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손안의 재벌-164화 (164/191)

164화 사고

똑똑!

"들……."

뻥! 끼이이익.

대답을 채 하기도 전에 문을 박차는 소리.

성환이 들어왔다.

"뭐야?"

"노크하라고 해서 했는데요?"

"여기가 화장실이냐? 노크하고 바로 열어버리게? 응당 노크라 하면 들어갈지 말지 동의를 구하는 거라는 걸 모르는 거야?"

"웬 동의? 회사 일하는데 피곤하게 뭘 동의까지 받습니까? 급한 일 있으면 들어올 수 있는 거지. 보아하니 손님이 있는 것도 아니구만."

휘~휘~

날파리 쫓듯 손을 내저었다.

"됐고. 그렇게 급한 일이란 게 뭔데?"

"출장 좀 다녀오겠습니다."

"그게 급한 일이냐?"

"네. 급하죠."

"어디? LA? 아니지, 예전처럼 유라씨랑 급하게 하와이라도 다녀오게?"

"아니. 내가 양아치도 아니고."

"너 예전에 천하제일엔터에 있을 때 출장 간다고 하고 하와이 놀러 갔다 왔잖아. 내가 잊어버린 줄 알아?"

"그때 일하러 가긴 했거든요. 겸사겸사 쉬다 온 것뿐이지."

"그럼 어디 갈 건데?"

"중국이요."

"유라씨가 중국 안 가봤데?"

성환이 어이가 없었는지 잠시 헛웃음을 터트리고는 바로 정색했다.

"허! 참! 좀……. 여행 아니라니깐. 회사 일이라니깐요."

"잘 생각해봐. 네 상관은 나고 내가 너한테 중국 관련한 일을 시킨 적이 없어. 게다가 네 업무기술서에도 중국 관련한 일은 한 줄도 적혀있지 않지. 그런데 왜 중국으로 출장을 간다는 거지?"

"잘 들어보세요, 상무님. 일을 꼭 시켜야 합니까?"

"아니지."

"그렇죠. 일은 찾아서 하는 거죠."

맞는 말이긴 하다.

단지, 시키지도 않은 일을 열심히 하겠다는 말이 바로 이 녀석의 입에서 나왔다는 게 이상했을 뿐.

"갑자기 왜 그래? 너 그런 스타일 아니잖아."

"이게 바로 주인의식이라는 겁니다."

"뭐라고? 네가 대주주라도 되냐? 쥐뿔도 없는 게. 지주사도 아니고 기껏해야 엔터사 지분 30%밖에 없는 게. 아니지, 그거도 좀 팔았으니 이제 20%나 될라나?"

말이 헛나왔다.

홧김에 천하태평에 출자하라고 빌려준 돈 다 내놓으라고 할까 봐 걱정됐지만, 다행히 그런 분위기는 아니다.

"지금은 아니지만, 곧 되지 않겠습니까? 지금부터 준비해야죠."

"네. 차기 회장님. 그러시던지요. 근데 중국은 갑자기 왜?"

"얼마 전에 상해법인에서 자금사고가 있었거든요."

"뭐? 상해? 거기 관리형 지주회사잖아?"

"맞아요. 그래서 상해법인 재무담당은 물론이고 지금 내가 앉아있는 경리파트장 자리도 같이 날아간 거였거든요."

"한동안 공석이라고 했더니 그런 일이 있었구만. 그런데 해외법인 사고를 왜 본사에서 책임지지?"

"그냥 계열사도 아니고 중국 내 관리지주잖아요. 관리책임을 진 거겠죠."

사실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인데.

뭐든 못 걸까.

그저 맘에 안 드는 사람을 내치고 싶을 때 적당한 명분이 생긴 것뿐이다.

"상해법인은 제조나 영업 활동을 하는 게 아니라 중국 내 자회사들 관리하고 자료조사 업무 위주로 하는 걸로 아는데 어떻게 자금사고가 날 수 있었다는 거지? 구매를 하는 것도 아니고 비용이라고 해봐야 인건비나 수수료 같은 거잖아."

"네. 인건비는 건들 수 없으니깐 수수료로 장난쳤나 봐요."

"에이. 그래봐야 얼마나 된다고."

"연간 합치면 꽤 되나 봐요. 자금 사정 안 좋은 현지 법인들이 계약할 건을 상해법인이 대신 체결했다는데요?"

"뭐라고? 그럼 계열사 비용을 대신 부담한 거라고?"

"네. 세금 때문에요. 그런데 상해법인 재무담당이 중간에서 커미션 떼서 뒷주머니에 챙겼다고 하더라구요."

"현지법인에서 요청하는 업체가 있었을 거 아냐. 그걸 어떻게 상해법인 직원이 떼지?"

"그러니깐요. 현지법인 요청하는 거 묵살하고 상해법인 직원이 업체를 지정하게 압력을 넣었나 보더라구요."

"개판이구만."

"네."

다른 회사를 통해 비용을 부담시키는 원리는 이렇다.

예를 들어 그룹에서 A, B 두 계열사가 있는데 A는 손실 100원, B는 이익 100원이 발생한다고 가정하면 세금(세율 : 20%)은 다음과 같다.

A 회사 : 손실 (-)100원, 세금 0원.

B 회사 : 이익 (+)100원, 세금 20원.

하지만 원래 A가 부담해야 할 비용 50원을 B가 계약해서 부담하면 다음과 같다.

A 회사 : 손실 (-)50원, 세금 0원.

B 회사 : 이익 (+)50원, 세금 10원이 된다.

따라서, 그룹 전체적으로 이익과 손실의 합은 똑같지만, 세금을 반으로 줄이는 것이다.

이런 식으로 암암리에 손익을 조정하는 경우가 종종 있어 왔다.

하지만 상해법인에서 용역업체를 선정하는 과정에 개입해서 커미션을 떼먹었다는 거다.

"사정은 알겠는데 출장 가서 뭐 하겠다는 건데?"

"내부통제제도 강화하고 재발방지 수립했다고 하는데, 점검해야죠."

못 가게 할 명분이 없다.

"기간은?"

"3일이면 될 거예요."

"알았어. 갔다 와. 그리고 내부규정에 따라라. 부장급은 이코노미다."

"당근이죠."

"그런데 출근한 지 며칠 안 돼서 어떻게 파악한 거야?"

"내가 누굽니까?"

"조부장이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혀를 찼다.

"쯧. 아무튼 직원들이 하나만 물으면 열을 알려주려고 하잖아요."

"부서원들이?"

"네. 질문을 할 필요도 없어요. 하나부터 열까지 전부."

보나 마나 팀원들이 어떻게든 잘 보이려고 사활을 걸었을 거다.

이 기회에 성환이 눈에 들기만 하면 은퇴할 때까지의 삶이 보장된다는 걸 본능적으로 알고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특히나 실무진으로 바로 밑에서 서포트하는 과장급들은 부하직원들 닦달해가며 과잉 충성할 게 눈에 선하다.

사실 회귀 전의 나도 그랬었다.

성환이 내 방을 나서며 자리로 돌아가는데.

김철수 부장이 기다렸는지 성환이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조성환님. 상해 건으로 말씀하신 건 알아봤는데요."

"쉿! 잠시만요."

"아니. 왜 그러십니까?"

"아니, 그냥."

더 이상 김철수 부장의 말이 들리지 않았다.

뚜벅뚜벅.

이어서 두 사람이 종종걸음으로 사무실 바깥으로 나가는 소리가 들렸다.

성환이 놈.

무슨 꿍꿍이가 있는지 내가 듣지 못하도록 아예 바깥으로 나가서 얘기하려는 거다.

* * *

며칠 후.

성환이 출장을 떠난 후 김철수 부장 자리로 찾아갔다.

IR파트까지 삼십 미터는 족히 되는 길.

마치 홍해라도 가르듯 직원들이 길을 비켜주는 느낌이 들었다.

직원들이 안 보는 척하면서도 흘끔거리는 거 다 알 거 같았다.

나 역시 예전엔 그랬으니깐.

예전에 임원들이 마치 내 머리 꼭대기에 앉아있는 느낌을 받곤 했었는데 바로 이거다.

동일한 과정을 이미 겪어봤으니 다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쳐다보지도 않았는데 어깨를 흠칫거리는 수진이.

슬쩍 쳐다보자 모니터엔 워드 파일이 띄워져 있었다.

아마도 인터넷 쇼핑하다가 방금 Alt+Tab을 눌렀을 거다.

"빠르네."

"네?"

"아냐 수진아. 수고해."

수진이가 겸연쩍은 미소를 띠며 답했다.

"네. 상무님."

홍과장은 목 빳빳이 세우고 경직된 자세로 화면만 응시하고 있었다.

아마 삼 초 전까진 웹툰을 보고 있었을 거다.

입사했을 때부터 한결같은 친구다.

갑자기 몸을 훽 돌려 홍과장 쪽으로 향했다.

뒤통수라도 달려있는지 흠칫거리는 게 느껴졌다.

어깨를 툭툭 두드리며.

"요즘은 뭐에 꽂혔냐?"

"네. 요즘 무협이……. 아니 상무님. 제 말씀은 그게 아니라."

자기도 모르게 뱉은 말을 꾸역꾸역 주워 담았다.

다 안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한마디 해줬다.

"괜찮아. 일만 빵구 안 내면 되지 뭐."

"헉……. 네……."

홍과장이 사색이 된 채 몸을 떨었다.

나름 배려해준다고 한 말이었지만 생각해보니 더 무서운 말이었다.

'너 뭐 하는 줄 안다. 나중에 빵구라도 나봐. 가만 안 둘 거다.'

뭐 이 정도로 들었을 거다.

"아니야. 농담이야. 일 봐."

별 위로는 안 된 듯.

뒤통수를 헤집고 땀 한 방울이 흘러내렸다.

가만 생각해보니 배운 게 도둑질이라고 예전에 내가 제일 싫어하던 짓을 지금 내가 부서원들한테 하고 있다.

관심 둔다 치고 뭐 하는지 컴퓨터 화면이나 쳐다보는 것과.

친한 척한답시고 놀리듯 비꼬면서 얘기하는 것들은 부서원들의 사기진작에 전혀 도움이 안 된다는 걸 이번에 다시 한 번 깨달았다.

이런 건 부장급들한테나 시전해야 한다.

조용히 김철수부장 자리에 도착했다.

귓속말로 속삭이듯 나지막이 불렀다.

"김부장님."

화들짝 놀란 듯 몸서리치며.

"억……. 천대표…… 아니지 천상무. 무슨 일이야?"

김부장 표정이 별로 밝아 보이지는 않았다.

"아니 왜 그러세요?"

"살짝 서글퍼서 말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천대표랑 김이사였는데, 지금은 상무랑 부장이잖아."

"에이. 천하제일이나 그렇지. 천하태평은 여전히 대표랑 이사잖아요. 거기다 나날이 크고 있는데 그럴 필요 없습니다."

역시나 별 위로는 안 된 듯.

"그래. 그런데 무슨 일이야?"

"오랜만에 점심이나 같이하시죠."

"그럴까?"

간단한 점심을 마친 후 근처 카페로 향했다.

주문을 하자 바로 지갑에서 카드를 꺼내 내미는 김철수부장.

예전에 오백 원짜리 캔 커피 하나에도 주저주저했었는데 그새 많이 바뀌었다.

"오랜만이네요."

"뭐가?"

"부장님께 얻어먹는 거요."

김부장이 카드를 흔들어 보이며 답했다.

"법칸데?"

하긴 팀장과 파트장의 협의차 오찬 자리니.

밥이나 커피 한잔 정도는 충분히 법카로 긁을만하다.

천하제일로 돌아오니 좋은 건 이거 하나.

법카가 있다는 거.

게다가 적당한 수준에선 맘대로 써도 된다는 거다.

누가 밥값 내고 커피값 내고 고민하거나 미루거나 혹은 서로 내겠다고 싸우거나 할 필요가 전혀 없다.

바로 이게 회사 다닐 맛이라고 할까.

천하태평에서는 법카라고 써봐야 결국 우리 주주들 몫이 그만큼 줄어드는 것이었지만, 여기 천하제일이야 지분 하나도 없는데 아무 상관 없다.

오히려 천하제일이 규모나 하는 일에 비해 급여가 적다고 유명하니 적당히 법카 쓰는 건 정당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커피 한 잔씩을 들고 테이블에 자리했다.

자연스럽게 물어볼 타이밍만 재고 있었다.

지난번에 성환이랑 상해 어쩌고 알아보라고 한 게 뭔지 궁금했기 때문이다.

뭔 얘기했었냐고 물어보면 가뜩이나 입 무거운 기자 출신이니 답을 안 할 게 뻔하니 기회를 보고 있었는데.

"성환이 이놈, 일 잘 봤나 모르겠네요."

"응. 잘하시겠지. 업무 열정이 꽤나 좋아지셨잖아. 지난번에 같이 근무할 때완 완전히 다른 분이 되셨는데."

"그렇긴 하죠. 아무래도 천하태평 경험이 있으니깐요. 그건 그렇고 그 일 말고 다른 거요. 출장은 핑계고 그 일 알아보려고 간 거잖아요."

정말 지나가듯이 그 얘기를 꺼냈다.

한 모금 홀짝거리며 실눈으로 흘겨보자 김부장 동공이 떨리는 게 보였다.

쐐기가 필요하다.

"알아보라는 건 잘 알아봐 주셨다면서요."

"응? 아~."

"뭐래요? 상해까지 굳이 가서 확인해야 하나?"

넘어와라~ 넘어와라~.

마음속으로 주문을 외웠다.

"직접 확인해보시겠다고 하셔서 말야."

넘어왔다.

김부장은 내가 알고 있다고 생각한 듯 말을 이어갔다.

"아무래도 단순 사고가 아닌 거 같아."

사고라면 바로 안치홍의 교통사고를 말한 거다.

최동욱 짓이라고 확신해서 직접 파보려고 하려나 보다.

"누가 사주를 했다는 증거가 나왔어요?"

"아니 정황상 그렇게 보인다는 거지. 가해자 측에서 갑자기 어디서 돈이라도 생겼는지 조그만 아파트로 이사까지 했다고 하더라고."

"가해자 회유는 해보셨나요?"

"물론 해봤지. 근데 묵묵부답인가 봐. 형량을 낮추거나 자기 방어할 생각도 전혀 없이 그냥 형을 나오는 대로 받겠다고 하더라고."

"사실대로 얘기하면 감형시켜주거나 다른 걸 주겠다고 해도요?"

"맞아. 그런데 그 가해자를 잘 아는 사람을 하나 찾았어. 다른 면회는 다 거절하는데, 그 사람하고는 한다고 하더라고."

"그래서 성환이가?"

"응. 조성환님께서 그 사람 통해서 제안해본다고 이번에 상해로 가신 거야."

그러면 그렇지.

일은 개뿔.

"무슨 제안인데요?"

"잘은 모르겠지만 환전 알아봐달라고 하신 거 보니깐 큰돈 쓰시려나 본데?"

조그만 아파트를 넘는 당근?

성환이한텐 큰돈이 아닐 수도 있다.

어쩌면 최동욱을 엮을지도 모르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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