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손안의 재벌-20화 (20/191)

20화 못 먹어도 고

비교적 한가한 토요일 오후.

한 건물 입구로 들어서자마자 코를 찌르는 특유의 알싸한 소독약 냄새.

여기가 바로 병원이다라고 콕콕 찌르듯이 말해 주는 듯하다.

태어났을 때부터 맡아 와서인지 어딘가 익숙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왠지 모를 불쾌감과 긴장감도 생겨났다.

어려서부터 몸이 아플 때마다 맡아 와서였는지 나도 모르게 병원 냄새를 몸이 아프다는 것과 주삿바늘의 공포를 서로 연관시켜서 기억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간호사의 안내를 받아 침상 6개가 따닥따닥 붙어있는 입원실 안으로 들어서자 김철수부장이 잠들어 있는 아내 손을 붙잡아 이마에 대며 기도하고 있었다.

아내분 잠이 깰까 봐 아주 조용히 불렀다.

"저……. 부장님."

울고 있는 것을 들키지 않으려는 듯 침을 삼켜 목소리를 가다듬었다.

"태평아……. 왔어? 잠깐만 옆에 휴게실에 가 있어 봐. 내가 금방 갈게"

휴게실 자판기에서 뽑은 렛츠비.

대학 졸업한 이후로 정말 오랜만이다.

500원이면 이런 달달한 즐거움을 만끽할 수 있다니.

4000원짜리 아메리카노는 내 형편에 너무 과분하다.

별다방 500원어치로는 한 모금도 채 안 될 테니.

렛츠비의 충만한 당분을 만끽하고 있는데 김부장이 휴게실로 들어오더니 대뜸 따지듯이 물었다.

"너만 먹냐?"

"아. 잠시만요. 부장님."

대답하며 잠시 지갑을 찾았다.

아니 찾는 척했다.

이 정도 미적거리면 웬만해선 다들 '괜찮아 난 아까 마셨어'라고 할 텐데.

김부장 진심이었나보다.

미동도 없이 물끄러미 내 지갑을 바라보다 답답했는지 천 원짜리를 하나 쑥 뽑아 젤 비싼 헛개 음료를 눌렀다.

"나 고혈압이라 당 조심해야 해."

누가 뭐라고 했나?

그래도 양심은 있는지 좀 찔리긴 했나 보다.

음료 한 모금도 채 넘기기 전에 역시 바로 본론이었다.

"얘기됐지? 광고 계약서 써 놨는데 보여 줄까?"

"부장님.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광고는 안 됩니다."

김부장 실망한 건지 화가 난 건지 별말 없이 헛웃음만 지었다.

"부장님 이번 병원비는 넘긴다고 쳐요. 다음부턴 어떻게 하실 건데요? 병원비 한번으론 안 끝날 거 같은데요."

"그건 네가 알 바 아니잖아!"

갑자기 김부장이 소리치는 바람에 조용했던 휴게실 분위기가 싸해지더니 옆에서 과자 먹던 아주머니 조용히 뒷걸음치며 밖으로 나갔다.

아무도 없는 걸 확인하고는 조용히 가방에서 흰 봉투를 꺼내 건네주었다.

"이거 받으세요."

김부장은 그러면 그렇지란 표정으로 봉투를 받아들었지만 자기가 기대했던 두께감이 아닌 것을 확인하였는지 이내 얼굴을 찡그렸다.

역시 봉투를 열어보니 돈은 당연히 없었고 딸랑 명함 하나만 테이블 아래로 떨어졌다.

명함을 쥐고 위아래로 흔들면서 화난 표정을 거두지 않았다.

"이게 뭐야? 장난해 나랑?"

"거기로 전화하세요. 얘기 다 끝냈으니깐요."

"뭔 말이야. 제대로 좀 말해줘 봐."

"부장님은 사모님 돌보셔야 하니까 파트타임 형태일 겁니다. 대외협력팀이고 언론 상대하는 일인데 부장님 전문이시니까 잘하실 겁니다. 급여는 높지 않을 거니 너무 기대하진 마시고요. 게다가 처음 몇 달치 월급은 병원비 가불한 거로 깐다니깐 그리 아세요."

이제야 이해했는지 별다른 말 없이 고개만 숙였다.

"제가 한 건 없어요. 그냥 적임자를 찾아서 추천해 준 것뿐입니다. 말하자면 헤드헌터라고 해야 하나. 아무튼 다음에 소주는 부장님이 사시는 걸로."

"고맙다 태평아."

김부장이 한 소매로 흐르는 눈물을 훔쳤다.

듬성듬성 몇 가닥 남지도 않은 머리에 그마저도 희끗희끗한 중년 아저씨가 걸핏하면 운다.

어제 주총이 끝나고 성환이와 바로 논의했었다.

논의보단 강요에 더 가깝긴 했지만.

이 당시에는 재벌그룹마다 일감몰아주기가 횡횡하던 시절이었다.

회장 자녀가 소유한 회사에 전 계열사의 일감을 몽땅 몰아주면서 기업가치를 확 끌어올린 후 상장시켜서 자금을 확보한다.

그 자금으로 지분 증여받을 때 세금으로 납부하는 식이었다.

톱클래스 재벌도 다 그런 방법을 통해서 자녀에게 지분을 넘겼다.

성환의 반론도 만만치 않았다.

"우리가 왜 그 사람을 안고 가야 하죠?"

"지분 승계 과정에서 대언론 관계가 중요해. 김부장이 그 분야 전문가라 딱 적임자야. 게다가 풀타임일 필요도 없으니 급여가 높지 않아도 되고."

"급여가 문제가 아니라 우리를 협박한 사람을 어떻게 쓰냐고요?"

"내가 사정 말해줬잖아. 오죽하면 그랬으려고. 그리고 너 말대로 우릴 협박했으니깐 더더욱 우리가 써야지. 우리에 대해 그렇게 공부 많이 하고 약점을 꿰고 있는 사람을 같은 편으로 만들어야지 적으로 삼으면 되겠어? 후환을 막아야 할 거 아냐."

생각해보니 내 말이 맞긴 했나 보다.

한참의 옥신각신 끝에 조용히 생각하던 성환이 핸드폰을 들어 통화버튼을 눌렀다.

"전데요. 천하태평개발 이대표 저한테 바로 전화 좀 달라고 해 주세요."

지가 해도 될 걸 꼭 비서실 통해서 전화하라고 시킨다.

보고 자라서 그런지 몸에 자연스럽게 배어있는 것인데, 계속 보아오면서도 적응이 안 된다.

* * *

병원 방문을 마치고 나니 어느덧 해가 넘어가고 사방이 어둑어둑해졌다.

여유도 없이 힘든 몇 주가 지나고 드디어 완전한 홀가분함을 만끽하는데 지난주 통화할 때의 엄마 목소리가 아른거렸다.

이혼하고 나서 혼자 밥도 잘 못 챙겨 먹을까 봐 아들 걱정만 잔뜩 늘어 놓았었다.

물론 결혼 생활 중에도 밥 못 챙겨 먹는 건 마찬가지였지만.

병원 입원실에서 보호자 없이 홀로 누워있는 나이 드신 환자분들을 보니 나도 모르게 갑자기 엄마가 떠올랐나 보다.

강원도가 뭐가 멀다고 맨날 다음에 가면 되지 하고 미뤘었나.

명절 땐 차 막힌다고 못 가고 평상시엔 바쁘다고 못 가고 일 년에 한두 번 가는 건데 많이도 망설였던 거 같다.

그래, 그냥 지금 가자.

내비게이션을 켜고 주소를 입력하니 3시간 30분이 찍혔다.

헉.

아직 서울-양양고속도로 개통 전이었다.

처음엔 두 시간 반이면 도착할 거라 예상했어서 정말 갈까 잠시 고민도 해보았으나, 아무래도 결론은 그냥 가자였다.

평상시에 찾아뵙고 잘해드려야 한다고 다짐했다.

제기랄

4시간이 넘게 걸렸다.

이 시절 내비는 실시간 교통정보가 제대로 반영 안 되어 있다는 걸 까먹었었다.

칠흑 같은 어둠이 내린 앞마당에 주차하고 집을 들어섰다.

엄마는 내가 오는걸 기다리는지 대문은 열어 놓은 채 내가 오는 소리도 놓치지 않으려고 해서인지 TV마저 안 켜놓은 듯했다.

아니었다. 잠깐 오해했었다.

쩍쩍 달라붙는 탄력 있는 소리와 함께 여기저기 오고 가는 탄식과 고함 소리가 들려왔다.

"에이씨, 똥 쌌다."

"못 먹어도 고!"

고무줄 바지를 한껏 추켜올린 할머니들 사이에 앉은 엄마는 화투에 엄청 집중해서인지 내가 들어오는지도 몰랐다.

"엄마!"

크게 한번 부르자 이제야 아들이 온 걸 알아차렸는지, 눈 한 번 마주치고 고개 한 번 가볍게 끄덕였다.

중요한 일이니까 잠시 빠져 있으라는 거다.

그래, 밥은 자기가 챙겨 먹는 거다.

누가 해 주는 밥을 기대하다니 참 어리석었다.

조용히 부엌으로 가서 라면 물을 올리는데 찬장엔 하필이면 끓이기 귀찮은 짜파게티밖에 없다.

'제길 휴게소에서 먹고 올걸.'

* * *

초등학교 시절이 떠올랐다. 아니 그땐 국민학교였지. 아무튼 그 시절 어느 날 담임선생님이 가훈을 적어오라는 숙제를 시켰다.

까먹지 않게 맘속으로 '가훈, 가훈, 가훈' 하면서 집에 도착하여 방문을 딱 열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엄마는 옆집 상철이형 엄마, 건넛집 용혁이 엄마랑 둘러앉아 고스톱 삼매경이었다.

엄마는 살짝 눈길 한번 주고는 한 손을 뻗어 부엌을 가리켰다.

"저기 밥 차려 놨으니깐 얼른 먹어."

"엄마 우리 집 가훈이 뭐야?"

못 들었는지 돌아보지도 않아 다시 한번 소리쳤다.

"엄마 우리 집 가훈이 뭐냐고?"

그때 마침 광 세 개가 붙었는지 아님 고도리라도 떠서 점수가 났는지 갑자기 엄마가 외쳤다.

"못 먹어도 고!"

"뭐라고?"

"못 먹어도 고!"

그땐 정말 나한테 하는 얘긴지 알았다.

가방을 열어 노트에 적었다.

우리 집 가훈은

"못 먹어도 고"

물론 다음 날 학교에서 선생님께 살짝 꾸중을 듣긴 했었다.

선생님은 정말 엄마가 말씀해 주신 게 맞냐고 거듭 물어보셨고, 두 번이나 직접 말씀하셨다고 거듭 대답했었다.

구타가 일반적이던 그 시절 장난한다고 날 때리지는 않았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편모슬하에 어련하겠어' 하고 그냥 넘어가신 것 같다.

* * *

그 이후 한 번도 가훈에 대해 다시 물어본 적은 없었다.

시간이 매우 흘러 어른이 되고 나서야 우리 집 가훈은 정말 못 먹어도 고였음을 알았다.

'어차피 한번 사는 인생 그냥 재미나게 살다 가지 뭔 쓸데없는 고민으로 아등바등 사냐'

이게 엄마의 가치관이었다.

물론 이전의 나는 전혀 그렇게 살지 않았었지만.

그땐 정작 살면서 뭐가 중요한지도 모르고 권력이나 쥔 것마냥 잔뜩 허세만 부리고 살았었다. 진작에 엄마의 가르침을 받았다면 다르게 살았을 테지만.

그러나 지금은 다시 태어난 것과 마찬가지니, 이번 생은 우리 집 가훈처럼 살아봐야겠다.

점수 붙으면 끝까지 가봐야지 중간에 안주하고 스톱하면 따블, 따따블은커녕 일 점밖에 더 못 얻는다.

일 점은 인생에서 있으나 마나다. 설령 다음 턴에 못 먹고 고박을 쓰더라도 그냥 가는 거다.

"못 먹어도 고"

"뭐라고 이놈아?"

엄마가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를 하냐는 듯 쳐다본다.

앗!

나도 모르게 입 밖으로 튀어나왔나 보다.

"아니, 별거 아냐. 갑자기 우리 집 가훈 생각나서."

"가훈이라니. 그런 것도 있었냐?"

"어. 그냥 그런 게 있어. 근데 다른 할머니들은?"

"갔지 다들 자기 서방들 안자고 기다린다고 들어갔다."

"무슨 이 시간까지 화투를 쳐. 아무튼 시골 할머니들이 체력도 좋아. 따긴 했어?"

"내가 잃고 있을 때 화투장 놓는 거 봤어? 당연히 따지."

"여윽시, 우리 엄마. 돈 땄으니 용돈은 필요 없겠네."

"점 백짜리 따면 얼마나 딴다고 하여간 서울 것들 쪼잔해 갖고. 근데 왜 왔어?"

"그냥 엄마 보고 싶어서 왔지. 아픈 덴 없어?"

"시답잖게. 바쁜 거 아냐? 얼굴 봤으니깐 이제 빨랑 가."

말은 그렇게 해도 상냥하게 웃는 표정이 오랜만에 아들 얼굴 봐서 좋긴 좋나 보다.

"근데 왜 밥 놔두고 라면 먹었어?"

"밥이라니 어디?"

"여기 있잖아."

엄마가 가리킨 곳에 보자기를 걷자 작은 소반 위엔 알록달록 색깔의 반찬들이 정성스럽게 놓여있었다.

내가 좋아하는 계란말이, 북어조림과 무말랭이 삼각편대, 밥 두 공기는 거뜬한 조합이다.

이런 걸 놔두고 더군다나 귀찮게 물도 덜어내고 비비기까지 해야 하는 짜파게티를 끓여 먹다니, 공기 좋고 산 좋고 물 좋은 강원도까지 와서.

"에이 엄마, 밥해 놨으면 미리 말이라도 좀 해주지. 화투가 뭐 그리 중요하다고."

"아까 통화하면서 밥해 놓겠다고 했잖아. 그리고 두 시간이면 된다더만, 지가 늦게 와 놓고선."

그래 배부르면 어떠냐. 저녁 두 끼 먹으면 좀 어떠냐.

내일 아침 안 먹으면 되지.

"알았어. 밥 한 숟가락만 떠 줘 봐. 이거 보고 그냥은 못 자겠다."

엄마는 잠깐 기다리라고 하고서는 한 공기 가득한 고봉밥을 들고 왔다.

……. 그래 먹자. 내일 점심까지 안 먹으면 된다.

부모는 자식들 먹는 것만 봐도 즐겁나 보다.

엄마는 어렸을 적 학교 끝나고 집에 와서 부리나케 책가방 던져놓고는 숟가락부터 들던 때 나를 옆에서 지켜보던 그 표정 그대로 내가 밥 먹는 걸 가만히 지켜보고 있었다.

허겁지겁하는 그 숟가락, 젓가락질이 뭐가 재미있다고 마지막 한 톨 입에 다 털어낼 때까지 흐뭇하게 쳐다봤다.

다음 날 오전.

일찍 눈이 떠진 김에 마을 한 바퀴를 산책 삼아 돌았다.

아직 안개가 걷히기 전이라 그런지 돌담의 돌무더기들은 잔뜩 물을 머금은 듯 반질반질 윤이 나 있었다.

이제 시골에서도 아궁이에 가마솥을 떼는 집이 없어 굴뚝 연기는 볼 수 없었지만 집집마다 아침 준비하는 듯 고소한 냄새가 마을을 휘감았다.

그래 엄마를 굳이 서울로 모셔서 사방팔방 꽉 막힌 답답한 아파트로 모실 필요가 없겠다.

그건 진정으로 엄마를 위함이 아니라 나 스스로 그렇게 해야만 마치 불효를 저지르지 않는 것이라 위안 삼고자 했음이리라.

이렇게 좋은 공기 마시면서 맘에 맞는 이웃들과 화투 등 취미생활도 실컷 즐기며 여생을 재밌게 보내시는 게 훨씬 나을 것이다.

한결 편안해진 마음에 집에 돌아와 짐을 챙겼다.

"벌써 갈라고?"

"왜 어제는 밤에 그냥 가라매?"

"하여간 저 말버릇하고는. 누구한테 배웠는지 하여간."

"누구한테 배우긴. 내가 아빠가 있기를 해. 엄마한테 배운 거지."

"하여간 꼬박꼬박 말대꾸는. 너 회사에서 사람들이 안 싫어하냐?"

"몰라. 싫어하든지 말든지."

"아휴! 좀 적당히 하면서 살아. 그러니 여자가 안 붙지."

엄마가 땅이 꺼질 듯이 한숨을 내질렀다.

또 나왔다. 여자 좀 만나라는 얘기.

어쩐지 잘 참나 했다.

암 그렇지. 엄마 성격에 이틀을 참을 순 없지.

산책하는 와중에 차린 게 있으니 꼭 먹고 가라는 엄마의 당부에 못이기는 척 앉아서 숟가락을 들었다.

아침도 역시 계란말이, 북어조림에 무말랭이다.

마치 3D프린터로 출력해 놓은 듯이 어제 저녁상의 반찬 위치와 양 그리고 맛까지 그대로다.

좀 더 있겠다고 했으면 점심까지 똑같이 먹을 뻔했다.

반찬 싸준다는 걸 간신히 말려서 나올 수 있었다.

차를 출발시키며 백미러를 보니 서른도 훌쩍 넘은 아들이 아직도 걱정되는지 배웅하러 나와서는 차가 안 보일 때까지 집 안으로 들어가질 않았다.

'혼자 힘으로 이렇게 잘 키워주셔서 감사합니다.'

속으로 인사드렸다.

그래, 다른 게 뭐가 중요하다고 바쁘다는 핑계로 잘 찾지도 못한 엄마한테 죄송한 마음이 들며 최소한 분기에 한 번이라도 들르자 다시 한번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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