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손안의 재벌-51화 (51/191)

51화 데뷔

천하제일엔터가 50%의 지분으로 투자한 키썸의 첫 스타트는 순조로웠다.

성환이 여자친구가 속한 그룹 에이더가 정규앨범을 발매했으며 기대 이상의 성적을 냈다.

그런데 문제는 새롭게 기획하고 있는 신규 걸그룹이었다.

곡과 안무는 모두 준비가 되었지만 멤버 구성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얘기가 들려왔다.

그 문제를 해결하고자 키썸 오대표와의 미팅 자리를 마련했고 성환과 함께 참석했다.

첫 합작 작품의 성공 덕분인지 오대표 얼굴엔 예전의 위압적이었던 인상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고, 오히려 너그러운 미소까지 내비치고 있었다.

오대표와 눈이 마주치자마자 난 두 손을 번쩍 들어 쌍따봉을 날렸다.

"아이고 오대표님. 앨범 대박 축하드립니다."

"에이 뭘요. 제가 뭘 한 게 있다고요. 우리 팀 센터 유라가 다 한 거죠."

겸손한 멘트와 함께 머리를 긁적거리며 성환 쪽을 힐끗거렸다.

아부도 할 겸 모회사 최대 주주의 눈치를 살펴보고 있는 것이었다.

"감사합니다. 오대표님. 이제 대기실도 따로 쓰고 아주 방송할 맛 난다면서 유라가 많이 좋아하더라고요."

성환이 놈은 이제 적당히 상대방을 띄워주며 받아줄 줄도 알게되었다.

"그런데 오대표님 듣자 하니 차기 그룹 곡 준비도 마치셨다고 하던데 왜 론칭을 안 하시는 거죠?"

"그게 좀……. 안무 연습까지 다 해놨는데 연습생 한 명이 내뺐어요. K사로 간다고요."

곧 데뷔한다는데 내뺐다는 게 하도 어이없었는지 오대표는 땅이라도 꺼질 듯이 한숨을 내쉬었다.

"K사요? 아니, 그럴 수도 있어요?"

"이번에 K사에 잘나가는 그룹 멤버 하나가 빠지나 봐요. 그 자리에 넣어주겠다고 채 간 거 같습니다. 그 친구 입장에서야 뜰지 안 뜰지 불확실한 신입 그룹보다는 이미 검증된 그룹에 가는 게 아무래도 좀 나았겠죠."

"아니,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계약이란 게 있는데……."

"연습생 오래한 친구라 곧 계약이 끝나거든요."

상도덕이고 뭐고 없는 정글인 건 이 바닥이라고 다를 게 없었다.

"음……. 그럼 다른 멤버 구해서 하면 되잖습니까. 그때 프로필 사진 보니깐 연습생 많으시던데요. 우리 천하제일엔터에도 연습하는 친구들 많이 있으니 필요하시면 요청하셔도 되지 않을까 싶고요."

"그게 좀 곤란한 게……. 꼭 그 친구가 필요하거든요."

"아니 왜요?"

"중국 시장을 타겟으로 해서 키워온 친굽니다. 초등학교 때부터 중국어 선생님 붙여가며 7년 동안 기껏 네이티브처럼 만들어 놨는데 K사에서 손 쓴 거 같습니다. 저희와 비슷한 이유로 구미가 당겼겠죠."

"꼭 중국어를 하는 멤버가 필요합니까?"

"네, 중국은 역시 자본 단위가 다르다 보니까 중국시장을 타겟으로 잡으려면 반드시 필요합니다."

"남은 멤버들한테 지금이라도 가르치면 안 될까요?"

오대표는 어이가 없었는지 그저 눈을 치켜뜰 뿐이었다.

"네, 그렇죠……. 어렵죠, 언어라는 게. 게다가 중국어. 허허."

주재원 경험 덕에 중국어 좀 할줄 안다고 내가 너무 쉽게 생각했었나 보다.

머쓱한 분위기에 한참 동안 정적이 흘렀다.

갑자기 답답하다는 듯 성환이 한마디 내뱉었다.

"아니 두 분 정말 답답하시네. 그냥 중국인 멤버로 채우면 되잖아요."

"중국인?"

"네, 중국인요. 중국어 배운 한국인 말고 그냥 중국인이요. 네이티브!"

중국인이라.

갑자기 한 명이 떠올랐다.

"설마 그 친구?"

"네. 팀장님이 생각하는 바로 그 친구 양양이요. 청도 J사 정동사장 딸."

왜 그 생각을 진작에 못했을까.

'한국 소속사에 꽂아줬으니 마땅히 해야 할 도리는 다했다'라고 안주했다는 생각에 속으로 부끄러워지기까지 했다.

양양은 중국인이니 당연히 중국어는 pass!

거기다 성악 전공을 했으니 노래 실력은 말할 것도 없을테고.

이미 1년을 훌쩍 넘기도록 한국에서 연습생 생활을 했으니까 춤 실력도 아주 형편없는 수준은 아닐 것이었다.

듣고 보니 맞는 말이라고 생각한 듯 오대표 얼굴이 활짝 피었다.

***

서둘러 오대표와의 미팅을 끝내고 연습생들이 있다는 사무실로 뛰어 들어갔다.

그 시간에는 마침 연습생들이 학교를 마치고 복귀하는 중이었다.

사무실로 들어온 양양은 못 보던 사이에 훌쩍 자라 있었다.

양양이 먼저 인사를 건네지 않았다면 못 알아봤을 뻔했다.

앳되고 청순한 학생 이미지와 함께 큰 눈망울과 핑크빛 입술의 성숙한 이미지가 겹쳐 보였다.

단순히 예쁘다 정도보다는 스타성이란 게 느껴질 정도였다.

"안녕하세요. 과장님. 오랜만입니다."

양양은 날 알아보고는 반갑게 인사를 건넸다.

그새 한국어가 많이 늘었는지 발음이 꽤나 정교했다.

"안녕하세요. 양양. 설마 중국어 잊어버린 건 아니겠죠?"

중국어로 건넨 인사에 그저 웃음으로 답했다.

"양양! 이제 데뷔할 준비 되었나요?"

"네!"

질문과 동시에 대답이 튀어나왔다.

데뷔라는 말에 감격했는지 터져 나오는 울음을 참으려고 꽉 다문 입술.

그러나 자기도 모르게 뺨을 타고 흘러내리는 한 줄기 눈물.

이 한 줄기 눈물은 그간의 노력과 맘고생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것만 같았다.

사실 양양이 들어오기 전에 연습생 관리팀 직원으로부터 정보를 들었다.

그동안 악착같이 연습한 덕에 누구보다도 춤을 잘 춘다고 했다.

게다가 성악을 한 덕분인지 호흡이 매우 좋아 춤을 추면서 동시에 라이브까지 가능하다며 엄지를 치켜들었다.

그야말로 완벽한 준비가 되어있었던 것이었다.

오대표와의 협상 때 프로필 사진첩을 넘기면서 보았던 연습생 세 명에 양양이 합류함으로써 4인조 다국적 걸그룹 포에버가 완성되었다.

키썸 기획력과 천하제일엔터 자본력의 시너지는 빛을 발했다.

국내 유명 걸그룹 곡들을 많이 만들어낸 작곡가가 아니라 미국 Pop 음악계에서 명망있는 작곡가를 섭외하여 곡을 받았다.

기존의 국내 걸그룹 곡들과는 완전히 다른 분위기의 곡이라 처음 들을 땐 좀 이상하다 싶었지만 들으면 들을수록 빠져들었다.

자기도 모르게 웅얼대며 따라부르는 중독성 있는 곡들이 대부분이었다.

천하제일엔터측에서는 포에버의 신곡 프로모션을 통해 적극적인 홍보에 나섰다.

데뷔 전부터 전략적 마케팅에 총 역량을 투입한 것이었다.

처음엔 정체를 밝히지 않음으로써 호기심을 자극한 후 점점 티저를 노출시키며 관심을 꾸준하게 유도했다.

***

드디어 D-day.

강남 모 스튜디오에서의 쇼케이스 행사를 시작으로 포에버가 드디어 데뷔하게 됐다.

쇼케이스 시작 전 맨 앞 VIP석에 앉아 기다리는데 낯익은 얼굴의 남자가 눈에 들어왔다.

청도 J사의 정동사장이었다.

"축하드립니다. 동사장님."

정동사장은 내가 악수를 청하며 내민 손을 두 손으로 잡아끌고서는 위아래로 격렬히 흔들었다.

중국식으로 최대한의 반가움을 표현해준 것이었다.

"팀장님께 정말 감사드립니다. 가출한 딸을 북경까지 가서 찾아주신 것도 모자라서 한국으로 보내 주시고 이렇게 가수 데뷔까지 시켜 주시고요. 제가 뭐라고 감사의 말씀을 드려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아닙니다. 제가 한 게 있나요. 다 따님이 꿈꾸고 노력한 덕분이죠. 분위기를 보면 반드시 크게 성공할 겁니다."

"성공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방금 딸아이의 눈을 봤어요. 뭐랄까 정말 태어나서 처음 보는 듯한 기쁨의 눈망울이었습니다. 전 그것만으로도 충분합니다."

정동사장 또한 못 보던 사이에 뭔가를 깨달은 듯 정신적으로 성장한 느낌이 들었다.

옆에 있던 성환이 나와 정동사장을 번갈아가며 쳐다보고는 물어왔다.

"뭐지? 왜 통역을 안 해주지?"

자기한테 얘기하는 줄로 알았나 보다.

역시 주인공 병에 걸린 놈이다.

"내가 네 통역사냐?"

"아니, 내가 중국어 전혀 못 알아들으니까 그러죠. 정동사장이 뭐라고 한 거예요?"

예전에 북경 친구로부터 도움받은 것도 그렇고 새 멤버로 양양을 투입하자고 한 것도 모두 자기 아이디어 아니냐는 눈빛이었다.

성환이 말이 어느 정도 일리는 있었다.

"그래. 정동사장님이 네가 힘써준 덕분에 양양이 데뷔했다고 고맙다고 했어."

성환은 내 말을 듣고는 그윽한 표정으로 정동사장의 손을 지긋이 잡았다.

"It's my pleasure."

영어도 못알아들을뿐더러 무슨 상황인지도 모르는 정동사장이 당황스런 눈빛으로 내 쪽을 쳐다보았다.

귀찮기도 하고 해서 대충 직역해 주었다.

"자기의 기쁨이라고 했습니다."

뭔가 오해한 듯 소스라치게 놀란 정동사장은 조용히 손을 빼고는 몰래 바지에다가 문질러댔다.

더는 대화를 주고받지 않아 통역할 필요가 없어져서 오히려 다행이었다.

정동사장은 뒤풀이가 끝나고 헤어질 때까지 성환과 인사는커녕 일부러 눈조차도 마주치지 않았다.

데뷔 기념 쇼케이스는 대박이었다.

티저로 한층 호기심을 북돋웠었는지 시작부터 폭발적인 반응을 불러일으켰다.

* * *

어느 날.

원모가 누군가와 통화를 하다 끊더니 바로 나를 찾았다.

"팀장님. 이번에 케이블 방송 채널에서 새로운 오디션 프로를 론칭한다고 합니다. 우리 회사에서도 지원하는 게 어떻겠습니까?"

"대형기획사 소속 연습생도 지원할 수 있는 건가?"

"막는다고 해도 방법은 얼마든지 있죠. 계약 해지하고 지원한 다음에 나중에 다시 계약하면 되니깐요."

눈 가리고 아웅이지만, 이 바닥이 다 그렇고 그런 거다.

원모도 이 바닥 물을 조금 먹다 보니 어느새 익숙해졌는지 조금은 능구렁이 같아졌다.

"어떤 컨셉이라는데? 장르는 뭐라고 하고?"

"장르가 따로 정해진 건 아닌 거 같지만 솔로 가수 대상이라고 합니다. 오디션이라면 싱어송라이터 분위기가 나는 친구들이 적당할 거 같습니다."

"원모야. 그러면 뭔가 딱하고 떠오르는 사람 있어?"

잠시 곰곰이 생각하는 듯하더니 생각난 듯 말했다.

"팀장님 혹시 청계천에서 버스킹하던 그 친구는 어떨까요?"

"그래, 맞아! 바로 불러 봐."

이미 우리에겐 준비된 싱어송라이터 Jay가 있었다.

오랫동안 청계광장에서 버스킹으로 갈고 닦은 실력파 가수였다.

회귀 전의 기억으로도 무슨 오디션 프로를 통해 데뷔하여 성공했으니 누구보다도 적임자였다.

오랜만에 만난 Jay는 제대로 된 기획사에서 준비하다 보니 상당히 많이 변해 있었다.

흔히 말하는 카메라 마사지가 제대로 먹혔다.

수많은 카메라테스트를 통해 피부 톤에 맞는 적당한 조명을 찾았고, 선진화된 화장 기법을 통해 외향적으로 한층 업그레이드되어 있었다.

한 달은 안 감은 듯, 한 뭉텅이씩 떡져 있는 머리카락에 누더기 같은 옷을 걸친 길거리 가수의 이미지는 완전히 사라졌다.

"Jay씨는 요즘 어떻게 데뷔준비를 하고 계시죠?"

"네. 음……. 앨범에 넣을 곡 쓰면서 연습하고 있습니다."

"앨범 발매하고 데뷔하려는 거죠?"

"네. 그렇게 되는 걸로 알고 있는데요……."

뭔가 모르게 자신 없는 말투였다.

"무대에서 먼저 공연하면서 데뷔하는 건 어떤가요?"

"버스킹이라면 이미 많이 서 봤는데요?"

"그런 거 말고요. 케이블 티비요."

"네? 티비요? 방송 나간다고요?"

"네. 새로운 오디션 프로를 론칭한다는데, Jay씨가 딱일 거 같습니다. 자작곡을 선보일 기회가 있을 수도 있고요. Jay씨라면 꼭 상위권에 랭크될 수 있을 거예요. 조금 생각해 보시고 알려 주세요."

"열심히 하겠습니다!!"

대답까진 불과 일 초도 안 걸렸다.

찬밥 더운밥 가릴 처지도 아니라, 전속 계약서마저도 한 번도 안 훑어보고 사인한 마당에 이 좋은 기회를 잡지 않을 이유가 없었을 것이었다.

"좀 더 생각해 보셔도 되는데……. 데뷔가 꼭 이 방법밖에 없는 것도 아니고요."

"아닙니다. 앨범 내고 뮤직비디오 공개하면서 데뷔하는 건 제 스타일이 아닙니다. 전 무대 체질이에요. 팀장님도 아시잖아요. 버스킹 보시면서 오늘부터 팬이라고 해 주시기도 했고 기타 케이스엔 제법 큰 돈도 넣어 주셨고요."

물론 공연에 감동을 받긴 했지만, 단지 그거 때문에 오만 원짜리를 놓은 건 아니었는데.

Jay의 진지한 눈빛을 보니 차마 사실을 말할 수는 없었다.

'그땐 네가 쳐다보고 있어서 돈을 내긴 내야겠고, 지폐가 오만 원짜리 한 장밖에 없어서 어쩔 수 없이 낸 거다.'라고.

"네, 각오가 그러하시다면 추진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열심히 해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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