―다른 게 아니라 저 안무 연습하는데 다리가 조금 안 좋아지는 것 같아서요.
“아이고, 요즘 조금 잠잠하다 싶더니.”
―그러니까요···.
“A연습실이야?”
―예.
“미팅 끝나려면 30분 정도 걸릴 것 같은데··· 마비 시작됐어?”
―아, 아뇨. 아직은 괜찮아요. 30분 정도는 괜찮을 것 같아요.
“그럼 미팅 끝나고 갈 테니까 숙소에 먼저 가 있어. 혹시라도 안 좋아지면 바로 전화하고.”
―예, 알겠습니다. 회의 잘 하세요.
“그래~”
라희는 분명 괜찮다고 했는데 예감이 영 안 좋다. 그리고 ‘보라색 아우라’를 가진 녀석들에 대한 불길한 예감은 거의 100% 확률로 정확하다.
나는 염 대표에게 전화를 걸어서 양해를 구한 뒤 9층 연습실로 향했다.
라희가 있다던 A연습실 문을 열자 화장품 향과 땀 냄새가 섞인 안무실 특유의 후끈한 열기가 훅 밀려왔다.
안무 연습에 열중하던 일고여덟 명의 여자 연습생들이 모든 동작을 멈추고 내게 인사를 건넨다.
“어, 대표님이다!”
“안녕하세요오!”
업키걸 아이들 때도 마찬가지였지만, 나는 성격상 권위적인 걸 싫어해서 연습생들과도 허물없이 지내는 편이다.
허물이 없어도 너무 없어서 담당 실장이나 직원들보다 나를 더 편하게 생각하는 것 같다.
“야, 너네 연습 중에는 회사 대표가 아니라 하나님이 와도 끊지 말라고 배웠어, 안 배웠어?”
“저희한테는 하나님보다 뮨댕댕 대표님이 더 높은데요?”
녀석들은 늘 그랬듯 말대꾸에 이어 칭얼칭얼 볼멘소리를 시작했다.
“대표님, 배고파요!”
“저희 아침에 방울토마토 몇 개 먹고 지금까지 연습하고 있는 거예요. 맛있는 거 사주세요!”
“응. 물 마셔, 물. 원래 땀 흘린 뒤에는 물이 제일 맛있는 거야.”
“물 배 채우는 것도 이제 지겨워요오오! 두툼하게 씹히는 거 먹고 싶어요!”
“닭 가슴살 먹어. 냉장고에 꽉꽉 채워 놓잖아.”
“아아앙! 입에서 닭똥 냄새 날 것 같단 말이에요.”
“그러면서 치킨은 잘도 먹겠지?”
“어어, 팩폭 자제 좀 요!”
아이들과 가볍게 대화를 하면서 면면을 쭉 살피는데 라희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라희 어딨어?”
“아까 화장실 간다고 했던 거 같은데···.”
“언제?”
“한 5분 쯤 됐나.”
“그래, 연습들 해라.”
라희를 찾기 위해 나가려고 하는데 아이들이 좀처럼 놔주질 않는다.
“아아, 대표님 저희 진짜 배고파요오오!”
“너네 나한테 음식 맡겨 놨냐?”
“어? 맡겨놓으면 주실 거예요?”
“와, 그럼 내일부터 치킨 사와서 대표님한테 맡겨놓으면 되겠다.”
하여튼 요즘 애들 말대꾸 스킬 하나는 기발하다니까.
“알았다, 알았어. 뭐 먹고 싶은데.”
“아싸! 피자요!”
“치킨!”
“부르스타에 갓 끓인 냄비 라면이요!”
“오케이. 먹고 싶은 사람들은 연습 끝나고 대표실로 와. 배 터지게 먹게 해줄게.”
“와, 진짜요?”
“응. 그 대신 연습생 포기 각서도 같이 써서 오는 거 잊지 말고.”
“에휴, 그럼 그렇지···.”
“아아앙, 나빴어요!”
“너네는 식단 조절 하나 못하는 애들이 무슨 데뷔를 한다고 그러냐. 그럴 거면 그냥 포기해. 포기하면 편하잖아. 집에 가서 먹고 싶은 거 마음껏 먹어.”
“대표님은 모르셔서 그래요. 저희 나이 때에는 노래랑 춤 연습보다 다이어트가 더 힘들단 말이에요.”
“모르긴 뭘 몰라. 업키걸 홍이 지옥의 다이어트를 실시간으로 지켜본 사람이 난데. 너네는 홍이만큼 하지 않는 이상 내 앞에서 다이어트의 디귿자도 꺼내면 안 된다니까.”
비단 우리 회사뿐만이 아니라 대한민국 모든 연습생들 사이에서 전설로 전해지는 우리홍 다이어트 썰이 나오자 일동 시무룩해졌다.
그 중에서 서아라는 녀석이 조심스럽게 묻는다.
“근데 대표님. 홍이 선배님 데뷔 전에 진짜 90킬로그램이었어요? 그 정도까지는 아니었죠?”
“응. 90키로는 아니었는데.”
“그쵸? 거봐! 얘가 자꾸 90키로였다고 우기잖아요. 상식적으로 생각해서 사람이 어떻게 두 달 만에 30키로를 빼냐고요. 3키로 빼기도 힘들어 죽겠···.”
“90키로 아니고 93키로였어.”
“헐, 대박···.”
“두 달 만에 정확히 31.3키로 뺐다. 이런데도 피자랑 치킨 얘기가 나와?”
“아니요···.”
“물 마실게요···.”
“그래. 열심히들 해. 노력은 배신을 하지 않아요. 게으름이 뒤통수 칠뿐이지. 스타라는 게 하루아침에 만들어지는 게 아니라니까.”
적당한 훈장질로 마무리를 하고 돌아서려는데, 아니 잠깐.
망란이는 또 어디 갔어.
“란이 오늘 안 나왔어?”
라희 때와는 달리 단번에 대답이 나오지 않는다.
다들 서로에게 미루듯 눈치만 보고 있을 뿐이다.
그럼 안 나온 거지 뭐.
망란이 놈은 일단 버린다.
라희부터 찾는 게 우선이다.
A연습실에서 나온 나는 보컬 연습실이 양옆으로 위치한 복도를 지나 화장실로 향하며 라희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런데 내가 지나쳐 온 복도 쪽에서 라희의 핸드폰 벨소리가 희미하게 울리는 것이 아닌가. 적어도 우리 회사 내에서 요나의 솔로곡 ‘오픈’을 벨소리로 한 사람은 라희 밖에 없다.
하지만 보컬 연습실에는 아무도 없었는데···.
사람 두 명이 들어가면 꽉 들어차는 보컬 연습실에는 문마다 작은 창이 달려 있어서 누군가 있었다면 스치는 곁눈만으로도 상반신을 확인할 수 있었다.
혹시 바닥에 쓰러졌나?
나는 발길을 돌려 벨소리의 출처라고 생각되는 4번방 앞에 섰다.
역시 창문으로는 확인이 안 돼서 곧장 문을 열었는데.
“에이, 내가 너 이럴 줄 알았다.”
내 예상대로 라희는 바닥에 새우처럼 웅크리고 있었다.
하반신 마비가 이미 진행이 된 것이다.
바닥 쪽 바지주머니에 깔린 핸드폰을 꺼내기 위해 버둥거리다가 내가 들어온 것을 보고는 멋쩍게 인사를 한다.
“안녕하세요오오···.”
“넌 진짜··· 이 정도면 아까 전화했을 때 이미 심각했겠네. 맞지?”
“···대표님 바쁘신데 방해하는 것 같아서요···.”
이게 내가 라희의 전화만큼은 지체 없이 받아야 하는 이유였다.
평소에는 멀쩡하지만 교통사고 후유증으로 인해 하반신 마비가 불시에 발병되고, 마비 초기에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경직과 경련 ―하반신 자체에는 감각이 없지만― 허리와 목 통증으로 이어진다.
이렇게 심각한 상황임에도 내가 곧장 병원에 데려가지 않는 이유가 있다.
이건 병원에 가도 별 치료 방법이 없고 오직 나만이 해결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라희의 몸을 통째로 들어 올려서 의자에 앉혀주었다.
지난 1년 반 동안 수십 차례 반복했던 행동이다. 효과는 100% 확실하기 때문에 라희도 내 터치를 거부감 없이 받아들이고 온전히 몸을 맡길 수 있었다.
“무릎 못 펴겠어?”
의자에 앉은 자세로 무릎이 뻣뻣하게 굽혀져 있기에 물었더니 고개를 끄덕인다.
이미 경직까지 진행 중인 것이다.
라희 앞에 양반다리로 앉은 나는 지체할 것 없이 바로 신발과 양말부터 벗겼다.
찾았다.
다행히 양쪽 발등에 손톱 크기만 한 보라색 빛이 찍혀 있었다.
하지만 라희를 포함한 그 어떤 누구도 이 반점을 볼 수 없다.
‘스타의 아우라’와 마찬가지로 오직 내 눈에만 보이고 오직 라희의 몸에서만 나타나는 특별한 표식이다.
적게는 1개부터 많게는 10개 이내까지 랜덤으로 나타나는데, 하반신 곳곳에 생기는 이 보라색 반점을 모두 찾아내서 없어질 때까지 문질러주면 마비가 풀린다.
10원짜리 동전 크기만 한 것부터 손바닥만 한 것까지 다양하고 발병 지점은 대개 발끝에서 허벅지 사이 어딘가이다.
여름철에는 주로 짧은 반바지를 입어서 바로 식별이 가능한 경우가 많았지만 지금처럼 긴 바지를 입을 때는 어쩔 수 없이 하의를 벗어야 할 때도 있었다.
하지만 처음에만 민망해 했을 뿐, 내 행동에 그 어떤 흑심도 없다는 것을 알게 된 이후로는 바지를 벗어도 크게 창피해하지 않았다.
마치 환부를 확인하고 치료하는 의사와 환자처럼 말이다.
라희의 작은 발바닥을 손바닥 위에 올려놓고 엄지를 이용해 반점을 마사지했다.
둥글게 둥글게 꾹꾹, 둥글게 둥글게 꾹꾹, 문지르기를 10여초.
안쪽으로 굽어졌던 발가락들이 꿈틀꿈틀 거리며 경직이 서서히 풀리기 시작한다.
발등을 조금 아플 정도로 꾹 누르며 물었다.
“느낌 있어?”
“음······ 쪼금요.”
“무릎은 아직 안 움직이지?”
“네.”
발등에 나타났던 반점 두 개가 사라진 뒤에도 무릎은 펴지지 않았다.
그럼 다른 곳에 반점이 더 있다는 건데···.
굳이 말을 안 해도 되지만, 발가락을 꼼지락거리며 본인의 상태를 점검하는 라희에게 예의상 통보했다.
“미안한데 다리 좀 걷을게.”
“예.”
통이 넉넉한 트레이닝팬츠를 입어서 다행이다.
하지만 종아리와 무릎 위를 거쳐서 핫팬츠 라인까지 걷어 올리고 허벅지 뒤쪽까지 꼼꼼히 살폈음에도 불구하고 제2의 반점은 보이지 않았다.
그럼 엉덩이나 하복부 어딘가에 있다는 건가?
만약 그곳에 반점이 나타났다면 바지가 문제가 아니라 팬티까지 벗겨야 되는 수가 있다.
지금까지 이런 경우는 없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