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손안의 재벌-59화 (59/191)

59화 던지기

수화기 너머로 알코올 냄새가 전해져오는 듯했다.

"뭐야? 너 아직도 룸살롱 다녀? 정신 못 차렸어?"

"아니. 클럽이에요. 오랜만에 LA에서 친구가 와서."

"클럽이 뭐가 문젠데?"

"그러니깐요. 나도 잘 모르겠어요. 잠깐 잠들었는데 깨 보니깐 사람들이 막 둘러싸고 있었고 막 뭐라고 욕하면서 끌고 와서는 검사하라고 하고. 아무튼 술도 안 깨서 정신없이 그냥 끌려와서……. 무슨 영문인지 모르겠어요."

"무슨 검사라는데?"

"잘 얘기를 안 해줘요. 그냥 소변 받아 오라고 하고 머리카락이랑 다리털까지 쥐어뜯고 했는데, 왜 그런 건지……."

영화에서나 뉴스로만 지켜보던 마약 검사였다.

재벌 2세, 클럽, 마약.

뭔가 연관성이 있는 단어들이 머릿속을 스쳐갔다.

"약했어?"

"약이라뇨?"

"마약 말이야. 뽕! 대마! 엑스터시! 이런 거……!"

"장난하십니까? 날 어떻게 보고. 망나니, 개 날라리는 몰라도 뽕쟁이는 아니죠. 선은 지킨다고! 물론 마리화나는 예외지만. 미국에서 술 마시고 가끔 해 본 적은 있어도 다른 건 절대 네버, 한 번도 없어요. 마리화나도 물론 한국 와선 한 번도 해 본 적 없고."

다급한 와중에도 또박또박 말하고 있었다. 게다가 굳건한 말투까지.

지금 내뱉은 말은 분명 사실일 것이다.

비서팀의 연락을 받고 급하게 같이 찾아간 곳은 경찰서가 아닌 검찰청사였다.

그러나 변호인이 아닌 관계자는 접근을 불허한다고 해서 성환을 만날 수는 없었다.

검찰청사 주변은 이미 특종 냄새를 맡고 달려든 취재진들로 가득했다.

재벌 2세의 마약 사건은 보나 마나 헤드라인이다.

투약 여부는 중요한 게 아니었다.

이미 검찰청사로 붙들려 왔다는 거 자체가 이미 뉴스거리였다.

나중에 진실이 밝혀지고 말고는 중요한 게 아니었다.

그저 오늘의 기사거리만이 중요하다.

그나마 다행인 건 외부 로펌 변호사를 선임하여 조력을 받게 한 것이다.

이상현의 농간은 피할 수는 있게 되었다.

담당 변호사는 두 시간의 면담을 마치고 취재진을 피해 기다리고 있던 우리 차량에 올랐다.

"지금 안에서 무슨 일이 있는 거죠?"

"서울지검 마약수사부에서 첩보를 입수하고 클럽을 급습해서 현장 검거했다고 합니다."

"조성환님은 그런 사실이 없다고 하는데요?"

"네, 저도 이해는 안 가지만. 어쨌든 술 취해서 깜빡 잠이 든 바람에 기억나는 게 하나도 없다고 하더라고요."

"그럼 현장에서 검거는 됐지만, 혐의는 부인한다는 거네요."

"그렇죠. 일단은 본인이 아니라고 하니깐 믿어 보는 수밖에요. 내일 아침이면 소변이랑 체모검사 결과가 나온다고 하니 일단 기다릴 수밖에 없습니다."

절대 아니라곤 하지만 검찰에서 직접 나선 분위기로 봐서는 결과가 안 좋을 게 뻔했다.

지난 생에서는 성환에게 마약 문제가 한 번도 불거진 적이 없었다.

그래서 이런 상황은 꿈에서조차 상상하지 못했다.

그것도 이제 막 내 길을 찾아 떠나려는 찰나에.

* * *

다음 날.

TV 뉴스에는 첫 소식으로 성환이의 마약 사건이 크게 보도되었다.

"천하제일 그룹 장남 조모씨가 마약을 투약했다는 첩보를 입수한 서울지검 마약수사부는 어제 강남의 모 클럽을 급습하여 조모씨를 체포하고 마약 검사를 실시하였다고 합니다. 오늘 오전 마약 투약 검사 결과 조씨의 소변 및 체모에서 다량의 엑스터시 성분이 검출되었다는 소식입니다."

주요 일간지 헤드라인 역시 자극적이었다.

재벌2세 마약 환각파티

인터넷 뉴스 댓글에는 비난 일색이었다.

[망나니 재벌 2세 그럴 줄 알았다]

[사형시켜버려라]

[미국으로 쫓아내라]

갖가지 욕설이 댓글 창에 도배되었다.

천하제일엔터 주가는 개장하자 마자 하한가로 내리꽂아서 거래조차 되지 않았다.

성환이도 성환이지만 한편으론 내 종잣돈 걱정이 밀려왔다.

어제 종가로는 분명히 1억 원이었는데.

이 자식 환각 파티 한 번에 하루 만에 내 돈 1,500만 원이 공중으로 사라져 버렸다.

'이런 개시끼! 어제 주식 다 팔아버릴걸…….'

후회해 봐야 소용없었다.

주가는 언젠간 다시 회복이야 하겠지만, 그게 언제일지는 기약할 수 없다.

게다가 어제 퇴사하리라 굳게 다짐했었는데, 하루도 안 돼서 모든 상황이 바뀌었다.

성환이 자식이 어떻게 되든 말든 나 몰라라 하고 퇴사할 수도 없게 됐다.

복수를 위해서도 그렇지만 주가가 바닥 치는 바람에 종잣돈마저 날아가 버렸기 때문이다.

언론사 후배들을 만나러 나갔던 김철수차장이 사무실로 복귀했다.

표정이 여간 심상치 않은 게, 좋지 않은 소식을 들고 온 모양이다.

"이건 당한 거야. 짜인 각본에 뒤통수 맞은 거지."

"네? 왜요?"

"기자들 사이에서 말이 돌고 있나 봐. 경찰도 아니고 서울지검 마약수사부에서 어떻게 알고 직접 현장을 덮쳤겠어? 누군가 힘 있는 자가 작업한 거지. 거기다 조성환님 말고 다른 일행들은 아무도 검출 안 됐대."

"혼자 할 수도 있는 거잖아요. 화장실 같은 데서."

"물론 그렇긴 하지만 검찰청사로 들어가기도 전에 몇몇 언론사에서 어떻게 알았는지 진 치고 있었다잖아. 이건 미리 알고 흘린 거지. 앞뒤가 딱딱 들어맞잖아."

"그럼 누가 쳐놓은 덫에 걸렸다는 거예요?"

"바로 그거야. 던지기 수법에 당한 거지. 조성환님은 자기가 정말 약 먹지 않았다고 생각하고 있을 거야. 누군가 몰래 탔겠지."

던지기, 덫, 힘 있는 자, 이 사태로 이득을 볼 누군가.

역시 조윤경밖에 없다.

도대체 얼마나 악랄하면 자기 동생을 마약사범으로까지 만들 수 있단 말인가.

하긴 회귀 전에도 사람 목숨을 파리 목숨 정도로 알 정도니 충분히 그럴 법했다.

침울해진 사무실 분위기.

원모나 건환이도 도무지 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 듯 괜히 탕비실만 왔다 갔다 하고 있었다.

마침 사무실 정적을 깨는 전화벨 소리.

비서실 조성환 담당 직원이었다.

"오후에 담당 변호사가 조성환님 면회하면서 들은 말씀을 전해 주신다고 하니 참석 부탁드립니다. 조성환님께서 꼭 미팅 때마다 참석해 달라고 요청하셨습니다."

"저 말고도 참석하는 사람 있습니까? 혹시 법무팀 사내 변호사나."

"조성환님도 법무팀은 참석시키지 말라고 하시긴 했지만, 애초에 회장님께서 안 된다고 하셔서 고려대상 자체가 안 되었습니다."

"네?"

"회장님께서 개인적인 일탈에 회사 인력을 투입할 수 없다고 가이드라인을 주셨습니다."

아무리 공과 사를 확실히 구분한다고 해도 아들인데 너무 냉정한 거 아닌가.

평상시 조인철회장의 스타일을 볼 때 아들이야 콩밥 좀 먹으면 그만이지 정도로 그칠 수 있을 것이다.

그에게는 지금까지 일궈놓은 천하제일그룹이 훨씬 중요했을 것이다.

* * *

오랜만에 찾은 지주사 빌딩.

삐이!

사원증을 대 봤지만, 출입구가 열리지 않았다.

계열사 사원증으로는 들어갈 수 없는지 몰랐었다.

할 수 없이 안내데스크를 찾았다.

"어떻게 오셨습니까?"

"천하제일엔터 직원인데요. 비서실 미팅이 있어서 왔습니다."

방문자 카드에 목적과 연락처를 기재하고 있는데 뒤에서 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네가 여긴 무슨 일이야?"

뒤를 돌아보니 이상현이 팔짱을 낀 채 노려보고 있었다.

인사도 없다.

이제는 아예 대놓고 적대감을 드러내는 사이가 된 것이다.

방문자 카드를 보더니 비아냥거리 듯 고개를 깔딱거렸다.

"비서실 김부장? 그 사람도 이제 할 일 없어지겠네. 똥줄 좀 타겠는데?"

"네가 신경 쓸 일은 아닌 거 같은데."

"빨리 다른 줄이나 찾아. 썩은 동아줄 붙들어 매지 말고. 그러게 진작에 잡으라고 할 때 잡지. 하여간 지 잘난 척은 실컷 하더니."

"너나 줄 제대로 잡아. 같이 휩쓸려서 빠져 죽지 말고. 특히 동작대교 같은 데서."

"뭐라고? 이게 어디서……!"

이상현이 흰자를 띄우고 덤빌 듯하다가 로비에 사람이 많은 걸 깨닫고는 멈췄다.

"언제까지 그렇게 고개 빳빳이 쳐들고 다니는지 내가 지켜본다."

손가락으로 자기 두 눈을 가리킨 다음 다시 내 쪽을 가리켰다.

그리고는 일행과 함께 출입구 안쪽으로 들어갔다.

집중하니 대화 소리가 들려왔다.

"누구세요?"

"누구? 저 새끼? 예전 재무팀 천차장이라고 조성환 따까리. 같이 X됐지 뭐."

"그나저나 조성환님 친구는 어떻게 됐어요? 잘 숨었데요?"

"숨긴 뭘 숨어. 바로 미국 날랐지. 어차피 참고인에 혐의도 없어서 출국 금지도 안 났는데. 그날로 바로 비행기 타고 갔어. 비즈니스 끊어주니까 아주 좋아죽더래."

"좀 그렇네요. 친한 친구라고 하더니."

"참 순진하고만. 이 세상에 친구가 어딨어? 나중에 어떻게 등쳐 먹을까 평상시 약 치면서 키핑해 놓는 게 친구라는 거야."

엘리베이터에 오르더니 더 이상 목소리가 들려오지 않았다.

이상현이 말한 그대로다.

그가 말한 약쳐 놓고 믿게 만든 다음 등쳐 먹는 친구라는 건 바로 나였다.

* * *

면회를 다녀온 변호사가 수첩을 열더니 성환이에게 들은 내용을 말해줬다.

"제임스 한국 오랜만이지? 마셔 마셔. 오늘은 내가 다 쏜다."

"오케이. 재벌 2세 친구 둔 덕 좀 제대로 보자."

"뭐, 하고 싶은 거라도 있어? "

"하고 싶긴. 친구 얼굴 봤으면 됐지. 그런데 내가 아는 여자애들 좀 불러도 될까?"

제임스 스타일로 볼 때 화끈한 친구들일 거다.

괜히 유라한테 걸리기라도 한다면 심히 곤란한데…….

"맘대로……. 근데 나 여자친구 있다."

"알았어. 유라 잘 지내지? 기사로 봤어 너네 사귄다는 거. 미국에서 그렇게 애틋하더니 결국 만났구나."

마치 입구에서 기다리고 있었나.

전화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여자 두 명이 들어왔다.

시스루 소재의 옷도 그렇지만 한껏 솟은 눈썹과 거친 립스팁, 아이라인은 어디가 끝인지 모르게 위로 치켜올린 게 그야말로 미국 스타일이었다.

"오빠 한 잔해요!"

"운전해야 해."

"대리하면 되잖아요."

"이미 과장이거든."

이상한 팀장하고 같이 있다 보니 나도 모르게 배운 듯.

유머라고 별 시답지도 않은 말이 튀어나와 버렸다.

"어머머!"

그러나 옆자리 여자 손뼉을 치며 자지러지듯 웃어 젖혔다.

뭐야. 웃어?

이게 웃겨?

한참을 웃다가 머리를 한 번 쓸어 올리더니 그윽하게 쳐다봤다.

"오빠, 마셔."

거부하기 어려웠다.

"그래. 오늘은 대리하지 뭐. 내일 다시 과장하면 되니깐."

언젠간 회장도 할 거고.

그렇게 한 잔, 두 잔.

여기까지가 조성환이 기억하는 마지막 순간이었다.

이런 거까지 다 적어 오다니.

접견 전문 변호사의 자세가 딱 잡혀 있었다.

"던지기에 당한 게 맞네요."

"네, 조성환님 본인도 이제 그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아무리 어렸을 적 친구라고 해도 모든 상황은 그자의 짓임을 말해 주고 있었다.

더 이상 부인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제임슨가 하는 친구도 그렇지만, 여자 두 명은 지금 어디 있는지 아세요?"

"세 명 모두 바로 사건 당일 마약 검사해서 음성 판명받고 참고인 조사만 마친 채 돌아갔다고 합니다."

이 변호사는 아직 제임스가 미국으로 튀어 버린 걸 모른다.

"혹시 제임스가 미국으로 돌아갔으면 잡아 오거나 할 수 있어요?"

"혐의도 없고 자발적으로 들어오지 않는 한 현실적으로 불가능합니다."

"그 여자들 연락처도 없고요?"

"네. 흔적도 없이 사라졌어요."

무슨 사연이야 있겠지만 어렸을 적 친구한테 어떻게 그럴 수가 있을까.

하긴 뭐 이상현처럼 다리 위에서 뛰어들게 만든 것도 아닌데 그 정도면 양호하다.

"방법이 없을까요?"

"네, 그 사람들의 범행을 밝히지 않는 이상 어렵다고 봅니다."

"형량은요? 초범인데 집행유예 받을 수 있지 않을까요?"

"죄를 인정하고 반성하느냐에 달렸는데, 지금처럼 계속해서 부인하면 어려울 수도 있습니다."

그놈들을 잡는다고 한들 자기들이 덫을 놓은 것인지, 누가 사주했는지 절대 밝히지 않을 것이다.

설령 밝힌다고 해도 이미 손을 다 써놔서 증거를 찾을 수도 없을 테고.

그냥 판사한테 죄를 인정하고 반성하는 편이 최선이다.

며칠 뒤.

비서팀 직원과 함께 성환의 접견 변호사와 다시 만났다.

"조성환님께서 끝내 본인 의사에 따른 투약 혐의를 인정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당연히 반성문 제출도 안 할 거고요. 이대로라면 주위에서 아무리 선처를 호소하는 탄원을 많이 올려도 정상 참작이 어려울 거 같습니다."

"아니, 왜요? 그냥 인정하고 반성문 쓰고 탄원서 몇 개 받으면 집행유예가 확실한데 도대체 왜 그런 거죠?"

"본인께선 원칙대로 하겠다고 하십니다. 거짓말은 못 하시겠다고 합니다."

이 자식이 정말 콩밥 먹을 작정이라도 한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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