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손안의 재벌-29화 (29/191)

29화 담당

'누구도 피할 수 없는 것은 죽음과 세금뿐이다.'

미국 건국의 아버지라 불린 벤자민 플랭클린이 그랬다는데 여러모로 맞는 말이다.

기본적으로 회사는 일 년에 한 번씩 얼마를 벌었고 세금을 얼마 낸다고 신고하고 납부한다.

규모가 매우 작은 회사 아니면 대부분은 세무사가 대행해 주고 있기는 하다.

세무사는 도장만 찍어줄 뿐, 사실상 회사 자체적으로 신고서를 작성하는데, 많은 회사들이 세금을 줄이려고 매출과 이익을 축소해서 신고하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통상 5년에 한 번 정도 정기 세무조사를 통해 제대로 신고했는지를 조사하고 실수했거나 고의로 누락한 것을 찾아내곤 한다.

사실 털어서 먼지 하나 안 나오는 데가 있을까?

무엇이든 한번 제대로 파 보면 잘못한 것들 아니면 하다못해 실수라도 하나는 반드시 나오게 되어 있다.

그래서 평상시에 세무공무원들과 돈독한 관계를 유지해야 하는 것이다.

조인철 회장도 초창기에 세무조사 한 번을 직접 대응해보면서 그 몇 달간 본인이 십 년은 더 늙었다고 얘기했었다고 한다.

그 뒤로는 세무조사 대응은 물론 평상시 국세청 대관업무 비용에 관해서는 그 누구도 어떠한 이의도 제기할 수 없게 되었다.

이는 재무팀장의 한도 없는 법인카드 사용에 대한 명분이 되었다. 동시에, 세무조사시 과하게 뚜들겨 맞으면 바로 짐을 싸야 할 수도 있는 양날의 검도 되었다.

임상무는 자기의 존재 이유를 부각 시키느냐 그냥 짓밟혀서 버려지느냐의 기로에 서 있는 것이다.

임상무의 통보를 들은 김병국부장은 두 손으로 머리를 쥐어 짰다.

"으아아. 올해 아직까지 소식 없길래 그냥 지나가는지 했는데. 하필이면 왜."

나도 미치고 환장하겠다.

"그러게요. 부장님. 왜 하필 올해."

세 사람 모두 똑같은 심정일 것이다.

임상무는 속으로 올가을에 부대표로 승진해서 경영지원실장이나 계열사 대표이사로 갈 생각이었을 것이다.

김병국 부장 역시 올해 임원 승진대상자다. 큰 사고만 없다면 분명히 승진할 테고 계열사 재무팀장 정도로 영전할 거라는 꿈에 부풀어 있었을 것이다.

나 역시 마찬가지. 몇 년만 버텨 종잣돈 모은 후 사표 던지고 본격적인 전업투자가의 길로 갈 생각이었다. 그런데 이런 큰 고비가 온 것이다.

게다가 세무신고는 원래 송지환과장 담당이었다. 그런데 송과장이 중국으로 파견 나가는 바람에 인력 충원 때까지 잠시 내가 맡은 건데 완전 똥 밟았다.

"으허허허."

임상무 실성했나 갑자기 웃었다.

웃기다기 보다는 허탈한 마음에 자기도 모르게 탄식처럼 새 나왔을 것이다.

"병국아 이번에 문제될 만한 거 없겠지?"

김병국부장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답했다.

"그걸 어떻게 알아요? 게다가 털어서 먼지 하나 안 나오는 게 있겠습니까?"

임상무 자기도 재무팀 경리부장 출신이면서 물어볼 걸 물어봐라는 거다.

김병국부장 말이 맞았다.

조사하려고 털어보면 뭐든 털리게 되어 있다.

털어서 하나도 안 나왔다는 건 안 털었다는 말이거나 나왔는데도 눈감아 줬다는 말이다. 진짜로 털 게 아무것도 없었다는 뜻은 결코 아니다.

회사 입장에서야 추가 징수되는 세금이 하나도 없으면 베스트다. 그런데 그건 세무조사 나온 팀의 실적에 도움이 안 된다.

너무 세금이 안 나오면 유착관계가 있다고 의심받을 수도 있다.

평상시 유대관계를 좋게 가져가면서 조사 결과를 가지고도 상부상조하려면 적당한 수준에서 타협점을 찾는게 필요하다.

고의 누락이나 탈세 등 큰 문제는 아닌 수준에서 어느 정도는 세금을 때릴 수 있는 거 몇 개만 던져 주는 것이다.

"태평아. 작년 신고할 때 묻은 게 많았냐? 아님 큰 이슈라도 있었나?"

묻는다는 표현은 원칙적으로는 비용으로 인정받지 못할 것들을 인정받을 수 있도록 숨기거나 살짝 덮어놓는 것을 뜻한다.

어느 누가 그런 게 없다고 단언할 수 있겠는가.

그냥 잘 안 보이게 묻었냐고 묻는 게 맞지.

"묻는 거야 뭐 늘상 있는 건데요. 아무튼 그래도 특별한 게 있겠습니까? 그리고 평상시에 우리가 얼마나 챙겨 줬는데요."

"그건 나도 아는데, 몇 군데 전화 돌려보니까 자꾸 이상한 말이 돌아서."

"뭐가요?"

"이번에 우리 거 조사4국이 담당한다는 말이 있어."

"네? 조사4국이요?"

이런……!

이건 똥 밟은 정도의 수준이 아니라 그냥 뭐 똥물에서 헤엄치는 격이다.

어쩐지……. 그래서 임상무가 임원회의 도중에 박차고 나왔구나.

그냥 세무조사를 저승사자로 비유한다면 조사4국의 조사는 염라대왕급이다.

검찰로 말하자면 중수부라고 해야 할까.

물론 조사4국도 일반 정기 세무조사를 담당하긴 했다. 그런데 과거부터 워낙 굵직한 사건들을 많이 맡아 와서인지 악랄한 이미지가 강하게 남아 있었다.

"그럼 이번에 특별조사예요?"

김병국부장은 계속해서 울상을 짓고 있었다. 잘못되면 올해 임원 승진은커녕 짐 쌀지도 모를까 봐 여간 불안한 게 아닌가 보다.

"그냥 일반조사라고는 하는데 모르지 혹시."

특별히 탈세 혐의가 있다거나 하진 않았으니 정기세무조사로 보는 게 맞긴 하다.

그래도 불안한 마음이 가시진 않았다.

사전통지서에 찍힌 날짜까지는 앞으로 15일밖에 안 남았다.

김부장과 함께 임상무방을 나와 자리로 돌아오는데 팀원들의 시선이 따라오는 게 느껴졌다.

뭔 일이라도 생겼나 궁금했는지 다들 딴짓하는 척하며 언뜻언뜻 살펴보고 있었다.

김부장 자리에 앉기도 전에 다이어리를 책상으로 던져 버리고는 욕설을 내뱉었다.

"아이 씨발!"

사무실 분위기 일순 무겁게 가라앉았다. 개미 소리 하나 들리지 않았다.

이에 아랑곳하지 않는 한 사람. 그대 이름은 재벌.

조성환이 내 자리 쪽으로 의자를 끌면서 오더니 궁금한 듯 물었다.

"과장님 무슨 일이에요? 아침부터 심각하게."

뒷자리 원모랑 해규 또한 귀를 쫑긋거렸다.

"안 좋은 뉴스가 두 개야."

불안한 직감이 들었는지 원모가 끼어들었다.

"뭔데요. 빨리 말씀 좀 해 주십시요."

스무고개 하려고 했더니 영 그럴만한 분위기가 아니었다.

"세무조사 나온대."

"아!"

원모와 해규가 탄식을 내뱉었다.

이제 몇 달간 칼퇴는 글렀다며 좌절한 것이었다.

두 사람의 리액션이 도무지 이해가 안 간다는 듯 성환이 되물었다.

"그게 뭔데요?"

아 귀찮다.

도대체 어디까지 아는지를 알아야 거기서부터 알려 주지.

"원모야"

그래도 원모는 척하면 척이다.

성환에게 세무조사란 무엇인지, 자기들이 왜 그렇게 몸서리쳤는지에 대해 간단히 알려 주었다.

그러나 성환은 연신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여전히 이해 못 한다는 표정이었다.

조용하던 해규가 조심스럽게 얘기를 꺼냈다.

"과장님 저 IR파트로 가면 안 될까요? 제 적성에도 맞는 거 같고 마침 IR파트장님도 생각있냐고 물어보시고요."

헐? 심정은 이해 간다만 지금 그걸 말이라고…….

좋게 생각하자.

이놈도 그냥 힘들다고 푸념한 것일 거다.

"알았어, 내가 상무님께 잘 말씀드려 볼게."

그냥 뱉어 본 말이었는데 뜻밖의 긍정적인 답변에 한껏 들떴다.

"정말요? 감사합니다, 과장님."

"당근이지. 단 세무조사 끝나고."

그럼 그렇지라는 듯 급실망한 표정을 감추질 못했다.

"농담이었습니다. 과장님."

"아니야. 내가 봐도 너한텐 그 자리가 딱이야. 좀 있으면 과장 승진 대상이던가?"

둔한 녀석이라도 이쯤되면 알아들었을 거다.

내가 인사권자는 아니지만 바로 윗사람이긴 하다.

직접 끌어 올려주지는 못할지언정 뒷다리 잡고 끌어내릴 수는 있었다.

"죄송합니다. 과장님."

"농담이어도 죽는다."

"죽을죄를 졌습니다. 죄송합니다."

오가는 몇 마디에 대강 상황 파악을 했는지 성환이 궁금한 듯 다시 질문했다.

"아까 안 좋은 뉴스가 두 개 있다고 하지 않으셨나요?"

"설마 세무조사보다 안 좋은 뉴스도 있어요?"

원모가 의아한 듯 덧붙였다.

역시 이놈은 멍청한 놈이 아니다.

"두 번째 뉴스는 그렇게 나쁜 건 아니야."

"그럼 뭔데요?"

"그냥 세무조사 대응을 너희들이 해야 한다는 거지."

허탈한 건지 황당한 건지.

원모와 해규가 벌린 입을 다물지 못했다.

"뭐지? 입 좀 안 다무냐? 그럼 지난번에 내가 했는데 또 내가 하리?"

"아니 그래도 저희는 대린데."

"나도 그땐 대리였어."

"아니 그래도."

시키는 거 하는 것과 마도 잡는 것은 차원이 다르다.

덜컥 겁나는 거 충분히 이해가 간다.

그러나 조금만 있으면 난 빠이빠이 할 테다.

남을 사람들이 해야 사후관리도 가능할 것이다.

그리고 굳이 내가 힘들게 나설 필요가 있을까?

옆에서 가만히 듣고만 있던 성환이 갑자기 끼어들었다.

"저도 대린데 제가 하면 안 되겠습니까?"

세무신고는커녕 신고서도 구경 한번 못해 본 놈이 세무조사 마도를 잡겠다니.

도무지 말이 안 되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차기 회장이 될 사람이 실무진으로 직접 세무조사 한 번 뛰어 보는 건 나름대로 의미 있을 것 같았다.

게다가 결과가 나쁘다고 한들 아무도 비난 삼지 못 할 것이다.

담당부서 입장에서도 책임추궁에서 빠져나가기 훨씬 수월할 테고.

"말이야 방구야."

성환을 책임자로 하자는 나의 제안.

아니 정확히 말하면 성환의 의사를 듣고는 임상무가 내뱉은 첫마디였다.

"전임 회장님도 직접 해봤다고 들었는데요. 차기 회장이 한 번 해 보겠다는데 굳이 말릴 필요가 있을까요?"

"누가 봐도 방패막이 삼으려는 티가 너무 나잖아."

틀린 말은 아니다.

가르치려고 옆에서 보고 배우라는 건 몰라도 실무책임을 맡긴다니.

"그럼 자원하겠다고 손들었는데 빠지라고 합니까? 넌 깜냥 안 된다고 말하라고요? 전 그렇게 말 못 하니깐 상무님이 하시든지요."

"아니 이 자식이."

임상무가 뒷목을 잡자, 옆에 한마디도 안 하고 가만히 서 있던 김병국부장이 괜찮으시냐면서 부축하는 척했다. 오버액션 쩐다.

임상무 잠시 숨 고르며 흥분을 가라앉힌 후 입을 뗐다.

"그럼 둘이서 같이 해봐."

"네? 그게 무슨?"

"공동책임자 하면서 옆에서 잘 지켜보고 가르쳐 드리라고."

말이 공동이지 일은 나보고 하라는 말이나 다름없다.

결과가 나쁘면 다 네 책임이다 라고 하면서.

* * *

세무조사 통지를 받은 다음 날.

바로 팀원별로 각자의 역할이 부여되고 조사 대응 준비가 시작되었다.

담당자들은 법인세와 부가세 등 세목별로 신고자료를 분석해서 오류가 있었는지를 살폈다. 과거에 여기저기 묻은 게 티 나지 않는지를 확인 또 확인하였다.

임상무와 김부장은 여러 라인을 통해 배정된 조사공무원이 누구인지와 그 사람들의 이력을 살피고는 주변에 천하제일과 관계있는 사람이 있는지 파악하였다.

평상시 국세청 고위급 출신 퇴직 공무원을 고문으로 임명하여 수임료를 지급했던 게 드디어 효과를 발휘할 때가 되었다.

고문을 통해서 조사관의 상관, 선배, 동료들을 통해 간접적으로 회유하는 방법이다. 이 당시엔 이런 수법이 어느 정도는 통하는 분위기였다.

조사개시 열흘 전.

김부장이 나와 성환을 부르더니 종이 한 장을 건네주었다.

"조성환님. 조사관 측에서 보내준 배치표입니다."

"네?"

영문을 몰라하는 성환에게 설명해 달라는 듯이 김부장이 나를 보고 턱짓했다.

"몇 달 동안 현장조사 할 거니까 자기들 사무실을 이렇게 꾸며 달라는 거야."

"그냥 빈 사무실 주면 안 돼요?"

"그래도 되긴 한데 감당할 수 있겠어?"

"무슨 말이죠?"

"꼬장 부리면 어떡하려고. 꼬투리 안 잡히게 굽신거리면서 최대한 맞춰 줘야 돼."

배치표를 보니 책상 네 개가 그려져 있었다. 조사관 네 명이 방문할 예정인가 보다.

사무실 문과 창문의 위치는 물론 프린터기, 복사기와 문구류 등을 놓는 위치까지 그려져 있었다.

문구류는 각종 펜 종류는 물론, 볼펜심의 규격과 색깔까지도 구체적으로 기재되어 있었다.

여간 꼼꼼한 사람들이 오는 게 아닌 모양이었다.

내가 임원을 하던 미래에는 상상하기 힘든 일이었지만 곰곰이 떠올려 보니 이 시절에는 이 정도는 당연히 요구할 수 있는 수준이었다.

여러 회의실을 돌면서 창문과 문의 위치가 배치표와 일치하는 곳이 있는지를 확인해 봤다. 그런데 완전히 일치하는 곳은 없었다.

급하게 배치표대로 회의실을 만드는 공사가 시작되었다.

겨우 세무조사 몇 달 하는 거 때문에 사무실 공사까지 하는 것을 보고 성환이 의아하다는 듯이 물었다.

"과장님 그냥 회의실 층에서 비슷한 데 찾아서 준비하면 될 걸 왜 공사까지 하죠?"

나도 예전엔 몰랐었다.

굳이 이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을까 라는 생각, 나도 했었다.

"여러 회의실 중에 하나 잡아 놓으면 괜히 옆에서 이상한 거 들을 수도 있어."

"그래서 아예 아무도 안 쓰는 층에다 따로 만드는 거예요?

"그렇지. 화장실 다니면서 주워듣는 것도 무시 못 해. 그러니깐 아예 독립된 층에 짱 박아 놔야 해."

"그럼 바로 눈치채지 않나요? 피한다고?"

"그러니까 초호화급으로 세팅해 놓는 거야. 일부러 좋은데 잡아 놨다고 핑계 대기도 편하고. 게다가 뷰도 좋아서 바깥 구경 실컷 하게해서 일하기 싫게 만들어야지."

성환은 이제야 납득이 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술만 없지, 호텔 스위트룸 부럽지 않은 미니바가 세팅되었다.

냉장고에는 각종 음료와 간식거리로 가득했다.

회의실 옆방에는 안마의자까지 갖춘 휴게실도 꾸며 놓았다.

제발 먹고 쉬면서 제대로 파지는 말아 달라고 한 거다.

십 년 뒤쯤 내가 재무팀장 할 때는 식사라도 한번 같이하면 자기들이 먹은 건 자기들이 칼같이 냈다. 그리고 자판기 커피마저도 자기들 동전으로 뽑았지만, 이 당시엔 좀 느슨하긴 했었다.

"원모랑 해규가 왜 그렇게 몸서리쳤는지 알겠지?"

성환은 끄덕이는 걸로 대답을 대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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