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손안의 재벌-191화 (완결) (191/191)

191화 쓸어 담자

조동욱에 대해 조회장이 한 말의 의미를 며칠 뒤에 알게 되었다.

조사를 받고 구치소로 돌아오자, 휴식 시간이었는지 제소자들이 하나둘 TV 앞으로 모여들었다.

하지만 뭔가 대단한 소식이라도 나온 것처럼 숨소리를 죽여가며 집중하고 있었다.

'천하제일그룹 조인철 전회장의 장남 조동욱 씨가 오늘 새벽 경기도 양주시 한 야산에서 한 등산객에 의해 숨진 채 발견되었습니다. 양주경찰서 관계자 말에 따르면 현장에서는 타살 흔적이 발견되지 않았으며 현재까지 유서 등도 발견되지 않았다고 합니다. 또한 동선을 추적한 결과 스스로 극단적인 선택을 했을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고 있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쯧쯧, 돈 많아도 다 필요 없다니깐."

"그러게. 대기업 장남이 도대체 뭐가 아쉬워서 죽지?"

"집에서 쫓겨났다잖아. 다 가진 사람이 하루아침에 다 잃어봐. 저렇게 안 되겠어?"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이 남의 인생에 대해 한마디씩 논평하고 있었다.

조동욱이 스스로 극단적 선택을?

아니면 설마 조회장이 자기 아들을?

정답은 다음 날 바로 알 수 있었다.

날 심문하던 담당 검사가 휴대폰이 울리자 옆 방으로 자리를 비켰다.

"네. 회장님."

"지난번에 조동욱이 넘긴 파일은 다 폐기처리 했습니다. 녹음파일과 사진 파일 전부 다요. 네 물론 열어보진 않았습니다."

"……."

"아닙니다. 별말씀을요. 당연히 제가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인데요."

"……."

"네. 감사합니다. 회장님."

역시 후자가 답이었다.

지난번 조동욱이 입수했던 증거 파일.

조회장이 안치홍을 교통사고로 위장하여 죽음에 이르게 하고 증인까지 자살하도록 한 그 증거들을 검찰에 제공한 것이었다.

하지만 조동욱이 모르는 게 하나 있었다.

조회장은 검찰 내부에서 증거 하나쯤은 가뿐하게 짬 시킬 수 있는 힘이 있다는 것을.

구속된 지 한참 만에 첫 정식면회.

강화유리를 사이에 두고 맞은편엔 성환이가 앉아 있었다.

걱정 때문인지 두려움 때문인지 잔뜩 어둠이 내려앉은 얼굴이었다.

성환이 역시 악행들이 모두 조회장이 벌인 짓이란 사실을.

조회장이 악의 근원이었다는걸 드디어 알아챈 모양이다.

나와 얼굴을 마주치자 애써 밝은 척 웃어 보였다.

"괜찮으십니까? 안 나오고 여기서 뭐 해요?"

전표에 찍힌 도장이 내가 평상시 찍는 도장이 아니란 걸 밝히기만 하면 되는데, 그걸 안 하고 있으니 이해가 안 간다는 말이다.

녹음되고 있는 걸 아니 단어 하나하나 조심히 선택했다.

"난 여기가 편해. 어차피 며칠이면 구속기간도 끝이고."

"그래도 그렇지."

"조동욱 장례는 잘 치렀어?"

"네. 조용히요."

"회장님은?"

조회장 얘기에 성환인 눈을 마주치지 못하고 고개를 떨구었다.

"성환아."

고개를 숙인 채 답했다.

"네."

"너도 이제 알겠어? 이 모든 것의 근원에 누가 있었는지?"

얼굴을 들고는 나지막이 말했다.

"네……."

"그래."

"그럼 도대체 내가 어떻게 하길 바라요?"

자기 아버지의 추악한 면을 드러내게 하냐.

아니면 부자지간에 차마 그럴 순 없으니 방관자로만 있냐고 물어본 거다.

해줄 말이 없었다.

"네가 선택해."

"네?"

"네가 현명하게 선택할 거라고 믿어. 그게 어느 쪽이든 난 원망 안 할 거야."

"……."

"김철수부장님한테 가서 말 좀 전해줘."

"네? 어떤 말이요?"

"그냥 시간이 됐다고만 전해 줘. 물론 전해 줄지 말지는 바로 네가 선택할 문제야. 난 네가 어떤 선택을 하더라도 존중할 거야."

"정말 절 믿을 수 있어요?"

말없이 고개만 끄덕여줬다.

다음 날 뉴스를 통해 성환이가 어떤 선택을 했는지 확인할 수 있었다.

'당사에는 어제저녁 익명의 제보 한 통을 받았습니다. 천하제일그룹 조인철 전회장의 육성이 담긴 녹음파일과 각종 사진 파일들입니다. 과격한 내용이 많지만, 시청자들의 알권리를 위해 방송을 결정했으며 노약자분들은 시청을 삼가주시길 바랍니다.'

앵커 멘트 이후에 녹음파일이 흘러나왔다.

물론 지상파 방송 수위를 위해 묵음 처리된 부분이 상당히 있었지만, 상당 부분 적나라하게 그대로 전파를 탔다.

안치홍을 살인 교사한 것과 증인을 죽음에 이르게 하도록 지시한 정황 등이 담겨있었다.

조동욱이 입수해서 조윤경 컴퓨터에 심어놓은 그 파일이다.

내가 몰래 복사해서 갖고 있었던.

조동욱이 실수한 건 바로 이거다.

검찰이 아닌 언론에 터트려야 한다는 것.

언론에 터진 이상 축소시킬 수는 있을지언정 숨기거나 묻고 할 여지는 없기 때문이다.

* * *

구치소를 나오기 전.

막 구치소로 들어오는 조회장과 마주할 수 있었다.

아직 자신의 처지를 파악하지 못한 듯 교도관들에게 삿대질하기 바빴다.

날 가리키면서.

"저놈 데려와."

교도관의 흔들리는 눈동자.

이 말을 들어야 할지

안 들어주면 이자가 뒤로 무슨 해코지라도 하는 게 아닌지 잠시 걱정한 거다.

하지만 결정을 한 듯 고개를 가로저었다.

"자, 그냥 들어가시죠. 누구랑도 마주치면 안 됩니다."

하지만 조회장이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반항하자 교도관 두 명이 팔을 붙들고 억지로 끌고 갔다.

이런 짐짝 취급은 태어나서 처음 겪어보는 것일 거다.

내가 빠른 걸음으로 조회장 앞으로 다가서자 잠시 멈춰 세웠다.

조회장이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날 노려봤다.

"네가 감히!! 노비 주제에……!"

조회장의 본성이다.

누군가와 완전 판박이다.

조윤경이 조회장 유전자를 100% 몰빵해서 받았나보다.

"고생하십시오. 회장님. 이제 살아선 다신 못 뵙겠네요. 아무래도 120살 넘어서까지 생존하시긴 힘드실 테니깐요."

"뭐라고? 네놈이 감히……."

뒷목을 잡다가 쓰러질 듯 휘청거리자 교도관들이 부축했다.

"도대체 나한테 왜 그런 거야?"

"몰라서 물으십니까?"

"뭐라고?"

"동작대교에서 날 뛰어내리게 한……. 바로 그 죄!"

무슨 영문인지 도통 모르겠다는 듯한 표정이다.

회귀 전의 일이니 당연했다.

"아닙니다. 건강에나 유의하십시오. 돌아가시면 장례식장에서 찾아뵙겠습니다. 그래도 성환이랑 관계도 있는데 가보긴 해야죠."

"뭐라고 이게……."

분통을 참지 못한 듯 말을 더듬었다.

회귀 전의 복수를 마무리했다.

모든 게 끝났다는 안도감과 함께 더 이상 할 게 없다는 허탈함도 같이 밀려왔다.

* * *

구치소를 나오는 길.

정문 앞엔 원모와 김철수부장이 두부 한 모를 들고 마중 나와 있었다.

주위를 둘러봤지만 어디서도 성환이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눈치 빠른 김철수부장이 말했다.

"조성환님께선 요즘……."

"네. 무슨 말인지 알아요."

나오기 힘들었을 것이다.

아무리 악행을 저질렀다고 해도 자기 아버지의 죄를 까발린 장본인을 마주보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

또한 자기가 막을 수 있었음에도 막지 못한 것에 대한 괴로움도 한몫했을 테고.

어찌 보면 성환이의 손에 칼자루를 쥐여준 내가 너무한 건지도 모르겠다.

한편, 관재파트장 이병헌이사는 자기 목에 칼이 들어오자 바로 실토했다.

거짓 용역계약 및 원재료 매입 조작으로 비자금을 마련한 것.

그 자금을 조세피난처를 통해 세탁하고 착복한 것.

그리고 그런 전표에 내 도장을 찍어 조작하고 나에게 뒤집어씌우려던 것 등.

모두를 검찰에서 불었다.

모든 게 다 조회장이 지시에 따른 것이라고.

세상에 영원한 충성은 없는 법이다.

* * *

몇 년 뒤.

천하제일의 임시주총장.

"대표님 오셨어요?"

재무팀장 원모가 반갑게 맞이했다.

"많이 컸다 너. CFO석에도 앉고."

"전 원래 컸는데요"

"뭐라고 이놈이? 암튼 어디 앉아? 우리가 지분을 얼마나 갖고 있는데 대접이 이게 뭐야?"

"저기 좀 보세요."

원모가 가리키는 곳에는 뿔테안경을 쓰고 법전을 쥔 노신사가 찌그러진 철제의자에 쪼그리고 앉아 있었다.

3대 주주 정영태교수다.

아니 이제는 4대 주주다.

"알았어. 나도 찌그러져 있을게."

"네. 그리고 저녁때 그 중국집 예약했으니깐 같이 가시죠."

"그래."

조회장의 갑작스런 옥사로 천하제일의 모든 지분을 상속받은 성환이 최대 주주이자 회장 자리에 올랐다.

하지만 50% 세율인 상속세를 납부하느라 상속받은 주식의 반 정도를 팔 수밖에 없어 지분율이 꽤 낮아졌다.

최대주주의 약해진 지분율은 바로 헷지펀드들의 먹잇감.

여러 펀드들이 힘을 합쳐 지분을 무섭게 모아가며 20%를 넘겼고, 조성환을 해임하라는 제안까지 내면서 임시주총이 열린 것이다.

대표이사 의장이 단상에 올랐다.

"자 그럼 제1호 의안 등기이사 조성환 해임의 건에 대한 표결이 있겠습니다."

투표가 끝나고 결과가 발표되자 장내가 어수선해졌다.

해 볼 만하단 게임이 상대가 안 되었기 때문이다.

찬성은 20%였지만 반대가 50%를 훌쩍 넘겼다.

바로 우리 천하태평 계열의 여러 펀드들이 가지고 있는 천하제일 주식이 20%에 육박했기 때문이다.

중국집 안으로 들어서자 천하태평 주주들이 모두 모여있었다.

성환이 툴툴대듯 반겼다.

"일찍 일찍 좀 다닙시다."

"또 짜장이냐? 넌 회장이 되고도 아직 짜장면만 먹냐?"

"그럼 회장은 짬뽕 먹어야 하나?"

"됐다. 말을 말자."

"왜 늦었어요?"

"기자회견 좀 하느라고. 오늘 데뷔했잖아. 우리 천하태평이."

"누가 보면 천하태평이 다 대표님 건 줄 알겠네. 엄밀히 말하면 나도 35%인데."

"알았어, 누가 뭐래?"

"네. 드시죠."

내가 회귀 전에 봤던 최고가에 이르자 더 지켜볼 것도 없이 암호화폐를 모두 팔아치워 버렸다.

그러자 말도 안 되는 금액이 계좌에 찍혔는데.

웬만한 상장회사 주식은 백화점 쇼핑하듯 주워 담을 수 있을 정도의 자금이 확보됐다.

그중에 쪼금 티도 별로 안 날 만큼으로 천하제일의 주식을 사서 주총에 참석한 것이었다.

* * *

일 년 뒤.

"원모야"

"네 대표님."

"오늘 점심은 뭐 먹을까? 좋은 데로 예약 좀 해 봐."

원모는 후배에게 길을 터주겠다는 명분으로 천하제일에 사직서를 던지고 천하태평으로 돌아왔다.

예전과 사뭇 달라진 듯 대들듯이 달려들었다.

"대표님. 너무하신 거 아닙니까? 전직 천하제일 재무팀장이 아직까지 점심 메뉴 고민하고 예약해야 되겠습니까?"

"그럼 계속 재무팀장 하지 여긴 왜 돌아왔냐?"

"말씀드렸잖습니까? 고인물 안 되겠다고요."

"야! 네가 몇 살인데 고인물이야? 너 솔직히 말해 봐. 잘린 거지? 쪽팔려서 얘기 안 한 거지?"

"헐, 대표님도? 감히 날 누가 자른다고?"

"난 자를 수 있지 않을까요?"

성환이의 일갈!

사무실로 들어오면서 들었는지 한마디 거들었다.

조회장에게 복수한 이후로는 작은 소리까지 감지하던 내 능력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애초에 복수만을 위해 생겼던 능력이었는지.

원모는 성환이를 보자마자 고개를 숙였다.

"어이쿠. 회장님 오셨습니까?"

"원모야! 이제 너네 회사 회장도 아니지 않냐?"

"맞다. 깜빡했네요."

원모가 고개를 바싹 쳐들고는 성환을 향해 손바닥을 펴서 내밀었다.

성환 역시 기분 좋은 표정으로 손바닥을 내밀어 맞부딪쳤다.

우리 천하태평이 지향하는 길.

모두가 평등한 이상이 실현되는 순간이었다.

물론 모두 다 내 밑으로…….

천상천하 태평독존!

오랜만의 주간업무회의.

김철수부장과 건환이를 포함한 모든 천하태평 주주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원모야! 지금 테솔라 얼마냐?"

"200불이요. 더 떨어지는 거 기다릴까요?"

이 정도면 발바닥은 아니더라도 최소한 무릎 정도는 될 듯.

"지금 얼마있지?"

"글쎄요, 아마……. 암튼 많아요. 이제 좀 그만 물어보시면 안 됩니까?"

매 순간 불어나는 자산규모에 원모가 업데이트를 포기한 지 좀 됐다.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판단이 안 됐다.

"원모야. 몽땅 다 사."

"네? 그럼 알롱모스크보다 지분이 많아지는데요?"

"그런가? 그럼 쪼금만 사자."

"넵."

"그리고 애폴은 지금 얼마야?"

"네. 300불입니다."

"정말? 왜 이렇게 싸?"

"싸다뇨 대표님? 그까짓 핸드폰 하나 만드는 회산데요."

곧 애풀이 전세계 시총 1위가 된다는 걸 아는 사람은 나밖에 없다.

웃음이 절로 나왔다.

"원모야. 그까짓 회사 그냥 풀 베팅하자."

"네? 최대 주주요?"

"아니 그 정돈 아니고. 2대 주주 정도만. 딴 것도 사야지."

"넵. 대표님! 그거 말고 또 뭐 사죠?"

아직도 여유자금이 많이 남았다니.

우리 천하제일이 어느새 자산규모 세계 1위의 투자회사에 등극했다는 게 실감 나는 순간이었다.

"고민하지 말고 그냥 1위에서 10위까지 쓸어 담아!"

[완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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