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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손안의 재벌-135화 (135/191)

135화 특이사항

백화점에라도 매장이 하나 있었다면 한 번쯤은 들어봤을 법한데.

생전 처음 들어보는 브랜드였다.

게다가 매장은 흔히들 청담동 명품거리라고 불리는 대로변이 아니라 한적한 뒷골목 한강변 쪽에 자리하고 있었다.

휘황찬란한 조명과 번쩍거리는 간판 같은 걸 내보이지 않아서였는지 얼핏 지나가면서 보면 패션스토어인 줄 모를 것 같다.

"뭐야? 옷가게가 왜 이런 데 있어?"

"여기가 어때서요?"

"가겟세 아낄라고 뒷골목에 들어간 거잖아. 이게 명품 브랜드 맞는 거야?"

"당연히 이런데 있어야죠. 큰길에 있으면 아무나 막 들어올 거잖아요. 어차피 살 수 있는 사람들은 알아서 다 찾아올 텐데."

"명품은 무슨. 그냥 중저가 브랜드 샵인 거 같구만. 백화점 명품관 같은 데서 한 번도 못 본 거 같은데."

성환은 뭘 알지도 못한다는 듯이 혀를 찼다.

"쯧! 명품이 왜 백화점에 들어갑니까?"

"왜긴. 명품관이 백화점에 있으니깐 그러지."

"백화점은 아무나 들어가는 데잖아요. 재래시장하고 뭐가 달라요? 지난번에 보니깐 물건 한번 보겠다고 줄까지 서 있던데? 그런 데서 파는 걸 명품이라고 할 수 있나?"

회귀 전 백화점 명품관 오픈런이 한참 이슈되던 게 떠올랐다.

매년 뛰는 가격 때문에 사서 모셔놓기만 해도 중고가격이 뛴다는 이유로 재테크 수단까지 돼버렸다는 기사가 생각났다.

"그럼 명품이 뭐냐?"

성환은 잠시의 고민도 없이 바로 답했다.

"남과 다르다는 걸 느끼게 해줄 수 있는 수단 같은 거?"

"그게 결국 과시라는 거잖아."

"다르죠. 남들에게 보이는 것보단 자기의 기준 같은 거를 말하는 거잖아요."

"뭐가 기준인데?"

"전통과 역사, 장인정신 뭐 그런 가치죠. 남들이 명품이라고 해서 사는 게 아니라 내 기준에 맞아서 사니깐 명품이다. 뭐 그런 말."

알 듯 모를 듯했다.

결국 과시는 하고 싶지만, 남들과는 다르고 싶다, 혹은 나한테만 명품이면 되지 남들은 아예 모르는 게 낫다.

뭐 대충 이런 말인 거 같았다.

어쩐지 요상한 옷들만 입더라니.

이놈 기준이 남들과 다르긴 다른가 보다.

택시를 타고 와서 주차를 따로 하지 않아서였는지, 그저 우리가 워킹 손님인 줄 알고 매장 안으로 들어섰는데도 아무도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어차피 사지도 못할 텐데 그냥 나가라'

'그냥 갈 길이나 가라.'

뭐 대충 이런 뜻일 거다.

내가 생각해도 정말 지나가다 옷 보러 잠시 들어왔더라면 기분 나빠서라도 돌아 나갔을 것 같았다.

처음 접해보는 대접에 성환이 얼굴엔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손을 입에 갖다 대고는 헛기침을 했다.

"으흠……."

자기 한번 봐달라고 한 거다.

귀찮다는 듯 썩은 표정으로 돌아본 매장 직원이 우리를 발견했다.

손님이 성환인 걸 확인했는지 굳은 표정이 풀리고 안면에 웃음을 장착하기까지는 채 몇 초도 걸리지 않았다.

두 눈을 크게 뜨고 손뼉을 치며 맞이했다.

"어머 고객님. 안녕하십니까!"

보통 명품매장에서는 손님의 행색에 따라 응대하는 게 다르긴 하다.

빼입은 고객에게는 방긋하면서도 행색이 초라한 손님은 거들떠보지도 않는다.

여기도 백화점 명품관과 다를 바 없었다.

나도 명품에 대한 기준이 어느 정도 생기는 거 같았다.

내 기준엔 여기도 명품이 아니다.

남들이 보든지 말든지 내 몸과 마음이 편한 게 명품이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성환은 약간 짜증 섞인 목소리로 물었다.

"매니저님은 안 계시나 봐요."

안 나오고 뭐 하냐 라고 한 거다.

직원이 매니저에게 연락하기 위해 무전기를 드는데, 성환의 표정이 좋지 않은 것을 확인하고는 바로 내려놓았다.

"잠시만요. 제가 불러오겠습니다."

그리고는 부리나케 이 층으로 뛰어 올라갔다.

성환이가 이제껏 여기다 얼마나 많은 돈을 뿌려왔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

잠시 후 매니저로 보이는 사람이 계단을 뛰쳐 내려왔다.

"어이쿠. 대표님! 오셨습니까?"

훽 하고 고개를 돌려 귓속말로 물었다.

"뭐야? 너 어디 가서 대표라고 하고 다니냐?"

"아뇨. 그냥 여기 올 만한 사람들이 다 대표니까 그런 거죠."

하긴.

모를 땐 그냥 높여 부르는 게 맞다.

"에이 대표님. 연락이라도 먼저 주시지 그랬습니까?"

"방금 술자리가 있어서 택시 타고 오느라고요."

매니저는 한 손을 입에 갖다 대며 웃어 보였다.

"에이. 연락주시면 저희가 어디라도 모시러 갔었을 텐데요. 굳이 불편하게 택시 타고 오셨어요. 이따 댁에 가실 때는 저희가 편안하게 모셔다드리겠습니다."

"오늘 사러 온 거 아닌데요……."

괜히 쓸데없는 말을 하는 거 같아 성환이 팔을 붙잡고 제지했다.

내가 대신 답했다.

"네. 감사합니다. 저도 안 사긴 할 거지만, 집까지는 부탁드리겠습니다."

넌 또 뭐냐는 식으로 흘겨봤다.

그러나 성환이 쪽을 번갈아 보고는 웃는 얼굴로 바뀌었다.

성환이 보고 참는다고 한 거다.

"물론이죠. 이렇게까지 고생하셔서 힘들게 오셨는데 저희가 어떻게 그냥 보내드릴 수 있겠습니까?"

택시 타고 오는 게 고생이라니.

잡으려고 손 몇 번 흔들었고 몸 한번 구겨서 택시 안으로 들어간 게 전분데.

그게 힘들다고 하다니.

뭔가 다른 세계에 잠시 발을 들인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성환이는 대답 없이 핸드폰을 열어 매니저에게 보여줬다.

친구가 보내준 바지 사진이었다.

"이 바지요. 여기서 산 거라는데 맞나요? 서울 매장이 여기 하나뿐이죠?"

"네. 서울뿐 아니라 한국에 하나뿐인 매장입니다."

매니저는 핸드폰 속 사진을 유심히 살폈다.

"어! 이거 작년에 나온 한정판인데요."

"한정판이라뇨?"

"전세계 매장에서 몇 벌 안 나온 한정판이고 한국에서는 사이즈별로 하나씩만 들어왔던 상품입니다."

우리나라에서 사이즈별로 하나씩만 팔렸다니.

됐다.

분명히 최동욱이 샀을 거다.

최동욱이 자기 옷을 세탁소 손님에게 건넸고, 그 손님에게 세탁물 받고 일부러 훼손시켜서 소송 제기하도록 수작 부린 게 확실하다.

이제 최동욱이 샀다는 것만 증명하면 된다.

성환 역시 같은 생각이었는지 씨익 웃어 보였다.

"이 상품 누가 구매했는지 알 수 있을까요?"

성환의 물음에 매니저는 곤란했는지 바로 난색을 표했다.

"죄송합니다만. 저희가 그것까진 알려드릴 수 없습니다."

"네? 아니 왜요? 나한테 그 정도도 못 해줘요?"

성환이 열을 내자 매니저는 더욱 난처한 표정을 지은 채 답했다.

"죄송합니다. 저희 고객님들 개인정보 보호차원에서 절대 불가하다는 말씀을 드릴 수밖에 없습니다."

당연한 말이라 수긍할 수밖에 없었다.

입장 바꿔 생각해 본다고 해도 내가 무슨 상품을 샀다는 정보를 다른 사람에게 빼돌린다는 건 말도 안 되는 일이니.

"정말 안되는 건가요?"

"네. 영장이 청구되거나 법원 판결이 있기 전까지는 불가합니다."

매니저는 제법 단호한 표정으로 답했다.

그러나 성환이 역시 곱게 물러나지 않았다.

땅이 꺼지기라도 하듯 깊고 긴 한숨을 내쉬었다.

"아쉽네요. 나 여기 옷 정말 좋아했는데. 이제 마지막이네."

여길 다시는 안 오겠다는 선전포고.

매니저의 눈빛이 잠시 흔들렸지만 이내 평정심을 찾은 듯.

"죄송합니다. 그래도 방법이 없습니다."

아무리 많이 산다고 해도 그저 많은 손님 중의 한 명일 테니 역시 먹힐 리가 없다.

그러나 성환은 포기하지 않고 다시 말을 꺼냈다.

"나도 그렇지만 우리 누나가 아쉽겠네요. 우리 누나 아시죠?"

조윤경.

이제 말도 제대로 안 나누는 사이면서 뻥카 한 번 날린 거다.

그러나 매니저는 예상 밖의 반응을 보였다.

아까와는 다르게 눈빛이 상당히 흔들리는 게 확연하게 보일 정도였다.

"무슨 말씀이신지요?"

"우리 누나요. 이제 여기 못 올 거 같다고요. 그리고 누나뿐만이 아니라 그 친구들까지 하면 이게 몇 명이야 도대체?"

손가락을 하나씩 접으며 숫자를 세다가 너무 많아 포기한다는 식으로 손을 탁 내려놨다.

동공 지진.

매출의 무시 못 할 부분을 조윤경과 그 친구 무리들이 사들이고 있었던 모양이다.

구매 규모만 해도 상당할 테니 성환이가 말도 안 되는 협박을 한다는 걸 알면서도 만에 하나 진짜면 어떡하지라고 걱정하는 거다.

어쩌면 이제 막 매니저를 맡아서 실적 압박이라도 받고 있었을지 모른다.

매니저는 한참을 고민하다가 뭔가가 떠오른 듯 반색하며 말했다.

"에구 이런. 마침 그분께서 이 상품을 재구매하셨네요."

"네? 국내에 하나만 팔렸다면서요."

"네. 이태리에 재고가 하나 남아 있어서 재주문 넣었습니다. 조회해보니 마침 항공편으로 한국에 도착했습니다. 지금 통관 중이라고 뜨니까 아마 며칠 내로 받아보실 수 있을 겁니다. 아! 다음 주말에 찾으러 오신다고 하셨네요."

"그 사람이 누군데요?"

성환은 제발 최동욱이라고 답해달라고 눈빛을 쏘아붙였다.

그러나 대답 없이 계속 고민하는 척하다가 어렵사리 입을 뗐다.

"손님! 저는 지금 그 상품 재주문해 주신 내역 열어 보고 있는 중입니다. 만약 지금 손님께서 저희 상품 구매 주문해 주시면 제가 찾으러 갈 수밖에 없겠죠?"

"네. 그래서요?"

"만약 세 개 주문해 주신다면 저랑 직원 두 명까지 모두 손님께서 주문하신 상품 찾으러 자리를 비울 겁니다. 남성복은 이 층이나 창고에만 있어서 찾으려면 시간이 좀 걸릴 거고요."

매니저는 노트북 화면을 턱짓으로 가리켰다.

주문하면 이대로 자리를 비켜주겠다고 노골적으로 얘기한 거다.

주문 안 해주면 덮기라도 하겠다는 듯이 한 손으론 노트북 덮개를 집고 있었다.

그리고는 천장을 쓱 올려다봤다.

시선 끝에는 CCTV가 있었다.

저거 땜에 자기가 대놓고 보여줄 순 없지만 자리 비울 때 우리가 몰래 보는 것까진 모른 척해 주겠다는 거다.

성환은 고민 없이 바로 답했다.

"네. 알아서 이쁜 걸로 세 벌 가져다주세요. 계산할게요. 대신 창고에 있는 걸로 천천히 가져다주십시오."

매니저는 만족한 듯 환하게 웃으며 고개를 숙였다.

"네 대표님. 주문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방금은 또 손님이라도 하더니 주문한다니깐 대표님이라고 호칭을 자연스럽게 바꿨다.

잠시 후.

매니저가 직원들을 부르더니 임무를 하달했다.

창고에서 찾되 일 층에 내려오지 말고 2층으로 가져오라고 했다.

그렇게 직원들이 모두 흩어지고.

우리는 재빨리 노트북 화면 앞에 섰다.

화면엔 정말 주문 내역이 열려 있었다.

역시 주문자명에는 최동욱의 이름이 쓰여 있었고, 재주문했다는 내용도 함께 기재되어 있었다.

성환의 친구로부터 받은 사진 속 바지와 품명, 사이즈, 색깔이 모두 똑같았다.

재빨리 휴대폰을 들어 화면을 사진 속에 담았다.

그런데 성환이 뭔가라도 발견한 듯 놀랐다.

"뭐야? 여자 옷도 같이 주문했는데요?"

여자 옷이라니?

몰래 여장하고 다니는 특이한 취미라도 있다는 건가?

"정말? 최동욱 취미 한번 독특하네."

성환은 말도 안 된다는 듯 손사래를 쳤다.

"아니 그런 게 아니라……. 여기 좀 봐봐요."

손가락으로 노트북 화면 하단을 가리켰다.

"유라 주려는 거겠죠. 사이즈가 딱 유라 사이즈네."

방금 전 일식당에서 엿들었던 말이 떠올랐다.

이건 100일 선물이다.

"다음 주말에 찾아온다고 했으니깐 100일 기념 선물 주려나 보네."

"그럼 여기 들러서 선물 들고 그 일식당으로 가겠네요."

성환은 부글부글 끓어오르는지 머리에 열기가 나는 것처럼 보였다.

잠시 후.

이 층에서 매니저가 성환을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저기 대표님. 이제 내려가도 되겠습니까?"

벌써 시간이 다 됐다는 뜻이다.

성환은 마지못해 위쪽을 향해 소리쳤다.

"아직이요. 세 벌 더 찾아다 주세요. 되도록이면 창고 구석에 있는 걸로요."

"정말이요? 네. 대표님 주문 감사합니다."

보지도 않고 여섯 벌을 사겠다고 한 거다.

아까 얼핏 본 가격표를 봤을 때 차 한 대값은 족히 나올 거다.

"이거 찍어서 알려주죠."

"유라씨한테 말하려고?"

"네. 이 화면 보여주면 되잖아요."

"사진만 보고 믿을까? 네가 그냥 컴퓨터에서 잠깐 써놓고 지운 걸로 알 수도 있잖아."

내 말이 맞다고 생각했는지 고개를 푹 숙였다.

"그럼 어쩌죠?"

"확실한 증거가 필요해. 다만 그걸 네 손으로 직접 건네면 안 돼."

"내 손으로 안 건네다니?"

"손 안 대고 코 풀자는 거지."

"그게 뭔데요?"

"이거 봐 봐."

주문목록 옆에 특이사항을 가리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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