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손안의 재벌-183화 (183/191)

183화 정리

조회장이 돌이라도 씹은 것인 양, 미간을 잔뜩 찡그렸다.

목소리의 주인공이 누구인지 간파했기 때문이다.

조윤경이 또 발악했다.

"아니 그게 아니라니깐!"

드디어 내가 나설 차례.

"조윤경! 이제 그만 다 포기하시지. 이미 증거자료는 모두 검찰에 넘겼어. 곧바로 수사가 시작될 거야! 빠져나가기 힘들 거니깐 죗값을 달게 받길 바라."

조윤경은 표독스럽게 노려봤다.

"아니. 이게 어디서 감히 주인을 물어! 개X끼 주제에!"

"믿는 사람 발등 찍는 것도 모자라 인간의 탈을 쓰고 어떻게 그렇게까지 할 수가 있지. 넌 개만도 못해!"

조회장이 옆에서 노려봤다.

'아무리 그래도 내 딸인데 이 자식이 감히.'

뭐 이런 의미일 것이다.

하지만 난 이대로 멈출 수 없었다.

회귀 전 동작대교에서 뛰어내릴 때의 그 절망감을 이자에게 그대로 갚아줘야 하니.

"조윤경! 포기해. 지금이라도 자수하는 게 좋을 거야. 그래봐야 너무 악질이라 형을 감해주진 않겠지만 말야."

"뭐라고? 네놈이 감히……."

울분에 찬 조윤경이 좀처럼 흥분을 가라앉히질 못했다.

사실 어제 이미 살인 교사 혐의로 조윤경을 검찰에 고발하며 증거까지 모두 넘겼다.

너무나 확실한 증거이니 뭉개진 못할 것이다.

뭉갰다간 언론에 먼저 공표해버릴 수 있으니.

이제 곧 조윤경을 체포하러 올 것이다.

제발 내 눈앞에서 수갑 차고 끌려가는 장면을 볼 수 있기만을 빌 뿐이다.

조윤경이 계속 고개를 빳빳이 들고 욕을 내뱉는 걸로 봐서는 사태의 심각성을 아직 잘 모르는 듯했다.

'삐뽀삐뽀' 사이렌이라도 울려야 정신 차릴 듯.

갑자기 조윤경은 조동욱을 향해 삿대질을 해댔다.

"아빠! 저 자식 절대 믿지 마. 저 자식이야말로 살인자라고. 아빠 사위한테 무슨 짓을 했는지나 알아? 난 그저 저놈한테 복수한 것뿐이라고!"

조윤경이 잘못 짚었다.

안치홍을 죽게 한 범인은 조동욱이 아니라 바로 조회장인데.

조윤경이 단순 사고가 아니란 걸 알고 있다는 사실에 옆자리 조회장이 매우 놀란 듯 몸을 살짝 흠칫했다.

"윤경아 그게 무슨 말이야? 사고가 아니라니?"

"조금만 있으면 저놈이 사고사로 위장한 증거, 그리고 증거 인멸하기 위해 한 짓들까지 전부 다 넘겨받기로 했다고."

조회장이 짐짓 태연하게 물었다.

"정말 증거가 있다고?"

"그렇다니깐요. 사고 낸 그 트럭 기사가 자살하기 전에 마지막으로 면회했던 사람과 기사 가족들까지도 곧 찾을 거라고요."

성환이가 증거 입수하기 직전에 트럭 기사가 자살해서 물거품이 됐었는데.

조윤경이 계속해서 팠나 보다.

아무래도 남편의 죽음을 그냥 받아들일 순 없었을 테니.

증거가 있다는 말에, 더군다나 곧 입수할 수 있다는 말에 조회장의 안색이 급격히 어두워졌다.

무릎에 올려놓은 두 손을 바들바들 떨기까지 했다.

조동욱이 지시했다고 의심하고 있지만, 실제론 자기가 범인이므로 자기 죄가 까발려질까 봐 두려운 것이다.

조회장의 반응을 보니 아무리 자식이라고 하지만 이건 분명 선을 넘었다.

그것도 훌쩍.

조회장은 한숨을 푹 내쉬며 회의실을 나갔다.

수행비서가 따라붙었지만, 손을 내저었다.

"혼자 있겠네. 아무도 들이지 말게나."

물리는 바람에 따라 들어갈 수 없어 호위무사인 양 문 앞에 그대로 섰다.

참석자들 대부분은 조회장이 자식들의 패악질에 충격을 받아 잠시 자리를 피한 것으로 생각하는 듯했다.

하지만 나는 안다.

당황해서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었다는 것을.

머릿속을 정리하고 빠져나갈 궁리를 하고 있다는 것을.

복도를 나가 소회의실로 들어간 조회장.

귀를 기울이니 어딘가로 전화하는 소리가 들렸다.

"김부장인가? 날세. 총장님은 안녕하시지?"

"……."

"우리 윤경이 사건이 접수됐다고 하길래. 혹시 알고 있었나?"

부장검사한테 전화한 거다.

"……."

"아니. 그럴 필요 없네."

아마도 부장검사는 조회장 편의를 봐주겠다며 사건을 뭉개고 있다고 답했을 거다.

"그럴 필요 없데두."

하지만 예상과 다른 답변에 기류가 바뀐 듯.

"죄를 지었으면 죗값을 치러야 하지 않겠나?."

"……."

"빨리 좀 데려갈 수 있겠나? 혹시라도 윤경이가 극단적 선택이라도 할까 봐 내가 걱정돼서 말야."

아무리 그래도 세상에 자기 딸을 빨리 잡아가라고 하다니.

정말 무서운 사람이다.

"그렇다네. 지금 여기가……."

조회장은 소회의실에서 한참 동안을 나오지 않았다.

조윤경과 조동욱은 서로를 죽일 듯이 노려보고만 있었다.

둘 사이에서 참석자들은 나갈 수도 없고 그렇다고 가만히 있자니 애매한 상황이었다.

그렇게 한참 동안.

참석자들 모두 조회장이 나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나 갑자기 밖에서 웅성웅성하는 소리.

"누구시죠?"

비서의 말에 대꾸도 없이 여러 명이 문을 박차고 들어왔다.

신분증을 내밀며.

"서울중앙지검에서 나왔습니다."

두리번거리며 누군가를 찾았다.

그러더니 조윤경 앞으로 뛰어갔다.

"조윤경씨. 당신을 살인교사 혐의로 긴급 체포하겠습니다. 당신은 묵비권을 행사할 수 있으며 당신이 한 발언은 재판에서 불리하게 사용될 수 있습니다. 당신은……."

역시 조회장의 파워.

얼마나 됐다고 그사이에 구속시키려 달려오게 하다니.

아무리 조윤경이 악인이라고 하지만 그래도 본인 딸이니 행여나 조회장이 보호하려고 하면 어쩌지 하는 걱정은 사라졌다.

오히려 앞장서서 파멸을 도와주니.

"뭐라고? 이게 어디서!"

조윤경은 붙잡는 조사관들의 팔을 뿌리치며 완강히 저항했다.

"회장님! 아빠!"

애타게 조회장을 불러봤지만 아무런 대답도 없었다.

차마 끌려가는 꼴을 볼 순 없었겠지.

어느새 소식 듣고 올라온 성환이가 문 옆에 서 있었다.

성환이는 끌려가는 조윤경을 보면서 회한의 표정을 지어 보였다.

과거 조윤경의 덫으로 자신이 마약 사건을 뒤집어쓰고 체포되던 게 떠올랐을 것이다.

이상현에 이어 조윤경까지 내 바람대로 바로 내 눈앞에서 수갑이 채워졌다.

드디어 복수를 마무리했다.

나를 노려보며 이글거리던 조윤경의 눈빛을 애써 외면하진 않았다.

이상현을 보낼 때 통쾌함이 덜했던 이유는 아직 조윤경이라는 악인이 건재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조윤경까지 날려 보낸 지금도 마음 한구석은 여전히 공허함이 자리하고 있었다.

복수심이 빠진 뻥 뚫린 공간을 다른 어떠한 감정으로도 채우지 못해서 그런 것일 거다.

* * *

그렇게 몇 달이 흘렀다.

"전무님!"

원모 목소리가 들렸다.

원모가 누굴 찾는 거 같은데.

꿈인가?

"아이, 참! 전무님!"

탁탁 책상을 두드리는 소리에 화들짝 놀라 깼다.

눈을 떠보니 원모가 빤히 내려다보고 있었다.

원모가 찾는 사람은 바로 나.

그러고 보니 얼마 전에 승진했었다.

역할, 직책은 그대로였지만 직급만 전무로 한 단계 올라갔다.

물론 성환이와의 약속 때문이다.

천하제일에 있는 동안은 내가 무조건 그놈보단 높아야 한다는 약속.

성환이 녀석 지난번 상무로 발탁 승진하면서 아득바득 우겨 나까지 승진시켜 버렸다.

이제는 정식으로 전용 주차장은 물론 기사까지 배정받았다.

적응 안 된다.

회귀 전에도 상무까지밖에 못 올라갔었기 때문이다.

원모가 잔소리를 시전했다.

"전무님. 잠은 댁에서 주무시죠? 지금 업무시간 아닙니까?"

"야 이놈아. 업무시간이 어딨어?"

"네?"

"내가 자면 오침 시간, 내가 일하면 그게 곧 업무시간이지."

원모는 귀찮다는 듯 팔을 휘저으며.

"네네. 어련하시겠습니까? 그런데 하루종일 업무시간이 있기는 하십니까?"

일을 하기는 하냐고 빈정댄 거다.

"야 임마. 난 여기 앉아 있는 거 자체가 일하는 거야. 일은 너희들이 알아서 해야지 난 그저 잘하라고 북돋아 주기만 하면 되는 거 아냐?"

"네네~ 그럼요."

"그런데 뭔 일이야? 사고라도 났어? 갑자기 쳐들어와서 난리야?"

"곧 회의 시간이잖습니까?"

"뭔 회의?"

"경영 회의요."

조동욱이 주관하는 회의.

경영 전략회의에서 이름만 살짝 바꾼 후 여전히 조동욱이 의장을 맡고 있다.

바뀐 건 하나 더 있다.

한 달에 한 번에서 일주일에 한 번으로 무려 4배나 자주 열리게 됐다.

부처마다 장악력을 공고히 하기 위함일 것이다.

조윤경의 이사회 쿠데타가 그렇게 파행으로 끝난 후 곧바로 임시이사회를 열어 만장일치로 조동욱을 대표이사로 선임하였다.

물론 조윤경 편에 섰던 사외이사 두 명은 물론이고 종전 대표이사까지 임시주총에서 바로 해임됐다.

실패한 쿠데타 세력은 역적으로 몰리기 때문이다.

특히나 종전 대표이사의 경우 통상 퇴직 임원들을 챙겨주던 고문 자리나 시니어클럽 이용 등 각종 혜택까지 하나도 받지 못한 채 쫓겨났다.

주인 물은 개 취급까지 받아 가며 재취업은커녕 사적 모임에도 눈치 보여 끼지 못하는 신세가 됐다.

한 번 배신한 사람에게는 피도 눈물도 없이 밟아버리는 건 이 바닥의 불문율.

그래야 다시는 배신하는 사람이 나오지 않는다고 생각해서이다.

* * *

"재무팀은요?"

우리 팀 순서가 되자 조동욱이 물었다.

"아……. 네 물론 대외비겠죠? 공유할만한 이슈는 따로 없는 거죠?"

지가 묻고 지가 답하는 경지가 됐다.

"네, 맞습니다. 이슈 생기면 바로 공유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물론 이슈가 생기면 안 되겠지만요."

앞으로도 발표 안 할 거라고 한 거다.

알아들었는지 조동욱의 표정이 좋지 않았다.

조동욱은 건너편 성환이 쪽을 쳐다봤다.

"경영관리팀은요?"

조동욱이 대표이사가 되면서 처음에 한 건 성환이를 품은 거다.

반대를 무릅쓰고 임원 승진까지 시켜주면서.

물론 나와 떨어뜨려 놓겠다는 검은 속내였겠지만 성환이는 달랐다.

좋다고 덥썩 물어버렸다.

아무리 덫이라고 설명해도 들을 생각조차 하지 않았는데.

일단 임원이 되어야 뭔가 일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할뿐더러, 조회장의 눈에도 들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조동욱이 품었다고 해서 성환이가 마냥 호락호락하게 안기진 않았다.

엄연히 후계 자리를 놓고 1:1로 경쟁하는 관계이니.

"네. 저희 경영관리팀은 2분기 예산 대비 실적 대비 자료 만들고 있고 사회공헌 활동 추진 중입니다."

"네. 자료 만들면 바로 보고해주시기 바랍니다."

"네? ……아 네."

대답하는 성환이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해졌다.

이제야 깨달은 듯.

조동욱은 이러려고 앉힌 거다.

임원이 되어야만 대표이사인 자기가 주재하는 회의에 참석할 수도 있고, 직접 보고까지 받을 수 있으니.

이제 와서 물릴 수도 없고 당황한 거다.

여러 임원들 다 있는 데서 조동욱이 확실히 서열 정리한 거다.

순순히 응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성환이는 속으로 몸서리를 치고 있었다.

성환이는 회의가 끝나자 씩씩거리며 내 방까지 쫓아왔다.

"이제 알겠냐?"

무슨 말뜻인지 알고는 대답을 하지 못했다.

"거봐. 내가 뭐랬어? 뒤통수 맞은 거라니깐? 그냥 들이받기라도 하지 그래?"

모양 빠지게 맨날 굽신거리기만 하고.

많은 임원들이 이미 승부의 추가 한참 기울은 것으로 판단할 것이다.

"까든지 해야 들이받든가 말든가 하죠."

해결책이 없어 답답한 건 성환이도 마찬가지인 듯.

"임원 버리고 재무팀으로 와."

"말이라고 합니까?"

"그럼 어떻게? 그냥 임원들 다 있는 데서 숙이고 들어가 버리던지. 아예 형이라고 하지 그래. 친형 맞잖아."

눈을 희번덕거리며 쳐다봤다.

"형은 개뿔! 에이. 조금만 참지 뭐."

"조금만 참다니?"

"그거요, 누나가 말한 거. 지금 사방팔방 찾고 있으니깐 언젠간 나올 겁니다."

조윤경이 곧 입수하겠다던 증거.

조동욱의 짓임을 밝힐 수 있다던 그 증거를 말한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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