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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손안의 재벌-111화 (111/191)

111화 쪼이기

빌라 한 채로 꽤 재미 본 이후로는 연간 수익률이 100%라고 해도 그다지 크게 느껴지지 않을 정도였다.

더군다나 최근 수호개발에 100억 원을 투입한 바람에 예전 같으면 부들부들 떨었던 몇억 정도의 투자는 팀원들조차 거들떠보지도 않는 수준이 되었다.

다들 너무 손 놓고 있는 것만 같았다.

이제는 쪼일 때가 됐다.

좋은 리더는 팀원들이 자신들의 한계를 뛰어넘는 성과를 내도록 하기 위해서는 힘을 북돋아 주고 다독이는 것도 물론 중요하지만 필요할 땐 확실하게 쪼일 줄도 알아야 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김철수이사는 그렇다 쳐도 나머지 놈들에게는 확실히 자극이 필요했다.

"성환아, 원모야!"

대답이 없다.

의자를 박차고 일어나 고개를 쓰윽 돌려보니 원모는 역시 엎드려서 퍼 자고 있었다.

성환이는 큰 소리로 음악을 듣고 있는지 헤드폰을 낀 채 고개를 흐느적거리고 있었다.

아무리 우리 모두가 천하태평에 고용된 직원이 아니라 주인들이라곤 하지만 이렇게 무책임한 주인들을 그대로 놔둘 순 없다.

딴 건 다 참아도 무임승차자를 용납할 순 없다.

"야! 이 자식들아!"

심호흡한 후 사자후를 내뱉자 원모가 바로 깼는지 들썩거렸다.

고개를 쳐들고는 잠긴 목소리로 소리쳤다.

"뭐라고? 이 자식아!"

헉!

낮잠 좀 깨웠다고 나한테 욕설을 내뱉다니.

생각도 못 한 카운터 펀치에 황당해서 벙쪄 있었는데.

잠시 후 원모가 정신을 차렸는지 머리를 조아렸다.

"죄송합니다. 대표님. 깜빡 잠들었다가 잠꼬대했지 말입니다."

그래 그러면 그렇지.

충분히 납득할 만한 상황이다.

괜히 오해할 뻔했다.

"그런데 무슨 꿈이었는데?"

원모는 어찌나 악몽이었는지 꿈을 떠올리는 게 매우 고통스러운 듯 얼굴이 일그러졌다.

"네. 대표님이 마구 쪼는 꿈 꿨습니다."

개자식.

그나저나 이건 예지몽이다.

이놈은 초능력자란 말인가?

마침 이놈을 어떻게 쫄까 고민하고 있었는데 바로 그 꿈을 꾸고 있었다니.

그런데 가만 보자.

꿈에서 내가 나왔고 잠꼬대로 욕설을 한 거면 나한테 했다는 얘긴데.

초능력자는 모르겠고 말 한마디로 천 냥 빚을 질 놈이라는 건 확실하다.

그래도 꿈에서 나한테 뭐라고 좀 했다고 갈굴 수도 없고 화딱지는 났지만, 그냥 넘길 수밖에 없었다.

한편 성환이한텐 내 고함 소리가 작았는지 여전히 고개를 흐느적거리고 있었다.

헤드폰 잭을 뽑아버리자 노트북 스피커에서는 시끌벅적한 락이나 힙합이 아닌 아주 고요한 음악 소리가 흘러나왔다.

'잘 자 토끼야. 곰돌이도 좋은 꿈 꿔. 별님이 소곤소곤…….'

성환이 자장가 동요를 들으면서 자고 있었던 거였다.

이제야 잠에서 깼는지 잔뜩 찡그리며 올려다봤다.

"뭡니까?"

"아니다. 계속 자라. 취향 참 독특하네. 유치원 오침 시간인 줄."

"이 음악이 어때서요? 해볼 거 다 해보다가 드디어 나한테 딱 맞은 거 찾은 건데. 예술에 편견이라도 있나 보네."

"응응. 편견이라니 오해야. 이 음악이 어때서. 나도 좋아해."

갑작스럽게 한마디를 덧붙이고는 호응을 유도하듯 쳐다봤다.

"병아리~."

성환이 자연스럽게 답했다.

"삐약삐약"

"참새~."

"짹짹."

미친놈.

어떻게 된 게 우리 천하태평에는 제대로 된 놈 하나가 없다.

"설마 너도 꿈꿨냐?"

성환이 놀란 듯 움찔했다.

"어떻게 알았지?"

"왜? 너도 꿈속에서 내가 나와서 막 쪼디?"

성환은 두 손을 절레절레 휘저었다.

"에이 설마 꿈에서까지 대표님을 볼라고요?"

"나도 네 꿈으로는 안 가 이 자식아. 그런데 무슨 꿈이었는데?"

"갑자기 깨는 바람에 잘 기억은 안 나는데 누군가가 찾아왔어요. 빨간 보따리랑 파란 보따리 주면서 선택하라고 한 거 같은데."

"아하! 그건 그냥 개꿈이야."

"개꿈이라뇨?"

"네 꿈에 최소한 너는 나왔을 거 아냐."

'네가 바로 개다'라는 말을 이해했는지 성환이 응수했다.

"개꿈 아닙니다. 대표님 안 나왔으니깐."

기분은 나빴지만 내가 먼저 시작했으니 그냥 참았다.

그나저나 두 놈들의 생각지도 못한 리액션에 방금 전까지 생각하고 있었던 어떻게 쫄지를 다 까먹어버렸다.

기억을 떠올리며 잠시 머뭇거리자 성환이 다그쳤다.

"말씀하시죠. 도대체 뭐가 내 꿀잠을 방해했는지 정도는 알아야죠."

원모도 궁금한 듯 내 자리 쪽으로 의자를 끌고 왔다.

쫀다고 해서 주는 거 없이 마냥 쪼기만 한다면 오히려 역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

쪼이기 전에 상대방에게 가치 있는 무언가를 줘야 한다.

그런데 모든 사람은 각기 다른 이유로 움직인다.

물론 돈이 가장 중요하겠지만 그게 전부는 아닐 테니 돈이 될 만한 것과 함께 각자 무언가 자기만의 성취동기를 찾아 그걸 건드려줘야 한다.

성환이한텐 물론 천하제일이다.

"성환아! 우리가 천하제일에 비하면 새 발의 피도 안되지만 계속 이렇게 성공하다 보면……."

성환이 대충 감이 왔는지 말을 끊었다.

"대표님. 혹시 설마 우리가 천하제일보다 커지기라도 할 거라고 생각하는 거예요?"

"설마가 아니라 확실해."

성환은 말도 안 된다는 듯 손사래를 쳤다.

"물론 당장은 어렵겠지만, 언젠간 그렇게 될 거야."

"그 언젠가가 도대체 언제일까? 저기서는 누나나 최동욱이 '어 그래 그때까지 기다려줄게' 하고 가만히 앉아만 있을까요?"

성환이 걱정이 어느 정도 이해가 됐다.

아무리 수익률이 좋다고 하더라도 애초에 작은 금액으로 시작했으니 어느 세월에 그 큰 대기업을 따라잡느냐는 거다.

물론 만에 하나 언젠가 따라잡는다고 하더라도 그 전에 조윤경이나 최동욱 중 누군가가 천하제일을 꿀꺽해 버릴 수 있었다.

그래서 자기는 여기 천하태평을 키우는 것보다는 상황을 봐서 천하제일로 금의환향할 기회만 노리고 있을 거다.

이놈한텐 다르게 접근해야 한다.

"테스트라고 생각해."

"테스트요?"

"맞아. 여기 천하태평을 짧은 시간에 어느 정도 크게 키우면 회장님께 네 경영 능력을 입증받을 수도 있는 거잖아. 예를 들어 천하제일 계열사 하나를 인수해버린다든지 아니면 다른 회사 인수할 때 천하제일과 경합해서 이기든지 하면 확실히 눈도장 받을 수 있지 않겠어?"

성환은 곰곰이 생각하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넘어왔다.

"테스트 기간이 길면 안 되지 않겠어? 네 말대로 조윤경이나 최동욱이 엄청 작업하고 있을 텐데."

"그렇긴 하죠. 보통 사람들이 아니니깐."

"그러니깐 빨리 나가서 좋은 투자처 물색해봐. 빨리빨리 키워야 할 거 아냐."

성환이 표정이 야리꾸리한 게 뭔가 깨달은 듯했다.

'뭐야 결국 이거였어?'라고 말하고 있었다.

그래도 어느 정도는 먹혀들었는지 여기저기 지인들에게 전화를 돌리기 시작했다.

이제 원모 차례다.

"원모야!"

"네 대표님."

아까 잠꼬대가 마음속에 걸렸는지 대답에는 긴장한 티가 역력했다.

"너 몇 년 전부터 결혼한다고 하지 않았냐?"

결혼이라는 말에 고개를 푹 수그렸다.

"계획은 계속하고 있습니다만 아직 시기가 아닌 듯합니다."

"시기라니? 결혼에 시기가 어딨어?"

"변두리에 쪼그마한 아파트라도 하나 마련해야지 않겠습니까."

예전엔 투룸이면 충분하다고 하더니 한 해 두 해 나이 먹어가면서 자연스럽게 눈도 높아지기 마련인가 보다.

"그래서 말인데. 우리 배당이나 한 번 할까? 여유자금 몽땅 다 투자할 필요는 없으니 일단 배당으로 빼놓고 필요한 사람들 있으면 쓰고 좋잖아. 너도 결혼해서 신혼집 마련할 수도 있고."

나야 뭐 특별히 쓸데가 없으니 배당받아서 가지고 있다가 내년에 거래소 생기면 그 돈으로 비트코인 사버리면 그만이다.

회사 명의로 사놓고 나중에 배당받으나 지금 배당받아서 내 돈으로 사는 거나 결국에는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나한테는 이러나저러나 똑같은데 선심 쓰듯 배려 한번 할 수 있으니 좋지 아니한가.

그러나 원모 표정이 밝지 않았다.

"대표님. 제 지분율이 얼만지 아십니까?"

생각도 못 했다.

원모의 지분율이 내 십 분의 일인 5%라는 걸 까먹고 있었다.

"아하. 그렇구나."

"제가 배당금으로 3억이라도 받으려면 회사가 60억을 배당해야 하는데요. 그것도 세금 떼면 확 줄겠지만요."

"나도 계산할 줄 안다."

"지금 법인계좌 잔고가 얼마인 줄 아십니까?"

"설마 60억?"

"맞습니다. 지난번 수호개발에 100억 쏘고 그 정도 남아 있습니다."

모두 배당해버리면 더 이상 투자하지 말자는 얘긴데 원모 얘기대로 말도 안 되는 거였다.

다른 방법을 찾을 수밖에.

그런데 역시 난 임기응변에 능하다.

아직 녹슬지 않았는지 바로 묘안이 떠올랐다.

"그럼 주임종장기대여금으로 가자."

"네?"

"넌 재무팀 짬밥을 그렇게 먹고 설마 주임종장기대여금을 모르는 거야?"

"아니, 그게 아니라."

"맞아. 회사 자금으로 주주인 너님한테 빌려주겠다고. 2억 정도면 괜찮지 않을까?"

배당이야 지분율대로 할 수밖에 없지만, 주주 등 특수관계자에게 돈을 빌려주는 건 이자만 제값 쳐서 받을 수 있다면 충분히 가능한 얘기다.

콕 집어서 원모한테만 여유자금에서 빼서 빌려줄 수 있다.

원모도 바로 이해하고는 환하게 웃어 보였다.

"대표님. 감사합니다."

역시 넘어왔다.

"그러려면 네가 지금 어떻게 해야 하겠어?"

"넵! 열심히 하겠습니다."

"아니 그렇게 말로만 다짐하고 끝내겠다는 거야?"

"아닙니다!"

이제는 어느 정도 눈칫밥이 늘었는지 원모는 대답과 동시에 외투를 걸쳐 입고는 사무실 밖을 뛰쳐나갔다.

각기 나름대로 가치 있는 걸 제시하고 나서 쪼니 확실한 동기부여가 된 것이다.

그런데 잠시 후 밖으로 나간 원모가 엘리베이터 앞에서 김철수이사와 인사하는 소리가 들렸다.

"안녕하십니까! 이사님."

"그래 원모야. 무슨 좋은 일이라도 있나 보지?"

"네. 그럴 일이 있습니다."

"댓바람에 부리나케 어디 가는 거야?"

"아침 굶고 왔더니 점심 좀 일찍 먹으려구요. 대표님께는 말씀 말아주십시오."

"알았어."

그럼 그렇지.

잠시 오해했었다.

저 자식이 당근만 빼먹고 채찍은 안 맞겠단 거였다.

김철수이사가 출입문에 들어서서 사무실 쪽으로 방향을 틀자마자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던 나와 눈이 마주쳤다.

"에고 깜짝이야. 누구 기다려?"

"기다리긴요. 그런데 혹시 원모 나가는 거 보셨습니까?"

"어? ……."

잠시간의 침묵.

워낙 순식간이라 당황해서 어찌할 바를 모르는 거다.

"방금 나가는 거 같던데."

"어디 간다는 말은 안 하고요?"

뚫어지게 쳐다보는 내 눈을 애써 외면하고는 지나가는 투로 답했다.

"특별히 어디 간다는 말은 안 한 거 같아."

내가 잘못 물어본 거였다.

김철수이사는 거짓말도 안 했을뿐더러 원모와의 약속도 지킨 거다.

원모가 밥 먹으러 간다고만 했지 어느 식당 간다고까지는 얘기하질 않았으니.

역시 김철수이사의 위기 대응 능력은 알아줘야 한다.

잠시 후.

소파에 누워 팔을 쭉 뻗고 잠이나 청할까 했지만, 누군가 사무실 벨을 누르는 소리가 들렸다.

손님은 물론이고 택배 올 것도 없는데 이상했다.

김이사와 성환이 모두 화장실이라도 갔는지 보이지 않아 할 수 없이 몸을 일으켜 문 쪽으로 갔다.

투명 유리문 너머에는 김범룡대표가 서 있었다.

몇 년 전 우리가 3억 원을 투자한 이후로 신발추천 어플 등 몇 개 어플이 잘 풀리고 있다는 얘기는 들었었다.

주주총회에 참석하라는 통지는 받았지만, 괜히 방해하지 말고 지켜보자는 취지에서 참석하지 않았었다.

그런데 무슨 급한 일이라도 생겼는지 연락도 없이 찾아온 것이었다.

일단 반가운 마음에 안으로 들였다.

"오랜만입니다. 김범룡대표님. 미리 연락이라도 주시지 그러셨습니까."

"괜찮습니다. 그냥 지나가는 길에 들른 거니 신경 쓰지 마십시오."

예전에 처음 봤을 때는 구멍 난 티를 걸치고 컴퓨터만 붙잡고 살던 거지꼴이었다.

어느새 말끔하게 변했는지 정말 같은 사람인지 의심이 될 정도였다.

얼핏 봐도 머리부터 발끝까지 명품을 두른 것처럼 반짝반짝했다.

초심을 잃었나 살짝 걱정되긴 했지만 그래도 패션 관련한 사업도 하는 마당에 이 정도 꾸미는 거야 당연하지라고 생각했다.

막 아무거나 걸치고 후줄근하게 다니면 특히 한국 사회에선 대놓고 까고 무시했으니깐.

"무슨 하실 말씀이 있으신 거 같은데요."

"네. 실은 상의드릴 일이 있어서 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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